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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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의 대공비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로마노바
Великая княгиня Анастасия Михайловна России


파일: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jpg

이름
러시아어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로마노바
(Анастасия Михайловна Романова)
독일어
아나스타시아 미하일로브나 로마노바
(Anastasia Michailowna Romanowa)
출생
1860년 7월 28일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페테르고프 궁전
사망
1922년 3월 11일 (향년 61세)
프랑스 제3공화국 에제
배우자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
(1879년 결혼 / 1897년 사망)
자녀
알렉산드리네,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 체칠리에, 알렉시스 루이(사생아)
아버지
러시아의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
어머니
바덴의 체칠리에 공녀
형제
니콜라이, 미하일, 게오르기, 알렉산드르, 세르게이, 알렉세이
종교
러시아 정교회 (세례명: 아나스타시아)
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3.1. 조상
3.2. 자녀
4. 여담



1. 개요[편집]


러시아 제국의 황족이자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비.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바덴의 체칠리에6남 1녀[1]고명딸이자 둘째로, 니콜라이 1세의 손녀다.

외가쪽으로는 막시밀리안 폰 바덴의 고종사촌이자 막시밀리안 폰 바덴은 그의 내종생질이다.[2]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9세와 독일 왕족 호엔촐레른 가문의 수장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의 외할머니이다.

2. 생애[편집]



파일:미하일 대공부부와 장남, 장녀.jpg

부모님, 오빠와 함께 찍은 사진

파일: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_186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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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1860년 페테르고프 궁전에서 니콜라이 1세의 막내아들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올가 표도로브나 대공비[3]의 장녀로 태어났다. 애칭은 스타시(Stassie). 6남 1녀[4]고명딸로 거의 대부분의 고명딸이 그렇듯 아나스타샤도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아나스타샤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매우 엄격했기에 다정한 성격의 아나스타샤는 가족 내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참고로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유일한 아들혈우병을 고치려고 그리고리 라스푸틴을 등용했다가,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는데 한몫해서(...) 부각이 잘 안 되는데 니콜라이 1세 이래로 러시아 황실은 아들 부자들이 훨씬 더 많았다. 니콜라이 1세가 4남 4녀, 알렉산드르 2세가 6남 2녀(귀천상혼 자녀까지 합하면 8남 4녀), 알렉산드르 2세의 남동생들인 콘스탄틴 대공이 4남 2녀, 니콜라이 대공이 2남, 아나스타샤의 아버지인 미하일 대공이 6남 1녀를 두었다. 알렉산드르 2세의 차남 알렉산드르 3세가 4남 2녀, 그 밑에 동생인 블라디미르 대공이 4남 1녀를 두었으며, 콘스탄틴 대공의 차남인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대공이 슬하 6남 3녀, 그리고 아나스타샤의 셋째 남동생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이 슬하 6남 1녀를 두었다. 러시아 혁명으로 많은 황족들이 총살당했지만 자손들이 워낙 많아서 현재도 로마노프 가문의 후손들이 많이 있다.


파일:Olga_Feodorovna(_cecile_of_Baden_).jpg


파일:Grand_Duchess_Anastasia_Mikhailovna_of_Russia.jpg

왼쪽이 어머니 올가 표도로브나, 오른쪽이 아나스타샤다.
어머니 올가 표도로브나는 눈매가 쳐지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혼외자식으로 오해받기도 했는데, 아나스타샤는 어머니의 이러한 외모를 쏙 빼닮았다. 키가 크고 날씬하며 초록빛 눈동자를 가진 아나스타샤는 당시 러시아에서 보기 드문 미인이라는 평을 받았다. 지적이고 다정한 동시에 고집이 있던 아나스타샤는 대부분의 통치 가문의 딸들이 그러하듯 외국어 공부와 신부수업을 받으며 자랐다.

1879년 1월에 사촌 올케 마리야 파블로브나 대공비[5]의 오빠인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세자 프리드리히 프란츠와 결혼했다.[6] 아나스타샤는 병약하고 피부염을 앓고 있는 프리드리히 프란츠를 보고 매우 실망했다. 겨울궁전에서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수도 슈베린으로 떠났다. 아나스타샤는 보수적인 슈베린에서 지내는 걸 힘들어했다. 그리고 남편의 건강 때문에 주로 이탈리아와 남부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슈베린에 적응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남편이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로 대공이 된 후 대공 부부는 슈베린에서 지낼 것을 권고받았다. 그러나 아나스타샤는 물론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도 슈베린에서 머물고 싶어하지 않았다. 결국 1년 중 일정 기간을 슈베린에서 보내기로 합의를 본 후 대공 부부는 프랑스 파리 등 외국에서 주로 지냈다. 아나스타샤는 비교적 자유롭고 예술이 번영하고 있던 벨 에포크 시기의 프랑스를 사랑했다. 이러한 친불 성향은 후에 독일 사람들이 대공비를 싫어하게 되는 이유의 상당 부분을 일조했다.

아나스타샤는 남편을 사랑하게 되었고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엄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나스타샤는 반대로 다정한 어머니였으며, 자식들을 자유롭게 지내게 했다.

1896년에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의 건강이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그리고 1897년 4월, 담벼락 밑에서 자살로 추정되는 사인으로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가 숨을 거두었다. 외아들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가 대공이 되고 아나스타샤는 더더욱 슈베린에 머물지 않고 주로 프랑스에서 지냈다.

자유롭게 살던 아나스타샤는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팔토프라는 개인 비서와 사랑에 빠져 임신하게 되었다. 부풀어오르는 배가 종양 때문이라고 변명하며 임신 중임을 숨기던 아나스타샤는 1902년에 사생아 알렉시스 루이를 낳았다. 보통 통치 가문의 여성이 사생아를 낳으면 멀리 보내버리는데 반해 아나스타샤는 사생아 아들을 직접 키웠다.

1909년에 아나스타샤의 아버지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이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아나스타샤는 취미 생활을 하고 여행을 다니며 즐겁게 지냈다. 그러나 이러한 유유자적한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아나스타샤는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아나스타샤는 러시아의 여대공 출신이지만 동시에 독일 제국의 제후국의 대공비였으며 아들은 현 대공, 막내딸은 독일 황태자비였다.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 자신이 지내던 어디에도 갈 수 없게 되자 중립국인 스위스로 피신했다.

전쟁이 끝나고 프랑스로 밀입국해 살던 아나스타샤는 1922년에 프랑스 에제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그녀의 유해는 독일 루트비히슬루스트 궁전 영묘에 있는 남편 옆에 안장되었다.


3. 가족관계[편집]



3.1. 조상[편집]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러시아 제국
아나스타샤 미하일로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Anastasia Mikhailovna of Russia)

러시아 제국의
미하일 니콜라예비치 대공
(Grand Duke
Michael Nikolaevich of Russia)

니콜라이 1세
(Nicholas I)
파벨 1세
(Paul I)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 여공작
(Duchess Sophie Dorothea of Württemberg)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공주
(Princess Charlotte of Prussia)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Friedrich Wilhelm III)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
(Duchess Louise of Mecklenburg-Strelitz)
바덴의 체칠리에
(Princess Cecilie of Baden)
바덴 대공 레오폴트
(Leopold, Grand Duke of Baden)
바덴 대공 카를 프리드리히
(Karl Friedrich, Grand Duke of Baden)
호흐베르크의 루이즈
(Louise of Hochberg)
스웨덴의 소피아 공주
(Princess Sophie of Sweden)
구스타브 4세 아돌프
(Gustav IV Adolf)
바덴의 프리데리케 공녀
(Princess Frederica of Baden)


3.2. 자녀[편집]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3세 (Frederick Francis III, Grand Duke of Mecklenburg-Schwerin)
1녀
덴마크의 알렉산드리네 왕비
(Alexandrine, Queen of Denmark)
1879년 12월 24일
1952년 12월 28일
크리스티안 10세
슬하 2남[7]
1남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
(Frederick Francis IV, Grand Duke of Mecklenburg-Schwerin)
1882년 4월 9일
1945년 11월 17일
하노버의 알렉산드라 공주[8]
슬하 2남 3녀
2녀
독일 제국의 황태자비 체칠리에
(Cecilie, German Crown Princess)
1886년 9월 20일
1954년 5월 6일
독일 제국의 황태자 빌헬름
슬하 4남 2녀[9]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 팔토프 (Vladimir Alexandrovich Paltov)
1남
알렉시스 루이 드 벤덴
(Alexis Louis de Wenden)
1902년 12월 23일
1976년 7월 7일
팔렛 세
슬하 2녀


4. 여담[편집]


  • 도박을 즐겼다. 큰 돈을 날릴 때도 있어서 가족들에게 쓴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도박비로 자기 돈을 사용했기 때문에 사이가 틀어지지는 않았다.
  • 아들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는 독일 제후국 중 하나인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대공, 막내딸 체칠리에는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며느리였음에도 독일 내 이미지는 굉장히 안 좋았다. 상술한 친불 성향과 더불어 아나스타샤는 보수적이고 엄한 독일 사회와 맞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며, 안 그래도 독일 내에서 좋지 않았던 아나스타샤의 이미지는 사생아를 출산하면서 완전히 바닥을 치게 되었다. 때문에 아나스타샤는 자식들과 사이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는 거의 만나지 못했다.
  • 사돈인 빌헬름 2세[10] 역시 아나스타샤를 싫어해서 둘째 딸 독일 제국의 체칠리에 황태자비가 장남 빌헬름을 낳았을 때를 제외하곤 아나스타샤는 베를린을 방문하지 않았다.
  • 막내딸 체칠리에와 사생아 알렉시스 루이를 제외한 나머지 자녀들은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9세의 손주들과 결혼했다. 장녀 알렉산드리네는 크리스티안 9세의 장손 크리스티안 10세[11]과 결혼했고, 외아들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는 크리스티안 9세의 외손녀 알렉산드라와 결혼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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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자 형제만 6명인 것이 독일의 빅토리아 루이제와 똑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아나스타샤는 둘째이고, 빅토리아 루이제는 아예 막내이다.[2] 막시밀리안의 어머니이자 아나스타샤의 외숙모 마리야는 다름아닌 아버지 미하일 대공의 외조카로 아나스타샤의 고종사촌 언니이기도 하다.[3] 바덴의 체칠리에의 러시아식 이름.[4] 참고로 셋째 남동생인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이 아버지처럼 슬하 6남 1녀를 두어 형제 자매들 중 독보적으로 자녀가 많다. 사촌들 중에서는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대공이 러시아 황족 중에서 알렉산드르 미하일로비치 대공과 함께 아들을 6명을 두었다.[5] 본명은 메클렌부르크슈베린의 마리. 알렉산드르 2세의 아들 블라디미르 알렉산드로비치의 아내. 미헨이란 애칭으로 유명하다.[6] 아나스타샤와 프리드리히 프란츠는 러시아 황제 파벨 1세를 기준으로 7촌간이다. 프리드리히 프란츠의 증조할머니 옐레나 파블로브나가 아나스타샤의 친할아버지 니콜라이 1세와 남매이기 때문.[7] 프레데리크 9세 등.[8] 하노버의 왕세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덴마크의 티라의 차녀.[9] 루이 페르디난트 등.[10] 아나스타샤의 친할머니 프로이센의 샤를로테와 빌헬름 2세의 친할아버지 빌헬름 1세가 남매이니 육촌 지간이다.[11] 크리스티안 9세의 장남 프레데리크 8세의 장남. 프레데리크 8세의 아내 로비사 왕비가 아나스타샤와 육촌이다.[12] 크리스티안 9세 삼녀 덴마크의 티라의 차녀로, 아나스타샤의 큰사위 크리스티안 10세의 외사촌이다. 특히 알렉산드라의 막내 동생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루이 페르디난트의 고모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