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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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안영욱 前 지검장.jpg

安永昱
1955년 3월 15일 ~ (69세)

1. 개요
2. 생애
3. 가족관계


1. 개요[편집]


대한민국법조인이다. 본관은 광주(廣州)[1].

2. 생애[편집]


1955년 3월 15일 경상남도 밀양군(現 밀양시) 산내면 임고리[2]에서 아버지 안길현(安吉鉉, 1933. 9. 17 ~ )[3]과 어머니 평산 신씨(1931. 2. 30 ~ )[4] 사이에서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제1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1979년 사법연수원을 9기로 수료했다.

1979년,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검사로 임용되어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전두환 정부가 들어선 이후 1981년에는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로 발령났다가 1983년에 법무부 검찰국 검찰2과 검사로 영전했고 1985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검사(고등검찰관)로 영전하였다.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서울지검 검사 자리를 지키다가 1991년에 법무부 검찰국 검사로 영전하였고 이후 부장검사로 승진하여 1991년 8월 1일부터 1992년 8월 1일까지 제29대 대구지방검찰청 김천지청장이 되었다. 1992년에는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부장검사로 옮겼다. 이 당시 현대그룹 계열사 사전선거운동을 수사하였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에는 대검찰청 검찰연구관으로 영전하였으며 연이어 대검찰청 공안3과장으로 옮겼다가 1994년에는 대검찰청 공안2과장으로 옮겼고 1995년에는 법무부 검찰3과장 등을 하면서 공안통으로 승승장구 하였다. 1997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형사1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에는 대검찰청 공안기획관이 되면서 차장검사로 승진했으며 1999년에는 울산지방검찰청 차장검사로 옮겼다가 2000년에는 부산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로 영전하였고 2001년에는 대검찰청 범죄정보기획관으로 계속 영전을 거듭했다. 2002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제1차장검사로 영전하였다. 이후 2002년 8월 26일부터 2003년 3월 12일까지 제34대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장으로 자리를 옮겨 재직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2003년 3월 13일부터 2004년 5월 31일까지 제7대 울산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임명되어 검사장 반열에 올랐고 2004년에는 법무부 법무실장으로 영전하였다. 2005년 4월 8일부터 2006년 2월 5일까지는 제48대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영전했으며 2006년 2월 6일부터 2007년 3월 4일까지 제51대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해 영전을 거듭했다.

2007년 3월 5일부터 2007년 11월 25일까지 제49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하면서 고등검찰청장 반열에 올랐고 검찰총장 유력 후보로도 떠올랐다. 그러나 방위병으로 복무하던 시절 법무연수원생 생활을 겸직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고배를 마셨고, 2007년 11월 24일 제31대 법무연수원장으로 있던 임채진제36대 검찰총장에 취임하자 제32대 법무연수원장으로 이동했다. 그 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2008년 3월 10일 사의를 표했다.

이후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3. 가족관계[편집]


아내 영월 신씨 신숙정(1954. 3. 26 ~ )[5] 여사와 아들 안준식(安晙植, 1982. 8. 26 ~ ) 등 1남 1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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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랑장후(中郞將后)-불언재공파(不言齋公派) 42세 영(永) 태(泰) 한(漢) 항렬.[2] 광주 안씨 중랑장후(中郞將后)-불언재공파(不言齋公派) 집성촌이다.[3] 1983년 4월 15일부터 1984년 12월 10일까지 제16대 관선 진해시장을 역임했다.[4] 신한철(申漢澈)의 딸이다.[5] 판서공파(判書公派) 신준오(辛俊五)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