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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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숙인 남자
(1991)
산 너머 저쪽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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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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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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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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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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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996)




MBC 주말 연속극
아들과 딸 (1992~1993)
Son and Daughter
<nopad>파일:아들과딸.jpg
방송 기간
1992년 10월 3일 ~ 1993년 5월 9일
1998년 1월 5일 ~ 1998년 4월 8일[1]
방송 시간
매주 · / 오후 08:00
방송 시간
50분
방송 횟수
64부작[2]
장르
시대극
채널
MBC
제작진
기획
최종수
극본
박진숙
연출
장수봉
조연출
오경훈
출연자
김희애, 최수종, 채시라, 오연수, 정혜선, 고두심, 백일섭, 한석규
[[영상물 등급 제도|{{{#476A4A 시청 등급 }}}]]
파일:15세 이상 시청가 아이콘.svg 15세 이상 시청가[3]
1. 소개
2. 줄거리
3. 등장인물
3.1. 그 외 조연들
4. 여담



1. 소개[편집]




MBC에서 1992년 10월 3일부터 1993년 5월 9일까지 방송된 주말 드라마.

장수봉 PD와 박진숙 작가의 다섯번째 콜라보. 당시 스타PD로 이름을 날리던 장수봉 PD는 박진숙 작가와 특집, 단막극을 포함해 8개의 작품을 같이했는데, 아들과 딸은 그 중 다섯번째 작품이다. 연출자와 작가 모두 현대극보다는 시대극에 강점을 보이는 조합으로써, 시대적 고증도 준수해 중장년층에게도 많은 호응을 받았다.

캐스팅도 화려했는데, 이른바 장수봉(+박진숙 작가)사단으로 불리우는 정혜선(본명 정영자)[4], 고두심[5][6], 김희애[7], 오연수[8] 등과 함께 최수종의 가세로 80~90년대 드라마 왕국이라 불리던 MBC의 주말 드라마다운 라인업이었다.

남아선호사상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드라마이다. 더불어 남아선호사상과 가부장제하에서 직접적으로 차별받는 여성뿐 아니라 남자다움을 강요받는 남성도 결국 피해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려 했다고. 이 의도는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귀남의 고민과 방황에서 드러난다고 볼 수 있었으며, 당시 6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과 함께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맡은 김희애는 뛰어난 연기로 1993년 MBC 연기대상백상예술대상에서 여자 최우수상과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9], 김희애 외에도 1993년 MBC 연기대상에서 최수종이 남자 최우수상, 한석규가 남자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한석규의 신인시절 출세작이기도 하다. 정혜선은 이듬해인 1994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최우수여우상을 받았다.[10]

남아선호사상의 문제는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 대 여자의 갈등 구도로 몰아간 것은 아쉬움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아버지는 착하기만 하고 무능력한 결국 큰 도움은 안되는 방관자의 역할로서만 등장하며, 귀남 역시 열폭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성격이 유약한 캐릭터라 그런지 갈등의 원인은 될지언정 본격적인 분란에서는 대부분 한 발 떨어져 있다. 물론 이러한 시각이, 남아선호사상을 여자들 스스로 대물림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비판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 드라마에서 나온 것 때문에 유행이 된 것도 많다. 후남 남매의 아버지 백일섭의 '아 글씨~' 대사는 당시에 세간의 유행어로 발전하여서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홍도야 우지마라' 노래도 동시에 주목과 화제를 낳기도 하였다. 드라마 중간에 삽입곡으로 많이 들어갔던 고전 팝송 'Evergreen'[11]도 인기를 얻었고, 안미현 역을 맡은 채시라가 신나게 돌렸던 훌라후프도 유행이 되었다.

정혜선의 후남 남매 어머니 역할도 오직 아들인 귀남에게만 지독히 편애하고 후남과 종말이에게는 냉랭하게 대하는 연기 또한 인상적이었으며. 한석규가 분한 한석호 역은 당초 문성근이 낙점되었으나 다른 드라마와의 중복 촬영 등의 이유 때문에 고사한 바 있었다. 아울러, 남자 주인공이었던 최수종은 드라마에 앞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이하 '일밤')를 91년 10월 13일부터 진행하고 있었으며 이런 이유로 무책임한 비난을 받았다. 게다가, 93년 발생한 소위 '감자골 사건' 때문에 <일밤>은 또다시 상처를 입게 되자 최수종은 93년 4월 11일 방송분을 끝으로 이경규와 동반 하차했으며 최수종에게는 <일밤>이 처음이자 마지막 MBC 고정 MC 프로그램이 되었다. 아울러, 당초 50부작으로 기획됐지만 인기에 힘입어 64부작으로 연장되었는데 그 이후 스토리의 긴장감이 조금 떨어지며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후남이 소설가로 성공하고 가족들과 화해하는 감동적인 결말에 이르러 다시 60%대로 시청률이 상승했다.


2. 줄거리[편집]


때는 1950년대 직전으로 보이는 시기 이만복의 집에서 한낮 한시에 남매둥이가 태어나고, 깨끗한 금색 강보에 싸여진 아들과 달리 남루한 검은 천에 싸여진 딸을 본 이만복 부부는 각각 아기들의 이름을 아들은 귀남이, 딸은 후남이라고 짓는다. 그러나 둘이 성장하던 있을 때 어머니는 오직 귀남이만을 편애하고 챙겨주면서 딸인 후남이는 철저히 외면하는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데....[12]


3. 등장인물[편집]


이 드라마의 주인공. 귀남과 함께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지만, 오로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한테 차별받고 자란다. 둘이 같이 태어났음에도 생일날 귀남이는 잔칫상 받아먹지만, 후남은 부엌에서 그 음식을 해댄다. 이름부터가 다음엔 꼭 아들이었으면 하는 기원을 담아 후남(後男)이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도 귀남이는 엄마 등에 업혀가고, 후남이는 걸어간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귀남이는 자전거 사주고, 후남이는 걸어다닌다.[13][14]

원래 언니와 여동생처럼 가난한 살림+성차별 때문에 고등학교에 가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전교 1등을 다투는 우수한 성적 덕분에 장학생으로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후남이가 귀남이보다 성적 좋은 걸 칭찬하기는커녕 귀남이 기를 죽이고 귀남이 앞길 막는다며 못마땅해 한다. 그러다가 귀남이는 대입시험에 떨어지는데 후남이는 식구 몰래 본 대입시험에 합격하자[15] 엄마한테 두들겨 맞으며 "자고로 한 집에 한 해 급제자 두 명 안나온다고 했다. 니가 귀남이 떨어뜨린 것이여","내 저것이 귀남이보다 먼저 나올 때부터 알아봤지. 귀남이 앞길 막을 년"이라는 악담을 듣는다.[16]같은 학교 같은 과를 본 것도 아님에도 아들이 전기대학에 떨어지고 딸인 후남이 붙은 것이 아들의 시험운을 빼앗아 갔다고 여기는 것. 그것도 모자라 집안의 돈이 없어지자 범인으로 의심받는다.

이에 열받은 후남은 가출해서 상경해 온갖 고생을 한다. 처음에는 의류공장에 다녔으나 작업반장이 추근대고, 동료 중 한명이 아플 때 (돈을 알뜰하게 모은 게 후남이 뿐이라) 불가피하게 빌려준 돈도 받지 못하고... 공장을 나와 우연히 김밥파는 아줌마를 만나 같이 지낸다. 후에 김밥 아줌마가 공사판 함바집을 맡았을 때에도 같이 일하며 지내는데, 이 과정에서 김밥아줌마 아들의 전과자 친구인 동춘이라는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하기도 하는 등, 후남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은 시청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김밥 아줌마의 함바집에서 나와 가출생활을 접고 귀남, 종말과 함께 지내게 된 이후에도, 낮에는 출판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방송통신대를 통해 공부하며 주경야독한다. 그 와중에 글을 쓰는 것도 잊지 않을 정도로 잠시도 쉬지않고 자신을 다그치지만, 그런 혹사로 결핵을 얻어 몇년간 고생한다. 그러나 고생한 보람이 있어 '현대문학'에 추천받아 등단도 하고,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로 편입해서[17] 졸업 후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일생을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을 발표해 성공하는데 그 소설의 제목이 바로 '아들과 딸'. 그리고 귀남이의 대학동창이며 현직 검사이고 엄친아인 한석호와 결혼해서 행복해진다.

마지막회에서 귀남이 부부가 딸만 낳은 문제로 엄마가 며느리에게 싫은 소리를 하자, 자신이 나서 그동안의 한을 쏟아낸다.아, 속시원해 그 일로 엄마와 화해를 하지만 화해라기에는 좀 애매하기도 했고, 또 당한 게 많아서 용서해 주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연기할 당시 30세가 넘은 나이[18]였음에도 귀남이의 고등학생 시절도 아역을 안 쓰고 직접 연기했는데, 위화감이 없다. 하긴 김희애도 후남의 고등학생 시절을 직접 연기했으니 쌍둥이끼리 동안인 셈이다.

후남이의 쌍둥이 남동생. 후남과 반대로 아들, 그것도 무려 7대(!)독자라는 이유로 엄청나게 대접받고 자랐다. 귀남(貴男)이라는 이름 자체가 귀한 남자애라는 뜻이다. 하지만 대접받고 산다고 마냥 행복하지는 않다. 몰락한 집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로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압박을 강하게 받으며 자랐고, 자기보다 뛰어나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치여사는 후남이에게도 미안함과 열등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다 커서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학교 끝나고 조금만 늦어도 학교까지 찾아오고 온 읍내를 뒤져 찾아다니는 극성맞은 어머니의 과보호속에 자란다. 게다가 본인은 어려서부터 동물을 사랑해서 수의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으나[19], 출세해서 집안을 일으켜야한다며 부모에게 법학과 진학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대학입시에서도 전기에 불합격하고 후기대학[20]에 입학한 이후에도 사법시험에 매번 불합격하며 좌절을 반복하고 자괴감에 갈등하다가 은행원이 된다.[21]

애지중지 어머니의 과보호하에 자란 것도 있지만, 지극히 보수적인 유교적 가치관으로 훈육되며 자라서 대학입학 후 미현을 포함한 여자들과의 사회관계에서도 적응에 애를 먹는다. 남자라는 이유로 부엌출입은 물론 누나들이나 여동생 방에도 일절 드나들지 못할 정도로 보수적으로 자란 탓에, 미현의 집에 놀러갔을 때, 잠시 미현과 둘만 남게 되는 상황이 오자, 아예 마당에 나와 미현의 이모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정도. 매번 집에서 왕처럼 대접받기만 하다보니 (본인이 느끼건, 느끼지 못하건) 남의 감정에 대한 공감능력이 심하게 떨어지며, 남에 대한 배려도 부족하다. 너무 과보호를 받고 자라 유약한 성격이라 진로문제 뿐 아니라 애정문제에서도 자기 뜻을 관철하지 못 한다. 후남의 펜팔친구 미현에게 호감이 있었는데, 대학생이 된 후에 어울리며 더 가까워진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의 그늘에 가려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도 못하다가 묘한 사이가 된다.[22] 하지만 미현이 아버지 없이 태어난 사생아라는 이유 등으로 엄마가 반대하여 맺어지지 못하고, 자기를 어려서부터 짝사랑한 성자와 결혼해 두 딸의 아빠가 된다. 이후 매부이자 과동기 절친인 석호가 법조계에서 잘 나가는 모습을 보고 열폭, 잘 다니던 은행을 관두고 다시 고시생이 되어서 마누라인 성자를 고생시키기도 한다.[23]

후남에게는 펜팔로 시작해서 둘도 없는 친구가 된 사람이고, 귀남에게는 첫사랑의 아쉬움으로 남은 사람.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당찬 구석이 있다. 고3 시절 비오는 날 엄마와 이모가 술에 취해 넋두리 하는 것을 보고 속상한 나머지 편지로만 연락했을 뿐 만나본 적 없는 후남이집으로 찾아간 일도 있다. 미혼모인 엄마와, 첫사랑에 상처입고 독신으로 사는 이모를 보며 자기는 남자한테 얽매여 살지 않겠다고 후남에게 말하기도 한다.

원래 기획의도였다면 미현은 귀남의 아이를 낳아 홀로 키우는 미혼모가 되어야 했다. 귀남과 함께 군복무 중인 규태를 면회갔다가 폭설로 차가 끊겨, 부대앞 구멍가게 민박에서 귀남과 하룻밤을 보내서 임신한다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까지만 해도 보수적인) 시청자들의 반대로 드라마상에서는 어쩌다 하룻밤 보냈을 뿐 다른 일은 없는 것으로 변경됐다.[24] 이 설정이 취소되면서 후반부의 채시라는 줄거리상 배역이 겉돌다가, 결국 솔로로 유학가면서 끝난다. 드라마에서 훌라후프를 신나게 돌리고, 이 때문에 당시 훌라후프가 유행하게 되었다.

이 드라마의 진정한 빌런. 쌍둥이 아들과 딸을 차별하면서 키워 모든 갈등요소를 만들어내는 인물.

6대 독자 아들 귀한 집으로 시집와 딸만 셋을 연달아 낳고 시어머니에게 심한 구박을 받은 탓에, 네번째 출산 때 아들딸 쌍둥이를 낳게 되자[25] 그동안 자신이 받은 구박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철저하게 귀남이만 위하며 후남이는 무시한다. 즉 피해자가 가해자가 된 경우로 볼 수 있다. 물론 쌍둥이의 언니이자 누나인 종숙이와 막내인 종말이도 무시하지만, 종숙이는 서글서글한 성격이고 종말이는 푼수라서 엄마의 모진 소리를 적당히 넘기기에 타격이 적다. 하지만 후남이는 진지한 성격에 능력있고 자기 주관이 강하며, 무엇보다 귀남이와 쌍둥이임에도 상대적으로 훨씬 차별받고 자란 탓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자신이 의견을 개진하면 무식한 여편네가 알지도 못하고 나선다며, 남자 하는 일에 나서지 말라고 무시하는 남편 이만복의 가부장적 태도에 매번 궁시렁거리며, 딸 종숙에게 '니 할머니가 너무 오냐오냐 키우고 아들 말이라면 다 들어줘서 니 아버지가 저렇다'고 불평하지만, 정작 자신은 귀남에게 더 심하게 집착하며 마마보이로 키우고 있는 모순적 상황을 깨닫지 못한다.

극 중 후남 아버지와 박서방이 술을 마시며 후남이 얘기를 하는데, 후남 어머니가 후남이를 미워하는 이유는 바로 귀남이보다 잘 났기 때문..'후남이가 남자로 태어났었으면 저렇게까진 하지 않았을거여..'라며 8화 이발소에서 술을 마시며 후남 아버지는 한탄을 했고, 박서방도 후남 처제는 겉보다 속이 꽉 찼다며 동감하기도 했다. 후남이 결핵에 걸렸다고 하자 "그래서 그게 나 때문이라는 거냐? 엄마한테 대드는 거 봐라? 아이고, 귀남이한테 폐병 옮기는 거 아녀?"라고 해서 사람 기막히게 하고 뒷목잡게 하는 막장 엄마. 또 후남이가 귀남이의 대학시절 친구며 사법시험에도 합격한 석호와 결혼을 한다고 할 때도 범상치 않은(...) 모습을 보인다. 다른 엄마 같으면 딸에게 좋은 신랑감이 생겼다고 쌍수 들고 환영할텐데, 이 엄마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둥, 네가 사법시험 합격한 사람과 결혼하면 귀남이 입장이 뭐가 되느냐는 둥 하며 있는대로 초를 친다. 이쯤 되면 정말 친엄마가 맞나 싶다.

뿐만 아니라 며느리로 들어온 성자에게도 독한 시어머니 노릇을 톡톡히 한다. 여자가 남편 내조에 전념해야 남편이 잘 되는 법이라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하질 않나, 딸만 둘 낳았다고 구박하질 않나.. 암튼 이 드라마의 만악의 근원..

마지막회에서 집안의 기둥이었던 귀남이의 기를 죽이지 않기 위해 딸들에게 모질게 굴었다고 눈물을 흘리며 후남이와 화해하지만, 글쎄요... 그 정도 말에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된다는게 좀...

시청자들로 하여금 진짜 살의를 느끼게 만드는 캐릭터. 원래 연기자 정혜선은 생각도 깊고 딸뻘 후배 배우들에게도 살뜰하게 대하는 좋은 선배인데, 이 드라마를 찍으면서 마음고생을 아주 많이 했다고 한다. 연기와 현실을 구분 못한 일부 시청자들의 심한 협박으로 한동안 연기활동을 접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고...

후남모의 캐릭터를 굳이 이해를 해준다면, 극중 후남모의 나이를 대충 헤아려보면, 후남의 위로 언니만 3명이라는 설정 등에 비추어 볼때, 극중 49년생 정도로 추정되는 후남의 맏언니 나이는 40년대 초중반으로 볼 수 있다. 맏딸 출생시의 후남모 나이를 20대 초 정도로 계산하면 1920년~1925년생 정도로 볼 수 있는데, 대한제국이 망하고 일제강점이 시작된 20세기 초반 출생이다. 게다가 극중 자식들에게 편지 대필을 시키는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일제강점기 소학교는 고사하고 한글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문맹으로 보인다. 근대적인 교육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우리 할머니 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26]

본명은 이만복(李萬福)으로 인간미 있지만, 능력보다 말이 앞서고 조금은 허황된 꿈을 꾸는 한량. 젊은 시절 이리저리 정치판에 기웃거리며 선거건달 소리를 들어왔으며, 그 와중에 줄도 잘 못 선것인지 매번 낙선하는 후보쪽에 붙어서 실속없이 돈과 세월만 보냈다. 이후 개인적으로도 사업수완이 없어 하는 사업마다 말아먹으며 술에 빠져 사는 한량.[27] 엄마와는 달리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으며 은근 후남의 편을 들어준다. 문제는 술만 좋아하고 가정 건사에는 크게 신경 안 쓴다는 점. 드라마에 제대로 표현되지는 않지만 이쪽도 6대독자 귀한 몸으로 자라서 책임감이 부족한 듯하고 그래서 가난한 살림을 꾸려나가야 하는 아내가 더 극성맞어진 듯.

없는 형편에도 언제나 양복에 (포장도로도 아닌 시골 흙길에) 백구두만 신고 다니며, 술에 취하거나 하면 "홍도야 우지 마라. 아 글씨! 오빠가 있다"를 심심하면 부른다. 젊은 시절 잠깐 공무원을 한 것인지 동네에선 이주사라고 불린다. 종말이 한정으로 "종말이 요년!!" 이란 대사가 있다;;

배포만 크고 실속은 없어서 사업수완도 별로 없다. 읍내에 차린 이발소도 신통치 않아 접게 되는 것을 시작으로 양조장(술도가)에서 직원으로 일하였으나, 자금난에 시달리던 구사장의 꼬드김에 이발소 처분한 돈으로 지분을 투자하여 동업자가 되고, 나중엔 사는 집 담보로 빚보증까지 서줬다가, 구사장이 부도를 내고 도주하자 사는 집까지 넘어갈 뻔했고, 심지어는 사기꾼이 주도한 부동산 사업에 끼어들다가 토지 사기죄에 연루되어 집 앞에서 기다리던 형사들에 의해 연행되어서 경찰서 유치장 신세를 지는 등...

미장원 원장이자 속물적인 여자. 자신을 배신하고 자신의 친구와 결혼한 미현 아버지와 헤어지고 홀로 미혼모로 미현을 키워왔다. 자신이 사회/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자리 잡아 성공했지만 결혼에 실패해서인지, 정작 딸 미현을 대학공부까지 시켰음에도 미현의 취업이나 자아실현보다는 미현의 결혼에만 심하게 집착한다. 미현이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부터 미현을 선자리에 내보내는 것에만 노력하며, 그 때문에 딸 미현과 갈등을 빚는다. 그러나 후남 엄마와는 대조적으로 미현이 자신의 기대와 엇나갈 때면 혼을 내면서도 대체로 딸이 원하는 것은 들어준다.

미현이 귀남과 가까워지는 것은 물론 후남과 교류하는 것도 탐탁치 않아한다. 미현과 귀남이 가까워졌을 때 귀남의 집에서도 반대했지만, 당연히 미현모 입장에서도 빠듯한 살림에 지독한 시어머니 시하의 시골출신 귀남과의 결혼을 반대한다. 다른 친정식구들은 극중 대사에 의하면 미국에 이민가서 사는 중이다.

미혼모로 딸을 혼자 키우며 살아가는 것은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도 쉽지 않은 길인데,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었던 당시 시대상을 보면 억척스레 일해서 성공한 미현 엄마의 지극히 현실적이고 속물적인 캐릭터가 어느 정도 이해되지만, 여자로서 인생의 성공 기준을 결혼에만 두고 집착하는 것을 보면 미현 엄마 역시 그 시대의 가부장제 질서를 극복하지 못한 인물이다.

미현 모녀과 함께 사는 미현의 멘토. 차분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지고 있고 미현에게는 친언니같이 잘 대해준다. 젊은 시절 사랑했던 사람을 못 잊고 그 시절 기준으로 꽤나 늦은 나이까지 미혼으로 있었는데, 결국은 다시 재회하고 결혼하게 된다.

중간에 귀남의 친구 규태가 짝사랑하는 것을 본인도 알아차리지만, 당시 사회통념상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규태와의 고궁 데이트날 선을 확실히 그으며 정리한다.

쌍둥이의 동생 종말의 친구. 귀남, 후남과 1살 차이. 1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데도 자기 막내 여동생과 동갑이라 그런지 좀처럼 자신을 여자로 봐주지 않고 어린애 취급만 하는 귀남을 어린 시절부터 줄곧 따라다니며 짝사랑한다.

꼭 귀남에 대한 짝사랑 때문이 아니더라도, 후남에 대해서도 호의적이다.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서 같이 자라며 후남의 고생을 봐와서인지 후남이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같이 걱정해주며 도움을 주기도 한다. 후남이 방통대를 졸업하고 4년제 대학에 편입할 때 학자금을 (출판사 사장 등) 이리저리 빌리러 다니며 고민할 때, 성자가 흔쾌히 큰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

부잣집 늙은 남자의 재취로 들어갔다가 과부가 된 엄마와 둘이 자라서인지, 당시 시대상에 비하면 자기주장도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쟁취하는 성격. 자신을 마냥 어린애 취급하며 무시하는 귀남의 구박에도 굴하지 않고, 귀남의 마음이 가있는 미현에 대해서도 은근히 결국 오빠는 내 남자가 될거라는 자신감을 비추며 줄기차게 대쉬해서 마침내 귀남과의 결혼에 골인한다. 하지만 결혼한 뒤엔 시어머니의 아들타령과 집안일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는 귀남의 가부장적인 태도에 큰 실망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결혼 전 미현과의 일을 다 알고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결혼 전보다 미현에 대한 질투와 귀남에 대한 의심이 커져 수시로 부부싸움을 하는 등 갈등한다.

게다가 시누이 둘과 함께 사는 본격적인 시월드(...). 후남이야 자기 일 자기가 알아서 하는 성격인데다가 올케 성자의 입장을 배려해주지만, 원래 친구였던 종말은 올케가 된 성자를 부려먹는 둥 노골적으로 시누이 노릇을 해서 갈등을 겪는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소꿉친구의 정은 있어서, 종말이가 집안에서 반대하는 연애로 고민할 때 결혼 선배로서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며 서로 다정한 미소를 나누기도. 귀남과의 결혼 후에는 딸만 둘을 낳아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기도 하고[28] 잘 다니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고시생이 되어버린 귀남이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을 한다.

극중에선 좀 푼수같은 이미지에 귀남을 짝사랑하며 들이대는 시골출신 처녀 역이라서, 귀남이 마음이 있었던 세련된 도시처녀 미현과 좀 비교되어 약간 촌스럽고 만만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담당배우가 무려 오연수인데다 극중 설정상으로도 4년제는 아니지만 나름 고등교육을 받은 키크고 몸매좋은 미인이다. 극중 전문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한 병원 영양사 출신인데다[29]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이야기가 나올 때 예선이나마 나갈 수 있기도 했고[30], 귀남이가 결국 얘 맘을 받아들이기도 한 때 자기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내용[31] 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

성자랑 성격이 비슷하다. 나이에 비해서 약간 주책맞고 철이 없다. 나이 많은 남자 재취로 들어갔다가 남편이 일찍 죽어 성자를 데리고 후남이가 사는 시골에 정착했다. 서울에서 전남편 아들들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산다. 후남 아빠에게 은근한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9화에서는 후남아빠와 같이 술을 마시다 후남 엄마에게 걸려 견제를 받는다. 어렵게 성자를 키웠건만, 시집가서 매번 아들 못 낳았다고 시어머니에게 구박받는 성자를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

극초반 입이 가볍고 동네 마실 다니며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약간 얄미운 기믹의 캐릭터였지만, 그래도 후남이네와 관련된 일에는 팔 걷어부치고 돕는 정 많은 이웃이기도 하다. 귀남이가 사법시험에 떨어져 귀남 어머니가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있을 때 위로하며 죽을 써서 가져다 주기도 하고, 구사장의 빚보증으로 귀남의 집이 넘어갈 위기에선 성자 결혼자금으로 모아 둔 목돈을 흔쾌히 빌려줘 귀남이네가 길바닥에 나 앉을 뻔한 것을 막아주기도 했다.성자는 후남이 등록금 빌려주고, 성자엄마는 후남이 친정 빚보증 해결해주었다. 사돈이 되기도 전에...

귀남의 대학 과동기 친구이자 후남의 남편.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고 자신에게 잘 대해줬던 계모에게 반항을 하는 등 나름 어두운 성장기를 거쳐서 다소 냉랭하고 건방진 성격이다.[32]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미현에게도 쌀쌀맞게 대하며 선을 딱 긋는다. 그래도 공부는 잘해서 귀남이 떨어진 사법시험도 단번에 패스한 엄친아다. 법무장교로 군복무하던 중에 우연히 책방에서 후남을 만나고 호감을 갖고 교제하다가 결혼까지 한다.

원래는 이 배역이 문성근한테 제의가 갔는데 고사해서 당시 신인이었던 한석규가 이 역을 차지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좀 차갑고 무뚝뚝하지만 마음을 준 여자 후남에게는 부드럽고 세심하게 신경쓰는, 한마디로 요즘의 차도남 + 순정남 캐릭터라 당시 여성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덕분에 원래는 후남이의 인생에 잠깐 스쳐가는 역으로 나올 예정이었지만 비중이 대폭 늘며 후남이와 결혼에 골인하는 모습까지 나왔다.배역도 위너, 배우도 위너 한석규를 대표하는 '부드러운 남자' 이미지의 시초.

후남의 셋째언니. 위의 두 언니와는 다르게 시집가서도 친정과 한 동네에서 산다. 푼수 같지만 서글서글해서 엄마의 신경질을 다 받아준다. 집안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중간에서 중재하는 역할을 맡고, 능력있지만 날개 못 펴는 동생 후남이의 처지를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역시 그 시대 통념인 남성우월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인물. 남동생인 귀남이에게는 큰 소리를 치지 못한다. 딸만 둘을 낳았지만, 더 이상 아들 출산에 연연하지 않고, 친정 어머니 몰래 영구적 피임수술을 받는다. 나중에 후남의 첫 소설인 '아들과 딸'이 출간됐을 때 종숙도 책을 받아 어머니 몰래 읽었는데, 누구보다도 후남이 고생한 걸 아는 언니라서 책을 읽을 때마다 눈물짓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종숙의 남편. 트럭을 운전해서 먹고 살며 극 후반에는 택시운전을 하기도 한다. 술 좋아하고 외도도 하고 부부싸움을 하면 욱해서 손이 올라오기도 하는 그 시대의 전형적인 보통 남자. 딸만 둘을 낳은 아내에게 별 부담을 주지도 않고 넉살이 무척 좋아 장인 장모 비위를 잘 맞춰준다.

귀남의 고교 동창이자 고향 친구. 학교 다닐 때도 공부벌레에 내성적인 귀남과 달리 체육, 특히 유도를 잘하는 열혈 체육학생이었다. 항상 어머니 치마폭에 싸여있는 귀남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차에 체육시간 축구시합에서 귀남의 실수로 패하자 폭발하여 한번 대판 붙어 싸운 적도 있지만, 일방적으로 맞으면서도 악착같이 달려드는 귀남의 근성을 발견하고 마음에 들어하면서 오히려 친구가 되었다.[33]

이후 귀남이와 함께 서울로 대학 진학을 했고, 귀남이를 통해 만난 석호와도 친구가 된다. 후남이에게도 살짝 마음이 있긴 했었지만[34], 부드러운 성품을 가진(그리고 자기보다 훨씬 연상인) 미현의 이모에게 반해서 짝사랑 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엔 고향으로 돌아가 모교의 체육선생이 되어, 자신을 어머님처럼 키워준 큰 형수님이 소개한 아가씨와 결혼해서 아들을 낳고 잘 산다. 규태의 아들을 볼 때마다 귀남 어머니는 무척 부러워하며 딸만 낳은 성자를 구박해서 성자 어머니의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극 후반에는 홀로 사는 성자 엄마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 성자 엄마도 많이 의지하게 된다.

  • 이종말(곽진영)[35]
당시 세간에서는 원래 이름이 '종남(終男)' 이라는 것에서 재미삼아 '종말(終末)' 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게 아닌가하는 추측도 있었다고 한다.

후남이네 집 막내. 밝고 명랑한 성격이지만 푼수에다 보케인데 그 수준이 성자나 종숙과는 비교가 안 될만큼 철없고 어리다. 거의 초딩 수준의 단순무식과 유아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후남의 펜팔 친구 미현이가 후남에게 선물로 보내준 잠옷을 후남이가 입기도 전에 자기 멋대로 입는가 하면, 후남이와 미현의 팬팔 관계를 부러워 해 자신도 잡지에 실린 주소에 편지를 써 월남장병과 편지를 주고받아 후남엄마에게 지청구를 먹기도 한다. 결정적으로 후남엄마가 귀남이 뒷바라지 하려고 한푼 두푼 모아 서랍속에 감춰둔 돈 중 일부를 백바지(흰색바지)를 사려고 훔쳐(...) 후남이가 누명을 뒤집어쓰고 가출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철없지만 눈치가 매우 빠르고(성자가 오빠 귀남을 짝사랑하는 것을 바로 알아챔) 자기실속을 잘 챙기며, 뒷감당은 생각도 안하고 하고싶은 것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키는 천둥벌거숭이 캐릭터.

중졸 학력이지만, 그나마 중졸만큼의 지식과 상식도 전무하다. 아주 간단한 사자성어나 영어단어도 못 알아들어 성자나 미용실 언니들한테 놀림을 당하기 일수이며,[37] 그 때마다 사람 무시하지 말라며 부들부들한다. 그러면서도 책도 좀 읽고 교양을 쌓으라는 언니 후남의 충고는 무시한다. 그럴 시간과 돈 있으면 자신은 옷 한벌 더 사입고 뭐 사먹는다고...

중학교를 졸업하고[38] 집에서 살림을 도우며 지내다가, 도회지의 삶을 막연히 동경하여, 부모에게 졸라 상경하여 미현 모의 미용실에 (미용실 쪽방에서 먹고 자는) 시다(조수)로 들어간다. 하지만 여기서도 계속 사고를 치며 극중 개그를 담당한다. 원장에게 들어온 선물을 버릇없이 자기가 포장지까지 찢어가며 먼저 열어보는 일 등은 다반사에... 도대체 뇌라는 게 있는지 모를 정도로 단순하다. 일단 '더 낳지 말자'란 뜻으로 지어진 자신의 이름부터가 콤플렉스가 있으며(그래서 펜팔을 하거나 준과 만날 때 '이현아'라는 가명을 썼다), 또 "나는 DJ랑 사귀는데 언니는 하필 변호사랑 결혼하는 바람에 날 더 힘들게 만들어"라고 투정부려서 후남을 기막히게 만들기도 했다.

귀남과 성자의 결혼 이후에도 얄미운 시누이짓만 해대며 어그로를 끌고, 성자의 옷과 구두는 대놓고 훔쳐다 입고 신고 나돌아 다니며, 후남은 바쁜 와중에도 살림에 도움을 주지만, 종말은 집에 생활비 한푼 안 내놓으며 버는 족족 준이 오빠보려고 다방에 돈 갖다바치기 바쁘다. 성자 엄마가 힘들게 해다준 밑반찬을 훔쳐 애인에게 가져다 주려다 걸리는 등 하는 짓이 발암수준. 그럼에도 양아치스러운 준과의 연애를 말리는 올케, 오빠, 언니의 충고에도 아랑곳 하지 않으며 모든 식구들이 자신을 무시하고 따돌린다고 원망만 하기 바쁘다. 멍청한데 자존심만 센 답 없는 캐릭터

종말의 애인이며 본명은 한봉팔. 느끼하게 멘트 날리는 다방 DJ로, 중졸인 종말과 비슷하게 고등학교를 중퇴한 학력에 노래도 못 부르면서 가수가 되겠다는 허황된 꿈에 빠져있는 반백수에 가까운 건달. 종말을 만나기 전 우연히 길가에서 후남 아빠 이만복에게 담뱃불 좀 빌려달라 하다가 싸움이 나서 경찰서까지 가는 헤프닝이 있었으며, 이후 종말과 함께 이만복을 처음 만날 때 양심고백하고 바로 도망가기도 한다. 마지막엔 종말과 결혼을 허락해주면 가수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장인 장모 모시고 함께 농사지으며 성실하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3.1. 그 외 조연들[편집]


후남이 서울에 올라와 일했던 공장의 선배 언니(참고로 7회 미현의 대학생활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친구로 잠깐 얼굴이 스쳐지나가는 역으로 나오기도 함). 배우 박선영의 보이쉬한 느낌에다 은근한 분위기로 레즈비언 느낌을 물씬 풍겼다. 후남에게 은근히 호감을 보이며 밤에 자고있는 후남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후미진 곳으로 후남을 불러 묘한 눈빛으로 "머릿결이 참 곱구나. 비단결같아..."하며 후남이의 손을 쓰다듬는다. 후남이는 그런 옥자의 태도에 잔뜩 겁먹어서 어쩔줄 몰라한다. 그 이전에 후남에게 치근덕대던 반장(이계인)이 자신에게 여지를 안주는 후남에게 화를 내며 옥자 조심하라는 경고를 해주는데, 순진한 후남은 왜 자신에게 잘해주는 옥자언니 뒷담화를 하냐고 따진다. 순덕이라는 공장 동료가 복통으로 병원에 가게 되자(반장이 임신시킨 것으로 나옴) 후남에게 병원비를 빌려 안 갚는 등 후남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후남이 김밥을 팔때 공장으로 찾아가자 빌린돈 일부를 돌려준다) 훗날 후남이가 쓴 소설을 읽고 감동받아서 후남이를 찾아와 사과를 하고 관계가 좋게 풀리는데, 그 때는 이미 결혼해서 애도 낳고 잘 살고 있었다.

후남이 무작정 공장을 나와 어느 골목길에서 망연자실해 있을때 넘어지려고 하던 김밥장사 아줌마를 도와주게 되고 이를 계기로 같이 살게 된다. 후남을 여러모로 도와주는 이해심 깊고 인정 많은 아주머니. 감옥에 있는 석동이란 아들때문에 마음아파한다. 남편이 죽고 너무 가난해 재혼을 했는데 재혼한 남편 자식들이 석동을 구박해 가출한 뒤 재혼한 남편도 죽자 이복형들을 찾아가 칼부림을 해서 감옥에 가게되었다. 후남이 동춘에게 몹쓸짓 당할뻔하고아파서 방에서 옴짝달싹 못할 때 후남이 친구들에게 연락해 찾아오게 만들어 준다.

  • 동춘(이은철[39])
김밥 아줌마 아들의 친구. 감옥에서 출소해 아줌마를 찾아갔다가 후남을 만나게 되고, 흑심을 품다 아줌마가 아들 면회가고 없을 때 후남을 몹쓸짓 하려다 미수에 그친다. 말투와 행동이 불량스럽다. 규태, 귀남이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후남이 찾아왔을때 규태에게 제대로 맞는다.

  • 구사장
이만복의 동네에 있는 양조장(술도가)을 운영하는 사장이며 이만복과 함께 양조장에서 동업자 역할을 하였던 적이 있지만 양조장이 부도가 나면서 잠적하여 오히려 뒷처리를 이만복에게 덮여씌우게 하였던 장본인이다. 후에 잠적했다가 이만복에게로 찾아와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게 되었다.

  • 정만수
이만복과 금전적으로 알게 된 사채업자이며 이만복과 함께 금전적인 사업을 목적으로 동업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만복에게서 돈을 빼내려고 일부러 접근한 사기꾼이며 이 때문에 이만복이 경찰서에 연행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 이만복은 그를 '정사장' 이라고 불렀다.

  • 곽영감(김하림)[40]
이만복 동네에 사는 노인으로 이만복과는 달리 건실한 인물. 농사를 지으며 양돈장도 한다. 처음에 이만복이 정만수와 동업할 때 그의 행동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이 때문에 이만복이 굉장히 불쾌해했던 노인. 하지만 이만복이 사기를 당하고나서는 관계가 회복되어서 그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 이순덕
귀남과 성자 사이에 태어나게 된 딸. 이름이 얼핏 남자같지만 사실은 여자아기이다.[41] 순덕이라는 이름은 후남 아버지 이만복이 직접 지은 이름이다. 성자는 그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 수진이라고 부르다 정혜선에게 타박을 맞는다.[42] 아직 아기라 세상물정을 모르고 자라게 되는 편이었지만 드라마 끝까지 아쉽게도 성장한 모습은 나오지 않고 영원히 아기 모습으로만 남게 되었다.





4. 여담[편집]


  • 백일섭의 '홍도야 우지마라'와 '아 글씨'라는 대사의 영향으로 드라마 주 시청층이 아니었던 어린애들(2010년대 기준의 30대들) 사이에서도 이것을 따라부르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드라마를 본 적도 없고 내용도 모르지만 그 당시 놀이터나 국민학교(초등학교)에만 봐도 '홍도야 우지마라~ 아 글씨! 오빠가 있다~'라며 따라부르는 애들이 있을 정도다. 애니메이션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실사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을 어린애들이 따라부르는 것도 신기할 일이었다. 애들 뿐 아니라 이 드라마가 방영했을 당시 아 글씨 대사는 세간에서도 주목을 받으며 유행을 탔던 대사가 되었다.[43]

  • 극중 귀남과 후남의 고향은 안개마을로만 불리고 구체적인 지방명이 언급되지는 않는데, 기차역 장면에서 소이역이 여러번 배경에 나온다. 소이역은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에 있는 충북선의 역으로 극중 귀남과 후남의 식구들이 별다른 사투리를 쓰지 않지만, 귀남 부모의 경우 "그랬슈~" 하는 충청 방언을 약하게 구사하는 장면으로 미루어[44] 충북 음성군 소이면을 배경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소이면의 경우 극중에 지속적으로 비추는 강가와 저수지 낚시터가 있다.

  • 극 초중반까지 후남과 귀남의 식구들이 서울을 오갈 때 거의 기차를 이용하지만, 극 후반 1976년 무렵이 되면 시외버스를 타고 고향을 오가는 것으로 묘사된다. 1970년대 산업화가 지속되면서 이전 철도에 비해 열악했던 도로교통이 발전되는 것을 반영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 극중 후남과 귀남의 고3시절 아버지 이만복이 선거운동을 하러 다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극중 귀남이 68학번인 설정하에) 실제로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또한 극중 이만복의 이발소 장면에 당시의 군소정당이었던 통한당(통일한국당) 후보의 포스터가 보이는데, 극중 꼭 낙선하는 후보만 따라다니며 선거건달 소리 듣는 이만복의 상황과 꼭 맞는다.

  • 귀남이 14회 사법시험을 치르는 날, 미현은 영화 '러브 스토리'를 관람하는데, 러브스토리의 한국개봉일이 1971년 12월이다. 단관개봉 시절 인기영화가 몇달동안 상영하던 것을 감안하면, 사법시험 1차 시험이 치뤄지는 2월까지 상영하던 것. 작가의 시대고증이 의외로 매우 정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영화 고증이 잘 된 장면은 극 후반에도 또 나오는데, 귀남이 성자와 결혼하기 전 1975년 무렵 영화관람 장면에서 이장호 감독의 "어제 내린 비" (윤형주의 주제가로도 유명한 영화)가 나온다. 실제로 "어제 내린 비"의 개봉연도가 1975년이다.

  • 극중 배경이 되는 요소들을 종합해보면 후남과 귀남의 출생연도는 1949년으로 추정된다. 극중 25회에서 귀남의 4학년 졸업반 직후 치르는 사법시험이 1972년 제14회 시험이다. 이를 근거로 계산하면 후남, 귀남의 출생연도는 1949년생이고 귀남, 규태, 석호, 미현의 학번은 68학번이다.

  • 극중 학교명이 언급되지는 않으나, 자취방이 명륜동이며 전기모집에 불합격해서 후기에 입학한 것으로 나온다. 이에 성균관대 법대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성대 법대는 후기 대학 중에서 점수가 제일 높았다.[45] 참고로 1972년 제14회 사법시험에서 성균관대가 합격자 순위 2위를 차지하며 선전했다.[46][47] 극중에선 이때 과동기인 석호는 합격하고 귀남은 떨어져 심하게 좌절한다.

  • 극중 미현은 숙명여대 전기입시 때 불합격 후(극중 4회중 '67 청파한울제라고 현수막이 걸려있다) 후기입시도 같은 학교 의류학과에 지원하여 합격 후 대학생활을 시작한다.(5회 숙명음악대학 숙연당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귀남의 학교가 성균관대를 모델로 하고 있는데, 성대에 의상학과도 있다. 다만, 극중 귀남, 미현의 학번은 68학번으로 보이는데, 성균관대 의상학과는 1971년에 설치되었다. 극중 남녀공학 대학임에도 불구하고, 미현의 학과생들은 모두 다 여학생들만 보이는데, 실제로 성균관대 의상학과는 당시 가정대 소속으로 (현재는 예술대학 소속) 여학생만 입학을 허용했으며, 남학생의 입학이 허용된 것은 1989년에 이르러서야 시작되었다.[48]

  • 극중 주인공들이 대학 2학년 즈음되는 시기에 미현이 석호에게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공연을 가자고 하는 에피가 나오는데, 실제로 내한공연이 1969년이었다. 주인공들의 학번인 68학번과 시기가 일치한다.

  • 극중 13화에서 귀남이 자취방 연탄가스 중독으로 앓아 눕는 에피소드 즈음 대학교들이 휴강하여 수업이 없는 것이 나오는데, 이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3선 개헌을 통해 임기를 연장하려는 데 반대하는 데모가 극심했던 시기를 그린다. 1969년 2학기 대학가는 3선 개헌 반대 데모로 대구모 휴강사태가 벌어졌으며, 이는 2년 후 1971년 교련반대 시위와 대규모 휴강사태로 이어진다.

  • 귀남이 사법시험 준비중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김민기, 양희은의 '아침 이슬'을 부르는 장면도 나오는데, 아침 이슬이 수록된 김민기 1집의 발표시기 1971년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 귀남의 1972년 14회 사법시험 응시직후 2월경 후남이 신문광고에서 방송통신대학이 설립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응시를 준비하는데, 실제로도 방송통신대는 1972년 2월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2년제 초급대학 과정. 후에 학사학위 과정으로 승격. 설립당시의 방통대는 무려 서울대학교 부설이었다. 후에 (방통대 특성상) 5년제 학사과정의 대학으로 독립하고, 92년부터 4년제 학사과정으로 개편된다.)

  • 극중 귀남의 졸업식 에피소드에서 규태는 ROTC를 마치고 임관을 앞두고 있었는데, 귀남 아버지에게 광주 보병학교에 입교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후 귀남과 미현의 면회 장면에서 규태는 전차부대의 전차장이었다. 전차부대로 임관하려면 보병학교가 아닌 기갑학교를 수료했을텐데... 아마 방송화면에서 볼거리 측면에서 화려하게 보이고 싶었던 연출상의 오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담으로 귀남과 미현이 규태의 면회를 간 장면에서 보이는 부대명은 강원도 인제의 육군 제 3005부대인데, 전차부대가 아니라 1군지사 산하의 정비대이다.

  • 극중 귀남이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68년~71년 사이인데, 귀남과 규태가 자취방에 놀러온 미현을 바래다주러 미현집에 갔다 저녁식사를 얻어먹는 장면에서 귀남과 규태가 카레라이스를 처음 접하고 잘 못 먹는 장면이 나온다. 서울과 시골의 생활상 차이가 지금보다 컸던 그 시절을 보여주는 장면. 규태는 억지로라도 먹지만, 귀남은 아예 못먹는데, 남자가 까다롭게 군다며 미현에게 구박받는 장면이 이어진다.

실제 한국에 카레라이스가 들어온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이지만, 본격적으로 가정화,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은 '1969년 오뚜기카레의 출시' 이후이다. 그 이전까지는 S&B카레 등 일제 수입카레가 있었지만, 일부 대도시 수입상품점 등에서나 유통되었으므로 시골출신 귀남과 규태가 카레라이스를 처음 먹는다는 설정은 나름 고증이 잘 된 장면.

  • 극중 귀남의 고향집에는 TV가 없어 귀남의 누나 소영이네는 성자네 집으로 마실가서 TV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TV가 매우 비싸 보급률이 낮았던 시대상을 보여주는 장면인데, 극의 주된 배경이 되는 70년대 초 가구당 TV 보급률이 6% 대에 머물던 시기였다. 이후 75년도 즈음에 가서도 가구당 30% 정도인데, 극중 서울 등 도심보다 생활수준이 열악했던 시골의 사정을 감안하면 꼼꼼한 고증이라고 볼 수 있다.

  •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로 당시의 일상사나 물가 등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꽤 있는데, 후남의 형부가 돼지고기를 사가는 장면에서 가격이 1근(600g) 220원이다. 13화에서 귀남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앓아 누웠을 때, 귀남모가 간병을 위해 상경하여 밥을 해주면서 무슨 소고기를 1근(600g)에 400원씩이나 받느냐고 투덜대는 장면도 나온다. 또한 미현의 집 담벼락에 식모 모집 전단이 붙어있는데, 식모 인건비가 숙식 포함 월 5,500원으로 나온다.[49]

  • 미현이 졸업전에 교수님들 모시고 사은회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사은회야 지금도 하는 것이지만 여학생들이 정장이 아닌 한복을 입고 치른다. 한복의 착용빈도가 지금보다 많았던 시절을 보여주는 장면이다.[50]

  • 극중 후남과 미현이 20대 중반을 넘겼을 즈음, 미현의 이모부와 저녁을 함께하는 장면에서 미현이 후남에게 "너 술 마셔본 적 없지 ?" 하며 작가라면 술도 마셔봐야 한다며 권하고 후남은 처음 술을 마셔보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의 보수적인 시대상을 반영하는 장면인데, 당시 대학을 다녔던 미현의 경우 술을 마셔봤지만, 대학생활을 뒤늦게 만학도로 시작한 후남에게는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신입생이 되면 여자도 쉽게 술자리를 접하게 되는 지금에서야 상상하기 힘들지만, 실제로 70년대까지만 해도 평범하게 자란 여자들이 술을 배우게 되는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이는 이후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여성음주도 남자와 별 차이가 없어진다. 마찬가지로 극중 여자인데도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미현모도 당시 기준으로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를 행동이었던 시절.

  • 극의 연출 측면에서 당시의 의상도 어느 정도는 시대별로 유행이 변천하는 것이 반영되는데, 극중 귀남의 대학 저학년 시절에는 헤어스타일도 짧은 머리로 나오다 70년대로 접어들면서 4학년 졸업반 시절에는 장발로 변한다. 아울러 미현과 성자도 그 즈음부터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온다.

  • 1990년대 초반 MBC 드라마들의 보존 상태가 유난히 좋지 않은 편인데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작품 중 하나다. 음성트랙에 문제가 생겨서 방영 중 경고가 뜨는 편수가 있을 정도.

[1] MBC 드라마 걸작선의 형태로 매주 평일 오전 8시 10분부터 재방영.[2] 당초 50부작으로 계획되었으나 높은 시청률로 14부 연장.[3] 본방 당시에는 시청 등급제가 없었다. 2020년 MBC ON 방영 기준.[4] 장수봉 PD, 박진숙 작가의 작품에 무려 6편이나 출연했다. "마당 깊은 집", "산너머 저쪽", "아들과 딸", "방울이"외 2편[5] 장수봉 PD + 박진숙 작가의 작품 2편 "마당 깊은 집", "산너머 저쪽" 출연, 장수봉 PD작품 "춤추는 가얏고" 등[6] 고두심은 이후 박진숙 작가의 다른 감독과의 작품에 3작품 더 출연[7] "산너머 저쪽". "나목"에 이어 장수봉 PD + 박진숙 작가와의 세번째 작품[8] 주연데뷔작 "춤추는 가얏고"에 이어 "산너머 저쪽" 이후 장수봉 PD와의 3번째 작품[9] 김희애는 그 해 '아들과 딸'외에도 최진실과 공연한 폭풍의 계절도 히트했다.[10] 반면 채시라는 "아들과 딸"에서는 아무 상도 수상하지 못했지만, 이듬해인 1994년 서울의 달로 대상을, 1995년에는 아들의 여자아파트로 역대 MBC 연기대상에서 유일무이한 대상 2년 연속 수상을 달성한다.[11] 본래 로이 오비슨이 1962년 취입한 곡이지만 이 곡은 한국에선 덜 알려졌고, 이 곡을 캐나다 무명가수 수잔 잭스가 커버한 판이 드라마에 삽입되었다. 한국에서 뒤늦게 인기를 얻었는데도 내한한 적이 없는데 그 이유는 이 노래가 본래 그녀의 노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12] 후남과 귀남의 고등학교 시절이 대체로 1960년대 후반 정도로 나온다. 드라마의 주된 배경은 전체적으로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정도의 시기로 대학생들 유신반대 투쟁 같은 일들을 추정할 수 있는 에피들도 있다.[13] 귀남과 후남의 출생 직후 마을 아낙네들의 빨래터 장면에서 한 아낙이 "아들, 딸(이란성)쌍둥이는 안 좋다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둘 중 하나는 어디 남한테 주던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아낙은 그 집에 (이란성 쌍둥이 태어났으니) 굿이나 한판 해야겠네...한다. 실제 오래전 한국사회에서는 남녀 이란성 쌍둥이는 전생에 부부의 연을 이루지 못한 연인이 쌍둥이로 태어났다는 미신/속설이 있었다. 또는 남자아이의 복을 여자아이가 다 가져가 버린다는 미신도 있었다. 이런 것을 반영하는지 그 다음 장면에서 실제로 굿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14] 쌍둥이 항목에 자세히 나오지만, 이러한 속설은 소설과 박완서의 "도시의 흉년" 등 다른 작품에도 나온다.[15] 후남이 언니 종숙이 대학진학을 간절히 원하는 후남이를 안타깝게 여겨 엄마 몰래 원서비용을 대주어 시험을 봤다.[16] 그런데 사실 저 시기에도 대학 입학을 과거 급제로 보지는 않았다. 그냥 여자는 학교 졸업 후 몇 년 정도 취업했다 결혼하면서 가정 주부가 되는 것이 평범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의사나 교사 공무원 등의 특수 직업을 제외하고는 학력 고하와 관계 없이 가정 주부가 되는 것이 대다수였기에 굳이 대학에 보낼 필요가 없어 안 보내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지금 같았으면 능히 대학에 갈 형편이 되었던 집안의 딸들 중에서도 대학 못 간 사람이 많은 것이 그 때문이다.[17] 설립 당시의 방통대는 2년제 초급대학 과정이었기 때문에 졸업후 4년제 대학에 편입해야 학사학위를 딸 수 있었다. 이후 방송대1981년 2년제에서 5년제 학사과정으로 개편한 뒤 1991년에 4년제로 개편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18] 참고로 90년대 당시 31세면 무려 현재의 40세와 비슷하다. 물론 당시 고등학생도 20대로 보이는 편이다.[19] 반려동물 문화가 생기기 전 수의사는 그야말로 동물 치료하는 의사였고, 대개는 시골에서 소 등을 고치는 일을 주로 했다. 지금의 한국에서 주로 지방거점국립대학교에 수의학과가 설립된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 당연히 인기학과도 아니었다. [20] 극중 학교명이 명시되지는 않지만, 전기모집에 불합격하고 후기에 입학하였고, 자취방이 명륜동이란 것을 보면 성균관대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임. 실제 성대 법대는 전후기 모집시절 후기대 중에서 입결이 제일 높았다. 중앙일보의 "76년도 대학신입생 대학별 학과별 예시성적" 기사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사회 283.21점, 서울대학교 인문 273.17점, 성균관대학교 법률학 272.27점, 연세대학교 경제 261.78점, 고려대학교 법학 259.12점이었다. [21] 당시 사법시험 선발인원이 60~80명 이던 시절이어서 합격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고, 서울대 법대 출신이 합격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다만 70년대 성균관대 법대는 합격자 순위에서 2등을 몇번 차지했을 정도고, 정원이 30명대 밖에 안되어서 합격률이 높은 수준이었다. 귀남은 어려운 길이지만 합격을 노려볼만한 상황이기는 했다. 실제 극중에서 과동기인 석호는 1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는데, 이때 성균관대가 합격자 순위 2위였다.[22] 귀남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 규태가 군복무 중일 때, 귀남과 미현 단 둘이서 면회갔다가 폭설에 차가 끊겨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23] 귀남은 극중에서 사법시험에 3~4년 정도 연속으로 떨어지고 그만두는데, 귀남은 7대 독자라 군면제이기 때문에 나이 등을 감안하면 다시 도전해볼 만한 나이이기는 했다.[24] 미혼모를 미화하네 어쩌네...말도 안되는 반대[25] 네번째 출산이다. 즉 후남이는 네번째 딸, 쌍둥이인 귀남이는 다섯째이다. 셋째인 종숙이 위로 두명의 언니가 또 있다. 7회에서 후남이 가출하자 식구들이 첫째에게 전화해봤냐, 둘째는 너무 먼 해남에 살아서 못 갔을 거다라고 말한다. 참고로 후남은 서울로 가출했다가 미현을 만나지 못하자 버스를 타고 둘째언니에게 간다. 하지만 둘째언니 집도 지독히 가난한데, 언니 남편은 시어머니 틀니값을 내놓으라고 막무가내로 나오고 언니는 내 이도 못하고 산다며 울부짖는다. 이에 형부는 화를 내며 언니를 때리려다 집을 박차고 나가고, 후남이는 문 밖에서 그걸 듣고 가슴 아파한다.[26] 여담이지만, 방송시기나 극중 나이대가 비슷한 전원일기 속의 일용엄니도 무학에 문맹이라는 설정이었다. 극중 일용엄니가 한글과 구구단을 배우는 에피소드가 각각 따로 나온다.[27] 10회에서 성자엄마와 함께 국밥집 간 일로 귀남모와 성자모가 싸울 때 성자엄마의 대사로 '내가 미쳤다고 백수건달, 선거건달하고 서방질 하느냐'며 핏대를 높히며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28] 이때 후남이가 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산 설움을 폭발시키며 성자와 조카딸들의 입장을 변호해줘서 후남이에게 큰 고마움을 느낌.[29] 설정상 1950년 전후 출생이라는걸 생각해보면 당시 시골출신 여자로선 드문 케이스이다. 당장 극중 동갑내기 친구 종말이는 중학교만 마쳤다. 극중 귀남모는 이웃집 성자를 보고 뭔 다 큰 처녀를 가만히 집에 두다 시집이나 보내지, 객지로 보내면서까지 대학공부 시키느냐고 빈정거린다.[30] 미용실 원장 고두심이 그런데 관심 많았던 종말이에게 넌 안 된다며 쫑크를 주다 같이 온 성자를 보며 얜 가능성이 있겠다고 권유. 근데 나중에 예선서 탈락하고 종말이에게 가끔 이걸로 놀림감이 된다.[31] 성자 엄마가 영 별로라 그렇지 성자가 괜찮은 신부감이란 이야기에 귀남이 엄마도 동의는 했다.[32] 그래도 나중에는 계모와 좋은 사이가 되었고, 계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철없던 시절 계모를 속썩인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33] 귀남이땜에 졌다고 빡쳐서 끌고가서 패거나 할 정도로 막되먹은 인성의 소유자였던 건 아니고, 그냥 너도 사내자식이냐, 엄마 치마폭 속에서 싸여있으니 뭘 하겠냐 하는 놀리면서 갈구는 것에 기분이 나빴던 귀남이, 축구하느라 늦게 오는 아들 찾으러 오는 자기 어머니를 보고는 욱하기도 하고 쪽팔리기도 해서 '너 나 좀 보자'면서 규태에게 도전했던 것.... 나중에 벼르고 있었냐는 규태의 말에 그냥 자기가 진짜 남자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했다.[34] 8화에서 귀남과 함께 가출한 후남의 이야기를 하다가 귀남이 '동성동본도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두 사람이 '동성동본' 이라는 설정으로 어차피 나중에도 이어지지 않을거라는 게 암시가 되었음. 90년대까지 동성동본은 혼인불가[35] 한석규(한석호 역)와 MBC 공채 동기다.[36] 다만 샌드위치의 경우는 정말 본 적이 없어서 그런 반응을 보였을 수도 있다. 대도시라면 몰라도 저 시대에는 빵은 몰라도 샌드위치 같은 것은 농촌에 보급되기 전이었다.[37] 성자가 난 샌드위치 신세라고 한탄할 때 샌드위치가 뭐냐고 묻고, 성자가 후남에게 석호와의 데이트에 대해 묻는데 후남이 대답을 안하자 후남에게 (응큼한 사람을 뜻하는) 크레믈린이라고 놀리지만, 종말은 당연히 그게 뭐냐하고 못 알아듣는다.[36][38] 후남이를 제외한 자매들 모두 중학교만 나왔다. 후남이도 딸이라는 이유로 고등학교에 못 갈뻔했는데 입학성적이 1등이라 장학생으로 간 것이다.[39] 제5공화국에서 삼청교육대 교관 역으로 출연[40] 야인시대고깃집 아저씨로 출연[41] 요즘은 이 이름이 하도 없거나, 있어도 70대 이상의 노년층만 있기 때문에 어떤 느낌인지 감도 안잡히겠지만 1992년 기준 순덕이라는 이름은 극중 순덕이 세대인 70년대 후반생(당시 중학생, 2023년 현재 40대 중반) 기준으로 매우 촌스러운 이름이다. 즉 그 당시 기준 30대 후반~50대의 중년층인 엄마(성자, 후남) 세대는 가야 어느정도 쓰이고 60~80대의 할머니 세대 이상부터 흔히 보인다. 즉 70년대 후반생만 되어도 시대에서 한참 벗어난 느낌을 주는 이름이 된 것...[42] 성자가 아기 이름이 순덕이 뭐냐고 남편 귀남에게 투덜대자, 귀남은 "그럼 내 이름은 귀남이 뭐냐?"고 받아치기도 했다. 귀남이라는 이름도 귀남이의 아버지 세대에 정점을 찍었긴 하지만, 남자 이름은 시대를 덜 타기 때문인데다, 1920년 전후 출생과 1950년 출생자의 이름 차이 자체가 아직 적은 것을 감안하면 1950년생에게는 다소 보이는 편이다. 굉장히 공교롭게도 이명박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이귀남 장관이 69학번으로 이 드라마에 나오는 귀남이 세대기는 하다. 그런데 성도 이씨에다 사시도 서른에 붙었는데 이거 설마...[43] 백일섭이 후에 밝히길 원래 대본에 있던 멘트는 아니었다고 밝혔다. PD가 그날 찍을 분량의 마지막이었고, 음주 후 장면이라 리얼리티도 살릴겸 막걸리를 먹자해서 촬영했다고 한다. 본인은 사실 그 노래를 잘 몰랐는데, 술김에 나온 노래에 오히려 애드리브를 넣다보니 대박이 난 케이스.[44] 충청방언 항목에서도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충남 방언과 달리 충북 음성, 괴산, 충주 지역은 억양을 제외하면 어휘상으로는 사투리라 할만한 요소가 매우 적다.[45] 중앙일보의 "76년도 대학신입생 대학별 학과별 예시성적" 기사에 따르면, 서울대학교 사회 283.21점, 서울대학교 인문 273.17점, 성균관대학교 법률학 272.27점, 연세대학교 경제 261.78점, 고려대학교 법학 259.12점이었다.[46] 참고로 성대법대 출신인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제1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바 있다.[47] 당시는 전후기로 모집하던 입시제도였고, 서울대의 위상이 절대적인 시절이었다. 이에 전기 입시에서 서울대에 지원했다 아깝게 떨어진 고득점자가 성대법대에 입학하면서, 전술된 바와 같이 연고대보다도 높은 예비고사 점수대를 형성하였다. 이에 사법시험에서도 2위를 몇번 차지할 정도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다만 1980년 이후에는 1개 대학에만 허용했던 지원을 여러 대학에 복수지원토록 하게 바뀌는 등 입시 제도가 변하였고, 성균관대 재단이었던 삼성이 분쟁으로 손을 떼면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에 따라 위와 같은 모습은 끝을 맺게 된다.[48] 극중 5회에서 미현 엄마가 미현에게 학교에 적만 두고, 재수를 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미현의 이모가 어차피 같은 전공인데 뭐하러 재수를 하느냐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같은 전공에 전기에도 의류/의상학과를 지원했다면, 미현이 전기에 지원했을만한 대학은 서울대학교나 연세대학교 또는 이화여대일 가능성이 높다.[49] 당시 농협같은 직장도 대졸신입 월급이 수당 등을 합쳐 4만원 안팍이던 시기.[50] 지금은 결혼식에서도 양가 어머니나 결혼한 여자형제 정도만 한복을 입지만, 80년대 까지만 해도 친척 어르신들이나 일반 하객중에도 여자들의 경우 정장 대신 한복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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