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바르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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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굴 제국 제19대 황제
악바르 2세
اکبر شاه دوم


파일:Akbar_Shah_II_of_India.jpg

이름
아부 나시르 무인 웃딘 무함마드 미르자 악바르 샤 2세
اکبر شاه دوم
출생
1760년 4월 22일
[[마라타 제국|

마라타 제국
display: none; display: 마라타 제국"
행정구
]]
무쿤푸르인도
[1]
1837년 9월 28일 (향년 77세)
파일:mughalalam.svg 무굴 제국 델리display: none; display: inline"인도
display: none; display: 인도"행정구
[2]
재위 기간
무굴 제국 황제
1806년 11월 19일 ~ 1837년 9월 28일 (32년)
대관식
1806년 11월 19일
전임자
샤 알람 2세
후임자
바하두르 샤 2세
부모
아버지 : 샤 알람 2세 황제
어머니 : 쿠드시야 베굼
종교
이슬람 수니파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무굴 제국의 제19대 황제. 재위기간 내내 영국 동인도 회사에게 휘둘렸던 무기력한 황제였다. 무굴 제국 역사상 성군이었던 악바르 대제의 이름을 이어받았으나 정작 본인의 치세는 이름값을 못했다. 타이틀은 거창한 황제였지만 실제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도 없었고 영국의 꼭두각시일 뿐이었다.


2. 생애[편집]


황위에 오르기 전 이름은 '미르자 악바르'였다. 1760년 4월 22일 무쿤푸르 지방에서 당시 망명 생활 중이었던 샤 알람 2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미르자 악바르 왕자는 제 형이 죽자 1781년 5월 2일 붉은 요새에서 황태자로 책봉되었고, 1782년에는 델리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1799년까지 직을 유지했다. 그렇게 황태자로 살던 악바르 왕자는 1788년에 역대급 굴욕을 당한다. 샤 알람 2세의 친마라타 정책을 싫어하던 로힐랴족 출신의 굴람 카디르가 델리를 침공해 황제를 포로로 잡고 황실에 온갖 굴욕을 줄 때, 악바르 왕자는 황녀들과 함께 굴람 카디르 앞에서 여자들이 추는 춤을 추는 등 엄청난 치욕을 당했고, 심지어는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해 굶기까지 하는 등 한 제국의 황태자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나날을 보냈다.

굴람 카디르는 샤 알람 2세의 눈을 뽑아 장님으로 만들어버린 후 샤 자한 4세를 새로운 무굴 황제로 즉위시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라타 동맹의 마하다지 신데가 쳐들어와 굴람 카디르와 샤 자한 4세를 쫒아내고 샤 알람 2세를 복위시키며 고난의 나날도 끝난다. 이때 샤 알람 2세가 명목상으로는 복위되어 황제로 돌아왔지만, 아무래도 눈이 멀어버려서 실질적인 행정업무는 전혀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문서 작업이나 의례 절차들은 모두 악바르 왕자가 대신 맡아 처리했다. 이때부터 이미 악바르 왕자는 '악바르 2세'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실질적인 무굴 제국의 황제로 일했다.

아버지 샤 알람 2세가 1806년 사망하자 이제 악바르 2세가 완전히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재위기 무굴 제국은 델리 시가지 일대로만 강역이 찌그러진 상태였다. 델리라는 도시 하나로 한정해서 보면 영국군의 관리 하에 나름 평화로운 세월을 누렸지만 무굴 제국이라는 국가로서의 입장으로 보면 이미 망할대로 망해버린 상황이었던 것이다. 특히 악바르 2세는 당시 북인도 대부분을 휘어잡던 영국인들을 접견할 때 주인과 종의 관계로[3] 만나고자 했고, 그를 허수아비 수준으로 생각하던 영국인들은 당연히 이같은 처우에 격분했다. 결과적으로 영국은 악바르 2세의 칭호를 '인도의 황제'에서 '델리의 왕'으로 격하했고, 발행하던 동전에도 그의 이름 대신 영어를 집어넣는 등 의례적으로 무굴 제국을 존중하던 짓거리도 모두 집어치웠다.

영국인들은 악바르 2세의 재위 기간 동안 서서히 무굴 제국의 정통성을 흠집내는 데에 주력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황제라는 직함을 '델리의 왕'으로 격하해 칭호를 끌어내리는 한편 각지의 총독과 나와브들에게 왕의 칭호를 쓰라고 권장하면서 무굴 황제와 나와브들을 동격으로 놓기 위해 애썼다.[4] 그렇게 악바르 2세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식물 황제로 살다가 1837년 9월 28일 붉은 요새에서 쓸쓸히 사망했다. 그의 나이 77세였다.

3. 여담[편집]


무굴 제국 역대 황제 중에서 가장 빨리 아버지가 된 인물이다. 차남 바하두르 샤 2세 탄생 당시 나이가 15세였다.

대체역사물 카레 대공의 막장 제국에서 주인공이 이 인물에 빙의한다. 태어난 시점이 형인 미르자 자완 바크트와 그 휘하 무장들 덕분에 마지막 중흥기가 태동할 시기라 시간이 얼마 없기에 어린 아이 시절부터 정신없이 구르고 있다. 내외적으로 무(武)의 바크트, 문(文)의 악바르라 불릴 정도로 내치에 있어 뛰어난 모습을 보이지만 군사적으로도 시크 연합, 마라타 제국과의 전쟁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사실상 문무겸비의 황자. 다만 무 쪽에선 바크트가 압도적이다보니 굳이 전장에 자주 나서려 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두 왕자의 종횡무진으로 무굴 제국은 원역사보다 조금씩 나은 길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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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디아프라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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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3] 물론 악바르 2세가 주인 입장이었고 영국인이 종이라고 생각했다.[4] 특히 아와드의 나와브와 하이데라바드의 니잠에게 칭왕하라고 권유했는데, 하이데라바드 니잠은 이 제안을 거절했지만 아와드의 나와브는 이를 받아들여 왕으로 즉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