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라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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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라미레스의 수상 경력/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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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야쿠르트유신 스왈로즈.png 파일:09giants.pn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2001
2009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08~2009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와다 가즈히로
(주니치 드래곤즈)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03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최다안타 1위
시미즈 다카유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알렉스 라미레스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마 시게노부
(히로시마 도요 카프)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07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최다안타 1위
아오키 노리치카
(야쿠르트 스왈로즈)

알렉스 라미레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우치카와 세이이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09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최다안타 1위
우치카와 세이이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맷 머튼
(한신 타이거스)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0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홈런왕
토니 블랑코
(주니치 드래곤즈)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블라디미르 발렌틴
(야쿠르트 스왈로즈)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03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타점왕
마쓰이 히데키
(요미우리 자이언츠)

알렉스 라미레스
(야쿠르트 스왈로즈)


가네모토 도모아키
(한신 타이거스)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07~2008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타점왕
타이론 우즈
(주니치 드래곤즈)

알렉스 라미레스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요미우리 자이언츠)


토니 블랑코
(주니치 드래곤즈)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10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타점왕
토니 블랑코
(주니치 드래곤즈)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아라이 타카히로
(한신 타이거스)

파일:센트럴 리그 로고.svg 2009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타격왕
우치카와 세이이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알렉스 라미레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아오키 노리치카
(야쿠르트 스왈로즈)



파일:A.Ramirez.jpg

알렉산데르 라몬 "알렉스" 라미레스
Alexander Ramón "Alex" Ramírez
アレックス・ラミレス

생년월일
1974년 10월 3일[1] (49세)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국적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
display: none; display: 베네수엘라"
행정구
]]
→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2]
신체
180cm, 100kg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1년 아마추어 자유계약(CLE)
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8~2000)
피츠버그 파이리츠 (2000)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1~2007)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8~2011)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012~2013)
군마 다이아몬드 페가수스 (2014)
지도자
군마 다이아몬드 페가수스 타격코치[3] (2014)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감독 (2016~2020)

1. 개요
2. 프로 입단 전
3. 선수 시절
4. 플레이 스타일
5. 지도자 시절
5.1. 2016 시즌
5.2. 2017 시즌
5.3. 2018 시즌
5.4. 2019 시즌
5.5. 2020 시즌
6. 감독 스타일
6.1. 재평가?
7. 기타
8. 선수 시절 성적
9. 감독 시절 성적




1. 개요[편집]


베네수엘라 출신의 전직 프로야구 선수이자, 일본프로야구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前 감독.

일본프로야구에서만 10년을 넘게 뛰며 일본의 야구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선수로, 일본에서는 라미짱(ラミちゃん)이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외국인 선수 최초의 명구회 회원(타자로는 2천안타 이상)이 되었으며 대부분의 NPB 외국인 타자 누적 기록에서 터피 로즈와 함께 톱을 양분하고 있다.

일본 통산 기록은 .301-.336-.523 OPS .859, 2,017안타, 380홈런.


2. 프로 입단 전[편집]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에서 45분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촌락에서 태어났다. 이곳의 인구는 대략 200명인데 그중 150명 가량이 라미레스 일족의 마을이다.

어린 시절을 상당히 힘들게 보냈다. 유년기를 보낸 마을은 전기와 수도가 설치된 지역이었으나 물은 일주일에 3일 정도 밖에 사용하지 못했고 전기 역시 비싼 전기료 탓에 많이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끔 TV 볼 때나 썼지 웬만해선 전기를 쓰는일이 드물었다고. 기본적인 주거환경도 이정도인데 야구를 하기에도 주변환경이나 인프라가 녹록치 않은건 당연했다. 이렇다 할 야구장비도 없어서 5살때 우유팩으로 만든 글러브와 양말을 말아서 만든 공으로 야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8살이 되던 해 리틀야구팀에 스카우트되어 리틀리그에 입단. 본격적으로 야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14살이 될 무렵엔 투타에서 두각을 보일만큼 성장했다. 여담으로 축구실력 또한 출중해서 야구부 내에서는 펠레라고 불리기도 했다. 15살이 되던 해에는 온전히 야구에 집중하기 위해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이후 베네수엘라 선수권 대회에서 기존의 외야를 보던 2명의 선수가 부상으로 빠지는 바람에 외야수로 출전. 한 경기에서 2홈런을 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때마침 그 경기를 지켜보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스카우트진은 라미레스의 잠재력에 주목하여 그를 데려가기로 한다. 그렇게 그는 1991년에 아마추어 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 입단하게 되었다.


3. 선수 시절[편집]



3.1. 메이저리그/마이너리그 시절[편집]


인디언스와 계약한 첫 해에는 도미니카의 유스 아카데미에서 뛰었고, 1993년 루키리그에서 타율 .270를 기록했다. 이후 성장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1998년 AAA에서 타율 .299 34홈런 103타점을 기록하며 그해 9월에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입성하게 된다. 9월 19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 대타로 출전하면서 메이저리그 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다. 9월 21일 뉴욕 양키스전에서는 데뷔 첫 선발 출전을 하였고 5회초에 앤디 페티트를 상대로 빅리그 첫 안타를 기록했다. 이해 시즌 성적은 8타수 1안타가 전부.

이듬해인 1999년에는 출전 기회가 어느정도 생겼다. 6월 17일 경기에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고 9월 6일 볼티모어 오리올스전에서는 동점 투런홈런, 3타점 3루타를 치며 5타점 경기를 펼치기도 하였다. 특히 이날 3루타를 기록했을때 칼 립켄 주니어는 "아주 좋은 스윙이었다. 정말 잘 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1999년 성적은 타율 .299 3홈런 18타점 출루율 .327 장타율 .474를 기록했다. 준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 클리블랜드 외야진은 워낙 호화로운 라인업 그 자체이기도 하고 라미레스가 적은 기회속에서 낸 성적이 주전 외야수들을 밀어낼법한 성적까지는 아니었기에 벤치 멤버에 머무를수밖에 없었다.

2000년 시즌 도중 피츠버그로 이적하게 된다. 이적 처음에는 선발로 기용되기도 하였으나 타격코치가 요구하는 타격폼이 몸에 잘 맞지 않았다. 결국 타격코치와의 마찰로 인해 피츠버그에서도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이적 전보다 성적이 더 나빠졌다.[4] 이후에는 타격코치에게 찍혔는지 벤치를 더 자주지키게 되었고 결국 2000년 시즌 성적은 타율 .247 9홈런 30타점 .285 .432로 마감하게 되었다. 두 팀을 거쳐가며 200타석이 넘는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끝내 메이저리그에 정착하는데는 실패했다.

2000년 시즌이 종료된 후 라미레스에게 타이밍 좋게 야쿠르트에서 오퍼가 오게되고 라미레스는 일본행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 선택은 라미레스의 야구 인생을 바꾼 선택이 되었다. 이때가 2000년 11월 1일이었다.


3.2. 야쿠르트 스왈로즈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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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7번 타자로 일본무대에 첫발을 내딛었다. 입단 첫 해 29홈런 88타점의 준수한 성적을 내며 중장거리 타자로서의 성공적인 연착륙에 성공하며 이나바 아츠노리, 로베르토 페타지니, 후루타 아츠야, 이와무라 아키노리 등이 포진한 강타선의 한 축을 이루면서 2001년 야쿠르트의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다. 2002년 홈런은 24개로 줄었지만, 타율과 출루율을 조금씩 높이면서 안정적인 성적을 보여준다. 2003년에는 140경기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189안타 40홈런 349루타 124타점으로 당시 일본 이적 첫 해였던 타이론 우즈와 함께 공동 홈런왕의 영광을 누린다. 페타지니나 후루타가 떠난 이후에도 꾸준히 3할 타율, 30개 언저리의 홈런, 100타점 이상을 올리는 그야말로 꾸준한 성적을 찍으며 야쿠르트의 명실상부한 중심타자로 활약한다. 8년 연속 100타점은 오 사다하루의 기록을 1년 넘는 일본프로야구 최장 연속 기록. 2007년에는 204안타를 치면서, 일본프로야구 최초로 한 시즌 200안타를 넘긴 우타자가 되었다.[5]


3.3.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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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시즌 종료 후 고액 장기계약을 원하는 자신의 의지와 구단의 뜻이 어긋나자 다년계약을 해 줄 다른 팀을 찾았다. 그러나 요미우리 자이언츠 외에 선뜻 나서는 팀이 없었기 때문에 원래 조건으로 내걸었던 연 7억 엔을 5억 엔으로 대폭 낮추고 요미우리로 이적한다.[6][7]

2008년 144경기 전 경기 출장에 45홈런, 338루타, 125타점, .319의 타율로 생애 최고의 한 해를 보내며 부동의 요미우리 4번타자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장타력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이면서 일본 성공시대를 창조하는 이정표를 찍게 된다[8]. 이 해 센트럴리그 MVP로 선정되는 영광도 누리게 된다. 라미레스의 이적으로 이승엽은 4번타자 자리를 내줘야 했고, 이후 이승엽의 부진이 계속되는 와중에 라미레스는 2008-2009년 2년 연속 세리그 MVP를 차지하면서 21세기 요미우리를 대표하는 4번타자의 자리를 확고히 했다.

2010년에 외국인 재적년수를 채워서 외국인 선수 제한에서 풀렸을 때 선수등록명을 라미짱으로 하려고 했다고 한다. 하라 타츠노리 감독역시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정도. 그러나 구단측이 강력히 막아서 무산됐다.[9]

공인구가 바뀐 것이 원인인지 나이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2011시즌을 2할 7푼 9리 23홈런으로 마무리, 4년 연속 3할-30홈런 달성에 실패했다. 그래도 11년 연속 20홈런은 이어갔지만 수비 강화와 세대교체를 도모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측이 수비력에 문제가 있었던 라미레스를 결국 방출시켰고 라미레스도 이를 받아들였다. 그래도 아직 홈런을 칠 수 있는 파워를 갖춘데다가 연차가 차서 일본인 선수 취급을 받아 용병 선수 제한을 받지 않으므로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퍼시픽리그에서 콜이 올 수 있다는 예상이 있었다.


3.4.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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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주포 3루수 무라타 슈이치가 FA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건너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서 공격력 보강 차원에서 라미레스를 영입했다. 비록 FA로 풀린 선수들을 서로 영입한 거지만 묘하게 트레이드를 한 셈이 돼버렸다.[10] 어쨌든 2012 시즌부터는 인터뷰도 일본말로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고[11] 덤으로 라미짱을 등록명으로 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였지만 등록명은 그대로 본명대로 유지되었다.

2012년 5월 17일 친정팀 요미우리와의 경기에서 미-일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그리고 2013년 4월 6일, 원래 친정팀인 야쿠르트와의 경기에서 일본프로야구 외국인선수로서는 최초로 일본프로야구 통산 2000안타를 달성하였다.[12] 1656경기 만에 2000안타를 달성한 것은 '타격의 신' 카와카미 테츠하루 이후 두 번째로 빠른 페이스라고. 또한 통산 2000안타를 달성으로 일본프로야구 레전드들의 모임인 명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가입했다. 일본프로야구를 존중하며 열심히 뛴 덕택에 이견 없이 명구회에 가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2할대를 쉬이 넘기지 못하는 부진한 타격을 보이면서, 나이저 모건이나 타무라 히토시 등에 밀려 거의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2013년 9월 27일, 전력외 통보를 당하며 방출당했다.


3.5. 은퇴[편집]


2014년에는 독립리그 팀인 군마 다이아몬드 페가수스에서 플레잉코치로 뛰었다. 2014년 4월 7일에는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지명타자로 영입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10월 14일, 라미레스는 구단을 통해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일본프로야구의 대표적인 배드볼 히터였다. 괜찮은 컨택과 장타 생산능력으로 통산 0.301의 타율, 2000안타와 380홈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적극적인 타격으로 매시즌 평균 20개에서 30개 정도의 볼넷을 기록하고 삼진도 80~100삼진을 기록해 볼삼비와 타율 대비 출루율은 좋지 못했고 삼진도 꽤 당하는 편이였다. 그리고 극악의 수비와 주루능력으로 승리기여도를 깎아먹었고 명성과 좋은 클래식 스탯에 비해 세이버스탯은 상대적으로 낮은편이다.


5. 지도자 시절[편집]


은퇴 이후에는 오릭스 버팔로즈의 어드바이저로 활동하였으며, 2015년 10월 19일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제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로서 일본프로야구 팀의 감독이 되고 싶다던 꿈을 이루게 되었다.


5.1. 2016 시즌[편집]


2016 시즌 개막 후 초반 성적은 신통치 않은 편. 믿을만한 선수들이 원체 부족한 게 요코하마의 팀 사정이라지만, 아직 초보 감독으로서 호되게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이후 안정된 투수력, 츠츠고 요시토모가 대폭발한 타선의 힘을 앞세워 급격히 반등하며 전반기가 끝난 시점에서 리그 3위를 달리는 중. 그러나 현재 센트럴리그 2~6위팀이 1,2승 차이로 팽팽한 상태이므로 아직 방심은 금물이다. 그래도 팀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이 높게 평가되어 연임이 결정되었다.

9월 중순인 현재 4위 야쿠르트와 4경기 차 3위 자리를 유지하면서 10년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에 9부 능선을 넘었다. 9월 19일 센트럴리그 우승팀 히로시마와의 홈경기에서 3대 1로 승리, 2005 시즌 이후 11년만의 A클래스 확정[13] 및 창단 첫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기세를 타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센트럴리그 2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상대로 2승 1패를 기록하며 팀을 히로시마 도요 카프과의 파이널 스테이지로 이끌었다. 그러나 히로시마의 압도적인 힘에 밀려 1승 4패로 패하면서 일본시리즈 진출엔 실패, 그리고 시즌 종료. 하지만 그동안 가을야구는 커녕 최하위나 밥먹듯 찍던 DeNA를 이 정도로까지 끌어올린 건 높이 평가할 만하다.


5.2. 2017 시즌[편집]


2017년에도 팀을 공동 2위로 이끄는 등 감독으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 중이다. 특히 지난 시즌 성공적으로 주전에 정착했던 중견수 쿠와하라와 유격수 쿠라모토가 17시즌 초 지하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타격력을 선보이며 팬들에게 원성을 듣는 와중에도 쿠와하라와 쿠라모토를 굳건히 믿고 기용하며 쿠와하라는 센트럴 리그 7월의 타자 부문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고 쿠라모토도 타격감이 점점 살아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과감히 시도한 '8번 투수 - 9번 쿠라모토'가 성공적인 효과를 보였다.

그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후반기 약진으로 잠시 4위로 내려가는 등 부진한 듯한 모습도 보였으나, 시즌 말까지 치열한 상위권을 향한 싸움 끝에 결국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결정지으며 구단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가을야구 진출까지 결정지었다. 그 후 히로시마를 꺾으며 19년만에 일본시리즈까지 올라갔다. 근데 일본시리즈 상대는 명실상부 2010년대 최강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였다.

감동의 드라마를 쓰며 힘겹게 올라온 첫경기에선 그간 너무많은 힘을 쏟았는지 무기력하게 패하고 말았다. 비록 이 당시 대패를 했으나, 이후에는 모든 경기에서 대등하게 경기를 펼치면서 2-4로 아쉽게 패하며 시즌을 마감하였다. 다만 모두가 피스윕이나 1-4로 일방적인 패배를 예상했음에도 끝까지 명승부를 연출하며 패배를 하고도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5.3. 2018 시즌[편집]


2018시즌 초반엔 17년만의 8연승을 내달리는 등 훌륭한 시즌 출발을 보였으나 교류전을 기점으로 서서히 하향세를 타기 시작하며 한때 5~6위를 오갈정도로 답이 없었지만 어찌저찌 다른 팀들도 동반 추락을 한 덕분인지 진흙탕 싸움을 진행중이다.

분명 라미레즈 감독은 시즌 초반 뛰는 야구를 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까고 보니 띄우면 넘어가는 홈구장 특성을 살린 홈런야구를 하고 있다. 홈런야구도 나쁘진 않지만 문제는 희대의 영양실조 야구라는 것. 최종기록 베이스타즈의 팀 홈런은 181개로 세리그 1위. 꼴찌인 한신 타이거스의 2배가 넘는 갯수이다. 그럼에도 팀 득점은 세리그 전체 꼴찌다. 많은 홈런의 수에 비해 득점효율은 심각하게 떨어진다는 소리. 4명의 20홈런+ 타자를 보유하고도 팀 타율과 출루율이 리그 꼴찌라, 홈런을 아무리 쳐봐야 쓸어담을 주자가 없어서 솔로홈런만 잔뜩 치고 침묵하는 리그 꼴찌 수준의 득점력을 보여주는데다[15][16] 올 시즌 들어 급격히 무너진 마운드가 환장의 콜라보를 보이며 여름기간동안 좋지 못한 성적을 보여주었다.

마운드쪽에선 시즌 내내 부진하던 이마나가 쇼타를 계속 기용하면서 작년 쿠와하라와 쿠라모토처럼 부활하기를 바라는 뉘앙스를 보였지만 이마나가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결국 불펜으로 강등당했다. 지난 시즌까지 성과를 거뒀던 믿음의 야구가 실패했지만 시즌을 치르는 동안 이 믿음의 야구를 여러 선수들에게 시전하다보니 팬들 사이에선 불만이 많이 나왔었다. 동반으로 부진하던 이시다 켄타 역시 믿음에 부응하지 못하며 불펜과 선발을 오가는 중이다. 하마구치 하루히로가 17년 좌완 트리오 중에선 그나마 나은 모습이긴 했지만 17년만큼의 모습은 아니었다. 외인 용병인 조 윌랜드와 에디 바리오스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시즌내내 속을 썩였다. 1년차 루키인 아즈마 카츠키만 바라볼 정도로 선발 마운드의 무게가 매우 헐거워진 셈. 2018년 디엔에이 투수들 중에서 100이닝 이상을 소화한 선수가 아즈마 한 명 뿐일 정도로 마운드가 개판 5분전이었다. 시즌 중반부터 기량이 월등히 좋아진 타이라 겐타로가 아니었다면 가을 막바지 치열한 3위 경쟁이 불가능했을 만큼 선발 마운드가 답이 없었다.

불펜에선 미완의 대기이던 미시마 카즈키가 마당쇠로 변신해 전천후로 활약했고 17시즌 부진한 미카미 토모야가 어느정도 부활하는데 성공했다. 육성출신의 스나다 요시키 역시 안정적으로 불펜에 정착하는데 성공. 외인 불펜 듀오인 스펜서 팻튼과 에드윈 에스코바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야마사키 야스아키는 말해봐야 입만 아픈 활약을 보여주며 구원왕을 차지하였다.

9월들어서는 타이라 겐타로, 이노 쇼이치가 선발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꺼져가던 가을야구의 불씨를 살리고 있다. 타선도 호투하는 마운드에 보답하듯 7,8월 국밥만 말던 모습과는 달리 적재적소에 득점을 해 주는 모습. 좀 더 분발한다면 3년 연속 A클래스 진입이 가능해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 3연패를 당하며 B클래스를 찍고 말았다. 역시 발목은 잡은건 득점권 부재와 마운드의 부진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꼴찌팀인 한신을 상대로 부진한것도 상당히 타격이 컸는데 대 한신전 전적이 8승 17패다. 그야말로 탈탈 털린 셈. 한신전에서 반타작만 했어도 3년연속 A클래스가 가능했을 정도이니 한신포비아 극복도 2019시즌 최대의 과제 중 하나이다.[17]


5.4. 2019 시즌[편집]


시즌 전 1월 23일 1년이 걸린 국적 취득 절차가 마무리되어[18] 일본으로 최종 귀화했다. 이름은 따로 고치지 않고 원래 이름 그대로 사용한다.

개막이후 15경기까지는 그럭저럭 순항했으나 주니치전을 기점으로 연패에 빠지더니 10연패라는 대참사를 당하며 시즌 초반부터 매우 힘겹게 팀을 이끌고 있다. 10연패 기간동안 일본 넷상에선 라미레즈의 뒤를 이을 차기 감독감을 언급하는 등 2016~17년의 영광은 이미 다 깎아먹은지 오래. 옆 리그의 이구치 타다히토 못지않은 양아들 챙기기는 2019시즌들어 더욱 심해져 팬들의 속을 터트리고 있다. 블론세이브를 수 차례 저지른 스펜서 팻튼을 계속 기용하거나, 2할대를 쉬이 넘기지 못하며 최악의 타격 슬럼프에 빠진 미야자키 토시로를 엔트리에서 제외하지도 못할 망정 타순 조정만 하면서 계속 기용하거나, 등판때마다 실망스러운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던 쿄야마 마사야에게 무한한 기회를 주기도 했다.

지난 시즌 팀의 발목을 잡았던 변비야구 또한 2019년 들어 더욱 심해졌고 불펜도 믿을 투수가 마무리 야마사키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수준이라 시즌 시작부터 삐걱대기 시작했고 일찌감찌 최하위로 떨어졌다. 거기다 매년 고질적인 팀의 문제점이던 한신 포비아를 극복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심해져 올해도 변함없는 한신의 호구노릇을 하고있다.

그러나 5월에 야쿠르트가 구단 최고 기록인 16연패를 1970년 이래 또 한번 찍는 대형사고 DTD를 저지른 틈을 타 상승세를 타며 최하위 탈출에 성공하고 4위까지 올라섰다. 그리고 상승세 계속 타더디 21년만에 리그 우승도 도전할수 있게 되었었으나 요미우리가 하라 감독의 부활로 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렇지만 라미레즈 감독도 본때를 보여주며 리그 2위를 확정지었다. 1998년 리그 우승 이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페넌트레이스 최고 성적!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하라 다쓰노리 감독의 요미우리를 꺾고 일본시리즈에 진출해서 2017년에 보여줬던 센트럴 리그 최고의 하극상을 다시 한번 보여줄수 있을지 기대된다. 일본시리즈에 진출하면 유력한 상대팀 후보인 1위 세이부와 2위 소프트뱅크랑 만날 확률이 큰데 둘다 붙어봤다. 세이부랑은 1998년에 이겼고 소프트뱅크는 2017년에 만나서 졌는데 공교롭게도 둘다 시리즈 6차전에서 승부가 났다. 세이부한테는 4승2패로 이기고 소프트뱅크한테는 4승2패로 졌다. 하지만 클라이맥스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올시즌 DeNA를 압도했던 한신 타이거스를 만나 1승 2패로 탈락해 일본시리즈 진출의 꿈은 사라지고 말았다. 특히 이번 시리즈는 본인의 투수 교체 실패로 인해 패배를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컸다.

그러나 조기 탈락에도 불구, DeNA 구단에서 그간의 공로를 인정해 라미레스 감독과 계약을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5.5. 2020 시즌[편집]


개막이후 치러진 홈 9연전에서 6승 3패의 성적을 내며 나쁘진 않은 시즌 출발을 보여주었다. 특이사항으로는 6월 26일 이후로 승과 패를 반복하는 행보를 보였는데 이걸 16경기 연속으로 기록하며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16경기 동안 이어진 오델로의 저주가 끊긴 이후에는 6연패를 당하고 있는중인데 문제는 주니치~요미우리전 기간동안 패배하는 과정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선수기용과 경기운영을 보이며 팬들의 원성을 사고있다.

연패의 시작점인 주니치 원정 2번째 경기에선 하마구치 하루히로가 2실점 역투를 펼쳤으나 타선은 고작 1점을 내는데 그쳤다. 특히 8회초 1사 만루에선 호세 로페스가 태업이 의심되는게 아닌가 싶은 어이없는 삼구삼진으로 분위기에 찬물을 제대로 끼얹었다. 경기 결과는 2:1 석패.

다음날에는 초반부터 흐름을 내 주기 싫다는 형식적인 이유를 앞세워 1이닝 1실점을 기록중이던 젊은 선발투수 나카가와를 1회만에 강판시키는 강수를 두었지만 타선은 상대선발 오카노에게 3병살을 헌납하는 등 무득점으로 막혔다. 그러는동안 주니치 타선에 8점을 갖다바치며 8:0 완패.

홈으로 돌아와서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요미우리와의 첫 경기에서는 이노 쇼이치가 2실점으로 역투했으나 매정한 타선은 또다시 1득점에 그치며 2:1 강우 콜드 패배를 당했다. 특히 5회말 투수인 이노의 타석에서 대타를 내거나 번트 사인이라도 났어야 했다는게 중론인데 이 당시 벤치는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결국 이노는 삼진으로 물러났고 5회말 요코하마는 득점없이 물러났다. 5회말 투수 타석에서 어떠한 지시도 내리지 않은 것은 에모토 타케노리도 지적했을만큼 의문점이 많은 부분이었다. 에모토 타케노리, 5회말 공격에서 의문 "투수한테 강공..."

더욱 어처구니 없는건 이날 경기가 끝난 뒤 라미레스의 코멘트였다. 이노에게 번트를 지시하지 않은것은 '토바시라의 주력이 느려서'라는 황당무개한 답변을 내놓았다.라미레스 감독, "토바시라가 주자" 병살 위험을 피하기 위해 5회말 강공 지시 투수의 번트가 정교하지 못하다는것을 전제로 하고 번트를 잘 못 댔을때 다리가 느린 토바시라가 2루에서 쉽게 객사당할 확률이 높다라는 것을 감안한 답변이지만 이날은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기에 찬밥 더운밥을 가려서는 안 되었다. 강우 콜드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1점차로 지고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점수를 짜내려고 했어야 했는데 이날 라미레스는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9회까지 경기를 할 줄 알았다'는 어이없는 코멘트를 내 놓았는데라미레스 감독, 5회말 투수타석에서 강공 지시에 "9회까지 경기를 할 줄 알았다" 예보에 따르면 이날 요코하마의 날씨는 8시 이후부터 강한 비가 내릴 예정이었다. 기상예보는 챙겨보는지도 의문이 들 정도였다. 상대팀의 하라 타츠노리 감독은 날씨를 예측하고 1점을 어떻게든 짜내려고 했던 부분과 대조되며 더더욱 까였다. 요미우리 행운의 승리... 날씨를 읽은 하라 감독의 숙련된 지휘

둘째날 경기에선 이전 2경기 동안 공략당하기 시작한 앙헬 산체스에게 완봉승을 헌납할 뻔 했다. 타선은 늘 그렇듯 병살타나 삼진으로 혈을 끊어먹었고 이번에는 수비까지 말썽이었다. 사노는 2회초 어이없는 송구 실책으로 선취점을 헌납했고 소토는 아마추어 야구에서나 볼 법한 2루 수비로 뒷목을 잡게 하였다. 에이스인 이마나가가 4실점을 하는 와중에도 6회까지 버텼고 계투진도 9회까지 무실점으로 분전했지만 타선은 8회까지 계속해서 0득점에 막혔다. 9회말에 2점을 내며 추격을 시작했지만 이미 많이 늦은 뒤였다. 결국 이날도 4:2 패배. 이날을 기점으로 이제껏 쌓아둔 승패마진을 다 깎아먹고 전적은 마이너스로 돌입했다.

주말시리즈 마지막 경기는 7경기만에 선취득점을 하며 연패 탈출에 안간힘을 썼으나 무려 4개의 병살타를 양산하며 고작 3득점에 그쳤다. 마운드에선 타이라가 6이닝 2실점으로 분전하고 에스코바, 팻튼이 1이닝씩을 잘 막아냈지만 개막 이후 계속해서 불안한 피칭을 보인 마무리 야마사키가 동점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그리고 벤치는 야마사키를 내리고 나올때마다 결과가 좋았던 적이 손에 꼽는 쿠니요시를 올렸고 그 쿠니요시는 아니나 다를까 오카모토에게 시원한 역전 투런을 얻어맞고 역전을 허용했다.

9회말에 2루타와 볼넷으로 마지막 찬스를 잡았으나 얌전히 번트나 시켜도 모자랄 판에 또다시 강공으로 밀어붙였고 결과는 병살타였다. 결국 마지막 기회나 다름없었던 무사 1,2루의 찬스는 무득점으로 끝났고 그와 동시에 경기도 5:3으로 패배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언론, 야구 원로, 팀 OB는 라미레스의 경기 운영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우도 카즈히코 "나쁜 흐름은 벤치가 만들었다"
사사키 카즈히로 "동점 허용 이후 마무리 야마사키 강판... 절대 있어선 안될 일"
우에하라 고지 "마무리 중도교체, 좋은 생각이 아니야"
사인 이해도가 떨어져서 작전수행을 못했다는 '내막'... 라미레스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운영으로 5연패
투수가 왜 번트를 대지 않지? DeNA 라미레스의 운영에 의문의 목소리가

위와 같이 경기 내용도 내용이지만 선수 기용면에서도 말이 많이 나오는 중이다. 앞서 언급했던 나카가와의 경우에는 1이닝만에 내려버리고 칼같이 1군에서 말소시켰지만 팀의 또다른 젊은 좌완 사쿠라이는 계속해서 1군에 머물러있다. 포수 이토 히카루는 이마나가와의 호흡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경기 초반에 교체를 시킨것도 모자라 다음날엔 아예 2군으로 내려버렸다. 그리고 노쇠화의 기미가 뚜렷한 호세 로페스는 '7월달엔 항상 잘 쳤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계속해서 주전 1루수 자리를 보장받는 중이고 나올때마다 거의 매번 타선의 혈만 끊어먹고있다. 수 년간 팀에서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한 오토사카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1군에서 제 4의 외야수로 중용되고있다. 쿠니요시의 경우에는 지난해에도 좋지 못한 성적을 올렸고 올해도 신통치않은 성적을 내는 중인데 패전처리로 쓰지는 못할 망정 동점, 리드 상황에 자꾸 올려서 경기를 말아먹고 있다. 타이라의 사인 이해력에 의문... 그래서 사인 안 냈다. 이제는 선수를 믿지도 못한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 라미레스는 매년 구단과의 계약에서 장기적인 다년 계약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구단에서는 이미 미우라 다이스케에게 2군 감독을 맡게 하면서 차기 감독으로 올릴 플랜을 준비중인데다 지금의 상황이 지속되어 팀 성적이 지금보다 더 떨어진다면 올해가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 분명히 라미레스 체제하의 요코하마는 만년 최하위에 머무르던 지난 과거와는 달라졌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를 통해 쌓아올린 평판은 2020시즌을 치르는 동안 처참히 깎여나가는 중이다. 현지 팬들은 요코하마 관련 기사가 올라오면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내며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보내지 않고 뛰지 않고 수호신을 믿지 않고... 감독 해명에도 팬들은 "끔찍한 변명" 며칠동안 팬들의 불만이 거듭되자 급기야 이런 기사까지 나오고 말았다.

6연패를 끊은 이후에는 3연승을 달리며 승률을 다시 5할대로 맞춰놓았다. 이렇게 부정적인 여론이 잠잠해지나 싶었지만 7월 26일 경기에서 또다시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이날 7이닝까지 히로시마 타선을 무실점으로 막고 있던 타이라 켄타로를 8회에도 올렸는데 정작 타이라는 힘이 빠졌는지 연타를 허용하면서 실점을 하고 말았다. 시즌 최다 이닝이 7이닝이었던 타이라에게 8이닝을 맡긴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었는데 결국 타이라는 1실점을 한 채 8회 1아웃 1, 3루 상황에서 강판되었다. 뒤이어 올라온 이시다 켄타는 후속타자 마츠야마를 희생플라이를 허용했지만 아웃 하나와 맞바꾸긴 했다.

그러나 벤치는 이시다를 내리고 이틀전에 히로시마 타선에 난타를 당한 스펜서 패튼을 올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만다. 결국 이 결정은 최악의 판단이 되고 말았는데 패튼은 올라오자마자 도바야시 쇼타, 아이자와 츠바사에게 백투백 홈런을 얻어맞고 연속안타까지 얻어맞으며 이닝을 끝내지를 못했다. 부랴부랴 미시마 카즈키가 위기 상황에 올라와 니시카와 료마를 잡아내면서 급한 불을 끄긴 껐다.

하지만 9회에 야마사키 야스아키가 만루홈런 포함 5실점으로 거하게 털려버리며 순식간에 6점차 리드가 단 2이닝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9회말 뒤늦게 만루찬스를 만들고 추격을 시작했지만 이미 형세가 많이 기운 뒤였고 결국 6:10 참패로 경기는 끝이 났다.

이 말도 안되는 참패로 인해 그간 3연승을 하면서 누그러졌던 라미레스 감독의 경기운영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좋았었던 경기 흐름을 자신의 안일한 판단으로 망쳐놓았으니 언론과 팬들의 부정적인 여론을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히로시마전 충격의 패배 이후 결국 마무리 교체라는 강수를 두었다. 기존의 마무리였던 야마사키를 중간계투로 돌리고 미시마 카즈키를 마무리로 전환하였는데 계투진을 재정비한 이후로는 팀이 다시 안정세에 접어들면서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8월 5일 주니치전에서 감독 통산 300승을 달성하였다.

하지만 계속된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그에 따른 이탈로 인해 전력이 갈수록 약해져가고 있어서 5할 유지에만 급급하고 치고 올라가지를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근 1개월 만에 선두 요미우리와 3연전을 벌였으나 무참히 스윕으로 깨졌다. 1, 2경기는 나름 접전을 벌인 끝에 아쉽게 졌다고는 하지만 3연전의 마지막 경기는 일본내에서도 적잖은 비판의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이유인 즉슨 원래 로테이션대로라면 이노 쇼이치의 선발 등판일이었지만 성적이 좋았던 히로시마전 표적 등판을 위해 로테이션을 조정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때문에 또다른 선발 자원인 마이클 피플즈가 선발로 나오는게 이상적이었겠지만 피플즈는 전날 경기에서 불펜으로 나왔다.

결국 라미레스 감독은 불펜데이를 선언하고 셋업 역할을 하고 있던 스펜서 패튼을 전면에 내세웠으나 패튼은 2회도 채 끝내지 못하고 9실점(7자책)으로 탈탈 털렸다. 이날 패튼의 투구내용을 보면 1회 3실점은 사노 케이타의 포구 실책과 나카지마 히로유키가 친 뜬공의 중계 플레이가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쉴드의 여지가 있지만 2회의 피칭은 도저히 쉴드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일본 넷상에서는 패튼을 욕하기보다는 동정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오히려 이러한 기용을 감행한 라미레스 감독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갔다.

결국 이날 경기는 13:4로 참패했고 시리즈를 스윕당함과 동시에 요미우리와의 승차는 5.5게임에서 8.5게임차이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순위도 한신에 1게임 뒤진 3위로 추락. 3연전 내내 해설위원, 평론가들은 라미레스의 경기 운영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었고 3연전 마지막날엔 그 강도가 더욱 높아졌다. 와다 카즈히로는 "우승할 생각이 없는거냐"며 직언을 날렸고, 특히 해설위원이면서 팀의 OB인 사사키 카즈히로는 이틀 연속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이후에는 5할 승률이 붕괴되었고 한때 4위까지 추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다 10월 6일. 올 시즌을 마친 뒤 퇴임하는것이 결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링크 하지만 해당 기사가 뜬 이후 미하라 구단 대표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며 선을 그어서 거취가 불분명했지만 10월 23일에 퇴임하는것이 확실하게 정해졌다는 기사가 다시금 올라오면서 퇴임이 확정되었다. 라미레스 본인이 올해 결과를 내지 못한것에 책임을 지고 구단에 먼저 퇴임 의사를 내비쳤다고 한다.

부임 이후 만년 하위권이던 팀을 중상위권으로 바꾸는 큰 업적을 이루어냈지만 더 높은 곳으로는 끝내 올라가지 못한채 첫 감독직을 마무리짓게 되었다. 라미레스의 뒤를 이어 부임할 감독은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미우라 다이스케.


6. 감독 스타일[편집]


쓸놈쓸, 믿음의 야구에 기반한 운영을 하되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작전이나 선수교체, 기용 등을 선보인다. 데이터보다는 자신의 감각과 느낌에 의존하는듯한 경향이 두드러지며 경기가 접전으로 치닫는 상황에서는 유연한 운영을 잘 해내지 못하는 편이라 아깝게 경기를 내 주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밀어주는 선수에겐 상당한 기회를 제공해주며 설령 그 선수가 못하더라도 살아날때까지 계속해서 기용해준다. 보통 연차가 쌓인 선수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여기에 속하는 선수가 2020시즌 기준 호세 로페스, 오토사카 토모, 쿠니요시 유키[19] 등이다.[20] 자신이 밀어주는 선수들은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매년 바뀐다.

믿음의 야구를 통해 2017시즌 상당한 재미를 보았는데[21] 다만 이 믿음이 지나칠 정도로 과도해져서 경기 하나를 통으로 망쳐버린 좋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쓸놈쓸, 믿음의 야구라는 지도방식을 가지고 있다 보니 선수기용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발생한다. 자신이 밀어주는 선수만 바라보니 2군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하는 선수들이 자연스레 묻혀버리거나 설령 1군에 올라오더라도 2~3경기, 심하면 1경기만에 곧바로 말소되는 사례도 있으며 경기 초반부터 급작스럽게 선수를 교체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이 때문에 언론에서 라미레스 비정한 팀 운영, 라미레스 비정한 선수 기용, 라미레스는 폭군 등의 부정적인 기사가 종종 올라온다.

변칙적인 경기 운영을 자주 선보인다. 일본에선 거의 쓰이지 않은 8번/투수 타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중계진들조차도 당황스러워하는 타이밍에 투수를 교체시키거나 파격적인 야수 기용을 보여준다. 이러한 틀을 깨는 도전적인 경기 운영 방식은 야구인들과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린다.[22][23]

라미레스 본인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기용이라고는 얘기하지만 막상보면 데이터를 참고한다던가 이런식으로 기용한다는 느낌보다는 도박성 기용같은 느낌이 강하다. 이같은 변칙적인 운영이 2017시즌처럼 잘 먹힌 연도가 있는 반면 2018시즌같이 실패했던 기용이 많았던 시즌도 있다.


6.1. 재평가?[편집]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인 미우라 다이스케 체제로 맞이한 2021시즌 초반이 매우 부진하자 팬들 사이에선 라미레스가 재평가 되고 있다. 라미레스 감독 시절에도 좋지 않았던 부분들이 있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팀이 풍비박산나지는 않았을거라며 아쉬워하는 팬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타팀에서도 감독이 교체된 첫 해 부터 흔히 나타나는 모습이다. 물론 2021시즌의 요코하마가 최악의 출발을 보이는건 맞으나 시즌 시작 전부터 여러 악재가 있었고, 미우라의 과도한 경기 개입이 아닌 선수들의 부진과 투타 부조화로 팀이 추락한거라 무작정 미우라를 보고 무능한 감독이라 비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그리고 라미레스 감독 1년차때도 3, 4월 성적이 상당히 나빴다. 재임 당시였던 2016년 4월 30일의 승패 마진은 -9에다 리그 순위도 꼴찌였다. 그 후로는 팀을 잘 정비해 최종적으로 팀을 리그 3위에 올려놓고 10년에 걸친 암흑기를 끊어냈다. 미우라 체제에서의 요코하마도 이러지 말라는 법은 없으며 아직 4월도 채 끝나지 않은 마당에 벌써부터 전임자와 비교하며 평가를 하기에는 이르다고 보여졌으나 계속된 성적부진에 점차 비교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라미레스는 기존의 일본식 야구관에다 메이저리그식 운영을 도입하여 자신만의 야구 관념을 가미한 변칙적이고 기발한 전략을 확고하게 밀어붙인다는 독자적인 컬러가 있었다. 그런 컬러에 맞게 2번에 강타자를 배치하거나 타격이 나쁘지 않은 투수의 8번 타순 배치 등 팀 타격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미우라 체제에서는 이렇다 할 팀 컬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팀 성적이 부진한것과는 별개로 뚜렷한 자신만의 야구관이 드러나있지 않고 있다. 사실 미우라는 투수코치 시절부터 육성의 방향성이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적이 있는 양반이다. 이런 사람이 감독에 취임했으니 무색무취의 팀 컬러가 되는것은 당연지사. 결국 5월 14일에 팀 OB인 사사키 카즈히로에게서 색깔이 있는 야구를 했으면 한다는 쓴소리까지 나오고 말았다.


7. 기타[편집]


파일:external/blog-imgs-43-origin.fc2.com/imageCAYKQILI_20110714223113.jpg
  • 독특한 홈런 세레모니가 인상적인 선수. 일본 진출 첫해부터 꾸준히 매년 레퍼토리를 바꿔왔다. 세러모니 소스는 일본 유명 게닌들의 동작들. 2001~2002년까지는 1개의 모션만 취했지만 이후 2-4개로 늘어났다. 각 모션은 각기 다른 코미디언들로부터 차용한 것으로, 이들 동작을 연결하여 연속으로 취한다. 홈경기에는 팀의 마스코트와 함께 세레모니 액션을 취하고, 원정에서는 혼자 한다. 요미우리로 와서는 팀이 이기고 있을 때와 리드당하고 있을 때의 세러모니를 각각 다르게 하고 있다.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자 일부 연예인들은 자신의 액션을 라미레스가 차용해 주기를 공개적으로 요청한 적도 있다. 구단이 팬 기고로 세러모니 아이디어를 모집하기도 했다.
홈런 세레모니의 영향으로 타석에서 위협구 세례를 끊임없이 받았지만 결코 굴하지 않고 세레모니를 했다. 위협구가 날아와도 절대로 안 뛰쳐나가고 허허 웃고 가는 걸로 유명하기도 한데, 타이론 우즈를 필두로 한 외국인 선수들 중 상당수가 심리전의 일환 겸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수단으로 위협구나 도발이 나올 경우 의도적으로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아지던 때라 희귀 케이스로 주목받았다.

  • 일본 TV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꿈은 언젠가 일본 프로야구 감독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심지어는 일본국대 감독이 되는것이 자신의 꿈이라면서 일본으로 귀화하였다. 자신의 일본 성공 비결을 '일본 야구를 존경하고, 동료들을 많이 사귀고, 신문을 통해 상대 선수들의 자료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09년 8월 경에 '일본에서 성공하는 법'을 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이러한 라미레스의 태도답게 47세까지 야구를 하겠다는 뜻을 보이기도 했다.

  • 타석에서는 매서운 눈빛을 보이지만, 평상시에는 매우 온화한 신사라고 한다. 낙천적인 성격이어서 더그아웃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며, 요미우리에 온 지 1년만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기무라 타쿠야, 사카모토 하야토 등과 함께 자주 밥을 먹으러 다닌다는 것을 보면 인간관계 형성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을 알 수 있다.

  • 2009시즌에는 이승엽 앞에서 자주 아웃되어 이닝 종결자가 되어버리거나, 느린 발 때문에 이승엽의 타점을 날려먹는다는 이유로 소위 승빠라 불리는 이승엽의 극성 팬들에게 욕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승엽과 라미레즈의 사이는 정말 좋아서 둘 중 하나가 홈런을 치면 같이 세레머니를 했다. 아마도 라미레즈가 꼬드긴 걸로 보이는데 이 두 사람은 외국인 선수 주제에 원어민 뺨치는 일본어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24] 일본 선수들을 많이 당황하게 했다고.[25]

  • 같은 베네수엘라 출신 선수인 로베르토 페타지니처럼 아주 연상의 부인이 있었고 2014년에 이혼했다고 한다. 헌데 그 부인이 전 남편에게서 얻은, 라미레스보다는 10살 정도 어린 아들이 한 명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들이 자식을 낳아서 할아버지라 불러야 할지 미묘해지게 생겼다. 공교롭게도 이 둘은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한솥밥을 먹은 시기가 있다. 다만 아들은 1군 기록 없이 2군에서도 10점대 평균자책점을 찍고, 이후 독립 리그에서 1년간 뛰고 은퇴했다.[26] 오쿠다 히데오의 에세이집 '야구장 습격사건'에서 잠시 이 둘의 결혼 사정이 언급되기도 했다.

  • 2015년 4월에 7살 연하의 일본인 여성과 재혼하였고 슬하 2남 1녀를 두고 있다. 첫째 아들이 다운증후군이 있어서 다운증후군 관련 이벤트나, 자립을 돕는 단체도 설립하였다.



  • 감독 사퇴 후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개설 일주일만에 구독자 수가 10만명을 돌파하였고,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야구인답게 야구에 관한 여러 내용들을 주로 업로드하며 현재 진행중에 있는 방출 선수 프로 재입단 프로젝트 역시 꾸준히 업로드 되고 있다.[27]

  • 위에 유튜브 채널 개설과 라미쨩이라는 별명으로 인해 인해 일본내 트위터에서 웃긴 해프닝이 하나있었는데 일본 유명 일러스트레이터가 라미쨩 유튜브 전혀 업데이트 되지 않았잖아라고 글을 올렸는데 다른 일러스트레이터가 그 글을 보고 이름이 라미인 버츄얼 유튜버로 착각하는[28] 일이 있었는데 이후 그 인연을 바탕으로 그 버츄얼 유튜버가 속한 회사의 방송찬조 출연하기도 했다.

  • 그 외에도 은퇴 후엔 인기를 바탕으로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는데 현역 시절부터 그 특유의 덩치에 안 어울리는 커여움과 유머감각으로 인기였던 선수답게 고양이 예능에 'no cat no life', 'I love my cat'이라 쓰인 티셔츠를 입고 나오는 등 죽지 않은 유머감각을 보여주는 푸근한 아저씨로 예능에서 인기도 얻으며 즐겁게 살고 있다.

8. 선수 시절 성적[편집]


역대 기록(MLB)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98
CLE
3
8
1
0
0
0
1
0
0
0
3
.125
.125
.125
.250
-0.1
1999
48
102
29
6
1
3
11
18
1
3
26
.299
.327
.474
.801
0.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00
CLE/PIT
84
240
56
11
2
9
26
30
2
12
49
.247
.285
.432
.716
-1.0
MLB 통산
(3시즌)

135
350
86
17
3
12
38
48
3
15
78
.259
.293
.437
.730
-1.0
역대 기록 (NPB)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01
야쿠르트
138
547
143
23
0
29
60
88
1
27
132
.280
.320
.496
.816
2.1
2002
139
569
159
25
0
24
65
92
0
22
146
.295
.325
.475
.800
3.4
2003
140
614
189
34
3
40
105
124
4
34
104
.333
.373
.616
.988
6
2004
129
557
160
30
2
31
79
110
2
23
118
.305
.341
.547
.888
2.8
2005
146
629
168
19
1
32
70
104
5
23
121
.282
.315
.478
.793
2.2
2006
146
636
161
28
2
26
79
112
0
19
104
.267
.289
.449
.739
0.7
2007
144
628
204
41
3
29
80
122
0
23
106
.343
.371
.569
.940
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08
요미우리
144
600
175
28
0
45
84
125
1
39
90
.319
.373
.617
.990
4.8
2009
144
608
186
35
0
31
66
103
4
21
88
.322
.347
.544
.891
3.2
2010
144
606
172
28
0
49
93
129
1
21
98
.304
.338
.613
.951
3.3
2011
137
515
133
12
1
23
39
73
2
30
72
.279
.322
.453
.775
1.9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2012
DeNA
137
504
143
25
0
19
40
76
0
18
60
.300
.333
.473
.806
1.1
2013
56
139
24
0
0
2
6
14
0
8
20
.185
.230
.231
.461
-1.4
NPB 통산
(13시즌)

1744
7152
2017
328
12
380
866
1272
20
308
1259
.301
.336
.523
.859
35.1


9. 감독 시절 성적[편집]


역대 감독 전적
연도
소속팀
경기수



승률
정규시즌
포스트시즌
2016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143
69
3
71
.493
리그 3위
CS2 탈락
2017
143
73
5
65
.529
리그 3위
JS 패배
2018
143
67
2
74
.475
리그 4위
-
2019
143
71
3
69
.507
리그 2위
CS1 탈락
2020
120
56
6
58
.491
리그 4위
-
총계
692
336
19
337
.499
JS 1패 1CS2 1CS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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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타 중남미 선수 출신들이 그렇듯 알렉스 라미레스 감독도 생년월일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있다. 클리블랜드 시절 인연으로 요코하마 임시코치로 온 오마 비즈켈이 반진담으로 나이를 속였다고 이야기하면서 의혹이 떠올랐다. 의혹 원본 사이트,의혹 번역.[2] 2018년 1월 22일 일본국적 취득 수속을 밟고 있다고 발표했다. # 이후 서류절차가 길어져 해를 넘겨 딱 1년이 지난 2019년 1월 23일에 최종적으로 일본 귀화 절차가 마무리되어 일본 국적을 얻게 되었다.[3] 선수 겸임[4] 피츠버그 이적 전 성적 타/출/장 .286 .316 .482 5홈런 12타점. 이적 후 성적 타/출/장 .209 .254 .383 4홈런 18타점[5] 일본프로야구 전체로서는 스즈키 이치로, 아오키 노리치카에 이은 3번째. 일본프로야구에서 단일시즌 200안타를 넘긴 우타자는 라미레스 이후에도 맷 머튼 한 명밖에 배출되지 않았다.[6] 대폭 낮췄다기보단, 본래 5억엔 정도를 염두에 두고 7억엔으로 높여 부른 것에 가깝다. 원래 협상할 땐 본래 요구사항보다 좀 더 높은 조건을 부르는 것이 정석. 7억엔은 여태까지 일본야구사상 아무도 받아본 적이 없는 금액이고 라미레스측도 이걸 모르지는 않았을 테니.[7] 아울러, 절친했던 후루타 아츠야 감독의 퇴진도 이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8] 정확히는 장타력 자체가 늘었다기보단 홈런이 잘 나오는 도쿄돔을 홈으로 사용하는 요미우리로 팀을 옮기면서 장타가 늘어난 것으로 보는 시선이 일반적이였지만 메이지진구 구장은 홈런 팩터가 도쿄돔보다 높게 나오는 일본 최고의 타자친화 구장인데다가 라미레스가 있던 2007년까지는 외야가 지금보다도 더 좁았다[9]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프로야구 팀 중에서도 보수적인 구단으로 유명하다. 외국인 선수는 일본어 실력에 관계없이 통역을 필수로 붙이는데, 성실한 성격에 일본어도 잘 구사하는 라미레스나 이승엽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외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는 닛폰햄 시절 줄곧 길러왔던 수염을 요미우리에 와서 깨끗히 밀었고,(다만 이건 구단측에서 입단 당시 특별혜택으로 수염 안 깎아도 된다고 했지만 교진의 일원이 되었으니 자기가 팀에 맞춰야 한다고 스스로 깎은 사례.) 오오무라 사부로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부터 10여년 이상 써왔던 가타카나 등록명(サブロー:사부로)을 요미우리에 와서 버려야 했다. 그러나 이런 전통을 깬 선수가 있으니 바로 2022년 오타 타이세이이다. 교진 전통상 풀네임을 써야하는 전통이 있지만 이 선수는 하라 감독이 같은 소속팀 오우타 타이세이랑 오오타류 이둘이 이름이 너무 햇갈리다고 해서 타이세이로 바꾸라고 요구를했다.[10] 요코하마는 이전에도 주니치 드래곤즈로 이적한 주전 포수 타니시게 모토노부의 공백을 매우기 위해 주니치의 전 주전 포수였던 나카무라 타케시를 영입한 적이 있었다.[11] 요미우리는 외국인 선수가 아무리 일본어를 잘해도 일본어로 인터뷰를 할 수 없다. 터피 로즈가 요미우리 시절 코치한테 욕먹은 게 빡쳤는지 인터뷰에서 일본어로 요미우리를 미친듯이 깐 바람에 파장이 꽤 컸고 이후 외국인 선수가 일본어로 인터뷰하는 게 금지되었다. 참고로 일본어로 요미우리를 깠던 로즈는 시즌이 끝나고 방출된 뒤 오릭스로 가자마자 2년 연속 40홈런을 쳐냈다.[12] 참고로 알렉스 라미레스 이전에 외국인 선수 최다 안타를 기록했던 이가 바로 백인천이다. 20시즌 동안 1831안타를 기록했다.[13] 단 2005년에는 센트럴리그에 아직 플레이오프 제도가 도입되지 않아서 가을야구는 치를 수 없었다.[14] 2018시즌 타율 .219 출루율 .324로 쿠와하라와 더불어 센터라인 야수들 중 가장 높은 출루율을 찍었다.[15] 일단 볼넷을 잘 골라 나가는 타자가 많지 않다. 3할 후반대의 높은 출루율을 자랑하는 선수는 츠츠고 요시토모 1명뿐이며, 로페즈와 미야자키는 컨택은 되지만 두명 다 배드볼히터 유형의 타자들이라 타율대비 출루율이 높지 않다. 그나마 공 좀 보는 카지타니는 부상으로 시즌을 거의 날려먹었고 시바타는 공을 나름대로 보긴하지만 공을 맞추지를 못해서[14] 출루율 자체가 낮다. 결론적으로 상위타선은 그런대로 3할대 출루율을 보여줬으나 하위타선이 개막장 타율과 출루율을 찍는 덕분에 리그 타율, 출루율 꼴찌라는 불명예스러운 위업을 달성하였다.[16] 미야자키는 득점권 타율이 시즌 타율과 비슷했음에도 불구하고 28홈런 71타점이라는 성적을 찍었다. 17년보다 13개나 많은 홈런포를 쏘아올리고도 타점은 고작 9개가 늘어난 셈. 츠츠고는 득점권에서 .237라는 초라한 성적을 보인 탓에 38홈런이나 치고도 89타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그나마 타점페이스가 좋던 로페즈는 교류전때 입은 다리 부상의 여파로 페이스가 꺾여 77타점을 올리는데 그쳤고 소토는 5월부터 시즌을 시작해서 95타점을 올렸으니 그나마 가장 나은 타점 생산 능력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17] 반대로 요미우리와의 상대전적은 15승 1무 9패로 센트럴리그 5개팀들 중 가장 전적이 좋다. 히로시마전 11승, 야쿠르트전 10승, 주니치전 15승으로 한신을 제외한 4개팀을 상대로는 상대전적 10승을 찍었다.[18] 이 직후 2019년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가 일어났다.[19] 쿠니요시는 라미레스가 나가자 얼마 못 가 쫓겨나듯 롯데로 트레이드되었다.[20] 신인급 중에선 고졸 좌완 투수 사쿠라이 슈토가 라미레스의 총애를 듬뿍 받고 있다.[21] 시즌 중반까지 부진하던 쿠와하라 마사유키, 쿠라모토 토시히코를 끝까지 믿고 써서 전자는 7월 대폭발로 팀의 A클래스를 이끌고 후자는 득점권의 악마가 되었다.[22] 재임 기간 내내 그가 행했던 기용법과 운영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거나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가 자주 올라왔을 정도다.[23] 참고로 파리그의 이구치 타다히토 역시 쓸놈쓸을 즐기는데, 경기 전 기용은 쓸놈쓸이지만 경기 중간에는 파격적인 선수교체를 하는 라미레스와 반대로 경기가 끝나갈 때까지 좀 심하다 할 정도로 쓸놈쓸을 하는 스타일. 이구치는 참고로 자신이 밀어주지 않는 선수는 1군에 콜업해놓고 1주일 넘게 출장시키지 않거가 기록 없이 말소시키거나, 1달 내내 1경기 정도 나오고 1군 밥만 먹이다 말소시키는 성향. 그리고 이구치도 라미레스랑 비교하면 새발의 피지만 종종 특이한 경기운영을 한다. 예를 들어 좌투수 상대로 우타자가 나올 차례인데 여기서 좌타 대타를 쓰거나. 좌타자 타석에서 현재 투수가 좌투수인데 갑자기 우투수를 올리거나.. 지금은 덜하지만 한때는 주력이 중간만 가면 포수조차도 맨날 도루를 지시해서 팀 도루자가 급증한 적도 있다.(다만 이건 이구치의 이후 행적 및 감독 시절 이전의 인터뷰를 보면 발만 빠르면 다 자기처럼 도루를 잘 하는 줄 알아서 주력이 중간만 돼도 마구 도루를 시켜버린, 초보 감독의 시행착오로 보인다.) 이구치도 라미레스처럼 프로 첫 감독을 맡은 후 꼴등팀을 2위까지 올렸는데, 여기서 우승까지 더 끌어올릴 수 있을지도 관건.[24] 실제로 이승엽은 히어로 인터뷰에서 장내 아나운서의 질문을 듣고 한국어로 곧바로 답변하기도 했다.[25] 그러나 감독 취임 이후 기자회견, 히어로 인터뷰 등 공식석상에선 주로 영어를 사용한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아무리 외국어를 잘해도 외국어는 외국어라서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모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예의다.[26] 독립 리그에서도 6점대를 찍었다.[27] 라쿠텐과 DeNA에서 뛰다 방출된 투수 하마야 코다이가 라미레스의 도움을 통해 독립리그 구단에서 활동하면서 최종적으로 프로 복귀를 목표로 한다는 내용의 프로젝트. 자체적으로 트레이닝을 실시하기도 하고 후루타 아츠야, 이와쿠마 히사시, 야마모토 마사, 후지카와 큐지 같은 굵직한 커리어를 가진 야구인들을 초빙하여 조언을 구하거나 트레이닝을 돕기도 한다.[28] 이쪽도 별명이 라미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