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아스 브레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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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스 브레메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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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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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UEFA 유로 1992 로고.svg




1990 Ballond'or
수상
로타어 마테우스
2위
살바토레 스킬라치
3위
안드레아스 브레메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안드레아스 브레메의 기타 정보





독일의 축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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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안드레아스 브레메
Andreas Brehme
출생
1960년 11월 9일 (63세)
독일 함부르크
국적
[[독일|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독일"
행정구
]]

신체
176cm
주발
오른발 (양발)
직업
축구 선수 (수비수[1], 미드필더[2]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바름베크울렌호르스트 (1965~1978 / 유스)
바름베크울렌호르스트 (1978~1980)
1. FC 자르브뤼켄 (1980~1981)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81~1986)
FC 바이에른 뮌헨 (1986~1988)
인테르나치오날레 (1988~1992)
레알 사라고사 (1992~1993)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1993~1998)
감독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 (2000~2002)
SpVgg 운터하힝 (2004~2005)
VfB 슈투트가르트 (2005~2006 / 수석 코치)
국가대표
86경기 8골 (독일 / 1984~1994)

1. 개요
2. 클럽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수훈
6. 이야깃거리



1. 개요[편집]


독일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수비수, 미드필더.

아르헨티나와의 1990 월드컵 결승전에서 루디 푈러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독일[3]에 통산 세 번째 월드컵 우승을 안긴 선수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특히 마테우스, 클린스만과 함께 게르만 삼총사라 불리며 인테르와 서독-독일 대표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또한 양발을 자유롭게 다루고 킥력도 뛰어나서 데드볼 상황에 매우 강한 면모를 보였다.[4][5]


2. 클럽 경력[편집]



2.1.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편집]


HSV 바름베크울렌호르스트라는 아마추어 클럽에서 데뷔했다. 얼마 안가 프로팀에서도 제의가 왔고 1980년 2부리그 소속의 1. FC 자르브뤼켄으로 이적한다. 프로 무대에서 브레메의 진가는 전국민들에게 알려졌고, 1년만에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이적한다. 당시 카이저슬라우테른은 중상위권의 팀이었고, 5시즌간 몸을 담았지만 아무런 우승컵도 따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전처럼 브레메의 활약만큼은 아주 빛났다.


2.2. FC 바이에른 뮌헨[편집]


1986년 FC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 이 시기 바이에른은 로타어 마테우스를 중심으로 국가대표팀 주전이 아닌 B팀 선수들을 주축으로 하는 팀이었다. 바이에른에서 2시즌을 뛰며 리그 우승을 맛본 브레메는 이탈리아의 명문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한다.


2.3.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편집]


인테르 시절에는 지역 라이벌인 AC 밀란오렌지 삼총사에 대한 대응으로 로타어 마테우스, 위르겐 클린스만과 함께 게르만 삼총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으며, 스쿠데토를 차지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또한 1991년 UEFA컵 결승전에서 AS 로마를 꺾으며 첫 유럽 대항전 우승을 맛보기도 했다. 1992년을 끝으로 게르만 삼총사는 뿔뿔이 흩어졌다.


2.4. 레알 사라고사[편집]


브레메는 스페인의 레알 사라고사에 입단해 1시즌간 활약한다. 레알 사라고사에서 코파 델 레이 결승까지 진출하는데 성공하나 아쉽게 레알 마드리드에게 2-0으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그친다. 또한 브레메는 사실상 벤치에서 시즌을 전부 보냈다.


2.5. 1. FC 카이저슬라우테른[편집]


이후 1993년 친정팀인 카이저슬라우테른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팀은 어려웠고 1995-96 시즌 2부리그로 강등당한다.[6] 카이저슬라우테른은 오토 레하겔을 선임하며 절치부심했고, 브레메는 베테랑으로 팀의 중심을 잡았다.

그 시즌 카이저슬라우테른은 승격했고 1997-98시즌, 카이저슬라우테른은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적 중 하나인 승격 첫 해 우승을 달성한다. 비록 브레메는 30대 중반의 노장으로 주전 선수는 아니었지만 2부 리그에서 올라오는 과정에 큰 기여를 했다는 것에서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시즌이 끝나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2.6. 국가대표[편집]


브레메의 첫 메이저 대회는 유로 1984였다. 그러나 서독은 4강 진출에 실패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서독은 전력이 약화했다. 조별리그(24강)에서도 스코틀랜드를 이기지만 우루과이에게 비기고 덴마크에게 패배하며 1승 1무 1패 조 2위로 겨우 올라간다. 16강에서는 최약체 모로코로타어 마테우스의 결승골로 1-0 승리했고 8강에서는 멕시코에게 승부차기로 꾸역 승리, 하지만 4강에서는 미셸 플라티니프랑스를 브레메의 프리킥 골에 힘입어 2:0으로 꺾고 결승에 오른다.

결승전의 상대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였다. 호세 루이스 브라운과 호르헤 발다노에게 골을 허용하여, 2-0으로 밀리고 있었으나,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루디 푈러의 동점골로 2:2로 따라잡았는데 이 2골은 모두 브레메의 코너킥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마라도나의 패스를 받은 호르헤 부루차가에게 결승골을 허용하여 결국 준우승에 그쳤다.

유로 1988에서는 4강에서 오렌지 삼총사가 이끄는 네덜란드에게 패해 탈락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서독은 4년 전과 달리 강력해졌는데, 투톱에 루디 푈러위르겐 클린스만, 수비에는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위르겐 콜러, 브레메 본인 그리고 중원에는 주장 로타어 마테우스가 있었다. 서독은 유고슬라비아, 콜롬비아, 아랍 에미리트와 한 조가 되어 2승 1무로 16강에 오른다. 16강에서는 오렌지 삼총사네덜란드를 상대로 브레메는 환상적인 바나나 킥 골로 네덜란드를 2-1로 꺾는데 공헌하며, 지난 대회의 복수를 제대로 했다. 8강에서는 마테우스의 결승골로 체코슬로바키아를 1-0 승리한다. 4강에서는 잉글랜드와 접전을 펼치며 브레메의 프리킥골에도 1-1로 승부가 나지 않았고, 결국 승부차기 끝에 서독이 승리하여 결승전에 진출한다. 결승전은 다시 마라도나아르헨티나였다. 4년 전 월드컵 결승전과 같이 서독의 수비진들과 브레메는 마라도나를 마크했고 이번에는 그를 꽁꽁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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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 40분, 브레메는 당시 8강, 4강을 모두 승부차기로 이기고 올라온 세르히오 고이코체아[7] 골키퍼를 상대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팀의 1대0 승리,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8] 브레메는 활약을 인정받아 발롱도르 3위에 오르게 된다.

유로 1992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결장한 로타어 마테우스를 대신하여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해 맹활약을 했으나 독일은 덴마크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1994 미국 월드컵에도 출전했으나 독일은 부진했고 결국 8강에서 불가리아에게 패해 탈락했다. 이후 브레메는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여담이지만 게르만 삼총사 중 유일하게 FIFA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지 못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수준급의 1대1 대인마크 능력, 스피드, 슬라이딩 태클 실력을 보유해 안정적인 수비력을 보유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브레메는 패스, 크로스, 슛팅이 누구보다 빛났던 선수로, 축구 역사상 킥을 가장 잘 활용한 사이드백이었다. 측면에서 올려주는 정교한 크로스는 실로 대단했다. 또 역습시 직접 드리블로 오버랩하는 대게 사이드백들과 달리 브레메는 본인의 최대장기인 롱패스를 이용해 침투하는 동료 선수에게 패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팀이 중요한 순간마다 영웅처럼 나타나 파워풀한 중거리슛, 우아한 감아차기로 득점하기 까지... 또 클럽과 국대에서 모두 프리킥, 코너킥 심지어는 페널티킥까지 브레메가 도맡아 찼다.

게다가 브레메는 양발잡이기도 했는데, 보통 양발을 모두 잘 사용한다 한들 데드볼을 처리하거나 다급한 상황에선 본래 자신의 주발을 사용하는 등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양발잡이라 한들 주발은 존재한다.[9] 하지만 브레메는 주발이라는 개념도 없이 양발을 언제 어디서나 모두 잘 사용했을 정도로 양발 사용에 뛰어난 선수였다. 심지어 그는 페널티킥도 양발 모두로 찰 수 있었다.[10][11]

당대 최고의 리그였던 세리에에서 마테우스와 이탈리아 국가대표 미드필더인 베르티, 마테우스만큼 비싸게 사온 헌신적인 토르난테인 비앙키 그리고 마라도나의 옛 동료 라몬 디아즈 등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 스쿠데토를 따냈다. 거기다 그 해 세리에 올해의 선수상은 마테우스가 아닌 브레메의 몫이었다. 또한 오토 레하겔의 기적적인 분데스리가 우승에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경기 안팎으로도 분명히 그의 존재는 힘이 되었을것이다. 월드컵에서도 그의 중거리포가 안 풀릴때마다 해결해주기도 했다. 이 정도면 베켄바워가 감독일 때 직접 언급하며 극찬했던 선수라는것에 정말로 반박불가이다.


4. 지도자 경력[편집]


감독으로서는 크게 빛을 못 본 편으로, 카이저슬라우테른과 운타하힝의 감독을 역임했지만 썩 인상깊은 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5.3. 수훈[편집]


  • 라인란트팔츠 공로장: 1998


6. 이야깃거리[편집]


FIFA 시리즈피파 온라인 2에서 전설의 선수로 등장했다.

또 다른 모바일 축구게임에서도 레전드 등급으로 등장했다.

피파 온라인 3에서도 등장하는데 양발이 제대로 구현되었으며 속가도 괴수급인데다 슈팅도 수준급이다. 왼발 풀백 중에서는 최상의 성능을 보여준다. 그러나 피파 온라인 4에서는 왼발 약발4로 양발 구현이 안 되어 있다. LH시즌에서 드디어 양발로 구현이 되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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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에서 시대별 최고의 수비수 5인을 선정했는데, 1980년대 수비수들 중 4위에 이름을 올렸다.
[1] 풀백, 윙백[2] 윙어[3] 당시 서독[4]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 승부차기에서는 왼발로 골을 넣었고, 다음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오른발로 페널티킥 결승골을 뽑아냈다. 추가로 4강전에서는 잉글랜드의 레전드 골키퍼 피터 쉴턴을 상대로 오른쪽 아크에서 왼발 프리킥 골을 성공시켰고, 승부차기에서는 오른발 킥을 보여주었다.[5] 이에 관해 본인의 말에 의하면 오른발은 정확도가 더 높고, 왼발은 파워가 더 세기 때문이란다. 오른발이 더 정확하다면 선천적으로는 오른발잡이일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물론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짓수의 경우를 보자면 반드시 예외는 존재하기 마련. 덧붙여서 오른발잡이라면 오른다리의 근육이 왼쪽다리에 비해서 짧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왼쪽다리의 힘이 더 센 것.[6] 최종전 이기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레버쿠젠과의 단두대 매치에서 1-1로 비겨 강등이 확정되자 브레메는 눈물을 흘렸고 독일 국가대표 동료였던 루디 푈러가 위로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7] 참고로 고이코체아는 승부차기에서만 내지 3번 이상을 막아냈고 당시 자국 아르헨티나에서 뛰던 1990년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하나였다.[8] 본래 키커는 로타어 마테우스였으나 마테우스가 경기 도중 축구화가 찢어져서 새 축구화로 갈아신은 지 10분도 채 안되었기 때문에 발에 잘 맞지 않아서 움직임이 상당히 어설펐다. 그래서 브레메가 차게 된 것.[9] 일례로 인플레이 상황에서 양발 모두 날카로운 킥이 가능하여 대표적인 양발잡이 선수로 분류되는 손흥민 또한 본래 주발은 오른발이라 데드볼 상황에선 오른발만 쓴다.[10] 인테르 시절 그의 골 모음 동영상을 보면 프리킥은 왼발로 차고, 페널티킥은 오른발로 찬다.[11]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 한준희 해설위원은 브레메는 프리킥때는 강도를 중시해서 왼발로 차고, 더 정확하게 찰 수 있는 발은 오른발이기 때문에 페널티킥은 오른발로 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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