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지카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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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hikasue_Andō.jpg

安東愛季
(1539~1587)

1. 개요
2. 역사
2.1. 세력 확장
2.2. 영지 경영
2.3. 평가
2.4. 사후
3. 창작물에서의 모습



1. 개요[편집]


안동애계, (안도 지카스에, 안도 치카스에)

센고쿠 시대 인물. 안도가 8대 당주이다. 오랜시간 미나토(湊), 히야마(檜山) 로 나뉘었던 가문을 통일하여 안도씨를 센고쿠 다이묘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교묘한 전략으로 안도가 최대의 판도를 구축하여 사람들은 '북쪽 하늘의 북두칠성과 같다'라고 하며 두려워했다. 만년에 아키타(秋田)로 성을 바꾸어 전국 다이묘 아키타가의 초대가 되었다.


2. 역사[편집]



2.1. 세력 확장[편집]


안도가는 본디 츠가루(津經)지방의 호족으로, 가마쿠라 막부 초기 때부터 에조관령으로 발탁되어 등장한다.

이후 14세기부터 일족간 내란이 일어나 가문의 파벌이 분리된다.

미나토 안도가와 히야마 안도가의 재결합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어쨌거나 안도 지카스에의 출현 이후 그의 영향력 아래 합해진 것만은 확실하다.

1562년, 평소 히나이 지방의 금(金), 은(銀)을 비롯한 삼림 자원을 탐내던 안도 지카스에는 히나이(比内) 지방으로의 침략을 개시하였고, 해당 지역의 토호인 '아사리'(浅利)가의 영주 아사리 노리스케는 농성으로 저항했으나, 여력이 다해 결국 할복하였다. 히나이 지방을 점령한 안도 지카스에는 자신이 죽음으로 내몬 아사리 노리스케(浅利則祐)의 동생인 아사리 가쓰요리(浅利勝頼)를 히나이의 영주로 삼고 지역 복속을 도모한다.

1564년, 이후 몸집을 불린 지카스에는 오슈의 명문 '난부'(南部) 관할에 있는 카즈노(鹿角) 군에 침공을 시작하였다.
전쟁 초기에는 안도가의 공세가 유리하게 전개되었고, 몇몇 성을 낙성시키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난부 하루마사의 호된 반격을 받고 이후엔 개전초의 우세를 이어나가지 못한채 그저 일진일퇴의 공방을 주고 받는 교착상태에 빠져버린다. 카즈노, 히나이를 경계로 한 안도, 난부가의 대립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전국이 통일될 때[1]까지 멈추지 않았다.

1570년, 토시마 큐신(豊島休心)이 미나토 소동(湊騒動)을 일으켰다.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소동에 동조한 다이호지 씨(大宝寺)가 자멸하는 틈을 타 유리(由利)군의 대부분을 손에 넣는데 성공하였다.

1582년, 히나이 지방을 직접 지배하기 위해 본인이 영주로 세웠던 아사리 가쓰요리를 죽이고 데와 북부 해안가를 전부 손에 넣었다. 오모네 강(雄物川) 하류와 인근 해안가를 장악한 지카스에의 눈은 자연스레 오모네 강의 상류 즉, 내륙지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곳의 터줏대감 도자와(戸沢) 씨의 당주는 약관의 나이에 당대 북오우 최고의 명장으로 꼽힌 도자와 모리야스(戸沢盛安)였다. 모리야스와 악전고투를 벌이며 좀처럼 성과를 거두지 못하던 지카스에는 1587년 향년 49세의 나이로 진중에서 병사하고 만다.


2.2. 영지 경영[편집]


낮은 관세를 미끼로 오모네 강(雄物川) 상류에 있는 유력자들을 끌어들여 하천교역을 활성화시킴과 동시에 에조치 무역에도 손을 뻗었다. 오모네 강 하구에 있는 츠치사키 항(土崎港)을 수리하여 이곳을 북일본 최대의 항만도시로 육성시키는데 성공하며 인근 세력의 통제를 강화시킴은 물론 막대한 세수를 거두었다.


2.3. 평가[편집]


당시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는 '일본의 북쪽 끄트머리, 교토로부터 300 레구아 떨어진 곳에는 큰 나라가 하나 있는데, 그곳엔 짐승의 가죽을 걸치고 수염과 머리가 길며 온몸엔 털이 많은 야만족들이 살고있다. (중략) 에조와 가까운 게스엔 지방엔 아키타 라는 큰 도시가 있다. 그들 대다수는 이곳에 와서 무역을 하며, 아키타 사람 역시 때때로 에조로 가기도 한다.' 라는 기록을 남겼는데, 이를 통해 지카스에가 번창시킨 북방교역이 당시에도 유명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무 양면에 뛰어나고, 아키타 군-히야마 군-유리 군을 손에 넣은 우고(羽後)[2] 최대의 다이묘로써 북녘 하늘의 북두칠성(北天の斗星)이라는 평을 받았다.


2.4. 사후[편집]


지카스에 사후 주변 정세와 총무사령을 어긴 점에 대한 대가로 안도가의 야망은 무너지게 되는데, 아들인 안도 사네스에가 후계자가 되었으나, 조카 안도 미치스에가 미나토 안도 가문의 부흥을 내세워 반란을 일으켰다. 미치스에의 난을 진압하고 1590년 호죠를 토벌하는 오다와라 전투에 참전하며, 안도가 안도 받은 영지는 5만2천4백여석이었는데, 나머지 2만6천2백석은 총무사령 위반(미치스에의 난)에 대한 패널티로 몰수되었다.


3. 창작물에서의 모습[편집]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안도 가를 대표하는 다이묘다. 통솔, 지력, 정치는 80대에 무용 60대정도의 B+급 이상의 능력치로, 안도 가문에서는 최고의 에이스고, 북동지역 인물들 중에서 상위에 해당되는 능력이다.

그러나 가신단이 머릿수만 많지 동북에서도 손꼽히는 약체라 AI로는 별다른 확장을 못하고 있다가 지역 먼치킨들이 있는 모가미 가나 다테 가에게 먹히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지카스에의 아버지 기요스에와 외할아버지 다카스에가 천도 이후 능력치가 대폭 상승했지만 곧 죽어서 영웅집결이 아니면 큰 도움은 못 된다. 정치는 난부 마사나오가 그나마 6-70대고 그 다음은 5-60대인 나미오카 애들을 바라봐야 하며, 전투 쪽으로는 더 암울해서 지카스에 본인과 혁신 이후 통솔이 70대에 턱걸이로 올라간 아들 사네스에 외에는 통무 50대조차도 1명이나 있으면 다행이다. 이런 수준으론 라이벌 난부 하루마사는커녕 난부 하루마사의 가신이었다가 독립한 츠가루 타메노부와도 대적할 수 없다. 안도 가로 플레이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고 보통은 모가미 가나 다테 가로 플레이하면서 얻으면 쏠쏠하게 쓸 수 있는 인재정도로 여겨지곤 한다. 홋카이도에 있는 가키자키 가와 동맹 내지 종속시키는 관계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거리가 먼데다가, 가키자키 또한 약체인건 마찬가지라 전혀 도움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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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무사령[2] 데와 북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