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팔 학살/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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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특별 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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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재판부
3.1. 판사
4. 피고
4.5. 사베르 압델 알 두리
4.7. 사담 후세인[공소권없음]
5. 과정
6. 판결과 의의
6.1. 반응


1. 개요[편집]


파일:72204210.jpg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1986년부터 1989년 사이에 안팔 지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쿠르드인 학살 사건을 처벌하기 위해 열린 재판이다.

2003년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고, 사담 후세인을 비롯한 많은 바트당 당원들이 체포당하며 바트당 정권은 서서히 몰락했고, 새롭게 들어선 이라크 임시 정부는 두자일 학살, 안팔 학살 등으로 대표되는 사담 후세인 정권 시기의 전쟁 범죄들을 처벌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알리 하산 알 마지드 외 6인[1]은 반인륜적 범죄 혐의로 이라크 특별재판소에 의해 기소되었다.

2. 배경[편집]


1987년 3월, 알리 하산 알 마지드는 안팔 지역의 바트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었는데, 그는 안팔의 쿠르드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 사린, 겨자 가스 등의 화학 무기의 사용을 허가하며 이러한 화학무기를 이용해 이들을 강압적으로 진압했고, 이라크군을 동원하여 1988년부터 1989년까지 수많은 쿠르드족 민간인들을 학살했으며 이로 인한 민간인 사망자는 약 50,000명에서 182,000명 정도로 추측된다. 또한 이 사건으로 알리 하산 알 마지드는 '케미컬 알리(화학 알리)'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로부터 몇십 년 후인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게 되었고 이라크 특별재판소는 안팔 학살에서의 전범들을 기소하기로 결정했다.

3. 재판부[편집]


재판부는 모하메드 오리비 알 칼리파를 수석 판사로 하고, 그를 포함한 재판부의 판사들은 이라크 특별재판소의 판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모하메드 오리비 알 칼리파 수석 판사를 제외한 다른 판사들은 두자일 학살/재판과 마찬가지로 보안상의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다.

3.1. 판사[편집]


  • 수석 판사
    • 모하메드 오리비 알 칼리파(Mohammed al-Ureybi, ? - 2021[2])

  • 4인의 이라크 특별재판소 판사[3]

4. 피고[편집]


  • 피고들은 바트당의 고위 간부였거나 혹은 안팔 지역의 관계자, 이라크군 고위 관계자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학살에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판단된 6인[4](알리 하산 알 마지드 · 술탄 하심 · 후세인 라시드 알 티크리티 · 파한 주부리 · 사베르 압델 아지즈 알 두리 · 타허 타우피크 알 아니 · 사담 후세인)이 기소되었다.

이름
경력
죄목
판결
알리 하산 알 마지드
이라크 정보국장
이라크 내무장관, 국방장관
반인륜적 범죄
사형 (교수형)
술탄 하심
이라크 국방장관
사형[5]
후세인 라시드 알 티크리티
이라크군 총사령관
파한 주부리
이라크군 군사정보국 사령관
종신형
사베르 압델 알 두리
이라크군 정보국장
타허 타우피크 알 아니
모술 주지사
무죄
사담 후세인[공소권없음]
이라크 대통령
혁명사령부 위원장

반인륜적 범죄
공소권 없음

4.1. 알리 하산 알 마지드[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알리 하산 알 마지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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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하산 알 마지드[6]
علي حسن عبد المجيد التكريتي

출생
1941년(?), 이라크 왕국 티크리트
사망
2010년 1월 15일, 이라크 바그다드
혐의
반인륜적 범죄 (학살)
판결
사형 (교수형)[7]
Ali Hassan Abd al-Majid al-Tikriti
علي حسن عبد المجيد التكريتي

이라크정치인이자 군인. 사담 후세인의 사촌으로 사담 후세인 정부에서 이라크 정보국의 국장과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별칭은 "케미컬 알리".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 발발 직전 이라크 남부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이라크 남부의 항구 도시 바스라에 거주하다가 이라크 전쟁 직후 미군이 그가 거주하던 바스라를 공습해 사망설이 돌았고, 영국군도 전쟁 중 그를 죽였다고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생존이 확인되었고 끝내 2003년 8월 17일 바스라에서 미군에 의해 체포되었다. 결국 2006년 집단학살과 반인륜적 범죄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기 위해 이라크 특별재판소로 이송되었다. 재판 시작 전부터 그는 재판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탄원서 제출을 거부하여 결국 법원 측이 그를 대리해서 탄원서를 썼고, 수석 판사인 모하메드 오리비 알 칼리파 판사와 대립하며 자기합리화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쿠르드족 마을이 이란의 비밀 요원들로 가득했기에 파괴 명령을 내렸다 주장하며 또한 한 청문회에서는 "나는 군대를 통해 마을을 철거하고 마을 주민들을 이주시키라는 명령을 내린 사람이다. 군대는 그 명령을 수행 할 책임이 있었다."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법원에서는 자주 그의 녹음을 공개하며 그의 죄를 입증해고자 했고 결국 2007년 6월 24일, 법원은 알 마지드의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모하메드 오레이비 알 칼리파 재판관은 알 마지드에게 "당신은 이라크 북부에 대한 모든 민군 권한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가 쿠르드족과 아시리아계 민간인들을 살해하고 그들을 혹독한 상황에 처하게 하라고 군에 명령했다고 판단했다. 또 그가 화학 무기와 포병을 사용해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고 판결했다. 이와는 별개로 살인, 전쟁 범죄 등의 혐의로 세 번의 재판을 받았으며 세 번 모두 사형 판결이 내려졌다.


4.2. 술탄 하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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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 하심[8]
سلطان هاشم أحمد محمد الطائي

출생
1944년(?), 이라크 왕국 모술
사망
2020년 7월 19일, 이라크 나시리야 중앙 감옥
혐의
반인륜적 범죄 (학살)
판결
사형 (교수형)[9][10]
Sulṭān Hāshim Aḥmad Muḥammad al-Ṭāʾī
سلطان هاشم أحمد محمد الطائي

이라크군인. 이라크에서 가장 유능했던 군 사령관들 중 한 사람으로 꼽힐 정도로 이라크 내외에서 유능한 군인으로 평가받았으며 인망이 상당히 높던 인물이다. 그의 성품 상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평소 알고 지내던 아드난 키랄라의 권유로 바트당에 입당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 발발 직전에는 이라크 국방부 장관을 재임하고 있었는데 당시 이라크 대통령이었던 사담 후세인과의 불화로 가택연금에 처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에는 가택연금된 상태로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가 허무하게 함락당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후 미국 행정부에 의해 현상수배 되었으며 2003년 9월 19일, 거의 일주일간의 협상 끝에, 그는 모술에서 101 공수 사단에게 자수했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소장에게 항복을 주선한 다우드 바기스타니는 술탄 하심이 매우 존경스럽게 인도됐으며 당시 가족과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바기스타니는 미군이 아흐마드의 이름을 지명 수배자 55명 명단에서 삭제하기로 약속했다고 말했으며 이는 술탄 하심이 무기한 구금 및 기소될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안팔에서의 반인륜적인 범죄 혐의에 대한 의혹이 생겨나며 결국 이라크 특별재판소에 의해 기소되게 된다. 결국 이라크 특별재판소에 의해 사형 판결이 내려지지만 당시 이라크 대통령 잘랄 탈라바니가 술탄 하심은 사담 후세인에게 죽음의 위협을 느끼고 있어 어쩔 수 없이 한 짓이며[11], 후세인 정권 치하에서 쿠르드족들과 공식적으로 접촉한 것을 감안해 사형 집행을 반대했고 2020년 심장마비로 옥사하기 전까지 사형이 집행되는 일은 없었다.


4.3. 후세인 라시드 알 티크리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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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라시드 알 티크리티[12]
حسين رشيد محمد التكريتي

출생
1940년, 이라크 왕국 티크리트
혐의
반인륜적 범죄 (학살)
판결
사형 (교수형)[9][13]
Hussein Rashid Mohammed al-Tikriti
حسين رشيد محمد التكريتي

이라크군인. 이라크군 총사령관을 지냈고, 안팔 학살 당시에는 이라크군 참모차장을 지내고 있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후 미군에 의해 체포당했고, 이라크 당국에 넘겨져 전쟁 범죄로 기소되었다. 안팔 학살이 일어났을 당시 그는 이라크군의 참모차장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이 당시 학살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그는 1988년 안팔에서의 반인륜적인 범죄(학살 등)로 기소되었다. 재판은 2006년 8월 21일에 시작되어 2007년 6월 24일에 마무리되었는데, 그는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알리 하산 알 마지드, 술탄 하심과 함께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가 기소된 혐의 중 총 3개의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선고 낭독 직후 그는 과거 동료였던 술탄 하심과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는 도둑과 범죄자에 맞서 조국을 지켰기 때문에 처형당하고 있다."고 외쳤고, "우리는 이라크를 지켰다."라고 주장해 모하메드 오리비 알 칼리파 대법원장은 이들을 법원에서 퇴출시키라고 명령했다. 그렇게 술탄 하심과 그는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당시 이라크 대통령이었던 잘랄 탈라바니가 '그는 군인으로써 군사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며 공개적으로 사형을 거부했고, 결국 사형은 집행되지 않았다. 거기다 그의 나이가 2021년 기준으로 80대에 접어들며 70세 이상의 노인은 사형이 불가하다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그가 받을 수 있는 처벌은 무기징역이 최대이다. 2021년 기준 현재에도 사형수(실질적으로는 종신형)의 신분으로 이라크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4.4. 파한 주부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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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한 주부리[14]
فرحان مطلك صالح الجبوري

출생
1946년(?), 이라크 왕국
사망
2013년 7월 19일, 이라크 알 카디미야 감옥
혐의
반인륜적 범죄 (학살)
판결
징역형 (종신형)[10]
Farhan Mutlaq Saleh al-Jubouri
فرحان مطلك صالح الجبوري

이라크군인. 이라크 정보국의 장교로 재직했고, 안팔 학살 기간에는 이라크 군사 정보국의 총사령관이었던 인물이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며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가 함락당하고 바트당 정권이 무너졌을 당시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이라크 대사관에서 거주 중이었으나 바그다드 함락 소식을 듣고 미군에게 투항했다.

이후 미국 행정부는 그를 이라크 당국에 넘겼고 곧 이라크 특별재판소에게 반인륜적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자신이 이 기소로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주장했으며 자신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끝내 유죄 판결을 받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이에 그는 반발하며 항소심을 준비했으나 항소심에서도 원심의 판결이 유지되어 결국 감옥에서 복역하다 2013년 만성 질환으로 인해 67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재판 도중 알리 하산 알 마지드의 피고측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4.5. 사베르 압델 알 두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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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베르 압델 알 두리[15]
صابر عبد العزيز حسين الدوري

출생
1949년, 이라크 왕국 티크리트
혐의
반인륜적 범죄 (학살)
판결
징역형 (종신형)
Saber Abdel Aziz al-Douri
صابر عبد العزيز حسين الدوري

이라크군인. 과거 바그다드 주지사와 카르발라 주지사[16], 이라크군 정보국장 등에 재직했고, 안팔 학살 당시에는 이라크군 군사 정보 국장이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 직후 미국 행정부에 의해 체포되었고, 이후 이라크 임시정부에게 넘겨졌다. 이라크 특별재판소는 그를 안팔 학살과 카르발라에서의 반인륜적 범죄 등으로 기소했다. 그러나 카르발라 주민들은 오히려 사베르 압델 알 두리를 이라크 건국 이래부터 현재까지의 카르발라 주지사 중 최고의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많은 카르발라 주민들과 지식인들이 카르발라에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출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유죄를 선고받고 무기징역 판결을 받게 된다. 안팔 학살 문제 역시도 유죄를 선고 받아 결국 70대가 된 현재까지도 감옥에서 복역 중이다.


4.6. 타허 타우피크 알 아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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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허 타우피크 알 아니
طاهر توفيق العاني

출생
1941년 12월 17일
혐의
반인륜적 범죄 (학살)
판결
불기소 처분 (증거불충분)
Taher Tawfiq al-Ani
طاهر توفيق العاني

이라크정치인. 사담 후세인 정권 시절 모술 주지사와 이라크 북부 사무총장 등을 재임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 특별재판소에 의해 안팔에서 쿠르드족에 대한 반인륜적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고, 사담 후세인 외의 6인과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그가 안팔 학살에 협조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이 재판의 피고인들 중 유일하게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났다.


4.7. 사담 후세인[공소권없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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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17]
صدام حسين عبد المجيد التكريتي

출생
1937년 4월 28일, 이라크 왕국 티크리트
사망
2006년 12월 30일, 이라크 바그다드
혐의
반인륜적 범죄 (학살)
판결
불기소 처분[18]
Ṣaddām Ḥusayn ʿAbd al-Maǧīd al-Tikrītī'
صدام حسين عبد المجيد التكريتي

이라크의 제5대 대통령이자 독재자.

이라크 전쟁 발발 후에는 알리 하산 알 마지드아비드 하미드 마흐무드, 타하 야신 라마단 등 그의 측근들이 줄줄이 체포되는 상황 속에서도 잡히지 않았는데 그러던 2003년 12월 13일, 레드 던 작전을 통해 미군은 사담 후세인을 생포하는데 성공했고, 이어 2005년 10월 19일 두자일에서의 반인륜적 범죄로 기소되었으며 2006년 8월 21일, 안팔에서의 쿠르드족 대량 학살 사건으로 또다시 기소되었다.

그러나 사담 후세인의 나이는 곧 70세를 넘기는데, 이슬람에서는 70세를 넘긴 사형수는 사형시킬 수 없다는 율법이 있어[19] 이라크 임시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의 죄목을 최대한 간략하게 해 빨리 재판을 끝내고 사형시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그의 죄목 중 핵심은 두자일에서의 반인륜적인 범죄로 기소되었고, 안팔에서의 학살 혐의는 사실상 재판을 받지 못하는 것과 다름 없었다. 결국 사담 후세인은 안팔 학살 재판 진행 도중 두자일 학살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2006년 12월 30일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5. 과정[편집]


이라크 특별재판소는 1988년1991년 쿠르드족항쟁이 일어나자 이를 진압하기 위해 발생한 대규모 학살, 반인륜적 범죄들을 조사했고, 이어 1988년 쿠르드족을 상대로 한 반인륜적 범죄 혐의로 타허 타우피크 알 아니후세인 라시드 알 티크리티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또한 1991년 쿠르드족을 상대로 한 반인륜적 범죄 혐의로 무자힘 사압 핫산과 바르잔 압둘 가포르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2005년 5월 재판관들은 1990년 키르쿠크 시와 페이트 시에서 쿠르드족을 대량 학살했다는 혐의로 아야드 푸타이 알 라위와 무흐센 케더 아바스, 왓반 이브라힘 알 티크리티, 바르잔 이브라힘 알 티크리티, 라테프 누사이프 자심 등을 심문했다. 6월 말 1991년 쿠르드족 학살 사건에 대해 타리크 아지즈를 조사했다. 또한 재판부는 안팔 학살 사건 당시 사린겨자 가스 등을 비롯한 화학 무기 사용에 대해 알리 하산 알 마지드파한 주부리, 사베르 압델 알 두리를 심문했다.

거기에 이라크 재판소는 이라크 발라드[20]에서의 종교 탄압에 대해서 아와드 하메드 알 반다르, 압드 알 가니 알 가후르, 마흐무드 파이지, 하심 하산 알 마지드, 하산 아제바 알 우바이디 등을 심문했다.

2005년 9월 6일 이라크 TV에서 방영된 인터뷰에서, 당시 이라크 대통령이었던 잘랄 탈라바니[21]는 판사들이 '사담 후세인 정권 동안 (사담 후세인과 그의 측근들이) 대량 학살과 다른 범죄를 지시했으며, 사담 후세인이 사형 받아야 마땅하다'라는 말을 했다고 주장하였으나 이틀 후 사담 후세인의 변호사 측이 이를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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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하는 고소인들의 모습.
왼쪽부터 각각 압둘라 모하마드 후세인, 살라 가더 아민, 아사드 무함마드이다.
2006년 6월, 이라크 특별재판소는 사담 후세인과 6인의 공동 피고인들이 2006년 8월 21일부터 안팔 학살과 관련된 재판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06년 12월, 사담 후세인과 6인의 공동 피고인들은 안팔 작전 중 대량 학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알리 하산 알 마지드를 비롯한 6인의 공동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고, 특히 알리 하산 알 마지드는 쿠르드족아시리아인의 마을이 이란 요원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파괴 명령을 내렸다고 말하며 자신의 행동이 전혀 잘못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06년 12월 30일, 피고인들 중 한 사람인 사담 후세인두자일 학살/재판에서의 판결로 사형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2006년 12월 21일에 안팔 재판이 중단되었지만 2007년 1월 8일부터 다시 재개되었다. 사담 후세인에 대한 나머지 혐의들은 공소권 없음으로 기각되었고, 알리 하산 알 마지드를 비롯한 6인의 공동 피고인들이 다시 재판을 받게 되었다.

6. 판결과 의의[편집]


2007년 6월 23일, 알리 하산 알 마지드술탄 하심, 후세인 라시드 알 티크리티가 안팔에서의 쿠르드족 대량 학살 관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이 선고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30일 이내에 처형당하는 것이 예정되었다. 파한 주부리와 사베르 압델 알 두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며, 타허 타우피크 알 아니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게 되었다. 이 판결에 후세인 라시드 알 티크리티와 술탄 하심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우리는 도둑과 범죄자에 맞서 조국을 지켰기 때문에 처형당하고 있다. 우리는 이라크를 지켰다."라고 외쳤다.

알리 하산 알 마지드는 전쟁 범죄와 반인륜적인 범죄(특히 고의적인 살인, 체포, 몰살), 대량 학살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고, 이 밖의 여러 혐의들로 징역 7년에서 최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고, 시아파들을 살해한 혐의로 두번째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끝내는 2010년 1월 17일 4번째의 사형선고를 받은 뒤, 그로부터 8일 후인 2010년 1월 25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술탄 하심과 후세인 라시드 알 티크리티는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당시 이라크 대통령이었던 잘랄 탈라바니가 '(이들은) 군인으로써 군사적인 명령을 따를 의무가 있었다'며 사형 집행에 반대해 결국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다. 술탄 하심2020년 심장마비로 감옥에서 옥사했으며 후세인 라시드 알 티크리티는 2021년 기준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파한 주부리사베르 압델 알 두리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는데 그 중 파한 주부리는 복역 중 만성 질환으로 감옥에서 옥사했고, 사베르 압델 알 두리는 2021년 기준 현재까지 복역 중이다. 타허 타우피크 알 아니는 이 재판의 피고인들 중 유일하게 불기소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두자일 학살 재판이 사담 후세인바르잔 이브라힘 알 티크리티를 사형시키기 위해 이루어진 재판인 것처럼 안팔 학살 재판은 실질적으로 알리 하산 알 마지드, 즉 케미컬 알리를 사형시키기 위한 재판이었다. 시아파들과 쿠르드족들 입장에서 시아파 교도들과 쿠르드족들을 대량 학살했던 알리 하산 알 마지드는 철천지 원수였는데 당시 이라크 정부의 주요 세력은 시아파 초강경파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앞서 언급된 잘랄 탈라바니 당시 이라크 대통령은 쿠르드족으로 알리 하산 알 마지드에 대한 분노로 그를 죽이기 위해 벼르고 있던 상황이다. 그리하여 그는 사형 집행을 당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어떻게 넘어가게 되었는지는 불명이나 알리 하산 알 마지드의 사망 직후 그가 사용하던 화학 무기들은 다에쉬에게 넘어가 테러에 이용되었다.

6.1. 반응[편집]


사형 집행 후 국제앰네스티의 말콤 스마트 중동북아프리카 국장은 "이번 사형집행은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사행집행"이라며 비판했다.

[공소권없음] A B C 두자일 학살/재판에서 사형 선고가 내려졌고 2006년 사형이 집행됨에 따라 판결을 받지 않음.[1] 술탄 하심, 후세인 라시드 알 티크리티, 파한 주부리, 사베르 압델 알 두리, 타허 타우피크 알 아니, 사담 후세인[2] 2021년 4월,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사망.[3] 수석 판사 외의 판사 4인은 공개되지 않았다.[4] 본래 기소되었던 사담 후세인사형 당해 공소권이 없으므로 사담 후세인을 제외한 나머지 6인이 최종적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5] 당시 이라크 대통령 질랄 탈라바니와 부통령 타리크 알 하셰미가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사형 집행 명령에 서명하기를 거부하면서 실제로 집행되지는 않았다.[6] 풀네임은 알리 하산 압드 알 마지드 알 티크리티.[7] 2010년 1월 15일, 사형 집행.[8] 풀네임은 술탄 하심 아흐마드 알타이.[9] A B 형집행대기자 신분.[10] A B 복역 중 사망.[11] 실제로 술탄 하심사담 후세인에게 위협을 여러 번 느꼈다고 회고했으며, 이라크 전쟁 직전에는 가택연금을 당하기까지 했다.[12] 풀네임은 후세인 라시드 모하메드 알 티크리티.[13] 이슬람 율법에 따라 70세 이상의 노인은 사형시킬 수 없음.[14] 풀네임은 파한 무츨라크 살레 알 주부리.[15] 풀네임은 사베르 압델 알 아지즈 알두리.[16] 시아파들이 주로 사는 이라크의 지역.[17] 풀네임은 사담 후사인 압드 알 마지드 알 티크리티.[18] 2006년 12월 30일, 두자일 학살/재판에서의 사형 선고로 사형이 집행되어 안팔 학살에서는 공소권 없음.[19] 사형을 선고 받은 타리크 아지즈압둘 바키 알 사둔에게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것도 이 율법 때문이다. 결국 타리크 아지즈는 감옥에서 복역하다 옥사했고, 압둘 바키 알 사둔은 현재까지도 복역 중이다.[20] 이라크의 도시 중 하나. 음악의 장르 중 하나인 발라드와는 동음이의어이다.[21] 쿠르드족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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