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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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아바스 왕조 20대 칼리파. 칼리파로서 정치와 종교적 우두머리 노릇을 한 마지막 아바스 칼리파로 일컬어진다.
2. 생애[편집]
909년 12월 20일 바그다드에서 18대 칼리파 알 무크타디르와 동로마 제국에서 끌려온 여노예 잘문의 아들로 출생했다. 4살 때 명목상이나마 이집트와 마그레브 총독위를 하사받아 후견인 무니스 알 무자파르와 함께 푸스타트로 보내졌다. 927년 부왕과 무니스가 충돌하자 그와 와지르 알리 이븐 무클라는 둘 사이를 중재하려 하였으나 소용없었고, 결국 932년 알 무크타디르는 무니스에 패해 살해되었다. 무니스는 그를 칼리파로 옹립하려 했지만 대신들의 반대에 못 이겨 그의 삼촌 알 카히르를 새 칼리파로 선출했다. 알 카히르는 칼리파가 되자마자 그를 연금했고, 무니스는 933년 살해되었다.
934년 4월 24일, 알리 이븐 무클라가 근위대를 매수한 뒤 쿠데타를 일으켜 술에 취해 있던 그를 체포한 뒤 실명형에 처한 후 궁궐 깊숙한 곳에 가두었다. 이후 무클라에 의해 구출되어 새 칼리파로 옹립되었다. 이후 아바스 궁정의 권력은 무함마드 이븐 야쿠트와 무클라가 양분했다가, 935년 4월 야쿠트가 해임되면서 무클라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935년, 한발리파 광신도들이 바그다드에서 소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거리에서 사람들을 습격하고 민가에 강제로 들어가서 술병을 부쉈으며, 악기를 부수고 가수를 학대하고, 거래의 세부사항을 조사하고, 경쟁자들을 폭행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당국은 이에 대해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한편, 각지의 지방 총독들은 아바스 왕조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들은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고 세금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가로채 정부를 무력화시켰다. 무클라는 이들을 무력으로 응징해 통제권을 확보하기로 하고, 함단 왕조가 지배하는 북부 메소포타미아(자지야)를 첫 번째 목표로 선택했다. 935년, 무클라는 함단 왕조의 모술을 공격해 일시 점령했다. 그러나 함단 에미르 나시르 앗 디울라 하산의 반격으로 패배했다. 정부는 어쩔 수 없이 그의 함단 지배권을 인정하는 대신 7만 디나르의 연공과 바그다드 및 사마라의 밀 공급을 받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936년, 무클라는 와시트에서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총독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 토벌을 시도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을 쓰는 바람에 재정 위기가 발생했다. 결국 무클라는 무함마드 이븐 야쿠트의 동생 알 무자파르에 의해 체포되어 지하 감옥에 투옥되었다. 그 후 그는 무클라의 정적이었던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를 신설 직책인 아미르 알 우마라 (장군 중 장군)로 임명해 질서 유지를 맡겼다. 총독들은 이웃 지방의 총독조차 제대로 이기지 못하는 칼리파를 대놓고 무시했고, 이로 인해 아바스 왕조의 권력은 바그다드와 그 근방에만 미쳤다.
그는 금요 예배를 진행하고, 정무에 참가하고, 빈민 구제에 나서며, 탐관오리들을 제어하려 한 마지막 칼리파였다. 그러나 아미르 알 우마라의 이름이 금요 예배에서 칼리파와 함께 거론될 정도로 권위가 추락했다.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는 근위대 (후자리야)를 학살하여 칼리파에 충성하는 마지막 군사 집단을 소멸시키며 바그다드 정부의 전권을 차지하는 듯 하였으나, 938년 부하 바즈캄이 도전하며 내전이 터졌다.
무함마드는 바즈캄의 바드다드 진군을 저지하기 위해 이라크의 수로들 중 최대 규모인 나흐라완 운하를 막아 홍수를 일으켰다. 이로 인해 이라크의 농업은 향후 수세기간 쇠퇴했다.[1]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부질없었고, 938년 8월 바즈캄이 바그다드로 입성해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를 몰아냈다. 그는 바즈캄을 아미르 알 우마라로 임명했다.
938년 가을, 그는 바즈캄과 함께 모술 원정에 나서 도시를 점령했으나, 주민들이 반발한 데다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가 카르마트와 연합해 바그다드를 위협하자 연공 납부를 대가로 회군했다. 한편 라이크는 시리아 북부의 지배권을 받는 대가로 바그다드에서 회군했다. 이후 바즈캄은 동방의 부와이 왕조에 맞서 바스라의 군벌 하산 알 바리디에게 와시트를 할양, 와지르로 임명하고 그 딸과 결혼해 동맹 관계를 맺었다. 하산은 후제스탄의 부와이 세력을 축출하고 서부 이란을 공격했으나 격퇴되었다. 이후 바즈캄과 하산은 대립했고, 940년 8월 말 바즈캄이 하산을 와지르에서 해임하고 와시트를 점령했다. 이와 동시에, 바그다드는 한발리파의 난동으로 혼란에 빠졌다.
이렇듯 정국이 혼란한 와중이던 940년 12월 12일, 알 라디가 사망했다. 바즈캄은 와시트에 머무르면서 비서를 바그다드로 보내 아바스 귀족 회의를 소집한 뒤 알 라디의 형제 알 무타키를 새 칼리파로 세웠다. 그가 사망할 당시에 이집트의 익시드 왕조, 자지라의 함단 왕조, 아제르바이잔의 살라르 왕조, 이란의 부와이 왕조와 사만 왕조, 아라비아의 카르마트 등 압바스 조의 강역은 이미 시리아-이라크 일대로 축소되었다. 그마저도 시리아 북부는 무함마드 이븐 라이크, 이라크 내에서도 와시트는 바즈잠, 바스라는 하산 알 바리디가 사실상 개인 영지로 지니고 있었고, 중앙 정부의 권위는 땅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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