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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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다이쇼 덴노의 자녀
3. 쇼와 덴노의 자녀
4. 황실 가계도




1. 개요[편집]



현재 일본 황실의 심각한 남성 부족 현상을 나타내기 위해 편의상 다이쇼 덴노의 자녀와 쇼와 덴노의 자녀도 함께 표기했다. 아래의 가족관계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여성 황족도 결혼하여 미야케(宮家)[1]를 창설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 다시 말해 계속 황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나, 신적강하(神籍降下) 때 평민이 된 미야케들을 다시 복권시키자는 주장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노란색은 천황을 나타낸다. 현재 생존한 황위 계승권자는 주황색으로 나타냈다.


2. 다이쇼 덴노의 자녀[편집]


이름
하루노미야 요시히토 친왕(明宮嘉仁親王) → 다이쇼 덴노(大正天皇) 1879.8.31 ~ 1926.12.25
아내
구조 사다코(九條節子) → 데이메이 황후(貞明皇后) 1884.6.25 ~ 1951.5.17
자녀
1남
이름
미치노미야 히로히토 친왕(迪宮裕仁親王)
쇼와 덴노(昭和天皇) 1901.4.29 ~ 1989.1.7
2남
이름
지치부노미야 야스히토 친왕(秩父宮雍仁親王) 1902.6.25 ~ 1953.1.4
아내
마츠다이라 세츠코(松平節子)
야스히토 친왕비 세츠코(雍仁親王妃勢津子) 1909.9.9 ~ 1995.8.25
3남
이름
다카마쓰노미야 노부히토 친왕(高松宮宣仁親王) 1905.1.3 ~ 1987.2.3
아내
도쿠가와 키쿠코(德川喜久子)
노부히토 친왕비(宣仁親王妃) 키쿠코(喜久子) 1911.12.26 ~ 2004.12.18
4남
이름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三笠宮崇仁親王) [2] 1915.12.2 ~ 2016.10.27.
아내
다카기 유리코(高木百合子)
다카히토 친왕비(崇仁親王妃) 유리코(百合子)[3] 1923.6.4 ~ 현재
자녀
1녀
이름
야스코 내친왕(甯子內親王)
고노에 야스코(近衞甯子) 1944.4.26 ~ 현재
남편
고노에 다다테루(近衞忠煇)[4] 1939.5.8 ~ 현재
1남
이름
토모히토 친왕(寛仁親王)[5] 1946.1.5 ~ 2012.6.6
아내
아소 노부코(麻生信子)
토모히토 친왕비 노부코(寬仁親王妃信子)[6] 1955.4.9 ~ 현재
자녀
1녀
아키코 여왕(彬子女王)[7] 1981.12.20 ~ 현재
2녀
요코 여왕(瑤子女王) 1983.10.25 ~ 현재
2남
이름
가쓰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桂宮宜仁親王)[8] 1948.2.11 ~ 2014.6.8
2녀
이름
마사코 내친왕(容子內親王)
센 마사코(千容子) 1951.10.23 ~ 현재
남편
센 소시쓰(千宗室) 1956 ~ 현재
3남
이름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高円宮憲仁親王)[9]
1954.12.29 ~ 2002.11.21
아내
톳토리 히사코(鳥取久子)
노리히토 친왕비 히사코(憲仁親王妃久子) 1953.7.10 ~ 현재
자녀
1녀
쓰구코 여왕(承子女王) 1986.3.8 ~ 현재
2녀
노리코 여왕(典子女王)
센게 노리코(千家典子)[10] 1988.7.22 ~ 현재
3녀
아야코 여왕(絢子女王)
모리야 아야코(守谷絢子)[11] 1990.9.15 ~ 현재
다이쇼 덴노의 아들 4명과 그 후손들을 살펴보면, 장남 쇼와 덴노와 그 후손을 제외하고 현재 생존한 왕위계승권자는 고작 3명에 불과했는데 토모히토 친왕이 2012년 6월 6일 암으로 사망했고,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마저 독신인 채 사망하면서, 아키히토 덴노의 숙부인 미카사노미야 만 남았다.

게다가 노령의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의 경우 3남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을 보낸 지 10년 만에 장남 토모히토 친왕을 자신보다 먼저 보낸 충격으로 입원, 결국 타계하였다. 설상가상으로 2년만에 차남 가츠라노미야 요시히토 친왕마저 떠나버렸다. 또 2년 뒤에 다카히토 친왕이 세상을 떠나면서 계승권자는 4명밖에 안 남았다.


3. 쇼와 덴노의 자녀[편집]


이름
미치노미야 히로히토 친왕(迪宮裕仁親王) → 쇼와 덴노(昭和天皇) 1901.4.29 ~ 1989.1.7
아내
나가코 여왕(良子女王) → 고준 황후(香淳皇后) 1903.3.6 ~ 2000.6.16
자녀
1녀
이름
데루노미야 시게코 내친왕(照宮成子內親王)
모리히로 왕비 시게코 내친왕(盛厚王妃成子內親王)
히가시쿠니 시게코(東久邇成子) 1925.12.6 ~ 1961.7.23
남편
모리히로 왕(盛厚王)
→ 히가시쿠니 모리히로(東久邇盛厚)[12] 1917.5.6 ~ 1969.2.1
2녀
이름
히사노미야 사치코 내친왕(久宮祐子內親王) 1927.9.10 ~ 1928.3.8
3녀
이름
다카노미야 가즈코 내친왕(孝宮和子內親王)
다카쓰카사 가즈코(鷹司和子) 1929.9.30 ~ 1989.5.26
남편
다카쓰카사 도시미치(鷹司平通) 1923.8.26 ~ 1966.1.27
4녀
이름
요리노미야 아츠코 내친왕(順宮厚子內親王)
이케다 아츠코(池田厚子) 1931.3.7 ~ 현재
남편
이케다 다카마사(池田隆政) 1926.10.21 ~ 2012.7.21
1남
이름
쓰구노미야 아키히토 친왕(繼宮明仁親王)
아키히토(明仁) 1933.12.23 ~ 현재
아내
쇼다 미치코(正田美智子)
미치코 상황후(美智子上皇后) 1934.10.20 ~ 현재
자녀
1남
이름
히로노미야 나루히토 친왕(浩宮德仁親王)
나루히토(德仁) 1960.2.23 ~ 현재
아내
오와다 마사코(小和田雅子)
마사코 황후(雅子皇后) 1963.12.9 ~ 현재
자녀
1녀
아이코 내친왕(愛子內親王) 2001.12.1 ~ 현재
2남
이름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秋篠宮文仁親王) 1965.11.30 ~ 현재
아내
가와시마 키코(川嶋紀子)
후미히토 친왕비(文仁親王妃) 키코(紀子) 1966.9.11 ~ 현재
자녀
1녀
마코 내친왕(眞子內親王)
코무로 마코(小室眞子) 1991.10.23 ~ 현재
2녀
카코 내친왕(佳子內親王) 1994.12.29 ~ 현재
1남
히사히토 친왕(悠仁親王) 2006.9.6 ~ 현재
1녀
이름
노리노미야 사야코 내친왕(紀宮淸子內親王)
구로다 사야코(黒田淸子) 1969.4.18 ~ 현재
남편
구로다 요시키(黒田慶樹) 1965.4.17 ~ 현재
2남
이름
히타치노미야 마사히토 친왕(常陸宮正仁親王) 1935.11.28 ~ 현재
아내
츠가루 하나코(津輕華子)
마사히토 친왕비 하나코(正仁親王妃華子) 1940.7.19 ~ 현재
5녀
이름
스가노미야 타카코 내친왕(清宮貴子內親王)
시마즈 타카코(島津貴子) 1939.3.2 ~ 현재
남편
시마즈 히사나가(島津久永) 1934.3.29 ~ 현재
왕위계승권자가 부족한 건 쇼와 덴노의 후손들도 마찬가지. 일단 아키히토 덴노에게는 4명의 누나와 1명의 여동생이 있으며, 남동생이라고는 마사히토 친왕 하나뿐인데 자녀 없이 여든을 넘겼다. 아키히토 상황은 2남 1녀를 낳았지만 장남 나루히토 황태자는 딸만 하나이고, 차남 후미히토 친왕은 둘을 얻은 뒤 늦둥이 외아들을 두었다.

그리고 2019년 5월 1일에 장남 나루히토가 즉위함으로써 3명[13]의 황위 계승권자만이 남았다.


4. 황실 가계도[편집]



파일:일본 황실.svg 다이쇼 덴노
(1879년~1926년)







파일:일본 황실.svg 쇼와 덴노
(1901년~1989년)







히가시쿠니 시게코
(1925년~196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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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메이 황후
(1884년~1951년)






고준 황후
(1903년~2000년)










































         






















































친왕비 세츠코
(1909년~1995년)






         
















































다카쓰카사 가즈코
(1929년~1989년)











































친왕비 키쿠코
(1911년~2004년)






다카쓰카사 도시미치
(1923년~1966년)









































         







이케다 아츠코
(1931년 출생)














































이케다 다카마사
(1926년~2012년)














































파일:일본 황실.svg 상황 아키히토
(1933년 출생)







파일:일본 황실.svg 천황 나루히토
(1960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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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후 미치코
(1934년 출생)






황후 마사코
(1963년 출생)
























































코무로 마코
(1991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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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왕비 하나코
(1940년 출생)






황사비 키코
(1966년 출생)






코무로 케이
(1991년 출생)










































시마즈 타카코
(1939년 출생)







구로다 사야코
(1969년 출생)







카코 내친왕
(1994년 출생)








































시마즈 히사나가
(1934년 출생)





구로다 요시키
(1965년 출생)














































고노에 야스코
(1944년 출생)










히사히토 친왕
(2006년 출생)









  ╟─




























친왕비 유리코
(1923년 출생)






고노에 다다테루
(1939년 출생)


















































아키코 여왕
(1981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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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왕비 노부코
(1955년 출생)




















































요코 여왕
(1983년 출생)


















































































센 마사코
(1951년 출생)












































센 소시츠
(1956년 출생)


















































쓰구코 여왕
(1986년 출생)


















  ╟─
























친왕비 히사코
(1953년 출생)
















































센게 노리코
(1988년 출생)












































센게 구니마로
(1973년 출생)












































모리야 아야코
(1990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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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야 케이
(1985년 출생)





[1] 황족 가문[2] 2016년 10월 27일 타계할 당시까지 남성 황족 중 최연장자였다. 참고로 이 사람은 2004년 NHK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 대학살에 대해 잘못을 시인했다고 한다.[3] 현재 100세로, 생존한 여성 황족 중 최연장자.[4] 고노에 후미마로의 외손자.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의 친동생. 본래 이름은 호소카와 모리테루(細川護煇)였으나 외가인 고노에 가문에 양자로 가면서 개명.[5] 암투병 중 2012년 6월 6일 66세를 일기로 사망.[6]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외손녀이며, 아소 다로 전 총리의 여동생이다.[7] 일본 황실 최초의 여성 박사(미술사)이다.[8] 1988년 만 40세가 되면서 독신으로 가츠라노미야 궁가를 창시했으나, 그해 5월 쓰러진 이후 평생 장애를 갖고 살았다. 말년에는 형 토모히토 친왕과 마찬가지로 목소리를 잃기까지 했다. 보통 결혼을 하면서 궁가를 창시하는 게 통례임에도 독신인 상태에서 궁가를 창시하게 된 이유가 여종을 건드려서 그랬다는 소문이 있다. 설령 숨겨 놓은 아들이 있다고 해도 현행 황실전범에서는 사생아의 왕위 계승권을 인정하지 않으니 큰 의미는 없다. 요시히토 친왕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다카히토 친왕의 아들 3명이 모두 아들을 못 낳고 아버지보다 먼저 가버려서 미카사노미야 궁가는 단절이 확정되었다.[9] 2002 한일 월드컵 때 아내 히사코 비와 함께 부산광역시에 왔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일본 황족이 한국을 공식 방문한 사례였기 때문에 양국에서 화제였다. 개방적인 성격에 사진스포츠에 조예가 있어서 평판이 좋았지만 주일캐나다대사관에서 스쿼시를 하던 도중 만 47세의 나이로 돌연사했다.[10] 2014년 5월 27일 이즈모타이샤 신사의 신관인 15살 연상의 센게 구니마로(千家國磨)와 약혼을 발표, 동년 10월 5일 이즈모타이샤 신사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왕족에서 제외되었으며, 남편을 따라 평민이 되었다.[11] 2018년 10월 29일, 모리야 게이(守谷慧)와 결혼하여 평민이 되었다.[12] 제2차 세계 대전 패전 후로 첫 일본 총리를 역임한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 왕의 장남. 메이지 덴노의 외손자이기도 하다.[13] 나루히토의 동생 후미히토, 나루히토의 조카 히사히토, 나루히토의 숙부 마사히토 등 총 3명의 직계 남자 황족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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