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스 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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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주마. 수많은 일본 경마 전문가나 팬들이 가장 많이 최약의 세대로 꼽는 2000년 클래식 세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최약의 대상 외'로 치는 경주마이기도 하다.[3]
부마 크래프티 프로스펙터는 미국에서 7승, G1에서는 2착이 최고 성적인데 그에 비해서는 종마로 미국에서 중상마들을 배출하며 나름 성과를 냈다.
모계 3대모 런어웨이 브라이드는 프랑스의 경주마로 10전 7승(G1 5승)을 기록하고 종마로도 24마리의 G1 우승마를 배출한 명마 블러싱 그룸(Blushing Groom, 父 : 레드 갓)의 모마이며 다른 모계 3대손으로 아일톤 심볼리가 있다. 모계 4대모 에이메(Aimee)의 다른 모계 5대손으로 킹 카메하메하가 있다.
주로와 거리에 따라 적성이 세분화된 현대 경마에서 보기 드문 올라운더. 중앙/지방/홍콩/두바이를 통틀어 총 11개 경마장에서 32전을 치러 G1 6승(중앙 4승, 지방 1승, 홍콩 1승)을 따낸 경주마다. 1200m~2500m까지의 경주를 소화하고 터프(잔디)든 더트(흙)든 주로도 가리지 않은 만능형. 터프와 더트 G1을 모두 우승한 최초의 경주마이기도 하다.[6] 예민하기로 유명한 서러브레드 중에선 드물게 "잠이 덜 깬 것 같다", "의욕이 있긴 한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멍청해 보일 만큼 얌전하고 느긋한 성격이었는데, 그 덕분에 국내외 여러 경마장을 전전하면서도 별 탈 없이 쉽게 적응하는 편이었지만, 반대로 이 점은 2000년 마일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까지 아그네스 디지털이 크게 활약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그 커리어는, JRA 히어로 열전에 붙은 표제 "진정한 용자는 전장을 가리지 않는다(真の勇者は、戦場を選ばない)" 그 자체다.
1세마 시즌인 1998년에 킨랜드 세일에서 와타나베 타카오에게 낙찰되어 일본으로 들여왔고, 2세(당시 3세) 시즌이었던 1999년에 시라이 토시아키 조교사의 지휘 아래 후쿠나가 유이치가 주전 기수를 맡아 한신 신마전에서 재수 끝에 통과하면서 데뷔했다. 이후 첫 잔디 오픈 경주에서 8착으로 참패하는 바람에 주전 기수가 후쿠나가 유이치에서 마토바 히토시[7] 로 교체되었고, 기수가 교체된 이후 전일본 3세 우준에서 우승하면서 지방 경마장 개최의 교류전에서 트로피를 수집하며 중앙 G1에서 우승하기 위한 기반을 착실히 다져나갔다.
이듬해인 2000년에는 첫 중앙 G1으로 NHK 마일 컵에 출전했지만 7착으로 참패했고, 지방 G1인 재팬 더트 더비에 1번 인기로 출전했지만 NHK 마일 컵보다도 순위가 낮은 13착으로 참패하는 등 크게 활약하지 못했다. 그러다 중앙 G3 더트 경주에서 레코드를 기록하며 중상의 여포로 등극했고, 마일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마토바 기수의 마지막 G1 우승을 함께하면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또한 아그네스 디지털은 주전 기수 마토바 히토시에게도 전기가 된 각별한 말이었다. 그래스 원더의 컨디션 저하와 체중 급증으로 인한 부진→퇴물 취급에 기승 의뢰 격감→전적 악화의 슬럼프가 거듭되면서 기수 커리어 자체에 위기를 맞고 있었는데, 이 말을 통해 미호 소속으로 관동 말을 주로 맡아오던 그가 관서 말을 맡으면서 저변을 넓히며 모티베이션을 유지하고 기수 커리어를 명예롭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01년 초반에 주전 기수였던 마토바 히토시가 기수에서 은퇴하고 조교사로 전향하면서 기수가 시이 히로후미로 교체되었고, 마침내 2001년 하반기부터 2002년 초반까지 최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남부배(1600m NAR(지방) 더트)-천황상 가을(2000m JRA(중앙) 터프)-홍콩 컵(2000m 홍콩 터프)-페브러리 스테이크스(2000m JRA 더트)라는 지방/중앙/홍콩과 터프/더트를 오가는 괴상한 로테이션을 모두 소화하는 것도 모자라 모두 우승했고, G1 4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게다가 이 홍콩 컵 우승은 홍콩 컵이 국제 G1으로 승격된 후 일본 조교마 최초의 우승 기록이었다. 이런 보기 드문 기록을 세운 아그네스 디지털에게 언론은 '올라운더', '만능 명마'라는 찬사를 보냈고, 경마 팬들은 경탄을 담아 변태(変態)라는 별명을 붙였다. 변태라는 말을 욕이 아니라 찬사의 의미로 듣는 유일한 경주마.
가을 천황상 출주 발표 당시까지만 해도 아그네스 디지털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당시 가을 천황상은 2000년도부터 외국산 말에 대해 2두까지 출전을 허용하고 있었는데, 2001년 가을 천황상의 외국산 말 두 자리 중 하나는 티엠 오페라 오의 숙적인 아일랜드산 말 메이쇼 도토가 일찌감치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 자리는 당년 NHK마일컵에서 강렬한 추입 퍼포먼스로 우승했던 3세마 쿠로후네의 출주가 유력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아그네스 디지털 진영의 가을 천황상 출주 선언으로 디지털에게 취득 상금에서 밀리는 쿠로후네가 출주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 상황을 본 경마 팬들은 한때 반짝했을 뿐인 마일러 더트마가 적성에도 안 맞는 중거리 경주를 욕심내서 3세 유망주의 앞길을 막았다는 식으로 비난했고, 전문가들도 과거 2000미터 이상 경주에서 뚜렷한 실적이 없었으며 후추의 도쿄 경마장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아그네스 디지털의 우승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중계 당시 아그네스 디지털이 승리한 순간 중계자가 "이 정도면 쿠로후네 진영도 납득하겠죠!"라고 말했을 정도.[8] 거기에 쿠로후네가 이룰 수 있었던 외산마 출전 제한 폐지 후 처음으로 천황상을 우승한 외산마라는 기록도 세웠다.[9]
사실 골드 쉽과 비슷하게 기복이 상당히 심했기 때문에 납득할 수 있는 비난이기는 했다. 승수도 많이 쌓았지만 연대율[10] 이 상당히 좋지 않아서 32전 12승을 쌓을 동안 2착이 5번, 3착이 4번에 불과했고 나머지 11번은 마권에 잡히지 않는 4착 이하의 성적이었으며 1번 인기로 출전했다가 두 자릿수 등수로 들어온 적도 있었던 반면 13번 인기로 출전했다가 우승한 적도 있었다. 4번 인기로 출주한 사츠키상과 7번 인기로 출주한 개선문상을 제외하고 매번 3번 인기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던 골드 쉽과 달리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도박을 금지해서 마권을 발매하지 않는 두바이를 제외한 31전 중 4번 인기 이하로 내려간 적이 14번일 정도로 그다지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첫 G1 잔디 우승이었던 마일 챔피언십이 플루크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성기가 지났다고 여겨지던 2003년에도 뜬금없이 야스다 기념에서 코스 레코드를 깨며 우승했고, 통산 G1 6승째이자 커리어 마지막 승리를 거둔 후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3번 인기 13착으로 시원하게 참패하고 그 해 연말에 은퇴했다. 아그네스 디지털의 G1 연승을 함께 했던 기수 시이 히로후미는, 마지막 G1 우승인 야스다 기념 레이스 후 "상식을 깬다고 할까, 진짜 '원더 호스'라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은퇴 후에는 빅 레드 팜으로 이동하여 씨수말로 전업했고, 만능형이었던 현역 시절 그대로 중앙과 지방 중상 경주에서 활약한 다양한 적성의 우수한 자마들을 냈다. 2021년 상반기를 끝으로 씨수말에서도 은퇴하여, 토카치 경종마 농협으로 이동해 공로마로 여생을 보냈다.
2021년 10월 30일자 영상에서 24세의 고령마임을 생각해도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야윈 모습인데다 풀을 잘 씹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서 많은 이들의 걱정을 샀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아래턱이 약해져서 평소 밥을 잘 먹지 못하던 상태에서 오랫동안 지내오던 빅 레드 팜에서 제법 거리가 떨어진 새로운 목장으로 이동하면서 얻은 스트레스+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하며 건강의 악순환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디지털보다 더 고령인 나이스 네이처, 그래스 원더, 메이쇼 도토의 비슷한 시기 모습을 봐도 디지털보다 훨씬 살이 붙어있고 풀도 잘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역 시절 적응력이 뛰어났던 걸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하고도 씁쓸한 점.
그래도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이 호전되었다고 했으나, 방목 중 사고로 안락사 조치되어 12월 8일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공식 트위터에서도 추모 트윗을 올렸다. 우마무스메 출현마중 게임판 출시 이후 가장 먼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또한, 천황상 (가을)에서 운명이 갈라졌던 상대 쿠로후네도 당년 초에 죽음을 맞았으며, 아그네스 디지털이 죽은 지 하루가 지난 12월 9일에는 아그네스 디지털의 더트마 시절 라이벌이었던 노보 트루도 죽었다.
아그네스 디지털의 죽음 이후, 은퇴마들의 은퇴 후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에 반응한 마주들도 적극적으로 근황 영상들을 SNS나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각주]
1. 개요[편집]
3개국 11개의 경마장을 누비며
3つの国と11の競馬場を駆け巡り
획득해 온 타이틀의 바리에이션은,
獲得してきたタイトルのバリエーションは、
어떤 명마의 추종도 허용하지 않는다.
どんな名馬の追随も許さない。
잔디와 더트의 벽을, 그리고 국경조차도 뛰어넘어,
芝とダートの垣根を、そして国境さえも乗り越えて、
챔피언 플래그를 휘날려 온 용사.
チャンピオンフラッグをはためかせてきた勇者。
그대가 새긴 공전의 궤적, 그 하나하나가 영원히 빛난다.
君が刻んだ空前の軌跡、そのひとつひとつが永遠に輝く。
JRA 히어로 열전
모든 것을 이 손에
소망을 묻는 질문에 그는
모든 것이라고 답했다
용사란 욕심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천부 따위를 기다리지 않는다
근력과 기교와 재주에 의지하여
전례 없는 전투를 이겨내고
찬탈하는 것에 도전한다
나아가는 길의 험난함을 알지만
그래도 여전히 돌진한다
영웅이란 파격적인 것이다
JRA 명마의 초상
일본의 경주마. 수많은 일본 경마 전문가나 팬들이 가장 많이 최약의 세대로 꼽는 2000년 클래식 세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최약의 대상 외'로 치는 경주마이기도 하다.[3]
2. 혈통[편집]
부마 크래프티 프로스펙터는 미국에서 7승, G1에서는 2착이 최고 성적인데 그에 비해서는 종마로 미국에서 중상마들을 배출하며 나름 성과를 냈다.
모계 3대모 런어웨이 브라이드는 프랑스의 경주마로 10전 7승(G1 5승)을 기록하고 종마로도 24마리의 G1 우승마를 배출한 명마 블러싱 그룸(Blushing Groom, 父 : 레드 갓)의 모마이며 다른 모계 3대손으로 아일톤 심볼리가 있다. 모계 4대모 에이메(Aimee)의 다른 모계 5대손으로 킹 카메하메하가 있다.
3. 생애[편집]
3.1. 현역[편집]
주로와 거리에 따라 적성이 세분화된 현대 경마에서 보기 드문 올라운더. 중앙/지방/홍콩/두바이를 통틀어 총 11개 경마장에서 32전을 치러 G1 6승(중앙 4승, 지방 1승, 홍콩 1승)을 따낸 경주마다. 1200m~2500m까지의 경주를 소화하고 터프(잔디)든 더트(흙)든 주로도 가리지 않은 만능형. 터프와 더트 G1을 모두 우승한 최초의 경주마이기도 하다.[6] 예민하기로 유명한 서러브레드 중에선 드물게 "잠이 덜 깬 것 같다", "의욕이 있긴 한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멍청해 보일 만큼 얌전하고 느긋한 성격이었는데, 그 덕분에 국내외 여러 경마장을 전전하면서도 별 탈 없이 쉽게 적응하는 편이었지만, 반대로 이 점은 2000년 마일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때까지 아그네스 디지털이 크게 활약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그 커리어는, JRA 히어로 열전에 붙은 표제 "진정한 용자는 전장을 가리지 않는다(真の勇者は、戦場を選ばない)" 그 자체다.
3.1.1. 1999년[편집]
1세마 시즌인 1998년에 킨랜드 세일에서 와타나베 타카오에게 낙찰되어 일본으로 들여왔고, 2세(당시 3세) 시즌이었던 1999년에 시라이 토시아키 조교사의 지휘 아래 후쿠나가 유이치가 주전 기수를 맡아 한신 신마전에서 재수 끝에 통과하면서 데뷔했다. 이후 첫 잔디 오픈 경주에서 8착으로 참패하는 바람에 주전 기수가 후쿠나가 유이치에서 마토바 히토시[7] 로 교체되었고, 기수가 교체된 이후 전일본 3세 우준에서 우승하면서 지방 경마장 개최의 교류전에서 트로피를 수집하며 중앙 G1에서 우승하기 위한 기반을 착실히 다져나갔다.
3.1.2. 2000년[편집]
이듬해인 2000년에는 첫 중앙 G1으로 NHK 마일 컵에 출전했지만 7착으로 참패했고, 지방 G1인 재팬 더트 더비에 1번 인기로 출전했지만 NHK 마일 컵보다도 순위가 낮은 13착으로 참패하는 등 크게 활약하지 못했다. 그러다 중앙 G3 더트 경주에서 레코드를 기록하며 중상의 여포로 등극했고, 마일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함과 동시에 마토바 기수의 마지막 G1 우승을 함께하면서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또한 아그네스 디지털은 주전 기수 마토바 히토시에게도 전기가 된 각별한 말이었다. 그래스 원더의 컨디션 저하와 체중 급증으로 인한 부진→퇴물 취급에 기승 의뢰 격감→전적 악화의 슬럼프가 거듭되면서 기수 커리어 자체에 위기를 맞고 있었는데, 이 말을 통해 미호 소속으로 관동 말을 주로 맡아오던 그가 관서 말을 맡으면서 저변을 넓히며 모티베이션을 유지하고 기수 커리어를 명예롭게 마무리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3.1.3. 2001~2002년[편집]
2001년 초반에 주전 기수였던 마토바 히토시가 기수에서 은퇴하고 조교사로 전향하면서 기수가 시이 히로후미로 교체되었고, 마침내 2001년 하반기부터 2002년 초반까지 최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남부배(1600m NAR(지방) 더트)-천황상 가을(2000m JRA(중앙) 터프)-홍콩 컵(2000m 홍콩 터프)-페브러리 스테이크스(2000m JRA 더트)라는 지방/중앙/홍콩과 터프/더트를 오가는 괴상한 로테이션을 모두 소화하는 것도 모자라 모두 우승했고, G1 4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게다가 이 홍콩 컵 우승은 홍콩 컵이 국제 G1으로 승격된 후 일본 조교마 최초의 우승 기록이었다. 이런 보기 드문 기록을 세운 아그네스 디지털에게 언론은 '올라운더', '만능 명마'라는 찬사를 보냈고, 경마 팬들은 경탄을 담아 변태(変態)라는 별명을 붙였다. 변태라는 말을 욕이 아니라 찬사의 의미로 듣는 유일한 경주마.
가을 천황상 출주 발표 당시까지만 해도 아그네스 디지털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당시 가을 천황상은 2000년도부터 외국산 말에 대해 2두까지 출전을 허용하고 있었는데, 2001년 가을 천황상의 외국산 말 두 자리 중 하나는 티엠 오페라 오의 숙적인 아일랜드산 말 메이쇼 도토가 일찌감치 차지하고 있었고 나머지 한 자리는 당년 NHK마일컵에서 강렬한 추입 퍼포먼스로 우승했던 3세마 쿠로후네의 출주가 유력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아그네스 디지털 진영의 가을 천황상 출주 선언으로 디지털에게 취득 상금에서 밀리는 쿠로후네가 출주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 상황을 본 경마 팬들은 한때 반짝했을 뿐인 마일러 더트마가 적성에도 안 맞는 중거리 경주를 욕심내서 3세 유망주의 앞길을 막았다는 식으로 비난했고, 전문가들도 과거 2000미터 이상 경주에서 뚜렷한 실적이 없었으며 후추의 도쿄 경마장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아그네스 디지털의 우승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었다. 오죽했으면 중계 당시 아그네스 디지털이 승리한 순간 중계자가 "이 정도면 쿠로후네 진영도 납득하겠죠!"라고 말했을 정도.[8] 거기에 쿠로후네가 이룰 수 있었던 외산마 출전 제한 폐지 후 처음으로 천황상을 우승한 외산마라는 기록도 세웠다.[9]
사실 골드 쉽과 비슷하게 기복이 상당히 심했기 때문에 납득할 수 있는 비난이기는 했다. 승수도 많이 쌓았지만 연대율[10] 이 상당히 좋지 않아서 32전 12승을 쌓을 동안 2착이 5번, 3착이 4번에 불과했고 나머지 11번은 마권에 잡히지 않는 4착 이하의 성적이었으며 1번 인기로 출전했다가 두 자릿수 등수로 들어온 적도 있었던 반면 13번 인기로 출전했다가 우승한 적도 있었다. 4번 인기로 출주한 사츠키상과 7번 인기로 출주한 개선문상을 제외하고 매번 3번 인기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던 골드 쉽과 달리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도박을 금지해서 마권을 발매하지 않는 두바이를 제외한 31전 중 4번 인기 이하로 내려간 적이 14번일 정도로 그다지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첫 G1 잔디 우승이었던 마일 챔피언십이 플루크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3.1.4. 2003년[편집]
전성기가 지났다고 여겨지던 2003년에도 뜬금없이 야스다 기념에서 코스 레코드를 깨며 우승했고, 통산 G1 6승째이자 커리어 마지막 승리를 거둔 후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3번 인기 13착으로 시원하게 참패하고 그 해 연말에 은퇴했다. 아그네스 디지털의 G1 연승을 함께 했던 기수 시이 히로후미는, 마지막 G1 우승인 야스다 기념 레이스 후 "상식을 깬다고 할까, 진짜 '원더 호스'라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3.2. 은퇴 후[편집]
은퇴 후에는 빅 레드 팜으로 이동하여 씨수말로 전업했고, 만능형이었던 현역 시절 그대로 중앙과 지방 중상 경주에서 활약한 다양한 적성의 우수한 자마들을 냈다. 2021년 상반기를 끝으로 씨수말에서도 은퇴하여, 토카치 경종마 농협으로 이동해 공로마로 여생을 보냈다.
2021년 10월 30일자 영상에서 24세의 고령마임을 생각해도 뼈가 다 보일 정도로 야윈 모습인데다 풀을 잘 씹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서 많은 이들의 걱정을 샀다. 나이가 나이다 보니 아래턱이 약해져서 평소 밥을 잘 먹지 못하던 상태에서 오랫동안 지내오던 빅 레드 팜에서 제법 거리가 떨어진 새로운 목장으로 이동하면서 얻은 스트레스+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하며 건강의 악순환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디지털보다 더 고령인 나이스 네이처, 그래스 원더, 메이쇼 도토의 비슷한 시기 모습을 봐도 디지털보다 훨씬 살이 붙어있고 풀도 잘 먹는 것을 볼 수 있다. 현역 시절 적응력이 뛰어났던 걸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하고도 씁쓸한 점.
그래도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건강이 호전되었다고 했으나, 방목 중 사고로 안락사 조치되어 12월 8일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공식 트위터에서도 추모 트윗을 올렸다. 우마무스메 출현마중 게임판 출시 이후 가장 먼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또한, 천황상 (가을)에서 운명이 갈라졌던 상대 쿠로후네도 당년 초에 죽음을 맞았으며, 아그네스 디지털이 죽은 지 하루가 지난 12월 9일에는 아그네스 디지털의 더트마 시절 라이벌이었던 노보 트루도 죽었다.
아그네스 디지털의 죽음 이후, 은퇴마들의 은퇴 후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에 반응한 마주들도 적극적으로 근황 영상들을 SNS나 유튜브에 올리기 시작했다.
4. 경주 성적[편집]
[1] 시라이 토시아키 조교사가 담당했던 다른 명마로 스페셜 위크가 있다.[일본] A B [홍콩] A B [중동] A B [A] A B C 국제 등급을 받지 못하여 일본 내에서만 인정받았던 등급이다.[B] A B C D 지방경마 통일 그레이드 경주[2] 2014년 재팬 더트 더비 우승마.[3] 같은 외산마들인 에이신 프레스턴, 탭 댄스 시티, 이글 카페, 젠노 엘 시드 등도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취급받긴 하지만 아그네스 디지털의 성적이 워낙 튀다보니 이렇게 되었다고. 2000년 클래식 세대와 엮이지 않은 해외 G1인 홍콩 컵에서 우승한 덕분이기도 하다.[4] 중상마만 서술.[5] 미국에서 생산된 일본의 경주마. 2006년 케이세이배(G3)를 우승했다.[6] 단 지방 G1을 제외한 중앙 G1으로 한정할 경우 쿠로후네가 최초고 아그네스 디지털이 2번째다.[7] 라이스 샤워의 주전 기수로 라이스의 비극적인 최후를 함께했고, 엘 콘도르 파사와 그래스 원더의 주전 기수였던 것으로 유명하다.[8] 쿠로후네는 일정이 빈 사이에 더트 경기에 보냈다가 이전까지 몰랐던 더트 적성이 발휘되어 더트 G1을 우승하는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고, 이 때 세운 코스 레코드도 2022년 현재까지 깨지지 않아 최강의 더트마 중 하나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아그네스 디지털처럼 잔디와 더트 양쪽의 G1 경기에서 우승한 명마로 이름을 떨쳤다.[9] 외산마 출전 제한 규정이 생기기 전에 천황상을 우승한 외산마가 1954년 천황상 가을 우승마 오팔 오키드, 1956년 천황상 가을 우승마 미드팜 두마리 있었다. 아그네스 디지털 이후로는 아직까지 심볼리 크리스 에스가 유일하다.[10] 경주에서 2착 이내로 들어온 비율.[11] 미국에서 생산된 일본의 경주마. 2001년 JBC 스프린트를 우승했다.[레코드] A B C D [12] 2001년에 경주마의 나이 세는 법이 현재처럼 바뀌었다.[13] 1998년 한신 3세 암말 스테이크스 우승마다.[14] 영국에서 생산된 일본의 경주마. 1999년 스프린터즈 스테이크스 우승마다.[15] 아일랜드에서 생산된 영국의 경주마. 프랑스와 영국에서 2세 G1을 하나씩 우승했다.[16] 일본의 경주마. 2001년 미나미간토 3관 + 재팬 더트 더비를 무패로 우승했다. 재팬 더트 더비 우승 이후 골절이 판명되었고 복귀한 뒤에는 예전만큼 좋은 성적을 내진 못 했다. 아비 듈랩(Doulab)은 신코 윈디의 아비기도 하다.[17] 아일랜드에서 생산된 아랍에미리트의 경주마. 이후 2002년 미국의 스티븐 포스터 핸디캡을 우승하였다.[18] 일본의 경주마. 2005년 타카마츠노미야 기념 우승마다.[19] 미국에서 생산된 일본의 경주마. 2003년 도쿄 대상전 우승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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