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하프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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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전투기 에이스 일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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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위
순위
이름
국적
격추 수
주 기종
비고
11위
테오도어 바이센베르거
독일
208대


12위
한스 필리프
독일
206대


발터 슈크
독일


14위
안톤 하프너
독일
204대


15위
헬무트 리퍼트
독일
203대


16위
발터 크루핀스키
독일
197대


17위
안톤 하클
독일
192대


18위
요아힘 브렌델
독일
189대


막스 슈토츠
독일


20위
요아힘 키르슈너
독일
188대


▼ 21~30위




파일:안톤 하프너.jpg

1. 개요
2. 청년기
3. 프랑스 해안에서 받은 수업
4. 러시아 전선에서
5. 열사의 북아프리카
6. 다시 러시아로
7. 에이스 vs 에이스



1. 개요[편집]


안톤 하프너(Anton Hafner : 1918.7.2~1944.10.17), 제 2차 세계 대전에 활약한 독일 공군의 슈퍼 에이스 조종사이다.

796회 출격, 204대 격추이다.


2. 청년기[편집]


1918년 7월 2일, 독일 제국 시대에 뷔르템베르크 왕국에 속한 에르바흐 도나우(Erbach an der Donau)에서 양철 장인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성장하면서 제국이 공화국으로 바뀌고 곧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며 온 나라가 나치즘의 광풍에 휩쓸리는 것을 경험했다. 안톤 소년 또한 반강제적으로 제국 노동봉사단(Reichsarbeitsdienst)에 가입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제식 훈련을 받으면서 군대 문화에 물들기 시작했다.

그가 21살에 되던 1939년에 국방군에 징집되어 공군에 배속되었다. 난생 처음 조종 훈련을 받게 된 안톤이었지만, 또래에 비하여 비행 적성이 좋아 전투조종사로 분류되었다. 1941년 2월 23일, 훈련을 마친 그는 베르너 묄더스가 지휘봉을 잡고 있던 정예 부대인 JG51의 6중대로 보내졌는데, 이렇게 그가 전쟁에 발을 내딛었을 때는 이미 개전 이후 1년 반이 지난 다음이었다. 눈부신 전격전을 펼치며 서유럽을 거의 집어삼킨 제3제국영국 공군에게 가로막혀 첫 패배를 맛본 후였다.



3. 프랑스 해안에서 받은 수업[편집]


됭케르크 부근의 해변가에 자리잡은 비행장에서 그의 부대는 사실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이따금 도버 해협을 넘어오는 영국기가 나타났다는 보고와 함께 출격 명령이 떨어지면 전 부대원이 난리법석을 떨며 발진했다가 별 소득도 없이 돌아오곤 했지만, 그래도 신참 안톤은 이 시기에 몇 차례의 공중전에 윙맨으로 참가하는 경험은 쌓을 수 있었다.

1941년 3월 29일에 안톤 하프너는 전상장 뱃지를 달 자격을 얻게 되는데, 다름 아니라 타고 있던 낡은 Bf 109E-4가 엔진 고장을 일으켜 불시착을 경험한 것이다. 랜딩기어의 간격이 비정상적으로 좁은 메서슈밋 전투기는 정상적인 착륙이 아닐 경우 그라운드 루프나 롤을 일으키기 일쑤였는데, 백사장에 뒤집힌 그는 한동안 조종석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밀물에 익사해 죽을 뻔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구조되었다. 이 사건 이후 6월에는 그가 속한 6중대를 포함해 2그루페는 본국인 도르트문트로 보내져 잠시 후방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사실 부대는 새 전투기를 수령하러 본국에 온 것이었고, 안톤 하프너는 번쩍번쩍하는 Bf 109F-2를 몰고 바르바로사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동쪽으로 떠났다.


4. 러시아 전선에서[편집]


폴란드시에들체(Siedlce)에 전진 기지를 꾸린 부대는 부크 강 너머 곧 독일군이 작전을 펼치게 될 적진을 정찰 비행했다. 묄더스 비행단이 독소전에 처음 출동한 것은 6월 22일 이른 아침이었다. 부대는 다음날 부크 강 너머 국경지대인 테레스폴(Terespol)로 기지를 전진시켰고, 이날 안톤 하프너는 투폴레프 SB 폭격기를 첫 제물로 삼을 수 있었다. 7월 3일에 5대째를 떨군 그는 2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지만, 이것은 사실 안톤 하프너가 쌓아나갈 긴 격추 행진의 서곡에 불과했다. 2급 훈장이 1급으로 바뀌는데는 불과 보름 후인 7월 18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어엿한 하늘의 용사로 성장한 안톤 하프너는 이듬해 7월 6일에는 일일 에이스가 되는 영광도 거머쥐었다. 그날 하프너는 오전 출격에서 35대째로 시작해 41대째까지 한꺼번에 7대의 적기를 땅에 처박았던 것이다. 안톤 하프너는 1942년 8월 22일에 60대 격추의 무공으로 기사철십자장을 서훈받게 된다.


5. 열사의 북아프리카[편집]


1942년 11월에 그가 속해있던 2그루페는 러시아를 떠나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에 둥지를 틀었다. 이곳에서 새로운 적인 영국 사막공군과 싸우게 된 그는 63기째인 RAF 81스쿼드론의 스핏파이어를 격추시키면서 자신이 이 전선에 나타난 것을 알렸다. 11월 28일에 B-17 폭격기를 하나 더 격파해낸 안톤은 해를 넘겼다. 새해가 밝자마자 1월 2일에 출격한 그는 이번에는 미군 파일럿 노만 위든(Norman L. Widen)이 모는 라이트닝 전투기와 격렬한 일기토를 벌인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격추된 위든 소위는 독일군 비행장 부근에 동체 착륙했다가 곧바로 체포되었다.

안톤 하프너는 의기양양하게 기지로 돌아와 위든 소위를 만나고 기념 촬영을 제의하는 등 잠시의 여유를 즐겼지만, 그의 정비사들이 채 기본 정비를 마치기도 전에 다시 출격하게 된다. 그의 편대는 이 출동에서 사막공군의 혼성 전투기 대편대를 마주치게 되었는데, 이 교전에서 그가 탄 Bf 109G-2는 몇 차례의 피탄 끝에 더 이상 날 수 없게 된다. 할 수 없이 기체를 버리고 뛰어내린 그는 꼬리날개에 손을 부딛히며 격심한 통증을 느꼈고, 한손을 완전히 쓸 수 없을 정도로 심한 골절상을 입었다. 간신히 구조된 그는 그로부터 거의 6개월간이나 본국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요양을 받게 된다.

파일:Anton Hafner-El-Aouina-Tunisia-1943-01.jpg


6. 다시 러시아로[편집]


1943년 8월에 손의 골절상에서 회복한 하프너는 동부전선에 전개한 JG 51에 복귀했는데, 이때 항공단의 기체는 메서슈밋 대신에 포케불프 Fw 190A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지만 이 공랭 엔진을 단 전혀 새로운 비행 특성을 가진 기종에 금새 적응한 그는 두 달여 만인 10월 25일에 대망의 100대 격추를 달성하여 루프트바페에서도 최정예의 상징이랄 수 있는 센튜리 마크를 꼬리날개에 그려넣을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항공전을 통틀어 56번째로 100대 격추를 이루었다.

물론, 그 후에도 하프너의 격추 행진은 그칠 줄을 몰랐다. 해가 바뀐 1944년 2월 23일에는 또다시 하루에 7대나 격추시켜 131대가 되었다. 숫적인 열세에 몰린 상황에서 세운 혁혁한 무공을 인정받은 안톤 하프너는 그해 4월에 전군에서 452번째로 곡엽기사철십자장을 수여받는 영광을 안게 된다.

5월이 되자 하프너는 Bf 109G를 쓰고 있는 제8비행중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포케를 타던 그는 다시 메서슈밋기에 적응해야만 했지만, 별 문제는 없었다. 동체에 셰브론과 함께 검은 글씨로 1이 그려진 그의 전용기는 이때부터 슈바르츠 아인(Schwartz 1)으로 불리게 된다. 하프너는 슈바르츠 아인을 몰고 6월 28일에 자신의 통산 150번째 격추를 기록했지만, 자신도 피탄당해 불시착하는 과정에서 중파되었다.

그해 10월부터 JG 51은 재편성을 거치며 지휘관들도 재배치를 받게 되는데, 안톤 하프너는 제10중대장 보직이 주어졌다. 그로부터 얼마 안가 10월 15일 출격에서 5대를 한꺼번에 떨군 그는 드디어 전설의 영역, 미증유의 전과에 해당되는 200대 격추를 넘겼다.


7. 에이스 vs 에이스[편집]


이틀 후, 하프너는 자신의 애기 Bf 109G-6(W.Nr. 442 013) “슈바르츠 아인(Black 1)”을 몰고 생애 마지막 제물로 204대째 제물이 될 Yak-7을 쫓으며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그 야크기에 타고 있는 것은 프랑스인으로, 노르망디-니멘 비행대(Escadrille Normandie-Niemen) 소속의 에이스였다. 초저공으로 낮게 날던 그 야크기를 추격하며 사격을 퍼붓던 그는 그 적기가 땅에 처박는 것을 확인했지만, 곧바로 높다란 아름드리 고목에 부딛혔고 그가 탄 Bf 109는 날개가 부러지면서 산산이 흩어져버렸다. 그가 죽은 후에도 묄더스 항공단에서 그의 기록을 깬 이는 아무도 없었고, 결국 안톤 하프너 중위는 부대의 탑건으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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