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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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집권 (執權(しっけん)

1. 개요
2. 역대 싯켄
3. 같이보기



1. 개요[편집]


가마쿠라 시대정이대장군(쇼군)을 대신하여 막부의 정무를 총괄하던 직책. 한마디로 헤이안 시기 조정의 관백, 무로마치의 간레이, 에도의 다이로처럼 막부의 재상직이지만, 후술하듯 본래 무관직으로 시작했다 군주가 된 쇼군처럼 사실상의 전제군주화 되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사후 요리토모의 장인 호조 토키마사가 임명된 것이 시초로 이후 호조씨에서 대대로 계승했으며, 요시토키의 대에는 싯켄이 실권을 장악하여 실질적인 막부의 수장이 되었다. 이때의 호조씨 가문은 센코쿠 시대의 호조 가문(후호조씨)과는 다른 가문이다.

즉, 일본의 기존 국가원수인 천황을 대신해 통치하는 쇼군을 대신해 통치하는 싯켄이 일본을 대대로 다스리게 된 셈.

하지만 100년도 못 가 1284년 도키무네 사후부터는 싯켄마저 가신들에게 모든 실권이 넘어가 버린 상태로 영락하다 1333년 멸망을 맞는다. 오히려 이런 어정쩡한 상태로 50년이나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갔다는 것이 대단한 일이다.

130년 내외에 싯켄이 16명이나 있었는데, 이는 상당히 특이한 것으로 종가에서 요절하는 경우가 많아 그 공백을 친척들이 채우는 일이 자주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도키무네 이후에는 이런 현상이 매우 자주 일어나, 호조씨의 약화로 이어졌다.

고다이고 덴노가 가마쿠라 막부를 무너트리고, 고대 시절처럼 천황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로 바꾸기 위해 겐무 신정을 시행하면서 싯켄직은 쇼군, 막부, 관백 등 천황의 권력을 제한하는 관직과 기구를 죄다 폐지하는 바람에 끊겼다.


2. 역대 싯켄[편집]




파일:北条氏康の家紋アイコン.png
가마쿠라 막부의 역대 싯켄

이름
재임기간
비고
1대
호조 도키마사 (北条 時政)
1203 ~ 1205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장인
2대
호조 요시토키 (北条 義時)
1205 ~ 1224
요리토모의 처남. 조큐의 난 제압으로 전권 장악
3대
호조 야스토키 (北条 泰時)
1224 ~ 1242

4대
호조 쓰네토키 (北条 経時)
1242 ~ 1246

5대
호조 도키요리 (北条 時頼)
1246 ~ 1256
1256년 출가. 실권은 계속 장악.[1] 회국 전설[2]
6대
호조 나가토키 (北条 長時)
1256 ~ 1264

7대
호죠 마사무라 (北条 政村)
1264 ~ 1268

8대
호조 도키무네 (北条 時宗)
1268 ~ 1284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
9대
호조 사다토키 (北条 貞時)
1284 ~ 1301
도키무네의 아들, 다카토키의 아버지.[3]
10대
호조 모로토키 (北条 師時)
1301 ~ 1311

11대
호조 무네노부 (北条 宗宣)
1311 ~ 1312

12대
호조 히로토키 (北条 煕時)
1312 ~ 1315

13대
호조 모토토키 (北条 基時)
1315

14대
호조 다카토키 (北条 高時)
1316 ~ 1326
1326년 자리에서 물러나고 출가하나 실권은 계속 보유.[4] 실질적 최후 싯켄.[5]
15대
호조 사다아키 (北条 貞顕)
1326
10일간 재임.[6]
16대
호조 모리토키 (北条 守時)
1327 ~ 1333
[7]


3.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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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263년에 죽었다. 8대 집권 도키무네의 아버지로 도키무네를 다룬 NHK 사극에서 와타나베 켄이 이 인물 역을 맡았다.[2] 廻国伝説. 도키요리는 후대의 미토 고몬 비슷하게 백성의 생활을 살피기 위해 나라를 돌며 암행했다는 전설이 있다.[3] 도키무네가 34세로 죽어 12세로 싯켄이 되었고 이때에 모든 권력은 가신들에게 완전히 넘어간다. 성년이 되어서도 정사를 포기하고 일체 권력에 관여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도키요리처럼 회국전설이 있기는 하나 이미 막부의 권위가 떨어져서 큰 효과는 없었던 듯하다. 그래도 호조씨를 끝낸 아들 다카토키만큼은 평이 나쁘진 않다.[4] 뒤의 두 사람은 바지사장이고, 다카토키가 1333년 패하여 자살하면서 가마쿠라 막부도 호조가문도 끝이 난다. 편의상 실권 보유라곤 했지만, 다카토키는 취임 시 꼴랑 13세로 그의 일생 전체에서 실권은 가신 나가사키 엔키의 손에 있었고 엔키는 호조가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한다.[5] 그의 아들이 호조 가문 재흥을 위해 나카센다이의 난을 일으킨 호조 토키유키이다.[6] 사다아키 자신은 별로 특기할 게 없지만, 그 아들인 호조 사다유키는 특기할 만한 인물이다. 멸망해가는 호조가를 지키기 위해 제법 잘 싸웠으며, 호조가가 끝난 1333년 음력 5월 22일 다카토키는 그를 로쿠하라 탐제로 임명했는데 일설에는 싯켄으로 임명했다고도 한다. 어쨌든 그날 사다아키는 싸우다 죽고 다카토키 등은 자살해서 의미는 없으나, 사다유키가 17대 싯켄이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7] 여동생이 아시카가 타카우지의 아내였으나 그녀는 오빠를 배신하고 남편에게 붙었다. 호조가가 망하기 며칠 전 전사했다. 그래서 위의 사다아키의 아들 사다유키가 죽기 얼마 전 싯켄직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