실베스터 스탤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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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베스터 스탤론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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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로고.svg
이름
실베스터 스탤론
SYLVESTER STALLONE

분야
영화
입성날짜
1984년 6월 14일
위치
6712 Hollywood Blvd.



실베스터 스탤론
Sylvester Stallone

파일:external/consequenceofsound.files.wordpress.com/stallone.jpg

본명
마이클 실베스터 가덴시오 스털론
Michael Sylvester Gardenzio Stallone
출생
1946년 7월 6일[1] (77세)
뉴욕주 맨해튼
거주지
캘리포니아 주 베벌리 힐스
국적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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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73.4cm[2]
직업
배우, 영화감독, 각본가
활동
1969년 – 현재
지지 정당

[3]
부모
아버지 프랭크 스털론 시니어
(1919년 9월 12일 ~ 2011년 7월 11일)
어머니 재키 스털론
(1921년 11월 29일 ~ 2020년 9월 21일)
형제
남동생 프랭크 스털론 주니어[4]
(1950년 7월 30일생 ~ )
이부 여동생 토니 댈토[5]
(1964년 5월 5일 ~ 2012년 8월 26일)
배우자
사셔 잭 (1974 결혼 ~ 1985년 이혼)
브리짓 닐슨 (1985 결혼 ~ 1987년 이혼)
제니퍼 플레이빈 (1997년 결혼 ~ 현재)[6]
자녀
슬하 2남 3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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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세이지 스털론
(1976년 5월 5일 ~ 2012년 7월 13일)
아들 서지오 스털론
(1979년생 ~ )
소피어 로즈 스털론
(1996년 8월 27일생 ~ )
시스틴 로즈 스털론
(1998년 6월 27일생 ~ )
스칼럿 로즈 스털론
(2002년 5월 25일생 ~ )

1. 소개
2. 생애
2.1. 데뷔 이전
2.2. 영화 배우
2.3. 정치가?
3. 록키와 람보의 흥행 요인
4. 기타
4.1. 스탤론 vs 슈워제네거
5. 파생 캐릭터
6. 출연작



1. 소개[편집]


파일:external/prayersandapples.com/Rocky.jpg

미국배우이자 영화 감독, 각본가, 제작자이탈리아계 미국인이다. 근육질과 선이 굵은 외모를 자랑하며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입지전적 배우록키 시리즈록키 발보아람보 시리즈존 람보로 대표되는 영화배우.

북미에선 애칭으로 슬라이(Sly)[7]라 불리기도 한다. 루니툰에서 트위티를 괴롭히고, 잡아먹으려는 악역 고양이 실베스터와 이름이 같아 학창시절에 극심한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2. 생애[편집]



2.1. 데뷔 이전[편집]


이탈리아계 미국인 아버지와 유대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집안이 가난해 스탤론의 부모는 병원이 아닌 공공 의료시설에서 실베스터 스탤론을 낳았다. 당시 담당의가 분만 당시 아기를 원활하게 꺼내려고 겸자로 아기 머리를 집어 산도에서 끌어내는 겸자 분만을 하던 도중 겸자가 스탤론의 왼쪽 눈밑에 있는 얼굴 신경 일부를 망가뜨렸다.[8] 스탤론을 낳은 뒤 얼마후 왼쪽 눈밑이 비정상적으로 쳐진 것을 본 부모가 병원에 데리고 갔을 때에는 이미 분만을 할 때 망가진 뒤였다. 이 의료사고 때문에 스탤론은 언어장애와 안면신경마비(구안와사)를 떠안았다. 이 두 가지는 배우에게 사형선고나 다름 없었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피나는 노력 끝에 할리우드 대표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체육특기생으로 스위스의 명문 로잔 아메리칸 스쿨을 졸업하고 마이애미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였다. 교육열이 강한 어머니의 도움이 컸다. 어릴 때부터 엄청난 문제아라 애초에 미국 내에 들어갈 대학이 없던 상태에서 궁여지책으로 외국 대학 중 들어갈 수 있는 곳을 찾았던 상황이었는데, 이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으려는 걸 알았기에 학교 교장 앞에서 1년 학비 전액 현찰박치기에 중간 퇴학시 환불 없음이라는 조건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게다가 그가 제작한 영화 록키에서는 "머리가 나쁜 새끼니까 몸이라도 단련하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건 사실 실베스터 본인이 시험에 낙방했을 때 아버지로부터 두들겨 맞으면서 들었던 말이었다. 마이애미대학 시절에도 연기에 두각을 드러내지 못해 쫓겨나다시피 학교를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고교시절 연기에 눈을 떠 대학을 중퇴한 후 할리우드에 입성했으나, 근육질에 선이 굵은 배우는 당시의 주류가 아니었고 안면신경장애와 언어장애라는 두 가지 장애로 인해 근근히 들어오던 엑스트라에 만족해야만 했다. 재미있는 건 점성술을 신봉한 어머니가 아들의 점을 봤는데 점쟁이가 한 말은 향후 몇 년 간 처절한 실패를 맛본 뒤, 배우가 아닌 작가로 성공한다. 였다.


2.2. 영화 배우[편집]


엑스트라역에 만족하며 나이트 클럽의 문지기나 소프트 포르노 배우[9] 같은 일을 하면서 생활고에 시달렸다. 본인의 말론 나이 서른이 되도록 저축은 백달러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스탤론은 생애 첫 주연을 맡게 되었는데 그 작품이 《플랫부시의 주》이다. 하지만 주연이라는 네임밸류와는 다르게 개런티는 고작 티셔츠 25벌뿐이었다.[10]

그 후 우디 앨런의 《바나나 공화국》이라든지 로저 코먼의 《데스 레이스》에서 조연으로 나오던 시절을 겪으며 생활고에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할 때 즈음, 막 유행하기 시작한 연작극에 관심을 가져 시나리오 쓰는 법을 독학했다. 이때 수백 개의 시나리오를 썼으나 팔린 건 한 편이었고, 영화화가 된 것도 결국 스탤론 본인의 감독 데뷔작으로 이루어졌다.

시나리오에 대한 독학을 마칠 즈음, 우연히 무하마드 알리와 척 웨프너[11]의 경기를 보게 되는데, 압승하리라 여긴 알리를 상대로 예상 이상으로 선전하며 15 라운드까지 버틴 웨프너의 투혼에 영감을 얻어[12] 이를 토대로 《록키》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스탤론은 이 록키 시나리오를 들고 여러 영화사를 돌아다녔고, 각본의 완성도에 주목한 영화사들이 관심을 보였으나,[13] 스탤론이 같이 제시한 "감독과 주연은 날 시켜달라"는 조건에 제작사들이 난색을 표명하면서 시나리오는 반년간 떠돌아 다녔다. 스탤론 입장에서 '록키 발보아'는 자신을 그대로 투영해 만든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자기가 누구보다 연기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다른 영화사들 입장에서는 영화의 흥행을 위해서 유명 배우를 기용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에서 스탤론의 의견을 반만 받아들여 주연배우는 하되 감독은 제작사가 제시하는 인물로 한다는 조건으로 제작을 수락했다. 그렇게 해서 제작된 록키는 1976년 개봉해 공전절후의 대히트를 하며 스탤론에게 출세의 길을 열어줬다. 《록키》는 아카데미 작품상과 편집상,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스탤론은 남우주연상과 각본상 후보에 동시에 올랐으나 수상은 못 했다. 그 후 월남전 참전 용사의 PTSD에 대한 고찰을 담았고 공동 각본 및 주연으로 나온 1982년작 《람보》도 흥행에 성공해서 할리우드의 간판 흥행 배우로 자리매김했다.[14]

사실 이건 이 영화사에서 《록키》 하나만 찍을 거였으면 절대로 성사되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같은 영화사에서 《록키》의 후속작으로 《뉴욕 뉴욕》을 준비중이었으며, 이 영화사의 마인드 자체부터 "《록키》가 망하면 《뉴욕 뉴욕》으로 메꾸면 그만이다"였기 때문에 아무 부담 없이 《록키》를 촬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두 영화가 개봉된 이후에는 상황이 역전되었는데 《록키》는 흥행이 역대급으로 대성공한 반면 《뉴욕 뉴욕》은 제작비를 건지기 어려운 지경까지 흥행에 실패했다.

스탤론이 무명배우 시절을 어떻게 보냈으며, 록키를 어떻게 만들었는가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해보자. 불타는 록키의 연대기 1편 2편.

사실 《록키》나 《람보》에서 스탤론이 보여준 캐릭터는 '강인한 마초 영웅'보다는 사회적 언더독의 위치에 놓인 루저가 가혹한 사회와 필사적인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였다. 영화속 스탤론의 캐릭터는 스탤론의 실제 삶과도 접점이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육체적 근성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마초적 정서가 깔려 있기는 하는데, 스탤론의 캐릭터는 '이민자 청년', '퇴역 군인'이라는 사회적으로 소수자에 용도폐기된 자이며 이 실패자의 입장에 놓여 있다는 것이 오히려 '남성적 강인함'을 부각시켜줬다. 위의 링크에도 나와있지만, 라이벌로 유명한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영화판에서 one-liner의 본좌라면 스탤론은 모든 작품에서 한번씩 거하게 울부짖거나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이 반드시 나온다. 이렇게 강인한 남자면서도 속으론 컴플렉스에 쩔어있다가 한번 크게 터지는 격정적인 분노가 스탤론 연기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스탤론의 분출구이며 스탤론 팬들이 동질감을 느끼는 요소 중 하나이다. 즉 그는 스스로 근본이 루저라고 생각하고 그 열등감을 관객들과 공유한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당시 미국 정부가 지향하는 것은 '강한 미국' 이었으며 미디어 산업 전반에 대규모의 자본을 투입한 레이거노믹스로 인해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록키》와 《람보》의 후속편은 방향성을 바꿔서 주제의식이 떨어지는 단순하고 화끈한 액션 영화로 바뀌었다. 스탤론의 이미지도 추락하여 아무 생각없이 주먹이나 휘두르고 총이나 쏴대는 영화에 딱 어울리는 마초끼로만 가득찬 액션 배우로 고정되어 버렸다.[15] 그리고 이건 별 상관도 없는 람보(1편)와 록키(1, 2편 그리고 발보아.)에도 영향을 미쳐 필요 이상으로 욕을 먹고있다. 실제로 서울시네마테크에서 열린 2011 시네마 친구들 영화제에서 록키 1편이 상영된 적이 있었는데, 시네토크 시간에 많은 여성들이 이 영화를 마초 영화로 생각하고 질문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90년대 초반엔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다양한 배역을 연기해 연기변신을 꾀했고 《클리프행어》의 각본과 주연을 담당해 흥행[17]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대대적인 투자를 받아 제작한 《저지 드레드》가 쫄딱 망하면서 흥행 배우로서의 자질을 의심 받는 상황에 내몰렸다. 그 밖에도 이 시절 주연을 맡은 《어쌔신》, 《오스카》 같은 다른 영화들도 흥행과 비평에선 실패했고, 8차례의 골든 라즈베리 상을 수상하며[18] 굴욕에 굴욕을 맛봐야 했다.

이후 10년 가까이를 소자본이 투입된 B급 영화나 독립 영화에 출연하며 새로운 도약을 하려 하였지만 참신한 시도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레이싱을 다룬 영화인 《드리븐》 같은 경우도 영화 자체는 나름의 수작이었으나 이상하게 평이 좋지 않았다. 사실 이 시기에 출연한 《캅랜드》[19]나 《D-Tox》 등에서의 연기는 상당한 호평을 받았으나 관객들이 외면했다.[20]

오랜 침묵을 지켜오던 스탤론은 2006년, 자신의 시작점인 《록키》의 마지막 스토리이자, 스탤론 본인의 인생에 대한 회고를 담은 《록키 발보아》의 감독, 각본, 주연을 맡아 대호평을 거두었다. 또한 오랜 숙적(?)이던 골든 라즈베리조차 이 영화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또한 흥행면에서도 크게 성공을 해 제작비의 7배를 벌어들였다. 여러모로 그에겐 의미있는 작품.

2008년에는 성공과 몰락을 동시에 안겨준 《람보》를 정리하는 《람보 4: 라스트 블러드》를 발표하여 람보에서 거론된 PTSD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였으며 동시에 후속작에 대한 암시를 남겼다.[21] 그러나 흥행이 기대 이하라서 제작자들이 《람보 5》 제작은 없다고 못박으면서 불투명해졌으나 2014년 《람보 5》의 제작이 확정되었다. 미국의 마피아 그레고리 스카르파의 자전영화인 《스카르파》[22] 이후 제작될 예정이라고 스탤론이 본인의 트위터에 직접 언급했다. 트위터

록키 시리즈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12월 발표된 2011년 권투 명예의 전당에 마이크 타이슨, 훌로오 세자르 차베스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뉴욕 캐너스토타 명예의 전당 국제복싱 부문

2010년에는 영화 《익스펜더블》이 대박을 쳤다. 90년대 액션스타 종합선물세트라는 느낌의 영화였고, 본인이 각본과 감독직까지 맡아 당당하게 흥행에 성공했다. 2012년에 속편도 개봉했다. 2014년에 3편도 개봉했으며, 속편들이 그럭저럭 흥행이 괜찮아서 4편까지 계획 중에 있다. 익스펜더블 4

2013년에는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함께 스릴러 영화 《이스케이프 플랜》을 찍었다. 이 영화는 어느 정도 흥행했으나 기대에는 못 미친다는 평을 받않다. 2013년, 로버트 드 니로와 같이 권투 영화 《그루지 매치》에 주연을 맡으면서 록키레이징 불의 대결이었기에 화제를 모았으나 흥행과 평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2015년에는 록키 시리즈의 스핀오프영화 《크리드》에서 라이벌이었던 아폴로 크리드아들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았는데, 영화는 물론이고 조연으로 물러난 스탤론도 평단에서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줬다면서 평가가 매우 좋다. 당장 2016년초에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어야 한다는 여론도 많아졌다. 2016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아 39년만에 연기상을 받았다. 또한 비평가협회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남우조연상으로 노미네이트되었다. 자연히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도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이쪽은 수상을 실패했다.

2017년에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에 출연했다. 재미있는 점은 영화 크리드에서는 정말 다 죽어가는 늙은이를 연기했을 때와 분위기가 180도 다르다는 것. 크리드에서의 무력한 스탤론을 보며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안타까워 하는 팬들이 많았는데, 정작 가오갤에선 예전의 그 포스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특히 슈워제네거와 더불어 70이 넘는 나이에도 여전히 멋진 몸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포인트.

2022년에는 오랜만에 드라마로 복귀하여 털사 킹에서 25년이나 복역했지만 조직에서 버림 받고 재기하는 75세 마피아로 열연을 하였다. 수염을 길러 외형에 변형을 주었고, 거친 모습과 상남자의 연기를 보여주며 아직까지 스탤론의 카리스마는 통한다라는 평을 듣는 중.

2.3. 정치가?[편집]


레이거노믹스로 인해 전성기에 레이권 정권에 이용당한 걸 두고두고 후회했고 이 일로 인해 정치에 마음을 뒀다. 신중하면서도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로 조지 부시 1세의 행정부에서 "건강단련 위원회"의 위원장 자리에 도전하며 정계 진출을 꾀했지만, 라이벌인 아놀드 슈워제네거에게 자리를 빼앗겨서 굴욕을 맛봤다. 이후 스탤론은 정계 진출을 포기했지만 슈워제네거는 정계에 연줄을 만드는 데 성공해 끝내 주지사님이 되셨다.

공화당 지지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고 총기소지를 반대하는 쪽이다.


3. 록키와 람보의 흥행 요인[편집]


록키》의 경우엔 퇴물 일보 직전 복서의 감동적인 도전기가 당시 베트남 전쟁 패배로 허우적거리던 미국인들에게 꿈과 감동을 선사하여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냉전 시대를 겪으면서 스토리에 방황이 있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 《록키 발보아》를 통해 '록키 발보아'의 스토리는 대단원을 내렸다. 현재는 그의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아폴로 크리드의 사생아인 아도니스의 이야기를 다룬 스핀오프인 《크리드》로 그 명성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람보》 역시 베트남 전쟁 이후의 시대상을 반영하였다는 점은 같은데, 인간 찬가를 다룬 록키와는 반대로 이쪽은 참전 군인이 겪은 전쟁 후유증과 방황, 그리고 타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국사회의 단면을 비판적으로 그려 흥행과 평가에서 높은 평가를 얻었다. 단, 록키와 람보 모두 후기 작품들은 흥행은 하였지만, 평가는 엇갈린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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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y steps. 필라델피아 박물관(Philadelphia Museum of art)에 있는 계단으로, 록키에서 나온 계단장면이 너무 유명해서 록키 계단으로 명명되었다. 재미있게도 이 유명한 계단 장면은, 박물관측의 촬영 허가를 받지 못해서 새벽에 몰래 찍고 튀었다. 당시 최신장비였던 스테디캠을 도입해 찍은 기념비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이 장면에서 계단 위에서 팔을 들고 펄쩍펄쩍 뛰는 록키를 줌인 하는 부분은, 사실 촬영 때는 줌아웃 하는 걸로 찍었다가 편집하면서 필름을 거꾸로 돌려서 만든 장면이라고 한다. 현재는 이곳이 유명 관광지 비슷하게 되버린터라 위의 사진처럼 계단정상 바닥에 발바닥 조형물을 박아 넣어서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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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단 옆에는 록키의 동상이 서 있는데, 록키 3 제작 당시에 동상을 만들어 박물관에 기증했지만 박물관 측에서는 "이건 예술이 아니라 영화소품이잖아"라는 말과 함께 거부당했고, 이후 오랫동안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녀야 했다. 그러나 2006년에 이 동상은 록키 발보아 트레일러 공개와 함께 성대한 행사를 치르며 계단 옆에 세워졌으며, 록키 계단과 더불어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후 해당 록키 발보아의 엔딩 크레딧에서도 계단을 뛰어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한다.[24]

당시 시장이 직접 필라델피아에서 가장 매력적인 관광명소라 언급하며 뉴요커인 스탤론을 필라델피아의 양아들로 맞아들이기도. 지금 이 시간에도 록키 계단을 오르내리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중 일부는 입구에서 록키처럼 팔만 번쩍들고 그냥 간다고 한다.

이 동상에 대한 스토리는 영화 내에도 반영되어, 록키 3에서 동상이 세워지는 씬 이후로 록키 발보아에서 "왜 그러나, 자네 동상을 치워버려서 화난 건가?"와 같은 대사도 등장한다. 크리드에서는 어도니스 크리드가 록키와 함께 계단 옆으로 돌아온 동상을 바라보는 모습이 등장하기도.



4. 기타[편집]


록키 1편에서 시장 거리를 달리며 트레이닝을 하는데, 웬 사람이 오렌지를 던져주는 장면이 있다. 재미있게도 이게 연출이 아니라 영화 촬영중인 스탤론을 진짜 복싱선수인 줄 알고 힘내라는 의미에서 시장 상인이 던져 준 것이라는 에피소드가 꽤나 유명하다.

스탤론의 취미가 꽃 그림 그리는 것 이라고 한다. 77년부터 그렸는데 2009년 플로리다에서 열린 경매에 나온 그의 그림이 4~5만 달러라는 고액에 1시간도 안돼 다 팔렸다고.#

이탈리아 이민자 후손인데, 이탈리아 마피아나 경찰로 나온 일이 많은 이탈리아계 로버트 드 니로알 파치노, 대니 드비토와 달리 영화에서 이탈리아인으로 나온 때가 드물다. 물론 록키 시리즈가 있지만 이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것이라 좀 다른 경우. 다만 젊었을때 카포네라는 알 카포네를 다룬 전기 영화에 마피아역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2022년 드라마 털사 킹으로 오랜만에 마피아 역으로 복귀하여 열연을 펼쳤다.

어머니 재클린 스탤론(Jacqueline Stallone, 1921 ~ 2020)은 프로레슬러이며 마이클 맥클레인과 둘이서 여성 프로레슬링 단체인 G.L.O.W를 창립했다. 98살로 굉장히 장수하다 세상을 떠났다.

키에 대한 컴플렉스가 무척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촬영한 씬에서 본인의 키가 작게 보이면 화를 내며 재촬영을 반복하는 일도 빈번했다고 한다. 촬영을 함께하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특수 제작한 키높이 부츠와 신발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해고된 스태프에 의해 주간지에 폭로된 바에 따르면, 177~178cm로 표기된 스탤론의 실제 신장은 5피트 7인치에 정도에 불과(170cm 언저리)하며, 촬영 중에도 무리한 키높이 부츠 때문에 발목이 휘청휘청하는게 보여 안쓰러웠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때 코미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촬영 작품에 따라 프로필 키가 고무줄처럼 변동했는데, 어떨때는 프로필에 5피트 11인치(180cm)로 10센티 가까이 뻥튀기 한 적도 있다. 대표적인 액션배우이면서도 실제 키가 작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크고 강해보여야 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도 굽을 제법 높여서 만든 모카신을 신고 다니는 일이 잦았다.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2 유리의 복수 연합군 미션 중 새미 스탤리온라는 조종 가능한 히어로 유닛으로 패러디 출연한다. 모티브는 당연히 람보. 인터뷰에서 밝힌 좋아하는 영화목록에 한국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브러더후드)가 있다고 한다.

데이라이트》라는 재난 영화를 촬영하던 중 Officine Panerai 사의 시계 팬이 되었으며, 한정판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해서 본의아니게 파네라이의 시계를 유명해지게 만드는 계기를 제공한 적이 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 등 헐리우드의 여러 배우들과 함께 플래닛 헐리우드라는 식당 체인에 투자했었는데, 문제는 마구잡이로 확장한 데다 음식은 부실하고 더럽게 비싸기만 해서 곧 망했다. 슈워제네거의 영화에서도 자학 개그로 그 얘기가 나온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첫 부인 사셔 잭와 무명시절 만나서 록키 촬영 때는 이미 동거중이었다. 애드리언의 모델이 바로 스탤론의 조강지처 사셔 잭이다. 그녀는 《록키 3》에서 훈련 중인 록키에게 키스해도 되겠냐고 묻는 여성팬으로 잠시 등장한다. 그녀와 결혼 후 아들 둘, 세이지와 서지오를 낳았지만 스탤론이 브리짓 닐슨과 불륜을 저지른 끝에 이혼했다. 이후 스탤론은 브리짓 닐슨과 재혼하는데 스탤론도 보디빌딩을 해서 몸이 굉장히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닐슨이 워낙 거인이다 보니 둘이 같이 서 있으면 스탤론이 어린애처럼 보일 지경이였다. 하지만 이 재혼은 얼마 못갔고 결국 다시 이혼했다. 스탤론은 닐슨과의 재혼은 어리석은 짓이었다며 후회했다 한다. 이후 1997년 3번째로 재혼한 현 부인 제니퍼 플레이빈과의 사이에서 소피어 로즈 스탤론(1996년생), 시스틴 로즈 스탤론(1998년생), 스칼럿 로즈 스탤론(2002년생) 딸 셋을 낳았다. 50대에 이룬 쾌거 스탤론은 람보 4 촬영 후 오른쪽 팔에 3번째 아내 제니퍼 플레이빈의 얼굴과 딸 셋을 뜻하는 장미 세송이를 문신했다.# 참고로 부인이 1968년생이라서 부인과의 나이차가 무려 22년이나 된다. 그러나 결국, 2022년 플레이빈이 25년의 결혼생활을 끝으로 이혼을 신청했다.# 이혼 신청이후, 4일후 스탤론은 오른쪽 팔에 있는 플레이빈의 얼굴 타투를 록키불마스티프로 커버업했다. 같은 해 9월, 이혼 조정 중 플레이빈과 재결합하면서 결혼생활을 유지하게 되었다.[25]

슬하에 2남 3녀가 있었으며 장남인 세이지 스탤론은 록키 5에서 아역을 비롯하여 《데이라이트》에서 아버지와 같이 나오며 배우로 계속 활동했지만 묻혀져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2년 7월 13일에 죽상동맥경화증으로 인한 심장마비에 걸려 사망하면서 큰 상심에 빠져있다.[26] 세이지 스탤론은 1976년 생으로 향년 36세이다.

여담이지만 둘째 아들인 서지오 스탤론도 록키 2에서 아역에 나왔다고 했다. 다만 정식 배우가 아니다.

파일:external/photo.hankooki.com/1113246135441.jpg
시스틴 로즈
그리어 그래머
(2015년도 미스 골든 글로브)
소피어 로즈
스칼럿 로즈
딸 3명이 모두 미인이다. 3명의 딸이 2016년 미스 골든 글로브에 뽑혔다. 미스 골든 글로브/미스터 골든 글로브는 해마다 가장 잘 자라준 헐리웃 배우 2세를 뽑는 대회이다. 근데 스칼럿 혼자만 동양인스럽게 생겼다. 유명인 자녀인 이런 미인들이 일반인으로 사는 건 아니고, 언니들은 모델일을 한다. 2019년 현재 17살이며 가장 키가 큰 (173cm) 막내는 13살 때부터 아역배우를 하고 있으며,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도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실제로도 스탤론은 딸을 아끼며 딸들과의 관계가 각별하다.

애니매이션 퓨쳐라마에서는 죽은 해골로 등장한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전담성우는 이정구.[27][28]

2012년에 라이벌인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한 병실에 입원한 모습으로 웃음을 주었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익스펜더블 2를,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라스트 스탠드를 찍다가 액션과 스턴트로 어깨를 다쳐 우연히 같은 병실에서 만났는데 사람들은 이를 보고 람보와 터미네이터가 같은 병실에 누웠다고 표현하였다. 정황상 터미네이터 보다 코만도가 훨씬 더 어울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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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는 만년필 애호가이기도 한데 그는 오직 이탈리아의 몬테그라파사의 만년필만 사용한다.역시 이탈리아계 아니랄까봐 몬테그라파 한정판 중 그가 디자이너로 참여한 펜도 있을 정도다.

시계매니아 이기도한 그는 특히 역시 이탈리아 시계인 파네라이의 열렬한 애호가였다. 파네라이는 스탤론 단 한 사람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보고 명품시계 반열에 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5년, 재난영화 데이라잇을 통해 스탤론의 손목에 올라간 파네라이는 그 이후 스탤론의 여러 영화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스탤론은 파네라이 착용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행보를 보인다. 익스펜더블 3(2014)에서는 리샤르 밀 RM032를 착용하고 나왔고, 2018년에는 리샤르 밀과 협업하여 RM 25-01 투르비용 어드밴처 실베스터 스탤론이라는 20개 한정판 시계를 내놓았다. 람보5:라스트 블러드(2019)에서는 칼 F. 부커러의 파트라비 스쿠바텍을 착용하고 있다. 그 외에도 파텍 필립 노틸러스 5711, 롤렉스 폴 뉴먼 데이토나, 롤렉스 GMT마스터 등을 공개 석상에서 착용하는 모습이 확인되며, 2020년에는 영화에 차고 나왔던 파네라이를 필립스 경매에 내놓아 매각해버렸다. 스탤론이 지인[29]에게 보낸 메일에서 스탤론은 파네라이를 그렇게 유명하게 만들어줬는데, 그들이 자신에게 해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서운함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어머니인 재키 스탤론이 프로레슬러였다. 그런 어머니를 닮아 실베스터 스탤론도 몸이 엄청나게 건장하다. 재키 스탤론은 여성 전문 프로레슬링 단체인 G.L.O.W의 창립자로 동업자인 데이비드 맥클레인과 같이 창립했으며 이는 훗날 WWE 등 많은 프로레슬링 단체에서 여성 프로레슬러들이 맹활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록키 1편에서 록키가 기르는 반려견 '버커스'(butkus)는 당시 실베스터 스탤론이 실제 키우던 반려견이다. 데뷔 전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운 나머지 스탤론은 버커스를 남에게 맡기고 약 60달러의 돈을 받았다. 이후 록키 1편에 출연이 결정된 이후 다시 되찾으려고 했으나 상대는 3000달러를 요구했고 이를 지불할 수 없었던 스텔론은 대신 그를 록키에 출연하게 해주었다.

4.1. 스탤론 vs 슈워제네거[편집]


동시대를 같이 풍미했던 액션 배우인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여러가지로 많이 비교되는 배우이다.

유럽계 이민자[30] 혹은 그 자손이라는 점[31], 군인 역할 배우(람보, 코만도)[32]로 유명해졌다는 점, 근육질이라는 점, 액션 영화에 주로 출연했다는 점 등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슈워제네거는 압도적인 강함을 바탕으로 적을 완전히 제압하는 영웅의 성격이 강했다. 터미네이터 1 이나 코만도 같은 초기 출연작에서는 차갑고 냉정한 살인 기계같은 이미지[33][34]였다면 대사와 연기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90년대의 작품들에서는 유머성이 추가됐다.[35] 이에 대해서 이 시점에는 이미 정치를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지 수정을 한 것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케네디가인 부인과 결혼한 것이 1986년인데, 데뷔작이었던 뉴욕의 헤라클레스를 제외한 첫 코미디 영화 트윈스(영화)가 2년만인 1988년에 개봉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스탤론은 좀 더 현실적인, 어느 정도 구르고 깨지면서도 마침내 목적을 달성하고야 마는 불굴의 의지로 무장한 영웅 역을 많이 맡은 편이다.

두 사람의 대표적인 전쟁영웅 캐릭터인 람보와 코만도를 보면 대번에 차이나는데 똑같은 전쟁영웅이지만 람보는 베트남전의 악몽에 시달리는 떠돌이인 반면, 코만도는 화려한 업적을 세우고 귀여운 외동딸과 오붓이 산장에서 평화롭게 살던 중 악당의 공격을 받고 적과 싸운다. 전투 스타일도 무한탄창 기믹은 있어도 람보는 웬만하면 무장 한두개 수준에서 은엄폐도 적당히 하면서 싸우지만 코만도는 권총, 산탄총, 기관단총, 자동소총, 로켓포 등 종류별로 짊어지고 싸우다 총알 떨어지면 총 버리고 다른 총 꺼내드는(...) 무지막지한 스타일이다.사실 코만도는 코미디다 사실 장년에 들어서 불어난 몸과 근육질 액션스타로 각인된 이미지 때문에 간과될 뿐, 초기작들을 놓고 비교해 보면 소드앤 소서리 계열 바바리안 이미지인 슈워제네거에 비해 스탤론의 등빨은 요즘으로 치면 액션 영화 캐스팅돼서 몸 만들어온 정극 배우 타입이다. 쉬운 예로 가오갤1의 스타로드와 드렉스 정도의 차이가 있다 보면 되겠다.

객관적으로 자신보다 강하다고 평가받는 상대에게 얻어맞고 깨지면서도 결국 승리하는 록키는 물론이고 람보의 경우도 2편부터 마초성이 뚝뚝 흐르는 미국적인 영웅이기는 했지만 쉽게 쉽게 상대를 제압하고 임무를 달성하는 압도적인 강함보다는 구르고 다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나이가 들면서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도 슈워제네거와의 차이라면 차이이다.

슈워제네거와 스탤론은 인생사도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데, 슈워제네거는 배우 데뷔 이전에 이미 전설적인 보디빌더였고 배우로서 성공한 이후에는 주지사로도 선출이 되는 등 배우 외 활동도 많았지만, 스탤론은 록키 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던 어려운 삶을 살다가 배우로서 성공 이후 잠깐 정계 진출을 시도한 경험 외에는 배우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5. 파생 캐릭터[편집]




6. 출연작[편집]


출연 연도
출연작
출연 역할
1970
이탈리아 종마(The Party at Kitty and Stud's)
스터드 역
Lovers and Other Strangers
결혼식 하객 역 -uncredited
No Place to Hide
Jerry Savage 역
1971
바나나 공화국(Bananas)
지하철 건달 역 -uncredited
콜걸(Klute)
Discotheque Patron 역 -uncredited
1974
브룩클린의 아이들(The Lord's of Flatbush)
Stanley Rosiello 역
1975
The Prisoner of Second Avenue
Youth in Park 역
Capone[38]
Frank Nitti 역
죽음의 경주(Death Race 2000)
Machine Gun Joe Viterbo 역
Mandingo
Young Man in Crowd 역[39]
Farewell, My Lovely
Jonnie 역
1976
Cannonball!
Mafioso 역
록키(Rocky)
록키 발보아
1978
투쟁의 날들(F.I.S.T)
Johnny Kovak 역
챔피언(Pardise Alley)
Cosmo Carboni 역
1979
록키 2(Rocky II)
록키 발보아 역
1981
나이트호크(Nighthawks)
Deke DaSilva 역
승리의 탈출(Victory)
Captin Robert Hatch 역
1982
록키 3(Rocky III)
록키 발보아 역
람보(First Blood)
존 람보 역
1984
귀향(Rhinestone)
Nick 역
1985
람보 2(Rambo: First Blood Part II)
존 람보 역
록키 4(Rocky IV)
록키 발보아 역
1986
코브라(Cobra)
마리온 '코브라' 코브레티 역
1987
오버 더 톱(Over the Top)
Lincoln Hawk 역
1988
람보 3(Rambo III)
존 람보 역
1989
탈옥(Lock Up)
Frank Leone 역
탱고와 캐쉬(Tango & Cash)
레이몬드 탱고 역
1990
록키 5(Rocky V)
록키 발보아 역
1991
오스카(Oscar)
Angelo 'Snaps' Provolone 역
1992
엄마는 해결사(Stop! Or My Mom Will Shoot)
Sgt. Joe Bomowski 역
1993
클리프행어(Cliffhanger)
게이브 워커 역
데몰리션 맨(Demolition Man)
존 스파르탄 역
1994
스페셜리스트(The Specialist)
Ray Quick 역
1995
저지 드레드 (Judge Dredd)
Judge Joseph Dredd 역
어쌔신(Assassins)
Robert Rath 역
1996
데이라잇(Daylight)
킷 라투라 역
1997
캅랜드(Cop Land)
프레디 헤플린 역
An Alan Smithee Film: Burn Hollywood Burn
본인 역
The Good Life
Boss 역
맨 인 블랙(Men in Black)
본인 역
1998
개미(Antz)
Weaver 역, 성우
2000
겟 카터(Get Carter)
잭 카터 역
2001
드리븐(Driven)
Joe Tanto 역
2002
디-톡스(D-Tox)
제이크 말로이 역
어벤징 안젤로(Avenging Angelo)
Frankie Delano 역
2003
택시 3(Taxi 3)
공항 가는 승객 역[40]
셰이드(Shade)
딘 역
스파이 키드 3D: 게임 오버(Spy Kids 3-D: Game Over)
토이메이커 역[41]
2006
록키 발보아(Rocky Balboa)
록키 발보아 역
2008
람보 4: 라스트 블러드(Rambo)
존 람보 역
2009
Kambakkht Ishq
본인 역
2010
익스펜더블(The Expendables)
바니 로스 역
2011
Zookeeper
Joe the Lion 역[42]
2012
익스펜더블 2(The Expendables 2)
바니 로스 역
불렛 투 더 헤드(Bullet to the Head)
지미 '보보' 보노모 역
2013
이스케이프 플랜(Escape Plan)
레이 브레슬린 역
그루지 매치(Grudge Match)
헨리 '레이저' 샤프 역
2014
익스펜더블 3(The Expendables 3)
바니 로스 역
리치 미(Reach Me)
제럴드 역
2015
크리드(Creed)
록키 발보아 역
2016
라쳇 & 클랭크(Ratchet & Clank)
빅터[43]
2017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Guardians of the Galaxy Vol.2)
스타카르 오고르드[44]
2018
백트레이스(Backtrace)
사익스 역
크리드 2(Creed 2)
록키 발보아 역
이스케이프 플랜 2: 하데스(Escape Plan 2: Hades)
레이 브레슬린 역
2019
이스케이프 플랜 3(Escape Plan 3: Devil's Station)
레이 브레슬린 역
람보: 라스트 워(Rambo: Last Blood)
존 람보 역
2020
모탈 컴뱃 11(Mortal Kombat 11)
람보 역 [45]
2021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The Suicide Squad)
킹 샤크[46]
2022
사마리안(Samaritan)
스탠리 코민스키 역[47]
털사 킹
드와이트 역[48]
2023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스타카르 오고르드
익스펜더블 4
바니 로스 역

[1]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생년월일이 같다.[2] 전성기때는 175.3cm였으며 특수제작한 키높이 신발을 늘 애용했다. 착용 키는 177cm이다.[3]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존 매케인 후보를 지지해서 정치적 성향이 우파에 가깝다.[4] 영화 람보 2에서 엔딩곡을 부르기도 했다.[5] 결혼 전 이름은 토니 러빈, 실베스터와는 나이 차가 제법 나며 두 오빠들이 친형제인 것과는 달리 토니만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다. 어머니는 셋 다 동일한 재키 스털론이다. 암에 걸려 투병하다가 48살에 사망했다.[6] 2022년 플레이빈이 이혼신청을 했으나, 같은해에 화해함으로 결혼 생활을 지켰다.[7] 이와 반대인 경우(?)가 60년대 후반에 결성되어 인기를 끌던 밴드인 슬라이 앤더 패밀리스톤(Sly and the Family Stone)를 이끌던 보컬 슬라이 스톤(Sly Stone, 1943~ ) 본명이 실베스터 스튜어트(Sylvester Stewart)였었지만 국내에선 슬라이 스톤으로 더 알려졌었다. 지금은 잊혀진 추억의 가수이긴 하지만... 80년대에는 마약 중독으로 폐인이 되기도 하고 사망설까지 나왔으나 2010년대에도 앨범을 내며 재기하고 그럭저럭 활동하고 있다.[8] 이런 시설에는 경험이나 실력이 모자란 의사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9] 그가 유명해지면서 이 포르노조차 국내에 비디오로 나왔다. 참고로 국내에 출시된 것은 편집판. 실베스터 스탤론이 유명해지면서 이때 찍은 포르노 영화를 회수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중에 이 경력은 록키의 패러디 영화인 릭키 1에서 일부 차용되는데 모 영화제작자가 짭록키에게 자꾸 포르노 영화를 제작하자고 추근대고 짭록키는 헛소리 말라고 마구 욕을 퍼붓는다. 이 영화를 리뷰했던 AVGN은 대체 이게 록키랑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렸는데 정황상 스탤론의 포르노 경력을 풍자한 것이 확실하다.[10] 굳이 현금으로 환산하자면 일용직 노동자의 하루 일당(8만 원가량)에 해당된다. 대한민국 기준으로 티셔츠는 시장에서 3장당 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11] 웨프너는 Bayon Bleeder (베이욘의 피흘리개)라는 다소 끔찍한 별명을 지닌 백인 터프가이로, 헤비급의 황금 시대를 뒷받침 한 조역들 중 하나였다. 별명처럼 눈두덩이가 잘 찢어져 매 경기 피를 흘리는 악전고투를 벌이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처절한 파이팅으로 인기가 높았다. 헤비급 역대 최강의 펀처들인 조지 포먼소니 리스턴과의 경기에서도 명성대로 양쪽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부상 때문에 TKO를 당했을지언정, 그들의 무쇠 주먹에도 KO로 눕지는 않았다. (리스턴과의 경기 후에는 무려 72바늘을 꿰메기도 했다.) 알리에 도전하기 전에도, 전 헤비급 챔피언인 어니 터렐을 꺾고 뉴저지주 및 북미 헤비급 챔피언을 지내며 8연승을 거둔 끝에 도전권을 얻은 중견급 세계 랭커였다. 물론 알리와의 실력 차이는 극명해서 챔피언의 싱거운 승리가 예상되던 경기였던 것은 분명하다.[12] 웨프너는 9라운드에 알리를 상대로 다운을 얻어내 모두를 놀라게 했으나, 이후 영화처럼 알리에게 무수히 많은 펀치를 처절하게 두들겨 맞으며 양쪽 눈자위를 잘려 피를 철철 흘리고 코까지 부러졌음에도 15라운드까지 끌고 갔다. 영화와 달리 15라운드 종료 19초를 남기고 보다 못한 심판이 TKO로 알리의 승리를 선언했다.[13] 영화감독 어윈 웡클러와 로버트 차토프가 무려 40억원을 제안할 정도였다. 스탤론이 이를 받아들였다면 점쟁이 말처럼 되었을 듯.[14] 람보 1편은 무거운 주제와 액션 장면이 어우러져 호평을 받았지만 영화제에서 수상은 하지 못했다.[15] 다만, 이 역시 어느 정도 일방적인 비판이 무분별하게 확대재생산된 측면이 있다. 록키와 람보는 작품성이 악화되는 와중에서도 밑바닥에 깔린 '루저 정서'를 완전히 벗어던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변질되어버렸다는 평을 들은 록키 3편과 4편에서도 록키는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 맞서 싸우며 근성과 투지로 승리를 쟁취한다.[16] 스탤론이 높은 줄에 매달린 친구의 연인을 손을 잡고 구하려다 그 여인이 떨어지는 장면. 에이스 벤튜라 2에서는 여인이 라쿤으로 바뀌었다.[17] 사실 미국에서 흥행은 그냥 그랬는데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해외 흥행이 꽤 대박이었다. 미국 흥행은 그저 그랬을 지 몰라도 꽤 유명한 도입부 장면[16]은 《에이스 벤튜라 2》에서 패러디 되기도 했다.[18]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감독상등 다채로운 수상 경력을 자랑했다. 전성기 시절에도 1983년에 감독한 《스테잉 얼라이브(토요일 밤의 열기 2)》는 전편을 모독한 졸작 속편으로 당당하게 골든 라즈베리를 휩쓴 바 있다.[19] 스탤론은 이 영화로 스톡홀름 영화제에서 최우수 남우 주연상을 수상했다. 스탤론의 영웅이 아닌 루저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 수작. 출연하기 위해 18kg이나 살을 찌우고 나왔다.[20] 《드리븐》 같은 경우도 레이싱 팬들이 보기엔 황당하기만 한 설정투성이였고, 레이싱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경기 외적인 부분이 많이 부각되는지라 지루했다. 그런 원인 중 하나는 400페이지에 가까운 시나리오 중 3분의 1 분량이 날아간 것도 있다.[21] 4의 마지막 장면과 1의 첫 장면이 이어진다. (입은 옷, 짊어진 짐 등등) 단, 설정상 4편이 1편보다 훨씬 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 때 돌아가지 못한 그가 이제야 비로소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은 걸로 보인다.[22] 스탤론이 스카르파 역으로 출연한다.[23] 다만, 각 록키 시리즈의 완결편인 록키 발보아는 걸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시리즈를 잘 마무리했고, 람보 시리즈의 최종장인 람보: 라스트 워는 평론가 평은 별로지만 시리즈 초창기의 염세적인 분위기 등을 잘 구현해서 시리즈 팬들의 평은 좋은 편이다.[24] 게임 리뷰어 AVGN도 MSX판 람보를 플레이하고 대차게 깐 후 이 계단 씬을 패러디했다.[25] 2023년 기준으로 아내와 손잡고 다니는 게 찍힐 정도로 사이가 원만한 듯.# [26] 어떻게 된 일인지 세간엔 약물 복용으로 인한 사망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atherosclerosis, 죽상동맥경화증으로 인한 심장마비가 사망 원인이다. 실제 부검을 했을때 약물 관련 물질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세이지 스탤론은 패스트푸드를 즐겨 먹었다고 하는데, 그게 원인이 된 듯하다.[27] 가장 최근 출연작인 가오갤2에서도 이 캐스팅이 유지되었다. 다만 같은 영화에 출연한 이정구의 또 다른 전담배우인 데이비드 해셀호프는 에고의 한국성우가 그대로 연기해서 아쉽다는 반응도 있었다.[28] 사실 이건 중복캐스팅을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디즈니의 더빙정책탓이 더 크다.[29] 사진작가 Monty Shadow[30] 재밌게도 스탤론은 이탈리아계, 슈워제네거는 오스트리아계인데, 두 사람과는 딱히 관련 없지만 이 두 나라는 역사적으로 사이가 아주 안좋다. 정작 두 사람의 사이는 꽤 좋다고 한다.[31] 하지만 미국 출생자이자 이민 2세대인 스탤론과 달리 슈워제네거는 이민 1세대다. 고향은 오스트리아[32] 정작 두 작품이 콜라보한 적은 없는데 2차 창작에서 엄청나게 많이 엮인다. 예를 들면 콘트라. 외모가 둘 다 보디빌더같은 근육질의 군인에 헤드스왑(람보는 붉은 머리띠를 한 장발, 코만도는 스포츠 머리)일 뿐이기 때문이다.[33] 간단히 말해서 슈워제네거의 최대 문제점은 발음으로 요약된다. 이민 1세대다 보니 오스트리아 악센트가 아주 강하게 남아있는데, 이게 알아듣기 어렵고 조롱의 대상이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하지 않는 배역이 초기 흥행작에 몰려 있다. 코난 더 바바리안이나 터미네이터, 코만도 등이 모두 이 범주.[34] 하지만 매우 특징적인 그의 발음과 그로 인한 짧고 간결한 대사 덕에 엄청난 명대사 제조기가 되었다[35] 스타덤에 오른 뒤 80년대 후반부터는 아주 작정하고 코믹 장르, 그것도 단순 슬랩스틱이 아니라 가족영화 장르로 밀었다. 그래서 이 시기 슈워제네거의 필모를 보면 액션 영화를 찍은 다음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액션이 아닌 영화가 한편씩 끼어있다. 프레데터런닝 맨을 찍은 다음이 트윈스였고, 다시 토탈 리콜을 찍고 '유치원에 간 사나이'를 찍었다. 터미네이터 2 다음이 라스트 액션 히어로였고, 트루 라이즈 다음이 주니어, 이레이저 다음이 솔드 아웃. 대충 이런 식이었다.[36] 기본적으로 람보가 모티브이고, 호칭이 '교활한(Sly) 마르보'다.[37] 스탤론과 이소룡을 적절히 섞은 캐릭터. 세계관과 복장까지 합치면 멜 깁슨 까지. [38] 알 카포네의 전기영화로 벤 가자라가 주연을 맡고 스탤론은 오른팔 프랭크 니티 역을 맡았다.[39] 편집됨[40] 까메오 출연[41] 그의 아주 드문 아동용 영화 출연이다. 그것도 악의 최종보스 역이다![42] 성우[43] 영화 한정[44] #[45] 게스트 캐릭터인 람보의 성우를 직접 담당했다.[46] 목소리[47] 슈퍼히어로 영화 첫 주연작.[48] 스탤론 커리어 최초의 드라마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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