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수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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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역사성
3.1.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3.2. 역사적 배경에 관한 추측
4. 기타



1. 개요[편집]


지우수드라(Ziusudra)는 수메르 신화의 홍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로, 길가메쉬 서사시의 우트나피쉬팀(혹은 '아트라하시스'), 창세기의 노아, 헬라스 신화의 데우칼리온 등 대홍수 모티프 이야기의 주인공 중 가장 앞선 시대의 저작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이 문서에서는 편의상 우트나피쉬팀(아트라하시스)과 함께 설명한다.

우트나피쉬팀은 길가메쉬 서사시 토판 XI[1]에 나오는 홍수 이야기의 주인공으로,[2] 서사시 안에서 '아트라하시스'라는 이름으로 1회, 나머지는 '우트나피쉬팀'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홍수 설화가 둘 이상의 출전으로 합성되었거나, 혹은 단순히 편집자의 실수로 보인다.[3] 기원전 3세기에 베로소스가 쓴 그리스어 판본에선 크시수트로스로 등장한다.

2. 내용[편집]


하늘(과) 땅의 이름을 부르는 [그가]...

...신들, ...,

그 곁에 서 있던 지우스드라가 들[었다].

"내 왼쪽, 벽 옆에 서라...,

벽 옆에서 내가 그대에게 말하리라, [내 말을 받아라],

내 지시에 귀를 [기울여라].

우리의...에 의해 홍수가 제의 중심지들을 [휩쓸 것이다].

인류의 씨를 파괴하는 것이 ...,

[천상] 회의의 말씀이요, 결정이다.

아누(와) 엔릴의 명령에 의해...,

그것의 왕권, 그것의 [통치가 끝날 것이다."

수메르 신화 홍수 이야기 제150-160행, 《고대 근동 문학 선집》 88쪽.[4]


"신들의 비밀을 그대에게 말할 것이오.

(중략)

(신들이) 홍수를 일으키기로 결정한,

[그 천상 회의에] 신들의 아버지 아누가 있었고,

그들의 조언자, 용감한 엔릴,

그들의 조력자, 니누르타

그들의 관계로 책임자 엔누게도 참석했었다오.

니니기쿠에아도 그들과 함께 있었소.

에아는 그들의 말을 갈대 오두막에 전하며 말했다

'갈대 오두막, 갈대 오두막이여! 울타리여, 울타리여!

갈대 오두막이여, 들으라. 울타리여, 잘 생각하라!

슈루팍의 사람, 우바르투투의 아들아!

(이) 집을 부숴 버리고, 배를 지어라.

(이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영혼의 삶을 보존하라!

배로 살아있는 모든 것의 씨를 가져가라.

그대가 지을 배,

그것의 규격은 (다음과 같은) 규격으로 하라.

너비는 길이와 동일하게 하라.

압수처럼 배를 방수하라.'"

길가메쉬 서사시 토판 XI 10-31행. ANET-K 148쪽


지우수드라 이야기와 우트나피쉬팀 이야기는 공통 모티프를 공유한다. 상술했듯,[5] 우트나피쉬팀 이야기가 지우수드라 이야기보다 후대에 쓰인 것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수메르 신들의 실권자 엔릴이 지상의 난잡함[6]을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 지상에 대홍수를 일으키려고 했다. 이에 신들을 불러들여 '인간에게 누설하지 않음'을 전제로 '홍수가 나는 동안 신들만 잠시 지구 밖으로 대피하자'는 사실을 비밀리에 알렸다. 이에 대부분의 신들은 찬성하였으나, 인간 창조에 관여한 엔키만은 생각이 달랐다. 엔키는 엔릴의 계획에 반대하였고 엔릴과 설전을 벌이지만 결국 분위기에 휩쓸려 내키지는 않았지만 인간들에게 알려주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인간을 살리려는 생각으로 인간에게 직접 누설하지 않으면 되는 거지?라는 자의적인 판단하에, 그의 충실한 사제이자 도시의 왕이었던 아트라하시스를 갈대벽 밖에 세워두고 '갈대벽'에게 혼잣말을 하여 그가 엿듣게 하는 편법으로 그에게 홍수가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동시에 아트라하시스에게 가로, 세로, 높이가 같은 정육면체에 이층 구조인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 이후 아트라하시스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방주를 건조, 엔키에게 예고받은 그날 마을 사람들과 방주 제작에 참여한 기술자들 및 동원할 수 있는 동물들을 모두 배에 태우고 하늘에서 해가 뜰 때 그 문을 봉했고, 신들이 우주로 대피함과 동시에 홍수가 시작됐다.

그날 이후 40일간 홍수가 지속되었고,[7] 아트라하시스 부부는 맨 처음 비둘기를 날렸으나 비둘기가 다시 돌아와 물이 덜 빠진 것을 알았고, 다음 제비를 날렸으나 제비가 다시 돌아와 물이 덜 빠진 것을 알았고, 마지막으로 까마귀를 날려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자 드러난 뭍[8]에 배를 정박하고 방주의 동물들 중 하나를 잡아 하늘에 번제를 드리자, 비축해둔 식량이 다 떨어졌는지 굶주림에 시달리던 신들이 주변에 파리떼처럼 몰려들었다.[9]

결국 살아남은 인간이 있음을 엔릴이 알게 되고, 엔키를 추궁한 끝에 그가 결과적으로 맹세를 어겼음을 깨닫고 분노하나, 엔키가 "비밀을 폭로한 것은 내가 아니다. 나는 단지 우트나피쉬팀에게 나타나 꿈을 보여주었는데, 그가 신들의 비밀을 들었을 뿐이다. 그러니 이제 그의 처우에 대해 상의해보도록 하자!"는 식의 억지스러운 달변으로 그를 달랬다. 화가 났으나, 자기들을 대신해 노동을 해주는 인간들이 없어지면 자기들도 굶는다는 걸 깨달았기에 아트라하시스 부부에게 영생을 약속하며 태양이 뜨는 곳이자 신들의 낙원 '딜문'에 거처할 권리를 부여했다.


3. 역사성[편집]



3.1.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편집]


그러나 이런 퇴적층이 국지적인 홍수에 관해 증언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다른 유적지, 특히 우르에서 12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처녀지까지 발굴이 이루어진 에리두에서조차 "대홍수"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고고학은 여러 시기에 일어난 지역적 홍수의 흔적은 드러내 주었지만 메소포타미아 전체에 영향을 미친 홍수의 실재를 확인해주지는 못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조르주 루, <메소포타미아의 역사1>, 한국문화사, 2013/12/10, P.142


그러니 텔의 밑바닥에서 있을 법하지 않은 초대형 대격변의 증거를 찾으려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비교적 자주 일어나며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자연 현상을 전 지구적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것은 상상력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조르주 루, <메소포타미아의 역사1>, 한국문화사, 2013/12/10, P.144~P.145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성과에서 수메르 문명 이후라고 추정된 시기에 이라크 남부지역에서의 대홍수와 관련된 것에 한정되어 생각하면, 실제 사건은 아니다. 따라서 신화속 대홍수는 국지적이고 산발적인 홍수를 전지구적인 차원으로 비약하여 상상한 산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2. 역사적 배경에 관한 추측[편집]


1. 이 목록에서 대홍수는 수메르 도시국가 전체에 대한 슈루파크의 우선권이 끝나는 시점을 나타낸다.

2. 메소포타미아 대홍수 이야기의 새 판본에 나오는 영웅은 슈루파크의 왕이나 왕자이다.

3. 슈루파크(텔파라)에서 고대 왕조 시대 초기에 있었던 중요한 홍수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4. 마지막으로, 슈루파크는 기원전 제3천년기에 문화적 중심지였다. 수메르학 학자들에게 잘 알려진 파라의 토판들이 이를 증명한다.

따라서 기원전 2900년경 슈루파크에서 일어난 끔찍한 홍수는 이 도시의 우선권을 잃어버리게 한 패전과 동시에 일어난 것 같다. 이 두가지 재앙(분명 신들의 노여움 때문으로 인식된다)이 이상하게도 함께 일어난 사실을 지역 서기관들이 기록했고, 이것이 나중에 슈루파크 왕조와 함께 수메르 제왕 목록에 첨가되었을 것이다.

이렇나 가설의 맥락을 따라 좀 더 가설을 세워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슈루파크는 이 시대에 크게 확장되어 있었는데, 이 재앙이 발생할 당시 그곳에 인구 과잉과 기근이 있었다면 이 도시의 사제들은 우리가 『아트라하시스』에서 읽었던 교훈적인 이야기의 원형을 구성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손에 쥐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어 대홍수 사건과 대홍수 신화는 서로 결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영속화된 것은 신화와 그 영웅이었다. 히브리 전승을 거쳐, 그리고 나중에는 유대교-기독교 전승을 거쳐 전해져 내려온 이 신화는 끊임없이 우리를 열광시키고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할 것이다.

-조르주 루, <메소포타미아의 역사1>, 한국문화사, 2013/12/10, P.145~P.146


종합해 볼 때, 아트라하시스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신화이나 역사적인 배경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 #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나오고 세계에도 대홍수 이야기가 나오니 실제 대홍수가 일어났을 겁니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


4. 기타[편집]


  • 지우수드라를 비롯한 고대 근동의 대홍수 설화 모티프는 창세기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현재 전해지는 지우수드라 이야기의 텍스트 그 자체에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의존한다고 확신할 순 없으나,[10] 지우수드라 이야기이든, 우트나피쉬팀 이야기의 다중 출전들이든, 이 설화들과 유사한 구전 모티프들이든 간에, 고대 근동의 공통적인 홍수 모티프가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 영향을 주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11] 오늘날엔 근본주의 개신교 정도를 제외하면, 고대 근동의 대홍수 모티프가 창세기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학술적 공감대가 구약학 내부에 이미 형성되어 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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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길가메쉬 서사시의 마지막 시기에 작성된 토판이다. 이 시기는 "기원진 9세기 내지 8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나 1세기에 걸친 시기이다. 가장 잘 알려진 판본은 앗수르바니팔(668-627년)의 도서관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본문은 기원전 1250-1000년에 편찬되었을 것이다. 전 단계에 비해 달라진 부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바빌론 중기의 판본이 단편적이기 때문에 비교 연구를 하려면 신중해야 한다. 어쨌든 이 시기에 본질적 수정이 있었다. 세 개의 단락이 첨가되었다. 첫째는 길가메쉬가 모험을 통해 얻은 지혜에 관해 주장하는 서언인데, 이는 바빌론 첫 시기 고대 서사시의 권두시로 보이는 찬가로 되어 있다. 둘째는 열한 번째 토판에 묘사되어 있는 그 유명한 홍수 이야기이다. 셋째는 열두 번째 토판으로 저승 세계로 내려가는 사화인데, 앞에서 죽은(토판 VIII) 엔키두가 다시 나타난다. 이 후기 판본과 더불어 발전 과정은 막바지에 이른다. 여러 판본들 사이의 이문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이문들은 무엇보다도 철자법과 문법 그리고 틀의 문제들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비교적 고정된 일종의 '공인본'(textus receptus)을 놓고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Jean-Louis Ska 씀, 박영식 번역, 《모세오경 입문》 327쪽)[2] 길가메시가 그에게 불사의 비법을 물으러 갔을 때, 길가메시가 1주일 동안 잠을 참는다면 비법을 알려주기로 약속하지만, 사흘째 되는 날 길가메시가 잠들어버려 가르쳐주지 않았다. 다만 '손님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예의'라는 아내의 간청으로 길가메시에게 젊음의 풀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다. 그 풀은 가시가 있었고 또한 물 속에 자라고 있었다. 길가메쉬는 자신의 다리에 무거운 돌을 묶고는 돌에 끌려 물 속 깊은 곳까지 내려갔다. 손은 가시에 찔렸지만 그 식물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게 얻은 불로초를 길가메쉬가 샘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이 몰래 가져가 버린다.[3] "길가메쉬 서사시에는 오경들처럼 다양한 '원천들'을 구별해 낼 수 있는데, 이는 동일한 문체와 동일한 어휘를 사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홍수 이야기는 우트나피쉬팀의 담화를 소개하기 위해 고유한 문구를 사용한다. 또 다른 단서로, 홍수의 영웅인 우트나피쉬팀의 아내는 홍수 이야기에서 '여자'로 불리지만, 홍수 이야기를 받아들인 단락의 다른 곳에서는 '아내'라는 단어로 표기된다. 홍수 이야기의 문체는 동질성이 적으며 반복적이다.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오는 동일한 사화의 여러 판본들은 동일 인물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여기서 우리는 야곱/이스라엘, 르우엘/예드로/호밥, 그리고 야훼/엘로힘을 연상해 낼 수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홍수의 영웅의 이름은 우트나피쉬팀이다. 그러나 다른 한 번은 아트라하시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저자가 이용한 다른 서사시에 나오는 영웅이다(길가메쉬 XI, 187) 어쩌면 편집자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는 하나의 '원천'이 존재했으며, 길가메쉬 서사시에 첨가된 홍수 이야기의 대부분은 이 원천에서 유래한다는 명백한 증거이다."(Jean-Louis Ska, 같은 책 330-331쪽)[4] 이 서사시의 전문은 86-89쪽에, 그리고 원서 《Ancient Near East Texts》 42-44쪽에 실려있다. 둥근 괄호는 본문의 더 나은 이해를 위해 번역자가 첨가한 본문을, 사각 괄호는 번역자가 복원한 본문을, 말줄임표는 훼손된 본문을, 이탤릭체는 확실치 않은 번역을 나타낸다. 이하, 한국어판은 ANET-K, 원서는 ANET로 약칭한다.[5] ㄱ. 길가메쉬 토판 XI의 연대기는 BC 7세기의 것이며, 토판에 실린 텍스트도 빨라봐야 BC 13세기의 것이다. ㄴ. 이미 토판 XI에서도 둘 이상의 출전을 발췌한 것으로 추정된다.[6] 요약하면 단순한 울부짖음 이상의 난교. 심지어 인간의 원본인 신들도 여기에 가세해(...) 혼혈이 늘기 시작했다고 한다.[7] 이 홍수의 여파는 워낙 광범위하고 비참해서 인간을 낳은 산파의 여신 닌후르쌍조차 엔릴의 말에 찬성한 것을 후회하며 오열했다고 한다.[8] 일부 판본에서는 니시르 산이라고 한다.[9] 이 시점에서 이미 신들은 자기들이 실수했다는 걸 알았다. 수메르 신화에서는 인간이 일을 해서 제사를 바쳐야 신들도 먹고 사는 설정인데, 일꾼들을 싸그리 전멸시키려 했으니...[10] 이는 같은 근동에서도 길가메쉬 이야기 토판 XI의 이야기 등 다른 설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트나피쉬팀'과 '아트라하시스' 사이에서 주인공 이름이 왔다갔다하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텍스트로 볼 때, 이 서사시의 홍수 이야기엔 둘 이상의 출전이 들어었을 것으로 보인다.[11] 이는 단순히 '홍수'라는 재앙 그 자체가 겹치는 것을 넘어, 구체적인 이야기가 근동의 홍수 설화들과 유사하기 때문이다.[12] 근동의 공통 모티프가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건 일부 '급진' 신학자들의 일탈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안팎을 막론하고 구약학계의 폭넓은 공감대이다. 당장 이 문서에 발췌된 ANET와 ANET-K부터가 그리스도교 구약학계의 지원사격으로 나온 책이며, ANET에선 지우수드라 이야기와 길가메쉬 토판 XI 옆에 창세기 6장과 비슷하다며 정말 친절하게 표시해놨다. 또한 학계에선 구약학과 고대근동학은 매우 밀접한 근린동맹 관계이며, 고대근동학의 연구 결과가 구약학에, 그리고 구약학의 연구 결과가 고대근동학에 많은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