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포 성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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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알레포 7.2.jpg

1. 개요
2. 역사
3. 현재
4. 갤러리


1. 개요[편집]


قلعة حلب
영어 Citadel of Aleppo
시리아 알레포의 중심가 언덕에 있는 거대한 요새. 알레포 성채는 기원전 16세기에 처음 지어졌고 서기 12세기에 이르기까지 보강된 순수 아랍 성채이다.


2. 역사[편집]


파일:알레포 시타델 2.jpg

BC10세기에 이르러 신 히타이트인들이 이곳에 신전을 세우면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고, 헬레니즘 통치를 거쳐 1269년과 1400년 몽골군이 침략했을 때에는 궁전과 요새로 사용하였다. 몽골의 티무르는 이곳을 함락하고 퇴각할 때 성채를 불태워 버리기도 했다.

지금의 성채의 구조와 디자인은 살라딘의 삼남이자 알레포의 아미르였던 앗 자히르 가지가 만든 것이다. 시내보다 50m 위에 있는 알레포 성채는 멀리서 보기만 해도 당당하다. 알레포 성문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다. 7개의 무지개다리가 놓인 해자는 깊이가 20m이고, 폭은 30m이다. 외문을 지나고 다시 내문을 통과하여 왼쪽으로 꺾어진 곳에 아랍 군대의 건축물 형태인 성문이 있다. 육중한 나무문 위에 철판으로 무늬를 만들어 붙였다. 그리고 그 위의 문설주에는 네 마리의 뱀이 서로를 물고 물리는 형상으로 조각되어 있다. 주랑을 조금 걷다가 성 밖으로 나가는 문 위를 보면 두 마리의 사자가 내려다보고 있다. 하나는 웃는 모습이고 하나는 우는 모습의 사자 머리이다. 현무암 벽돌에 조각된 두 사자 머리는 BC 10세기경의 히타이트 사원의 일부였다. 성채의 개축할 당시에 그것을 그대로 두고 공사를 했던 것이다.

총을 내놓고 쏠 수 있는 총안을 설치한 성벽이 둘러싸여 있고 가파른 성의 외벽에 탑들이 세워져 있다. 끓는 기름을 적에게 부을 수 있는 구멍도 나있다. 성 안에는 배수로가 있고 미끄러짐을 방지하기 위한 홈도 파여 있다. 오른쪽으로 13세기에 건설된 왕궁이 자리하고 있다. 많은 부분이 복구되었고 모스크, 하맘(목욕탕)등 많은 시설이 남아 있다. 대리석에 무늬를 새긴 벌집 모양의 현관부터 다채색의 기둥, 통풍 및 환기, 조명시설까지 고려하여 만들어 놓았다. 15~16세기 맘루크 시대에 만들어진 왕좌도 세련되게 복구되었고 원형 극장이 복원되어 있다. 완만한 경사의 원형 극장도 있다. 페르시아의 군대가 알레포에 도착했을 때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방어벽에 고민하던 페르시아군은 한 가지 묘책을 내어 군사들에게 염소 가죽을 씌워 염소로 위장하여 성벽을 통과하게 하여 성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 후에도 동로마 제국이 여러 번의 공략이 시도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게 되자 동로마 황제는 12,000명의 알레포 포로들을 성벽 앞에서 잔인하게 살해하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 동안에도 알레포 성채는 함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1259년 알레포에 들어온 몽골족에 의해 성벽과 내부가 파괴되었는데 뒤따라 침략한 부족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되고 말았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면서부터 이 성채는 군사적인 용도가 아닌 그저 허물어진 성채로 남겨 지게 되었다. 그러나 1828년에 일어난 지진으로 알레포 성채는 약간의 외곽 성벽을 남겨 놓고 모두 무너지게 되었다. 가장 꼭대기에 세워진 이브라함 모스크에는 높이가 21m의 미나렙이 있고 이곳의 옥상에서 알레포 시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3. 현재[편집]


파일:알레포 시타델 현재.jpg

파일:Aleppo-Citadel-8-900.jpg

시리아 내전을 겪으면서도 다행히 상당 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내부가 심하게 파손된 크라크 데 슈발리에보다는 나은 편.

다만 2023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으로 이 성채도 크게 파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갤러리[편집]


파일:Citadelle_d'Alep.jpg

파일:Citadel-by-Watchsmart_big-1.jpg
성채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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