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항공 11편 테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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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항공 11편 테러 사건
American Airlines Flight 11

파일:4A53E6F8-AC35-4210-8546-0B2027BBBBA3.jpg
발생일
2001년 9월 11일
발생 위치
아메리칸 항공 11편 기내
제1 세계무역센터[1]
유형
하이재킹 / 자살 테러
인명피해
탑승자 87명[2] 전원 사망
제1 세계무역센터 상주자 수백여 명[3] 사망
기종
보잉 767-223ER
항공사
아메리칸 항공
기체
등록번호

N334AA
출발지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
도착 예정지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파일:426463.png
사고 23일 전 스톡홀름 알란다 국제공항에서 찍힌 해당 사고 기체
1. 개요
2. 하이재커(테러리스트)
3. 사고기 정보
4. 경과
5. 기타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아메리칸 항공 11편 테러 사건은 2001년 9월 11일 오전 8시 46분에 발생한 하이재킹 및 자살 테러[4] 사건이다.


2. 하이재커(테러리스트)[편집]


  • 모하메드 아타 محمد اعطا Mohammed Atta (당시 33세)
  • 압둘아지즈 알 오마리 عبد العزيز العمري Abdulaziz al-Omari (당시 22세)
  • 왈리드 알 셰흐리 وليد الشهري Waleed Mohammed al-Shehri (당시 23세)
  • 와일 알 셰흐리 وائل الشهري Wail Mohammed al-Shehri (당시 28세, 왈리드의 형)
  • 사탐 알 수카미 سطام السقامي Satam Muhammed Abdel al-Suqami (당시 25세)

하이재커 5명은 2001년 즈음에 미국으로 입국하였고, 그 중 한 명은 GPS를 소지하고 있었다.

3. 사고기 정보[편집]


사고 이전 댈러스 러브필드에서 택싱 중인 사고기의 모습

사고기의 등록번호는 N334AA, 기종은 보잉 767-223ER제너럴 일렉트릭 CF6-80A2 엔진 2개를 장착한 상태였다, 1987년 4월 7일에 첫 비행을 한 후 동년 4월 13일에 아메리칸 항공에 인도되었다. 사고 당시 기령은 14년 5개월이었으며 사고 발생 전까지 58,350시간을 비행했고 11,789번의 이착륙을 했다.


4. 경과[편집]


오전 5시 41분, 모하메드 아타와 측근 압둘아지즈 알 오마리는 사우스 포틀랜드에서 비행기를 타고 보스턴의 로건국제공항에 도착하여 미리 예약해 둔 아메리칸 항공 11편에 입장했다. 그리고 오전 7시 40분경 나머지 3명의 테러리스트들이 차례로 입장했다. 7시 59분에 AA11편은 탑승자 92명[5]을 태우고 평소와 다름없이 이륙을 시작했고 그때는 별 이상이 없는 듯해 보였다. 8시 13분 이전에는 AA11편과 관제탑이 정상적으로 교신하고 있었다.

오전 8시 13분경 하이재커들이 기장과 부기장, 비즈니스석 승객 1명을 찔러 죽이고 조종간을 잡았다.[6] 오전 8시 14분, 갑자기 AA11편의 연락이 끊겼다. 보스턴 항공 노선 관제 센터는 AA11편이 항로를 이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보스턴 관제소에서는 11편과 교신을 시도하지만 11편은 10분이 넘도록 응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관제사는 오전 8시 24분경 모하메드 아타가 승객들에게 경고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We have some planes. Just stay quiet and you'll be okay. We are returning to the airport.

비행기들은 우리가 접수했다. 조용히 있으면 해치지 않겠다. 공항으로 돌아가고 있다.[7]


이는 연방 항공국공군에게 보고되었지만, 납치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이었던 데다 당시까지는 미국 내에서 공중납치가 대형사고로 연결되는 일이 없었기에 큰 위협이 아니라고 보고 있었다. 그러나 AA11편의 사무장이었던 베티 옹[8]이 기내 전화로 비행기의 납치와 그 과정에서 승객이 칼에 찔렸다는 것을 알렸다. 잠시 후 AA11편은 뉴욕 상공에서 레이더에서 사라졌고, 동시에 베티 옹의 전화도 끊겼다. 녹취록 스크립트, 녹취록 듣기

결국 오전 8시 46분 30초, AA11편은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1번 타워) 93~99층을 정면 충돌하였다. 탑승자 92명은 충돌과 동시에 사망했다.[9] 이때까지 관제당국을 제외한 지상에서는 항공기가 모종의 이유로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하는 단순 대형사고인 줄 알고 있었다.





The Ginny Carr Tape[10]
Stephen McArdle's audio recording[11]




Wolfgang Staehle의 웹캠 영상[12]
WNYW 뉴스 영상[13]




Pavel Hlava의 영상[14]

jules naudet의 다큐멘터리[15]

위의 6개의 영상들이 첫 번째 충돌을 기록한 자료들이다.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된 현재와 달리 달리 20여년 전인 2001년에는 호출기와 공중전화, 필름 카메라가 주류였다. 때문에 현재라면 SNS에 실시간 중계 영상이 넘쳐났겠지만, WTC에 충돌한 AA11편의 자료는 위의 6종류만 남아 있으며 사실상 제대로 촬영된 것은 쥘 노데의 영상뿐이다. 게다가 건물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벌어진거냐 묻거나 대피를 하면서도 그저 소형 프롭기가 충돌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블랙베리처럼 스마트폰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할 제품들은 있었지만 거의 대중화되지 못했다. 거기다 사건 당시는 평일인데다 아직 무역센터가 시간대 또한 관광객들에게 개장하기 전이라 관광객들도 많지 않았다.

5. 기타[편집]


이 테러로 인해 안소니 퍼킨스의 아내이자 모델 겸 사진작가였던 베리 베렌슨[16], 그리고 당시 미국에서 프레이저 등 여러 TV 쇼로 명성이 높았던 시나리오 작가 데이비드 에인절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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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로 인해 파괴된 사고기의 잔해 중 일부는 현재 9.11 뮤지엄에 전시되어 있다.

11편이 출발했던 보스턴 로건 국제공항 B32번 보딩 브릿지에는 추모의 의미로 성조기가 올려져 있다.

세스 맥팔레인마크 월버그가 이 비행기에 탈 뻔했다. 하지만 세스는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숙취가 심해 지각해서 비행기를 놓쳤고, 마크 월버그는 비행기에 타기 전 토론토에 열리는 영화제에 가기로 일정을 바꿔서 타지 않았다.#

6.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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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여서 ‘1 WTC’라고도 부른다[2] 승객 76명, 승무원 11명. (테러리스트 5명 제외)[3] 충돌 직후의 사망자만을 기준으로 한 기록이다.[4] 아메리칸 항공 11편 기체를 납치하여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충돌하였다.[5] 92명 중 하이재커 5명, 승무원 11명을 제외하면 76명이 된다.[6] 조종석은 9.11 테러의 실질적인 핵심 인물 모하메드 아타와 그의 측근 압둘아지즈 알오마리가 맡게 되었고, 나머지 3명은 승객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7] 당시 녹취록, 이 말은 테러리스트들이 승객들에게만 들으라고 한 말이었지만, 무전기 조작 실수로 관제사가 듣게 된 것이다. 당연히 공항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8] Betty Ann Ong, 鄧月薇(한국어 한자음:등월미), 1956.2.5~2001.9.11, 광동계 화교 3세인 중국계 미국인 승무원이었다.[9]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사망했을 것이다.[10] 당시 세계무역센터에서 1블록 떨어진 곳에서 업무 회의를 녹음 중이던 Ginny Carr의 테이프이다. 37초에 첫 충돌이 녹음됐으며 7분 20초에 2번째 충돌이 녹음돼있다. [11] FBI의 정보원이었던 스티븐 맥카들이 세계무역센터 바로 아래에 있던 호텔에서 비리혐의를 받고 있던 시 공무원을 취조하면서 녹음한 테이프이다. 첫 충돌을 기록한 자료 중 가장 가까이에서 기록한 것으로 센터 내에 있던 사람들의 생생한 반응을 볼 수 있다. [12] 디지털 아티스트인 볼프강 스테흘레가 자신의 전시회 목적으로 사건 당일 아침부터 세계무역센터의 모습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한 영상이다. 다만 아쉽게도 웹캠이 4초 간격으로 촬영되는 방식이여서 제대로 된 충돌 장면은 담기지 못했다.[13] WNYW 뉴스 채널의 리포터가 생방송을 준비하면서 잠시 바닥에 내려놓은 카메라에 촬영된 충돌 장면이다. 이 역시 직접적인 충돌 장면은 촬영하지 못했지만 사고 이전 시민들의 평화로운 모습과 사고 이후 충격에 빠진 모습을 볼 수 있다.[14] 체코인인 파벨 흘라바가 브루클린-배터리 터널(Brooklyn-Battery Tunnel)에 들어서기 전 멀리 있는 세계무역센터의 모습을 담기 위해 캠코더로 촬영하다 포착한 영상이다. 정작 Pavel Hlava 본인은 매우 작은 LCD 스크린을 통해 세계무역센터를 찍고 있었기에 자신이 충돌 순간을 촬영한 걸 알아채지 못했고 몇 주뒤에 아들이 알려줘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이후 흘라바는 세계무역센터로 가서 사고 현장을 계속 촬영했으며 두번째 충돌까지 촬영하여 유일하게 2개의 충돌을 모두 촬영한 사람이 되었다.[15] 이 영상은 뉴욕시의 신참 소방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던 프랑스 출신 영화 제작자인 쥘 노데가 찍은 것으로 사실상 첫 충돌을 제대로 기록한 유일한 영상이다. 가스 냄새가 난단 이유로 출동한 소방관이 배수구 점검하고 쥘 노데는 연습을 겸해서 촬영감독 대신 현장에 동행하다 촬영한 장면으로, 아주 평화롭고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이 비행기 소리가 들리면서 테러 현장으로 화면이 바뀌기에 두 분위기가 더욱 대비된다.이 후 제작자는 소방관과 함께 현장으로 이동하게 되면서 다큐멘터리는 신참 소방관을 다루는 주제에서 9.11 테러로 방향성이 전환되었다고 한다.[16] 안소니 퍼킨스와는 이미 1992년에 사별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