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다 토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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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 토요오
芦田豊雄 | あしだ とよお

파일:asida.jpg

본명
芦田豊雄
출생
1944년 4월 21일, 일본 치바현
사망
2011년 7월 23일 (향년 67세)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학력
치바상업고등학교
소속
스튜디오 라이브

1. 개요
2. 상세
3. 대표작
4. 관련 영상
5. 제자
6. 기타



1. 개요[편집]


芦田豊雄. 일본애니메이터, 애니메이션 감독, 연출가. 이름의 토요오의 오가 장음인줄 알고 빼는 경우가 있는데. 이 사람 이름의 오는 雄를 읽은 것으로 장음이 아니므로 생략하면 안 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야마자키 제빵의 포장지 디자인 등으로 일하다가 애니메이터로 전직하여 TCJ, 무시 프로덕션을 거쳤다가 무시 프로 도산 후 동료들과 함께 프리랜서로서 활동하였다. 이때 작화감독이 참여한 작품이 우주전함 야마토. 1976년 스튜디오 라이브(スタジオライブ)라는 스튜디오를 직접 차려 경영한다. 이때 북두의 권 애니메이션의 감독을 맡으며 명성을 쌓다가 요술공주 밍키가 히트하면서 애니메이션 잡지에 고정 코너가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 애니메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은하표류 바이팜, 마신영웅전 와타루, 마동왕 그랑조트 등 히트작을 다수 배출하였다.

대표작은 요술공주 밍키, 마신영웅전 와타루가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던 슈퍼 그랑죠시간탐험대 그린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의 동기로는 신도 미츠오가 있다. 친분도 있어서 북두의 권을 만들 때는 신도의 무술 동작을 참고해서 연출과 작화를 했다고 한다. 코야마 타카오도 아시다는 디자인 능력이 천재적이고 정말 재밌는 사람이라며 아시다와 함께 작품 활동을 많이 했다고 한다.


2. 상세[편집]


파일:mk_momo.png
흔히 귀여운 캐릭터로 알려져있고, 그의 제자들도 대부분 그런 그림체로 어린이 애니메이션계에서 인기를 끌지만 북두의 권 같은 등신대가 큰 그림도 잘 그리는 사람이다. 로봇이나 전함의 작화도 가능했다. 수려한 작화는 물론 부드러운 움직임에 연출까지 다 해낸 천재.

1990년대 우츠노미야 사토루이소 미츠오를 중심으로 리얼계 작화 붐이 오기 20년도 전부터 리얼계 회전 작화를 구사하던 사람이었다. 그림이 3D처럼 자유롭게 회전을 바꾸는 움직임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작화가 전혀 무너지지 않았다. 단지 그림체가 리얼이 아니었을뿐. 회전 작화에 있어선 키가미 요시지와 함께 최고급으로 꼽히는 애니메이터이다.

그러나 화풍 변화가 굉장히 급격하며 한 번 변하면 예전 그림을 다시는 그릴 수 없게 되어 곤란했다고 한다. 예로 와타루를 그리기 시작했을 땐 이미 밍키 모모는 더 이상 그릴 수가 없게 되었다고 하며, 이 경우 새 일러스트는 제자들이 담당하였다.

상당한 독설가에 불쾌할 수 있는 섹드립을 잘했는데 여성팬이 많았기 때문에 그의 말에 환멸했다는 사람이 있기도 했지만 [1] 악의는 없고 달변가라서 대부분은 그냥 웃고 넘겼다고 한다. 글도 잘 써서 당시 애니메이션 잡지 월간 OUT 등에서 반 고정 칼럼, 잡담 코너를 가지고 독자들과 소통하거나, 다른 사람 작품을 가차없이 까기도 했다. 글을 굉장히 웃기게 쓰는 것으로 유명해서 이런 점으로도 유명세를 탔다. 제자 중 이타오카 니시키는 그의 강연이 너무 웃겨서 그의 제자가 되기로 했다고 한다. 제자 니시무라 사토시는 아시다에 대해 비트 타케시 같은 분이고 평소 "애니메이터는 연예인 같은 거니까 자기 어필을 해야한다." 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

후배들을 잘 챙기기로도 유명했으며 당시 애니메이터들은 보험에도 가입이 안 될 정도였는데 그런 게 이루어질 수 있게 협회를 만들고 지속적인 관리를 요구해 존경하는 사람도 많다. [2] 다만 그림에선 꽤 엄격해서 제자 중엔 그림 배우다가 못 버티고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2011년 세상을 떠났는데 당시 애니메이터에 대한 인식이 바닥이었던 한국에서도 추모글이 올라올 정도로 한국에서 그랑죠와 그의 그림체의 인기는 대단했다. 왜 이렇게 일찍 세상을 떠났냐고 놀란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사실 위에도 써있지만 아시다 토요오는 와타루와 그랑죠를 그릴 때는 이미 중년의 베테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와타루와 그랑죠의 작화가 매우 뛰어났던 것이고 팬들은 이별을 빠르게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선 성인 남성들에게 인기가 많지만 일본에선 오히려 아주머니 팬들이 많다. 히트작인 닥터 슬럼프와 밍키모모가 여아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한 작품이기도 했고, 이때 본 여자 아이들이 바이팜, 와타루, 그랑조트까지 쭉 이어서 팬 활동을 이어오다가 나이가 들어 가정을 이루고 아주머니가 된 것이다. 그래서 픽시브나 니코니코 동화에서는 아시다 토요오 작품에는 '아줌마 호이호이'[3]라는 태그가 달리기도 한다.

"애니메이터는 원작의 그림을 존중해서 그릴 책임이 있다. 멋대로 변형해서 그리면 안 된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으나 동시에 "왜 내가 만드는 애니는 원작자가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리는 거야!"라면서 투덜댔다고 한다. 하라 테츠오, 아마노 요시타카, 토리야마 아키라가 그린 만화 애니화를 담당했으니 욕이 절로 나올법도. 그래선지 북두의 권 이후로는 원작이 있는 애니를 담당하길 꺼렸다.

연출과 감독 활동도 했는데 연출을 할 경우 과장된 연출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해서 평이 별로 좋지 않았다. 북두의 권 극장판이나 창천항로에선 전투의 리얼리티를 살리겠다고 고어 연출을 잔뜩 넣어 욕을 먹기도 했다. 감독으로서는 별로였다. 하지만 콘티는 상당히 잘 짜기로 유명했다. 다른 사람 감독 작품에서 콘티를 담당한 에피소드는 기대해도 좋다. 그래서 애니메이터 제자도 많았지만 연출 제자도 많았다.

아시다가 애니메이션 업계에 들어 왔을 때 업계는 실사 영화의 연출을 차용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붐이 있었는데 그게 굉장히 싫었다고 한다. 현실에선 안 되고 그림으로만 되는 게 무궁무진한데 실사 연출을 도입하는 건 이해가 안 됐다고 한다. 자신은 항상 실사로는 절대 안 되는 연출을 시도했다고 한다. 자신의 특기인 회전 작화, 땅에서 위로 올려다 보는 연출은 현실에선 공간의 제약으로 하기 힘든 연출이라 자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북두의 권을 만들 때는 연출가들에게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연출을 만들어라. 뭘 해도 좋다." 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프로레슬링을 좋아했으며 프로레슬링을 보면 다각도로 그림을 그리는 공부가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스튜디오 라이브에서는 아시다 토요오, 요시마츠 타카히로, 요시카와 히로아키(吉川博明) 3인이 프로레슬링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3. 대표작[편집]




4. 관련 영상[편집]


회전에 주목하여 영상을 확인하면 특징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우주전함 야마토 OP.
작화 아시다 토요오[4]


요술공주 밍키(1982년 애니메이션) OP1
작화감독, 원화 아시다 토요오 / 원화 와타나베 히로시
11초 ~ 25초 장면과 48초부터 마지막 장면까지가 아시다 토요오 작화.


마신영웅전 와타루 OP1
작화감독 아시다 토요오

#링크
#링크
마동왕 그랑조트 소환, 변신 뱅크[5]
콘티, 연출 후쿠다 미츠오 / 작화감독 아시다 토요오


마신영웅전 와타루2 OP
콘티, 연출 히다카 마사미츠 / 캐릭터, 용 작화감독 아시다 토요오 / 메카닉 작화감독 핫토리 켄지
원화 스튜디오 라이브 (제자들)


5. 제자[편집]


작화 스튜디오 '스튜디오 라이브(スタジオ ライブ)를 운영하면서 제자를 많이 키워냈는데 애니메이션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에는 우주전함 야마토를 보고 아시다 토요오를 찾아온 남성 제자가 많았으나 1980년대 후반 부터는 대부분 여성 애니메이터였다고. 아시다 토요오의 여성 팬이 많았던 걸 실감케 한다.

나카무라 프로덕션과 반대로 스튜디오 라이브는 좋은 사람들만 있는 회사라고 하며 대부분의 제자들이 회사에 그대로 남아서 활동한다. 다른 회사에 가도 공동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태프롤에 스튜디오 라이브가 참가했다고 뜨면 작화를 보증받을 수 있다.

히카와 류스케야스다 켄지 말로는 밝고 활기찬 분위기의 회사이며 아시다의 제자는 기인이 많다고 한다. #PC로 봐야 보인. 아시다가 유머러스한 성격이라 자연히 그런 제자가 모이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니시지마 카츠히코, 야마우치 노리야스가 기인으로 유명하다.



6. 기타[편집]


  • 토리야마 아키라가 그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채색법을 바꿨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이다.
  •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오른손으론 글씨를 썼다고 한다.
  • UFO전사 다이아포론의 캐릭터 디자인을 한 것을 개인적으로 쪽팔려했지만, 한편으로는 애정도 있어서 '다이아포론 아시다'라는 가명을 쓰기도 했다.
  • 타카하시 료스케 감독과 외모가 상당히 비슷해서 농담으로 형제설이 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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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성 팬들이 팬미팅을 하러 오자 "야 예쁜애는 하나도 없구나"하는 말을 자연스럽게 했다고 한다.[2] 애니메이터의 보험 가입 허용을 원하던 그의 꿈은 2021년이 되어서야 겨우 실현되었다.[3] 바퀴벌레나 파리 잡는 끈끈이 같은 거의 일본 상표명이다.[4] 옛날 애니라 동화도 적게 사용했고 채색도 투박하지만 저 정도로 복잡한 디자인을 회전을 시킨다는 것은 애니메이터 중에서도 탑티어만 가능한 영역이다. 일본에서 야마토를 움직일 수 있는 애니메이터는 10명도 되지 않으며 최신작은 3D로 만든다.[5] 슈퍼 그랑조트나 다른 마동왕은 다른 사람들이 그렸다. 그래서 슈퍼 그랑조트의 뱅크신은 회전하는 연출이 싹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