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준(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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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출신 코치.
선수 시절에는 센터백 포지션을 소화한 선수였다. 인천 유나이티드 활약 당시 인천의 아들로 불리며 레전드 임중용의 후계자로 지목 받기도 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인천 유나이티드 1기[편집]
고려대학교 축구부 3학년 당시 2006년 전국대학선수권에서 고려대를 우승으로 이끌며 대회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다.
고려대 졸업 후 2008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 지명되자마자 주전급으로 많은 경기를 뛰었다.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체격을 내세운 몸싸움과 맨마킹으로 단숨에 인천 팬들을 매료시켰다. 안재준이 입단하던 시기는 때마침 김학철이 노쇠화로 내려오던 시기였고, 안재준은 안현식, 김영빈과 함께 주전 경쟁에 참여하여 그 중에서도 제일 앞서나갔다. 이로 인해 임중용의 뒤를 이을 선수로 각광받았다.
이듬해 2009시즌 장경진도 군에 입대하면서 안재준의 입지는 더욱 확실해졌고, 전반기에 단 4실점만을 기록한 수비진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그 뒤로도 안재준은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는 임중용을 보조해주면서 김영빈과 함께 주전 수비수로 출장했다.
2.2. 전남 드래곤즈[편집]
그러나 허정무가 인천에 부임한 이후 안재준을 남준재와 함께 전남 드래곤즈로 보내버렸다. 애제자인 정인환, 김명운을 데려오기 위해서였는데... 안재준과 남준재 모두 인천에 애정이 깊었고 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은 선수였기 때문에 팬들의 반발이 심했고, 인천 팬들로부터 허정무의 인기를 떨어뜨리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정인환이 그렇게 유명한 선수도 아니었고, 게다가 오자마자 임중용이 아직 은퇴를 하지 않았음에도 20번을 배정받았기에 특히 논란이 컸다.
한편 안재준은 전남에서도 첫 시즌부터 주전으로 나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시즌에는 20번을 받고 부주장 직도 맡았으나, 폼이 떨어지면서 팀의 성적도 떨어졌고 선수 개인으로도 아쉬운 해를 보냈다.
2.3. 인천 유나이티드 2기[편집]
전남에서도 특유의 끈끈한 수비로 팀이 리그에서도 짠물수비로 정평나게 되는 데 기여를 했지만 선수 본인이 워낙 친정팀에 대한 애정이 깊었고, 인천 측에서도 센터백이 필요하게 되자 2013시즌을 앞두고 한재웅과 함께 박준태와 트레이드되며 다시 인천 유니폼을 입게 된다. 마침 등번호도 과거 임중용의 번호인 20번을 달게 되었고,[1] 이런 점들을 모두 합쳐서 인천 팬들은 안재준을 팀의 레전드 수비수 임중용의 후계자로 여기고 있다. 사실 안재준 영입 소식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정인환이 인천 소속이었기에 몇몇 팬들은 정인환-안재준 라인을 기대했으나 충격의 정인환+정혁+이규로 세트 전북 현대 모터스 이적이 성사되면서 그런 가정은 없던 것이 되었다. 그리고 정인환은 언플을 보여주면서 인천 팬들에게 이미지가 나락으로 추락했다.
2013 시즌 안재준은 리그 수위급 수비수의 위엄을 충분히 보였다. 이윤표와 주전으로 나서면서 짠물수비의 주역으로 올라섰고, 라운드 베스트 11에도 자주 얼굴을 비치면서 한때 국가대표에도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였다. 11월 3일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 김영삼에게 위협적인 태클을 가해 무릎을 다치게 하여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부터 3경기 출전 정지와 벌금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본인도 부상을 당하며 아쉽게 시즌을 마쳤다.
2014 시즌 초에 김진환이 상주 상무를 상대로 호러 쇼를 펼치는 바람에 안재준은 일찍 스쿼드에 복귀해서 기용되었다. 그러나 폼이 다소 떨어진 모습을 보여서 팬들이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래도 시즌 끝까지 이윤표와 변함 없이 주전으로 기용되면서 인천의 잔류에 힘을 더했다.
2.4. 안산 경찰청 (군 복무)[편집]
2015년 배승진과 함께 안산 경찰청으로 입대했다. 2016년 9월 3일 전역 예정. 입대한 첫 시즌에는 신형민, 배승진과 함께 확고한 주전으로 쓰리백을 구성하였으며, 총 35경기에 출전하며 한 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 다음 시즌을 앞두고 조성진, 최보경, 김은선이 입대하면서 안재준은 센터백 자리에서 후보로 밀려났다. 시즌 초에는 배승진과는 달리 그래도 서브에는 꾸준히 들었고 중간 중간 팀 선수들이 이탈하는 등의 문제가 있을 때 출전하기도 했지만, 몸 상태가 안 따라줬는지 어느 시점부터는 명단에서 보이지 않았다.
2016년 9월 2일 안산 경찰청에서 전역을 했으며 2016년 9월 5일부터 인천 유나이티드 훈련에 복귀했다. 그러나 경찰청 시절에 경기를 오랫동안 뛰지 못한 여파로 폼이 무너지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배승진과 다르게 인천 복귀전을 치르지 못했고, 사실 애초에 수비진에 마테이 요니치, 조병국, 이윤표의 자리가 확고해서 경쟁이 쉽지 않기도 했다.
2.5. 성남 FC[편집]
2017년 1월 2일 새로 영입한 선수들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성남 FC의 선수단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유출되었다. 사실상 영입 확정. 인천과는 FA 계약 때 트러블이 있었다는 루머가 있다. 그리고 1월 3일 구단의 공식 발표로 성남 이적이 확정되었다. # 인천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선수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던지라 팬들의 반발은 상당히 큰 상황,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안재준은 2016년 경찰에서 부상 등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전역한 후에도 가끔씩 로테이션 자원으로 출장했던 배승진, 최종환과 달리 안재준은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연봉도 비교적 높은 편이었고, 결국 부상으로 제대로 기용하기도 어려운데 연봉 지출도 큰 계륵같은 존재가 되면서 프런트에서 재계약을 놓고 고심하다가 끝내 떠나보내게 된 것으로 보인지만, 그래도 가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많은 편이였다.
한편 성남 입단 후 안재준은 한시즌동안 13경기에 출장해 1골을 기록하는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안재준이라는 이름에 비하면 경기도 많이 나오지 못했고 해서 평이 엇갈리는 점도 있었다.
2.6. 대전 시티즌[편집]
2018시즌을 앞두고 팀 동료 오장은과 같이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였다.
3월 25일 부산 아이파크전에서 대전 입단 후 첫 선발 출장하였는데, 이날 경기에서 치명적인 실책을 선보이며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였으며, 이날 경기를 통해 감독으로부터 신뢰를 잃었는지 시즌 중반부터는 출장 기회를 전혀 잡지 못했으며, 한해동안 리그 10경기 출장에 그치며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018시즌을 끝으로 대전과의 계약이 만료되었는데, 대전 구단이 이미 시의회를 통해 선수단 규모를 기존의 59명에서 35명 규모로 축소할 것임을 밝히면서 재계약할 가능성은 낮아졌다.
2.7. 아미 유나이티드[편집]
결국 2019년에는 태국 2부리그인 타이 리그 2 소속 아미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되면서 대전과 작별하게 되었다.
2.8. 김해시청 축구단[편집]
2020년에는 새로이 개편된 대한민국 3부 축구 리그인 K3리그 참가팀 김해시청 축구단으로 이적하였다. 20시즌에는 리그 13경기, FA컵 2경기, K3리그 챔피언십 1경기로 총 16경기 출전의 성적을 기록했다. 20시즌 종료 후 2021시즌 시작 전 발표된 등번호 명단에서 확인되지 않으며 팀을 떠난 것이 확정되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현역 은퇴가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김해시청 이후에는 선수에서 은퇴했고 2021년부터 인천 유나이티드의 U-18 구단인 인천대건고등학교의 코치직에 부임하였다. 이로서 인천의 레전드들인 임중용, 김이섭처럼 인천에 몸담았다가 은퇴한 뒤 코치로 다시 인천에 돌아오게 됐다. 다만 K5리그 인천 권역의 강팀 인천 송월 FC에는 아직 선수로 등록되었는데, 아마추어계에서는 계속 선수로 활동할 듯하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훌륭한 피지컬을 앞세워서 강한 태클을 보여주는 수비수. 상대 공격수를 말 그대로 제압하는 플레이를 자주 보여주었다. 가끔 마킹 실수를 범하는 등 아쉬운 점도 분명 있지만, 전성기에는 리그에서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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