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아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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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제90·96-98대 내각총리대신 배우자
일본국 제72대 내각관방장관 배우자
아베 아키에
安倍昭恵 | Abe Akie
[1]


파일:아베 아키에.jpg

출생
1962년 6월 10일 (61세)
도쿄도
활동기간
제90대 내각총리대신 배우자
2006년 9월 26일 ~ 2007년 9월 26일
제96대 내각총리대신 배우자
2012년 12월 26일 ~ 2014년 12월 23일
제97대 내각총리대신 배우자
2014년 12월 24일 ~ 2017년 10월 31일
제98대 내각총리대신 배우자
2017년 11월 1일 ~ 2020년 9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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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베 신조(배우자)(1987년 - 2022년; 사별)
마츠자키 한자부로(증조부)
마츠자키 이츠오(할아버지)
마츠자키 아키오(아버지)
마츠자키 에미코(어머니)[1]
모리나가 타이치로(외증조부)
모리나가 타헤이(외할아버지)
이케베 료(대숙부)
오카모토 타로(먼 친척)
오카모토 카노코(먼 친척)
신장
168cm[2]
학력
세이신 여학원 초등과 (졸업)
세이신 여학원 중등과 (졸업)
세이신 여학원 고등과 (졸업)
세이신 여자전문학교 (영어과 / 졸업)
릿쿄대학 대학원 (비교조직네트워크학 / 석사)

1. 개요
2. 생애
3. 논란
3.1. 덴츠 연고채용 입사 논란
3.2. 석사 논란
3.3. 불륜 논란
3.5.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중 벚꽃 놀이 논란



1. 개요[편집]


일본정치인이자 제90, 96-98대 일본 총리였던 아베 신조의 부인이다. 결혼 전 성씨는 마쓰자키(松崎). 부친은 모리나가(森永) 제과(일본 최초 제과 주식회사) 회장을 지낸 마쓰자키 아키오(松崎昭雄)다. 외가인 모리나가 가문은, 유명 제과회사인 모리나가제과의 창업주이다. 결혼 전에는 광고회사 덴츠에서 일했다.


2. 생애[편집]


남편 아베 신조와 마찬가지로, 일관제 사립학교 출신이다. 가톨릭 미션스쿨세이신 여학원에서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전문학교까지 쭉 다녔다.[2] 학창시절 공부를 못하고 노는 것을 좋아해 내부진학으로 웬만하면 가는 세이신여자대학을 못 가고 전문학교로 진학했다. 이후, 릿쿄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를 받았다. 아베 퇴임 기간 미얀마의 교육정책에 대해 석사 논문을 썼다고. 불임이라 부부 사이에 자식은 없으나, 대신 '로이'란 이름의 닥스훈트 강아지를 키운다고 한다.

하토야마 유키오의 부인 하토야마 미유키 이래로 가장 활동적인 총리 부인이다. 도쿄 금융가 뒷골목에서 우즈(소용돌이)라는 유기농 선술집도 열었으며[3], 활발한 페이스북 활동 속에 TPP나 원전 노선[4]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진정한 가정의 야당 같은 모습을 보인다고 평가받는다.# 남편과는 어느 정도 다른 정치적 입장을 보였기 때문에, 둘 사이에 갈등이 있었으며 어떨 때는 부부싸움까지 했다고 직접 고백하기도 했다.#

다만 이와 별개로 부부 관계는 크게 나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기 임기 당시엔 첫 해외 순방길에 나섰을 때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아베 신조 총리의 손을 잡는 모습이 공개돼 대중에게 신선함을 선사하기도 했다. 또 아침에 헝클어진 머리에 졸린 표정을 한 총리의 모습과 늦은 밤 소파에 앉아 파자마 차림으로 빙과류를 먹는 모습 등을 대중에 공개해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기도 했고, 한 번은 아베 신조 총리가 젓가락으로 고기 조각을 애완견에게 먹이는 사진을 아베 아키에가 게재한 적도 있었다. 정치적 의견 차이가 금슬과는 무관한 모양. 그녀의 이런 활동이 남편에게 정치적으로 도움을 주는지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적어도 남편의 강성 이미지를 완화시키는 역할은 한 것으로 보인다.

한류 팬으로 유명하다. 특히 고인이 된 박용하의 팬으로 그가 자살한 뒤 조화를 보내고 부부가 함께[5] 조문한 적도 있다. 하지만 2012년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남편의 정치적 위치 때문에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한류 드라마 시청을 끊었다고 밝혔으나[6], 한일관계가 다시 진정국면에 들어가자 다시 한류 드라마 시청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자기 페이스북에 한국 뮤지컬을 소개하고 감상한 글도 올렸다. 한일 관련 행사에도 자주 참가해 주일한국대사와도 꽤 자주 만나는 사이라고. 모 행사에선 한일관계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빛이 바래버렸다.

다만 한류 팬인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이기에 남편이 총리이며, 반한파이기에 개인 취향보다는 남편의 행보를 따라가는게 맞다는 의견도 있다.

잘 알려진 한류 팬이어서 일본 극우들로부터 조선계가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극우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아키에의 외증조부인 모리나가 제과의 창업주 모리나가 타이치로 집안은 대대로 큐슈 사가현 이마리시에서 도자기를 팔던 도매상이다. 이마리시는 대마도를 사이에 두고 부산과 마주보고 있어서 한국과 교류가 많은 데다가, '도자기'를 취급하는 것은 대대로 '조선계' 였기 때문에 이런 루머가 생긴 것.

또한 모리나가 타이치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제과기술을 배우는 동안 기독교를 믿게 되고 나중에는 일본에 복음 전도까지 하게 되는데, 일본에서는 과거 기독교 박해가 심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믿는 인구는 가톨릭정교회개신교를 다 합해도 일본 전체 인구의 1% 밖에 되지 않으며, 그 1% 마저도 대부분이 조선계이라는 편견이 있다. 왜냐하면 일본 내 조선인들은 일본의 종교인 신토를 믿고 신사참배를 하며 천황을 받드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서양의 기독교를 믿는다는 핑계로 신사 참배를 거부할 수 있었고 이 덕택에 실제로도 조선인들이 기독교를 많이 믿었기 때문이다.[7]

따라서 "모리나가 타이치로는 샌프란시스코에서 기독교를 믿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 있을 때부터 기독교를 믿은 사람이며, 이를 숨긴 이유는 조선계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라는 것이 일부 극우들의 주장이다. 아키에 역시 기독교 계열 여학교를 나왔기도 하고, 지금에도 기독교를 믿는다고 하면 조선계로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극우들은 이런 점을 들어 '아키에는 조선계라서 한류를 좋아한다'는 식의 음모론을 펼치기도 한다. 이런 식의 주장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극우적인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인 점들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의 행동들이 한국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건 남편 아베 신조의 행보가 행보인지라 총리의 부인으로서 무작정 본인의 취향만 생각 할 수 없기에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한마디로 본인의 취향과 공적인 행보는 철저하게 분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3월에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이 모여 사는 "나눔의 집"을 몰래 방문해 일본 정부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돌아간 가운데, 나눔의 집 측에서 이 관계자들에게 아키에를 초청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이 제안을 아베 부부가 어찌 생각할지는 미지수.

2015년 12월 한일 양국이 위안부 합의를 맺은 직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서, 야스쿠니 문제만큼은 아베와 같은 입장 아니냐며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물론 이에 대해 위안부 합의로 인해 뿔난 일본 내 극우들 민심 달래기용으로 아베가 아내를 야스쿠니 신사에 보낸 것이란 분석도 있지만[8], 애초에 그것부터가 잘못된 행동이긴 하다.

2022년 7월 8일, 남편 아베 신조피살 당해서 사별했다. 이때 아베 신조는 향년 67세. 이후 일본 여러 매체에 아베 신조를 만나기 위해 나라 현지의 병원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찍혔다. 오후 4시 57분에 남편이 있는 병원에 도착했지만, 불과 몇 분 뒤인 5시 3분에 남편에게 사망 선고가 내려졌다고 한다. 남편의 사망으로 자식조차 없는 외로운 말년을 보내게 되었으며, 사건 2일 전까지 남편과 애완견 산책을 하는 등 금슬이 좋은 편이었기에 충격이 크고 오래갈 것으로 보인다.

남편의 지역구였던 야마구치 4구 출마설이 나돌았으나, 본인이 전격 부인하며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게다가 아베 아키에를 태운 경호차량이 수도고속도로에서 추돌사고가 났다고 한다.#


3. 논란[편집]



3.1. 덴츠 연고채용 입사 논란[편집]


전문대학 졸업 후에 덴츠에 입사했는데, 대기업 광고계 기업에 들어간 것은 모리나가 기업이라는 대기업 자제라서 쉽게 들어갔다고 한다.

어느 나라든지 대기업은 학생이 적당히 공부해서 입사할 수 있는 곳이 절대 아니다. 다만 덴츠라는 회사가 대기업 자제들을 연고채용으로 입사시키고 커넥션을 얻으려고 하는 듯하다. # 참고로 이렇게 연고채용으로 입사한 직원들은 부모의 배경이 막강해서, 어렵거나 많은 일을 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연고채용이 아닌 방법으로 채용된 일반 사원들에게 많은 일을 시킨다고.


3.2. 석사 논란[편집]


전문대 졸인데 학사위를 가지지 않고 바로 석사학위를 따서, 일본 내에서 "어떻게 전문대졸이 학사학위를 받지 않고 석사학위를 받았냐"라는 의견이 있었지만 묻혀버렸다.


3.3. 불륜 논란[편집]


2015년 8월, 아베 아키에가 한일혼혈 출신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불륜을 저질렀다는 기사가 언론에 터져나와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일각에선 아베 신조를 보고 "국가는 커녕 가정도 제대로 못 다루는 남자"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다만, 해당 내용의 기사 이후 추가되는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볼 때 단순 해프닝 또는 찌라시일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이 사진에서는 호테이 토모야스가 일본에서는 잘 하지 않는 매너손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공식적인 자리와 사석에서의 행동이 다를 수 있겠지만 당시의 사진에서는 둘만의 은밀한 자리가 아니라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참석하고 있는 자리로 보여진다.


3.4. 드레스 코드 논란[편집]


2019년 10월, 일왕의 즉위식에서 옷차림 때문에 일본에서 큰 비난을 받았다. #국내기사 보통 일왕의 즉위식에 내빈으로 참석한 여성들은 차분한 색상의 기모노나 긴 원피스를 입는데, 아키에는 웨딩드레스를 연상시키는 순백색의 튀는 색에 무릎이 보이는 짧은 길이, 소매 통이 크고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것이다.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이 원피스의 존재감이 정말 압도적이다(..) 이때문에 “총리 부인이 TPO도 모르냐”, “무례하다, 기품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일왕과 아베 신조의 사이가 매우 나빴던것을 볼때 일왕을 무시하기 위해 일부러 저지른 행동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참고로 문제의 옷은 일본 브랜드 '쓰구에다유키에'에 주문 제작해 만든 옷이라고 한다.


3.5.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중 벚꽃 놀이 논란[편집]


2020년 3월 27일 자민당아베 신조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일본 전역 확산을 암묵적으로 주동하다 뒤늦게 바이러스 방역에 대처하는 모양새라도 보이던 도중 2019년 벚꽃을 보는 모임 논란으로 아베 부부가 끓어오르는 민심 진화에 애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아키에가 코로나 일본 확산 도중 정치인들과 벚꽃놀이를 즐겼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일본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2020년 4월 16일엔 아베 신조가 코로나 경계 발언을 한 바로 다음날 오이타현에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50명이 되는 인원을 모아서 신사 참배 및 관광을 했다는 것이 들통나서 반성은 커녕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3.6. 모리토모 학교 비리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모리토모 학교 비리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가족관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아베 신조/가족관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6 22:27:33에 나무위키 아베 아키에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입적 이전 구성(舊姓)은 마츠자키(松崎)[2] 세이신 여학원은 일본에서 가장 전통있고 귀족적인 일관제 여학교로, 시라유리 여학원에 비해 대중적 인지도는 낮지만 일제시대부터 수많은 화족 영애들이 다녔다. "미치코 황후와 대학 동문"이라는 보도도 있었으나, 미치코 황후는 4년제인 세이신여자대학 영문과 출신이고, 아키에는 2년제인 세이신여자전문학교 영어과 출신이다. 두 학교 모두 세이신여학원 소속이고, 중학교&고등학교는 같은 학교 동문이기는 하다.[3] 적자는 간신히 면하는 정도라고. 아베 신조도 "1년 해보고, 적자 내면 때려치라"고 했다는 평가다. 그런데 최근에 알려진 사실로는 남편 아베 신조와 "총리직을 수행하는 기간에는 직접 운영하지 말며, 정치인 및 이해 관계자들을 접대하지 말라"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즉, 현실 정치에 개입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국빈방문과 미셸 오바마 미국 영부인 단독 방문일 때 아베 아키에가 술집에 초대해 접대하여 약속을 깼다고 한다. 남편과 사전에 이야기가 된 문제이든 아니든 간에, 최고 권력자의 부인이 자신이 운영하는 술집에 타국 정상의 부인을 초대해 수회 술자리를 가지는 것은, 대중들 및 정치권에 부정적인 시그널과 오해를 불러오기에 충분하다.(비선실세, 막후정치, 친족정치 논란 등)[4] 해당 기사에 따르면 "한 야당 의원은 아베 신조 총리가 자신의 '이너 서클(즉, 아내 아베 아키에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에서조차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고 조롱도 했으나 아베는 웃으면서 "이 두 사람이 내 인생에서 무척 중요한 인물들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우리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보장시켜야 한다"라며 무마했다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은 이후 3년간 2,700억 달러(270조 원) 가까이 화석연료 수입에 쓰고 있다. 현실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총리 입장에서 이상론인 원전 반대보다는 현실론을 택할 수밖에 없다.[5] 현재 정치 정책과 다르게 예전의 아베는 지한파였다.[6] 당시 일본 극우들에게 SNS 테러를 무지하게 당했다.[7] 당장 도쿄나 오사카의 교회나 성당을 가도 신도들은 대부분 재일 한인이나 한국계이다.[8] 이와 관련해 남편이 아내의 소원(위안부 관련 문제 해결)을 들어주고, 아내가 남편의 소원(야스쿠니 참배) 들어주는 딜을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물론 당시 아베 총리는 협상을 담당한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에게 '반드시 최종적, 불가역적'이란 문구를 협정문에 넣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협정을 하지 않아도 좋다' 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다시 말해 아베 총리는 정말로다가 사죄의 목적으로 협정을 체결하려 한 것이 아니라, 한국이 더 이상 일본군 위안부 문제로 발목을 잡지 못하게 매듭을 지어버리기 위한 목적으로 협정을 체결하려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