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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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시타카.png

아시타카
アシタカ / Ashit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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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17세
성별
남성
일족
에미시 일족 (왕자)
시대
무로마치 시대
가족
카야 (前 약혼녀)[1]
(친구 → 배우자)[2]
성우
파일:일본 국기.svg 마츠다 요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영선[3]
파일:미국 국기.svg 빌리 크루덥

1. 개요
2. 상세
3. 작중 행적
3.1. 결말 해설
4. 능력
4.1. 무예
4.1.1. 궁술
4.1.2. 검술
4.1.3. 기마술
4.2. 저주의 힘
5. 평가
6. 그 외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파일:아시타카 늑대.jpg


生きろ。そなたは美しい。

살아라. 그대는 아름답다.


모노노케 히메》의 주인공. 스튜디오 지브리의 모든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신화적인 영웅에 가까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2. 상세[편집]



파일:as1.jpg


파일:ashitaka4.jpg

장발
단발

파일:as33.jpg


파일:ashitaka3.jpg

두건 착용
야마토 정권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무로마치 시대까지 북쪽 변방에 숨어서 생활하고 있는 에미시 일족왕자.[1][2] 에미시 일족의 무녀 히이는 아시타카히코(アシタカヒコ)라고 부르는데, 원래 히코(彦)는 야마토타케루의 이름에 붙는 미코토처럼 이름의 일부가 아니라 '공'이나 '경', '나리'처럼 높은 신분을 가진 남성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용맹하고 선한 성격이며 뛰어난 활 솜씨와 날렵한 무술을 자랑하는 전사다. 게다가 외모도 매우 출중해서 타타라 마을에 방문해 처음 얼굴을 드러냈을 때 여자들에게 꽃미남이란 말을 대놓고 듣는 데다가 야생 소녀인 산을 비롯하여 에보시를 제외한 마을의 여자들이 전부 반해버린다. 그야말로 사기 캐릭터. 탈것으로는 말이 아닌 야쿠르라고 이름 붙인 영양을 타고 다닌다.

저주에 걸려 죽을 운명을 안은 채 서쪽으로 떠났다가 인간과 신의 싸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간 사슴신의 숲에서 신비로운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 을 만나 함께 다니면서 점차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인간자연의 갈등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맡게 된다.


3. 작중 행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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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에미시인이 사는 작은 마을에 살던 청년으로 평화로운 마을 부근의 숲에 갑자기 재앙신이 나타나자 빠르게 달려나가 맞선다. 재앙신을 진정시키려 하던 중 카야[3]와 같이 도망치던 친구 중 한 명이 넘어지고 카야가 칼을 뽑아들자 이를 본 아시타카는 결국 왼쪽 눈을 쏘아 움직임을 멈추게 하지만 이로 인해 오른팔에 재앙신의 촉수에 감겨버린다. 이때 재앙신의 미간에 화살을 쏘아 죽여[4] 마을을 지켜내지만 촉수로 감긴 오른팔은 결국 죽음각인이 새겨지고 저주를 받게 된다. 다만 이 오른팔에는 나고의 의지와 원념 또한 깃들어 있기에, 저주를 가속시켜 생명력을 깎아먹는 대가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마을의 무녀 히이가 가져온 정수로 응급 처치 후 히이에게 서쪽에서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머지않아 재앙신의 저주로 죽게 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채 운이 좋다면 저주를 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서쪽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5][6]

그리고 떠나기 전 아시타카를 짝사랑하던 소녀 카야가 달려와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은 언제나 아시타카를 생각하고 있겠다며 자신의 보물흑요석 단검[7] 목걸이를 줬다.[8]

서쪽으로 가던 도중 아시타카는 시골 사무라이의 전투에 휘말리고, 그들과의 싸움에서 자신의 오른팔에 엄청난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과 그와 반대로 팔이 서서히 썩어 들어가게 되는 저주의 효력을 느끼고 고뇌한다.[9] 이후 어느 마을에서 을 사기 위해 내놓은 사금 때문에 시비가 붙었을 때[10], 지코라는 스님이 나타나 아시타카의 사금의 값어치에 대해 너스레를 떨어 거래를 도와준다.[11] 지코 스님은 일전의 사무라이의 전투에 휘말려서 위험할 뻔했는데 아시타카가 구해준 것에 대한 은혜를 갚은 거라며 말을 걸어 동행하게 되고, 사금을 노리고 추격해 온 마을의 불한당에게서 벗어나 도착한 폐허에서 아시타카가 산 쌀로 죽을 끓여 같이 저녁을 먹으며 서쪽 끝에 있는 사슴신의 숲에 관한 이야기를 해준다. 아울러 아시타카를 보면서는 "자네를 보면 고서에 나오는 잊혀진 옛 부족의 이야기가 떠오른다네. 저 머나먼 동쪽 땅의 끝에 사슴을 타고 푸른 돌 화살촉을 쓰는 에미시라는 용맹한 부족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아시타카: 내 이름은 아시타카. 동쪽 끝에서 이곳까지 왔다. 그대들은 시시신의 숲에 산다는 신들인가?

산: 꺼져!

거대한 짐승(神)들이 살고 있는 사슴신의 숲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아시타카는 시시가미의 숲으로 향하게 되고, 계곡에서 들개신 모로와의 전투 때문에 계곡으로 떨어져 물에 떠밀려 온 코로쿠 일행을 구해준다. 그를 업고 이동하던 중 다친 모로를 치료하는 신비로운 소녀 을 보게 되어 그녀에게 말을 건네지만 은 차가운 반응만 보이며 사라져 버린다. 어쨌든 아시타카는 코다마의 안내를 받아 숲을 빠져나온 후 타타라 마을에 도착. 코로쿠 일행을 구해준 것을 이유로 극진한 환대를 받는다.

타타라 마을에 머물게 된 아시타카는 자신에게 죽음의 저주를 내린 재앙신이 마을의 수장 에보시의 총에 맞은 멧돼지신 나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숲에서 신들을 몰아내고 보다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려는 에보시의 계획을 듣게 된다. 또한 자신이 방금 전에 본 소녀가 이 마을에선 원수처럼 여겨지는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라는 것도 알게 된다. 이에 에보시와 인간을 비난하며 인간 때문에 자신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사실에 착잡한 마음으로 마을을 떠나려 하는데 마침 에보시의 목숨을 노리고 산이 타타라 마을에 나타난다.

아시타카는 에게 숲으로 돌아가라고 외치지만, 산은 듣지 않고 에보시에게 달려들어 싸움을 벌인다. 이에 아시타카는 재앙신의 힘을 발동하여 곤자의 검을 무슨 종이나 늘어진 엿가락 구부리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구부리고서[12] 에보시의 사이에 끼어들어 둘을 말리고, 에보시에게 자신이 산을 다시 숲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에보시는 들개아내로 맞이할 셈이냐며 [13] 비아냥거리지만, 아시타카는 당신과 저 소녀(산) 모두의 마음에 악귀가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저주받은 팔의 힘을 모두에게 보여주면서 증오원한을 멈춰야 한다고 외친다.

하지만 에보시가 그런 저주 따위에 호들갑 떨지 말라며 아시타카를 공격하려 하자 결국 에보시의 배를 칼자루로 때리고 산은 배를 때려 둘 다 기절시켜 버린다. 에보시를 마을 여인들에게 넘겨준 채 기절한 산을 둘러업고 떠나려던 중 에보시를 기절시킨 것에 분개한 여인의 화승총 오발사고[14]로 총탄에 배가 뚫리지만 그런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음에도 멀쩡히 걸어다니며 장정 10명이 달라붙어야 겨우 열릴 문을 번쩍 들어내는 괴력을 선보인다. 이후 성 밖의 들개들이 달려와 위협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산을 데리고 야쿠르를 타고 들개들과 함께 사슴신의 숲으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부상이 심해진 아시타카는 결국 야쿠르의 등 위에서 떨어지고, 들개들이 그를 물어뜯지만 정신을 차린 산이 들개들을 만류한 뒤 왜 자신을 방해했냐고 묻는다. 아시타카는 산에게 '널 죽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라고 말하지만 산은 인간들로부터 숲을 구하기 위해선 본인의 목숨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하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라며, '살아라'고 한다. 하지만 산은 인간 말 따위 듣지 않는다며 아시타카의 칼을 뽑아 목을 찢어 다시는 말을 못 하게 해주겠다고 위협한다.

하지만 아시타카는 "그대는 아름답다."라는 명대사를 남긴 뒤 다시 기절한다. 산은 자신에게 아름답다고 말하는 아시타카를 보고 크게 동요하고[15] "대신 죽여줄까?"하고 묻는 들개 형제들의 물음에 사슴신의 처분에 맡기기로 결정한다.

산이 그를 시시가미에게 데려다줘서 사슴신의 치료를 받게 되지만, 총탄이 박힌 상처만 치료됐을 뿐 저주로 인한 상처는 낫지 않았고 오히려 낙인이 더 크게 키워져 버렸다.[16] 결국 고생해서 사슴신을 만나는 데는 성공했지만 끝내 자연에게 용서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아시타카는 산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이후 부상이 나을 때까지 산과 함께 지내며 그녀를 향한 동정심과 애정이 점차 커지게 되어 모로에게 공존할 방법이 없겠냐며 산은 인간이니 놓아달라고 따지다, 네가 그녀를 구원할 수 있을 것 같냐는 모로의 비웃음에 "모르겠어. 하지만 함께 살아갈 수는 있어" 라고 답한다.[17] [18] 그러나 모로는 그래봐야 아시타카는 머지않아 저주에 침식당해 죽어버릴 몸이기에 산의 곁에는 있지 못한다고 하며, 이 말은 아시타카도 부정하지 못한다.

인간의 싸움을 말릴 수도 없이 결국 재앙신의 저주로 죽어버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떠나기로 결심. 떠나기 전에 산에 대한 애정의 정표로 흑요석 단검 목걸이를 전달한다.[19]

에서 나온 아시타카는 타타라 마을이 사무라이들에게 공격당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사슴신을 쫓고 있는 에보시에게 지원을 요청해 달라는 토키의 부탁으로 발길을 되돌린다. 즐비한 멧돼지 신들의 시체 더미 속에 깔려있던 모로의 자식을 구해준 후, 재앙신으로 변이 되어버린 옷코토누시의 촉수에 휩쓸려 정신을 잃은 산을 구하러 가나 고전을 면치 못한다. 그때 사슴신이 나타나 모로와 옷코토누시의 생명을 거두고 모로가 마지막 힘을 다해 산을 구해내어 아시타카에게 넘긴다. 을 끌어안은 채 물속에 잠수하며 제발 살아달라고 간절히 빌고 재앙신의 촉수가 산에게서 씻겨지며 결과적으로 산을 구해내는 데는 성공한다. 하지만 그사이 에보시가 시시가미에게 총을 겨누고 아시타카는 총에 칼을 던져가며 막으려 했지만, 시시가미의 조화술에도 불구하고 에보시가 쏜 총탄에 시시가미의 머리가 잘려나가고 만다.

머리를 잃은 시시가미는 불안정한 데이다라봇치가 되어 머리를 찾아 헤매는데, 이때 모로가 마지막 남은 사념으로 에보시의 오른팔을 물어뜯고 죽자, 아시타카는 에보시의 상처를 지혈해 주고 데이다라봇치가 마구잡이로 흩뿌린 닿으면 죽는 점액을 피해 곤자에게 인계한다.

하지만 어머니 모로와 시시가미의 원수인 에보시를 구해준 아시타카를 은 원망하고, 아시타카가 다가가자 극도의 배신감으로 패닉에 이른 산은 아시타카가 선물한 흑요석 단검으로 그의 가슴을 찌른다. 그러나 이미 저주의 각인에 온몸을 둘러싸인 아시타카에게 산의 공격은 더한 상처를 주지는 못했으며, 아시타카는 산을 꼭 안아주며 모로와 사슴신의 죽음을 막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한 다음 아직 우리가 살아있다고 말하며 도움을 요청한다.

결국 산과 아시타카는 에보시 일행을 숲에서 탈출시키고서 타타라 마을의 사람들에게 데이다라봇치가 온다는 경고를 해주고 사슴신에게 목을 돌려주기 위해 지코 스님에게 향한다.[20] 저항하는 지코 스님으로부터 겨우 사슴신의 목을 돌려받은 아시타카와 산은 사슴신에게 목을 되돌려 주지만, 사슴신은 자신이 파괴한 을 생명의 힘으로 부활시키게 되어 결국 사슴신의 희생으로 숲은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아시타카는 시시가미가 자신의 저주를 풀어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시가미가 죽어버렸다며 슬퍼하는 산에게 아시타카는 사슴신은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에 죽지 않았으며, 죽음을 둘 다 가졌다고 하며 자신에게 계속 살아가라고 했다고 말한다.



아시타카는 좋지만 인간은 용서할 수 없다는 산의 말에 그래도 괜찮다고 하며 자신은 타타라 마을, 산은 숲에서 함께 살아가자 말하고 또 만나러 갈 것을 약속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3.1. 결말 해설[편집]


파일:0204.jpg

결말에서 산과 재회를 약속하지만 일단은 헤어져서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 때문에 이를 이별 혹은 열린 결말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21] 둘의 모티브가 된 아이누 신화에서부터가 둘이 본래 부부이며, 공식적으로 이어진 결말이다.

위의 사진처럼 아시타카와 산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의 콘티에도 "산이 아시타카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인다"라고 적혀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품 마지막에 둘의 관계를 가요이콘(通い婚)이라고 묘사했는데, 이는 결혼한 부부가 함께 살지 않고 남편이 아내가 있는 곳으로 왕래하는 고대 일본의 혼인 형태이다. 즉, 아시타카와 산은 부부의 관계가 된 것이다. 작품의 핵심 주제처럼 아시타카와 은 함께 살아간다는 뜻. 산과 함께 살면서 아시타카는 상처 투성이가 되겠지만 그럼에도 굴복하지 않는다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인터뷰에서 밝혔다. 또한 인간들을 용서할 수 없다는 산의 말은 아시타카에게 있어서 가시지만, 아시타카는 그 가시를 품고 살아간다고 했다. 원전 신화와 미야자키 감독이 인정한 것을 여전히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다.

저주가 풀렸는데, 왜 고향에 돌아가지 않고 타타라 마을에 남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시타카가 고향에서 사실상 추방당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시타카가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차기 족장이었고, 그 외엔 이렇다 할 인재도 없기 때문에, 그가 돌아올 수 없는 것에 에미시의 원로들이 비통해했던 것이다.

또한 숲의 일원인 산과 타타라 마을의 일원인 아시타카가[22][23] 결혼한다는 것은 둘의 관계뿐만 아니라 인간 마을과 자연의 숲 사이에 소통 창구가 생기게 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결말이다.


4. 능력[편집]


작중 인간들을 통틀어 최강의 무력을 자랑한다. 힘과 무예 모두 정점에 달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미 첫 등장부터 완성된 전사로 등장하였다.

위기 회피 능력도 뛰어나기에 작중 온갖 난리통에 휘말리면서도 대부분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내지만, 이런 아시타카도 작중에서 단 두 번 공격에 의한 외상을 입는다. 하나는 재앙신의 촉수에 얽혀 팔에 저주가 걸린 일이고, 또 하나는 남편을 잃고 분노한 아낙네가 겨눈 총포에 배를 맞은 일이다.[24]



산에게 접근하는 곤자와 병사들을 저지하기 위해 자기 몸통만 한 나무 판자를 뜯어서 집어던졌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포위당한 채 에보시와 겨루고 있는 산에게 다가서는 장면에서는 마을 사람을 무더기로 던져버리고, 사람 10명이 도르래를 이용해 여는 문을 산을 들쳐멘 것도 모자라 복부에 관통상을 입어 심각한 출혈이 발생하는 상황을 무릅쓰고 한 손으로 밀어 여는 괴력을 발휘한다.[25] 이 외에도 짧게 지나간 제철소 장면이나 죽은 멧돼지 시체를 들어올리는 장면같이 아시타카의 범상치 않은 근력을 묘사한 장면이 많다.

정신력과 의지 또한 초월적인 수준. 대부분의 위기상황에서 매우 침착하고 당황하는 모습 없이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고통에 대한 내성도 대단하여 복부에 정통으로 총상을 입은 뒤 과다출혈을 감내하고 도르래문을 들어올리면서도 짧은 비명 한 번 지르지 않는다. 모로조차 총상의 후유증과 나고의 저주로 시름시름 앓는 아시타카가 신음소리 한 번 내면 물어죽이려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며 반농담조로 감탄했을 정도다. 사실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은 재앙신의 저주가 날뛸 때 밖에 없다. 그나마도 그 힘에 휘둘려 폭주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일정 선에서 억누르는 것이 가능했다. 작중에서 아시타카가 약한 모습을 보인 순간은 산이 시시가미에게 다죽어가는 아시타카를 데려가 치유한 뒤, 육포를 씹어서 먹여주는 장면에서 잠깐이나마 눈물을 흘리는 장면밖에 없다. 이쯤되면 가히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뭐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초인이다.

이렇게 최강자급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선량한 성격이기 때문에 보통 남이 먼저 공격하려 들지 않으면 최대한 무력 사용을 자제하고 대화로 먼저 해결하려 드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처음 재앙신을 상대 할 때도 최대한 재앙신을 진정시키려 시도하다가 마을 사람이 위험해지자 전투에 돌입하였던 것이였고, 추방 된 이후 작중에서 나온 아시타카의 전투 상황은 누군가를 구하거나 자기방어 형태의 전투 위주였다.[26] 물론 시대가 시대인 만큼 무력이 필요한 순간에는 주저 없이 사용하지만 그 무력을 사용하기 앞서 정신적 수양이 완벽하게 되어있는 연출이 군데군데 스며들어 있다.[27]


4.1. 무예[편집]


기술적으로는 여타 인간들이 가히 범접을 못하는 수준. 아시타카 다음으로 전투력이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에보시 고젠을 동시에 순식간에 제압한 시점에서 아시타카의 무예가 독보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저주로 인하여 생긴 영적인 힘과 본래 지닌 아시타카의 전사로서의 능력은 다른 영역이지만, 작중 묘사되는 아시타카의 전투력은 굳이 저주의 힘이 아니여도 초인적인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무지막지하게 달리는 여느 지브리 작품 아니랄까봐 숨 한 번 몰아쉬지 않는 질주 장면들도 있으며, 한 술 더 떠 가파른 내리막길을 들개신과 어느 정도 발을 맞출 수 있을 만큼 내달리고 바위절벽을 몇 미터나 풀쩍 뛰어내리고도 멀쩡한 각력을 보여준다.

반응 속도도 뛰어나서 멧돼지 시체를 짊어지고도 지근거리에서 날아오는 암기를 목만 살짝 비틀어서 피해낸다.


4.1.1. 궁술[편집]



저주에 걸려버리긴 했지만 혼자 힘으로 재앙신이 된 나고를 화살 2발 만에 사살했으며, 그중 결정타로 날린 화살 한 발은 꼬리깃 부근만 남기고 숫제 이마 정중앙에 빨려 들어가는 엄청난 괴력을 보였다. 심지어 초반에는 전투가 아닌 재앙신을 상대로 진정시키려는 데 주력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전투에 돌입한 것인 만큼 처음부터 전력으로 전투에 주력했다면 저주에 걸리지 않고 재앙신을 물리쳤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미 저주를 받지 않은 시점에서 일반적인 화살은 가죽에 흠집도 못내며 화승총을 동원하고도 격퇴에 그쳤던 나고를 처리할 때, 화살 한방으로 미간의 두개골을 깊게 뚫어서 숨통을 끊어버린다. 이는 웬만한 사람들은 시위도 제대로 못 당길 수준의 무지막지한 강궁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다.[28]

저주를 받은 이후로 적중한 화살이 팔이나 목을 통째로 절단하는 파괴력을 보였지만, 아시타카의 백발백중의 궁술이 아니였다면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파일:모노노케 히메.아시타카.무력.gif

자신에게 날아온 화살을 잡고 다시 쏴 기병에게 명중시키는 장면

타타라 마을을 침략한 중무장한 사무라이 기병들과의 전투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공중에서 낚아채서 바로 발사해 일격에 처치하는 어디서부터 감탄해야할지도 모르겠는 신기를 보여준다.

궁술이 뛰어난 만큼 시력도 엄청나게 좋아서, 멀리 있는 사슴신을 눈에 힘을 주자 모습이 더욱 더 선명해지는 초인적인 시력을 보였다.


4.1.2. 검술[편집]



아시타카의 성향상 작중 대부분 검을 방어 용도로만 사용했는데, 이 짧은 소검으로 검과 화살을 모두 막아내는 검술을 보였다.[29] 타타라 마을을 습격한 이 무차별로 휘두른 공격을 쉽게 피하거나 쳐냈고 이후에는 물에서 헤엄치며,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는 것도 아니고 아예 두 동강을 내버리기도 했다.


사무라이 기병이 니가타를 들고 시도하는 마상돌격을 유유히 회피하고 팔을 절단해 버리기도 했다. 작중에서는 저주의 힘으로 아예 잘라버렸지만 마상 돌격을 상처 하나 없이 회피가 가능한 시점에서 적당히 노출된 손가락이나 말을 노렸다면 죽지는 않더라도 사무라이는 무력화되어 전투에서 이탈했을 것이다.


4.1.3. 기마술[편집]



아시타카의 기마술은 야쿠르를 자신과 일심동체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수준으로 다루는 신기에 가깝다. 가파른 절벽을 타고 내려가거나 거리가 벌어진 재앙신을 순식간에 따라잡았으며, 엄청난 속도로 달리면서도 백발백중인 궁술을 선보이기에 그야말로 그리스 신화켄타우로스 같은 움직임을 보여준다.

더 무서운 것은 아시타카는 야쿠르를 탈 때 등자를 사용하지 않는다. 등자가 없으면 순수하게 허벅지의 힘만으로 몸을 고정해야 하는데, 비육지탄의 고사에서 보듯이 등자 없이 능수능란한 기마술을 펼치고 마상 전투가 가능하다면 이것만으로도 '최고의 기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4.2. 저주의 힘[편집]



저주의 힘에 잠식당한 이후로는 인간의 범주를 초월한 능력을 선보이는데, 아시타카가 발휘하는 이 괴력은 단순히 완력이 물리적으로 강해진 게 아니라 일종의 영적인 능력으로, 화살로 사람의 목이나 팔을 베어버리는 장면에서 이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곤자의 대태도를 구부러뜨린 장면을 예시로 들 수 있다. 아시타카처럼 칼날을 쥐고 옆으로 힘을 주면 그 힘은 칼 손잡이를 쥔 곤자의 손에도 전달되어서 곤자가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칼을 놓쳤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그냥 칼날만 깔끔하게 구부러졌다. 즉 단순한 괴력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힘이 팔에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칼을 구부리는 장면의 주변 장면에선 대놓고 재앙신의 촉수 비슷한 것이 희미하게 꿈틀거리는 게 연출된다.

저주의 힘을 사용하는 듯한 장면은 멋대로 움직이는 팔, 타타라 마을에서의 전투나 상처가 번지는 등 '직관적인 연출'로 비교적 알아보기가 쉽다.


5. 평가[편집]


결점이 없는 완성형 주인공. 작중 내내 부상을 입거나 고뇌하는 장면은 자주 나오지만 이는 살면서 전혀 경험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학습과 성장의 과정이었을 뿐,[30] 결코 흔들리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아시타카의 극 중 대사인 '흐림 없는 눈으로 진실을 보겠다'처럼 올곧은 의지가 꺾인 적은 없었다. 지브리 작품 내에서도 찾기 힘든 문무를 겸비한 완성형 캐릭터. 오죽하면 스즈키 프로듀서가 아시타카는 너무 완벽해서 감정 이입이 안 된다며 제목을 몰래 바꿨을 정도. 즉 아시타카는 작 중에서 갈등의 일부분으로써 극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로 인해 생겨난 갈등을 이해하고 풀어가는 역할을 맡은 해결사인 것이다.

그렇기에 만약 원령공주의 서사가 아시타카를 중점으로 둔 구조였다면 뻔하디 뻔한 먼치킨물이 되어 서사의 당위성도 흡입력도 나락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원령공주에서 중요한 것은 아시타카가 아니라 산과 타라라 마을, 그리고 시시가미로부터 생겨나는 갈등이였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다른 이들이 만들어내는 갈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라 여기서 아시타카까지 참가했다간 러닝타임이 두 배는 늘었을 것이다.

애초에 전쟁이 매일같이 벌어지며 피튀기는 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맡은 아시타카는 결코 나약해서는 안 되는 캐릭터였다. 만약 아시타카가 불완전하고 나약한 캐릭터였다면 두 세력의 사이를 중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우유부단한 캐릭터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 그나마 유일하게 작중의 스토리에 참여하기 위해 가지게 된 패널티는 재앙신의 저주로 충분했다. 심지어 이마저도 아시타카의 올곧은 신념이나 육체적 강력함에는 거의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고 오히려 일종의 교훈적인 경험으로 남았을 뿐이었다.

극도로 도덕적인 마음의 소유자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은 내버려 두지 않고 도와주고, 생판 남인 타타라 마을과 숲의 분쟁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숲과 인간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어설프게 끼어들었다간 당사자에겐 아무 상관 없는 제3자가 이래라저래라 한다고 오히려 양측의 미움을 사고도 남을 행동이건만 한없이 올곧은 자세와 마음을 유지하는 모습에 양측에도 큰 미움을 사지 않았으며 숲과 인간이 양쪽 모두를 돕고 둘이 공존하기를 바란다.[31]

아시타카가 에보시에게 타타라 마을이 위험에 빠졌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모로의 아들을 멧돼지 시체 더미에서 빼주려고 하자 그렇게나 오래 들개들과 피를 보며 반목해 왔던 타타라 마을 사람들이 아시타카를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모로의 아들도 그런 마을 사람을 적대하지 않는 장면에서 그가 양 진영에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걸 보여 준다.[32]

굳센 정신을 지녀, 저주에 걸리고 마을에서 추방당하면서도 담담했고[33] 저주가 조금씩 몸을 좀먹으며 고통스럽게 죽어가게 하는 상황과 숲을 파괴하는 타타라 마을의 모습을 보면서도 한 번도 이에 대해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작중 그가 타타라 마을 사람들에게 화가 났다는 묘사는 볼 수 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해결하려 하고, 자신이 받은 저주의 궁극적인 원흉이 에보시라는 걸 알자 분노해 순간적으로 살의까지 품어도 에보시를 죽이려 폭주하는 오른팔을 억누를 만큼 올곧음을 유지할 줄 안다. 그가 약한 모습을 보인 순간은 오직 총포에 맞아 사경을 헤메다 사슴신이 살려내 극도로 허약해진 상태에서 산이 돌봐줄 때 무심코 눈물을 흘린 것이 전부였다. 이마저도 저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사슴신과의 대면에서, 상처는 치유해주곤 저주는 풀어주지 않아 내심 '이대로 저주로 천천히 고통 받다가 죽으라는 것이구나'로 받아들여 심신이 무너져서 그렇다.

겸사겸사 재앙신의 저주의 무서움을 몸으로 직접 겪어보았으면서도 재앙신이 된 옷코토누시에게 달려들어 산을 빼내려고 하고 숲의 모든 생명을 집어삼키며 폭주하는 시시가미에게 머리를 직접 돌려주면서도 두려워하기는커녕 끝까지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는 평정심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머리를 돌려줄 때도 재앙신의 저주가 내려졌으며 아시타카는 물론 산까지 전신에 걸쳐 저주의 각인이 새겨지는 것을 보아 모노노케 히메 세계관의 최고신인 만큼 나고, 옷코토누시 등과는 차원을 달리한다고 볼 수 있다.

원래 저주의 의도대로였다면 아시타카는 재앙신처럼 공포와 증오에 잠식되어 엄청난 고통 속에서 나고가 다하지 못했던 인간 세상에 대한 파괴를 숨이 끊어질 때까지 계속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사심 없이 볼 수 있었고, 그에 따라 항상 옳은 행동을 하고자 했으며, 심지어 위험이나 죽음 앞에서도 너무나도 초연한 태도 덕에 이 저주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가 증오심이나 고통을 느꼈을 때마다 발생했던 오른팔의 경련은 저주로 인한 흉터가 점점 커지고 있음에도 후반부로 갈수록 줄어들고 나중에는 아예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절제력이 탈인간급임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요약하자면 인품적 측면에선 흠 잡을 데 없는 완벽초인영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어떻게 보면 이전 작히로인 나우시카의 TS판이자 파즈의 상위 호환으로도 볼 수 있다.

게다가 나우시카가 작품의 초반에는 분노를 못 이겨 토르메키아 병사들을 때려눕히고 후회하는 장면이 있는 등 미성숙한 면이 남아있는 성장형 주인공인 것에 비해, 아시타카는 대놓고 살의를 느끼는 대상이 눈앞에 있더라도 상황이 좋지 않을 경우 엄청난 인내력으로 자제하는 등 이미 완성된 주인공이기에 둘의 최종적인 모습은 같더라도 작품 시작 시점에서는 아시타카가 더 성숙할 정도이다. 다만 영웅성이 강한 만큼 나우시카보다도 더 따라가기 어려운 주인공이라는 태생적인 단점이 존재한다. 본작에서는 순수하지만 감정적인 성격인 산을 제2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역할 분담을 시킴으로써 이 단점을 메꿨다.

6. 그 외[편집]


  • 아시타카의 프로토타입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 동화 슈나의 여행에서 찾을 수 있다.

  • 더빙판에서는 옷코토누시와 사슴신을 제외한 신들에게 반말을 쓴다. 대원 애니메이션 아트북 책에서는 모로와 멧돼지 신들에게 존댓말을 쓴다.

  • 본래 미야자키가 생각했던 '모노노케 히메'의 제목은 '아시타카 전기(アシタカ𦻙記[34])'이다. 하지만 스즈키 프로듀서는 아시타카가 너무 완벽해서 감정이입이 힘들다며 미야자키 몰래 제목을 '모노노케 히메'로 바꿔버렸다. 미야자키는 뒤늦게 이를 알고 화가 났지만 이미 '모노노케 히메'로 CM이 나가서 어쩔 수 없이 수용했다. 대신 '아시타카 전기'는 OST의 제목이 되었다. 미야자키가 직접 쓴 의 제목도 아시타카 전기다.

  • 아시타카의 일족인 에미시는 후에 아이누라고 불리는데 이들에게는 흰 개가 인간에게 시집와 세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즉, 모노노케 히메 세계관에서 들개 신의 수양딸인 산이 아시타카와 맺어져 세 아이를 낳고 이들은 아이누의 시조가 된다는 해석. 작중 에보시"들개를 아내로 맞이할 생각이냐?"라고 조롱한 게 복선이다. 이 때문에 탄압받는 아이누의 미래를 생각하면 안쓰럽다는 평가가 종종 있다.

파일:미야자키가 만든 한자.png 記とは

(전(파일:미야자키가 만든 한자.png)기란)

草に埋もれながら 耳から耳へと語り継がれた物語のこと

(풀에 묻혀가면서 귀에서 귀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

正史には残らない 辺境の地に生きた ひとりの若者のことを

(정사에는 남지 않은 변방의 땅에 살았던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人々は いつまでも忘れずに語り継いできた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잊지 않고 전해왔다.)

アシタカと呼ばれた その若者が

(아시타카라고 불린 그 젊은이가)

いかに雄々しく 勇敢だったかを……

(얼마나 장하고 용감했는지를......)

残酷な運命に翻弄されながらも

(잔혹한 운명에 농락당하면서도)

いかに深く 人々や森を愛したかを……

(얼마나 깊이 사람들과 숲을 사랑했는지를......)

そのひとみが いかに澄んでいたかを

(그 눈동자가 얼마나 맑았는지를)

山に生きる 忍耐強い人々は つらい暮らしの中で

(산에서 살아가는 인내가 강한 사람들은 힘든 삶 속에서)

くり返し くり返し 子供等に語り継いだのだった

(계속해서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전해 내린다.)

アシタカのようにおなり

(아시타카처럼 자라서)

アシタカのように生きよ と……

(아시타카처럼 살아가라고......)

- 미야자키 하야오아시타카 전기

  • 미야자키 감독은 음악 담당인 히사이시 조에게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직접 아시타카에 대한 를 썼다고 한다.

  • 하쿠, 하울과 더불어 지브리 3대 미남으로 꼽히고 있다. 또한 일본 지브리 팬덤에서는 4대 지브리 책임감 있는 남자로도 꼽힌다. 나머지 세 명은 유파, 파즈, 하쿠. 2019년 지브리 남주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하쿠, 하울과는 한국 성우가 동일하다.


  • 최근 일본에선 작중 장면이 갑자기 밈이 되었다. 작중 초반 장면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고 뭘 알려달라는 건지 말하는 장면이 밈이 되었다.


7. 둘러보기[편집]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극장 애니메이션 작품 주인공
파일:붉은 돼지 로고.png
붉은 돼지 (1992)


파일:모노노케 히메 로고.png
모노노케 히메 (1997)


파일: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로고.png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2001)

포르코 로소
아시타카

오기노 치히로
하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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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미시의 원로가 야마토의 왕은 더 이상 힘이 없고 쇼군들의 송곳니도 무뎌졌다고 하는 것을 보면, 무로마치 쇼군의 권위가 추락하기 시작한 아시카가 요시카츠와 무로마치 시대의 끝인 아시카가 요시아키 재임 시절 사이로 보인다. 하지만 에미시는 이미 가마쿠라 시대 시점에서 꺾일 대로 꺾인 상태였다. 작중에서도 쇼군들이 약해졌다고 하지만 자신들은 더 약해졌다고 하면서 족장이 되어야 할 아시타카가 저주에 걸린 일을 한탄한다.[2] "야마토와의 싸움에서 패해 이곳으로 숨어든 지 어언 5백 년"이라는 대사로 역산하면 무로마치 시대에서 500년 전은 헤이안 시대 초기 정이대장군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758~811)를 보내 혼슈 지역을 정벌하게 했던 때, 또는 전 9년의 역(1051~1062)이나 후 3년의 역(1083~1087)이 벌어졌던 때와도 겹친다.[3] 작중에서 아시타카를 오라버님이라고 불러 친여동생이라는 설이 많이 퍼져있고 미국에서는 아예 여동생(sister)으로 설정하고 번역했다. 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인터뷰에서 그냥 일족 내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기에 그렇게 지칭한 것일 뿐 카야는 아시타카를 짝사랑하는 소녀가 맞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카야를 아시타카와 혼인하고 싶어 하는 여인으로 설정했다고 하며, 이 때문인지 일본판에서는 카야와 산이 동일한 성우로 더블 캐스팅 되었다.[4] 옆모습이라 눈에 맞은 것처럼 나오지만 다음 컷에서 미간에 화살이 박혀있는 게 보인다. 처음 활을 맞은 왼쪽에선 재앙신의 촉수가 흘러나오지만 오른쪽 눈은 시체가 뼈 더미로 산화될 때도 멀쩡하다.[5] 작중에선 모호하게 넘어갔는데, 사실상 마을에서 추방당했다. 마을에 죄를 지은 게 아니라, 마을을 지키려다가 받은 저주가 마을에 어떤 해를 입힐지 몰라서 내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아시타카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서 야밤에 담담하게 보내주는 것. 이는 미야자키 감독이 인터뷰에서 직접 언급한 내용이기도 하며, 잘 보면 작중에도 어느 정도 암시(상투를 자르거나, 마을의 어느 누구도 배웅을 해주지 못한다든가 등등)가 되어 있다.[6] 일본 쪽에서는 에미시가 야마토와의 전투에서 겪었던 참담한 경험이 이러한 계율을 만든 원인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는 듯하다.#[7] 일단은 단검이라고 나오기는 하나 나이프 같은 것은 아니고 작은 석기(슴베찌르개) 비슷한 것이다.[8] 이때 카야가 자신은 언제나 아시타카를 생각하겠다고 하자 아시타카는 자신도 언제나 너(카야)를 생각하겠다고 말한다. 근데 문제는 그걸 작품 중후반부 쯤에 산에게 줘버렸다.[9] 마을 사람을 해치려는 병사에게 화살을 쏘려고 하자 저주에 걸린 오른팔이 갑자기 생물처럼 기괴하게 꿈틀거리더니, 아시타카가 쏜 화살이 칼자루는 물론이고 칼과 칼을 잡고 있던 도적의 팔까지 모두 절단시켜 버렸다. 그리고 뒤따라온 기마병의 목에 화살을 쏘자 목까지 잘려나간다. 같이 따라오던 다른 기마병은 이를 보고 괴물(오니)이라고 식겁한다. 이때 잘 보면 저주받은 오른팔로 활대를 잡고 멀쩡한 왼팔로 활시위를 당기는 걸 볼 수 있는데 당연히 활대를 잡는 것으론 화살의 위력을 높일 수 없다. 저주가 단순히 완력을 올리는 게 아닌 것을 보여주는 연출로 보인다. 이후 기마병들과 싸울 때는 오른손으로 활시위를 당기는데 이때도 목을 날려버린다.[10] 아시타카가 속해있던 에미시 부족은 일본 쇼군의 지역과는 교류하지 않았기 때문에 화폐가 없었다. 그래서 사금을 건넸는데 작은 시골 동네인 이곳의 주민은 에 대해 무지해 을 판 여자도 "돈이 아니잖아? 돈 없으면 쌀 돌려줘!"라고 한다.[11] 처음에 사금을 받았을 때는 사금이 뭔지 모르고 "돈 없으면 쌀 도로 내놓으라"고 버럭하던 쌀 파는 여자가 사금의 가치를 듣고 나자 "이건 내 사금이야!"라며 누가 못 뺏어가게 달려드는 태세 전환이 볼만하다.[12] 재앙신의 힘으로 촉수까지 튀어나왔다. 도신의 옆부분을 손가락으로 잡았기에, 손바닥이 직접 날에 닿지는 않았다. 다만 재앙신의 힘이 그때 발동하여 칼날이 구부러져 버렸고, 이걸 본 곤자도 식겁한다.[13] 이는 영화의 후일담의 복선이다. 즉, 본의 아니게 아이누 설화를 그대로 예언한 것.[14] 총을 장전한 뒤 아시타카에게 겨누지만, 아시타카가 돌아보자 차마 쏘지 못하고 있다가 옆의 중년 여인이 말리려다가 실수로 격발 장치를 눌러 발사된다. 다만 이는 오발 사고이기는 해도 단순히 에보시를 기절시킨 것에 분노하여 일어난 일은 아니다. 산이 용광로 꼭대기에서 에보시를 향해 달려들 준비를 할 때, 에보시는 자신의 옆에 있는 두 여성이 지난번 모로 일행의 공격으로 남편을 잃은 자들이라는 언급을 하는데, 이로 인해 해당 여인은 산에 대한 증오원망, 분노로 가득 찬 상태였다.[15] 아시타카가 '그대는 아름답다'는 말을 했을 때 산이 동요한 건, 본인은 들개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 왔고 인간은 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모로가 산을 길러오면서 사랑스러우면서도 추한 딸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모로가 아시타카에게 하는 대사에서 알 수 있는데, "인간도 될 수 없고, 들개도 될 수 없는 가엾고 추하면서도(みにくい) 사랑스러운 내 딸이다."라고 한다. '들개'에게 키워져 '인간'으로서 '들개'의 삶을 배워 살았지만 '들개'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산'에게 인간인 '아시타카'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 해석대로라면 모로가 산을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그녀가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증오의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산도 그 점을 의식하면서 살아야 했다는 얘기가 된다.[16] 시시가미가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총상만 치료해 줄 의도였고 저주엔 관심 없었는지는 불명. 이후에 야쿠르가 아사노 가문의 무사들에게 화살을 맞아서 아시타카가 그들과 대적할 때 저주의 낙인이 커지는 연출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저주의 낙인은 아시타카가 분노하거나 증오의 마음을 품게 될 때 커지게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시시가미는 총상만을 치료해 준 것으로 추정된다.[17] 사슴신은 죽어버렸어도 사람은 숲과 살아갈 수 있고, 에보시는 팔과 마을을 잃었어도 남은 사람들과 숲과 함께 살아갈 수 있고, 산은 숲도 어머니도 잃었지만 아시타카와 함께 살아갈 수 있고, 아시타카 본인도 타타라 마을 사람들과 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대사.[18] 자연과 인간의 사이, 아시타카가 내린 결단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마음과 선함을 보여주는 대사. 이 대사는 극 중의 결말과 인물들의 모습으로 이어지게 된다.[19] 이에 대해서 일본 인터넷에서는 마을에서도 쫓겨나고 모로옷코토누시에게서도 숲을 떠나라고 요구받아 재앙신의 저주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아시타카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간병해 준 산에게 남길 수 있던 최고의 선물이 그 단검 목걸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자신이 죽으면 카야의 분신인 단검 목걸이도 버려질 것이니, 적어도 산의 품 안에서 소중히 있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20] 지코 스님은 조정의 명령을 받고 사슴신의 목을 노리고 있던 사람이었으며 전란의 틈에 사슴신의 목을 빼돌리는 데 성공했던 상황이었다.[21] 재회를 약속하고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되는 클리셰가 흔하기 때문이다. 당장 같은 회사 대표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역시 이런 열린 결말의 대표 주자.[22] 엄밀히 말하자면 아시타카는 외부인이었지만, 타타라 마을이 위기 상황일 때 목숨을 걸고 전령으로서 활약하고 에보시의 목숨을 구함으로써 구성원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고, 마지막 장면에서 에보시가 답례를 위해 아시타카를 불러오라 하면서 좋은 대우를 받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23] 사실 따지고 보면 산 역시 모로 일족의 딸이자 숲의 일원이긴 하지만 외부인 출신, 심지어 숲의 원수인 인간 종족 출신의 양녀 신분이기 때문에 아시타카와 비슷한 입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24] 흥미롭게도 하나는 인간을 향한 숲의 증오에 의한 것이고, 하나는 숲을 향한 인간의 증오에 의한 것이며, 그 증오를 불러일으킨 원인은 인간숲의 존재인데, 괜한 아시타카가 그 증오에 휘말렸다는 공통점이 있다.[25] 물리적으로 자신보다 무거운 물체를 밀게 되면 반대로 자신이 밀리게 된다. 즉, 문을 열기 위해 오른팔의 힘뿐만 아니라 그것을 버틸 다리 힘도 필요한 것.[26] 본인의 강한 의지로 실행한 첫 전투는 타타라 마을에서의 에보시와 산을 제압하는 장면이다.[27] 예시로 에보시가 사슴신을 총으로 조준했을 때 아시타카의 실력이라면 단순히 칼을 던져 총을 맞추는 게 아니라 에보시의 머리나 팔을 베어버리는 것도 가능했을 테고 그쪽이 좀 더 상황을 해결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허나 그렇게 하지 않았고 에보시를 구하였다.[28] 또한 활이란 한 손으로 활을 잡고 다른 손으로 화살과 함께 활시위를 당김으로써 휜 활몸이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탄성을 이용해 쏘는 것인데, 활은 아시타카가 저주에 걸리고 나서 더 세게 휘지 않았다. 즉, 원래도 비슷한 힘으로 활시위를 당겼단 뜻이다.[29] 일부러 맞은 것이나 다름없는 오격발된 화승총 제외하고는 인간 중에서 정면으로 대적해 제대로 된 타격을 준 인물조차 없다.[30] 주요한 고뇌는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것인데, 양측 다 입체적으로 표현되고 각자의 입장이 있는 만큼 선하고 올곧은 캐릭터라 해서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31] 물론 인간이 계속 자연의 자원을 써가며 발전하는 한 회복력이 상대적으로 느린 자연 쪽이 더 소모전이 되기에 완전한 공존이라 보기엔 좀 어렵다 할 수 있다.[32] 이는 작중 주연급 인물들 중에서 인간과 동물, 양방향으로 소통이 가능한 유일한 인물로 그려지는 것에서도 나타난다. 동물은 산과 아시타카 이외의 인간과는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고, 산은 동물과 소통이 가능하지만 아시타카 이외의 인간과는 서로 소통하지 않아서 인간보다는 동물의 편에 서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단역까지 범위를 확장하면 나고신이 죽는 장면에서 에미시족의 점성술사 히이에게 말하는 장면은 있지만,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일방적으로 저주를 내뱉는 것뿐이라서 서로 소통이 가능한지는 확인되지 않는다.[33] 상술했듯이 마을의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장로들이 일족을 이끌어줄 지도자가 없음에 비통해하고 한탄하며 어쩔 수 없이 보낸 것이긴 하지만 형식상으로는 추방이 맞다. 하도 담담해서 오히려 관객이 작중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마저 있다. 작중 상황은 치료할 수 없는 끔찍한 저주를 받은 사람이 평생 살던 고향에서 영원히 추방당하는 상황인데 아시타카가 너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여서 관객 입장에서는 참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치료를 위해 잠깐 떠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을 정도. 실제로 이 때문에 엔딩 이후 아시타카가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자주 보인다.[34] 傳記가 아니라 𦻙記인데, 𦻙은 미야자키의 언급에 따르면 '정사에는 없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라는 뜻을 붙여 자신이 만든 한자라고 한다. 𦻙은 せつ라 읽는다고 하여 𦻙記의 독음은 せっき가 된다. 일본어 위키백과에 따르면 대만의 표준 한자 집합에 이 한자가 존재한다고 하는데, 聶의 오자이거나 대용 표기로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유니코드 CJK Unified Ideographs Extension B에 U+26ED9라는 코드가 할당되어 있어 입력하는 것은 가능하다. 일본에는 없는 한자다 보니 유니코드를 쓰지 않는 환경을 배려해 일본어 독음이 같은 聶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당연히 한국어 독음도 존재하지 않지만, 백괴사전에서는 '노래 제목 섭'이라는 독음을 달아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