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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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편집]
작사가, 작곡가와 가수를 겸하는 사람을 말한다[1] . 보통 자기가 부를 곡을 직접 작사, 작곡하는 가수들을 싱어송라이터라 부른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음악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고 자신의 음악적 성향에 잘 맞는 곡을 작곡하므로 명곡들을 많이 만들어낸다. 다만 실제로 작사, 작곡에 더해 편곡까지 스스로 하는 경우는 정말로 드물다. 대개 본인이 작사, 작곡한 곡을 다른 아티스트와 함께 편곡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작사, 작곡, 편곡, 악기 연주, 믹싱, 프로듀싱까지 스스로 하는 스티비 원더, 폴 사이먼 같은 아티스트도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 악기 연주에 레코딩, 믹싱에 프로듀싱까지 하는 싱어송라이터로 DEAN, 김사랑, 김원준, 김윤아, 김재환, 김종완, 버벌진트, 서태지, 신해철, 유재하, 조용필, 창모, 한대수가 대표적이다.
앨범아트의 경우 장범준 등과 같이 본인이 직접 디자인 하는 경우도 있다. 뮤직비디오 스토리의 경우 본인이 직접 작성하는 경우도 있는지는 확인불가.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지만 붙여서 쓰면 끊어 읽을 위치가 애매해져, 일부 영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싱-어-송-라이터(sing-a-song-writer)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선 작사 작곡 능력에 대한 평가를 제쳐두고 작사 작곡하는 가수라고 하면 좋게 보는 편이다. 또한 커리어 전체에 걸쳐서 송라이팅에 참여한 곡의 수가 소수인데도 싱어송라이터 취급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2] . 반면 미국, 유럽, 일본의 경우 인디 시장 자체가 저변이 꽤 넓고 인디씬에서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고 메이저 데뷔를 하는 케이스가 많다 보니 많은 가수들이 기본적인 작사, 작곡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서양권과 일본의 경우 가요계에서의 싱어송라이터의 비중이 매우 큰 편이다. 요네즈 켄시, 우타다 히카루, 호시노 겐이 대표적인 예. 실제로 일본 연예계에서 싱어송라이터들은 최상급의 대우를 받으며 인기도 많다. 일본 유명 싱어송라이터들의 작사 작곡 능력은 세계적으로 상당한 편으로 평가 받는다.
대신 이 동네에서는 '기본도 안 된 게 작곡이랍시고 허접한 거 가져오는' 케이스도 끼어있다고 지적받기도 한다. 특히나 작사가, 작곡가, 편곡자의 구분이 뚜렷한 한국이나 일본 음악 시장과는 달리 구미권에서는 작사와 작곡을 구분하지 않고 "songwriting"이라고 부르는데, 가사 몇 자 고치는 것만으로도 크레딧에 songwriter로서 이름이 올라가기 때문에 곡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는데도 불구하고 싱어송라이터 취급을 받는 경우도 끼어있다. 커리어 초기의 저스틴 비버가 이런 식으로 곡 작업에 참여한 후 싱어송라이터라며 마케팅을 한 대표적인 예시이다.
사실 레전드의 반열에 올라가려면 싱어송라이터로의 능력은 거의 필수라고 봐도 좋을 정도지만[3] , 막상 데뷔부터 싱어송라이터인 경우는 간혹 보컬로의 능력은 좀 부족하고 음악적 지식, 센스, 미디어 전략에 탁월한 경우가 꽤 있다.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보컬 능력에 대한 컴플렉스가 강한 경우 역시 많다. 밴드 음악의 경우 리더 역할을 보컬이 아니라 기타리스트 등 다른 포지션이 맡는 경우들을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특히 인디즈도 이미 확고한 시장의 지위를 확보한 미국, 영국, 일본의 신인 싱어송라이터들은 가진 재능에 비해서 가창력이 좀 부족해서[4] 소속사에서 의도적으로 일찍부터 음악 작업에 참여시키는 케이스가 많다. 그래도 당연히 울 가수는 자기가 써서 노래하는 캐괴수임 형식으로 되며 이건 좋은 세일즈 포인트가 된다. 특히 일본 가요계는 가수들의 가창력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단점을 메꿀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들 위주로 가요계가 발전했다고 보는 이도 많다. 하지만 이는 일본어의 문제라고 보기 힘든 게 오페라나 성악에서의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태리어와 비슷하게 개음절 언어여서 부드러우며, 모음이 아,에,이,오,우 뿐이라서 밝은 느낌을 주는 데다가 목소리를 내지르기도 적합하다. 거기다가 유무성음으로 구별하는 언어인데다가 장단음 구분이 있기에.
하지만 (가나다순 정렬) 닐 다이아몬드, 닐 영, 레이디 가가, 레이 찰스, 마이클 잭슨, 머라이어 캐리, 배리 깁, 브루스 스프링스틴, 빌리 조엘, 스모키 로빈슨, 스티비 원더, 스팅, 아델, 앨리샤 키스, 엘튼 존, 제임스 브라운, 조지 마이클, 존 레논, 척 베리, 캐롤 킹, 케이트 부시, 프레디 머큐리, 프린스, 폴 매카트니, 폴 사이먼 등과 같은 역사에 남는 위대한 가수, 위대한 싱어송라이터들은 대부분 보컬로도 작곡가로도 대단한 업적을 남긴다. 단지 이런 가수들은 영미권에 치중되었고 싱어송라이터 중에서 이런 반열에 올라갈만한 경우 역시 영미권에 치중되었다. 한국의 경우 아이돌로 대표되는 기획형 가수가 많아지고, 기획형 가수가 아니더라도 작곡/편곡에 많으면 열 명도 넘는 사람이 달라붙는 게 일반적인 현재 상황에서는 보컬로 뛰어나다면 활동 초반에는 그쪽에 집중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작사/작곡이 분업화/다인원화하는 것은 영미권 등의 해외 음악 시장도 마찬가지여서, 시간이 갈수록 평균적인 질은 올라갈지언정 위대한 싱어송라이터는 나오기 어려워질 듯하다.
2. 싱어송라이터의 분류[편집]
국내의 싱어송라이터인 유영석은 국내의 싱어송라이터를 두가지로 분류했다.
주의할 것은, 원래 영어의 songwriter는 작사와 작곡을 아우르는 개념이라는 점이다. 한국이나 일본 음악 시장에서는 작사에 참여한 사람과 작곡에 참여한 사람을 구분해서 표기하지만, 영미권을 비롯한 많은 음악 시장에서는 작사 또는 작곡에만 참여해도 songwriter로 합쳐서 표기한다. 그 이유는 저작권료를 나눌 때 지분이 작사 50%, 작곡 50%인데 보통 작사나 작곡의 공동 작업자 수가 달라서 사람 수가 적은 쪽이 돈을 더 많이 가져간다. 그래서 참여한 작사, 작곡진을 전부 한꺼번에 같이 올려서 한 곡당 기여한 비중대로 저작권료를 배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데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HYBE의 방시혁이 총괄 프로듀싱하는 아티스트들은 songwriter를 합쳐서 표기하고 있다.
2.1. 노래하는 작곡가[편집]
첫 번째는 작곡가로 출발해서 가수를 겸하게 된 경우. 유영석, 유영진, 유재하, 유희열, 윤상, 이성화, 정재일, 정재형, 주영훈, DEAN, Sia 등이 이 경우다.
이 경우 보컬 능력이 비교적 평이한 경우가 많다. 즉 살짝 부족한 보컬로서의 가창력을 뛰어난 음악적 센스로 커버하는 경우. 윤상의 경우 고음이 안 올라가져서, 녹음 도중에 곡을 고치는 해프닝도 있었다. 자신의 정확한 음역대를 몰랐다고. 특히 유희열은 자유로 가요제에서 환관 창법에 너덜너덜한 가창력을 보여 멤버들과 파트너 재석에게 맹렬히 디스당했다.
좋은 예시로 영국의 작곡가인 노엘 갤러거가 있다. 노엘 갤러거가 있던 오아시스에는 이미 리암 갤러거라는 최고의 보컬리스트가 있었지만, 리암은 오아시스 초창기만 하더라도 공연 펑크가 잦았다. 이때 메인 보컬의 공석을 작곡가이기도 하고, 그 때문에 오아시스의 모든 곡을 부를 수 있었던 노엘이 대신 맡았다. 또한 리암은 곡을 가려서 불렀다. 어쿠스틱 곡들은 자신의 보컬을 따라올 수 없는 나약한 곡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인데, 곡을 썩혀놓을 수도 없었던 노엘은 B사이드에 자신의 어쿠스틱 셋을 넣기도 하였는데, 보컬인 리암의 이러한 특징들로 말미암아 본디 프론트맨이 아니었던 노엘이 자연스럽게 보컬로서 공식적인 무대들을 접하게 된다. 이후 노엘이 보컬을 맡은 2집의 Don't Look Back In Anger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사람들은 노엘을 자연스럽게 리암과 더불어 또 하나의 프론트맨으로 서서히 인식하기 시작한다.
이후 90년대를 지나 오아시스 후기가 될 수록 리암의 독특한 창법으로 목소리가 점점 맛이 가기 시작하자, 앨범이나 라이브에서 노엘이 보컬을 맡는 비중이 점점 늘어가면서 비중이 리암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하고, 이후 밴드가 공중분해된 이후 자신만의 솔로 밴드를 만들어서 작곡과 보컬을 둘 다 하고 있다[5]
2.2. 작곡하는 가수[편집]
두 번째는 가수로 활동하면서 작곡까지 하게 된 경우다. 권도운, 김건모, 김종서[6] , 성시경, 신승훈[7] , 아이유, 윤종신, 윤하, 이상은, 이수[8] , 이승환, 이선희, 임창정, 장필순, 종현[9] , 정엽, 한동준 등이 이 경우다.
이런 경우엔 본인이 작곡을 하고 편곡이나 작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곡하는 가수' 계열의 아티스트가 쓴 곡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노래하는 작곡가' 계열보다 음악적으로는 다소 단순하지만 반대로 가창에서의 난이도가 높은 곡이 많다는 것. 이영현의 '체념'이 대표적인 예. 아이러니하게 윤종신의 경우 현재 가수보다는 작곡가, 프로듀서로 훨씬 인정받는다. 이승철이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윤종신 보고 '가수 아니잖아. 프로듀서지' 라고 농담할 정도다. 물론 윤종신은 가수(보컬)으로도 레전드급이다.
2.3.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편집]
마지막은 가수 데뷔 후 처음부터 두 가지 모두 도맡았고 결과가 성공적인 경우다. 이 분야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소위 예술가 싱어송라이터의 이미지에 가장 잘 들어맞는 듯. G-DRAGON, DAY6, DEAN, LE, 강승윤, 권은비, 길, 김광진, 김동률, 김광석, 김범룡, 김세정, 김수철, 김원준, 김윤아, 김종완, 김진호, 김창완, 김현철, 권정열, 나얼, 나훈아[10] , 멜로망스, 박진영 ,박정현, 백아, 버벌진트, 볼빨간사춘기, 서태지, 송민호, 신해철, 심규선, 싸이, AKMU, 안예은, 영탁, 우지, 윤건, 윤딴딴, 윤새, 윤종신, 이대휘, 이무진, 이민우, 이석원, 이승열, 이승윤, 이적, 장범준[11] , 전소연, 정의송[12] ,정준일[13] , 정용화, 정은지, 조규찬, 조용필[14] , 지코, 진영, 창모, 타블로, 터틀맨, 하현우, 한대수, 헤이즈 등이 이 경우다.
이 분류의 싱어송라이터들이 공유하는 특징은 단순히 곡의 가사를 쓰고 메인 멜로디를 만드는 것을 벗어나서 편곡 작업을 스스로 하는 프로듀서라는 점이다. 주로 밴드 음악을 기반으로 한 록 음악과 재즈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미디 음악을 기반으로 하는 힙합과 일렉트로니카의 싱어송라이터들이 여기 해당하게 된다. (컨템포러리 R&B의 경우도 더 이상 힙합과 작업 방식을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없기 때문에 달비도 이쪽에 속한다.) 밴드 음악, 힙합, 일렉트로니카의 경우 당연히 작곡 작업과 편곡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따로 생각할 수 없다.
나얼의 경우 윤건이 작곡한 곡인 벌써 일년으로부터 크게 성공을 시작하여 급기야 솔로 활동에서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인 바람기억, 같은 시간 속의 너, 기억의 빈자리를 대중적으로 인정받고 크게 히트 시킨다.
위에서 언급한 장르인 힙합 → 밴드 → 일렉트로니카에 다 손댔고 모두 성공했으며 이제 세 가지를 신나게 뒤섞고 있는 서태지가 이 분야 끝판왕이며, 2010년대 이후의 아티스트로는 장범준과 볼빨간사춘기가 대표적이다. AKMU의 이찬혁도 기타 하나에서 시작해 AKMU의 거의 모든 곡을 작사, 작곡, 프로듀싱했고, 발라드, 댄스, 힙합, EDM, 재즈,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만들고 시도하고 있다.
볼빨간사춘기는 데뷔 때부터 두 명의 멤버가 거의 모든 수록곡을 작곡하였다. 특히 멤버 안지영은 우주를 줄게, 여행, 좋다고 말해 등의 메가 히트곡을 남기며 2022년 4월 현재 가온차트 1억 스트리밍 곡 최다 작곡 2위에 랭크될 만큼 영향력 있는 싱어송라이터라고 말할 수 있다.[15]
015B의 정석원이 작사 작곡한 곡 '꿈에'로 유명한 가수 박정현은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처음부터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하였다. 1집에서 인트로 트랙을 직접 편곡까지 했으며, 8집까지 자작곡이 최소 2곡 이상 포함되어 있다. 6집의 경우는 2곡 제외 자작곡이다. 편곡 작업은 종종하는 편인데 피아노로만 쓴 몇 가지 곡과, 다른 악기도 사용한 5집의 <Ode>, <미래>, 7집의 <비가> 등이 있다.
LE의 경우 EXID의 히트곡(<매일밤>, <위아래>, <Ah Yeah>, <Hot Pink>, <L.I.E>)에 모두 프로듀서로 참여해 상당히 주목받고 있다.
진영은 아이돌 프로듀서 중 단독 작곡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B1A4 앨범의 음악 프로듀서를 맡고 있다. 편곡 또한 늘 다른 아티스트와 공동으로 진행했지만 정규3집 수록곡 멜랑꼴리와 미니 7집의 타이틀곡 Rollin'부터는 혼자서 진행한다. 뿐만 아니라 레코딩, 믹싱까지 관여할 정도. 본인 그룹의 노래 뿐만 아니라 걸그룹 곡에서 많은 호평을 받았는데, 대표곡으로 아이오아이의 같은 곳에서, 벚꽃이 지면, 오마이걸의 한발짝 두발짝 등이 있다. 작사력 또한 훌륭하다.
헤이즈 역시 대부분의 자신의 곡 작사, 작곡에 참여했으며 그녀의 최고 히트곡들인 비도 오고 그래서, 널 너무 모르고도 헤이즈의 작품이다.
우지 또한 데뷔 때부터 세븐틴 앨범의 모든 곡을 작사작곡하는 앨범 프로듀싱 담당이며, 아이오아이의 소나기 등을 프로듀싱했다.
김세정은 본인 솔로 앨범 1집부터 타이틀곡을 제외한 모든 곡을 작사작곡했고 2집은 전곡을 도맡아 하며 기획까지 담당했다. 주연을 맡아서 OCN 드라마 역사를 다시 쓴 경이로운 소문 OST 재회 역시 그의 작품.
영탁의 경우는 무명 시절부터 꾸준히 이것저것 해본 덕에 지금의 영탁이 될 수 있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를 포함한 오케이, 전복 먹으러 갈래 등 본인의 곡 대부분을 작사작곡 했으며, 첫 정규앨범에 9곡을 직접 작사작곡 했다. 동료들에게 저작권료를 안 받고 곡을 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대표적으로 김희재의 ‘따라따라와’, 장민호의 ‘읽씹 안 읽씹’, 이대원의 ‘챔피언’, 고재근의 ‘사랑의 카우보이’, 별사랑의 ‘돋보기’ 등이 있다.
G-DRAGON의 경우 이 분야에서는 말이 필요 없는, 그야말로 k-pop에 있어 가장 성공한 그룹 중 하나로 평가받는 아이돌 그룹인 BIGBANG의 전곡을 작사, 작곡을 담당했으며 심지어 그가 처음으로 단독으로 작사, 작곡한 거짓말은 빅뱅의 제 1 전성기를 가져다준 히트곡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키며 말 그대로 K-POP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세 번째 분류의 아티스트들도 살짝 나눠볼 수 있는데, '데뷔 이후로 자신의 곡 작업에 집중한 싱어송라이터'와 '다른 가수에게 곡을 주어, 작곡가로도 유명한 싱어송라이터'로 볼 수 있다. 김윤아의 경우 정말 자우림 앨범과 본인의 솔로 앨범에만 곡을 실을 뿐 다른 가수에게 곡을 주지 않기로 유명한데, 데뷔 이후 20년 동안의 경력 동안 장나라와 슈퍼주니어에게 각각 한 곡씩, 두 곡을 써 주었을 뿐이다. 작사도 친구 박정현의 곡 두 개를 작사한 것이 거의 전부이다. 서태지의 경우도 자신의 앨범들 위주로만 작업하며, 원미연과 양현석에게 한 곡씩 주었을 뿐이다. 김동률의 경우 이승환에게 준 <천일동안>, 박효신에게 준 <동경>, 김원준에게 준 <Show>(쇼 끝은 없는 거야~), 장혜진에게 준 <1994년 어느 늦은 밤>이 각각의 가수들의 앨범 타이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대표곡이 될 정도로 타가수 노래들의 작곡가로도 유명하다. 물론, 작곡제의가 들어왔을 때에 곡들을 주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싱어송라이터의 마음이다.
3. 목록[편집]
자세한 내용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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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싱어송라이터 장르[편집]
자세한 내용은 싱어송라이터(장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여담[편집]
- 싱어송라이터 전공: 평생교육원 평생교육기관을 제외한 싱어송라이터 전공이 개설된 대학교는 극히 적으며, 입학 정원부터 모집하는 유명대학교로는 20년 기준 (ㄱ~ㅎ순) 단국대학교(천안), 동아방송예술대학교, 백제예술대학교, 서경대학교, 호원대학교 정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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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립국어원에서는 순화단어로 자작가수로 표기한다.[2] 이승철이 대표적이다.[3] 송라이팅까지는 몰라도 편곡, 프로듀싱에 대한 센스는 필수적이다.[4] 음역대가 낮거나 좁은 경우가 많고 탁 트인 소리를 내는 힘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5] 여담이지만 같은 밴드에 있던 친동생인 리암 갤러거는 작곡하는 가수 케이스이다. 리암도 4집에서 Little James에 곡을 넣는 것을 시작으로, 작곡 비중을 늘려가고, 비디 아이를 거쳐 솔로 시절에 와선 당당히 한 명의 싱어송라이터가 되었다[6] 헤비 메탈 밴드 시절에는 다른 밴드 멤버가 작곡하거나 같이 작곡했고, 솔로 데뷔 후의 곡들은 사실상 모두 본인이 작곡했다.[7] 신승훈 1집의 경우 전곡이 신승훈 자작곡이다.[8] 앨범마다 본인이 작사, 작곡, 편곡까지 모두 맡은 곡이 두셋씩 있으며, 대표적으로 One Love, 입술의 말 등이 있다.[9] 본래 꿈이 작곡가였다고 하며 현재진행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생을 달리하였다. 실제로 작곡작사 모두 참여하고 있었고, 직접 작사작곡한 곡을 다른 가수에게 준 적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이하이의 한숨, 아이유의 우울시계 등[10] 트로트계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이다.[11] 버스커버스커 시절부터 현재까지 특유의 감성으로 호평일색, 스타덤에 올랐다. 상업적으로도 매우 크게 성공해 2010년대 초중반 이후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있다.[12] 트로트계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이다. 노래방에 등록된 노래만 해도 500개가 넘는다.[13] 밴드 메이트로 활동할 때도 록 음악, 음악 마니아들에게 명성이 있었는데 1집으로 솔로 데뷔를 하면서 대중에게도 지속적이고 꾸준한 인기를 얻기 시작해(타이틀곡 안아줘는 네이버 뮤직 등 주요 음악차트 100위권에서 몇 년 내내 내려가지 않고 살아남은 진기록이 있다), 징병으로 인해 아쉽게 밴드활동이 미진해진 뒤 본격적으로 솔로활동을 시작하면서 유명해진다.[14] 사실 가왕은 가수로 데뷔하기 전에 이미 앨범을 발매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은 기타리스트였다.[15] 가온차트 1억 스트리밍 곡 최다 보유 '가수' 랭킹은 4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