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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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جبهه مقاومت ملی افغانستان[1]
National Resistance Front of Afghanistan (NRF)
[2]
파일: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기.svg
파일: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문장.svg
깃발
문장
창설일
2021년 8월
임시 수도
바자라크
총사령관
아흐마드 마수드
위치
아프가니스탄 판지시르 주
홈페이지
파일: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문장.svg[3] | 파일: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문장.svg[4]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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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결성
3. 전망
3.1. 저항군의 상황
3.1.1. 탈레반의 초기 진압 실패
3.1.2. 동맹 세력의 발원
3.2. (기타) 저항군 시각에서 기대하는 탈레반 정권의 전망
3.2.1. 탈레반의 외교
3.2.2. 군벌들의 이해관계
3.2.3. 심각한 경제난
4. 기타 내용
4.1. 정의길 기자의 무장투쟁 폄훼
5. 기타
6.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아프가니스탄의 반(反) 탈레반 저항군이자 미승인 잔존국.

과거 북부동맹의 계승과 재결성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때문에 '신 북부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2021년 8월 31일 총사령관 아흐마드 마수드가 회장을 맡고 있는 마수드 파운데이션 재단에서 gofundme 후원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탈레반의 위협으로부터 판지시르 주 사람들 및 반 탈레반 저항 세력을 구호 및 지원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며 $300,000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10월에 들어 하자라 저항군과 아프간 내의 16개 주에서 크고 작은 반 탈레반 저항군들이 국민 저항전선에 합류하였다고 한다.

현재 연락사무소를 미국타지키스탄두샨베에 개설했다. 타지키스탄 주재 아프간 대사는 저항전선을 지지하는 중이다. 두샨베 연락사무소는 사실상 저항전선의 정치부 본부를 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결성[편집]


파일:Ahmad Massoud 4.jpg
파일:National Resistance Front of Afghanistan 2.png
아흐마드 마수드와 국민 저항 전선 #
아흐마드 마수드와 암룰라 살레 및 국민 저항 전선 지도부 #[7]

2021년 아프간 내 미군 철수 단 2개월만에 아프간 정권탈레반의 공세로 인해 무너졌다. 아프간 정권의 수뇌부는 항복 내지 도피해버렸으며[8] 그로 인해 사실상 아프가니스탄탈레반에게 장악되었다.

파일:5a98fc8c-7053-4478-a491-497c24711724_w408_r0_s.png}}}
저항 전선의 거점 지역 판지시르.
탈레반의 장악에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인 아흐마드 마수드가 고향 판지시르에서 반 탈레반 및 잔존 정부군[9], 정부 인사들을 규합하여 탈레반에 대항한 저항 세력을 결성했다.[10] Laregledujeu아주경제 기사.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 항복하기 이전 판지시르로 흘러간 어느 정도 양의 물자가 저항군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3. 전망[편집]



3.1. 저항군의 상황[편집]


(전략)
수백만 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당신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열린 사회를 갖기 위해 싸워 왔습니다. 소녀들이 의사가 될 수 있고, 언론들이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고, 우리 젊은이들이 춤을 추고 음악을 듣거나, 한때 탈레반이 공개 처형을 위해 사용했던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다시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탈레반은 아프간 국민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탈레반의 통제하에 아프가니스탄은 틀림없이 이슬람 과격 테러의 근간이 될 것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음모가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부화하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의 무자헤딘 전사들과 나는 아프간 자유의 마지막 보루로서 판지시르를 지킬 것입니다. 우리의 사기는 온전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기, 탄약, 보급품이 더 필요합니다.

미국과 그 민주 동맹국들은 단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과 공통적으로 테러리즘에만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공유된 이상과 투쟁으로 이루어진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의 대의를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많이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2021년 8월 18일, 총사령관 아흐마드 마수드가 직접 작성한 워싱턴포스트 기고문 #


저항군은 탈레반과의 매우 큰 병력 격차와 제한된 물자로 인해, 초기부터 현시점에 이르기까지 전선이 판지시르내에 국한되어있다. 저항군은 수비적인 입장으로, 전역을 아프간 전체로 확대시킬 수 있는 여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결성 시점, 전직 아프간 정부 인사들을 인용한 뉴욕 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판지시르에 배치된 군대가 2,000~2,500명 사이로 추산된다고 한다.

9월 6일 판지시르 주도이자 저항군의 임시수도인 바자라크가 탈레반에게 함락당하고 저항군은 산악 지대로 패주하는 상황이 되었다. 9월 7일, 국적 불명의 전투 헬기 3대가 판지시르에 진입한 탈레반 군대를 기습하고 나서 저항군이 바자라크 중앙 도심을 재탈환했으나, 그 다음날(8일) 탈레반이 바자라크를 다시 재점령하였다. 저항군이 탈레반과 소모전만 벌인채 최종적으로 바자라크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쐐기를 박는 완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있다.

9월 18일 시점, 바자라크를 지켜내지 못했다. 바자라크가 무너진 것과 동시에 판지시르 계곡에 대한 탈레반의 초토화 작전이 실행됐고 이로 인해 판지시르의 생산능력이 소멸된 거나 다름없어졌다. 결국 저항군이 유격전 돌입을 선포하고 북부 전역으로 흩어져 저항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천명했지만, 외부의 지원도 없고 내부의 지원도 사라진 시점에서 항복만 안했을뿐 절망적인 상황에 가깝다고 평가되고 있다.

절망적인 상황과는 별개로 추후결과는 계속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저항군이 항복한 것도 아니며 전세계적으로 저항군에 대한 긍정적 여론이 우세하기에 저항군이 끝까지 저항을 이어나간다면 상황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있다.

9월 28일 시점, 저항군의 정보가 제한적이다. 저항군이 안다랍을 탈환하였다고 한다. 안다랍은 바자라크의 북부에 위치한 고산지대로 전체적으로 지형이 험해 접근로가 제한적인 곳이다. 접근이 제한적인 만큼 수비에는 유리하나[14] 공격로 역시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어 반격에는 불리한 지형으로 평가되고 있다. 안다랍 탈환으로 저항군이 저항을 장기화 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있다.

10월 19일,저항군이 바자라크를 탈환했다.

11월 29일 탈레반이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무덤을 포함한 바자라크 저지대를 점령한 모습이 프랑스24 현지 취재를 통해 공개되었다.#


3.1.1. 탈레반의 초기 진압 실패[편집]





파일:판지시르 교통 차단.jpg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묘소에서 아흐마드 마수드를 보고 환호하는 판지시르 민중 (8.25)
바자라크의 남쪽 로카[11][12](Rokha,روخه)에서 길을 수비하는 북부동맹 인원들의 모습.

처음 거병했을 때 판지시르 내 저항군의 사기는 높지만 반전의 가능성은 상당히 낮았다.

그래서 탈레반 신생정부는 초반에 싹을 없애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세에 나섰고, 이에 맞서 저항군 측은 천혜의 요새를 통한 방어전과 소모전에 몰두했다.[13] 그 대신 단기간의 대대적 반격은 한동안 시도할 여유가 없어 저항군 전력도 같이 소모되다 바자라크가 점령당하고[14], 산악지대로 밀려버린다. 이 때 저항군은 존폐 위기에 놓였으나 탈레반도 여러 이유로 공세 종말점에 도달하면서 반전의 기회가 등장한다.

이 전쟁에서 장기전으로 흘러가게 된다면, 탈레반 정부는 앞으로의 행정+군사+경제 유지 등에서 상당한 악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서 저항군은 어떻게든 장기전으로 끌고 가려 했으며, 결국 11월 말 겨울이 찾아오면서 장기전이 현실화되었다. 탈레반 정부도 장기전이 되어버린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다른 지방에 새로운 전선이 등장하는 걸 막기 위해 예비 전력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저항군을 차단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3.1.2. 동맹 세력의 발원[편집]


8월 말 판지시르 저항군이 최초 봉기했을 때, 낭가하르 주의 IS 호라산 지부와 더불어 아프가니스탄 내에 존재하는 둘뿐인 저항 진영으로 통칭되었다. 그래서 저항의 상징성이 높았던 것과 별개로 마지막 등불이라는 위태로운 처지라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2021년 연말에 이르자 후술할 아프간 경제 붕괴에 대한 후폭풍이 확실하게 체감되면서, 아프간 전역의 민심 이반이 가속화된다. 그 뿐만 아니라 초기 탈레반 임시 정부가 약속했던 민족 화합도 결국 파슈툰족 중심의 타민족[15] 탄압으로 귀결되어 버리자, 타민족이 다수인 지역에서 급격한 반발과 저항 분위기가 형성되는 효과로 이어졌다.

결국 10월 초 하자라족의 거병 및 판지시르 정부를 지지하는 사건을 시작으로 북부의 비 파슈툰 지역에서 탈레반에 반대하는 지역 저항군 단체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한다.


3.2. (기타) 저항군 시각에서 기대하는 탈레반 정권의 전망[편집]


비록 저항군이 장기전으로 버티는 데 성공하긴 했다만, 세력비는 여전히 탈레반 정부가 우세인 상황으로, 이를 자력으로 뒤집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래 탈레반의 약점으로 평가되는 부분이 나열되어있는데, 사실 탈레반 정권의 붕괴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뉘고 있다. 일단은 탈레반 정부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보는 관점이 더 우세하다.

붕괴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쪽은 후술할 현 아프간의 경제·식량 위기, 그리고 탈레반 내의 온건파와 강경파 간의 내분이 주요 요점이다.

반면 붕괴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쪽은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의 지도력[16]과 탈레반의 전과 다른 유화적 행보, 그리고 아프간 국민의 전체적으로 낮은 교육률과 원래부터 높지 않은 인권 의식 등을 꼽으며 군대만 통제된다면 보통의 독재 국가들처럼[17] 경제와는 상관없이 정권이 붕괴되지 않고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탈레반 내의 수 많은 계파와 종파 갈등, 민생문제, 외교적 고립,[18] ISIS-K 등 여러 문제들이 산재해 있으므로 확실하게 정권이 계속 유지될 수 있다고 보기에도 어렵다.


3.2.1. 탈레반의 외교[편집]


탈레반 정권은 암묵적으로 대외적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에게 공식적으로 정권으로 인정받은 상태가 아니다.[19]

이는 탈레반의 기본 통치 이념부터가 이슬람 원리주의와 근본주의이며, 교리와는 다르게 마약 군벌들을 포섭하여 이용하는 모순점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로 인해 타국에서 신뢰하고 공개적으로 수교를 맺거나 군사적 지원을 하기엔 어렵다는 분석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을 하는 전문가들도 '향후 탈레반이 비공개적 혹은 공개적으로 지원을 받을 가능성은 낮지 않다'는 견해에는 동의하고 있다. 미중 갈등사이속에 아프가니스탄의 지리적 위치와 ISIS-K에 대한 이이제이식 견제, 그리고 아프간 철수 과정에서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각국의 시민들과 협력자들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질 문제는 서방 각국에서 상당히 이슈화되었다. 이 문제는 공통적으로 야당이 여당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대한민국은 다행스럽게도 미라클 작전의 성공으로[20][21] 인질 문제가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으나, 서방에서 인질 문제는 이미 비중있는 요소가 되었다. 만약 탈레반 정권이 궁지에 몰리거나 붕괴가 확실시되는 상황이 온다면 이들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22] 서방국가들이 탈레반 정권에 대해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되 계속된 대화 시도와 지원약속을 하는 실질적 이유로 봐야한다.[23][24]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국우선주의와 실리주의적 성향이 강해졌는데, 이로 인해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에 대한 지원과 합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각국이 자국에 체류중인 아프간인들의 송환거부요청을 받아들여 일단 체류를 허용하고 탈레반측의 송환요구를 거부하는 한편, 자국 주재 아프간 대사관도 일부 탈레반을 승인한 국가들을 제외하면 구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에서 임명한 사람들을 그대로 놔두고 있는 걸 생각할 때[25] 탈레반과 아무리 손을 잡고 싶어도 선을 넘어서 도저히 손을 못 잡는 상황으로 보는 게 맞는 것으로 보인다.

3.2.2. 군벌들의 이해관계[편집]


현재 탈레반을 어렵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아프간 전역에는 예로부터 지역 별로 군벌들이 군림하고 있는데, 탈레반 정부는 성향과 이해관계가 각각 다른 군벌 수장들과 야합해 미국을 타도하고 카불을 함락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은 얼마든지 배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탈레반 정부는 군벌을 확실하게 자기 편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제거했어야 했지만, 탈레반의 이러한 시도는 사실상 실패로 가게 된다. 이를 군벌 입장에서 보자면, 이들은 그동안 미국이 지원하던 막대한 돈을 받아 챙기며 이득을 취해왔는데, 미국이 물러나면서 그 많은 돈이 죄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탈레반이 그만큼 돈을 주면서 보상을 해줘야겠지만 경제력으로 매우 안 좋은 탈레반 정부가 미국이 제공했던 돈만큼 줄 여력이 없다.

이런 상황 덕에, 새로운 정부를 개창한지 불과 몇 개월 정도 밖에 안되었음에도 탈레반 정부에 불만을 품은 군벌 수장들이 각지에서 내전을 부채질하고 있다. 심지어 새로 군벌화된 탈레반의 지역 유지가 정치, 민족적 갈등을 이유로 탈레반 정부에 반란을 일으키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탈레반의 카불 정부는 이들을 모두 제압하기가 버거운 상황이다.


3.2.3. 심각한 경제난[편집]


아프간 경제 붕괴는 현재 탈레반 정부에게 처한 문제들 중 가장 심각하고 위협적인 문제이다.

미군과 NATO 주둔군, 그리고 아프간 경제를 떠받들던 상류층들 대다수가 아프간을 탈출한 시점부터 아프간 경제는 빠른 속도로 무너져가고 있다. 아울러 미국의 주도로 해외에 있는 아프간 정부 자산들은 모조리 동결되었고, 아프간 현지에 있던 달러화 등 외환도 뱅크런으로 다 유출되면서 현 시점에서 탈레반의 외화 보유량은 그렇게 많지 않은 걸로 보인다. 탈레반 측은 그동안 버려진 상류층 저택을 털어서 약 1,200만 달러를 현찰째 회수했다고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 4천만 명의 아프간 국민들을 부양시키면서 탈레반 군 조직을 유지하기엔 너무 부족하다. 특히 군대는 비생산적인 조직이며 목숨 걸고 전쟁터에서 싸우라고 하려면 최소한의 봉급과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서 빈곤국이나 소국 중에는 군대가 없거나 수천명 정도로 상징적인 수준으로만 유지한 국가도 생각보다 많은데 아프간은 그냥 빈곤국도 아니고 최빈국이며 나아가 서방국가들을 모조리 적으로 돌린 상태다. 그러다보니 탈레반은 지금 군대 유지도 주민들을 쥐어짜서 겨우 하고 있고, 당장 봉급은 어떻게 지급해도 민심이 반발하여 등을 돌리면서 세력기반은 갈수록 무너져내리고 있다.

특히 아프간의 식량 사정은 매우 심각하다. 원래부터 아프가니스탄은 농사짓기엔 척박한 땅이 너무 많고 이조차도 곡물보다 아편이 더 돈이 되기에 식량 자체 수급이 높지 않은 편인데, 유엔 치하 20여 년 동안 들어온 국제적인 식량 지원 덕분에 아프가니스탄의 인구는 2001년 당시보다 2배에 가까운 4천만 명으로 급증할 수 있었다. 그런데 탈레반이 재집권하자 유엔과 미국이 제공하던 식량 지원들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고, 결국 탈레반 신정부는 시작부터 "식량 생산량<증가 인구"라는 멜서스 트랩에 빠져버리는 처지에 이르러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하필 3년 전부터 지속된 가뭄과 흉작에 시달리고 있던 터라, 10월이 되기도 전에 비축된 식량이 완전히 고갈된다는 소문이 아프간 내 민간인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면서 식량 가격이 급격하게 치솟고 있다.

그나마 그 다음 해까지 겨우 넘기긴 했지만 겨울이 끝나지 않은 2월부터 비축된 식량이 완전히 고갈되는 사태가 터진다. 식량난으로 인해 아녀자들이 자신의 장기를 판매하여 식량을 구입하거나 아이를 판매하여 다른 아이라도 살리려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그로 인해 암시장에서 장기와 사람의 가격이 저렴해졌다고 한다. 아프간이 모하마드 자히르 샤[26] 치세때는 한국보다 잘 살던 나라였다는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아프간 전역의 민심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며, 탈레반은 위험 단계까지 가는 민심 불안을 막느라 저항군 소탕에 전력을 쏟을 여유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


4. 기타 내용[편집]



4.1. 정의길 기자의 무장투쟁 폄훼[편집]


국민 저항 전선이 목숨 걸고 항쟁을 하는 와중에 한겨레의 정의길 기자('이슬람 전사의 탄생'이라는 서적의 저자)는 '탈레반이 승리했고, 인정해야 한다'는 칼럼에서 "또 다시 '반 탈레반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것은 아프간을 벗어나려거나, 남으려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 고 기고했다. 얼핏 들어보면 "20년 싸움에서 승리한 탈레반이 이젠 집권 세력이며, 그 싸움에 끼어 쥐어터져온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더 이상 내전에 시달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할 수 있겠으나[27], 기사의 서술 방향이 탈레반을 두둔하고 있어 문제가 된다.

이게 기자로써, 그것도 한겨레 기자로써 쓸 말입니까? 이 논지대로라면 한겨레를 창간한 기자들은 민주화를 위해 사람들이 싸우다 죽어갈 걸 알면서도 왜 정권에 투항하지 않았답니까?

봉건적이고 억압적인 독재를 걱정하는 것은 정당하다면서 그 독재의 주범인 탈레반을 국제사회에서 인정하자는 말은 모순 아닙니까?

한겨레 신문 홈페이지 내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위의 기사는 사실 관계부터 왜곡하는 편향적 기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단적으로 "2001년 미군 침공 때 탈레반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선도에 섰던 북부동맹 세력이 마자르이샤리프에서 탈레반 대원 3천여 명을 집단학살하기도 했다"고 서술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당 학살을 주도한 사람은 바로 친소 군벌에서 무자헤딘으로 전향한 희대의 조커로 알려진 압둘 라시드 도스툼이며, 탈레반에서 우즈베크인 민간인들을 학살한 것을 복수를 하겠다며 탈레반이 했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기도 하다. 1998년 8월 8일 아프간을 휩쓸던 탈레반은 반(反) 탈레반 비(非) 파슈툰족이 연합해 대항하던 거점 도시인 아프가니스탄 북서부 도시 마자르이샤리프를 점령했다. 탈레반은 도시를 점령하고 몇 시간 뒤 무차별 공격으로 민간인을 학살하고 며칠간은 타지크족, 하자라족, 우즈베크족 등의 공동체에서 남성들을 가택 수색을 하며 색출해 잡아갔다. 수백 명의 하자라족 남자와 소년들이 그 자리에서 약식으로 처형 당하고, 다양한 인종 공동체에서 잡혀온 수천 명의 남자는 대형 컨테이너에 100~150명씩 갇힌 상태에서 달궈진 컨테이너에서 질식사했다. 그렇게 학살로 생긴 피해자 수만 약 8,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

보복학살도 결코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당연히 무고한 민간인 학살을 했던 탈레반 쪽이 훨씬 죄질이 나쁘다. 전후 관계를 딱 자르고 맥락상 어느 개연성도 없이 "3천여 명 집단학살" 같은 자극적인 단어만 사용해서 사실 관계를 왜곡한 것은 문제가 있다. 쉽게 비교하자면 민간인들의 가자지구를 폭격했던 이스라엘과 이에 반격하기 위해 이스라엘 군들을 공격했던 팔레스타인하마스 중 국제 사회에서 더 비판을 받은 것이 이스라엘인 것을 볼 때 탈레반 쪽이 더 비판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탈레반이 강간범들을 처벌하면서 인기를 얻었다는 내용도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90년대 탈레반이 집권했던 계기 중 하나는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휘하의 군인들이 납치와 집단 강간을 하고 다니며 처벌 받지 않았던 것을 탈레반에서 본보기로 화끈하게 공개처형하면서 인기가 올라간 것이다. #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군벌은 북부동맹과 계속 대립하는 관계였으며, 이후 그 헤크마티아르 세력은 이후 탈레반에 그대로 합병되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당연히 탈레반도 강간을 수도 없이 자행했다. 마치 "타락한 북부동맹을 탈레반이 진압했다."라는 식의 오해를 줄 만한 내용이다.

아프가니스탄이 정부의 부정부패와 군의 한심한 작태로 인해 수치스럽게 무너지는 것을 본 세계인들에게 아프간 사람들은 '탈레반에 맞설 용기도 없는 우매한 사람들', '20년이 넘도록 미국에게 의존하기만 한 사람들', '스스로 싸우지도 않고서 미국과 국제사회만 원망하는 자들' 같은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28] 미국의 한 티셔츠 회사가 아프간을 탈출하려다 항공기에서 추락사한 아프간인들을 조롱한 티셔츠 디자인을 내놓은 사건이 대표적 사례. 이런 상황에서 아흐마드 마수드는 얼마든지 해외로 도주해서 유복하게 살 수 있었던 상류층임에도 이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탈레반에 대항해 봉기하여 아프간 국민들의 최소한의 자존심이 되어 주고 있는데, 정의길 기자는 이런 점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것.

결국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일제강점기의 독립투사들마저 폄하하는 것이냐?"라는 날선 비판을 가했다. 즉, 많은 이들은 탈레반이 아니라 국민전선 측을 독립운동가들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


5. 기타[편집]


  • 아프간 전역을 장악한 탈레반과 너무 무능하고 부패로 얼룩져 끝내 무력하게 항복한 중앙정부에게 대놓고 반발하듯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기를 다 걷어내고, 과거 북부동맹의 가로 삼색기를 걸어뒀다. 기사. 북부동맹의 삼색기가 세상에 재등장한 건 20년 만이다. 다만 기존 정부의 부통령이 북부동맹에 합류해서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되었고, 정부군에 속해있던 군인들도 합류했기 때문에 반격이 진행되면서 두 깃발을 병행하여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안다라브 수복 이후에는 북부동맹기가 아닌 이슬람 공화국기를 게양했다.

파일:Screenshot_20210821-080742_Instagram.jpg}}}
  • 한국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응원하는 내용의 DM을 많이 보내서, 이에 화답하는 내용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렸다.

(번역) 대한민국의 친구들에게. 당신들의 도움과 친절한 메시지에 감사를 표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인들로부터 80개 이상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모든 메시지에 답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싸웁니다.

파일:판지시르 트위터 분노.jpg}}}
  • 한편 비슷한 시기 아프간에서 철군한 미국의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탈레반의 위협을 피해 탈출하고자 비행기에 매달렸다가 추락사하는 아프간인들의 그림을 티셔츠에 넣고 "카불 스카이다이빙 클럽"이라는 글씨까지 새겨 파는 모습을 보고 크게 분노하는 트윗을 올리기도 하였다. #, #

  •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서방 언론인들 사이에서도 개념 있는 온건파로 좋은 인상을 주었던 것은 물론, 부르하누딘 라바니 같은 근본주의자들에게도 큰 신임을 얻던 인물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의 파슈툰인들 입장에서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다른 군벌들은 소련군에게 압도적인 전사자 교환비로 밀리는 상황에서 오직 아흐마드 샤 마수드만 연전연승을 하던 것을 알던 상황이었기에 그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이 때문에 탈레반 정권 측에서는 함부로 아프간계 대원들을 판지시르 전선에 투입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탈레반에서는 마수드 부자가 누구인지 잘 모르는 파키스탄 탈레반들을 이번 진압 작전에 투입하였다. 파키스탄 탈레반 대원들은 탈레반이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부터 있었던 단체라고 교육 받는다. 또한 모하마드 오마르의 여러 가지 기행은 미국이스라엘이 조작한 것이며, 모하마드 오마르는 항상 청빈했다고 주장하는 등 자신들 말만 맞다고 세뇌 시키는 상황이라 진짜로 낚이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 저항 전선 측은 이를 두고 트위터 상에서 'Pakistaliban'이라는 어휘를 써가며 조롱하는 상황이다.

  • 탈레반이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도농 갈등, # 즉 미국의 원조로 부유해진 도시 vs 아편을 재배해야 소득이 나는 농촌이라는 상황을 배경으로 지방의 타지크인 군벌들을 대거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현재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타지크인들의 경제 상황은 썩 좋지 못하다. 그래서 이들에게 아편 재배와 밀매로 얻는 수익은 큰 유혹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지대는 세계 주요 마약 밀매 루트 중 하나다. #1, #2 아프가니스탄은 남부에는 파슈툰인, 북부에는 타지크인들이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즉 아프가니스탄은 지리적, 인구학적 특성상 가장 인구가 많은 두 민족인 파슈툰인, 타지크인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면 절대 안정화될 수 없는 나라다.[29] # 이 상황에서 탈레반이 아흐마드 마수드가 살해 당한다면 그나마 파슈툰인들과 문화 및 언어와 인종이 비슷하고 북부 영토의 실세인 타지크인들이 동요하게 된다. 타지크인들 입장에서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자신들의 성웅이기 때문이다. #

  • 가족이 판지시르에 있다는 한 아프간 출신 난민은, 판지시르에 대해 너무 낭만적으로 세계가 여론을 몰아서는 안 되고 "언론이 판지시르를 띄워준다면 탈레반이 판지시르에 대한 총공세를 펼치고 학살을 벌일 리스크가 높아진다"며 판지시르 저항군에 대한 우호적 보도를 자제할 것을 촉구했다. 기사.[30]

  • 바자라크가 탈레반한테 함락된 이후로는 언론에서는 저항군에 대해 거의 다루지 않는다. 탈레반한테 판지시르가 함락됐을 때는 대문짝만하게 광고를 해댔지만, 반대로 저항군이 판지시르를 탈환했을 때는 언론들은 이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이에 대해 일절 기사로 다루지 않았다.[31] 사실상 저항군을 완전히 망한 걸로 간주하는 듯. 아예 탈레반을 상대로 테러를 저지르는 다에시를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 맞서는 유일한 무장 세력'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냥 외신 베껴먹는 것이 특기인 놈들이라 그렇다 그리고 오히려 이쪽이 도와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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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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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80><colcolor=#fff><colbgcolor=#D32011> 상징 ||<colcolor=#000,#fff>국가(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
|| 역사 ||북부동맹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 · 2021년 아프가니스탄 내전 ·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
|| 정치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
|| 국방 ||아프가니스탄군 ||



[1] 다리어, Jebha-ye Moqāwemat-e Mellī-ye Afġānestān.[2] 영문 표기 근거.[3] 공식 웹사이트[4] 총사령관 아흐마드 마수드가 회장인 마수드 파운데이션 재단에서 직접 시작한 후원 웹사이트이다.[5] 해당 트위터 계정 운영자는 본디 관광 공무원이었다. 2020년에 작성한 트윗들을 보면 판지시르 자연 환경에 대한 내용이나 정부 관료와 악수하는 사진 등이 있다.[6] 공식 계정.[7] 이들이 회담을 나누고 있는 건물은 2021년 8월 4일 탈레반의 폭격에 의해 무너졌다. #[8] 초대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는 탈레반에게 협력하고, 2대 대통령 아슈라프 가니는 전 재산을 가지고 해외로 도망가버렸다.[9] 아프간군 코만도를 비롯한 아프간 정예병력 그리고 민병대들이 합류했다.[10] 판지시르 주에 모여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암룰라 살레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아흐마드 마수드는 군 총사령관, 야신 지아가 군 참모총장, 비스밀라 칸 모하마드가 임시 국방장관을 맡기로 했다.[11] 해당 지역은 판시시르의 주도인 바자라크로 가는 길목이자 판지시르 최대의 식량 생산지이다.[12] 구글어스[13] 판지시르의 고산지대는 소련군이 6번이나 점령을 시도했는데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천혜의 요새이다. 지형을 제대로 활용한다는 가정 하에 난공불락인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공세가 쉽지 않은 환경으로 저항군에게 큰 이점이다.[14] 바자라크는 저항군의 최중요 거점으로 판지시르 전체와도 거의 동등하다고 평가받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바자라크만 잘 사수한다면 반전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했고, 혹여 탈레반과 협상을 하더라도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는 근본적 기반으로 보았다. 하지만 바자라크 함락으로 고무된 탈레반은 저항군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살려두지 않겠다 라는 일관적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15] 주로 타지크족, 우즈베크, 하자라족.[16] 온건파와 강경파간의 대립은 아훈드자다에게 반기를 들어서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고 정치적 성과 경쟁으로 일종의 내부서열 정리로 봐야한다는 시각이 있다.[17] 대표적 예시로 북한이나 이란 혁명 직후에 이슬람 신정 체제 정부가 수립된 이란, 로버트 무가베 시절의 짐바브웨.[18]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탈레반 정권을 정상적 국가정권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19] 이것은 달리 말하면 상황이 변한다면 암묵적인 인정도 바뀐다는 의미다.[20] 만약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이고 아프간 국적의 대한민국과의 협력자들이 아프간에 갇혔거나 아예 수송기가 방공미사일 내지 맨패즈에 의해 격추당하는 상황이 터져 수송기의 탑승 인원이 전원 사망하여 작전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면 충분히 정권차원에서 이슈화되었을 것이다. 2021년에는 부실급식 논란과 육해공군 내 성추행 사건, 청해부대 집단 감염 등의 좋지 않았던 일들로 인해서 군 전체의 이미지가 많이 나빠진 상황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 작전이 실패했다면 또 다른 흑역사가 추가될 뻔 했으며, 정부에 대해서는 이 일이 제2의 샘물교회 사태가 되어 그렇찮아도 2020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인해 질타를 받은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큰 타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21] 사실, 군 내부에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과 아예 작전/경계 실패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우를 비교해봤을 때 그 사건의 무게감부터가 다르다. 더군다나 전시도 아닌 평시라면 더더욱 그 차이가 크며,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유족들의 배상금 문제, 해당국과의 관계 악화, 작전 시 규정 수칙 준수 및 보안 유지 여부 등으로 인해 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샘물교회 사태와의 차이점이라면 이 일은 우리나라와 같이 협력을 한 인원에 대한 일이었고, 구조해야하는 인원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한편 샘물교회 사태는 국내 민간인(선교사)에 관한 일이었는데 현지 테러분자들과 교섭을 하는 과정에서 인질 합의금까지 뜯기면서 엄청난 조소를 들어야 했으며 2명은 협상 도중 살해당했다.[22] 탈레반 정권이 지속되는 한, 서방국가들을 상대로한 인질외교를 위해 인질들에게 쉽게 해를 가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23] 9월 UN에서 아프간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약속하였고(단 약속일 뿐이다)로이터 통신, 10월11일 미국-아프가니스탄 2차 도하합의로이터 통신를 하여 미국으로부터 인도적 지원약속이 논의되었다고 한다. 회담내용은 추측성 정보지만 미국은 아프간 내의 자국민 안전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고 탈레반측은 식량지원과 반탈레반 세력지원 중단을 재차 확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24] 다만 대화와 약속 시도 자체가 인질들의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만들어 억류 장기화를 만들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25] 이들은 당연히 NRF의 대변인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26] 퇴위 후 불행하게도 건강이 좋아 92세까지 장수하며 오래 살았기에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조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행을 다 보고 "난 저세상에 가면 알라에게 천벌을 받을 것이오! 아름답던 내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으니..."라며 통곡하다가 죽었다.[27] 실제로도 탈레반과 교섭을 시도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 파키스탄이 이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28] 이와 반대로 국제사회의 경제적, 군사적 지원이 없음에도 각종 중화기로 무장한 미얀마 군부와 싸우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에 대한 지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군부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미얀마 시민들 용기에 미얀마 군부는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있으며, 국제 사회에서도 미얀마 민주 세력을 도와야 한다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미얀마 시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국제 사회에 보여주었기에 가능했다.[29] 현재 탈레반이 정부 위치를 차지했지만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의 식량난 등 국가 내부의 크고 고질적인 문제들에 있어 뚜렷한 해결책을 내새우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어지간히 급했는지 그 탈레반이 식량난 관련으로 서방에 도움을 요청하나 씹히는 중. 그러다 보니 탈레반이 국가 내부를 제대로 안정화시키지 못한다면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이 만에 하나 괴멸하더라도 계속 난립하는 후속 저항 세력들을 제대로 통제하기 힘들 전망이다.[30] 실제로 탈레반이 판지시르 계곡에 대한 공세 도중 큰 피해를 입고 패퇴하거나, 아니면 희생이 큰 승리를 강요 당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악으로 가득 찬 탈레반 병사들이 판지시르 저지대에 있는 마을 주민들과 도시 시민들을 강제 납치 또는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면서 이 우려는 현실이 되어버렸다.[31] 이 시점에서 저항군이 주춤하기는 했다. 하지만 저항군은 재기에 성공했고, 전선을 아프간 전국으로 확장시키며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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