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프라이

덤프버전 :


알렉산더 프라이의 역임 직책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요한 포겔
(2004~2007)

알렉산더 프라이
(2007~2011)


괴칸 인러
(2011~2016)


알렉산더 프라이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리그 1 심볼.svg




베스트팀
파일:1200px-Logo_UNFP.svg.png






FC 아라우
Fussball-Club Aarau

파일:7fd3f5b613.jpg

이름
알렉산더 프라이
Alexander Frei

출생
1979년 7월 15일 (44세)
스위스 바젤슈타트바젤
국적
[[스위스|

스위스
display: none; display: 스위스"
행정구
]]

신체
179cm / 체중 74kg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FC 벤닝 (1987~1988 / 유스)
FC 아슈 (1988~1995 / 유스)
FC 바젤 (1995~1997 / 유스)
FC 바젤 (1997~1998)
FC 툰 (1998~1999)
FC 루체른 (1999~2001)
세르베트 FC (2001~2003)
스타드 렌 FC (2003~2006)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2006~2009)
FC 바젤 (2009~2013)
감독
FC 루체른 (2013~2014 / 스포팅 디렉터)
FC 바젤 (2015~2020 / 유소년 감독)
FC 바젤 (2018 / 감독 대행)
FC 빌 1900 (2020~2021)
FC 빈터투어 (2021~2022)
FC 바젤 (2022~2023)
FC 아라우 (2023~ )
국가대표
86경기 42골[1] (스위스 / 2001~2011)

1. 개요
2. 클럽 경력
3. 국가대표 경력
4. 지도자 경력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1. 개요[편집]


스위스 국적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이다.


2. 클럽 경력[편집]


1997년 FC 바젤에서 데뷔한 뒤, FC 툰, FC 루체른 등으로 팀을 옮겼다. 그러다 2001년 세르베트 FC에 입단한 이후 활약이 두드러졌고, 2003년 프랑스 리그 1스타드 렌 FC으로 이적해 자신의 첫 해외 이적을 이뤄냈다. 이후 2004-05 시즌 20골을 넣어 득점왕에 올랐으며, 2006년 월드컵이 끝난 뒤 독일 분데스리가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 이적 첫 시즌인 2006-07 시즌엔 32경기에서 16골을 넣으며 성공적으로 안착했으나, 이후 부상으로 하향세를 탔다.

2009-10 시즌엔 자신의 친정팀인 FC 바젤로 이적이 합의됐고, 국가대표팀 동료인 마르코 슈트렐러 등과 한께 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2010-11 시즌에 27골을 득점해 득점왕을 차지했고, 2011-12 시즌엔 팀을 9년 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으로 이끌었다.

바젤 시절 2011년 맨유와의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에서 1골씩 집어넣으며 1승 1무를 이끌어서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줘, 당시 박지성 출전을 기다리던 수많은 국내 맨유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또한 16강에선 바이에른 뮌헨을 만나 1,2차전 모두 출전하였으나 1차전 1-0 신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2] 원정에서 프랑크 리베리에게 왼쪽 측면이 완전히 뚫리면서 0-7로 대패해 탈락했다.

UEFA 유로파 리그/2015-16 시즌 홍보대사였다. 그의 손에서 엄청난 매치업들이 많이 나왔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3.1. UEFA 유로 2004[편집]


국가대표팀에선 UEFA 유로 2004에 출전했으며,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스티븐 제라드에게 침을 뱉어 유럽 축구 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3.2. 2006 FIFA 월드컵 독일[편집]




2006 독일 월드컵에선 총 2골을 넣어 팀의 16강 진출에 크게 공헌했는데, 그 중 첫 골은 토고와의 경기에서 넣었다. 문제는 두 번째 골이었는데, 한국과의 경기에서 오프사이드 논란이 있었던 골을 넣어 당시 주심이었던 오라시오 엘리손도와 더불어 당시 한국인들에게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 아울러서 이 일 이후로 우리나라의 축빠들은 스위스라는 나라 자체도 몹시 증오했었다.

당시 프라이가 플레이를 지속한 것을 봤을 때 단순히 부심의 오프사이드 깃발을 못 본 것으로 추측되며, 주심이 휘슬을 불지 않아 플레이를 멈출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부심의 오프사이드 판정은 이호의 발에 맞은 것을 못 본 것이므로 오심이다. 사실 심판 휘슬이 날때까지 플레이를 진행해야 하는데 부심이 깃발 들었다고 플레이를 중단하고 손드는 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여러나라 축구팀의 문제점이며, 프라이의 골은 정상적으로 골로 기록되었다. [3]

어쨌든 프라이 자체는 사실 정상적으로 플레이 한 것이고, 욕 먹을 이유는 없긴 했다.


3.3. UEFA 유로 2008[편집]


파일:0013729ece6b09b57e1f09.jpg
파일:sport-graphics-2008_698936a.jpg

UEFA 유로 2008 개막전인 체코와의 경기에서 즈데넥 그리게라와의 볼 경합 도중 무릎 부상을 당했는데, 잔여 경기에서 못 뛸 걸 직감했는지 서럽게 울며 교체돼 나가는 바람에 울보로 통했다. 이에 국내 축빠들은 '유로 2004에서 스티븐 제라드에게 침밷더니 꼴 좋다', '월드컵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골 넣더니 꼴 좋다', '더 쳐 짜버려라', '아예 부상당하고 은퇴해라' 며 비난했다.


3.4.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편집]


2010 남아공 월드컵에도 나왔지만 그닥 활약하지 못했고, 이 대회 우승팀 스페인을 이겼지만 1승 1무 1패 조 3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4. 지도자 경력[편집]



4.1. FC 빌 1900[편집]


2020년 9월 7일, FC 빌 1900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21년 11월 9일, FC 빌 1900을 떠났다.#


4.2. FC 빈터투어[편집]


2021년 12월 20일, FC 빈터투어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4.3. FC 바젤[편집]


2022년 5월 23일, FC 바젤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년 계약.#

2023년 2월 7일, 성적 부진으로 인해 경질되었다.#


4.4. FC 아라우[편집]


2023년 6월 12일, FC 아라우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년 계약.#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5.2. 개인 수상[편집]




6. 여담[편집]


  • 이름이 이름인지라 한국인들은 이 선수에게 달걀 프라이 드립을 치곤 한다. 참고로 frei는 독일어로 '자유로운', '비어있는', '무료의'라는 뜻이다.


[1]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최다 득점자.[2] 뮌헨입장에서 이 패배는 슈바인슈타이거의 부상으로 인해서 팀 전체의 경기력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의 패배였다. 지금은 월드 클래스인 토니 크로스도 있긴했지만 젊었기 때문에 당시엔 기량이 지금같지는 않았다.[3] 다만 부심이 깃발을 든 상황이 아니라 외려 그 직전 상황이 오히려 오프사이드였음에도 심판진이 이를 판정하지 못한 상황이므로 프라이의 득점 상황 자체가 오심에 의한 것이긴 하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8 01:54:36에 나무위키 알렉산더 프라이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