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제이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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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제이 바이다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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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culture.pl/wajda%20andrzej%20portret%20en_6223505.jpg

1. 개요
2. 생애 및 작품활동
3. 대표작
3.2. 대리석 인간 (1977년작)
3.3. 철의 인간 (1981년작)
3.4. 당통 (1982년작)
3.5. 카틴 (2007년작)


Andrzej Wajda
1926년 3월 6일 ~ 2016년 10월 9일


1. 개요[편집]


폴란드 출신의 영화감독이다.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아그네츠카 홀란드와 더불어 폴란드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2. 생애 및 작품활동[편집]


1926년 현재는 폴란드 동부 지방에 위치한 수바우키(Suwałki)에서 폴란드 군 장교인 아버지와 학교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했으며 카틴 학살 당시 아버지인 야쿠프 바이다(Jakub Wajda)가 NKVD에 의해 살해당한 비극적인 가족사가 있다.

종전 이후 크라쿠프 국립 예술 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으며 이후 우치 영화 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자의 길로 들어선다. 우치 영화학교 세대 중에서는 가장 윗세대에 있는 인물. 1955년에 첫 장편 영화 '세대(Pokolenie)'를 내놓고, 이듬해 1956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상을 수상한 '카날' (Kanał)과 1958년 '재와 다이아몬드(Popiół i diament)'를 잇달아 내놓음으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국제적인 성공에 힘입어 안제이 바이다에게는 폴란드에서 영화계 일을 하기를 원하는 청년들이 많이 몰려들어 바이다는 신인 감독 발굴도 많이 했다. 예지 스콜리모프스키[1], 로만 폴란스키, 바이다 빠로 유명해 조감독으로 입성해 바이다 패션까지 따라한 안드레이 줄랍스키가 대표적.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청장년 시기 폴란드 인민 공화국은 사회주의 국가로 국책 영화를 위주로 만들던 분위기라서 가끔 가다 당의 명령으로 프로파간다 영화를 만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세계적 거장이라 '대리석 인간', '철의 사나이' 등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도 만들 수 있었다. 이에 줄랍스키는, '정치적인 선을 타면서 자기 할말 하는 방법을 잘 알았다'고 촌평하기도. 물론 소련이 붕괴되고 폴란드가 민주화된 후에는 당연히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있다.

1989년 동유럽 혁명으로 공산주의가 무너진 뒤, 1990년에는 그동안의 업적을 인정받아 영국 글래스고에서 '유럽 영화상 공로 부문'을 수상하였으며, 2000년에는 아카데미상에서 공로상을 수여받았다.

90이 넘어서까지도 영화 제작 활동을 활발히 지속하고 있었으나 2016년 10월 9일 향년 90세로 타계했다. 사인은 노환.


3. 대표작[편집]



3.1. 재와 다이아몬드 (1958년작)[편집]


문서 참조.


3.2. 대리석 인간 (1977년작)[편집]


당시 공산당에는 소련의 스타하노프와 같은 인민영웅 만들기와 인민 영웅을 본받자는 운동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스타하노프와 같은 인민영웅은 비정상적인 국가의 자원과 업적의 과장으로 만들어진, 절반은 조작된 사실이었다. 바이다는 이러한 인민영웅의 실상을 "대리석 인간"이라는 영웅을 취재한 여대생의 눈으로 날카롭게 묘사한다.

안제이 주와프스키의 미완성 영화 은빛 지구를 다루는 은빛 지구로의 탈출 등 당시 폴란드 영화계 다큐멘터리와 여러 기록, 증언에 따르면 이 영화는 여러모로 상당히 뜨거운 감자였다고 한다. 선전물로 여겼던 폴란드 공산당에서 결과물을 보고 발칵 뒤집혀졌지만 폴란드에서 대히트를 기록했고, 칸 영화제에 깜짝 경쟁 초청받아 뉴욕 타임스 정치면에 영화 리뷰가 실리기도 했다.

이 사태에 폴란드 공산당 산하 문화부에서는 이를 갈고 있었는데, 엉뚱하게도 후폭풍이 줄랍스키가 만들고 있던 은빛 지구한테 터졌다고 한다. 은빛 지구엔 대리석 인간 제작자가 참여하고 있었던데다 (줄랍스키는 로만 폴란스키, 예지 스콜리모프스키처럼 바이다가 발굴한 제자 중 하나로 꼽힌다.) 줄랍스키는 이전부터 공산당 눈밖에 난 감독였고 하필이면 제작 현장도 엉망진창이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타겟이 되기 좋았던 상황. 심지어 줄랍스키는 폴란드 영화계를 걷돌았던 해외파에다 바이다처럼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던 감독은 아니라서 이런 상황에 대처할 능력도 없었다. 그래서 폴란드 현지에서는 은빛 지구 제작 중단이 내용이나 제작 현장과 무관하게 정치적 탄압이라 보는게 중론이다.


3.3. 철의 인간 (1981년작)[편집]


인간 시리즈는 노동자에 대한 영화로 무척 난해하다. 그래도 프로파간다의 영역을 넘어선 훌륭한 영화니 감상을 권한다.

이 작품이 쓰여질 때는 폴란드에서 연대노조(Solidarność)가 공산당에 반기를 들 때로, 전작 대리석 인간의 아들이 자유 운동과 관련되어서 나온다. 이 영화를 만든 후 바이다는 파리로 망명해야 했다.

여담으로, 이 영화에 브금으로 쓰인 폴란드 자유노조의 민중가요 '야넥 비시니예프스키가 쓰러졌다'는 우리나라로 건너오게 되었는데 이 곡이 우리나라 민중가요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가자 노동해방이다.


3.4. 당통 (1982년작)[편집]


프랑스 대혁명이 배경인 조르주 당통에 관한 영화. 그를 미화하지도, 비하하지도 않은 균형잡힌 영화. 제라르 드파르디외가 당통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참고로 프랑스와 폴란드의 합작영화로 당통쪽 인물들은 프랑스 배우가, 로베스피에르쪽 인물들은 폴란드 배우가 맡았다고 한다.

본래 망명한 감독에게 프랑스 혁명 기념으로 영화를 주문하던 프랑스 정부는 로베스피에르를 중심으로 한 혁명의 과단성을 칭찬하길 원했으나, 영화에서는 당통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로베스피에르 및 생 쥐스트의 결벽증에 가까운 집착과 혁명 정부의 폭력성을 조망한다. 이것 때문에 당대 좌파계열 학자는 물론이고 프랑스 정부까지 무지 비난했다.

첫장면부터 어린이가 옷을 벗고 인권 선언을 외우는 걸로 시작하고, 영화가 끝나면서는 엔딩 테마곡으로 사람들의 환호와 절규가 섞인 뭐라 말로 형용하기 힘든 소름끼치는 사운드가 쓰였는데 기괴하고 공포스럽기 짝이 없다.

한국에선 미개봉하고 삼부비디오에서 1989년에 비디오로 발매했다. 문제는 150분도 안되는 영화를 상, 하 2편으로 출시한 것.


3.5. 카틴 (2007년작)[편집]


카틴 학살이 배경인 영화. 감독의 아버지가 카틴 숲 학살 때 죽었다고 한다. 과거와 연관지으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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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 모임에서 알게 되어, '순진한 마법사' 각본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정작 예지 본인은 바이다는 초기작만 좋아하고 나머지는 별로라고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