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자이 나가마사

덤프버전 :


제4대 아자이 당주
아자이 나가마사
浅井長政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76px-Azai_Nagamasa3.jpg

이름
카타마사(賢政) → 나가마사(長政)
출생
1545년
사망
1573년 9월 26일 (향년 28세)
신체
180cm
가족
부인 오이치
요도도노, 죠코인, 스겐인
손자 토요토미 히데요리


파일:600px-Japanese_Crest_mitumori_Kikkou_ni_Hanabishi.svg.png

아자이 가문의 거북 등딱지 세 칸과 마름모 꽃 가몬




1. 개요[편집]


센고쿠 시대 오우미 지방(지금의 시가현)을 지배했던 아자이 가문 4대이자 최후의 당주.[1]

본인은 전쟁에서 패배해 멸망했지만 살아남은 딸들의 혼맥이 대단했다.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는 사돈이며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는 장인어른이고 도쿠가와 이에미츠, 센히메의 외조부가 된다. 또한 오다 노부나가에게는 매제가 되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장인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1545년 오미국 간논지성에서 아자이 히사마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자이 가문은 당시 남부 오미의 슈고 롯카쿠 가문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인질로 가게 되었다.

당주가 되면서 롯카쿠 요시카타의 신하라는 의미로 요시카타의 이름에서 글자를 따와 카타마사(賢政)라는 이름으로 개명했다.

오다 노부나가막부를 손에 넣기 위해서 상락[2]을 하려는 길목에 아자이 가문의 거성이 위치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군사력을 소비하지 않으려는 오다와 오다 가문이 더욱 크게 될 것임을 알아봤... 다기보다 남쪽에 롯카쿠라는 강력한 적이 있던 아자이가는 미노 지방의 세력과는 싸우고 싶어하지 않았다.

오다 이전 미노의 주인이던 사이토 가와도 혼인 관계를 맺었던 것처럼 동맹을 맺고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인 오이치와 정략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실제로 오다 이전 미노의 주인이던 사이토 가와 혼인 관계를 맺고 있었던 건 아자이 가가 아니라 남오미를 지배하고 있던 롯카쿠 가였다.

롯카쿠 가와 동맹 상태에 있던 사이토 가를 오다 군이 공격할 기세를 보이자 롯카쿠 가를 견제하기 위해 오다와 혼인 동맹을 맺은 것이라고 보는 게 맞으며, 롯카쿠 가문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과 결혼했던 롯카쿠 가문의 가신인 히라이 사다타케의 딸을 돌려보내면서 이름을 나가마사로 고쳤다. 참고로 이 딸과의 사이에서 낳았다고 알려진 아이가 이후 정실인 오이치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있는 그의 장남 만푸쿠마루이다.

사이토 요시타츠가 1561년 사망한 후 뒤를 이은 사이토 다쓰오키는 오다가 전방에서 압박해오자 후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나가마사에게 동맹을 제안하지만 노부나가가 선수를 쳐 나가마사와 노부나가는 동맹 관계를 맺게 되고 1563년 나가마사는 미노 국을 공격한다. 이 때 나가마사가 미노 국을 공격한 틈을 타 롯카쿠가 빈집털이를 시도하자 나가마사는 그대로 군대의 방향을 돌려 롯카쿠를 털어버린다.

원래 아자이 가문의 오랜 맹우인 아사쿠라 가문과 오다 가문은 매우 사이가 나빴는데, 이 때문에 동맹을 맺을 때 '아사쿠라 가문을 말없이 공격하지 말 것', '아사쿠라 가문을 공격하게 될 때에는 먼저 이쪽에 알릴 것'이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그 후 상락에 성공하고 더욱 세력을 확장하던 오다군이 협정을 깨고 포고없이 아사쿠라군을 공격하자, 아자이 나가마사는 고민 끝에 결국엔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효와 맹우에 대한 오랜 의 때문에 오다 가와의 동맹을 파기, 오다군을 공격했고, 궁지에 몰린 오다군은 가네가사키 전투에서 간신히 퇴각했다. 그 후 오다-도쿠가와 연합군을 맞아 제대로 된 일전을 치룬 아네가와 전투에서 패해 타격을 입었지만 반노부나가 포위망이 결성되면서 당장 주도권을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부가나는 전황이 불리할 때 천황의 화합하라는 조정서신을 이용하여 시간을 벌었고, 반면 아자이 나가마사의 동맹인 아사쿠라 가문의 영주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종종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3] 유리한 기회를 살리지 못했고, 반노부나가 포위망이 다케다 신겐의 사망으로 서서히 와해되기 시작하면서 주도권이 오다 노부나가에게 넘어갔고 결국엔 아자이 나가마사의 거성인 오다니 성이 노부나가의 대군에게 포위되고 만다. 아사쿠라 요시카게는 뒤늦게 아자이 나가마사를 구원하러 출병했지만, 여의치 않아 퇴각하는 도중 오다군과 싸워 도네가사키 전투에서 참패했다. 아자이 가문보다 강성한 아사쿠라 가문이 이 싸움 한 번에 오히려 아자이 가문보다도 먼저 멸망해버리고 말아, 이제 아자이 나가마사를 구원할 세력은 없어졌다.

노부나가는 단번에 진격하지 않고 여러 차례에 걸쳐 항복을 권고했는데, 만약 항복을 한다면 야마토국[4]에 새로운 영지를 준다는 - 배반을 싫어하는 노부나가에게 있어서는 파격적인 제안[5][6]이었다. 후와 미쓰하루(不破光治, ? ~ 1583), 기노시타 히데요시등도 사자로 보냈지만 나가마사는 계속 거절해 최종 권고도 결렬됐다.

나가마사와 사이가 화목했던 오이치는 운명을 함께 할 생각이었으나, 나가마사의 권고로 친정인 오다 가문으로 돌아갔다. 오이치가 노부나가의 진영에 귀환할 때, 아자이·오다군도 일체의 공격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지며 오이치가 무사히 돌아간 후 자결하였다고 한다. 노부나가는 나가마사와 그의 아버지 아자이 히사마사의 해골을 금칠해 술잔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기록이 일차사료인 신장공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 두 사람의 해골은 현재 일본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당시의 관습상 성이 함락되면, 성주와 그의 식솔은 자결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오다 노부나가도 아끼던 여동생 오이치의 죽음을 각오한 냉정한 전투였다. 이때 오이치가 살아서 성을 나올 수 있도록 활약한 것이 기노시타 히데요시였다. 이 공으로 히데요시는 아자이 나가마사가 다스렸던 북 오우미국의 영지를 고스란히 물려받고, 나가하마 성을 증축하고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일국의 성주가 되었다.

나가마사와 오이치 사이에서 난 자식 중 장녀가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생모인 오차차(요도도노)이다. 삼녀 오에요(스겐인)는 도쿠가와 막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에게 시집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를 낳았으며 그 뿐만 아니라 히데타다와 스겐인의 딸인 도쿠가와 마사코(徳川和子)[7]가 108대 천황인 고미즈노오 덴노에게 시집가서 딸을 낳았는데 이 딸이 바로 109대 메이쇼 덴노가 된다. 즉 나가마사는 도쿠가와 막부 쇼군의 외조부이자 천황의 외증조부가 되는 셈.[8] 차녀 오하츠도 유서 깊은 명문인 교고쿠 가에 시집갔다.

장남인 만푸쿠마루는 아자이가가 멸망하자 처형됐으며 이때 나이 9살이었다. 차남인 만주마루는 절에 보내져 주지승려가 되었다. 한편 오사카 성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사나다 10용사 중 네즈 진파치의 모델로 여겨지는 아자이 이요리는 3남이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9]


3. 기타[편집]


나가마사 본인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따지고 보면 결과적으로 오다, 도요토미, 도쿠가와의 3가문은 물론 천황 가문과도 인척관계를 맺게 된 후덜덜한 인물이다. 이래저래 딸 농사는 제대로 대박을 친 셈인데, 노부나가와 척지지 않았다면 노부나가 사후 또는 도쿠가와 바쿠후 성립이후에는 마에다 토시이에 가문처럼 신판 다이묘(親藩大名)급 대접 받는 일본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권력을 지닌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혔을지도 모른다. 중국 남북조 시대 말기의 독고씨와 흡사하다.

일본 전국시대의 몇 안 되는 진정으로 충과 의를 위해 살았던 인물로 여타 매체에서 그려지지만 나가마사가 아버지를 은거시키고 그 자리에 앉았다는 것과, 정작 자신이 모셔야 할 막부에게도 충성하지 않았는데 정말 진정으로 충과 의를 위해 살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그러나 비교적 근년의 연구에 의하면 나가마사가 15살 때 아버지 히사마사를 은거시키고 당주 자리를 계승받은 것은 롯카쿠 가로부터 독립을 꾀하기 위해 아버지 히사마사와 아들 나가마사 그리고 가신들이 펼친 연극이라는 학설이 우세하다. 막부에게도 충성을 다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억지인 것이 나가마사는 직접 롯카쿠 가 공격에 나서며 노부나가의 상경을 물심양면 도왔다.[10]

여담으로 아자이 가의 가신으로 아자이 가문의 3대 무장으로 불렸던 인물인 아메노모리 기요사다(雨森清貞, ? ~ 1573)가 아메노모리 호슈의 직계 조상이다.[11]


4. 창작물에서[편집]


일본에서는 은근히 인기가 있는 전국무장인지 창작물에서는 정의의 사자 스타일의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전국무쌍과 전국바사라가 대표적.

어째서인가 노부나가를 배신한 것이 자의가 아닌 듯한 묘사가 있는 경우도 많다. 본인은 배신할 의사가 전혀 없었으나 가신들의 등쌀에 밀린다든지 심지어는 아버지가 먼저 저질러버려서 돌이킬 수 없었다든지. 그 외에는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간 노부나가를 이해하지 못해 불안감으로 배신한 것으로 표현된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노부나가와의 의사소통 트러블로 인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 문서 상단의 초상화에서 알 수 있듯이 실제 나가마사는 후덕한 풍채였는데 창작물에서는 어쩐지 미청년 스타일로 묘사되곤 한다[12]. 당시 기준에서는 미남이라는 설이 있어서 그런 걸지도...


4.1. 전국무쌍 시리즈[편집]


아자이 나가마사(전국무쌍) 참조.


4.2. 전국 바사라 시리즈[편집]


아자이 나가마사(전국 바사라) 참조.


4.3.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편집]


파일:浅井長政1.jpg
파일:浅井長政.jp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파일:浅井長政30.jpg
노부나가의 야망 대지

능력치는 통솔, 무력 80대중반에 지력은 초기에서는 낮아지만, 최근에는 70대로 상향 정치는 60대초반이나 50대중반이고 의리는 90대을 찍는다. 기마에 관련된 특기를 가지고있다. 의리남이라 의리가 높지만 아버지 보단 낮다.

노부나가의 야망 천도에서는 통솔 84 무력 87 지력 70 정치 51 의리 93 돌격지삼을 가지고 있다.

노부나가의 야망 창조에서 통무지정 순으로 각각 83/86/72/52. 이전 작들과 크게 차이가 없다고 느낄 진 모르겠지만 기존 시리즈들인 혁신, 천도에서는 기본 최대 능력치가 120이고 신작 창조에서는 기본 최대 능력치가 100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상향되었다고 할 수 있다. 능력 발전 타입은 '야차'형 타입으로 능력 성장은 전형적인 맹장형 성장 타입.

별 볼 일없는 군소 지방 영주였음에도 나름의 전국전이 몇 가지 갖추어져 있는 등[13] 이번 작에서의 나가마사는 상당히 대우가 좋은 편이다. 휘하 인재 진영도 아카오 키요츠나, 카이호 츠나치카, 안요우지 우지타네 등 군소 영주치고는 나쁘지 않은 능력치의 가신들을 두고 있고 오다 가문과 적대하지 않고 버티면서 기다리다보면 실제로 북오우미 출신 인물들인 이시다 미츠나리, 오타니 요시츠구 등의 A급 인재들이 아자이 가문 영내에 등장해서 등용할 수 있게 된다.

아네가와 전투에서 노부나가를 상대로 크게 선전했던 점, 노라다 전투에서 수적으로 우세한 롯카쿠 요시카타를 박살내버린 점 등에서 전반적인 평가 상향이 이루어진 듯하고 실제 플레이에서도 '신장포위망' 시나리오 전까지는 군소 세력치고는 그렇게 플레이 난이도가 높지도 않다. 신장포위망 이전 시간대의 시나리오에서 아자이 가문을 이끌 경우, 전국전이 꼬일 각오를 하고 국력을 꾸역꾸역 모아서 남오우미의 영주인 롯카쿠 가문을 멸망시키고 기나이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이 좋다. 롯카쿠 사다요리가 생존하고 있는 극초반부 시나리오가 아닌 이상, 기본적으로 롯카쿠 가문의 인재풀은 아자이 가문보다 훨씬 좋지 않고,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남오우미와 북오우미의 생산력 차이도 그렇게 차이가 크지는 않기 때문에 빠르게 국력을 축적해서 몇 차례 전투에서 승리만 한다면 롯카쿠 가문을 수월하게 집어삼킬 수 있다. 혹은 롯카쿠와 싸우기 전에 여유가 된다면 와카사의 타케다 가문[14]을 멸망시키고 와카사를 점유해서 국력을 키우는 것도 좋은 방법.

일단 롯카쿠를 멸망시키고 오우미만 석권해도 아자이 플레이의 거진 반은 성공했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와카사까지 먹어놓았다면 말할 것도 없고. 물론 난이도 상급 기준으로 강한 생산력을 자랑하는 영지인 오와리를 가지고 있는 오다 가문이 무섭기도 하고 거기에 전국전 발동이나 혹은 '천하포무' 시나리오여서 이미 오다 노부나가가 미노까지 장악하고 있는 경우에는 오다같은 강한 가문이 후방에 도사리고 있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러워지기 때문에 오다 가문에 가보를 선물로 주고 관계를 신뢰로 만든 뒤, 외교 공작을 꾸준히 해서 신용도를 쌓아서 오다 가문과 결혼 동맹을 해놓는 것이 좋다. 굳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아자이 가문으로 롯카쿠를 멸망시켰다는 전제 하에 오다 가문의 전국전 이벤트가 몽땅 막혀버리기 때문. 오다 전국전은 오다 노부나가가 미노를 석권하고 아자이와 혼인 동맹을 하고 롯카쿠를 토벌한 뒤, 교토로 상락하는 순서인데 롯카쿠가 이미 멸망해있으면 애시당초 오이치와 아자이 나가마사의 혼인 동맹 전국전도 발동되지 않기 때문에 플레이어 아자이가 오다 가문과 싸우고 싶지 않다면 외교 공작을 통해 직접 신용도를 올려서 결혼 동맹하는 수 밖에 없다.

여튼 오다 가문과 (매우 어렵지만)싸워서 멸망시켜버리던 동맹을 맺던 간에 후방을 안정화시키기만 하면 기나이 내의 군소 세력들은 아자이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미요시 가문은 세력 규모에 비해 상당히 허당이며[15] 그 미요시 가문 외에 기나이 내에서 그렇게 강한 세력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 따라서 쓰쓰이, 마츠나가, 미요시, 스즈키 등을 각개격파해서 기나이를 석권한다면 이후부터는 통일을 바라보는게 매우 쉬워진다.

단 이는 어디까지나 '신장포위망' 시나리오 이전의 얘기이며 '신장포위망' 시나리오에서는 이미 롯카쿠 가문이고 기나이고 뭐고 아자이 가문으로 진출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구역이 오다 가문에게 먹혀있는 상태이고 심지어 북쪽의 와카사는 영구 동맹 상태의 가문인 아사쿠라가 점유하고 있는 상태라서 뭐 외부로 진출해서 국력을 키운다던가할 건덕지가 전혀 없는 상황. 물론 난이도 초급이라면 전투에서 꾸역꾸역 이겨서 오다의 영지를 잠식하면 되겠지만 상급 기준으로는 기본적인 국력과 물량 수급력의 차이가 너무 심해서 오다 노부나가와의 정면 승부는 게임 오버로 향하는 지름길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이 시나리오에서의 아자이 나가마사 플레이는 이전 시간대의 시나리오들에 비하면 난이도가 그야말로 헬로 수직 상승하는 수준. 아예 노부나가를 상대하지 않고 도망쳐서 다른 곳으로 살림을 차리는 플레이가 쉬운 방법으로 선호되는 편인데 보통 그 희생양은 제일 가까운 단고의 잇시키 가문. 혹은 아예 노부나가 포위망 연합에서 탈퇴해버리고 아사쿠라와의 영구 동맹을 파기한 다음, 아사쿠라를 쳐서 와카사, 에치젠을 먹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일단 기본 국력부터 아사쿠라 가문이 아자이보다 강할 뿐더러 멋대로 연합에서 탈퇴한데다 동맹까지 무단 파기할 경우, 창조에서는 곧바로 거의 모든 영주들의 플레이어 가문에 대한 태도가 '배신을 경계한다' 상태로 바뀌며 이렇게 될 경우, 외교 공작이 무지막지하게 어려워져서 오다에게 대항하기도, 오다에게 붙기도 힘들어진다. 그야말로 사방이 적이 되어버린다. 공략법은 우선 칸논지성을 포위망 원군요청을 이용해서 점령한 뒤에 아시카가와 근접한 오다의 지성 또한 원군요청을 이용해서 계속 점령해 나간다. 그 뒤에 포위망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때쯤 아시카가의 니죠고쇼를 차지하고 오다와는 선물공세를 이용해서 동맹을 계속 유지해 나가면 난이도가 갑자기 내려가기 시작한다. 아시카가 요시아키, 난코보 텐카이같은 내정머신이 굴러들어 오는건 덤.


4.4. 태합입지전[편집]


태합입지전5에서도 미청년의 일러스트. 능력치 자체는 그럭저럭이고..는 통솔이 87이나 되지만 문제는 기본 정치가 40대에 지력이 60대인데다가[16] 기능쪽이 전무하다시피 해서 CPU가 잡으면 답이 안나온다. 플레이어가 잡으면 오다가와 동맹인걸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직접 플레이시 노부나가가 아사쿠라를 공격하는 이벤트에서 노부나가에 붙을지 뒤치기를 할지 선택 가능한데 역사대로 뒤치기를 할 경우 카네가사키 전투 → 아네가와 전투(승패는 특별히 관계없다)후 오다와 절교하는 시궁창 미래가 기다리고 있고, 노부나가에 붙을 경우 오다와의 동맹관계는 유지되나 아사쿠라와 절교하게 된다.


4.5. 센고쿠[편집]


파일:external/gdimg3.gmarket.co.kr/130814599.jpg
최후를 맞는 센고쿠 13권의 커버

처음엔 그야말로 상병신, 상찌질이로 나왔다가 노부나가를 치게 되면서 급 각성, 두번의 각성을 통해 영웅의 풍모를 드러내게 된다. 결국 죽게 되지만 1부의 최종보스급 기믹으로, 노부나가의 애증의 매부로 격상한다. 오이치와의 관계도 처음엔 매맞는 남편(...)에서 나중에는 오이치가 그를 떠나지 못하는 수준. 노부나가를 사랑했으나, 노부나가를 치지 않으면 자신이 전국다이묘의 꿈을 꿀 수 없어 각성할 수 없음을 알고 할 수 없이 끝까지 대립하다가 할복한다.


4.6. 센고쿠히메[편집]


떡대 좋게 생긴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있다. 1편에선 혼자였지만 2편에선 도도 다카도라에다 해적우[17] 레인저[18]까지 거느린다. 하지만 3편에선 무녀복장의 보이쉬한 소녀로 변경, 더불어 해적우 레인저는 모두 삭제크리.


4.7. 오다 노부나의 야망[편집]


오다 노부나와 결혼동맹을 맺으려 했으나 오다가가 세력이 커지면서 실패한다. 하필 결혼 소문까지 나서 결혼을 하지 않으면 개망신을 당할 지경에 이르자 어떻게든 결혼동맹을 맺으려고 사정한 탓에 노부나의 여동생인 오이치와 결혼하게 된다. 사실 그 오이치는 노부나가 남동생인 오다 노부카츠를 여동생이라고 속이고 보낸 것. 그런데 사실 나가마사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엄격한 아버지 때문에 남장을 하고 살았다고 한다. 나가마사는 노부나가 자신이 여자였다는 걸 알고 남자를 보냈다며 놀라지만 노부카츠는 그건 아니라고 답한다. 그래도 부부사이는 좋았던 모양. 노부카즈는 그녀를 오이치라고 부른다.

이후 아버지 때문에 오다 가를 배신하고 아사쿠라가와 연합하는 바람에 남편과 헤어진다. 그리고 가문은 홀라당 망하고 자살까지 생각하나 아버지의 유언으로 포기한다. 그리고 노부나의 여동생 오이치가 되어서 츠다 노부즈미[19]의 아내로 산다.

수많은 미디어 믹스에서 아자이 나가마사는 풍비박산에 사망까지 한다는 걸 생각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잘 지내게 됐으니 제일 잘 된 경우.

4.8. 노부나가의 시노비[편집]


근육신봉자로 나와서 근육관련 개그를 펼친다. 손윗처남인 노부나가를 존경하며 아내 오이치와의 금슬도 좋고, 딸 차차히메도 아끼는 좋은 남편이자 군주로 나오지만 역사대로 아사쿠라 가문 문제로 결국 노부나가와 결별, 접전 끝에 할복한다.


4.9. Fate/Grand Order[편집]


처형에게 여러모로 고인드립을 많이 당한다. 발렌타인 이벤트 때 놋부가 주는 초콜릿이 그의 해골 모양이라던지, 버서커 놋부가 그의 해골에 금박을 입혀 만든 잔이 성배보다 대단하다고 자랑한다던지... 거기다 어벤저 놋부는 스킬모션이 해골잔으로 술마시는 거다.

딸내미는 아버지를 죽인 노부나가나 히데요시보다는 도쿠가와에게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다.


4.10. 인왕 2[편집]


보스로 등장한다. 역사대로 노부나가 세력과 전쟁을 벌이고, 주인공 히데치요와 마주하자, 자신의 수호령 히요쿠쵸[20]와 융합하여 요괴가 되어 주인공에게 싸움을 건다. 주인공에게 패배하자, 주인공에게 오이치를 지켜달라고 부탁하고는 숨을 거둔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7 08:28:24에 나무위키 아자이 나가마사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참고로 아자이는 아사이라고도 읽을 수 있다.[2] 천황이 있는 교토로 올라가는 것. '락' 자는 교토의 옛 별명이 낙양이었기 때문이다.[3] 오다 노부나가의 상경(오다 노부나가의 패권을 인정) 요구를 아사쿠라 요시카게가 거부해서 전쟁이 일어났음에도, 아네가와 전투에서는 아사쿠라 요시카게 본인이 참전하지 않았고 이후 다케다 신겐과 발을 맞추어 출병했을 때도 적설을 핑계로 독단으로 철군해버렸다.[4] 지금의 나라현[5] 그래서 일부 창작물 등에서는 친동생인 노부유키(또는 노부카츠) 대신 동생처럼 아끼는 사이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한번 동생에게 배신당한 노부나가가 인간불신에 빠지며 제육천마왕이 되어가는 묘사를 집어넣는데, 의외로 설득력이 있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NHK 대하드라마 중 한편인 공명의 갈림길에서도 그 해골을 황금잔으로 바꿔 술을 따르며 "난 그대를 정말 아꼈다네"라는 대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설의 영향인 듯.[6] 다만 아무리 배신을 싫어하는 노부나가였다고 하더라도 애당초 아자이 가문이 배반한 이유는 아사쿠라를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였고 엄밀히 따지면 노부나가가 아자이 가문과의 약속을 먼저 어긴 셈이었으므로 오히려 아자이 나가마사가 아사쿠라 가문과의 의리를 지킨 것을 배신을 싫어하는 노부나가의 입장에서는 매우 높게 평가할 일이었다. 그런 아자이 가문을 확실히 포섭할 생각이었다면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7] 본래는 '카즈코'라고 읽는데, 일본 황실에서 탁음을 꺼리는 관습이 있어서 입궁 당시 읽는 음을 바꿨다고 한다.[8] 그래서 죽은 뒤인 1632년에 정2위 중납언에 추증되었다.[9] 태합입지전 5에서는 서로 다른 인물로 나오며 아자이 이요리는 사나다 10용사에 포함되지도 않는다.[10] 다만 아자이가는 오우미 반국 수호 교코쿠가의 가신이었으나 주가인 교코쿠가를 허수아비 취급하였다.[11] 나머지 두 사람은 아카오 기요쓰나(赤尾清綱, 1514 ~ 1573)와 카이호 쓰나지카(海北綱親, 1510 ~ 1573). 이 세 사람의 머릿글자를 모아서 카이세키 산쇼(海赤雨 三將(해적우 삼장), かいせきうさんしょう)이라고 일컬어지는 중신들이었다.[12] 하기야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가끔씩 약간 기름진 모습으로 나오긴 했다만... 그래서인지 몰라도 센고쿠(만화)와 센고쿠히메에선 사각턱에 후덕한 용모로 나왔다.[13] 아버지 히사마사를 은거시키고 당주 등극하는 이벤트, 롯카쿠 요시카타를 노라다 전투에서 격파하는 전국전,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인 오이치와 혼인하여 오다 가문과 결혼 동맹을 맺는 전국전 등[14] 다케다 신겐으로 유명한 카이의 타케다가 아니다. 하지만 모든 타케다씨는 카이 타케다에서 갈라져 나왔으니 따지고보면 먼 친척으로 일문이다.[15] 물론 미요시 나가요시 생존 상황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겠지만 보통 이 시점에 나가요시는 살아있지 않다.[16] 지력은 룰렛 돌리면 가끔 운좋게 70대가 나온다.[17] 가이후 츠나치카, 아카오 키요츠나, 아베노모리 헤야오[18] 대놓고 가면라이더 패러디다.[19] 노부카즈가 미소년에서 청년이 되면서 바꾼 이름.[20] 두 머리의 물새의 모양을 한 수호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