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의 트로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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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이 시절에 인기를 끈 다른 배우


1. 개요[편집]


70년대 초부터 70년대 중반까지 드라마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김자옥, 한혜숙, 김영애 3인방을 트로이카로 일컫는 말. 사실 1세대나 2세대만큼의 인지도나 인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했지만 영화 이외에도 드라마라는 시장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1], 김자옥의 경우에는 드라마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영화계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김자옥이 2014년에, 김영애가 2017년에 각각 사망하여 현재는 한혜숙만이 생존해 있다.


2. 상세[편집]




2.1. 김자옥[편집]


김자옥은 1970년 MBC 공채 2기 탤런트로 데뷔했다. 탤런트로 정식 데뷔하기 이전 60년대부터 TBC 어린이 합창단으로 활동해 방송가에 이미 얼굴이 알려져 있었고, 공채 연수 이후 71년에 KBS로 자리를 옮겨 심청전의 주인공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74년 다시 MBC로 자리를 옮겨 <수선화>, <신부일기> 등의 주연을 맡아 인기를 누렸고, 영화계에서도 주연급을 맡고 흥행을 기록했다. 김자옥은 MBC로 자리를 옮기고도 KBS 드라마에 주연으로 종종 출연했으며 청아한 목소리를 활용해 MBC 라디오 드라마 <사랑의 계절>에서 진행과 연기를 맡아 지속적인 인기를 누렸다.

2.2. 한혜숙[편집]


한혜숙은 김자옥 등과 1970년 MBC 공채 2기 탤런트로 데뷔했지만, 김자옥은 이미 방송가에서는 익숙한 얼굴인지라 그녀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에 한혜숙은 공채 연수가 끝나자마자 71년 초에 KBS가 공모한 주연급 탤런트에 지원해 수석으로 당선됐고[2], 방송사를 옮기자마자 한운사 극본의 <꿈나무>에 주연으로 출연해 한순간에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1974-75년 꽃피는 팔도강산, 전설의 고향-구미호, 1979-80년 토지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더욱 높였고, 1986-87년 노다지까지 한혜숙은 오랜 세월에 걸쳐 KBS를 대표하는 여자 탤런트로 활약했다.

2.3. 김영애[편집]


1970년 10월에 선발된 MBC 공채 3기 탤런트로 데뷔한 김영애는 1973년 사극 <민비>로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강남가족> 등에 출연하며 인기를 누렸고 80년대에는 MBC와 KBS를 넘나들며 연기파 배우로 거듭났다. 70년대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출연했고 80년대 초까지 주연급으로 활동하며 영화 쪽에서도 김자옥보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흥행을 기록했다.


3. 이 시절에 인기를 끈 다른 배우[편집]


1세대 트로이카의 은퇴와 영화 시장의 축소[3]는 자연스레 영화계 배우의 활동에 제약을 가져다 주었다. 이 시기에 활동한 배우는 대부분이 1세대 트로이카 여배우들만큼의 흥행력을 보증해주지 못하고, 행여 흥행을 해도 상당수가 한철나기로 끝났으며, 지속적으로 인기를 끈 여배우는 없었다.


3.1. 김희준[편집]


영화의 전성시대를 끝내고 드라마의 시대를 연 작품 아씨의 여주인공으로 유명했다. 사실 김희준은 안방극장의 트로이카가 등장하기 이전인 70년에 인기를 끌고 71년에 결혼했다.

3.2. 양정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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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트로이카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지만 박동명 사건의 여파로 정상을 놓친 비운의 여배우

이 문서의 제목이 안방극장의 트로이카이지만 이 시기의 최고 인기 여배우는 양정화였다. 지금 봤을 때에는 너무 서구적인 외모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의 입체적인 얼굴형과 큼직한 눈망울을 가졌지만 당시에는 이런 외모가 인기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트로이카 이후 최고 미녀 대접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드라마에서 김자옥과 더불어 가장 인기가 많았던 양정화[4]는 흑녀에서 흥행에 성공하고, 이후 몇 편의 영화에서 잠재력을 보여줘 1세대 트로이카 이후의 최고 배우가 될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그러나 박동명 사건 이후 은퇴를 하게 되었고, 그녀의 인기는 이후 정윤희장미희가 가져가게 되었다.

3.3. 이효춘[편집]


1973년 연극영화과 졸업 타이틀을 갖고 여로 후속으로 방영된 KBS <파도>로 주목을 받은 뒤, 이후 청순가련한 주인공 역할을 도맡아 김자옥, 김영애와 함께 MBC를 대표하는 얼굴로 활동했다.

3.4. 임예진[편집]


70년대 최고의 하이틴 남자스타는 이승현, 여자스타는 임예진이었다. 진짜진짜 시리즈를 통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성인 배우로서는 실패하게 되어 이후로는 크게 활약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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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저질 영화 양산과 무분별한 합작 영화 범람으로 영화계의 위상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때마침 TV 보급률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영화보다 드라마가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안방극장 트로이카도 이런 연유로 생겨났다. 이들이 나타났을 당시 영화계는 1세대 트로이카가 붕괴하고 여배우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릴 만큼 뚜렷한 인기를 유지한 여배우는 없었다.[2] 이 공모전의 동기로 박혜숙 등이 있다.[3] 1969년에 절정을 이룬 1인당 영화 관람 수는 이후 무려 1년에 13%씩이나 빠져나갔다.[4] 물론 외모까지 갖춘 양정화였기에 김자옥도 양정화에게는 한 수 접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