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신기오로 망구르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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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愛新覺羅莽古爾泰
(1587 ~ 1633)

청나라의 황족이자 명청전쟁의 명장. 태조 천명제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의 5남이었다.


2. 생애[편집]


팔기군 중 하나인 정람기(正蓝旗)의 기주로 1612년에 부친인 누르하치를 따라 해서여진의 우라부(오랍부)를 정벌하면서 강을 건너 공격하기를 요청했지만, 누르하치가 거부했고, 6개 성을 함락한 후에는 풀하 강으로 이동했다가 우라 강변에 목성을 건설해 병력 1,000명을 남겨 지키도록 했다.

1616년에 호쇼이 버일러가 되어 4대 패륵(四大貝勒)이라 칭해지며 국정을 다스렸고, 사패륵(四貝勒) 중에서 심패륵(이라치 버일러)이라 칭했다. 1619년에는 명나라를 상대로 펼쳐진 사르후 대전에 참전해 자이판에서 명나라 장수 두송의 공격을 막아내고, 아이신기오로 다이샨과 함께 사르후를 공격해 두송을 전사시킨 후, 누르하치를 따라 다른 명나라 장수 유정을 공격해 죽였다.

8월에는 해서여진의 예허부(엽혁부) 정벌전에 종군했고, 1620년에 명나라의 의로성 및 포성을 점령한 후 누르하치의 명령으로 정예 100명을 인솔해 명군을 추격했다. 1621년 진강의 수장이었던 진량책이 배반하고 모문룡에게 투항하자 다이샨과 함께 금주의 백성을 부주로 옮겼고, 1625년에 여순구를 공격해 함락시켰다.

동몽골 차하르부(찰합이부)의 링단 칸이 코르친(호르친)부를 침략해 극륵주이근성을 포위하자 코르친부를 구원해 링단 칸을 퇴각시켰으며, 1620년에 할하(칼카) 바린부를 정벌할 때 석랍목릉을 공격하면서 홀로 밤에 병력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 공격해 수많은 몽골군을 사로잡았다. 1627년에는 명나라의 우둔위를 공격하고, 탑산의 군량 운송로를 호위했으며, 1629년에는 아이신기오로 홍타이지를 따라 명나라를 공격하면서 아이신기오로 도르곤, 아이신기오로 도도와 함께 진군해 성을 투항시켰다.

이어서 명군의 조솔교를 공격해 격파하고, 부장 장조원을 사로잡았으며, 계속 진군해서 통주에 주둔해 북경에 육박했다. 이에 명나라의 여러 병력들이 구원을 와서 후금군을 공격하자 격파했으며, 홍타이지를 따라 계주로 들어가 산해관의 구원군을 격파했다. 1630년 2월에는 영평과 준화를 함락시키고 돌아가면서 명군과 조우하자 격파했고 1631년에는 대릉하성를 포위하면서 남쪽을 포위했다. 이때 동생 더거러이와 함께 바야라 병을 인솔해 서로 돕도록 했다.

명군에서 오양과 도장춘이 구원하러 오자 홍타이지를 따라 공격해 도장춘을 사로잡았으며, 이때 홍타이지에게 소속 병력이 많이 다쳤다고 말했다가 홍타이지가 꾸짖으면서 망구르타이 소속의 병력이 매번 명령을 어긴다는 것을 지적하자 격분하여 화를 냈다. 동생인 더거러이가 주먹으로 때리고 끌고 나가자 분노해 칼을 뽑았으며, 홍타이지로부터 친모를 죽인 자라고 비난받고, 불경죄로 호쇼이 버이러를 박탈당한 후, 도로이 버이러로 강등되고 벌금을 냈다.

홍타이지를 두려워해 가족들과 모의하여 황제 독살을 계획했지만 1632년 1월에 사망했다. 사후에 황제 독살 계획이 폭로되어 그의 가족들 중 독살 계획에 가담한 자는 처형되었고 가담하지 않은 아들을 추방되었으며, 망구르타이의 묘는 여러 장수들에 의해 파헤쳐져 시신이 훼손되었다가 홍타이지가 시신을 잘 거두라고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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