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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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이자 현 방송인. 선수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 미드필더.
현역 시절 뛰어난 볼컨트롤과 드리블, 중앙에서 좌우로 열어주는 정확한 패스, 반 박자 빠르고 정교한 슈팅으로 데뷔 때부터 뛰어난 활약을 선보여 판타지스타라고 불리는 선수였다.[10] 이러한 활약과 더불어 도저히 운동선수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고 완벽한 외모까지 갖춰 수많은 여성 팬을 몰고 다녔다.[11]
FIFA 월드컵에서 3골을 넣어 한때 아시아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12]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32강 본선 1차전에서 박지성이 1골을 추가하면서 이 기록을 공동 보유하고 있었고,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32강 본선 2차전과 3차전에서 손흥민이 2골을 추가하면서 이 기록을 공동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 축구계에서 평생 까임방지권을 획득했다고 여겨지는 몇 안 되는 선수가 되었다. 더불어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전 대륙을 상대로 A매치 득점에 성공했다.[13]
1.1. 유년기[편집]
수려한 귀공자처럼 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14]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15] , 어머니가 육아를 외할머니에게 맡겨버려 외할머니와 외롭게 성장하는 등, 그가 직접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나와서 이야기한 유년 시절은 그야말로 눈물겨웠다. #
사실 처음부터 가난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외갓집이 원래는 잘 살았던 편이기는 했고 한창 부유했을 적에는 큰 어려움 없이 자랐지만, 안정환이 6살 때 외갓집이 사업 실패로 어려워진데다가 외할아버지가 그 충격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외할아버지의 유산으로 커피숍을 하다가 망한 뒤 다른 곳을 떠돌아다녔기 때문에[16] 외할머니와 단 둘이 판자촌에서 빈곤하게 살아야했다.
흑석동 판자촌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게 된 안정환은 배가 고파서[17] 무랑 배추서리를 하거나, 굿판을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얻어먹고, 옷이 없어서 남의 집 빨래를 훔치는 것은 기본에다가, 산에 흩뿌려진 삐라를 주워서 미군부대에 신고하여 학용품을 마련하고, 방생 기간에 방생되는 물고기를 잡아서 다시 되팔아 돈을 마련하고, 차비가 부족해 버스를 타고 가야될 학교를 걸어서 다니고 차비가 역시 아까워서 학교 체육창고에서 잠을 해결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하루는 안정환이 할머니에게 100원만 달라고 했다는데, 왜 그러냐고 할머니가 물었더니 나가서 아버지를 사오겠다고 얘기했으며 실제로 차두리의 아버지가 차붐이라는 것을 매우 부러워했다고 한다.[18] 안정환의 힘든 유년 시절을 정리한 기사
안정환의 할머니는 축구를 하는 것을 처음에는 반대했다고 하는데, 왜냐하면 가뜩이나 잘 못먹는 애라서, 운동까지 하면 배가 더 빨리 꺼질까봐 걱정해서였다고 한다.[19] 그래도 축구부가 되면 간식으로 지급하는 빵과 우유를 먹을 수 있어서, 단순히 또래 애들보다 달리기가 조금 빨랐을 뿐인 어린 안정환은 그렇게 축구부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어렵게, 굶주린 배를 잡고 시작했던 초등학교 축구부는 후원하던 선배(선배 아버지의 후원)가 졸업을 하면서 지원이 끊겨 버렸고, 축구부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된다. 다행히 그해 마지막 경기에 훌륭한 활약을 보인 안정환을 다른 학교에서 유일하게 스카웃했다고 한다. 나머지 애들은 축구를 관뒀다고 한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20] 를 거치면서 축구를 하지만 선배들의 상습적인 구타와 매일같이 피곤한 몸에 여전히 배곯는 고달픈 생활들이 이어진다.
한 번은 축구부원 숫자대로 지급받은 빵과 우유가 하나 비어버리자 선배 한 명이 안정환을 무려 3시간 동안이나 구타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늦게 들어온 다른 선배가 "그거 내가 먹고 나갔는데?" 한 마디에 화가 나서 그 길로 합숙소를 도망쳤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안정환은 밥 먹듯이 축구부를 이탈하고 복귀하기를 반복하게 된다. 본인이 말하길 "이 시기에 축구가 즐거워서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때 싸움도 많이 하고 다니던 시절이라 실제 조직폭력배에서도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쉬는 날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용직 아르바이트, 공사판을 전전했었는데 당시 수도권 전철 5호선 목동역 건설이 이루어질 때 안정환이 인부로 투입되어 벽돌을 쌓았다고 한다. #[21]
심지어 프로에 입단하고 국가대표가 되어서도 할머니에게 아파트를 장만해주고 어머니의 도박 빚을 갚았기 때문에 금방 돈을 모으지도 못했으며, 이것 때문에 계속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이영표의 보약을 얻어먹기도 했다고 한다.[22]
그렇게 힘들게 축구를 했지만 고교시절 엄청난 두각을 나타냈고 이를 바탕으로 아주대학교에 진학을 한다. 안정환은 졸업해서 거액에 프로 축구단에 입단하는 대학교 선배들을 보고 2학년 때 축구로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1997년 이탈리아 유니버시아드 직후 돌아오자마자 후반에 투입되어 혼자 2골 1어시스트하면서 1대2로 지던 팀을 5:2로 역전승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 후 아주대학교의 재단이었던 대우그룹이 운영하는 부산 대우 로얄즈로 자연스럽게 입단하게 된다.
1.2. 선수 경력[편집]
자세한 내용은 안정환/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 해설 경력[편집]
자세한 내용은 안정환/해설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4. 방송인 경력[편집]
자세한 내용은 안정환/방송 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 기록[편집]
2.1. 대회 기록[편집]
- 요코하마 F. 마리노스
- J리그 디비전 1: 2004
- 후지 제록스 슈퍼컵: 2004, 2005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2003
- FIFA 월드컵 4위: 2002
2.1.1. 국가대표[편집]
2.2. 개인 수상[편집]
- 1999 K리그 MVP
- 1998, 1999 K리그 베스트 XI
- 1999 K리그 브론즈슈
- 1999 올해의 키카골상
- 2002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 최우수상
- 2012 K리그 대상 공로상
- 2013 SBS 연예대상 베스트 챌린지상
- 2014 MBC 방송연예대상 버라이어티 부문 특별상
- 2015 대한민국문화연예대상 스포츠스타공로상
- 2019 MBC 방송연예대상 인기상[23]
- 2021 MBC 방송연예대상 최우수상[24]
- 2022 MBC 방송연예대상 올해의 예능인상
- 2024 브랜드 고객충성도 대상 스포테이너
2.3. 수훈[편집]
3. 관계자 평가[편집]
이탈리아 골대에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를 왜 빼겠는가?[26]
안정환은 여러모로 호마리우를 닮았다. 건드리면 반응한다. 나는 그런 선수를 좋아한다.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안정환은 마치 5단 기어와 같은 선수이다.[27]
안정환은 폴란드 수비진을 마치 뒷마당에서 어린 동생 데리고 노는 듯했다.
플라넷 풋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폴란드전 직후 인터뷰)
정말 아름답다. 안느는 아름다운 플레이어다.
[29]
안정환은 기술적인 면에서 페루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다.
당시 AC 페루자 칼초 사무국장 알렉산드로 가우치
한국 선수들이 프리메라리가에서 뛰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 특히 미드필드와 공격 쪽에 좋은 선수가 많은 것 같다. 안(안정환)은 내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선수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다.
페르난도 모리엔테스 前 스페인 국가대표
안느는 우리에게 후이 코스타를 대신할 선수다. 안느가 유럽 출신이였다면 그는 후이 코스타처럼 되었을 것이다.
당시 ACF 피오렌티나 구단주 디에고 델라 벨레
내가 인테르의 첫 훈련에 들어갔을 때 인테르의 코치진이 가장 먼저 체크한 것은, 내가 아니라 전 동료 안느의 계약사항이었다. 나 또한 그와 플레이하길 바라고 있다.
안느는 굉장한 재능을 가진 선수다. 지금까지 이런 선수를 한 번도 가르쳐 본 적이 없다. 많은 기회를 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왜 한국의 부산 아이콘스가 그를 놓아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그의 완전 이적을 두 번이나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그가 완전한 페루자의 일원이 된다면 난 주저없이 그를 주전으로 활용하겠다.
세르세 코스미 (당시 페루자 감독)
안정환이 방출된 후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는 영리한 선수였고, 우리는 구단주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당시 그는 상대팀 선수로서 우리를 상대로 중요한 골을 넣었지만 그는 언제나 우리의 친구였다. 수줍음이 많은 선수였지만, 우리는 안정환을 훌륭한 축구선수로 생각했다.
페루자는 이해할 수 없는 광적인(insane) 의식이 지배하는 팀이다. 분명히 그런 부분이 안정환을 궁지로 내몰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은 한국에서 온 유일한 세리에 A 선수 꼬레아노 안을 훌륭한 선수로 기억하고 있다.
토토 스포르트지, 비토리오 오레시아 기자
방한기간 중 가장 놀라운 사실은 코리아인들이 자신의 판타지스타인 안느가 얼마나 대단한 위치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였다. 안느는 유럽에서 파울레타보다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의 화려한 커리어가 보이지 않는가? 아무나 이탈리아를 상대로 골든 골을 넣을 수는 없다.
에우데르 크리스토방(Helder Marino Rodrigues Cristovao) 파리 생제르맹 FC 수비수
안의 플레이를 보면 그의 출신지역이 아시아인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아마 아시아에서 그런 유연한 몸놀림을 슈팅력을 보일 수 있는 스트라이커는 없을 것이다. 유럽이나 남미에서도 수준 급에 속하는 유연함과 슈팅력이다. 볼을 조금 끄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장점들이 충분히 커버해주고 노력한다면 고쳐질 것이다. 그가 월드컵에서 보여준 골들은 그가 한국축구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그는 아마 다음 월드컵에서도 한국 대표 스트라이커로 뛰게 될 것이다. 그때는 과연 안이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기대가 된다. 만약 2006년 독일 월드컵 후에도 이러한 글을 부탁받는다면 그를 순위에 올리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안정환의 슈팅은 정상적인 궤도보다 15도 정도 오른쪽을 향해 골키퍼가 번번이 당할 수밖에 없다.
이태리 RAI 스포츠 TV 해설자
안은 헤더를 전혀 하지 않았던 선수에서 1년 만에 유럽에서 가장 멋진 헤더 골을 만드는 선수가 되었다.
ESPN 유럽리그 이 주의 골 중에서.
그는 그의 능력에 비해 좋은 팀을 만나지 못했다.
테크니션 그 중에 판타지스타 성향을 가진 선수를 여럿 봤다. 분명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팀 플레이에 맞춰지는 단순한 플레이에는 호흡을 맞출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판타지스타는 감독이 활용할 줄 모르면 미움을 받거나, 조용히 사라지기 마련이다. 한국과 경기를 했을 때 AC 페루자에서 뛰고 있다는 안느를 봤다. 우리 팀의 델 피에로와 무척 닮았더라. 그러나 저 선수를 다룰 만한 감독이 있는지 모르겠다.
스코틀랜드전에서 인상 깊은 플레이를 펼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라치오를 맡았을 때 만났던 선수다. 안정환은 유럽 수준에 근접한 선수로, 앞으로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스벤예란 에릭손 前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2년 방한 당시)
스코틀랜드전에서 두 골을 넣었던 긴 머리 선수가 인상깊었다. 그의 두 번째 슛인 로빙슛은 정말 일품이었다.
호나우두 前 브라질 국가대표
안정환을 위해 350만 불의 이적료를 준비했고, 마지막까지 워크퍼밋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안정환이 드와이트 요크와 함께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길 원했는데 무척이나 아쉽게 됐다.
블랙번 로버스 FC 관계자 (워크퍼밋 최종 반려 이후)
안느! 우리에게 와라! 우리에겐 판타지스타를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당신을 열광적으로 맞아줄 서포터가 있다! 라치오로 간다면 너는 인종차별에 울어버릴 거다!
ACF 피오렌티나 서포터즈 걸개 현수막
그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지금은 모든 것을 이겨내고 주전을 확보했다. 지금보다 앞으로 더욱 가능성이 많다. 안느는 지난 1년 동안 발전속도가 놀라운 선수이다.
AC 페루자 칼초 동료, 브라질 前 국가대표 제 마리아 선수 (2001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한국·일본 내한 당시)
"안정환은 정말 헌신적인 선수다. 팀의 공수 밸런스와 볼흐름을 위해 경기내내 정말 헌신적인 플레이를 했다."
"안정환은 내가 본 역대 아시아 선수 중 가장 뛰어난 테크닉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요한 크루이프를 보는 듯했다."[30]
"안정환의 기술을 흉내내고 따라하고 싶어도 따라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테크닉면에서는 완벽한 선수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했었던 한일 월드컵에서 안정환 선배님의 플레이를 보고 축구선수로서 꿈을 키웠고 어릴적 나의 영웅이었다."
"축구선수로서 동작할 때 선이 정말 아름답다. 경기장에서 몇 번이고 넋을 놓고 봤었다."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선수들 있잖아요, 유럽에서 정말 최고의 선수들하고 다 합쳐도. 제가 본 선수 중에서 가장 우아한 선수였어요. 이거는 제가 정말 이게 칭찬이 아니라 대한민국 150년 축구 역사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완벽한 선수예요. 그건 분명해요.
정말 축구 선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작이 나와요. 터닝을 한다든가, 돌아선다든가 볼을 터치할 때 그 느낌... 우아한 느낌으로 차는 스타일이어서 '선이 아름답다'라는 그런 표현...(이 절로 나와요)
"안정환은 전형적인 판타지스타 성향의 선수이다. 내게 기회가 있었다면 난 그를 활용할 수 있었다. 다음이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안정환을 어떻게 활용하는 데에 한국의 월드컵 운명이 달려있을 것이다. 그는 마치 후이 코스타와 같은 플레이를 할 줄 안다. 나에게 가장 욕심나는 한국 선수를 뽑으라면 그건 단연 안정환과 이관우다. 그들이 포르투 출신이라면 이미 그들은 세계적인 선수가 되어있었을 것이다."
"안정환은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심지어 같은 위치에서 뛰는 델피에로도 원톱으로는 경기에 나서지 않는다. 쓰리톱을 사용한다면 조재진과 이동국을 최전방에 포진하고 차라리 중앙의 안정환을 쳐진 스트라이커로 놓겠다. 박지성과 안정환 중 프리롤을 선택하라면 나는 안정환을 선택하겠다. 박지성은 세계적인 선수지만 안정환만큼 아름다운 플레이를 할 수는 없다."
움베르투 코엘류 前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한국과의 경기(5월 31일)에서 보여준 안정환의 플레이가 아직도 머리에 많이 남아 있다. 안정환은 후반 교체 투입된 뒤 짧은 시간을 뛰면서도 찬스가 올 때마다 과감하게 슛을 날리며 분위기를 휘어잡았다. 안정환같은 적극적인 마인드 없이는 패배가 되풀이 될 것이다. 일본 선수들은 그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지쿠 前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동아시안컵 당시)
"정환이는 팀 기여도가 높은 선수이다. 우리가 월드컵에서 이기려면 안정환이 필요하다."
홍명보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최종엔트리 발표에 관한 질문에서)
"어차피 승부를 거는 상황이라면 안정환이다."
"현재 한국인 프리미어리거들이 모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개인적으로는 안정환이 기억에 남는다. 안정환의 테크닉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으며, 개인 드리블 능력과 슈팅능력은 그 당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테크닉에 대해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한국대표팀의 스트라이커 안정환이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이고 있다. 안정환의 스타일은 한국을 대표했던 스트라이커 차범근, 황선홍 등과 다르다. '새로운 스타일'이란 뛰어난 신체조건으로 파워풀한 플레이를 펼치는 전형적인 스트라이커와 달리 현란한 기술을 바탕으로 최전방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플레이메이커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위협적인 공격을 선보이는 형태를 말한다. 안정환이 국제무대에서 많은 경기(32경기 8득점)를 뛰지는 않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프로 데뷔 2년차인 1999년 21골 7도움으로 MVP에 선정됐고, 세리에 A의 페루자로 이적할 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봤지만 결국 아시아를 대표하는 선수로 우뚝 섰다."
"솔직히 안정환이 이번 월드컵에서 이런 수준으로 경기할 줄은 몰랐다. 나는 그의 주목할 만한 기술력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그것을 표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여기 페루지아에서 사람들이 지르는 소리를 들었다 "안정환, 다시는 돌아오지마!" 사람들은 마치 배신자 취급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진정 훌륭한 골을 뽑아냈고 최선을 다했다."
지오반니 테데스코 (2002년 당시 AC 페루자 칼초 주장)
"같은 아시아권에서의 플레이어를 떠올리면 한국의 안정환이 인상에 남는다. 물론 그 역시 내가 목표로 삼는 선수는 아니다. 단, 그가 그라운드에서 펼치는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즐겁고 재미있다."
알리 카리미 이란 前 국가대표
"안정환을 주목해서 봤던 기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가 이탈리아에 패배를 안겼다고 해서 소속팀 페루자가 결국 그를 이적시킨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정말 페루자는 어리석은(stupid) 짓을 했다. 현재 나카타, 나카무라 등 기술 좋은 일본 선수들이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안정환은 기술과 체력을 함께 겸비한 훌륭한 선수였다."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지, 알베르토 세루티 기자
"안정환은 키가 크지는 않지만, 공중볼 장악에 뛰어나고 양발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어쩌면 하츠에서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내가 레인저스 사령탑을 맡았을 때는 그를 몰랐지만, 만약 알았다면 주저하지 않고 계약을 했을 것이다."
딕 아드보카트 前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사람들은 안정환에게 골 결정력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다. 하지만 언제나 결승골의 주인공은 안정환이다."
"한국의 미디어는 안정환의 부드러운 면만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강한 선수이다. 나는 그의 강한 면을 좋아한다."
"안정환은 영웅의 기질을 가진 선수이다. 그의 한 골 한 골은 각본이 있는 드라마와 같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터진다."
일본의 한 축구전문지
"어느 나라도 쉽게 가지지 못하는 판타지스타를 소유하고도 활용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 그게 바로 한국이다. 한국은 그를 평범한 선수로 만들고 있다."
휴 사토시
"아시아 선수 중에 정말 이런 선수가 있었나? 그는 나에게 델피에로를 상대하는 것과 같은 중압감을 줬다. 나는 경기 내내 마치 델피에로를 상대하는 착각에 빠졌었다. 분명히 델피에로는 우리팀인 걸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안정환만큼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는 한국 선수는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지금처럼 조기 유학도 없었고, 제대로 축구를 배울 시스템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척박한 환경에서 안정환은 대단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 노력도 많이 했지만 정말 천부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아마 안정환이 지금 시대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축구를 제대로 배웠다면, 정말 엄청난 선수가 됐을 것이다."
부산 대우 로얄즈 사무국장 김석현
이 문단은 2018년 10월 6일 방송된 '대화의 희열' 안정환 편에서 진행자 유희열이 핸드폰으로 나무위키를 참고하며 '안정환에 대한 코멘터리'를 소개하는 중 TV 방송에 언급되기도 했다."안정환은 지난 66년 북한의 박두익에 이어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다."
4. 멘탈甲 & 대인배[편집]
사커라인 유저가 작성한 안정환의 고생 일대기. 억울함 또는 부당한 대우와 처사에 관해 대인배나 다름없는 안정환의 멘탈을 보여주었다. 이쯤 되면 안정환의 슬픈 선수 생활은 운명이라는 말밖에 설명이 안 될 정도다. 썩은 멘탈로 인해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는 후배 축구 선수들에게 두고두고 귀감이 될 선수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의리의 상남자. 다만 이런 성격의 사람들이 가지는 단점, 불같이 욱하는 성질머리 또한 겸비하고 있긴 하다.[31]
- 1999년 부산 대우와 계약 조건에 명시된 (리그 MVP 먹으면 유럽 진출을 위해 전적으로 돕는다는 조항) 약속된 조항이 현대산업개발로 넘어가면서 라리가 진출을 (라싱 데 산탄데르) 막고, 팬들과 언론에서도 현대산업개발을 크게 비판했지만, 잠을 못 자서 이틀 정도 휴가를 냈을 뿐, 다시 훈련장에 복귀, 꾹 참고 한 시즌을 더 뛰었다.
- 페루자가 2001/2002 두 번째 시즌에 주급을 제대로 주지 않아 6개월치 3억 4천이 넘게 밀렸는데도 아무 내색도 안 하다가 월드컵이 끝나고 국제소송 때 가서야 밝혀졌다.
- 국제소송크리 맞고 안종복 & 현대산업개발에 처절하게 배신당하고 혼자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고, 안종복의 몹쓸 짓으로 인한 FIFA의 판결로 안정환은 2002년 7월 21일자로 개인 빚만 35억이라는 빚더미에 올랐는데,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어느 인터뷰에서도 당시 현대산업개발 수뇌부들이나 안종복에 대한 언급을 일절 안 하고 자제하고 있다.[32]
- 블랙번 로버스에 못 가고 35억이나 빚진 상태로 일본 연예기획사이던 프로페셔널 매니지먼트 주식회사(현:저팬 스포츠 마켓팅 주식회사)에 팔려가 3년 동안 착실하게 조용히 노예 생활을 했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회사로 출근해서 연예인 스케줄을 이행했음에도[33] 일본에서 97경기 50골이나 넣고, 심지어 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우승까지 시켰다. 참고로 이 때 블랙번은 안정환을 팀에서 어떻게 활용할지는 물론이며 가족들에 대한 자료까지 모아서, 어느 지역에 집을 마련해줄 것이며 근방의 마트나 학교 등 시설까지 상세히 설명해주는 등 영국에서의 생활 패턴까지 짜서 안정환과 접촉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 나고야 그램퍼스에서의 연봉 29억 제의를 단념하고, 30살이 넘어서 연봉 8억원에 프랑스 하위권 팀인 FC 메스로 유럽에 복귀했다. 우디네세 칼초의 코스미 감독의 러브콜에도 우디네세 & 리보르노와 협상 차 이탈리아에 가있을 때, 직접 국경을 넘어 8시간 운전해온 메스 구단주의 정성에 감동먹고 FC 메스로 갔다.
- 프랑스 리그앙 시절 당시 에이전트에 2억 원 대 사기를 당하고도, 6개월을 참고 살다가 2006 독일 월드컵이 끝날 때까지 내색하지 않았다. 결국 참고 참다가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 국내로 돌아가 조용히 소송을 제기했다.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절 2군 경기 당시 FC 서울 팬에게 모욕을 당했지만 정작 본인은 욕도 안 하고, 관중석에 올라갔다는 이유로 천만원 벌금을 냈다.[34] 오히려 안정환이 사건 당일 서울팬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일명 권오크 사건으로, 안정환은 욕 한마디도 안 했는데 언론에서 삐처리하면서 욕한 거처럼 포장한, K리그 대표 비하사건 중 하나로 아주 악질적인 언론 왜곡이다. 엄연히 이 사건은 안정환 부인을 모욕한 팬의 잘못이다. 신해철은 이 사건에 대해서 가족을 생각하는 안정환의 행동을 매우 극찬했다.[35]
- 다롄 스더에서 인품의 탁월함을 드러냈다. 연봉의 일부를 고아 및 어린이 병원에 기부하고, 매달 한 번씩 찾아가서 봉사도 했는데 그것이 팀 차원에서의 행동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구단 용품을 가지고 가서 아이들한테 공짜로 뿌리기도 했는데 비용은 안정환 자신의 사비로 충당했다고 하며, 동기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라고 한다.
- 은퇴 이후 K리그 홍보대사 지원금은 0원. 모든 것을 사비와 개인 운전으로 전국 방방곳곳을 누비고 상주에 갔을 때는 상주 스탭 및 팬들과 저녁 늦게까지 막걸리 파티를 하고 상주시내 모텔 일반실에서 하루 묵고 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사실 본인이 즐기기에 가능한 것이다.[36]
- 홍보대사 이후에도 내셔널리그까지 홍보하기 위해 지방 이곳저곳으로 직접 운전해서 다닌다고 한다.
출처: 사커라인
5. 외모[편집]
주변 사람들 역시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굉장히 놀랐다는 말을 할 때가 많았다. 이천수는 안정환을 상당히 어려워했다고 회고했는데, 처음 보고 축구 선수를 할 얼굴이 아니라 충격을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자신은 딱 운동만 하고 산 것처럼 생겼는데, 안정환은 CF까지 들어올 만큼 너무 잘생겨서 부럽기도 하고 열등감까지 느껴졌다고.[37] 이영표 역시 안정환의 외모를 처음 봤을 때 그 잘생긴 외모에 충격을 받았다고 하며[38] 거스 히딩크 감독도 안정환을 회상할 때 외모가 화려했고 아름다웠다고 언급했다. 박지성도 안정환의 외모가 부럽다고 했으며, 반면 안정환은 박지성의 인생이 너무 부럽다고 했다.
안정환 본인이 말한 바로는 장발이 스타성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구단이 머리카락을 자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미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TBS에서 방송한 '그때 굉장했던 사람, 일류 운동선수가 놀랐던 그 사람 대추적' 편에서 일본 국가대표 축구선수였던 오쿠보 요시토가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사람으로 안정환을 뽑았는데 그 이유가 너무 잘생겨서였다.[39][40] 이렇듯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미남임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로 그의 외모는 독보적이다. 안정환도 자신의 잘생긴 얼굴을 어느 정도 의식은 하고 있었던 것인지, 최용수 등 현역 시절 동료였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안정환은 늘 향수와 로션을 갖고 다니면서 외모 관리와 치장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한다.
한국에 뛰어난 실력과 출중한 외모까지 겸비한 미남 운동선수들이 많이 있었지만 안정환을 능가하는 미남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41] 현재 예능인의 모습으로만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그냥 미중년 상의 동네 아저씨 정도로만 여겨질 수도 있으나 현역 선수 시절에는 어지간한 연예인들마저 씹어 먹는건 당연지사이며, 배우 현빈과도 비교되는 미모를 자랑했다. 그래서 리즈 시절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남 미녀 배우들인 현빈, 김재원, 한고은 등 수많은 인기 스타들과 CF를 연달아 찍었다. 심지어는 연예인들과 비교하여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안정환의 외모와 그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압도적 포스에 연예인까지 기가 눌려 연예인보다 더 연예인스럽다는 인상을 줄 정도였다.
이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2000년대 초반 장동건, 원빈, 안정환 세명이 일본 방송에 나온 적이 있는데, 적어도 그 방송에서만큼은 안정환이 둘을 압도하는 외모 클래스를 보여줬다. 지금도 인터넷 상에서 돌아다니는 유명한 사진이다. 그렇게 의류, 향수, 화장품, 스포츠 용품 등 안 찍어본 CF가 없었다. 젊은 시절 김재원과 함께 찍은 남성용 화장품 광고는 이미 전설이다. 다른 일화로 전성기 시절에 한국 최고 미남으로 손꼽히는 장동건, 원빈과 함께 일본의 예능에 출연한 적도 있었는데 과장 하나 없이 외모로 그들에게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한 마디로, 안정환은 운동선수치고 잘생긴 정도가 아닌 그냥 사람으로서 연예인을 뛰어넘을 정도로 엄청난 외모를 지녔다는 것이다. 이런 잘생긴 외모는 자녀들한테도 영향을 주었는지 아들 안리환도 아버지를 닮아서 잘생겼다.
한국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통하는 얼굴이었는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각종 해외 투표에서 외모로 최상위권을 차지한 설문조사가 아직도 남아있다.#[42][43] 하지만, 칼같은 미남 외모와는 정반대로 성격은 옛날 말투, 아재개그를 자주 시전했다고 하며 굉장히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팀 후배 선수가 외모와 실력에 압도되어 눈치만 보다가 아침식사 때 안정환이 숭늉을 마시면서 "숭늉이 들 우러났다 야." 하는 것을 보고 "저 선배도 보통 사람같은 면모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운동선수가 그렇듯 은퇴 이후에는 얼굴이나 몸에 살이 꽤나 붙은 모습이 되었다. 그래도 미중년이라 불릴 만하다. 쌍꺼풀선도 생겼는데 본인 말로는 살이 쪄서 생긴 거라고 한다. 살찌면 쌍꺼풀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한다. 다만 나이들어 생기는 쌍꺼풀은 대개 눈 지방층이 얇아져서 생긴다. 본인의 말로는 운동선수 때 너무 먹는 걸로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은퇴한 지금은 원없이 먹으면서 살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살이 찌고 수염을 약간 기르게 되면 뭔가 이탈리아, 혹은 중남미 스타일의 얼굴이 된다는 게 웃음 포인트. 그래서 생긴 별명이 그 유명한 슈퍼마리오다. 저 별명은 아빠! 어디가? 시즌2에서 부인 이혜원이 마리오가 그려진 가방을 보고 아들에게 "이거 누구야? 아빠야. 뚱뚱해져서 이렇게 됐어. 옛날에는 테리우스였는데 (지금은) 개뿔" 이라고 말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래도 가끔 가다 다이어트를 해서 옛날의 날렵한 얼굴을 되찾을 때가 있는데, 위대한 배태랑 등의 프로그램이나 시상식 등의 특정 기간에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오곤 한다. 사실 슈퍼마리오 소리 들을 때도 리즈 시절과 너무 달라져서 그렇지 미중년 느낌이 났다.
6. 여담[편집]
- 별명으로 테리우스, 판타지스타, 안느[44] , 반지의 제왕[45] 등이 있다. 은퇴 후 방송 활동을 하면서 '슈퍼마리오', '안흥국'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 유독 큰 경기에 강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골을 넣어주는 영웅 본능이 있다는 인식이 있다. 이는 한일전이나 2002년 미국전 동점골, 이탈리아전 결승골, 2006년 토고전 골 등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골을 성공시킨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 특유의 수려한 외모가 유명해서 그런지, 앙드레 김 패션쇼 무대에 섰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아내 이혜원씨도 앙드레 김 패션쇼에서 같이 피날레 무대에 올랐을 때 처음 만난 인연으로 결혼했다고 한다.#[46]
- 월드컵에서 헤더로만 두 골을 넣어 헤더 잘 하는 선수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헤더를 잘 못한다고 한다. 애초에 본인이 헤더하는걸 별로 안 좋아했다고.[47][48]
- 한국의 대표적인 저니맨으로 꼽힌다. 축구 실력은 뛰어나서 더 높고 화려한 무대에서 뛸 수 있었지만, 팀 선수들과 잘어울리지 못하고 여러 주변 이해 관계와 상황이 겹치며 이후 커리어가 발목을 잡힌 비운의 선수다.
- 유럽 진출이 성공적이지 못했던 이유가 선수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이라고도 하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성격이 내성적이라서 적응력이 좋지 못했던 것이었다고도 한다.[49]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블랙번 로버스에 이적하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계약 문제로 고소를 먹고 패소하여 빚더미에 올라앉았기 때문에 심리적인 부담감을 받아서였다. 일본 생활이 끝난 이후 바로 유럽리그 하위권 팀에라도 문을 두드렸을 정도로 유럽에 미련이 큰 선수가 뭣하러 일본에 오래 머물렀을까? 물론 실력이 안되는게 가장 컸지만, 또 다른 건 이 문제 때문에 빚 갚을 돈 벌려고 일본 소속사에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2013년 본인도 후회한다는 인터뷰를 했다.
- 1998년 9월 18일자 TV는 사랑을 싣고에 나온 적이 있다. 당시 그룹 베이비 블루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안정환의 첫사랑이었다. 이 방송에서 베이비 블루 멤버(이혜민, 이상순, 황선영)가 나왔다.
- 잘생긴 외모 덕분에 1999년 밴드 야다의 곡 '이미 슬픈 사랑'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 황선홍[50] 이후 국가대표 주전 공격수들의 숙명이었던 폭풍까임에서 그나마 열외가 되었던 유일한 선수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경기에서 활약해준 임팩트가 먹어준 게 가장 컸다. 가장 욕먹기 쉬운 약체팀과의 경기에 상대적으로 적게 출장한 것도 한몫했다. 13년이라는 축구 인생과 그동안 대표팀에서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70경기라는 A매치 출전 횟수는 그다지 많은 출장 횟수라고 보기 어렵다. 당장 박지성과 이영표가 비슷한 시기에 뛰었지만 둘 다 100경기 넘게 출전했고, 이래저래 많은 잡음으로 인해 2000년에 국가대표에 데뷔했지만 2008년 이후 국대에 전혀 뽑히지 못한 이천수가 79경기다. 리그 경기로 욕하려고 해도 팀이 워낙 막장이라 욕을 못하거나[51] , 중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중국 슈퍼 리그, 일본 J리그에서 활동했었다.
- 트로이카의 한 축이었던 이동국과는 묘하게 대칭되는 선수 생활을 했다. 국대에서 누구보다 빛났지만 그로 인해 클럽 커리어 자체가 완전히 꼬여 버린 안정환, 반대로 소속 클럽 팀에선 항상 정상급 위치에서 뛰었지만 이상하게 국대만 오면 꼬여버리는 이동국. 히딩크는 자서전에서 이동국을 수비 가담과 압박, 개인 해결 능력이 아쉬워서 제외했다고 언급한 반면에 안정환을 무려 호마리우나 피에르 판호이동크에 견주며 그를 극찬하기도 했다. 물론 이건 안정환이 호마리우만큼 축구를 한다는 게 아니라 성격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히딩크는 안정환이 호마리우처럼 자극을 주면 반응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고 하며 그것이 특급 선수들의 자질이라고 여긴다고 하는데, 반대로 이동국에겐 그런 언급이 없는 걸로 보아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 안정환은 이동국과 상당한 친분이 있다. 프로 커리어 시작을 같은 해인 1998년에 해서 프로 입단 동기이고,[52] 둘 다 공격 자원이며,[53] 비슷한 시기에 각각 이탈리아와 독일로 이적하여 유럽에 진출한 바 있다.[54] 조 본프레레 감독이 재직하던 시절에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중용되기도 했고, 허정무 감독이 재직하던 시절에는 팀의 중심을 잡아줄 고참으로 낙점받아 2010 FIFA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뽑혀 함께 남아공도 다녀왔다. 둘 다 선수를 은퇴하고 방송인으로 활동하면서 뭉쳐야 쏜다와 뭉쳐야 찬다 2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 함께 고정 패널로 출연하는 등 제 2의 인생에서도 친분을 유지하는 중이다.
- 2002 FIFA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는 평가전에서 발목 부상을 당했을 때에 주사를 맞으면서 뛰었다고 한다. 사실은 경기를 뛰고 싶어서 그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
- 2002 FIFA 한일 월드컵 16강전 이탈리아전에서 페널티 킥을 실축하고 난 지 10여 년이 흘렀을 때에 KBS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이을용으로부터 "지도 못 넣었으면서..."라는 핀잔을 들었다.[55]
-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기초군사훈련을 받았을 때 모습[56]
- 2006 FIFA 독일 월드컵을 준비하는 와중에 이동국과 볼 트래핑 연습을 하던 와중에 안정환이 실수하자 이동국이 몹시 화난 표정으로 "아유! 진짜!!!"라고 소리치는 모습이 MBC 스포츠 뉴스의 보도 장면에 나와서 많은 국민들에게 웃음을 줬다. 아이스크림 내기라도 했나?[57] 그리고, 이 사건은 나중에 이동국이 개인 유투브 채널에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랬던 이 둘은 15년 후 뭉쳐야 쏜다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단 축구가 아닌 농구로.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직전에 박주호와 잠시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박주호 나이를 물어보고 "생각보다 많구나"라며 놀렸고, 군문제로 고심 중인 박주호에게 자기도 군대 갔다 왔다고 겁낼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리고 4주 기초훈련만 받았다며 자랑하듯이 놀렸다. 이때 박주호의 표정은 참으로 난감하고 복잡했지만[59] 박주호도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서 병역특례를 받았으니 안정환이 놀린 것도 나름 추억거리가 될 듯 하다.
- 박지성, 손흥민과 함께 타임지 표지모델로 임명된 3명의 축구선수 중 1명이다.
- 축구계의 마당발이라 불릴 정도로 친한 동료들이 많은데, 을용타 이을용과는 동갑내기로 둘다 내성적이라 대표팀시절에 김남일 이을용 안정환은 아싸로 셋이 주로 어울리며 상당히 친하고[60][61][62] , 선배 최용수와는 티키타카하며 서로를 뜯고 뜯기는 애증의 관계이다. 이들의 관계는 안정환이 생애 처음 고정 MC로 프로그램을 맡았던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최용수가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들의 관계가 알려졌다. 2002 멤버들이 어려워하는 대선배 홍명보와도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식사를 자주 할 정도로 친하다. 후배쪽으로는 김남일과 친하다고 한다. 이동국과도 친한데, 안정환이 이탈리아, 이동국이 독일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시절에 휴일마다 중간지점인 프랑크푸르트에서 자주 만났다고 한다. 그 외에 선배는 고 유상철과 황선홍, 후배로는 송종국, 차두리와도 친하다고 한다.
- 그동안 방송인으로서 출연한 모습들을 보면, 수준급 요리실력과 더불어 일손까지 야무진 듯하다. 은근히 손재주가 있는 듯. 안싸우면 다행이야에서 집도 뚝딱 짓는다.
- 가족으로 세 살 연하의 아내 이혜원과 딸 안리원, 아들 안리환이 있다.[63] 아내인 이혜원과의 연애 스토리가 꽤 재미있다. 안정환 본인의 이야기에 따르면 아내를 처음 앙드레 김 패션쇼 무대에서 처음 만났을 때 한 눈에 반해서 그녀에게 대뜸 남자친구가 있느냐 물었고, 없다는 대답을 듣자 좋은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며 약속을 잡은 뒤 소개팅 자리에 자신이 직접 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아내와 사귀게 되었으나 아내는 당시 서울에 거주하며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고 그때 안정환이 뛰던 팀의 연고지는 부산이었던 터라 시즌 중엔 자주 만나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한번은 안정환이 데이트를 하다가 헤어지기 싫어서 팀 훈련까지 불참하는 사고를 쳤는데, 그 때문에 구단에 벌금도 적잖게 내고 선배들에게 어마어마하게 혼이 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정환은 아내를 자주 못 만나다 보니 그녀에게 신용카드를 선물하며 자신이 없을 때 이걸로 맛있는 걸 많이 사 먹으라고 했었는데, 아내는 그 카드를 한 번도 쓰지 않은 채 돌려줬다고 한다. 다만 만약에 카드 요금 청구서가 자기 연봉만큼 나왔었다면 법정까지 갔을 거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했다. 결혼 23년차인 지금까지도 운동화 끈을 잘 못묶는 아내 이혜원을 위해 운동화끈을 묶어준다고 한다. #
- 은퇴 후 아내 이혜원의 사업을 도우면서 프로축구연맹 홍보팀장으로 영입되었다. 물론 정식 직원은 아니고 보통 말하는 홍보대사 개념인데 그보다 훨씬 더 열심히 뛰겠다고 홍보팀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후 전국의 K리그 팀 경기장을 돌며 홍보를 하였고, 2002 월드컵 10주년 기념 K리그 올스타전을 성공적으로 홍보하고 개최하며 이번 시즌 K리그 최고의 영입은 안정환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이후로도 K리그를 위해 꾸준히 활동하는 중이다. 대부분의 은퇴한 스타 선수들이 말은 K리그를 사랑하자고 하면서 정작 행동은 보여주지 않았던 반면에, 안정환은 정말로 발로 뛰면서 K리그를 위해 일하고 있기에 팬들의 반응이 매우 좋다. 한편, 안정환의 한국프로축구연맹 홍보팀장 취임 얼마 후 K리그 공식 쇼핑몰이 열렸는데, 거기서 부인 이혜원이 하는 화장품도 같이 판다.
- 모친 안금향[64] 씨는 한때 안정환의 어머니로 주목받으며 CF도 찍는 등 아들덕을 보며 유명세를 얻었지만, 각종 도박 및 사기로 엄청난 액수의 빚을 지고 교도소에 수감까지 되며 문제를 일으켜 논란이 되었다. 도박빚에 쫒겨 도망다니느라 안정환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한건 유명한 이야기. 안정환은 아들이라는 이유로 모친의 모든 빚을 갚아주어야 했고 언론의 집요한 보도와 억측에도 시달렸다. 이후 안금향 씨는 절에 들어가서 속세와 인연을 끊겠다는 등 언플도 했었으나 2019년 또다시 빚투 보도가 터져나왔고, 이에 대해 안정환이 직접 “도의적 변제는 다 했다.” “모자관계는 완전히 끝이 나서 서로 안 보고 지낸지도 한참되었다”고 언급하며 씁쓸한 근황을 전했다.
- 히카루의 바둑의 최종보스로 등장하는 고영하의 외모 모델이다. 작가가 안정환이라고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한국의 장발 미남 축구 선수에게서 따왔다고 밝혔으며, 고영하가 등장하기 시작한게 2002년 정도인데, 당시 한국의 장발 미남 축구선수는 안정환 밖에 없다.
- 2015년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두세 개의 팀으로부터 선수로 뛰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본인이 거절했다고 한다. 2016년 1월 3일 마리텔에서 직접 밝혔다.
- 해외에서 뛰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선수는 로베르토 바조라고 했다. 그 당시 바조는 노장이어서 한 물 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경기를 보는 순간 왜 바조가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안정환이 바조와 시합을 하고 난 뒤 너무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한다. 참고로 바조는 이때 한참 회춘 모드에 돌입하는 시기였다. 이탈리아가 2002 한일월드컵에서 바조를 기용 안 했다가 폭망했다고 하나 어차피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프란체스코 토티, 크리스티안 비에리, 필리포 인자기 등 미친 것 같은 라인업이었다.
- 자신의 롤모델로 국내 선수로는 김주성, 해외 선수로는 루드 굴리트를 꼽았다. 방송인으로 전업한 후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마다 항상 굴리트라고 대답했었으며, 어렸을 때에는 굴리트의 활약상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구해 친구 집에서[65] 계속 보고 따라했었다고 한다. 후에 세리에A로 진출한 것도 당시 AC밀란에서 맹활약하던 굴리트의 영향을 받아서였다고. 그리고 자신이 고정 출연하는 뭉쳐야 찬다 2 2022년 6월 26일 방송분을 통해 드디어 직접 만났다.
- 인복이 없는 건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건지 순박한 건지 여러모로 고생을 많이 했다. 부산 시절의 안종복이나 페루자의 가우치도 그렇지만, 에이전트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에이전트의 일처리 솜씨 부족으로 무적 신세가 되었다가 ,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파급력으로 블랙번 말고도 원하는 구단이 있었는데 주변인들의 뽐뿌질에 구태여 비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블랙번을 택하거나, 이탈리아 마피아의 협박에 완전 겁을 먹는다거나, 또 FC 메스에 이적할 당시, 이탈리아 우디네세 칼치오에서도 오퍼가 오는 등 갈 곳이 없는 게 아닌데도,[66] 멀리서 구단주가 운전해서 왔다는 이유로 전력이 후진 FC 메스 행을 택하거나, 분데스리가가 안 맞는 걸 알면서도 곰가방이 월드컵 보내준다니까[67] 가기 싫으면서도 독일을 가는 등 뭔가 좀 어리숙한 모습을 많이 보였다.[68][69]
- 선수 시절에는 다양한 기술을 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계속 시도하며 진화했다. 유럽에 가서 헤더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헤더 기술이 확 늘은 것도 있지만 대우 로얄즈 시절에는 이영표처럼 고속 헛다리도 리그에 통용될 수준으로 썼었고, 커브를 많이 차다가 갑자기 무회전 슛을 계속 차고, 땅볼 횟수가 늘고, 슛 각도를 바꾸는 등 다채로운 시도를 했다. 헤더도 여러 각도로 시험했고 나중에는 다이빙 헤더까지 했다. 일본 시절에는 라보나 킥도 썼는데, 방송에서 본인이 말하길, 라보나 킥 관련으로 위험도가 높은 기술을 써서 감독에게 욕 먹은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안 썼다고 한다. 참고로 라보나 킥은 정확히 성공해서 골로 이어지는 데 일조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찹 비슷한 기술도 쓰는 등 시도할 수 있는 기술은 계속 시도해 본 경우인데, 참고로 어느 리그를 가든 그 리그에서 통용될 수준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역시 영혼의 기술은 백숏과 크루이프 턴, 그리고 무회전 슛. 특히 그의 전매 특허 기술인 이른바 안느턴[70] 은 펠레가 이를 보고 요한 크루이프를 보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안느턴이 잘 될 때는 정말 수비수를 형이 동생 데리고 노는 수준으로 구사했다. 하지만 드리블을 하다가 급격하게 방향을 바꾸는 기술이라 무릎에 큰 무리가 갔기에 지금 그의 무릎 연골은 거의 없다고 한다.[71] [72]
- 슛을 쏘거나 패스를 하면서 무너지는 자세가 많이 나왔다. 균형 감각이 나쁘다기보다는 중력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면서 공을 차는 느낌으로, 자세가 무너져도 정확도에는 문제가 없는 걸 보면 버릇 혹은 나름대로의 연구 결과로 보인다.
- 2016년 1월 27일, FIFA 월드컵 트위터가 그의 41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올렸다. 게다가 FIFA의 공식 트위터도 이 글을 리트윗했다. 이 글에는 안정환이 골든골을 넣던 순간의 사진도 함께 올라왔다. 2년 후인 2018년 1월 27일에도 FIFA 월드컵 페이스북이 그의 43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올렸고, 3년 후인 2019년 1월 27일에는 FIFA 월드컵 인스타그램도 그의 44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올렸다. 그리고 4년이 지난 2020년 1월 27일에도 미국전 동점골 영상과 함께 45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올렸다.
- 2017년 1월에는 뭉쳐야뜬다 촬영을 위해 스위스에 있는 FIFA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안내하러 온 직원이 안정환을 알아보고는 먼저 악수를 청하고, 2002 한일 월드컵 코너에 걸려있던 삽화에서는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등장했으며, 직원이 이 코너에 있는 안정환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심지어 2018년 5월에는 한 독일팬이 안정환을 알아보고는 먼저 찾아와 사진촬영을 요청하는 등, 이탈리아는 몰라도 FIFA나 타 유럽 국가에서는 그가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 여럿 나왔다.
- 2021년 3월 17일, FIFA 월드컵 인스타그램이 팔로워 1천9백만(19million)명을 넘긴 기념으로 역대 월드컵에서 19번을 사용했던 선수들 중 12명이 어깨동무를 하는 뒷모습 일러스트를 올렸는데,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선수들 중 아시아 선수로는 유일하게 안정환이 꼽혔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리오넬 메시, 마리오 괴체, 폴 포그바, 차비 에르난데스, 윌리안, 야야 투레, 디에고 코스타, 프레디 린콘,[73] 안정환, 유세프 엔네시리, 라힘 스털링, 세르히오 아궤로다.
- 방송에서 "자신이 살을 안 빼는 것뿐이지, 뺀다면 금방 뺀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딱 한 번은 살 빼고 옛날로 돌아가겠다."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누구나 하는 이야기인지라 유머 정도로 넘긴 이야기인데 화장품 광고 촬영 이후 재계약되면 다이어트를 한다고 선언했고, 재계약이 진짜로 성사되자 엄청난 속도로 살을 빼서 과거의 미남 시절로 돌아갔다.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출신인 오쿠보 요시토가 제일 존경하는 선수라고 언급했다. 그래서 은퇴한 안정환의 근황을 알아보는 일본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근황을 보고 충격을 먹는 모습이 참 재미있다. 당시에 나온 프로그램이 현재 그가 고정 MC로 활동중인 냉장고를 부탁해였다. 오쿠보는 자신의 영웅이 현재 한국에서 예능 방송 MC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쓴웃음을 지으며 "나도 방송 활동이나 할까?"라고 붙인 것은 덤.[74]
- 어렸을 때 끼니를 거르는 일이 많던 경험 때문에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절대 식사를 거르지 않는다고 하며, 지금도 외적인 요인으로 끼니를 거르게 될 경우 상당히 민감해진다고 한다. 방송에서 아내에게 밥투정을 하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75]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 같이 해설을 했던 김성주는 "안정환이 밥을 굶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고 했는데, 안정환 왈, "어릴 때 하도 굶었기 때문에 이제 굶는 건 지긋지긋하며, 돈 벌었으면 먹는 데 써야 한다."고 말을 했다. 그 때문인지 안정환은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 뒤로 살이 꽤 찐 모습이다. 또한 왜 살을 빼지 않냐는 질문에 남들의 눈치를 보고 싶지 않다고 소신을 밝혔다.
- 캐논의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 같이 빵 터졌다.
-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성화 장내 봉송주자로 뛰었다. 특히 최종 봉송주자 중 유일하게 올림픽 커리어가 없는 선수인데도[76] 안정환이 나온 것은 대한민국에서 열린 대표적 메이저 스포츠 대회 중 하나인 2002 한일 월드컵에 출전했고 월드컵 엔트리 23인 중 올림픽 비출전자로는 가장 유명한 선수가 그이기 때문이다. 즉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2002 한일 월드컵을 연결시키는 핵심 고리 역할이 안정환이란 의미. 박지성도 있지만 올림픽 출전 기록이 있어서 누가 봐도 월드컵과 연계시켰다는 것을 설명하려면 역설적으로 올림픽 커리어가 없는 안정환이 더 낫다.[77] 여기서도 그의 대인배적인 모습이 보이는데, 원래는 최종 봉송주자로 성화대까지 뛰어올라가 김연아에게 성화봉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로 내정되어 새벽에 비밀 훈련까지 마친 상태였다.[78] 하지만 최종적으로 남북 선수가 같이 올라가는 것으로 변경되었고, 안정환 입장에서는 실컷 연습한게 뻘짓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선수가 나란히 손잡고 긴 계단을 올라가는 뒷모습을 바로 아래에서 혼자 지켜보는데 울컥하더라고 하면서, 자기가 생각해도 내가 올라가는 것보다 이게 더 좋은 것 같다며 그 변경에 대해 조금도 아쉬움이 없다고 밝혔다.
- 예능을 통해서도 히트를 쳤지만 그래도 본업인 축구, 그리고 해설위원의 모습과는 천지차이다. 예능에서는 웃기고 본업인 축구 해설위원으로썬 축구인이자 선배로서 강한 쓴소리를 남기는 완벽주의자다.
- 2018년 6월 6일, 라디오 스타에 나와서 김성주보다 김정근과 함께 중계할 때가 더 편하다고 말했다. 김정근이 워낙 정직한 스타일이라서 신뢰감이 있다고. 예능이니 어디까지나 장난으로 한 얘기고 현재 MBC 중계진이라 이렇게 얘기한 것이다.
- 안정환의 현역 시절 주 스킬이 바로 수비수들을 페이크 동작으로 태클 유도해서 제치고 골을 넣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당시 멕시코전에서 뛰었던 장현수의 태클을 태클은 무책임한 회피일 수도 있다며 꼬집어서 지적했다.
- 방송에서 밝히길 은퇴 이후 몸 상태는 오랜 선수 생활 동안 몸을 혹사한 탓에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특히 무릎 연골에 큰 부담을 주는 기술인 안느턴을 자주 구사한 탓에 무릎의 연골은 전혀 없는 상태. 은퇴 이후 수술을 받으려고 봤더니 연골이 다 닳아서 작은 조각밖에 남지 않아있었고, 이 상태로 두면 몸의 다른 곳으로 뼛조각이 흘러가서 더 위험할 수 있으니 의사가 제거를 권유해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의사와의 이러한 대화를 하반신 마취만 한 상태로, 자신의 무릎 뼈를 직접 보면서 주고받았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물론 화장실 변기에도 오래 앉아있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 2019년 3월부터 신규 치킨 프랜차이즈의 홍보모델이 되었다. 브랜드 명이 '안정환 치킨선수'[79] 로, 이름만 보았을 때는 안정환 본인이 운영하는 브랜드로 착각되기 쉬워, 이와 관련하여 안정환이 해당 브랜드의 공동대표다, 사외이사다 하는 루머가 잠깐 있었다. 하지만 2020년 6월 28일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방송분에서 치킨 사업가라고 밝혔고, 절친 현주엽에게 창업 조언을 해줬다.
- 과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정몽준을 지지했으며 유세도 나왔는데 이때 허재도 같이 있었다. 한국 축구계에 정몽준과 현대가가 미친 영향을 고려하면 무리도 아니다.
- 뭉쳐야 찬다에서 진행한 건강진단에서 지방간 판정을 받았다. 보통 중년 나이에 지방간이면 사실상 당뇨 전단계라 몸 관리가 중요해질 것이다.[80] 사실 안정환은 골초에 주당인지라 병이 없는게 이상하다.
- 배달해서 먹힐까?에 출연하면서 인터뷰하기로는 "축구선수를 안했다면 셰프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요리를 꽤 좋아한다고.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김성주, 송종국과 함께 브라질 생활 당시 직접 요리를 전담하여 두사람을 아침을 챙겨주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송종국은 안정환을 존경하게 되었다고.
- 발사이즈는 255mm로 키에 비해 작은 편이며 손흥민과 발사이즈가 같다.
-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에서 현주엽과 허벅지 씨름을 했는데 체중이 30kg가 넘게 차이나는 현주엽을 시쳇말로 그냥 발라버렸다.[81] 달려야 하는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이듯 농구 또한 하체가 굉장히 중요한 종목인데, 아무리 농구에서 하체가 중요하다 하더라도 하체가 메인인 축구와는 그 차원이 다름을 증명하였다.
- 2021년 4월 1일 만우절날 안정환 FC 라는 축구에 관련된 모든 콘텐츠를 담겠다는 취지를 계기로 유튜브 채널을 오픈했다. 평소 민트색을 좋아한다고 밝혔으며, 유튜브 채널의 공식색으로도 정해졌다. 채널명 추천을 받았는데 안정환 19로 결정할듯 하다.
- 예능 클래식은 왜 그래에서 MBTI 검사를 진행하였으며, ISFJ로 나왔다.
- 2021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남자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 언젠간 한국이 월드컵 우승을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봤을때 당연히 힘들지만 축구인으로써 한번쯤은 품는 소망인 듯 하다.[82]
- 2022-2023 시즌 프리미어 리그 2R 첼시 FC와 토트넘 홋스퍼 FC의 경기에서 일어난 토마스 투헬 감독과 안토니오 콘테 감독의 싸움에 대해 "보기 흉하지 않을 정도면 선수들의 사기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해도 된다." 라며 적당한 벤치 싸움은 필요하다고 평했다.
- 뭉쳐야 찬다에서는 비인기 종목들의 선수들이 출연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002 월드컵의 영향으로 어느 지역에서 어느 팀과 대결을 해도 인기가 가장 많다. 농구선수로 뛰었던 뭉쳐야 쏜다에서는 상대편 선수 한 명이 경기 중 안정환을 힐끔 쳐다보고는 영광이라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 솔샤르를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생각한다.[83] [솔샤르를 미드필더라고 한 이유를 마이텔에서 설명한 적이 있다. 안전환은 솔샤르를 처진 스트라이커로 보고 있고 플레이하는 위치가 1선 공격수 밑이기 때문에 위치상 미드필더로 분류했다고 한다. 솔샤르의 스타일이 전형적인 포처 스타일이지만 플레이 위치를 보고 포지션을 미드필더로 보고 있다.]
- 아내 이혜원의 말로는 어린 시절부터 워낙에 고생을 하고 살아온데다[84] , 프로 데뷔 후에도 개인 커리어가 꼬이다 보니 자식들에게는 축구를 절대로 안 시키겠다고 다짐하는 마음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에도 안정환의 자녀들은 축구선수로 진로를 정하지 않았다.[85] 그런데 이 마음이 극단적인 나머지 집에 공만 보이면 전부 다 바람을 빼버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 파울루 벤투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를 끝으로 해설자로써의 계약이 전격 만료되며, P급 지도자 자격을 곧 취득할 거라고 했던 것과 연관이 있지 않냐는 기사도 나와서 왠지 신빙성이 있다. 물론, 본인은 "절대로 사실이 아니다" 라고 인터뷰를 했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은 경력이 노련한 인재들도 부임하는 것이 쉽지 않고 만약에 안정환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직행한다면 지도자 경력도 없이 직행한 첫 번째 사례가 된다.
- 가수 조PD와 생년월일이 같다.
- 2023년, 안정환의 누적 기부액이 무려 3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
7.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안정환/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