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리노 로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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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리노 로페즈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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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0.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9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9 KBO 리그 다승왕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번호 44번
루크 프로코펙
(2002)

아킬리노 로페즈
(2003~2004)


케이시 젠센
(2006~2014)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51번
앨런 심슨
(2004~2005)

아킬리노 로페즈
(2005)


김선우
(2005~2006)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33번
호세 오퍼맨
(2005)

아킬리노 로페즈
(2005)


애런 로완드
(2006~2007)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등번호 45번
알렉시스 고메즈
(2006)

아킬리노 로페즈
(2007~2008)


라이언 페리
(2009~2011)
KIA 타이거즈 등번호 44번
문현정
(2008)

로페즈
(2009~2011)


앤서니
(2012~2013.7.23.)
SK 와이번스 등번호 33번
안경현
(2009~2010)

로페즈
(2012~2012.6.5.)


부시
(2012.6.16.~2012)




파일:x90y6FP.jpg

아킬리노 로페즈
Aquilino López

본명
아킬리노 로페스 로아
Aquilino López Roa
출생
1975년 4월 21일 (48세)
산 크리스토발 주 빌라 알타그라시아
국적
[[도미니카 공화국|

도미니카 공화국
display: none; display: 도미니카 공화국"
행정구
]]

학력
비야 알타그라시아 고등학교
신체
190cm / 83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7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SEA)
소속팀
토론토 블루제이스 (2003~2004)
콜로라도 로키스 (2005)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5)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2007~2008)
KIA 타이거즈 (2009~2011)
SK 와이번스 (2012)

1. 개요
2. 선수 경력
3. 은퇴 후
4. 여담
5. 연도별 성적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KIA 타이거즈, SK 와이번스 소속의 외인 투수.


2. 선수 경력[편집]



2.1. MLB 시절[편집]



파일:external/cdn.c.photoshelter.com/8193-Aquilino-Lopez.jpg


1997년 마이너리그에서 데뷔했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은 2003년 시즌에 승격되어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데뷔, 이 해 1승 3패 3.42 14세이브 16홀드, 73.2이닝 64삼진 34볼넷에 WHIP 1.25의 대단히 준수한 활약을 했다. 득점권에서도 .164 .308 .274의 매우 막강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 막판엔 마무리까지 수행하게 되었다.

2008년까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이 시절엔 롱릴리프 노예로 부려졌다.[1]MLB 통산 성적은 6승 6패, 평균자책점 3.78. 이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계약이 어긋난 가운데 현대 유니콘스KIA 타이거즈에서 뛴 경력이 있는 래리 서튼의 추천으로 KIA 타이거즈와 접촉, 계약에 성공한다. #

이 당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월드시리즈를 노리는 강팀[2]이었고, 그런 팀에서 방어율 3.55의 그럭저럭 평범한 성적을 기록하며 풀타임 빅리거로 활동하던 선수라 비록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 계약은 불발되었지만 MLB에서 뛸 다른 팀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준의 선수였다. 물론 30대 초중반으로 나이가 많고 성적은 평범한 우완불펜이라 메이저 계약정도는 가능해도 큰 계약까진 힘들어서 정황상 대략 100만~150만 달러로 추측되는 KBO리그의 오퍼가 가장 큰 돈을 벌 수 있는 길이긴 했다.

당시 일반적으로 한국에 오는 용병은 보통 일본리그 방출생들이 절반, 미국에서 직접 오는 경우는 AAA 죽돌이에 메이저리그는 한두 번 콜업된 게 전부인 수준의 선수들이 많이 왔었고, 메이저리그 경력이 많은 선수들은 현재 폼이 많이 떨어져서 메이저 재진입이 힘든 노장들이나 오는, 여튼 마이너 죽돌이 급 선수가 용병으로 많이 오는 리그였는데, 느닷없이 바로 전년도에 준수한 활약을 한, 싱싱한 진짜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온 것.

로페즈가 돈 쓴 만큼의 활약으로 리그를 지배했고 2년 후에 온 비슷한 급의 선수였던 니퍼트 역시 리그 최상위권 선발이 되며 구단들이 돈은 좀 들더라도 이런 정도의 선수를 영입하면 확실한 성적을 낼 수 있음을 깨달아, KBO에 오는 용병 수준이 전반적으로 올라가게 된 인플레이션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선수. 아직도 로페즈만큼의 대형 영입은 드물지만 그래도 로페즈 이후로는 용병의 평균 커리어 수준이 AAA 죽돌이 수준에서 AAA와 메이저 사이에 낀 선수 정도로 한 단계 올라갔다.

여튼 이런 전년도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한국에 온 첫 사례로 로페즈가 스타트를 끊은 이후 KBO도 나름 용병 수준이 올라가서 이후의 에스밀 로저스데이비드 헤일, 에디슨 러셀 등 메이저리그 풀타임을 도는 메이저리그 미니멈 급 선수가 한국에 오는 경우가 생겨났는데, 사실 로페즈 이후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40인 로스터에는 들더라도 시즌 대부분은 마이너에서 보내고 빅리그는 올라와서 커피 한잔 마시고 가는 정도의 파트타임 메이저리거가 주로 오고 데이비드 헤일이나 에스밀 로저스, 애런 브룩스 같은 25인 로스터 미니멈급의 풀타임 빅리거면 대형 영입인데 2009년 당시 이런 풀타임 메이저리거를 영입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대형 영입이었다.

2.2. KIA 타이거즈 시절[편집]



2.2.1. 2009 시즌[편집]




파일:photo-09.jpg


2009년 시즌 전 KIA 타이거즈에서 계약금 5만불, 연봉 25만불에 계약하였다. 물론 뒷돈을 줬다. 이당시 KBO는 외국인 연봉은 총액 30만 달러를 넘길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서 언론에는 30만 달러로 발표하고, 실제로는 더 많은 돈을 주는 것이 구단도 선수도 팬도 다 아는 국룰이었다. 결국 8개구단 아무데서도 안 지키니 유명무실해져서 2010년대 초반 폐지된 규정. 현지 언론 등에서는 100만불에서 150만불 사이에서 로페즈의 몸값이 왔다갔다 한다고 했고 한국행을 택할 때 150만불을 받고 갔다고 말했다. 나바로가 135만불을 받았다고 할 정도니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던 셈. 그러다가 외국인 선수 3명 연봉 상한액 400만 달러 규정이 2023년부터 새로 생겼다.#

2009 시즌 최고의 이닝 이터로서 190⅓이닝(29게임 출장)을 달성하였다. 릭 구톰슨과 함께 원투 펀치 역할을 이뤄 KIA가 정규 시즌 1위를 달성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주 무기는 빠르게 가라앉는 91마일짜리 싱커. 구위도 훌륭한 편이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노예시절 다져진 체력을 바탕으로 한 이닝 이팅 능력. 8~9이닝을 던져도 여전히 날카로운 구위를 자랑하는데다 본인도 승부근성이 대단하다. 잘 막고 있는 상황에선 불펜이 몸만 풀어도 으르렁거릴 정도. 성격이 다혈질로 경기가 안 풀리면 신경질을 내다가 자멸하는 경우가끔 있지만, 29회 등판 중 18회[3]의 QS를 기록할 정도로 안정적인 투구를 자랑한다. QS를 찍지 않더라도 5회 이전에 강판 당한 경우는 단 2차례로 이쯤되면 다혈질적인 면도 애교로 보일 정도.

2009 시즌은 14승(조정훈, 윤성환과 함께 리그 공동 1위) 5패, 평균자책점 3.12(리그 3위), WHIP 1.27(리그 6위)의 매우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 KIA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했다.

"로페즈가 나오는데요.. 로페즈가 나옵니다!"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8회초 등판 당시 배기완 캐스터의 멘트.[4]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도 1차전, 5차전 선발로 등판하여 모두 승리, 2승을 거두었으며 특히 2연승 후 2연패로 팀이 벼랑끝에 몰린 5차전에서는 완봉승을 거두었다. 7차전에서는 이틀 전 완봉을 거뒀음에도 필요하면 등판하겠다고 자진해서 요청, 5:5 동점 상황이던 8회 초에 등판해서 ⅔이닝을 깔끔하게 막고 유동훈에게 넘겼다. 2001년 월드 시리즈에서의 랜디 존슨을 떠올리게 하는 맹활약.[5] 만약 구원승이라도 따냈었다간 2003년의 정민태 이후로 한국시리즈 3승 투수가 나올 뻔했다. 이때 관람했던 KIA팬들은 그가 불펜문을 열고 나오는 것을 보고 천사를 보았다고 하고 SK팬들은 악마를 보았다고 한다.[6] 당시에 로페즈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야구장을 가득 메웠고 두 팀팬 모두 공통적으로 전율이 왔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시리즈 MVP 후보에 오르기까지 했지만 결국엔 나지완이 MVP를 받았다. 1984년 한국시리즈최동원을 떠올리게 만든다. 게다가 외국인이라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았다.

시즌 중 나는 타이거즈를 사랑한다고 발언. 계속 디트로이트 타이거스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다. KIA 타이거즈의 팬들은 다음엔 한신 타이거즈도 사랑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로페즈 자신도 일단 일본에서 오퍼가 들어와도 대한민국에 남겠다고 했으며 KIA 프런트도 적극적으로 로페즈와 재계약을 추진했다. 그리고 릭 구톰슨은 떠났지만, 로페즈는 재계약에 성공했다.

MVP 수상건에 대해선 로페즈 본인도 이런 정서는 이해를 못하겠다고 발언했다. 나지완의 임팩트가 너무 강렬했지만 사실 활약상으로는 로페즈가 받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던 상황.[7] 이에 대해선 5차전에서 로페즈의 인터뷰 거부에 따른 기자들의 보복성 투표[8]라는 이야기부터 토종 선수 우대, 재계약을 막으려는 기자단의 음모 등등 여러가지 음모론이 난무했다. 결국 호사방에서 KIA 타이거즈 팬들이 자체적으로 조공을 했다.[9]

2009년 프로야구 KBO 골든글러브 투수부문 수상자가 되었다. 외국인 선수 골든글러브 수상자는 2014년 앤디 밴 헤켄이 수상하기까지 5년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2009년의 로페즈는 그야말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선수였다. 그런데 그 이후 투수 골든글러브는 2015년 에릭 해커, 2016년 더스틴 니퍼트, 2018년과 2019년의 조쉬 린드블럼, 2020년 라울 알칸타라, 2021년 아리엘 미란다로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총 8번의 골든글러브 중 7번이나 외국인 투수가 가져가게 된다.[10] 예외인 2017년은 순수 선발로 193⅓이닝을 던져 20승을 거둔 KIA 타이거즈의 왼손투수 양현종밖에 없다. 물론 같은 팀의 헥터 노에시는 201⅔이닝+20승을 거뒀지만 평균자책점이 3.48로 3.44였던 양현종에 근소하게 밀렸고, 결정적으로 양현종이 2017년 한국시리즈 2차전의 완봉승과 5차전의 터프 세이브를 거둬 2017년 한국시리즈에서 다소 부진했던 헥터 노에시에 비해 임팩트가 컸기 때문에 KBO 골든글러브를 가져가게 되었다.

2.2.2. 2010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아킬리노 로페즈/2010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2.3. 2011 시즌[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아킬리노 로페즈/201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3. SK 와이번스 시절[편집]



파일:로페즈SK.jpg


2011시즌 후 KIA와 협상이 결렬된 뒤 SK 와이번스와 계약하며 2012년에도 한국에서 뛰게 되었다. 4월 성적은 2경기에서 13⅓이닝 5피안타(3피홈런) 5실점 2승. 예전 KIA 시절에서 보여주었던 만큼의 위력적인 모습은 아니었지만 이 때 당시에 KIA 용병투수들이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역시 로페즈라는 명성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도미니칸 윈터리그에서 너무 페이스를 올렸던 탓이었을까.[11] 로페즈는 시즌 내내 허리와 어깨 통증을 호소했고 점차 2군에서 머무르는 기간이 길어졌다. 결국 5월에는 제대로 던지지 못하면서 2경기에서 2패를 떠안고 마는 부진을 보여 주었다. 특히 2군에서 다시 콜업되어 등판한 5월 11일 넥센전에서는 ⅓이닝 18개 투구밖에 던지지 못하면서 강판되었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이 때문에 SK 프런트에서는 대체 용병을 찾으러 스카우팅 팀을 급파하였으며 이로써 로페즈가 퇴출될 것이 유력해진 상황이다.

6월 5일 두산전에서 투구수 84개 6이닝 7피안타 3실점(3자책)으로 QS를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되었다.

결국 그 다음날인 6월 6일, SK로부터 웨이버 공시되었고, 8일에 출국하여 한국무대를 떠나게 되었다. 그의 대체 용병은 데이브 부시이다. 다만 방출 당시 평균자책점이 3점대 후반으로 그럭저럭 괜찮았고 WHIP 또한 1.04로 최상급이었다. 거기에 ⅓이닝을 투구했던 넥센전을 포함해도 평균 이닝이 5.6이닝으로 이닝이팅도 어느 정도 되었다. 어찌보면 부상이 발목을 잡은 안타까운 케이스였다.


3. 은퇴 후[편집]


파일:/image/109/2015/04/20/201504200651773251_553424cd528c3_99_20150420133603.jpg
이제는 배도 나오고 후덕해진 로페즈.

SK에서 방출된 이후 그 해 도미니칸 윈터리그에서 뛰며 구직활동을 했으나, 13시즌에 뛸 팀을 구하지 못했고 그대로 선수생활을 은퇴하여 고향인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돌아가 농장에서 닭과 소를 키우고 있다.로페즈의 현재 근황 이선호 기자가 직접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날아가 로페즈를 만나고 왔는데 집 대문 앞에 KIA 타이거즈 로고와 당시 등번호 44번이 그려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로페즈의 지인으로 보이는 인스타그램에서는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소프트볼 경기도 가끔 뛰는 듯 하다.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개장 기념 '챔피언 데이'에 시구자로 초청할 계획이었으나 여러 사정으로 무산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여전히 KIA 구단과 연락하면서 지내는 듯 하므로 언젠가는 챔피언스 필드에 선 로페즈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KIA 타이거즈에서 헥터 노에시를 영입할 때 로페즈가 도움을 줬다고 한다.[12] KIA 트위터 소식에 의하면 보스턴 레드삭스의 도미니칸 투수들을 위한 지역 투수코치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헥터 노에시를 소개해주고, 덤으로 기아팬들을 위하여 이런 영상까지 직접 찍어서 보내주었다.

아직도 기아 스카우터들이 선수를 보러 도미니카에 가면 직접 2-3시간씩 운전해서 에스코트한다는 나유리 기자의 증언이 있다.


4. 여담[편집]


  • 경기중에 다혈질 기질이 있어서 제 감정을 주체 못해 난동을 부리며 "의자왕" 이라는 별명도 있었지만, 당시 로페즈를 경험한 선수들 사이에선 평가가 좋다. 프로의식 있고 인간미 있는 팀플레이어라는게 주된 평. 동료인 김상현의 아들이 태어난지 100일이 됐다고 하자 유모차를 사라면서 100만 원을 주었으며, 훈련이 끝나면 직접 공을 주우러 다닌다고 한다.[13] 하지만 차일목에게는 의심이 많고 다혈질이라며 디스당했다. 하지만 로페즈가 선호했던 포수는 차일목이었다는 게 아이러니.[14]
  • 서재응도 로페즈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팀을 생각하는 마음이 강하다고.
  • 릭 구톰슨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인터뷰 도중에 뜬금없이 정확한 한국어로 "구톰슨 바보" 라고 한 적도 있도 있었는데, 알고보니 구톰슨이 로페즈에게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고.
  • 어린 시절 사탕수수 농장에서 죽어라 일하는 등 고생을 많이 했다.
  • 네이버 신상정보에 광주광역시 출신에 최종학력이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으로 잘못 기재되는 사건이 있었다.
파일:attachment/lopez.jpg
여기에 더해 09시즌부터 3년 내내 얼굴을 봐온 친숙한 이미지에 09시즌의 활약과 11시즌 초반의 활약 등이 겹쳐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일고 출신 해태 레전드 노혜수" 드립도 나왔다.
파일:attachment/lp2.jpg
  • KIA 타이거즈 갤러리의 갤러들은 잉여로움을 이기지 못한 개드립 끝에 로페즈는 광주일고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로 이끌고 졸업 후, 잠시 메이저리그에서 뛰다 일시 귀국, 육군 제31보병사단에서 복무했음을 밝혀내었다. 참고로 지역연고인 해태에서 뛰지 못한 이유는 LG에서 픽했는데 이를 거부해서 그렇다고... 그렇다면 그는 광주일고 이호준과 동기가 된다. 구톰슨이 2년 후배로 라면셔틀 경력이 이때부터였다 카더라. 그리고 구톰슨은 이때의 스트레스로 후에 탈모현상이..
  • 형의 아들을 대신 키우고 있다.
  • 이종범 선수와는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고 한다.
  • 앞과 뒤의 숫자가 겹치는 땡 번호(11, 22와 같이)를 좋아하며, 실제로 KIA와 SK 시절 각각 44번과 33번을 사용했다.
  • 이강철 kt 감독은 로페즈에 대해 자기 고집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성실한 프로였다고 떠올렸다. 이 감독은 "술을 마셔도 위스키 딱 한 잔만 마시고 그 다음부터는 안 마시더라"고 웃었다. 같은 팀의 윤석민은 로페즈의 싱커가 너무 좋아 배우고 싶었다고 술회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KBO리그에는 변형 패스트볼의 개념이 별로 없을 때였다.#

5. 연도별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3
TOR
72
73⅔
1
3
14
16
0.250
3.42
58
5
44
64
31
28
1.25
2004
18
21
1
1
0
3
0.500
6.00
21
5
18
13
15
14
1.62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5
COL
1
4
0
0
0
0
0.000
2.25
3
0
0
6
1
1
0.7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5
PHI
10
12⅔
0
1
0
0
0.000
2.13
13
2
8
16
4
3
1.58
05시즌 합계
11
16⅔
0
1
0
0
0.000
2.16
16
2
8
22
5
4
1.38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7
DET
10
17⅓
0
0
1
1
0.000
5.19
18
2
8
7
10
10
1.39
2008
48
78⅔
4
1
0
4
0.800
3.55
86
9
28
61
33
31
1.3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9
KIA
29
190⅓
(1위)
14
(1위)[15]
5
0
0
0.737
(4위)
3.12
(3위)
200
6
51
129
83
66
1.27
2010
27
166
4
10
1
0
0.286
4.66
180
22
51
83
92
86
1.34
2011
26
153
11
9
1
0
0.550
3.98
153
14
35
106
71
68
1.17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2
SK
5
28
3
2
0
0
0.600
3.86
26
3
4
13
13
12
1.04
MLB 통산
(5시즌)
159
207⅓
6
6
15
24
0.500
3.78
199
23
106
167
94
87
1.36
KBO 통산
(4시즌)
87
538
32
26
2
0
0.552
3.88
559
45
141
331
259
232
1.25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2009
4완투
(1위)
0완봉
2010
1완투
0완봉
2011
1완투
0완봉
2012
0완투
0완봉
통산
6완투
0완봉


6. 관련 문서[편집]



[1] 어쩌면 이것때문에 위의 바로 그 아, 로페즈가 나오는데요... 자, 로페즈가 나옵니다!"가 나왔을 수도 있다. 굴려진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2] 06시즌 아메리칸리그 우승을 하는 등 00년대 중~후반 꾸준히 대권을 노렸지만 항상 한 끗 모자라서 월드시리즈를 먹지 못했고, 08시즌에는 본격적으로 대권도전을 천명하며 미겔 카브레라에드가 렌테리아, 돈트렐 윌리스를 영입해 영혼까지 끌어모아 달렸으나 미네소타 트윈스에 막혀 지구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3] KBO 기록실 기준[4] 당시 5차전에서 완봉승을 거둬서 체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조범현 감독과 이강철 투수코치가 나올 수 있냐고 물어보니 언제든지 불러달라고 자진해서 등판을 요청했다고 한다.[5] 그 당시 랜디 존슨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팀이 벼랑 끝에 몰린 6차전에 나와 완봉승을 올리고 바로 다음날 7차전에 소리아노에게 역전 홈런을 맞고 흔들리던 커트 실링에 이어 남은 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끝내기 승리에 일조했으며 실링과 공동 월드시리즈 MVP에 선정되었다.[6] 위의 영상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로페즈가 올라온 걸 본 SK 팬들 표정에서 모든 것이 설명된다.[7] 7차전 종료 후 MVP 수상 진행자가 KIA 관중들에게 (당연히 나지완을 외칠 거라 생각하고) "올해의 KS MVP는 누구??" 라고 큰소리로 물었는데 일제히 "로페즈!" 라고 대답해서 굉장히 난감해했다고 한다. 아니 이미 7차전 8회 로페즈가 등판하자마자 KIA쪽 관중석에서는 "MVP!" 콜이 쏟아졌다. 한마디로 기자들의 문제.[8] 경기 MVP이자 완봉까지 거뒀는데도 이용규보다 인터뷰 순서가 뒤로 밀렸기 때문에 상당히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로페즈는 정규시즌에도 한번도 경기후 인터뷰에 응한적이 없다는 점에서 좀 신빙성이 떨어지는 설.[9] 트로피, 피규어, 캐리커처 액자 등 상당히 만족한 듯하다.[10] 2023년 역시 확정은 아니지만 또다시 외국인 투수 에릭 페디가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11] 이걸 LG 트윈스는 알고 있었다. 그걸 보여준 게 곤잘레스였다. 그래서 벤자민 주키치를 영입하면서 조건으로 내건 게 윈터 리그에 참가하지 말아달라는 것이었고 마무리 훈련 때 훈련 수당을 더 준 이유다.[12]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기 보다는, 거의 계약을 지은 상태에서 같은 도미니카 사람으로서 타이거즈라는 팀을 소개하고 한국 무대 적응에 대한 팁을 주는 정도.[13] 보통 이런건 팀 내 막내 선수들이 한다. 로페즈는 KIA 투수진 중 이대진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다.[14] 차일목이 공격능력과 도루저지 능력 때문에 저평가 받아서 그렇지 수비 능력은 탁월한 편이어서 이해가 된다. 특히 싱커를 주무기로 하는 로페즈에게 낮은 쪽의 프레이밍이 걸출한 차일목은 굉장히 좋은 동료이다. 부족한 도루 저지 능력의 경우 로페즈의 슬라이드 스텝이 굉장히 빠른 편이라 상쇄되는 부분이 있다.[15] 윤성환, 조정훈과 공동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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