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오 카사노 (r2020030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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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前 축구선수
파일:cassano1.jpg
이름
안토니오 카사노
Antonio Cassano

출생
1982년 7월 12일 (37세) /
이탈리아 풀리아바리
국적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등번호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10번
AS 바리, AS 로마, 레알 마드리드 CF - 18번
UC 삼프도리아, AC 밀란, 인테르 밀란
파르마 FC, 엘라스 베로나 - 99번
신체조건
175cmㅣ체중 78kg
직업
축구선수(공격수[1] / 은퇴)
소속
선수
AS 바리 (1997~1998 / 유스)
AS 바리 (1999~2001)
AS 로마 (2001~2006)
레알 마드리드 CF (2006~2008)
UC 삼프도리아 (2007~2008/임대)
UC 삼프도리아 (2008~2011)
AC 밀란 (2011~2012)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2~2013)
파르마 FC (2013~2015)
UC 삼프도리아 (2015~2017)
엘라스 베로나 FC (2017)
국가대표
39경기 10골(이탈리아 / 2000~2014)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6. 수상 기록
6.1. 대회 기록
6.2. 개인 수상
6.3. 득점 기록


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 악마의 재능, 판타지스타, 이탈리아 축구계의 미래, 강산호[2], 돼지[3] 등 수많은 별명을 달고 다닐 정도의 천재성을 보유했던 선수로, 이탈리아에서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유일한 선수라 평가받았었지만 안일한 태도와 수준 이하의 멘탈로 인한 불성실한 훈련 태도와 노력의 부재로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축복받아야할 선수 은퇴마저도 스스로 망쳐버린 인물. 이로 인해 축구계 악마의 재능의 대명사로 꼽힌다.

2. 클럽 경력



2.1. AS 바리


빈민가에서 태어나 불우한 생활[4]을 해 오던 카사노는 AS 바리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아 입단한다.
그리고 99-00 시즌, 18세의 나이로 성인 팀에 입단하여 당시 인테르와의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 2명을 완전히 바보로 만드는 미친 플레이를 선보이며 이탈리아 축구계의 주목을 받았다.[5]
그 이후로 엄청난 활약을 통하여 수많은 빅 클럽의 러브 콜을 받았고, 결국 2001년 AS 로마에 입단한다.

2.2. AS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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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토티와 카사노의 콤비는 정말 역대급에 들어갈 정도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또한 카사노는 자신에게 엄격했지만 애정을 주는 카펠로 감독에게 아버지와 같은 느낌을 받고 그의 지시를 잘 따랐다. AS 로마는 둘의 환상적인 활약에 힘입어 01-02 시즌, 03-04 시즌 세리에 A 준우승의 위업을 달성한다. 특히 03-04 시즌에는 토티가 20골, 카사노가 14골을 넣으며 리그에서 총 34골을 합작했다.[6]아쉽게도 우승을 못했으니 콩라인
이후 토티는 24년 간의 선수 생활 중 빈첸조 몬텔라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같은 레전드보다 카사노가 이들 중 가장 뛰어났다고 말한 바가 있다.[7]
하지만 플레이에서만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다른 외적인 모습에서도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파일:U6CcVwW.jpg
골 넣을 때마다 항상 이 짓거리를 했다. 개울에서 목욕하는 여인? 저기요 오른쪽은 케즈만인데요?;
그가 경기 외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들은 거의 아드리아누에 필적했는데, 돌아온 탕아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면 말 다할 정도로 별의별 웃기지도 않는 사건사고를 다 달고 다녔다. 문란한 여자관계는 물론, 평생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폭식을 비롯해 매우 방탕한 생활을 한다. 카펠로 감독이 떠난 이후 그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고, 이후 후임 감독들과도 번번히 다투었다.[8]
그러다가 자신의 클래스에 비해 주급이 적다고 생각했는지 구단주에게 돈 더 달라고 징징대다가 결국 레알로 이적하게 되었고 이 일로 인해 토티와의 관계도 소원해졌다.[9]
보통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알고 있으나 사실은...카사노는 토티와 함께 리그를 정복하는 활약을 하고 있었는데 AS 로마의 전 구단주 로젤라 센시는 재계약 협상에서 그런 카사노에게 연봉 동결을 제시한다. 카사노는 연봉 0.4M(한화 약 7억)을 인상한 금액을 끝까지 요구했으나 센시의 제의는 동결or 인상하고 2년이었다. 2년 계약은 그냥 자유계약 내주지 않고 비싸게 팔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마지막 협상까지 최고의 활약을 보인 선수에게 연봉 7억을 올려주지 못한 센시는 카사노를 5.5M(한화 약 90억)의 이적료에 팔아야 했다. 사올 때는 25M 이상에다 가에타노 다고스티노까지 얹어준 선수를 말이다.[10][11]

2.3.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마드리드 CF에서의 활약은 좋지 못했다. 일단 카사노 본인의 똘끼(...)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카사노를 어쩌지 못하던 레알은 카사노의 은사인 파비오 카펠로가 레알에 부임하게 되며 은근히 카사노 제어도 좀 잘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카펠로마저도 카사노와 다퉜다. 카사노는 카펠로에게 개기다가 징계를 받기도 하고 카펠로를 우스꽝스럽게 흉내내면서 뒷담을 까는 장면이 방송국에 찍히는 등 갖은 추태를 부리다 체중증가량당 벌금이라는 굴욕적 조치마저 당하게 된다. 이 와중에 카사노는 다시 로마와 토티에게 징징 잉잉 불쌍한 척을 했으나 로마와 토티는 본 척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여러 모로 구단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짓만 하다가 시즌 도중 삼프도리아임대를 가게 되고 결국 2008년 삼프도리아에 정식으로 이적하게 된다.
결국 호비뉴에게 세리머니를 전수한 정도가 레알 시절 카사노의 눈에 띌 만한 업적.[12][13]

2.4. UC 삼프도리아


삼프도리아 이적 후 그동안의 여자관계를 청산하고 수구(水球) 선수 출신 카롤리나[14]와 결혼하는데, 그 이후로 사람이 확 달라졌다. 삼프도리아의 공격수 잠파올로 파치니와의 콤비플레이는 전성기 토티와의 플레이에는 못 미치지만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보여주었고, 카사노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삼프도리아의 플레이 또한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의 클래스를 보여주며 아직 안 죽었다는 것을 입증했다.
거의 개인의 활약으로 삼프도리아를 챔스까지 진출시킨다. 챔스 진출 컷라인인 리그 4위로 리그가 마감되고 나서 삼프도리아 팬들은 챔스 우승한 것마냥 좋아했고 카사노는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삼프도리아에 와서도 그놈의 성격이 어딜 가지 않아, 이번에는 구단주와 큰 불화가 생겨 팀에서 완전히 내쫓길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삼프도리아의 가로네 구단주가 어느 날 카사노에게 식사를 제의했는데, 마침 그날이 가족 행사가 있었던 카사노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그 이후부터 가로네 회장은 카사노의 주급을 반토막냄과 동시에 그를 파치니 같은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는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15] 카사노는 2번이나 가로네 회장에게 사과했지만 가로네 회장은 결국 그를 방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임신 중이었는데, 임신 중인 아내를 데리고 다른 팀으로 이적할 수 없다면서 카사노는 그동안 그를 알던 팬들이 경악할 만큼 손발 다 들어 빌었다. 주급을 깎아도 된다느니, 원한다면 휘발유도 마시겠다느니...이게 그 카사노라고?[16]
결국 2011년 1월 2일 AC 밀란으로 이적했다. 호나우지뉴 지못미 또한, 삼프도리아는 카사노와 파치니를 아무런 대책도 없이 팔아버린 대가로 강등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사과는 애꿎은 팔럼보가 했다. 팔럼보가 무슨 죄야.

2.5. AC 밀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결국 밀란으로 이적이 성사되었다. 밀란 입장에선 계속 폼이 떨어지는 클라렌스 셰도르프, 호나우지뉴와 점점 늙어가는 피를로를 대신하여 창의적인 플레이를 해줄 수 있는 선수가 없는 상황에서 카사노의 영입은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밀란에는 저 셋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볼 배급을 해줄 선수들이 없다. 마시모 암브로시니, 젠나로 가투소, 마티유 플라미니 모두 거의 수미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선수들이다. 그렇기에 선수 생활의 절정기에 다다른 카사노의 영입은 밀란의 천군만마가 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첫째는 카사노는 이미 삼프도리아 소속으로 챔스를 뛰어서 밀란 소속으로 챔스를 뛰지 못한다는 것이고, 또 둘째는 모두가 다 알다시피 또라이 같은 멘탈(...)이다. 물론 카사노의 멘탈이 전과 달리 매우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사람 성격이 한순간에 고쳐지는 것이 아니기에 이점이 약간 걸리는 점이기도 하다.
이적 후 맞이하는 첫 경기인 칼리아리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된 후 어시스트를 올리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그리고...
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
이후에도 즐라탄과 찰떡 콤비를 보이며 리그에서 총합 40분 뛰었는데 3어시를 찍는 등 무시무시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일명 갓산호. 특히 카사노와 즐라탄이란 창의력 대장들이 합쳐서 내는 공격진의 파괴력은 무시무시하다.
그러다, AS 로마전 이후 원인불명으로 쓰려져 병원에 입원하여 검사를 받았다. 이에 대해 AC 밀란의 팀 닥터는 "카사노의 상태가 좋지 않다. 말을 하거나 몸을 움직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고 말하였다고 하면 꽤나 심각해 보인다. 안... 안 돼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뇌경색이라는 보도도 나왔었지만 AC 밀란 측에서 부정했다.
후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심장에 구멍이 뚫렸다고 하며 이를 위해 수술에 들어간다고 한다. 몇 개월간의 재활이 필요한 상황으로, 시즌 아웃될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그래서 AC 밀란은 카사노의 대체자를 급하게 물색하였고, 이 때문에 테베즈 영입설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테베스 영입이 무산된 시점에서 생각보다 회복이 빨라 이내 개인훈련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떴다. 본인은 4월 복귀를 희망하지만, 의사는 6월쯤은 되어야 한다고 전망.
피오렌티나전에서 교체 출전하였다. 하지만 팀은 지고 말았고 선두까지 유벤투스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도 이후 경기 출전하면서 점점 기량이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새 국가대표 팀 감독 체사레 프란델리에 의해 이탈리아 대표팀에 발탁되어 UEFA 유로 2012에서도 활약했다.[17] 스페인전에서도 비록 골을 기록하진 못했지만, 클래스는 죽지 않았다는 듯이 스페인의 수비진을 적절히 뒤흔들며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다른 선수들의 공격 기회를 만들어주는 데에도 게을리하지 않아, 반대로 멘탈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 발로텔리와 극명한 대조를 보여줬다. 역시 발로텔리도 장가가야 할 듯. 그리고 2차전을 지나 결국 3차전, 전반 35분에 세트피스 상황에서 피를로가 어시스트해준 공을 백헤딩으로 넣어 이탈리아의 선제골을 기록하는 데 성공[18], 이탈리아의 8강 진출을 견인한 주역의 한 명이 되었다.
이어서 8강전에서는 조용했으나, 준결승전에서 독일 수비수 2명을 농락하는 턴 직후에 정교한 크로스를 날려 발로텔리의 헤딩골을 어시스트, 이탈리아 팀이 우승후보로까지 꼽히던 독일을 2:1로 완파하는 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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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직 죽지 않았다(2).
4강전 끝나고 팬들한테 상/하의 벗어서 주는 장면(왼쪽 사진). '악동클럽'(?) 아니랄까 봐, 얘네들이...
다만, 아직까진 '60분짜리 공격수'(복귀한 지 얼마 안 되어, 풀타임 출장이 힘들어서)라느니, 발로텔리와 함께 언제 팀 말아먹을지 모르는 '폭탄'이란 평이 남아있는 등 우려도 남아있었고, 불행히도 하필 결승전에서, 이 우려는 어느 정도 현실이 되었다. 본인도 스페인의 파상공세에 휩쓸려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19], 특히 풀타임 출장이 어려웠던 탓에 항상 교체 카드 1장을 잡아먹고 시작하던 것이 경기 당시 수비수들의 잇따른 부상 때문에 부상당했는데 교체를 해줄 수가 없는 어이없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화룡점정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폭탄'이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대회 전의 부정적인 예상에 비하면 훨씬 많은 활약을 보여준 셈. 결국 유로 2012는 그의 대표팀 캐리어 중 최고의 전성기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대회 종료 후, 이적설이 나왔다. 이제 나이도 나이이고 해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아내의 고향 팀인 제노아에서 보내고 싶어한다는 것으로, 밀란도 그를 정리하고 제노아에서 마티아 데스트로 등의 유망주를 데려오고 싶어하며, 또한 제노아와 밀란의 관계가 좋은 것 등이 이번 이적설에 힘을 실어넣어주고 있었으나...

2.6.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2년 8월 22일 인테르잠파올로 파치니와의 트레이드로 인테르로 이적했다. 정확히는 카사노 + 7M 유로와 지암파올로 파치니의 트레이드.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트레이드라는 반응이 많다. 파치니가 분명 나쁘지 않은 공격수이기는 하지만 카사노에 비해서는 리그나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상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거기에 카사노에 7M 유로를 더 얹어줬으니. 이 트레이드의 배경으로는 2012년 여름 이적 시장 동안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치아구 시우바 등 고액 주급자들을 처리해온 AC 밀란의 행보에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로써 카사노는 2012년부터는 네라주리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과거 카사노의 중거리 슛 때문에 챔스 진출 좌절을 맛봤던 인테르였기에, 다소 묘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로쏘네리 팬들에게는 심장병 재활 때까지 기다려줬더니 홀랑 라이벌 팀으로 이적했다면서 그를 이적시킨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 함께 세트로 온갖 욕을 처먹게 된다.
평소 인테리스타였던 카사노는 입단식에서 "밀란 위엔 하늘만 있다. 그리고 하늘 위엔 인테르가 있다."란 인터뷰로 많은 환영을 받았다. 시즌 초반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체력에 한계가 오고 부상도 겹쳤다. 그럼에도 36경기(29선발 7교체) 8골 12도움이란 기록을 남겼는데, 팀이 전체적으로 부상으로 시망하는 가운데 그나마 공격 루트를 만들어내던 선수였다.
그러나 시즌 후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마짜리가 카사노를 쓰지 않을 것을 천명하여 결국 FC 파르마로 이적했다. 이에 카사노는 "마시모 모라티 구단주를 비롯한 수뇌부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마짜리는 아니다."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마짜리에게 계속 안 좋은 감정을 드러냈는데 마침 마짜리가 인테르에서 무재배하면서 유망주는 쓰지도 않자 '역시 인테리스타'라며 환호를 받았던 건 함정...

2.7. 파르마 FC


노장은 죽지 않았다.
82년생이므로 이제 30줄을 넘긴 선수임에도 루카 토니와 함께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노장은 왕창 모았는데 다 별로인 AC 밀란은 뭐했는가 세리에A 34라운드 종료기준 11골 6어시스트로 활약하고 있으며, 그 활약을 디딤돌삼아 국대 승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평소에 인터뷰라면 자뻑 내지 이상한 소리가 대부분이던 젊은 시절과 대비되게 "살을 뺐다고 해서 대표팀 멤버에 뽑힐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체사레 프란델리 대표팀 감독님께서 살을 뺀 점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까 싶다. 만약 월드컵에 간다면 난 행복할 것이다"라는 매우 겸손한 인터뷰를 남겼다. 그리고 인터뷰 내용에도 나와 있듯 과식의 상징인 그가 무려 체중 감량까지...욕이란 욕만 골라 먹던 그가 선수로써는 황혼의 나이에 갑자기 멋진 모습을 보여주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정작 국대 감독 프란델리는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쓰겠지
그런데 결국 월드컵 갔다! 하지만 코스타리카전에서는 아무것도 못했다(...). 코스타리카의 압박 때문이라고는 해도, 세월은 속일 수 없는 듯한 경기 내용을 보여주었다.
한편 14-15 시즌에는 그럭저럭 활약은 하였으나 구단 매각이 풀리지 않아 연봉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생겨 구단과 트러블이 생긴 듯하다. 결국 1월 27일자로 자유 계약 상태가 되었다.

2.8. 무적 기간


오스발도가 떠난 자리에 카사노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이 되었으나 인테르의 만치니 감독이 자유 계약 신분인 카사노의 영입을 거절하며 인테르 이적은 무산되었다.

2.9. 다시 삼프도리아로...


무적 신분으로 팀이 없었던 카사노는 2015년 8월 9일 삼프도리아와 2년 계약을 체결하였다.
15-16 시즌엔 선발과 교체를 오가며 25경기 출전 2골 5도움을 기록했다. 별 사고 없이 지내나 했지만 시즌 막판 제노아와의 더비 매치에서 3대0으로 완패한 후 구단 회장 대리인과 충돌하며 계약 해지 직전까지 갈 뻔했다고 한다. 다행히 방출은 안 됐지만 이탈리아 언론들은 여전히 카사노의 방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그후 16-17 시즌에는 페레로 회장과 불화설이 생겼고 더 높은 주급을 요구하면서 결국 페레로 회장과 완전히 틀어지고 말았다. 페레로 회장은 "카사노는 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혼자 남아서 훈련하는 척 하면서 모두의 동정을 유발하려고 한다. 제물이 되는 어린양이 되는 길은 카사노가 선택했다. 그는 자신을 위대한 축구 선수라고 착각하는 듯 하다."라며 공개 인터뷰에서 비난하며 카사노에게 라커룸 출입 금지 조치를 내렸다.
2017년 1월 구단에 계약 해지를 요청했다고 한다. 조만간 삼프도리아를 떠날 것이 확실해보인다.
2017년 2월 삼프도리아를 떠나게 되었다. 차기 행선지로는 중국 리그 등이 점쳐지고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

2.10. 엘라스 베로나로, 그리고 뜬금없는 은퇴 선언


선수 생활의 끝까지 이어지는 똘끼, 그리고 그 수혜자는 뜻밖에도 이승우.
2월 15일 디마르지오와의 인터뷰에서 은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중국이나 아르헨티나 리그로는 떠나고 싶지 않으며 세리에에서 뛰고 싶다. 6월까지 불러주는 팀이 없다면 집에 머물고 싶다."라고 말했다.
2월 27일 '스카이 이탈리아'에서 카사노가 몇몇 세리에 A, B의 오퍼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본인은 세리에 A 중상위권 팀에서 뛰고싶은 모양이지만 세리에 A 중상위권 팀은 모두 확실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공격수를 갖고 있어 과연 오퍼가 들어올지는 의문이다.
파일:카사노_베로나.jpg
7월 11일 엘라스 베로나로 자유계약으로 이적했다. 등번호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99번.
그런데...
프리시즌 훈련에 합류한지 8일째, 7월 18일 돌연 은퇴를 선언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족들이 보고싶고 집에 가고 싶어서 은퇴를 한다는 보도였다.
그런데...
오후에 기자회견에 등장한 카사노는 무적기간동안 쭉 가족들과 지내하다 프리시즌 캠프에 합류해 가족과 떨어져 정신적으로 힘들었으며 충동적으로 은퇴를 이야기했다고 밝히며 다시 디렉터와 대화를 통해 해결했으며 은퇴는 없다고 밝혔다. 팬들의 반응은 이뭐병...
그런데...
7월 24일 카사노가 다시 은퇴를 결심했다고 이탈리아 유력 기자인 디 마르지오가 보도했다.
곧 아내의 SNS계정을 통해 은퇴는 아니며 단지 베로나와 함께하기 싫어서 나가는것이라고 밝혔다. 당연히 베로나 보드진은 크게 반발했으며 계약해지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다시 몇시간 뒤 공식 성명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반전의 반전의 반전도 아니고 나이를 먹어도 여전한 멘탈
아내의 SNS로 밝힌 내용은 아내의 실수이며 본인은 이제 축구를 그만 둘 것이며 베로나의 관계자, 동료들, 팬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은퇴함을 밝혔다.
그런데...아 진짜
7월 31일 아직 은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라는 발언을 하면서 또다시 은퇴 번복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밀당달인
어쨌거나 카사노가 팀을 이탈하자 베로나 측은 부족한 공격 자원수를 이승우의 입단으로 메꾼다.

2.11. 그 이후


2018년 1월 다시 은퇴번복을 했다. SPAL에서 현역 복귀한다는 루머가 있었다. 이적시장이 닫혔지만 FA 신분이라 언제든 복귀는 가능한 상황.[20]
결국 17/18 시즌 내에 팀을 찾지 못했다.
마침내 2018년 10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현재는 티키타카라는 이탈리아의 축구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하며 지도자를 준비하고 있다. 완다 이카르디의 발언에 벙쪄서 팩트폭력을 날린 적도 있다. 그 한성깔 하는 카사노가 완다한테 한소리를 날린다는것 자체가 완다가 개또라이라는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3. 국가대표


2003년 12월 처음 A매치를 치렀다.
UEFA 유로 2004 조별 예선 1차전 덴마크전에서 프란체스코 토티가 상대 선수인 크리스티안 폴센에게 침을 뱉어 3경기 사후 징계를 당하자 그를 대신해서 주전 선수로 기용이 된다.
카사노는 2차전인 스웨덴전과 3차전인 불가리아전에 각각 1골씩을 넣으며 이탈리아가 얻은 3골 중에 홀로 2골을 기록했지만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탈락을 막지는 못했다. 스웨덴전에서 감각적인 백헤딩슛으로 한 골을 기록했지만 후반 40분에 이브라히모비치가 전설의 태권슛을 시전하며 동점골을 넣는 바람에 팀은 2무로 탈락 위기에 처했다. 스웨덴은 1승 1무, 덴마크 역시 1승 1무인 상황에서 마지막 불가리아전을 반드시 이겨야하는 절박한 상황이 된 것. 그리고 마지막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마르틴 페트로프에게 PK골까지 얻어맞으며[21] 팀은 완전히 개판으로 되어버렸고 카사노는 극단적인 부담감 속에서도 팀을 하드캐리하며 후반 추가시간에 역전골을 기록해 팀을 구하는 듯 했으나 스웨덴과 덴마크가 2대 2로 비겨버리면서 1승 2무를 거두고도 스웨덴, 덴마크와의 상대전적에서 밀려버리는 바람에 팀은 탈락했다.[22] 골을 넣고 세리머니까지 하며 이겼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스웨덴과 덴마크의 소식을 전해듣고 곧바로 분노의 눈물을 흘리던 카사노의 모습이 많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을 터.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이 얻은 유일한 수확이 차세대 공격수 카사노의 발굴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그는 크게 주목을 받았다.
그 후 이탈리아 대표팀을 맡은 마르첼로 리피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에서의 부진과 기행으로 문제가 많았던 카사노를 기용하지 않았고 2006 독일 월드컵 엔트리에서도 그를 제외시킨다. 이 당시 카사노는 체중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구단이 벌금을 매길 정도의 선수 인생에서 가장 부진했던 시기였다.
리피의 후임인 로베르토 도나도니 감독에게도 그다지 중용받지 못하다가 UEFA 유로 2008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으나 대회 무득점에 그쳤다.
그 후 UC 삼프도리아에서 좋은 모습들을 보여줬지만 다시 이탈리아 대표팀의 감독을 맡은 리피에게 꾸준히 외면을 당했다. 끝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최초로 무승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리피를 비판하는 여론이 많았다.
이후 체사레 프란델리의 체제 아래에서 카사노는 대표팀의 에이스로서 활약을 하기 시작한다. 카사노는 UEFA 유로 2012 엔트리에서 마리오 발로텔리와 투톱을 맡으며 이탈리아의 대회 준우승에 크게 기여를 한다. 스페인, 크로아티아와의 조별리그 경기를 둘다 1대 1로 마쳐 카사노 본인의 입장에서는 2004년의 악몽이 되살아날것같은 상황이 되었지만, 곧 승점자판기였던 아일랜드를 본인과 발로텔리의 골로 잡고 팀을 구해냈다. 그리고 4강전에는 카사노의 어시스트-발로텔리의 선제골로 이어지는 퍼포먼스로 난적인 독일을 다시금 격파했다. 악마의 재능 둘이서 팀을 이끌었던, 이탈리아 대표팀 역사상 가장 유쾌했던 대회. 스탯은 6경기 1골 1어시.

2011년에 브라질 월드컵 이후 대표팀 은퇴를 하겠다고 이미 선언을 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천신만고 끝에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출전한 경기에서 부진했고 팀도 두대회 연속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4. 플레이 스타일


한때 판타지스타 계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았던 만큼, 전형적인 이탈리안 테크니션 포워드였다. 한창 로마에서 카펠로의 지휘를 받던 시절 프란체스코 토티와의 원터치로 패스를 주고받으며 상대 수비진을 뒤흔드는 모습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포워드라고는 하지만 직접 득점하는 것보다는 주로 팀을 위해서 창의적인 패스로 공격진을 지원하는 어시스터로써의 재능이 빛났던 선수였다. 주로 중앙에서 펄스 나인이나 공격형 미드필더, 또는 스트라이커로 전방에서의 플레이메이킹을 주도하던 선수지만, 때로는 측면에서 윙어로도 활동하던 선수다.
최대의 장점은, 탁월한 시야와 득점을 이끌기 위한 찬스메이킹을 실행할 수 있는 테크닉이다. 또한 전반적으로 볼을 다루는 트래핑이나 컨트롤, 드리블, 크로스 능력, 정확한 패싱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피지컬적으로도 상대 수비수와의 볼 경합 과정에서 쉽게 밀리지 않는 상체의 힘과 균형감각을 갖고 있었고, 테크닉으로 수비수를 속이거나 가속력을 발휘해서 상대 수비수를 속도 경쟁에서 제치는 플레이에도 능했다.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면 정말 글자 그대로 악마의 재능. 판타지스타의 계보를 고스란히 이어받지는 못했지만 카사노 독자적인 스타일(?)을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본격 판타지스타형 트레콰르티스타

5. 여담


  • 자서전을 낸 적이 있는데, 내용을 요악하자면 '섹스 좋아! 밥 좋아! 나 경기 제대로 안 뛰었당! 걱정마셈 자식교육은 잘 할 거임' 정도가 전부이다. 그냥 본능에 충실한 인간인 듯. 이 자서전을 출판한 후 관련 인터뷰를 하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는 전 세계에서 읽은 책보다 쓴 책이 더 많은 유일한 사람이다."라는 굴지의 명언을 남겼다(...)
  • 한국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종종 이천수와 비교가 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똘끼도 실력도 이천수가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게 사실.
  • 카펠로 감독과의 일화로 로마에서 훈련 중 게으르게 굴어 카펠로 감독이 잔소리를 퍼붓자 그 자리에서 도망을 쳤다. 여기서 더 웃기는 건 카펠로도 "야! 도망치지마! 도망은 겁쟁이나 하는거야!"라고 소리치면서 쫓아갔다고 한다.
  • 풋볼매니저에서 프로 의식은 멘탈갑 전설 수준의 3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아드리아누와 동급이다. 멘탈갑의 전설 테베스는 2, 후배 발로텔리와 박주영은 6.
  • UEFA 유로 2004에서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자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물병을 발로 차다가 부상을 입기도 했다.
  •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의 열성팬이다. 항상 인터뷰 등에서 메시를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라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고 메시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본인의 둘째 아들 이름도 '리오넬 카사노'로 지었다.
  • 선수 시절에 리그 경기에서 교체되어 조기 퇴근을 했다가 경기 후에 있을 도핑 테스트에 무단 불참하면 최대 2년 출장 정지를 당한다는걸 뒤늦게 기억하고 황급히 경기장으로 돌아가 징계를 면한 적이 있었다.누구는 결국 안돌아와서 징계먹게 생겼다

6. 수상 기록



6.1. 대회 기록


  • 레알 마드리드 CF (2004/05 - 2007/08)

  • AC 밀란 (2010/11 - 2011/12)
    • 세리에 A : 2010/11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 2011

6.2. 개인 수상


  • 세리에 A 올해의 신인상 : 2001, 2003

6.3. 득점 기록


시즌
클럽
소속 리그
리그
FA 컵
대륙 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99-00
AS 바리
세리에 A
21
3
-
-
-
-
2000-01
AS 바리
세리에 A
27
3
2
0
-
-
2001-02
AS 로마
세리에 A
22
5
3
1
5
0
2002-03
AS 로마
세리에 A
27
9
5
1
11
4
2003-04
AS 로마
세리에 A
33
14
0
0
6
4
2004-05
AS 로마
세리에 A
31
9
8
1
3
1
2005-06
AS 로마
세리에 A
5
2
0
0
2
1
2005-06
레알 마드리드 C.F.
라 리가
12
1
4
1
1
0
2006-07
레알 마드리드 C.F.
라 리가
7
1
1
1
4
0
2007-08
UC 삼프도리아
세리에 A
22
10
2
0
1
0
2008-09
UC 삼프도리아
세리에 A
35
12
4
1
6
2
2009-10
UC 삼프도리아
세리에 A
32
9
1
2
-
-
2010-11
UC 삼프도리아
세리에 A
7
4
0
0
3
1
2010-11
AC 밀란
세리에 A
17
4
4
0
-
-
2011-12
AC 밀란
세리에 A
16
3
0
0
3
1
2012-13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세리에 A
28
7
2
1
9
1
2013-14
파르마 FC
세리에 A
34
12
2
1
-
-
2014-15
파르마 FC
세리에 A
19
5
1
0
-
-
2015-16
UC 삼프도리아
세리에 A
24
2
1
0
-
-
2016-17
UC 삼프도리아
세리에 A
0
0
0
0
-
-
[1]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아닌 침투해 공간을 노려 득점을 올리는 전형적인 세컨드 스트라이커 이었으며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 또한 소화했다.[2] 한국의 해외 축구 팬들이 부르는 별명이다.[3] 평소 폭식에 탐닉하는 버릇 때문인지, 자주 살찐 모습을 보여 줘서(...) 붙은 별명이다.[4] 그의 아버지는 카사노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도망쳤다. 결국 카사노는 홀어머니 밑에서 커야 했다. 이후 카사노가 스타선수가 된 이후 그의 아버지가 그를 다시 찾아왔으나 카사노는 그를 욕하고 때려서 내쫓았다고 한다.[5] 당시 수비수가 최상급의 수비수라 불리던 크리스티안 파누치로랑 블랑이었고, 블랑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황금세대로 불렸던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우승 멤버였다. 파누치는 알다시피 이탈리아에서 설기현이 골을 넣기 전에 손에 볼이 맞은 선수다.[6] 토티는 이때 자신의 커리어 첫 번째 리그 20골 이상 득점에 성공했고, 이는 06-07 시즌을 제외하면 유일한 20골 이상 득점이다. 카사노는 이 시즌이 그의 선수 경력 중에서 커리어 하이를 찍었던 시즌이다. 득점수에서도 이때가 최다골을 기록한 시즌이다.[7] 워낙 테크니션으로 뛰어났던 두 선수이기 때문에, 2선과 1선을 오가면서 창의적인 플레이들을 보여주는 플레이는 지금 영상으로 찾아봐도 눈이 즐겁다.[8] 재계약 조건 중에 카펠로 감독을 복직시켜달라는 조건을 내걸기도 했다고 한다.[9] 당시에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은 좋지는 않아도 나쁘지도 않은 그런 관계이다. 당시 이적하면서 절친이었던 토티에게 인사 한 마디 안 하고 가서 토티가 삐졌다고(...).[10] 다만 당시에 맨유, 리버풀 등의 오퍼가 15M을 상회하던 멕세를 7M에 데려와놓고 그것도 제때 돈을 못 줘서 영입금지 먹었던 재정상태를 생각하면...[11] 하지만 새 구단주 디 베네데토의 부임 이후 그냥 센시가 운영을 개떡같이 해서 돈이 없던것으로 드러났다.[12] 파일:external/tv02.search.naver.net/3_coolkiwi903.jpg
지단 : 야 애한테 뭘 가르친 거야 이 사진은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지단의 마지막 홈경기였기 때문에 호비뉴가 골을 넣고 싶어했지만 그러질 못해서 우울해하는 것.
[13] 그리고 이 둘은 2010-11 시즌 AC 밀란에서 다시 재회했다(...).[14] 별명이 수구계의 젠나로 가투소였다고 한다.[15] 아마, 그 이전부터 쌓이고 쌓인게 이 사건을 계기로 터졌을 것이다.[16] 이번 사태에 대해 여러 네티즌들의 반응은, 물론 카사노가 잘못한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구단주가 쪼잔해서 그렇다는 것이 주된 평.[17] 카사노가 발탁되자 많은 사람들이 심장수술받고 90분 경기도 못뛰는데다 성격도 개망나니인데 대표팀에 합류시키는 것을 반대했다.[18] 좀 애매하게 들어간 모양새였지만, 골라인 안으로 넘어간 것이 분명해서 골로 인정되었다.[19] 그래도 몇 번 날카로운 슈팅을 날리기도 했지만, 하필 상대가 카시야神이라서...[20] 대표적인 예로 맨유에서 뛰었던 골키퍼 안데르스 린데가르트, 당초 프레스턴 노스 엔드와의 계약 만료 후 FA 신분이었으나 톰 히튼의 부상으로 대체자가 필요했던 번리 FC가 그를 시즌 중 영입했다.[21] 유로 2004 대회 당시 불가리아 팀의 유일한 득점이었다.[22] 여기서 왜 상대전적을 언급하냐면, 유로 대회는 월드컵 대회와는 달리 조별리그에서 승점이 같은 팀이 나오면 승자승 원칙을 골득실 비교보다 우선시하여 순위를 가르기 때문이다. 당시 이 대회 C조의 세 팀간 전적을 분석해보면, 불가리아를 제외한 세 팀이 모두 승점 5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골득실이 스웨덴 +5, 덴마크 +2, 이탈리아 +1이었기 때문에 자칫 보면 골득실에 밀려서 이탈리아가 탈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불가리아와의 전적을 제외한 세 팀간의 전적을 계산해봤을때 세 팀은 서로 비겨 2무를 기록했고, 스웨덴은 3득점 3실점, 덴마크는 2득점 2실점, 이탈리아는 1득점 1실점이었다. 즉 세 팀 간 상대전적을 봤을 때 이탈리아가 가장 골을 적게 넣은 것이 되어버린 것. 만일 덴마크와 스웨덴이 0대 0 스코어를 유지한 채로 비겼다면, 탈락하는 팀은 세 팀과의 전적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한 덴마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