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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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슈누 신을 보좌하는 용왕 중 한 명
2. 석가모니십대제자 중 한 명
2.1. 대중문화 속의 아난다
3. 파이브 스타 스토리의 등장인물

आनन्द
산스크리트어로 '기쁨'이라는 뜻이다.


1. 비슈누 신을 보좌하는 용왕 중 한 명[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아난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 석가모니십대제자 중 한 명[편집]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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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지혜제일 사리풋다
(사리불)
2대 신통제일 마하목갈라나
(대목건련)
3대 두타제일 마하카사파
(대가섭)
4대 해공제일 수부티
(수보리)
5대 설법제일 푸르나
(부루나)
6대 논의제일 마하카트야야나
(대가전연)
7대 천안제일 아니룻다
(아나율)
8대 지계제일 우팔리
(우바리)
9대 밀행제일 라훌라
(라후라)
10대 다문제일 아난다
(아난)



파일:석굴암 아난다.jpg

이 분은 여래를 곁에서 모신 제자이시며, 능히 부처님의 말씀과 부처님의 설법을 받아 지닌 분입니다. 그 분은 제자 중에 많이 듣기로 제일[多聞第一]인 분입니다.

-

우파급다 존자가 아쇼카 대왕에게 아난다의 사리탑을 소개하면서, 『아육왕경』 2권(ABC, K1013 v30, p.357c01)


석가모니 열반 후 초기 불교의 중요인물. '아난(阿難)'이라고도 한다. 아나율과 더불어 석가모니의 사촌형제. 고로 크샤트리아, 왕족 출신이다. '아난'은 기쁨, 환희라는 뜻이라 중국에서 '경희(慶喜)'라고 번역하기도 하였다.

인도 카필라의 승려로 늘 석가모니를 따라다니면서 시중을 들었으며, 또 가장 많은 질문을 했기 때문에 최초의 경전 결집 당시 가장 많은 가르침을 모았다고 한다. 가장 많이 들은 자라고 하여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는 호칭이 붙는다. 또한 기억력이 매우 뛰어나서 한번 보고 들은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부종륜론에 의하면 부파 불교 중 경량부는 경전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많이 전한 아난다를 크게 존중하여 '경희(아난다)를 스승을 삼는다.' 하였다.

마하가섭의 주체로 경장(석가모니의 생전 설법을 기록한 기록서)의 집필을 주도한 인물이다. 덕분에 불경에 "아난다야. 이렇다. 저렇다."하는 구절이 많이 기록되었고[1] 또한 모든 불경은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2]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석가모니의 시자로써 석가모니가 설법을 하는 모든 곳에 따라다녔고, 다른 어떤 수행보다 석가모니가 한 설법을 암송하는 수행에 매진했던 인물로서, 석가모니에게 들었던 설법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재현하여 불경을 집편하였고 전해진다.

아난다는 석가모니와 같은 석가족 출신으로, 8살에 출가한 어린 승려였다. 이후 아난다는 석가모니에게 자신의 시자가 되어 줄 것을 직접 부탁받았다. 몇 번을 거절하다가 다음의 8가지 조건이 수락되고 나서야 시자가 되었다. 8가지 조건은 4가지를 거부하고 4가지를 해달라는 것이다.
1. 붓다께서 받으신 가사(袈裟, 승려의 의복)를 주지 말 것(붓다의 후계자가 되지 않겠다, 붓다의 권위에 기대어 호가호위하지 않겠다)
1. 붓다께서 받으신 공양을 나누거나 넘겨주지 말 것(재물을 탐하지 않겠다)
1. 붓다의 처소에 같이 살게 하지 말 것(문고리 권력이 되는 것을 경계하겠다. 사적으로도 뵐 일이 없도록 하겠다.).
1. 붓다께서 초대받은 재가자의 집에 동행을 요구하지 말 것

1. 자신을 초대한 재가자의 집에는 꼭 동행해줄 것(재가자들 중에는 차마 붓다에게 직접 말을 하지 못하고 본인에게 대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달라)
1. 멀리서 붓다를 친견하러 온 재가자를 꼭 만나줄 것(늘 붓다와 함께하는 제자들과 달리 재가자는 붓다를 쉽게 만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왔다는 것은 그만큼 간절함이 크다는 것이니 그 간절함을 높이 사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1. 언제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질문할 때 답변할 것
1. 자신이 없을 때 설법하신 내용을 흔쾌히 다시 말할 것
훗날 이 8가지 조건 중 4가지의 거절은 권력자의 비서가 지켜야 할 필수 덕목 및 경계 대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25년간 석가모니의 시자였다. 또 아난다의 기억력이 한번 보고 들은 것을 절대 잊지 않는 수준인 덕에, 불멸 후 석가모니 부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아난다를 찾아오자 한번도 거절하지 않고 모두에게 법문을 암송해 주었다. "사람들에게 법문을 암송해주느라 바빠, 정작 아난다께서 본인의 수행은 하지 않는 것이 과연 잘 하는 일입니까?"라고 비난받자 수행에 매진하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석가모니의 이모이자 계모인 마하파자파티가 출가하기 위해 수백 명의 여인들과 함께 노란 가사를 입은 채 맨발로 걸어가고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할 때, 이를 가엾게 여겨 석가모니에게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달라고 청하기도 했다. 석가모니는 8가지 법을 조건으로 여성의 출가를 허가했다. 이후 마하파자바티, 그리고 석가모니의 아내 야쇼다라 둘은 비구니와 사미니 교단의 지도자로 존경받았다.

또한 석가모니가 자기 다음으로 잘생겼다고 인정한 사람이었다. 자비로움과 차가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오묘하고도 수려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마르지도 살찌지도 않은 몸매에 결가부좌를 능히 할 수 있을 만큼 긴 다리까지 황금비율의 신체로 묘사될 정도이다. 또한 태어날때부터 단정하고 아름다운 얼굴이었으며 석가모니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라고 한다. 석가모니 당시 불교승복은 한쪽 어깨를 드러내는 형태였으나, 아난다는 여성을 미혹하지 않게 양쪽 어깨를 모두 가리도록 하였다.[3] 사원에서 찹쌀떡을 사람들에게 1개씩 나눠주다가 실수로 어떤 소녀에게 2개를 주는 바람에, 다른 여자들에게 입방아에 오르기도 하였다. 이처럼 여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A] 아난다에게 반한 나머지 주술로 조종해서[4] 결혼하려다 석가모니가 주술을 없애면서 실패하고 아난다의 아내가 되기 위해 비구니가 되었는데 결국 도를 얻은 여성도 있을 정도…[5][6] 아난다의 미모에 관한 내용은 곳곳에서 언급된다.

한편 혼미한 정신으로 여인의 집에 도착한 아난은, 노골적으로 몸을 드러낸 채 한껏 치장한 젊은 여인이 자신을 맞이하자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여인의 손길은 그의 몸을 어루만지고 있었고, 아난은 어찌할 줄을 모른 채 자신을 유혹하는 여인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며 오열하였다.

“나는 어찌 이리도 가호를 받지 못해 이런 고난을 만나게 되었을까. 대자대비한 세존께서는 어찌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위호(威護)하는 마음을 내어 괴로움을 받지 않도록 하시지 않을까.”

- 마등가의 여인에게 유혹을 받으며 오열하는 아난다[A]


“그대는 아난존자의 어디가 그토록 좋은가?”

“저는 아난존자의 눈도 좋고, 코도 좋고, 입도 좋고, 귀도 좋고, 모두가 다 좋습니다.”

여인의 대답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희대의 독설로 답하셨다.

“눈에는 눈곱이 있고, 코에는 콧물이 있고, 입에는 침이 있고, 귀에는 귀지가 있고, 몸에는 피고름이 흐르는데, 그것이 좋단 말인가?”

- 석가모니 앞에서 아난다와 결혼하겠다고 고백하는 마등가의 여인과 석가모니의 대화[A]


얼굴은 맑은 보름달 같고

눈은 푸른 연꽃 같은데

불법의 큰 바닷물이

아난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 갔도다.

사람들의 마음과 눈으로 하여금

보기만 하면 크게 환희하게 하고

부처님을 뵈러 온 모든 이들

잘 인도하여 화목함을 잃지 않네.

- 아난다를 찬탄한 대지도론 게송[7]

아난다는 석가모니에게 여자의 출가를 허락하도록 설득하였는데, 석가모니의 열반 후 이것 때문에 보수적인 마하가섭에게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당연히 비구니 교단은 마하가섭보다 아난다에게 호의적이었다고 한다.[A]

석가모니 부처님이 자신의 수명을 결정할 적에, 여러 번 선문답을 던졌지만 아난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암송하느라 그 뜻을 파악하지 못했다. 입멸에 들기 전, 석가모니는 "아난다야. 네가 나에게 '입멸에 들지 말고 오래 살아주십시오.' 했으면 그러려고 했는데, 내 암시를 이해하지 못하니 나는 정해진 수명대로만 살겠다."하고 아난다에게 말했다고 전해진다.[8]

그 말을 들은 이는 아난다 자신 뿐이었음에도, 아난다는 모두에게 그 사실을 감추지 않고 전부 말해주었다고 한다. 또한 석가모니도 아난다가 모든 사실을 말할 것임을 알고, 다른 제자에게 아난다를 탓하지 말라고 미리 언질하였다고 한다.

석가모니가 불멸할 때까지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 후 계속 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사실 아난다는 석가모니의 불멸 후, 불법을 지키기 위한 제1차 결집(500결집) 전날까지도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9] 석가모니를 가장 오랫동안 모신 시자가 아난다이므로 결집을 하려면 아난다가 꼭 참가해서 법문을 암송해주어야 하는데, 그 아난다가 아라한이 아니라 자격미달[10]인지라 끼우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졌다. 본인도 걱정이 태산 같아서 밤 늦도록 경행을 하다가 지쳐 잠자리에 누웠는데, 머리가 베개에 닿는 순간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마하가섭에게 아라한이 되었음을 인정받아 겨우 결집에 참석할 수 있었다.

1차 결집 자리에서 마하가섭은 아난다의 잘못 10가지를 공개적으로 질책하였는데,[11] 이에 대해, 석가모니 열반 이후 마하가섭이 교단의 중추 자리를 놓고 아난다를 일부러 망신주며 기선제압을 한 것으로 후대에선 해석한다. 실제로 마하가섭은 교단을 이끄는 운영 방식에 있어 보수적이었고 아난다는 진보적인 인물이었는데, '아난다가 여성의 출가를 주장하여 석가모니가 억지로 이를 받아들이게 했다.'며 마하가섭은 죽는 날까지 아난다를 미워하고 싫어했다. 아난다는 교단 내에서도 나이가 아주 젊었는데, 마하가섭이 아난다가 노인이 된 후에도 어린애, 소년, 어린 놈이라고 무시하며 부르다가 아난다가 짜증을 내면서 마하가섭에게 반박한 일화가 있을 정도다. 마하가섭은 1차 결집을 주도하는 등 승단의 좌장 역할을 했지만, 이후로는 아난다가 좌장으로 역할했다고 전해진다. 중국 선종에서는 석가모니가 먼저 마하가섭에게 법을 전하였고, 다시 마하가섭이 아난다에게 전했다는 식으로 설명하지만 이는 역사 왜곡이다. 마하가섭과 아난다는 둘 다 석가모니의 십대제자로서 교단에서는 동등한 위치였다.

그 유명한 데바닷타가 그의 형이다.

석가모니의 설법을 듣는 걸 굉장히 좋아하여 이런 일화도 있다. 어느 날 아난다의 등에 종기가 생겨서 의사에게 보였더니 이 종기를 제거하려면 등을 째고 종기를 도려내야 해서 무척 고통스러울 텐데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는 의사의 이야기를 듣고, 석가모니는 '내 설법을 들을 때 뒤에서 수술하면 될 것이다'고 이르고는 설법을 시작하자, 정말로 설법이 끝날 때까지 등의 치료에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무사히 치료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삼장법사가 인도에 갔다오면서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아난다는 120살까지 살았다. 그가 열반에 들게 된 계기가 다소 블랙 코미디스럽다. 대당서역기에 따르면 어느 날 고령의 아난다가 숲속에서 어떤 사미승 한 명이 불경을 구절도 뒤엉키고 단어도 틀리게 외고 있는 것을 보고 "너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려고 했는데, 그 제자는 오히려 아난다를 보며 "다 늙으신 분이 무슨 소리를 하십니까? 우리 스승님은 아직 나이도 창창하시고, 이건 우리 스승님이 가르쳐주신 그대로 외고 있는 겁니다. 틀린 곳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아난다는 이에 "내가 비록 나이는 많이 들었지만 중생들을 위하여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면서 정법을 지키려고 하였다. 그런데 중생들의 번뇌가 무거워 가르치고 이끌기가 몹시 어렵다. 오래도록 세상에 머물러도 이로움이 없으니 빨리 멸도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자신이 더 이상 이 세상에 머무를 이유가 없겠다고 느끼고 열반을 결심했다고 한다. 강을 사이에 둔 마가다국과 비사리국 사이에 자신의 유해를 놓고 다툼이 벌어질 것 같이 되자 강 한 가운데서 공중으로 떠올라 공중에서 입적한 후 유해가 양쪽 강변으로 떨어져 내렸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었고 수행의 뒷받침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수명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석가모니는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1이라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마하가섭은 계족산 안에서 선정에 든 채로 아직도 죽지 않고 미래에 미륵불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전승도 있다. 이런 불교의 전승을 감안하여 아난다가 죽었다는 일화를 해석하면, 아난다는 어린 사미승의 이야기를 들은 뒤 (미륵불이 올 때까지, 어쩌면 그 이상도 살 수 있는데도) 겨우(?) 120살만 살고서 자기 스스로 수명을 끊었다는 뜻이 된다.

파일:봉은사_대웅전_삼세불화.jpg

불화에서는 석가모니 부처의 양쪽에 아난과 가섭이 다른 제자들보다 앞에 각각 배치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이 든 노인으로 그려지는 가섭에 비해 아난은 상대적으로 젊게 그려지곤 한다. 위 불화에서 석가모니의 왼쪽 무릎 옆에 있는 늙은 스님이 가섭, 오른쪽 무릎 옆에 있는 젊은 스님이 아난이다.

2.1. 대중문화 속의 아난다[편집]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붓다에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비뚤어져서 온갖 패악질을 저지르고 다니다 붓다의 설법에 개심해서 그의 제자가 된다. 붓다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 이곳저곳을 돌며 만났던 사람들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나며 아난다 한 사람만을 데리고 갔는데 이때 제자들에게 이유를 말하기를 "아난다는 이제 막 제자가 되어 너희와는 달리 아직 배울 것이 많아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쳐 주려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워낙 여기저기서 악명을 떨친 녀석이다보니 가는 곳마다 아난다라는 이름만 듣고 분노한 주민들이 욕하며 내쫓기 바쁜 통에 함께 있던 붓다까지 곤경에 처하기도. 작중에서는 원래 석가의 다른 제자의 한 사람인 아힘사(앙굴리말라)의 일화도 아난다의 것으로 일부 섞여 있다.

세인트☆영멘붓다는 제자인 아난다를 모티브로 성인(聖人)용 4컷 만화 <깨쳐라! 아난다>를 그렸다. 성인 한정으로 웃길 수 있는 센스라 어린 우리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천계에서는 경리담당을 하고 있고, 하계에 머무는 붓다와 예수의 지출 일부를 천계 경비로 돌려서 자금압박을 줄여주는 위엄을 보인다. 하계에 내려올 때는 선글라스와 모자를 써서 변장하는데, 그냥 다니면 여자들이 미모에 반해 홀딱 빠진다고 한다. 여성이 자신에게 반하는 것[12]을 막기 위해, 해맑은 표정으로 악담을 날리거나 음식에 얼굴을 처박는 기행을 벌이기도 한다. 붓다의 목소리를 듣는 즉시 눈물을 흘리며 오체투지하기에, 그게 아니어도 기행으로 보이긴 한다.



3. 파이브 스타 스토리의 등장인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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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 더 비숍의 파트너로 거의 유일하게 등장한 소년형 파티마. 이라 사교의 변태성을 증명하는 예라고 해야 하려나. 무법지대인 카스테포에서 아슈라 템플의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50기 이상의 MH를 파괴하는 위력을 보여줬다. 아슈라 템플의 성능 탓도 있겠지만, 이라 사교와 이 파티마의 능력도 상당히 작용했을 듯. 뮤즈 반 레이박파열의 인형에게 패해 아슈라 템플과 이라 사교를 잃고 창파티마촌에 끌려가게 된다. 주인 잘못 만나 고생하는 파티마의 대표적인 예.

창파티마촌에서 여장을 하고 손님을 받다가 크라켄 벨 메요요의 방문을 받고, 정체가 파악당하자 놀란다. 비밀을 누출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했지만, 결국 비밀 유지 때문인지 크라켄에게 살해당한다.

아이러니 한 게 그 창파티마촌에는 파르쉐트에스트도 있었는데, 크라켄이 다른 파티마는 모두 온전하게 해방시켜 준다. 아난다는 정보유출 방지 겸 유사시 자결하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은 처벌이지 다른 파티마들에게는 자상한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긴 한데, 이 때 메요요를 따라가서 아그님(프람베르쥬 템플)과 호우라이(양산형 아슈라 템플)의 완성에 참가한 에스트는 귀중한 파티마라서 그녀의 뜻에 따라 별 제재 없이 그냥 보내줬다는 걸 보면 그냥 별 기준 없이 자기 기분 따라 저지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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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보리 등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쓰인 불경도 많다.(ex. 금강경)[2] 한역(漢譯)으로는 '여시아문(如是我聞)'.[3] 실제로 석굴암에 묘사된 십대제자상을 보면 아난다는 다른 제자들과는 달리 옷깃을 세우고 있는데, 이는 그가 '꽃미남'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는 설이 있다.[A] A B C D 인용자료1 인용자료2 인용자료3[4] 이 여성의 어머니가 주술사였다는 설도 있다.[5] 석가모니가 '아난다와 결혼하고 싶으면 몇 가지 조건을 따라야 허락하겠다.'고 하였는데, 그 조건이 출가하여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이 여성은 출가한 후 결혼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6] 리하르트 바그너는 말년에 이 이야기를 소재로 승리자(Die Sieger)라는 오페라를 구상했으나 구상 단계에서 그쳤다. #[7] 대지도론의 저자는 용수보살로 석가모니 시절의 사람은 아니다. 당연히 아난다를 실물로 본 뒤에 쓴 게송은 아니다.[8] 출처: 열반경 제3장. 본 불경에서는 '악마의 홀림 때문에' 여래의 은근한 암시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나온다. 다만 80세에 열반에 들었으니 기원전 5~6세기 기준 엄청난 장수는 맞다.[9] 다른 10대 제자들은 이미 사향사과 중 아나함(불환)~아라한에 다다랐으나, 석가 사후 아난다는 아직 수다원(예류)에 머무른 상태였다고 한다.[10] 1차 결집 참가자가 되는 조건은 '아라한+석가모니의 제자'였다.[11] 제1차 결집 항목 참조.[12] 당시 아난다에 반한 여성들을 붓다가 보고 함께 수행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가, 막상 함께 수행하기 시작하니 여성들은 아난다가 붓다에게 보내는 헌신과 경애를 보고 질러버려서 번뇌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