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신기오로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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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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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주여진 추장 및 청 황실의 직계 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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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 신화 시기 ||[[아이신기오로 부쿠리용숀|포고리옹순]] ||
|| 건주여진 ||범차 | 동휘호 | [[아이신기오로 먼터무|맹특목]] | [[아이신기오로 판차|범찰]] | [[아이신기오로 충샨|동산]] | [[아이신기오로 톨로|타라]] | 탈원보 | [[아이신기오로 푸만|복만]] | [[아이신기오로 기오창가|각창안]] | [[아이신기오로 탁시|탑극세]] | [[천명제|노이합적]] ||
|| 황실 조상 ||[[아이신기오로 먼터무|조조]] | [[아이신기오로 충샨|동산]] | [[아이신기오로 시버오치피양구|석보재편고]] | [[아이신기오로 푸만|흥조]] | [[아이신기오로 기오창가|경조]] | [[아이신기오로 탁시|현조]] ||




근대 한자문화권의 황제 가문




1. 개요
2. 역사
3.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기억한다?



1. 개요[편집]


아이신기오로ᠠᡳᠰᡳᠨ ᡤᡳᠣᡵᠣ, 애신각라(愛新覺羅) 또는 애신교라는 후금청나라의 황실 가문이다. 만주 역사상 마지막 왕조이며, 중원과 중국인을 지배한 중원의 마지막 정복왕조이기도 하다.

영문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1660년에 아이신 기오로 가문의 핵심 지파는 378명이었고 1915년에 29,292명이었다"고 한다. 한편 중국어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최근 3세기 동안 후금(後金)과 청(淸)나라의 황제는 수많은 후비를 거느렸고, 그들의 자손도 공족(公族)의 지위로 인해 많은 첩을 거느린 데다 중국의 다자(多子)·다손(多孫)을 숭상하는 오랜 전통 풍습 때문에 애신각라 가문의 자손들이 빠르게 번성했다. 현재 애신각라씨는 30만~40만 명으로 추정된다."고 한다.[1] 청나라 멸망 직후 일부 만주족이 해외로 망명하기도 했기 때문에, 한국[2]러시아 등 중국의 주변국에도 아이신 기오로 가문의 생물학적 후손이 소수나마 존재할 것으로 추정된다. 청나라 멸망 직후 해외로 망명한 만주족의 후손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3] 일본에도 아이신 기오로 가문의 후손인 아이신카쿠라 이[4]가 있다.


2.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청나라/왕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청나라만주족 출신의 아이신기오로 가문에 의하여 세워졌다. 누르하치가 여진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1616년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金)[5][6]이라 하고, 허투 아라(흥경)에 도읍하였다. 이 사람이 청의 태조이며,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라고 불리었다.

청나라 멸망 이후에는 만주족들은 대부분 한족 성씨로 이름을 바꾸었다. 애신각라(아이신기오로)씨뿐만 아니라 뉴호록(니오후루)씨, 과이가(구왈기야)씨 같은 만주족 고관의 성씨들은 대부분 한족처럼 훈이나 음의 하나를 따서 한자성으로 바꾸었다. 아이신기오로씨는 김씨로 많이 바꾸었는데, 아이신(Aisin)이 을 뜻하기 때문이다.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였던 아이신기오로 푸이가 출신을 눈여겨본 일본에 의해 만주국의 황제로 추대되기도 하였으며, 만주국의 멸망과 함께 역사의 전면에서 사라졌다.


3.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기억한다?[편집]


일각에선 아이신기오로의 음차자를 사랑 애(愛), 새로울 신(新), 깨달을 각(覺), 그물 라(羅)자를 사용해 신라를 사랑하고 신라를 기억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며, "금나라, 청나라신라의 후예고 곧 한민족의 역사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근거가 없는 사실이다. 일단 기본적으로는 만주어 발음을 음차하여 쓴 낱말을 한자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데다 그 점은 차치하더라도 '애신각라'라는 표현은 문법상 '신라를 기억한다'로 해석할 건더기가 전혀 없다.[7]

원래 만주어로 아이신은 금(金), 기오로는 겨레라는 뜻인데 중국에서 발음이 비슷한 한자로 음차하다보니 애신각라가 된 것이다. 황실의 성을 음차하는 만큼 같은 발음이라고 해도 아무 글자나 쓰진 않았을 것이고 음차자 선정에 신경은 썼겠지만, 정말 신라를 생각했는지는 전혀 남아있는 관련 기록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근거가 없는 하나의 재미있는 상상에 불과할 뿐이다.

애당초 新과 羅 자체가 외국어를 한자로 음차할 때 상당히 자주 쓰이는 글자이다. 당장 신라부터 '사로'의 한자 음차이다.

또 각(覺)은 '(잠이나 꿈에서) 깨다', 혹은 '비교하다'는 의미로 쓰일 때에는 '교'라고도 읽힌다.(『당운(唐韻)』 외 참조.) 만주어 원 발음을 생각하면 각(覺)은 '기오'에 해당하는 음을 나타내기 위해 차용된 글자에 해당하므로 '각'으로 읽기 보다는 '교'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생각하면 더욱 '신라를 기억한다.'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의미 때문에 선택된 글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이와 별개로 금사송막기문 등에는 아이신기오로 가문이 세운 청의 전신인 금시조가 신라 혹은 고려 출신이라는 기록이 일관적으로 나타나며 청나라 황실이 편찬한 만주원류고에서도 이를 인용해 신라를 만주족의 원류중 하나로 다루고 있는 것은 참고할만한 내용이다. 물론, 금의 시조가 신라고려 출신이라고 해도 그것은 단순히 황실의 출신을 이야기하는 것일 뿐[8] , 의 역사를 한국사로 포함할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새로운 왕조가 세워졌을때 전통성과 권위를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조상이 예전에 굉장히 대단한 사람인것 처럼 포장하는건 동북아시아 전통이었기 때문. 나중에 청나라 황실은 송나라 장군 악비가 본인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정작 악비는 여진족 토벌한 사람이란 게 함정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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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문의 비핵심 인구까지 합치면 영문 위키의 서술과 배치되지 않는다.[2] 청나라 멸망 직후 일제 치하 조선으로 망명한 만주족이 일부 존재했다.[3] 만주국 멸망 직후나 문화대혁명이 있었던 시기에도 일부 만주족이 해외로 망명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4] 일본의 안과 전문의이며, 문춘 인터뷰에 의하면 청나라 3대 황제 순치제의 후손이라고 한다.# 푸이의 손자뻘 항렬이라 한다.[5] 후금(後金)이었다고 아는 사람이 많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원조 금나라와 구분하기 위해 부르는 별명일 뿐, 정식 국호는 그냥 금이었다.[6] 1636년에 국호를 청으로 변경했다.[7] 당초에 본문에 적시되어 있듯, '신라'도 후대에 마치 꿈보다 해몽 식으로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에서 땄다는 해석이 덧붙엇을 뿐이지 본래는 기존 신라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부르던 국호를 음차한 글자이다.[8] 현 스웨덴 왕실인 베르나도테 왕조시조가 프랑스 출신이라는 것과 같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