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 8942편 우박 충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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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발생일
2006년 6월 9일
유형
기상악화, 조종사 과실
발생 위치
경기도 오산시 상공
기종
에어버스 A321-131
운영사
아시아나항공
기체 등록번호
HL7594
출발지
제주국제공항
도착지
김포국제공항
탑승인원
승객: 200명
승무원: 6명
생존자
탑승객 206명 전원 생존
1. 개요
2. 사건 전개
3. 의혹
4. 사고 조사 내용
5. 승무원 표창 논란
5.1. 진상
6. 사고 후
7. 유사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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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3년 전, 제주국제공항에서 촬영된 사고기의 사진.
사고 5개월 후, 김포국제공항에서 찍힌 사고기. 뒤에는 같은 항공사보잉 737이 날아오르고 있다.[1]



파일:attachment/아시아나 8942편 우박 충돌 사건/89421.jpg
레이더 덮개가 이탈된 사고기의 모습이다.


1. 개요[편집]


2006년 6월 9일 제주김포아시아나항공 8942편 (A321-131, HL7594) 항공기 김포공항 접근 과정에서 오산시 상공에서 우박을 동반한 대형 뇌우를 만나 조종석 및 레이돔 등이 파손되는 심각한 기체 손상이 일어난 사건.


2. 사건 전개[편집]


파일:attachment/아시아나 8942편 우박 충돌 사건/89422.jpg

오후 5시 40분 경, 제주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비행하던 아시아나항공 8942편 항공기가 김포공항 접근을 위해 강하하던 중 경기도 일죽 부근 상공에서 뇌우우박을 만나 전방부분의 레이더 덮개(레이돔)가 이탈되고 조종실 전면 방풍창이 깨졌다. 이때 자동 조종장치에도 이상이 생기며 자동 조종장치가 작동을 멈췄다. 우박을 맞은 항공기는 무려 32가지의 경고들을 ECAM 스크린에 띄워댔다.

조종사들은 속도조차 알아낼 수 없었고[2] 방풍창이 깨지며 전방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간신히 김포국제공항 인근 상공까지 도달했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아 1차 착륙때는 김포공항 활주로가 아닌 더 서쪽에 있는 계양산으로 돌진하게 되었고 이를 확인한 관제탑은 복행을 지시했다. 조종사들은 2차 착륙을 시도하며 ILS신호를 잡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ILS가 먹통이 되며 신호를 잡지 못해 또다시 복행해야했다. 설상가상 비상연료마저 동나기 직전이 되었다.

결국 서울접근관제소는 최후의 방안으로 비정밀접근절차를 수행하기로 했다. 군 관제시설에는 정밀레이더 접근[3]이 있지만 민간관제시설에는 정밀접근레이더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비정밀레이더 접근 밖에 대안이 없었다. 비정밀레이더 접근방식(no gyro, ASR접근 등)은 보통 전시에 공군 전투기가 미사일 또는 기관총에 피탄되거나 악천후로 인해 계기착륙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실시하는 절차이다. 이때 비정밀레이더접근은 관제사가 접근레이더를 확대해서 최종접근로의 중앙선을 맞추어 접근시키는 방식이다. 관제사는 약 5초에 한번씩 조종사에게 항공기 위치를 활주로 중심선 방향으로 유도하고 접근단계에 따라 일정수준의 고도강하를 조치해 착륙 활주로로 유도하는 방식이다.[4]

항공기는 세번째 접근 때 겨우 활주로를 육안으로 확인했고 무사히 김포국제공항 14R 활주로에 착륙했다. 특히 승객 중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던 리라초등학교 6학년 학생 170명과 인솔교사 7명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만약 8942편이 결국 큰 참사를 당했다면 이들은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이전까지 전대미문의 최악의 수학여행 참사희생자로 기록될 뻔 했다. 또한 대상자가 초등학생이라 더 심각했을 수도 있다. 물론 외국에서는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이 사고로 기체의 일부가 파손되었지만, 승객 및 승무원 전원이 생존. 각 언론들과 여론이 천재지변의 위기상황에서 적절히 대응한 조종사를 찬사했으나...


3. 의혹[편집]


항공기 레이더는 우박 등 강수현상을 사전에 충분히 포착할 수 있으며, 이 경우 10~20마일 정도 거리를 두고 회피비행을 해 항공기의 안전을 확보하도록 하고 있어, 사고 항공기가 회피비행[5]을 했는데도 사고가 일어났다면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고를 겪은 제주김포아시아나항공 8942편 항공기 조종사는 경기도 오산 상공에서 강한 폭풍우나 우박과 천둥번개를 품고 있는 대규모 적란운을 미리 발견했고, 회피비행을 시도했음에도 강한 우박과 번개를 피하지 못했던 것.

사고 시각을 전후로 같은 항로를 비행한 4편 이상의 다른 항공기들은 모두 회피비행을 통해 이 적란운을 20마일씩 돌아서 안전하게 운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중에는 아예 오산 VOR에서 바로 부천 쪽으로 레이더 벡터를 해서 김포의 경우 14R 활주로로 유도했다.[6] 기상청 확인 결과, 당시 사고 항로 상에는 오후 3시 45분 즈음부터 적란운이 높이 10㎞가량으로 거대하게 형성돼 있었으며, 이것은 항공기에 장착된 기상 레이더나 조종사의 육안으로 쉽게 확인이 되는 상황이었다. 즉, 다시 말해 조종사의 부주의가 제기되었다. 문제는 다들 확인하고 피해가는데 이 비행기만 거기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4. 사고 조사 내용[편집]


사고조사는 국제민간항공조약에 의거하여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사고 발생 접수 즉시 운항, 관제, 기상, 기체 등 분야 별 항공사고조사관으로 사고조사단을 구성하여 조사에 나서서 조종사가 뇌우에 진입하게 된 경위 및 우박을 맞은 이후 조치한 내용에 대하여 블랙박스 해독 등을 통하여 정밀분석 작업을 실시하였고 항공기 레이돔 덮개, 조종석 전방 방풍창이 운항에 심각한 영향을 줄 정도로 파손된 경위에 대하여는 항공기 설계 및 제작국인 프랑스 사고 조사 기구 등과 협조하여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사고 항공기 승무원들이 뇌우 회피를 위해 선정한 비행 경로는 방향과 이격 거리가 충분하지 않았고, 회피비행을 하는 동안 뇌우에 대하여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뇌우에 근접하였을 때 선택한 비행 방향이 부적절했음이 드러났다.

고로 뇌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회피비행을 하면서도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지 않은 것.

사고 당시 상공에는 두 개의 큰 비구름이 있었는데 항공기는 비구름을 완전히 돌아간 것이 아니라 구름 사이로 진입해 우박을 맞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는 에어버스 A321의 운항지침인 "기상레이더의 자홍/빨강/녹색 경보지역에서 5~20마일을 이격해 운항하라"는 지침에 위배되는 운항 이었다.

또한 항공기는 기상레이더로 구름을 관찰할 때 안테나 각도를 적절히 조절해야 했지만 레이더를 고정시켰으며, 비구름 속에서 속도를 270kn(500km/h) 정도로 유지해야 함에도 320kn(593km/h) 가량으로 운행하였는데, 자동추력장치와 자동비행장치가 단절된 이후 최대운용속도인[7] 350kn(648km/h)에 가까운 346.4kn(641km/h)에 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8]

5. 승무원 표창 논란[편집]


제목:난 더잘했는데..

똑같은 항로를 사십분전에 지나갔는데 안양, 수원쪽 cb[9]

많던데...난 피해서 내렸는데... 나도 들어갔다올걸...다음엔 꼭 들어갔다 와야지...언론에도 알리고...ㅆㅂ

모 직원이 아시아나항공 사이트 자유발언대에 직원 표창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올린 글


아시아나항공 측은 조종사의 과실이 없다고 판단하고,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는 조종사의 과실이 있다고 결론짓게 되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사고 이후 조종사가 악조건 속에서도 항공기를 안전하게 착륙시켰고 우박을 맞은 것도 결과론적인 것이기 때문에 조종사의 과실은 없으며, 기장과 부기장들에 대한 포상을 진행한다고 밝혔었다. 아시아나 창사 이래 단 2번 밖에 수여된 적이 없는 조종사의 최고 명예인 '웰던 표창'을 수여하고 인사상 승격 조치하기로 했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측은, 사고 항공기 운항 승무원들이 아시아나항공 김포공항 운항 관리실에서 자체 브리핑 시에 항공 기상대가 제공하는 악기상 관련 예보를 알고 출발하였고, 기장이 항공기 기상레이더로 뇌우를 관찰할 때 안테나의 각도를 적절히 조절해가며 작동시켜야 하지만 한 위치에 고정시키고 비행하였다거나, 회피비행을 하는 동안 뇌우에 대하여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뇌우에 근접하였을 때 선택한 비행 방향이 적절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조종사의 과실로 결론을 내렸다.

결국 당시 건설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아시아나항공에 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한 기장은 3개월 부기장은 1개월간 자격정지 징계가 이뤄졌다.

여러모로 이해되지 않는 조종사의 결정과 행동 및 음모론이 겹치면서 음모론과 옹호론이 엇갈렸다. 음모론의 의견을 들어보자면 위에 서술된 의혹을 필두로 하고 있으며, 옹호론의 의견을 들어보자면 어쨌거나 사람을 살렸다는 것.


5.1. 진상[편집]


이 사건의 사후처리는 알고보면 꽤나 찝찝한 뒷사정이 있었는데, 뜬금없게 보이지만 아시아나항공의 사측, 비노조 직원들과 노조 소속 직원들의 오래 전부터 쌓여있던 노사갈등 및 차별대우를 보여줘버린 사건이었다.

본 사건 1년 전 2005년 6월 매우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다. 중국 창춘행 아시아나항공 337편이 똑같이 뇌우에 맞아 방풍창이 파손된 상태로 비상착륙한 사건이 있었는데, 아시아나항공은 본 사건과 똑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조종사에게 바로 중징계를 내렸다.[10] 위 문단에서 상술했듯이 본 사건의 기장은 사측에서 오히려 포상을 준비했었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이렇게 아시아나항공의 조치가 달랐던 것은 두 조종사가 전자의 경우 노조 소속 조종사였고, 후자의 경우 비노조 소속 군출신 조종사였다는 이유가 큰 것으로 추측된다. 당연히 아시아나항공 사내 및 노조 게시판에서는 차별대우에 대한 비아냥과 비판이 줄을 이었고[11] 위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및 건설교통부의 조치까지 뒤따르면서 포상을 취소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참고.


6. 사고 후[편집]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향후 항공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하여, 아시아나항공, 항공교통 관제기관, 기상청 등 관련 기관에 대해 총 9건의 안전 권고 사항을 발행하였다.

이후 사고기는 수리 후 잘 비행하다가, 2020년 8월 송출 되었다. 그리고 aviationtag에서 태그로 만들어졌다.

다큐9분의 재연 영상.#


7. 유사 사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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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뒤에 있는 보잉 737기는 같은 항공사이지만 도장이 다르다. 2006년 당시는 아시아나항공이 구 도장에서 신 도장으로 막 전환하기 시작한 직후였기 때문에 구 도장과 신 도장을 한 항공기가 모두 존재했다. 사고기는 사고 이후 중정비를 받으며 신도장으로 도색한 것이다.[2] 레이돔이 날아가며 기류가 불안정해졌고, 피토관이 제대로 된 속도를 측정하지 못했다.[3] Precision Approach Radar[4] 다만 민항기라고 평상시에 이 방식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대표적으로 원주공항의 경우 주변을 둘러싼 산악 지형으로 인해 계기착륙장치를 설치할 수 없어 이곳에 착륙하는 민항기는 공군 관제사의 지시에 따라 수동으로 활주로에 정렬해 착륙한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ILS가 설치되어 더는 이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5] 위험한 상황이 있거나 그런 조짐이 보일 때 이를 우회하여 비행하는 것[6] 원래는 오산 공군기지 및 소음 민감 지역 이라 고도 제한이 있어 이쪽 상공으로 바로 보내지 않으나 그 날 만은 예외였다. 비단 악천후 때 뿐만이 아니라 지연 출발로 인해 김포공항의 커퓨 타임에 걸릴 것 같은 항공기도 이렇게 다이렉트 지시를 줘서 신속히 착륙시키기도 한다.[7] 항공기가 버틸 수 있는 최대 속도. 이 속도를 넘어서면 공중분해(파괴) 가능성폭증한다.[8] 전술했듯 레이돔 탈락으로 인한 기류 불안정으로 속도가 제대로 측정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오토파일럿과 오토스로틀이 먹통이 된 와중에 속도가 위험수위까지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9] 적란운을 뜻한다.[10] 이 사건은 조사위에 보고되지 않았기에 크게 공론화되지 않았다고 한다.[11] 특히 이 사건은 기장의 과실도 엄연히 존재하기에 일부 조종사들은 게시판에 '나도 구름 피하지 말 걸 그랬다. 이렇게 우박맞고 포상 받게.' 등의 비아냥거리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