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하

최근 편집일시 :


심은하의 주요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파일:SBS 로고.svg 연기대상 대상
김희선
(1998년)

심은하
(1999년)


고두심
(2000년)


역대 파일:daejongfilmawards_logo.png
파일:daejongawards.png
여우주연상
제35회
(1997년)
[1]

제36회
(1999년)


제37회
(2000년)

심혜진
(초록물고기)

심은하
(미술관 옆 동물원)


전도연
(내 마음의 풍금)


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파일:baeksangartsawards4.png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제33회
(1997년)


제34회
(1998년)


제35회
(1999년)

심혜진
(초록물고기)

심은하
(8월의 크리스마스)


전도연
(약속)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제34회
(1998년)


제35회
(1999년)


제36회
(2000년)

황신혜
(신데렐라)

심은하
(청춘의 덫)


김영애
(파도)



파일:MBC 로고 화이트.svg 공채 탤런트

[ 펼치기 · 접기 ]
문화방송 탤런트
1기(1969)
김애경 · 박광남 · 박상조 · 박은수 · 서권순 · 이도련 · 임문수 · 임현식 · 조경환
2기(1970)
권귀옥 · 김자옥 · 박원숙 · 양정화 · 최은숙 · 한혜숙
3기(1970)
국정환 · 김수미 · 김영애 · 박영태 · 손창호 · 안옥희 · 염복순 · 허진
4기(1971)
김정 · 김호영 · 나영진 · 박영지 · 신국 · 홍민우
5기(1972)
강인덕 · 고두심 · 김동주 · 김정하 · 남영진 · 문회원 · 박정수 · 박종관 · 윤석오 · 이계인 · 정대홍 · 한인수 · 현석
6기(1973)
김성찬 · 김주영 · 박윤배 · 백인철 · 송경철 · 오미연 · 유인촌 · 이금복 · 임채무 · 정소녀 · 정태섭 · 홍순창
7기(1975)
김동현 · 김해숙 · 노영국 · 송기윤 · 박상규 · 이경진 · 임정하 · 진유영
8기(1976)
김보연 · 박병훈 · 이숙 · 이창환 · 전인택 · 한미영
9기(1977)
권은아 · 길용우 · 김홍석 · 신신애 · 이원용 · 정한헌
10기(1978)
김용선 · 윤순홍 · 이미영 · 이혜숙 · 홍성애
11기(1979)
오미희 · 이미지 · 이보희 · 이상숙 · 한영수
12기(1980)
김화란 · 나영희 · 송옥숙 · 임영규 · 정선일
13기(1981)
김성일 · 박순천 · 최명길
14기(1981)
김청 · 김혜정 · 이휘향 · 홍진희
15기(1982)
맹상훈 · 박찬환 · 서갑숙 · 신복숙 · 이동신 · 이상미 · 이영범 · 이원재 · 정성모 · 조형기 · 차주옥 · 최상훈
16기(1983)
김주승 · 문용민 · 최항석 · 한애경 · 황신혜
17기(1984)
견미리 · 김도연 · 노경주 · 윤철형 · 이정훈 · 정호근 · 천호진 · 최재호 · 허윤정
18기(1986)
강문영 · 김영석 · 김응석 · 박상원 · 박순애 · 신혜수 · 윤예희 · 이경아 · 이재룡 · 이재훈 · 정명환 · 채유미
19기(1989)
김나운 · 김명수 · 김미영 · 김은수 · 김은정 · 김종아 · 김찬우 · 김화영 · 박세준 · 박소정 · 박지영 · 박형준 · 배영옥 · 변소정 · 송경희 · 신윤정 · 양동재 · 오연수 · 유식 · 음정희 · 이명희 · 이진우 · 이창훈 · 임대호 · 임채원 · 장서희
20기(1991)
강이은 · 감우성 · 곽진영 · 김소이 · 김현숙 · 박철 · 안신우 · 정경희 · 차광수 · 한석규
21기(1992)
김원희 · 박선영 · 박주미 · 윤동환 · 장동건 · 조현숙 · 최범호
22기(1993)
김현석 · 손보영 · 심은하 · 왕희지 · 양정아 · 이시은 · 전유진 · 조민기 · 차인표 · 최종환 · 황인성 · 황인정
23기(1994)
김윤정 · 손건우 · 안재욱 · 유태웅 · 윤용현 · 이민영 · 이아현 · 이은영 · 이현경 · 최선미 · 최지우 · 황상희
24기(1995)
나경미 · 박용우 · 오세정 · 이성재 · 이종수 · 장성원 · 정재곤 · 정준호 · 조미령 · 최지나
25기(1996)
강성연 · 구혜진 · 김세아 · 김정은 · 서유정 · 안재환 · 유서진
26기(1997)
강지오 · 권연우 · 김승수 · 박형선 · 손소영 · 정기성 · 홍충민
27기(1998)
김용희 · 박솔미 · 박정은 · 박주희 · 송일국 · 이승아 · 허성수 · 홍은희
28기(1999)
고정민 · 김철기 · 이세은 · 정소영
29기(2000)
박도유 · 박현정 · 손민경 · 손유경 · 인교진
30기(2001)
강보라 · 신동미 · 이상이 · 전익령 · 진태현 · 최자혜
31기(2003)
김남길 · 김효서 · 이제인 · 장남경
†: 사망한 탤런트
※ 특채 탤런트는 제외
※ 나무위키 등재 인물만 기입





심은하
沈銀河 | Shim Eun-ha


파일:심은하.jpg

출생
1972년 9월 23일 (51세)
경기도 광주군 직할 성남출장소
(現 경기도 성남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65cm, 45kg, B형
가족
아버지 심재현, 어머니 고경희
여동생 심반야, 심보리
배우자 지상욱(2005년 결혼 ~ 현재)[1]
장녀 지수빈(2006년 3월 3일생)
차녀 지하윤(2007년 11월 28일생)[2]
학력
서울대왕국민학교 (졸업)
창곡여자중학교 (졸업)
성일여자고등학교 (졸업)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문화교양학 / 학사 졸업)
종교
개신교
데뷔
1993년 MBC 22기 공채 탤런트
링크
파일:다음 카페 아이콘.svg

1. 개요
2. 드라마 데뷔
3. 충무로 진입
4. 연기
5. 은퇴
6. 여담
7. 출연작
7.1. 드라마
7.2. 영화
8. 수상 내역



1. 개요[편집]


그녀의 출현은 완전한 '신드롬'이었다.

심은하의 말갛고 수줍은 미소는 보는 이의 머릿속을 하얗게 지워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쉬는 '첫사랑'의 얼굴 그 자체였다.

TV 드라마의 인기는 스크린으로 이어졌지만, 영화 속 심은하는 확연히 달랐다. 느껴본 적 없는 떨림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그의 사진관에 돌을 던지는 소녀(《8월의 크리스마스》), 라면 한 그릇에 괴성을 지르며 환호하는 털털한 여인(《미술관 옆 동물원》).

단아한 그녀의 얼굴 위로 깊은 감정이 넘실거렸고, 그 감정은 관객의 마음에 큰 공명을 일으켰다. 비록 출연작 수는 적지만, 한국 영화사에서 심은하를 결코 빠뜨릴 수 없는 이유이며, 우리가 그녀를 끝없이 그리워하는 이유다.

CGV 피카디리 1958 - 2010년대 명예의 전당 배우 선정



파일:심은하 스틸.jpg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방송국 데뷔시절 사진 [3]

1990년대 후반에 브라운관에서 왕성하게 활동했고[4] 스크린에서도 활약한 여배우. 199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한 명으로 활동 당시 청순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외모와 출중한 연기력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고, 2001년 은퇴 후에도 계속 언론에서 거론되며 복귀를 바라는 여배우 1순위로 꼽힌다.


2. 드라마 데뷔[편집]


1993년 MBC의 일요일 아침 드라마 <한지붕 세가족>으로 브라운관 데뷔. 데뷔 직후 <마지막 승부>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청춘 스타로 급부상했다. <마지막 승부>에 출연하게 된 계기가 나름대로 새옹지마인데 당시 여주인공인 '다슬'역에는 공채 동기인 심은하, 황인정 2명이 물망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황인정이 주말 시트콤 '김가 이가'의 레귤러 조연으로 캐스팅되면서 심은하가 다슬 역에 캐스팅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승부가 엄청 인기를 끌자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예능 프로그램으로 이본과 김승현과 3인체제의 MC로 발탁되기도 하면서 1994년도에 최고의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이것이 심은하의 청순한 이미지[5]와 역할이 맞아떨어져 그야말로 대박이 났고, 다슬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수많은 남성들에게 '이상형'으로 꼽힐 만큼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심은하는 그러한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승부로 화려하게 스타덤에 오르고 얼마 안 가서, 과거의 동거 사태가 연예계 최고 이슈가 될 만큼 그녀의 연예계 생활에 위기를 가져오는데[6], 이를 정면돌파하며 과감한 이미지 변신으로 위기를 스스로 극복해냈다.[7] 그 다음 작품인 여름 납량특집 10부작 스릴러 드라마 <M>에서 '선'과 '악'을 넘나드는 야누스적인 캐릭터[8]를 맡으며 변신에 성공한 것. 여러모로 심은하에겐 다사다난했던 1994년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해 MBC 연기대상에서는 두 개의 인기 드라마 덕분에 신인상을 받게 된다.

이후 다양한 연기 활동을 벌였지만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출연한 7개의 드라마가 모두 시청률 참패를 당했다.[9]그러다 1999년 그녀의 대표작인 김수현 극본의 <청춘의 덫>[10]에서 연인에게 배신당해 복수하는 여자 역할로 엄청난 연기를 펼쳐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이 당시 그녀의 연기는 완전히 물오른 상태로, 까다롭기로 유명한 김수현 작가가 머리카락이 흘러내린 것으로 지적한 것 이외에는 연기에 있어 거의 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11] 청춘의 덫에서 같이 연기한 유호정은 심은하가 얄밉도록 연기를 잘해서 배우고 싶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3. 충무로 진입[편집]


충무로 진입은 1995년 최민수와 함께 출연한 <아찌, 아빠>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는데, 영화와는 맞지 않은 연기력과 극 중 상황이 관객들에게 공감이 되지 않은 덕에 흥행에 실패했다.[12] 이듬해 정우성과 함께 출연하여 큰 화제를 모은 <본 투 킬>도 흥행에 실패한다.[13] 그러나 영화배우로써의 가능성은 남기게 된다.

한석규가 같이 하고 싶어했던 접속에는 출연하지 못했지만,[14]이듬해 <8월의 크리스마스>의 주연을 맡아 1998년 각종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게 되고, <미술관 옆 동물원>이 흥행과 비평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충무로 최고의 여배우가 되면서 고소영, 전도연과 함께 세기말에 트로이카를 형성하게 된다. 반면 이 시기에 충무로 최고 여배우로 군림하던 심혜진[15], 강수연[16], 최진실[17], 정선경[18] 등의 기존 톱스타들은 하락세를 타고 있었다. 이 세대 이후 영화로도 성공한 심은하는 은퇴때까지 충무로 대표 여배우로 불렸는데 애초에 흥행과는 멀었고 노개런티로 특별 출연한 <이재수의 난>은 흥행에서 참패했지만 뒤이어 출연한 <텔 미 썸딩>은 서울 개봉관 관객만 60만명 흥행했고, 실험성이 강한 <인터뷰>도 20만명 동원했다.

심은하의 장점은 드라마는 물론, 한국영화계가 쉬리로 판이 커지기 전부터 꾸준히 영화에서도 장르와 캐릭터를 가리지않고 도전해왔다는 것이며 몇 번의 위기에도 그녀가 활동한 시기에 이룬 커리어는 재능뿐 아니라 근성이 뒷받침된 것. 신인감독들과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에도 상업성이 적은 영화 <이재수의 난>이나 독립영화인 <인터뷰>에 출연한 것은 안정보다는 모험을 즐기는 심은하의 도전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에만 치중되거나 드라마에만 치중되지않고 심은하처럼 양측에서 업계의 비평과 대중의 호응을 모두 얻은 케이스는 매우 드물다.


4. 연기[편집]


<마지막 승부>로 데뷔할 당시의 포지션은 하이틴 아이돌로 남학생들의 책받침 1순위 배우였다. 당시 심은하의 머리 스타일이었던 포니테일이 인기를 끌기도 했었고 주말 쇼프로에 단골로 출연하는 손님이었다. 허나 외모빨로 여러 작품에 캐스팅 되지만 작품들의 저조한 흥행과 본인의 연기력이 도마에 올라 한동안 고생을 했다.

그래도 다양한 작품에 출연을 하고 연기력도 계속 좋아지면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로 연기력과 흥행력을 인정받는다.<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는 일상적이면서도 풋풋한 캐릭터를 표현했고,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는 사랑스럽고 순수한 캐릭터를, <청춘의 덫>에선 아픈 과거를 지닌 채 복수심에 불타는 입체적인 캐릭터를 , <텔 미 썸딩>에서는 베일에 쌓인 미스테리한 캐릭터까지 두루 연기하며 다양한 작품을 소화하는 배우였다. 현재 심은하처럼 외모, 연기력 모두 최고의 평가를 받고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여 비슷한 노선을 타고 있는 배우는 손예진 정도를 꼽을 수 있다.

노력형이기도 하지만 배우로서 재능을 타고났는데 기본적으로는 청순하고 여성스러운 미모임에도 불구하고 선과 악의 양면성이 공존하는 마스크가 주는 입체성과 눈빛은 큰 강점으로 꼽힌다. 함께 연기했던 박신양이병헌은 공통적으로 심은하의 최대 장점은 눈빛이라고 이야기할 정도. 영화평론가 김봉석은 '심은하의 무심한 표정이 스크린을 가득 메울때 숨이 멎을거같다'는 표현으로 가장 카리스마가 강한 여배우로 평가하기도 했다. 발성과 목소리 톤에 있어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데 이정향 감독은 심은하의 톤을 두고 너무 낮지도 높지도 않은 가장 듣기 좋은 톤을 가졌다고 호평했다.

한석규는 함께 다시 연기해보고 싶은 배우로 심은하를 꼽았고, 자신의 인생작으로 심은하와 출연한 <8월의 크리스마스>를 꼽을 정도로 심은하라는 배우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정재, 정우성, 김명민등 당대의 남자배우들이 상대역으로 가장 좋았거나 가장 같이 연기하고 싶은 여배우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배우로서, 스타로서 최고의 위치에 있었기때문에 2000년대 이후 등장해 현재까지 활발히 활동중인 1970년대 후반~1980년대생의 여배우들중 손예진, 전지현, 김태희, 송혜교, 한가인, 한지민, 하지원, 공효진, 신민아, 이나영, 배두나, 김민희, 1990년대생 배우인 수지, 윤아, 김소현 까지 심은하를 롤모델로 거론한 후배 톱스타 여배우들이 많다.


5. 은퇴[편집]


2001년, 기업인 정호영[19]와의 결혼 예정소식과, 결혼 이틀 전에 파혼이라는 대형 스캔들이 터지면서 큰 심적 동요를 겪고, 결국 평범하게 살고 싶다며 돌연 연예계 은퇴를 선언한다. 갑작스러운 은퇴에 대선배인 원로배우 윤정희는 '너무 너무 아까운 배우'라며 아쉬워했고 라이벌이었던 전도연 역시 자극제가 되어온 동료의 은퇴를 매우 아쉬워했다. 연예계나 광고계는 패닉상태였고 대체자를 구하기 급급해 한동안 심은하 컴플렉스라는 말도 있었을 정도. 특히 심은하를 모델로 기용해 '여자라서 행복해요' 라는 광고카피로 대박을 친 LG 디오스는 은퇴 후에도 모델이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후임으로 김희선이 출연했지만, 파급력은 심은하보다도 못했고,해당 기사. 한국화장품 역시 심은하 후임으로 이요원, 김태희를 내세웠으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은퇴 후에도 끊임없이 연예계의 러브콜을 받았으며 복귀설이 돌기도 했지만 조용히 일반인으로서 지내다가 2005년 자유선진당 출신의 정치인 지상욱 연세대학교 교수[20]와의 결혼 소식으로 또 한번 이슈 메이커에 등극했다. 10여 년간 끊임없이 들려오는 심은하 컴백 떡밥은 그녀가 어느 정도로 파급력이 있는 배우인지를 대변하고 있다.

2016년 20대 총선거에서 남편 지상욱이 중구, 성동구 을에서 당선됨으로써, 심은하는 이제 '국회의원'의 아내가 되면서 더 이상 복귀는 영영 물건너 간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21]

지상욱 의원이 바른정당 전당대회에 참여했다가 가족 건강을 이유로 바른정당 당 대표 경선에서 사퇴한 데 이어,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면서 심은하의 건강이 이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다고 한다.[22]

2017년 6월 21일, 서울 강남에 있는 모 병원에 입원했었다. 병명은 PTSD로 직접 밝혔으며, 입원사유는 수면제 과다복용이라 한다.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입원했던 심은하가 직접 입장을 밝혔다.

2022년 3월 16일 스포츠조선에서 심은하가 21년 만에 복귀한다는 소식이 떴다.#[23] 이에 심은하가 연예계 복귀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심은하, 21년 만 복귀설 직접 부인 "사실무근…법적대응 검토" [전문\]


6. 여담[편집]


2010년에는 CNN에서 선정한 아시아 영화배우 탑 25에 한국 배우로 안성기와 함께 랭크 인 되었다.

묘하게 고현정과 종종 비교되곤 하는데, 전성기 시절 갑자기 결혼과 동시에 은퇴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심은하가 데뷔해 스타덤에 오른것이 1994년이고, 고현정이 모래시계를 찍고 은퇴한것이 1995년 초반이므로 동시대에 라이벌 구도를 형성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심은하의 진짜 라이벌은 이영애라는 주장이 있었는데, 전혀 아니다.심은하가 거절한 불꽃, 봄날은 간다로 이영애가 CF스타라는 이미지를 벗어날수 있었다.[24] 활동시기로 보면 영화에서는 전도연과 양대산맥의 라이벌 구도였다.

연예계에 데뷔하기 전 어릴 적의 행적이 소문으로 돌아 구설수에 많이 올랐다. 지금도 이런 점때문에 은근히 안티가 많은 연예인[25][26][27]이다. 특히 1994년 마지막 승부의 청순한 캐릭터 다슬이로 인기 급부상 하자마자 전남친과의 동거시절 사진이 터지면서 연기생활이 위태로울뻔 했으나, 때마침 김일성 사망이라는 큰 사건이 터지면서 대중의 관심이 옮겨가고 영리하게 인기 요인이던 청순한 이미지를 바로 버리고 다음 작품을 호러 드라마 M의 팜므파탈 캐릭터로 선택하면서 빠르게 이미지 변신을 해 위기를 넘겼다.

1998년 8월 심은하는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된적 있는데#, 이 당시 옆좌석의 남자가 이서진이었고, 연애설이 파다하게 퍼졌다. 심은하는 그가 친척이라고 둘러댔지만 그녀가 운전했던 차가 이서진 어머니의 차로 밝혀져 숱한 소문을 낳았다. 후에 이서진은 드라마 '다모'로 주목받게 되면서 이때 스캔들이 재조명되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심은하와 연애를 뒤늦게 인정했다. 그런데 이게 논란이 되자 나중에는 '그냥 아는 사이여서 합석한것'이라고 말을 바꾼다.

지상욱씨가 자유선진당 대변인을 거쳐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시장으로 출마하면서 잠시 얼굴을 비쳤으며 2005년에 결혼, 2006년 2007년에 낳은 두 딸을 사이에 두고 있다. 2014년 1월 6일부터 2015년 4월까지 극동방송의 <심은하와 차한잔>을 진행했다.

한편, 심은하는 96년 9월 MBC와 전속계약이 만료된 뒤 신 TV 문학관 <천지간>으로 KBS 첫 출연을 했지만 이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 KBS 출연작이 됐으며 그 이후 첫사랑, 아씨(과거 TBC 화제작의 리메이크) 명성황후, 겨울연가, 장희빈 등 KBS 방영 연속극에서 여주인공 캐스팅 제의가 왔으나 모두 사절했다.

특히, 인기 TV 소설 '초원의 빛' 후속으로 기획되었다가 갑작스럽게 편성이 바뀌어 주말극[28]으로 방영된 '아씨'는 심은하 외에도 김혜선 등이 아씨 역 물망에 올랐으나 노역까지 해야 되는 역할에 대한 부담감 등의 이유 탓인지 모두 고사하여 설득 끝에 이응경이 아씨 역으로 확정됐는데 '아씨' 원작에서 아씨 역으로 나온 김희준은 결혼과 함께 연기활동을 접은 것이 심은하와 비슷했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남편인 지상욱 의원의 선거 유세에 등장했다. #

7. 출연작[편집]



7.1. 드라마[편집]


원래 여주인공 정다슬 역은 하이틴 스타 출신 이상아가 맡을 뻔 했으나 손지창, 장동건, 차인표 등 신인 배우 스타 만들기에 열심이던 MBC가 이상아에게 조연 미주 역을 맡기고 신인 배우인 심은하에게 여주인공 다슬 역을 맡겼다. 이 작품 이후, 주연에서 조연으로 급이 내려간 이상아와 무명의 신인배우에서 벼락스타가 된 심은하의 운명이 바뀌게 된다.
  • M(1994, MBC)/박마리,김주리,M
과거 문제로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 김일성 사망 뉴스로 인해 상황을 반전시킬 짧은 여유를 갖게 되었고 이때 출연한 M으로 팜 파탈 이미지까지 얻으며 기사회생.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단순히 1인 2역이지만 1인 3역인 셈이다. 당시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장르물인 메디컬 공포 스릴러로 50%를 넘나드는 시청률과 더불어 이 드라마가 다룬 낙태 이슈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도 상당했다. 이 작품의 대성공으로 거미, 별, RNA 같은 유사 공포장르가 여러차례 만들어지지만 M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한다.
1994년 가을부터 했던 드라마로 여주인공인 승리 역할은 대학교를 나오고 적음을 못하는 철부지 직장인 역할인데 마지막 승부에 나왔던 손지창이 남주인공 역할을 했고 M에서 함께했던 김창숙은 엄마역할을 했고 이창훈도 같이 나온 드라마인데 아쉽게도 인기가 많이 별로 없다.
작은 단역 역할인데 우연인지 드라마 M에서 입었던 고등학생 역할이었던 박마리의 교복의상이 똑같다. 드라마 주제로 작은 도둑이라는 뜻이며 오르골을 갖고 싶어하는 여학생 역할을 맡았다.
드라마 주제로 숙희라는 똑같은 이름과 성씨를 가진 동명이인 여주인공 두 명이 만나는 드라마 주제이다. 심은하는 작은 숙희역할.(큰 숙희는 라이벌 배우인 고소영이 맡았다. 심은하가 키가 작아서 작은 숙희가 된 것이다.) 스크린 진출을 시도했으나 시행착오를 겪던 시기에 출연한 드라마로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모았던 고소영과 함께 출연했다. 한편, 이 작품에서 고소영 자리에는 당초 신은경이 낙점되었으나 MBC 종합병원 촬영과 CF 스케줄 등으로 고사하자 고소영을 간신히 캐스팅했지만 전작 아들의 여자에 잇달아 투입시켜 거침없는 비판을 받았고 극중 민자 역으로 나온 임채원(당시 임경옥)은 95년 4월 5일 시작하여 5월 11일 끝났으며 8시 50분에 방영된 SBS 수목 미니시리즈 우리들의 넝쿨에 출연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호된 비난을 샀다. 게다가, 폭력배들 사이의 납치, 폭행, 린치 등의 지나친 폭력 장면을 내보내어 95년 6월 방송위원회로부터 사과명령을 받았고 결국 95년 드라마부문 워스트에 선정되는 최악의 드라마로 불명예를 안아야 했다.
  • 1.5(1996, MBC)/혜경
미국 한인교포 1.5세대를 다룬 작품으로 심은하, 정우성, 신현준, 손지창 등 청춘스타들이 대거 등장. 미국 이민 1.5세들의 이야기를 그릴 예정이지만, 스폰서 바른손이 입김이 너무 세게 들어가 젊은 시청자들의 입맛에 맛는 설정에 신경쓰다 보니 작품이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었고, 심은하의 연기력도 그저그런 수준에 그쳤다. 본 투 킬에 이어 정우성과 함께 출연했지만 남은건 두 사람의 케미.
심은하의 유일한 KBS 드라마 출연작이다.
MBC에서의 마지막 작품인데 심은하는 이 드라마에 앞서 KBS 2TV 첫사랑 출연 제의를 받았으나 약속을 어기고 <사랑한다면>으로 가버려 KBS 측으로부터 항의를 받았으며 애초 42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비현실적인 내용과 앞뒤가 맞지 않는 지지부진한 스토리 전개로 시청자들한테 외면받은 데 이어 <첫사랑>으로 인한 시청률 부진 탓인지 10편 축소된 32부작으로 조기종영되는 수모를 당했다. 집안의 종교 반대와 결혼 반대로 부딪치는 이야기이다. 남주인공 박신양과 함께 나오게 된다.
이장수 PD 작품으로 이병헌과 함께 출연했던 드라마. 이 드라마에서 심은하의 외모는 그녀의 필모중 가장 아름답게 나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장수 PD 작품으로 이병헌과 함께 출연. 이 작품에서 주차단속 요원으로 나오는데, 이듬해 개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도 주차단속 요원으로 나오게 된다. 심하게 흔들리는 화면과 정상적인 화면을 교차시키는 수법 등 왕가위 스타일을 모방한 흔적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김명민이 단역으로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제5열,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를 연출한 김종학 PD의 작품으로 최민수, 이병헌, 이정재, 신현준, 이은주, 송혜교, 박상원 등이 출연한 대작 드라마. MBC에서 데려온 김종학, 박상원, 심은하, KBS에서 데려온 이병헌의 만남과 러시아에서의 촬영 등으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시청률 저조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이하고 만다.
김수현 작가의 동명 작품을 90년대 후반의 감성에 맞게 리메이크한 작품. '당신, 부셔버릴 거야!'로 회자되는 절정의 연기력을 보여주며 그해 SBS 연기대상을 수상한다. 드라마 마지막승부와 M에 이어서 성공적인 기록과 시청률까지도 세우게 되었고 1999년도에 연기대상을 받는데 인정받게 되었다. 드라마 청춘의 덫과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미술관 옆 동물원, 텔미썸싱의 연이은 성공을 뒤로 하고 이후 전격 은퇴했다. 맨 마지막의 드라마 활동작품이다.

7.2. 영화[편집]


  • 아찌 아빠(1995)/유리
신승수 감독 작품으로 최민수와 함께 출연했다. 심은하의 비행청소년 연기를 볼 수 있다.

  • 본투킬(1996)/수하
걸어서 하늘까지, 게임의 법칙 등을 연출한 장현수 감독 작품으로 정우성과 함께 출연했다. 남성적인 느와르물에 장기가 있었던 장현수 감독은 이후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남자의 향기를 찍지만 흥행에 처참하게 실패, 예전의 대중적인 명성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허진호 감독이 이름을 알린 작품으로 한석규와 함께 출연. 이 작품으로 인해 심은하는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연기력을 인정받게 된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했고 일본에서도 개봉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각종 설문이나 영화학도들에게도 한국 멜로영화중 손꼽히는 수작으로 과장없이 잔잔한 분위기속에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생활연기가 인상적이다. 그녀가 연기한 다림의 캐릭터는 첫사랑의 표상같은 이미지로 아직도 남아있다.

여성감독 작품이라는 편견을 깨고, 입소문으로 흥행한 작품이다.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 작품으로 이성재와 연기 호흡을 맞췄다. 심은하는 짝사랑에 허우적대다가 서서히 사랑을 알아가는 순수한 캐릭터 춘희를 연기해 한국 영화사상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이성재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거짓말과 이정향 감독의 미술관 옆 동물원 등을 통해 부드러운 이미지의 훈훈한 캐릭터를 선보이며 여심을 사로잡았다. 미술관 옆 동물원은 모델 출신 송선미의 스크린 데뷔작이기도 하다.

  • 이재수의 난(1998)/일숙화
박광수 감독 작품으로 많은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의 흥행 실패 이후 박광수 감독은 충무로의 메인스트림에서 밀려나게 된다.[29]

서울 개봉관 기준으로만 70만명 동원한, 당시 기준으로 대흥행작에 꼽힌다. 접속장윤현이 감독한 스릴러로, 장윤현 감독은 전작 접속에서 한석규와 함께 했으며 한석규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심은하와 호흡을 맞춘 적이 있었다. 쉬리와 8월의 크리스마스의 인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개봉하여 호평을 받았으며 당시 일본 민주당하토야마 유키오 당대표가 범인이 누구인지 영화사 측에 물어봐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접속과 텔 미 썸딩으로 흥행감독이 된 장윤현 감독은 이후 썸, 황진이, 가비 등을 연출하지만 연이어 흥행에 실패했다. 여담으로 공식 제목이 진짜 텔 미 썸이다. something은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섬싱'이 되어야 하며, 당시 통용 표기로도 "썸씽", "썸띵" 정도였는데 특이한 표기를 원한 것인지 아니면 당시 썸씽이라는 단어가 주던 뉘앙스가 싫었는지 저런 표기가 나와버렸다. 그러면서도 당시 포스터상의 공식 홍보문구로 '하드고어 스릴러(thriller)'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30], 내용상 하드고어가 맞는지는 둘째치더라도, 같은 θ발음을 사용하는 thriller는 릴러라고 제대로 표기했다는 것이 아이러니. 릴러라고 하면 이런 게 생각나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마이클 잭슨의 동명의 앨범 역시 한때 '드릴러'로 표기되곤 했던 것이 옛 시절임을 생각하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부분이다.

  • 인터뷰(2000)/영희
당시 단편영화로 주목받던 변혁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심은하는 이 작품에서 이재수의 난에서 함께 했던 이정재와 함께 출연했다. 은퇴를 생각하고 있을 당시 흥행에 미련 없이 출연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서울 개봉관 기준 20만명 이상 들었다. 단편 호모비디오쿠스로 영화적인 감각을 드러냈던 변혁 감독은 인터뷰의 흥행 실패와 이후 한석규, 이은주, 성현아를 출연시킨 영화 주홍글씨 촬영 과정에서의 잡음을 거치면서 영화판에서 밀려나게 된다.


8. 수상 내역[편집]


연도
시상식명
수상 부문
작품
1994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신인연기상
마지막 승부
베스트드레서 탤런트부문 백조상
MBC 연기대상
신인상
마지막 승부, M
1997년
조세의 날
경제부총리 표창

1998년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8월의 크리스마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여자연기자상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여우주연상
씨네21 영화상
올해의 여자배우
8월의 크리스마스, 미술관 옆 동물원
1999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청춘의 덫
대종상
여자인기상, 여우주연상
미술관 옆 동물원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SBS 연기대상
10대스타상, 최고인기상, 대상
청춘의 덫
2000년
대한민국 영상대전
영화배우부문 포토제닉상
텔 미 썸딩
황금촬영상
최우수 인기여우상
대종상
여자인기상
한국영화축제
관객들이 뽑은 연기상
SBS 연기대상
창사 10주년 기념 빅스타상
청춘의 덫 外
2001년
대종상
여자인기상
인터뷰

[1] 여의도연구원장. 지상욱은 참고로 재혼이다.[2] 두 딸 모두 심은하의 소생이다. 딸들이 2015년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화제가 되었다.[3] 마지막승부와 M으로 드라마로 활동 당시의 외모이다.[4] 하지만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출연한 7개의 작품 모두 시청률 참패를 당했다.[5] 황인정은 최진실 이미지의 발랄한 계열.[6] 21세기인 지금도 이 정도의 사건이면 커리어에 문제가 크게 생기는 초대형 사고이다. 특히 그 당시에는 시대도 시대이고 더군다나 청순한 이미지의 여자 연예인이어서 더 그랬으니 커리어를 박살낼 수 있는 초대형 사고였다고 보면 된다.[7] 때 마침 김일성의 사망으로 인하여 묻혀버리는 행운도 있었다.[8] M에서 연기한 캐릭터는 동거 스캔들을 오히려 이용했다는 평가를 듣기도 할 만큼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지금 보면 조악한 수준이라 할 수 있는 컴퓨터 그래픽과 음성변조에도 그 당시 사람들은 왠지 공포에 떨었다.[9] 2개의 작품은 조기종영을 당했다. 7편의 작품 중 4편이 시청률 면에서 평일보다 유리한 주말 드라마였는데도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은하의 인기는 건재해서 당시 연예계 관계자들은 ‘드라마는 망해도 심은하는 산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10] 김수현 문서 참조. 당시 김수현 작가의 작품의 주인공은 아무나 맡기지 않는걸로 유명하다. 엄청난 대사량과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배우는 캐스팅조차 될 수 없었다.[11] 대본에 지문을 많이 넣기로 정평이 난 김수현 작가는 극중 윤희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지적하며 ‘쩍’이었습니다 라는 표현을 썼다.[12]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김지호와 함께 최악의 배우로 거론되었다.[13] 이 두 사람은 드라마 1.5에서 다시 만난다.[14] 스케줄 때문에 출연하기 힘들다고 했다. 대신 일일극 등 드라마에서 주조연급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전도연이 출연하는데 이게 전도연에게 충무로가 선호하는 여배우로 거듭나는 계기가 된다.[15] 심혜진은 다른 충무로 스타들과 다르게 1999년부터는 브라운관에서만 활동했다.[16] 1999년 말 개봉한 '송어'까지 계속 충무로에서 주연으로 활동했으나 1994년 장미의 나날 이후 대부분 전성기에 비해 부진한 흥행성적을 거뒀다.[17] 최진실은 1990년대 말에도 후배 심은하처럼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당대의 톱스타로 왕성하게 활동했는데 1997년 말 개봉한 편지1998년 관객까지 합쳐 그해 한국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1999년 설연휴때 개봉한 마요네즈에선 당시 쉬리의 대흥행으로 주부층 위주로 인기를 얻어 전작에 비해 줄어든 전국 25만의 흥행성적을 거뒀고 결혼 직전 2000년 말에 개봉한 대작 영화 단적비연수는 그해 한국영화 흥행4위를 기록했으나 막대한 제작비에 비해 부진한 관객수를 기록했고 일부 관객에겐 연기로도 혹평을 받았다.[18] 정선경은 1994년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로 섹시한 이미지로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올라 이듬해에도 개같은 날의 오후•돈을 갖고 튀어라 등의 주연을 맡아 대흥행을 기록했고 SBS 장희빈으로 첫 TV 드라마였지만 성장한 연기력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1996년에 주연 영화들이 연속으로 부진한 흥행성적을 거둬 충무로 스타에서 활동 무대를 TV로 완전히 옮겨 한층 안정된 연기력을 선보여 재기에 성공했다.[19] 현재 이영애의 남편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연예인 X파일에도 올라갔다. 더 골치아픈건 정호영은 국민의힘 정진석의 조카이고 현재 남편 지상욱은 여의도연구원장을 역임하고 있어 한솥밥을 먹고 있다.[20]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 이분의 아버지는 지성한 전 육군본부 범죄수사단장(대령)으로 윤필용 사건 때 예편당하였다.[21] 사실 김한길은 20대 불출마를 하긴 했지만, 최명길의 사례를 보더라도 아무래도 심은하가 은퇴한 이유가 전술했듯 파혼 사건 등으로 심적 부담이었던 것이 크기 때문에 복귀를 안하고 있다는 게 맞다.[22] 다만 이후 지상욱은 2017년 12월 정책위원회 의장이 되었다.[23] 현재 기사가 삭제된 상태.[24] 근데 이 말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게 심은하 활동 당시 위치로만 따지면 이영애가 심은하를 넘어섰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이영애는 심은하 은퇴이후인 30대 들어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대장금친절한 금자씨를 통해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지, 그 전까지는 그냥저냥 예쁘고 인기 조금 있는 여배우 딱 그 정도 위치였다.[25] 학교 졸업사진으로 올라왔다는 심은하의 비범한 헤어스타일도 한창 화제가 됐던 적이 있고, 뚜렷한 근거가 없는 각종 소문으로 인해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었다. 대표적인 루머로는 심은하가 어느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때 전화 연결된 청취자가 '언니 정말 좋아해요'라고 화두를 열자 이에 심은하가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청취자가 돌연(근데)우리 언니 왜 때렸어요라고 해서 방송이 갑자기 중단되었다는 소문이라든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프로 생방송 중에 "여러분 정말 덥죠?" 라는 말을 할때 '정말' 대신 비속어를 사용했다는 루머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일이 있었다면 그 많은 매체에서 한 곳도 보도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또한 방송 중 비속어는 오히려 저 당시에 엄격하게 규제했기 때문에 사실이면 제작진이 문책을 당하고 심은하는 방송정지 크리, 블랙 리스트에 올랐을 것이다. 게다가 저 루머가 생성된 시기가 신인 시절이었으므로 정말로 그랬다면 인성 논란으로 당장 매장되었을 것이다. 인터넷 없던 시절에 흔했던 라디오 괴담의 일종이라 봐야 한다.[26] 앞의 각주에 대한 반론 : 방송 중 비속어는 방송정지나 블랙리스트 같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라디오에서 저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성이 있다. 그 당시에는 라디오나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의 발언을 받아쓰기하며 조회수 벌어먹는 기레기가 거의 없었다. 방송매체는 실제로 기자가 취재한 내용만을 내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라디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라는 기사가 보도되지 않는 것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생방송 중에 청취자가 벌인 돌발행동을 라디오 제작진이나 심은하측에서 책임져야 할 이유도 없으므로,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해도 문제없이 넘어가는 것이 당연하다. 다른 건 둘째치고 1990년대에 경기도 성남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사람이라면 심은하 일진설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27] 앞의 각주에 대해 반론하자면, 만약 이러한 일이 실제로 있었을 경우, 프로그램의 이름이 정확히 거론되었을 것인데, 어느 프로그램인지는 안 나온다. 지금도 회자되는 내귀에 도청장치 사건처럼, 생방송 중 돌발 행동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므로, 이를 실제로 들은 청취자가 있었다면, 기사화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 시절에도 연예 매체 기자들은 나름 집요하고 악명이 높아서, 아무리 기사거리가 없어도 매일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대문짝만하게 박았고, 여기에 낚여서 가판대 신문을 돈 주고 사 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물론 대개는 헤드라인만 요란하고 내용은 별 게 아니었기 때문에 저런 일이 실제로 터졌다면 기자들 입장에선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당시엔 케이블 TV 채널도 없었을 정도로 매체 수가 지극히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방송에서 이런 일이 터지면 오히려 지금보다 화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비록 다시듣기 서비스는 없었지만,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하는 사람들은 많았으므로, 제보는 얼마든지 가능하며, 컴퓨터 사용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뒤늦게라도 이를 음성 파일로 변환하여 올렸을 것이다. 또한 심은하 말고도 과거에는 라디오 방송 사고설에 휘말린 연예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결국 루머로 판명난 경우가 다수다.[28] 38회까지는 9시(당시엔 '드라마 스페셜'이란 부제가 붙었음), 39회부터 50회(최종)까지는 8시로 방영됐지만 11~12회는 97년 11월 15일 연속.[29] 다만 이 영화에서 심은하는 노 개런티로 10회차 남짓의 촬영 분량만 참여했기 때문에 특별출연에 가깝다.[30] 이 곳에서 해당 포스터를 볼 수 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01-11 20:32:06에 나무위키 심은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6 08:00:18에 나무위키 심은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