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 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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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이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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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이념
고자유지상주의 · 고전적 자유주의(신고전적 자유주의) · 아나코 캐피탈리즘 · 자유지상주의적 보수주의(융합주의) ·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 지공자유지상주의 · 초월주의
연관 개념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 계약의 자유 · 문화적 자유주의 · 경제적 자유주의 · 단일세 · 반제국주의(불간섭주의) · 자연법 · 자유(표현의 자유) · 자유방임 경제 · 자유지상주의적 페미니즘 · 잭슨 민주주의 · 제퍼슨 민주주의 · 제한된 정부 · 최소국가주의 · 향토주의
인물
게리 샤르티에 · 게리 존슨 · 놈 촘스키 · 데이비드 프리드먼 · 랜드 폴 · 로버트 노직 · 로즈 와일더 레인 · 론 폴 · 루트비히 폰 미제스 · 류 록웰 · 머리 로스바드 · 밀턴 프리드먼 · 배리 골드워터 · 스티븐 펄 앤드루스 · 아인 랜드 · 앤드류 잭슨 · 카일 쿨린스키 · 캘빈 쿨리지 · 털시 개버드 · 토머스 소웰 · 토머스 제퍼슨 · 한스 헤르만 호페 · 랠프 월도 에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 · 헨리 조지
관련 조직
공화당의 일부 코커스(리버티 코커스 · 티 파티 코커스) · Students for Liberty · 자유당(미국) · 자유지상당 국제동맹 · 전미총기협회
미국 정치 관련 문서 (사회주의 · 현대자유주의(←1934년 이전) · 자유지상주의 · 보수주의(대안 우파))



아인 랜드
Ayn Rand


파일:아인 랜드 (컬러 버전 2).jpg

본명
알리사 지노비예브나 로젠바움
Алиса Зиновьевна Розенбаум
Alisa Zinovyevna Rosenbaum
출생
1905년 2월 2일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사망
1982년 3월 6일 (향년 77세)
미국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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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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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1905~1917)
→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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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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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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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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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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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1931)
→ [[미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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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1982)
직업
소설가, 철학자, 극작가, 시나리오 작가, 수필가
활동
1934년 ~ 1982년
서명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Ayn_Rand_signature_1949.svg.png
링크
공식 사이트
아인 랜드 연구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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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미국 뉴욕 주 케니스코 묘지
민족
유대계 러시아인
신체
157cm
학력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1] (역사학 / 학사, 1920~1924)
국립영화예술학교 (중퇴)[2]
데뷔
1934년 연극 '1월 16일의 밤'
배우자
프랭크 오코너 (1929년 ~ 1979년, 사별)
종교
무종교(무신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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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아인 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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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艾茵·兰德
그리스어
Άυν Ραντ
러시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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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
آين راند
힌디어
आयन रैंड
페르시아어
آین رند
히브리어
איין ראנד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
2.2. 미국으로
2.3. 작가 데뷔
2.4. 1940년대, 1950년대
2.5. 1960년대, 1970년대
2.6. 말년
3. 여담
4. 이념
5. 대표 저작
5.1. 소설
5.2. 논픽션
5.3. 시나리오
5.4. 수필, 칼럼
6. 어록
7. 평가
7.1. 비판과 논란
7.2. 긍정적
8. 관련 사이트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atlassociety.org/ayn-rand-smiling-playboy.jpg

“그녀는 가장 사랑받고 가장 미움받는 미국인 사상가 중 한 명이다.”

미국의 소리[2]


미국유대인/러시아계 미국인 소설가이자 극작가, 시나리오 작가이며 철학자이다. '아인 랜드'라는 필명으로 소설인 '움츠린 아틀라스'와 '파운틴헤드[3]'를 비롯한 소설과 논픽션을 썼다.

이성의 가치와 극단적 개인주의를 강조하는 사상으로 유명하며, 매우 극단적인 팬덤을 지니고 있어서[4] 1960~70년대 미국 사회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생전에 본인 스스로는 자유지상주의리버테리언을 경멸하고 혐오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리버테리안의 기수로 불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팬덤의 존재는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나타난다.

객관주의 철학(Objectivism)의 창시자[5]이자 객관론과 자유시장경제를 철저히 옹호했던 아인 랜드는 소설가이자 경제철학자로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미국 주류 우파세력의 사상적 근간을 제공했다. 오늘날 미국의 보수주의와 자유의지주의에 막대한 영향을 준 인물이며 21세기인 현재도 그녀는 미국 우파들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랜드가 이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로 슈퍼스타냐면 이런 기사와 밈도 있다. 실제로 그녀의 책을 가장 좋아하는 책(favorite book)이라고 꼽은 공화당 정치인들이 상당하다. 대표적으로 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테드 크루즈, 전 미국 하원 의원 론 폴, 랜드 폴, 렉스 틸러슨, 마이크 폼페이오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전 미국 하원의장 폴 라이언은 랜드의 사상을 거부하긴 하지만 그의 정치관이 아인 랜드에게 영향을 받은것은 확실하다. 랜드를 미국 우익의 카를 마르크스라고 비유한 기사가 있을 정도다.

한편 그녀의 반대파들은 우파들의 지나친 아인 랜드 찬양과 그녀의 주장을 비판한다. 노벨 경제학자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폴 라이언을 보고 판타지 소설을 보고 경제 정책을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좌파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대침체 당시 아인 랜드 추종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평범한 사람들이 월 가의 금융업자들을 세금으로 지원했다고 말했다. 또한 자유사상가들은 무신론이나 기본권 옹호는 동의하지만 그녀의 사상인 객관주의는 전혀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2. 생애[편집]



그녀의 생애 요약


2.1. 어린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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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cdn2.hubspot.net/Young_Ayn_Rand.jpg

1905년 러시아 제국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유대인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유대계 사업가였다. 원래 그는 화학을 공부할 생각이 없었으나, 당시 유대인이 다닐 수 있는 대학이 워낙 제한되어 있었던 탓에 화학과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자, 그는 전공불문하고 뛰어들어 그것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결국 그는 그 방면으로 꽤 성공하여 아인 랜드는 어린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큰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안락하고 커다란 아파트에서 살았고 그 아파트 건물 1층에는 아버지 소유의 약국이 있었다. 아버지는 대단히 엄격하고 조용한 사람이었고 아인 랜드가 기억하는 한 가까운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여가시간마다 그는 당시에 러시아에서 유행하던 사회비평[6]을 즐겨 읽었는데,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것은 그 자신이 러시아에서는 드물게 보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나름대로 존경했지만, 그다지 친밀한 부녀관계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사람으로 아름답고 발랄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해서 늘 집에서 연회를 베풀곤 했다. 성장기를 통틀어 그녀는 어머니와 늘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어머니를 굉장히 싫어했었다. 그녀는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에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녀는 원칙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인 스타일면에서 사교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사상 따위에는 무관심했던 반면 사교적인 것들에는 관심이 많았다. 어린 시절 그녀와 내가 부딪쳤던 것은 내가 비사교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는 아이들과는 놀지 않았고, 여자친구 하나 없었다"고 그녀는 회고한다.

그녀에 따르면, 어린 시절 양쪽 부모 어느 쪽으로부터도 그다지 깊은 사랑을 받지 못했던 그녀가 유일하게 인정을 받는 경우는 주로 그녀의 영특함이 발휘되는 때였다. 이를테면 난데없이 어머니가 그녀를 친척들 앞에 내세우며 의기양양해 하는 경우, 혹은 아버지가 그녀를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것은 주로 그녀가 어린아이지만 아주 명료한 생각을 나타냈을 경우였다고 그녀는 얘기하고 있다. 어린 시절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안티페미니즘적인 생각[7]을 가졌던 반면, 소위 말하는 남성적 요소들에 대해서는 우월한 가치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녀가 일찌감치부터 인간에 대해 가장 높이 평가해온 속성은 통상적으로 남성적이라고 간주되어 온 것들, 즉 이를테면 목적추구성과 강인함이었다고 그녀 자신은 회고한다.

로젠바움 일가의 특이한 점은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종교가 그들의 삶에 별달리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머니는 종교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관습적이고 감정적인 면에서 종교적인 체했을 뿐 확신에 찬 진정한 신앙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 가족은 그저 의례적으로 1년에 한두 차례 성일을 지키는 것이 고작이었고 실제 앨리스는 자라는 동안 한 번도 따로 종교적인 훈련을 주입받지 않았다.

후에 러시아에서 반유대주의가 폭풍처럼 거세질 무렵에도, 그녀의 집안에서는 별로 유대인 문제가 심각하게 거론된 적이 없었다. 후에 아인 랜드는 "나는 유대인으로 태어났다"고만 인정할 뿐, 그 사실이 종교적, 사회적, 기타 어떤 면에서건 그녀에게 그 이상의 아무런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았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녀는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 러시아는 그야말로 역사의 격동기를 겪고 있었다. 이미 1914년,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던 러시아는 독일, 오스트리아와 전쟁에 들어갔으며 1917년 2월 말, 그녀의 생일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러시아 황제가 퇴위했다. 로마노프 왕조의 절대권력은 사라졌고 노동자들, 학생들, 중산층이 주축이 된 대다수의 시민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2월 혁명에 열광했다. 당시 10대 초반의 소녀였던 아인 랜드는 당시 총리가 된 젊은 변호사 알렉산드르 케렌스키(Alexander Krensky)를 열렬히 사모하였고, 그 사람이야말로 자유와 개인주의를 수호해주는 화신이라고 믿었다. 정작 케렌스키는 사회주의자로 나타난다.
당시에는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트로츠키, 스탈린 같은 볼셰비키들이 망명에서 페트로그라드로 속속 돌아오고 있었다. 물론 그 중에는 블라디미르 레닌도 섞여 있었다. 그들이 돌아와 점점 힘을 장악하게 되자 당시의 처참해진 경제를 살리고자 고군분투하던 아인 랜드의 영웅 케렌스키는 10월 혁명으로 정권을 잃고 결국 해외로 피신하게 되었다.

그 무렵 어느 날 오후의 일을 아인 랜드는 평생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느 날 아인 랜드는 아버지의 약국 안에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부랴부랴 약국 안에 있던 얼마간의 개인소지품을 챙겨 아파트에 감추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버지가 물건들을 감추고 위층에서 막 돌아오는 순간, 한 패의 무장군인들이 들어오더니 문 앞에 붉은 딱지를 붙였다. 인민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국유화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한 개인가게뿐 아니라 은행, 및 은행에 비치된 개인 안전금고까지 모든 것이 국유화라는 명목으로 압류되던 시기였다.

"그 어린 나이에도, 나는 공산주의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곧 국가를 위해 산다는 것을 의미했다. 문맹이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 문맹자와 가난한 자들이 지상의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그들이 얘기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라고 그녀는 회고한다.

이처럼 공산주의를 직접적으로 겪은 것이 평생 그녀의 정치성향을 결정짓게 하는 피할 수 없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의 가족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몰수 과정을 직접 겪어야 했으며, 이후 새로운 공산주의 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투쟁해야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 그 당시 러시아에서의 삶은 음울했지만, 특히 정권을 장악한 세력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적응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아인 랜드는 그녀 자신이 당연히 이래야 한다고 느끼는 그러한 방식의 삶을 보여주기 위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한 세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린 소녀 시절, 이미 그녀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역사학을 전공하였고, 훗날 그녀가 두각을 나타냈던 문학과 철학 분야는 거부하였다. 그 두 분야에서 당시 학계가 높은 가치를 두고 평가하던 것 대부분에 그녀는 조금도 동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2.2. 미국으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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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대학 졸업 후 아인 랜드

최고 명예상을 수상하며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관광안내원으로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러시아에서 끔찍하리만큼 불행을 느끼며 안내원으로 살아가고 있던 중, 그녀는 미국에 있던 친척의 편지 한 통으로 그 막다른 골목같은 직업에서 빠져나와 자유를 향하게 되었다. 시카고에서 살고 있던 포트노이가의 잠시 다녀가라는 방문 초대로 그녀는 1926년 러시아를 떠났고 1970년 잠시 여동생을 만난 것 이외에, 그것이 조국 및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이 되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알리사 지노비예브나 로젠바움은 아인 랜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녀의 독특한 개성과 끈질긴 개인주의는 그 이름의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그녀의 이름은 독일어로 '하나'라는 'ein'과 같은 발음이 나며 영어로는 소나무 'pine'과 각운이 똑같다. 성으로 택한 랜드는 미국에서 첫번째 영화 시나리오를 쓰던 무렵 사용하던 레밍튼-랜드 타이프라이터에서 따온 것이었다.

비록 영어는 서툴렀지만, 랜드는 잠시 시카고에 머문 후에 할리우드로 떠났다. 이때 그녀의 지갑에는 50달러 밖에 없었다고 한다. 영화를 위한 글을 써서 생계를 해결해볼 작정이었다. 할리우드에 온 지 이틀째 되던 날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던 미국인 연출가 세실 B. 드밀을 사귀게 되었는데 그는 그녀를 '왕 중 왕'을 찍고 있는 촬영현장으로 데려갔고 이어 그녀를 엑스트라로 기용하기도 하고 그녀에게 주니어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일거리를 주기도 하였다. 방문비자를 받고 미국에 잠시 다니러 왔다가 불안하게 눌러앉아 있던 그녀는 1929년 찰스 프랭크 오코너[8]와 결혼함으로써 비로소 미국에 머물 수 있는 합법적 신분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 프랭크를 이렇게 회상했다.

프랭크는 내게 정신의 연료다. 그는 내 소설을 창조한 인생관에 현실성을 부여해주었으며, 주위에는 온통 경멸감과 혐오감만 불러일으키는 인간들과 사건뿐들뿐인 잿빛 사막에서 내가 오랫동안 그 인생관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결혼 직후 랜드는 RKO의 의상분과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비록 그 일이 싫었지만, 영어를 더 배우는 동안 생계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생각에서 두말 않고 그 일에 매달렸다. 그녀의 언어발달은 놀라울 정도여서 그녀는 성인이 되어 새로운 언어를 배운 후 예술적 마스터 경지에 이른 몇 안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9]로 꼽힌다.


2.3. 작가 데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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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의 아인 랜드

랜드의 첫번째 소설은 러시아를 떠나기 전 환송파티에서 그녀가 친구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쓴 것이다. 그녀의 친한 친구가 러시아가 거대한 공동묘지라는 것, 러시아 국민들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미국인들에게 알려달라고 그녀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우리, 살아 있는 자들 We The Living>에서 랜드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가는 상황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특히 그녀는 공산주의가 보통사람들에 대해서 뿐 아니라 특히 가장 명석한 두뇌를 가진 부류를 완전히 황폐화시킨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였고, 주요 등장인물들 중의 하나를 열렬한 공산주의 이념 지지자로 만듦으로써 그 체제의 근본적인 결점이 무엇인지를 얘기하고자 하였다. 그 책의 1959년판 서문에서 그녀는 "<우리, 살아 있는 자들>은 1925년 소비에트 러시아에 국한된 스토리가 아니다. 그것은 소비에트 러시아건 나치독일이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건 일어날 수 있는 독재에 대한 이야기 내지는 어쩌면 미국의 사회주의화를 막는 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라고 얘기한다. 랜드는 공산주의에 대한 그녀의 반대가 공산주의의 본질적인 원칙, 즉 인간이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데에 의거해 있음을 계속 강조한다. 그녀는 공산주의가 비록 방법적인 면에서는 잘못되었을지라도 그 이상만은 고매한 것이라는 신화를 미국인들이 받아들이지 말라고 경고한다.

아인 랜드의 <우리, 살아 있는 자들>에 대해 출판계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 내용이 지나치게 지적이거나 반소비에트적이라고 보고 그 출판을 거부했다. 결국 맥밀란 출판사가 그 책을 출간하기로 했는데, 그 출판사측은 그 책에 대해 거의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책에 대한 홍보도 거의 하지 않았고 단지 3천 권을 찍어냈을 뿐이었다.

그 책에 대한 서평도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출판사나 서평자들, 그 어느 쪽으로부터의 지지도 없었으나 그 책은 꾸준히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출판 이듬해에 더 많은 책이 팔리게 되었다. 1959년 랜덤 하우스에서 재판을 발행한 후, 그 책은 이제까지 2백만 부가 넘게 팔리고 있다.

랜드의 명성은 무엇보다도 소설가로서 드높지만, 그녀의 첫번째 직업적인 성공은 희곡 쪽에서 이루어졌다. 그녀의 첫 희곡은 '펜트하우스 전설(Penthouse Legend)'이라 불리는데 이후 그 제목이 두 번이나 바뀌어 나중에는 '1월 16일의 밤(Night of January 16th)'이라는 제목으로 공연되었다. 이 극은 청중을 그 연극에 등장하는 피고의 배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면에서 당시로서 상당히 획기적인 연극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원래 '에고'라는 제목의 짧은 소설 <성가Anthem>는 일종의 우화 같은 반유토피아적(dystopia) 이야기로서 엄청난 재난, 혹은 전쟁 후 집단주의화된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 책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각 개인의 자아와 재능을 억압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그 사회에 얼마만큼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2.4. 1940년대, 1950년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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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장편소설 <파운틴헤드>를 발간한다. 하지만 <우리, 살아 있는 자들 We The Living>과 마찬가지로 무려 열두 개나 되는 출판사가 이 책의 출판을 거절하며 '너무 지적이고', '논쟁의 소지가 크며' 이런 책을 읽는 독차층은 없기에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랜드는 이 작품의 가치를 믿었다고 한다.

<파운틴헤드 The Fountainhead>는 랜드에게 상당한 명성을 가져다준 소설인데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그녀는 상당히 광범위한 사전 연구를 행했다. 이 소설에서 그녀는 건축가인 주인공을 통해 이상적인 인간상을 그리려는 목표에 다가서고 있는데, 그 책의 주제는 앞서와 마찬가지로 개인주의 대 집단주의의 문제, 혹은 긍정적인 이성적 에고이즘의 옹호이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이기주의가 그녀가 혐오하는 탐욕적인 이기심과는 구분되는 것이듯이, 이 책에서 정의하는 에고이즘은 그녀가 찬양해온 개인주의의 절대불가결한 부분이다. 그 책에 대해서는 서평가들 사이에 찬반이 엇갈렸으나 대체로 그 책이 소위 사상을 다루고 있는 소설(novel of idea)의 부류에 속하는 책이라는 것, 그리고 그 책에 나타난 랜드의 강렬한 힘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는 듯하다. 그 책은 1980대까지 대략 450만 부가 팔려나갔다.

<파운틴헤드 The Fountainhead>의 성공으로 랜드는 자신의 독자층, 즉 삶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는 부류의 사람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남편과 그녀는 캘리포니아에 집을 샀고 그것은 <파운틴헤드 The Fountainhead>의 주인공 하워드 로악이 지었을 법한 집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파운틴헤드 The Fountainhead>의 각색작업과 <움츠린 아틀라스 Atlas Shrugged>의 주요 부분을 써나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1950년 나다니엘 브랜던(원명은 나다니엘 블루맨텔)이라는 사람이 랜드에게 팬레터를 보냈는데 랜드는 그 편지에 대단히 감동해서 전례없이 그에게 답장을 보냈고, 그것을 계기로 두 사람은 일생에 걸쳐 우의를 발전시켜 나가게 된다. 이후 그녀는 <움츠린 아틀라스 Atlas Shrugged>을 남편 프랭크 오코너와 브랜던에게 헌정하였을 뿐 아니라, 이후 그를 '이상적인 독자'로 묘사하기에 이를 정도로 그들의 관계는 돈독해졌다. 이후 브랜던과 그의 아내 바바라 브랜던은 그녀의 열성적인 팬이 되어 브랜던 내외가 뉴욕으로 이주하자 랜드 내외도 곧이어 뉴욕으로 이주하였다.

뉴욕에서 브랜던은 자신의 수많은 친구들 및 친지들을 랜드에게 소개시켜 주었고, 이후 이들이 모여 '43년의 클라스(The class of 43)'라는 그룹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는 1943년이 파운틴헤드가 출간된 해임을 상징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그룹에는 연방준비은행제도(Federal Reserve System)의 회장이자 세 명의 대통령들의 고문이었던 앨런 그린스펀과, 브랜던의 사촌이자 후에 랜드의 글을 정리 출판하는 일을 담당하게 되는 레너드 페이코프 등 랜드의 사상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들을 중심으로 소위 랜드가 객관주의자 운동(Objectivist movement)이라고 부르는 것이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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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n Rand in Manhattan in 1957. Credit Allyn Baum/The New York Times

단연 대표작으로 꼽히는 <움츠린 아틀라스 Atlas Shrugged>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랜드의 철학을 최대한으로 개진시키고 있는 책이다. 여기서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을 창조해내면서 인간의 최우위성이라는 자신의 철학적 주제가 정치, 경제, 형이상학적 견지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철저하게 파헤친다. 그 책의 주인공은 존 갈트인데, 그와 수많은 그의 추종자들은 그 자신들이 약탈자와 거머리라고 간주하고 있는 것들에게 그들 자신과 그들의 생산적인 능력이 착취당하지 않게 함으로써 이 세계의 모터를 정지시키는 데 성공한다. 랜드의 모든 소설들이 그러하듯, 인간의 최우위성을 극화시키고 있다는 이 작품에서도 독자적이고도 귀중한 개인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느냐가 선을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만일 어떤 것이 삶에 영양을 주고 삶을 키워나간다면, 그것은 곧 선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어떤 것이 개인적인 행복의 추구를 부정하거나 가로막는다면 그것은 악한 것이다.

<움츠린 아틀라스 Atlas Shrugged>의 출간에 따른 각 진영의 반응은 당연히 예견할 수 있다시피 상반된 것이었다. 진영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어리석은' 내용을 담고 있다느니, '터무니없다'느니 하는 온갖 부정적인 비방이 가해졌지만,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노예해방 논의의 물꼬를 틀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움츠린 아틀라스 Atlas Shrugged>은 객관주의라는 특정운동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다. 그 출간으로 인해 랜드는 본격적으로 사상가의 대열에 끼게 되었으며, 그녀의 철학적인 영향력은 국회[10]에서부터 테니스 코트[11], 연방준비은행제도[12], 알래스카 입법부[13]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에 미치게 되었다.


1959년, 그녀의 첫 인터뷰


2.5. 1960년대, 1970년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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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가 마지막 소설을 출간한 것은 52세 때였지만, 소설가로서의 경력을 끝냄과 동시에 대중철학자로서, 연사로서의 그녀의 경력은 본격적으로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지식인을 위하여: 아인 랜드의 철학 For the New Intellectual: The Philosophy of Ayn Rand>이 1961년에 출간된 데 이어 다양한 주제[14]에 관한 다양한 에세이를 모은 논픽션들이 계속 뒤를 이었다. 그러나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논픽션에서도 그녀는 인간의 권리 면에서의 주요 갈등분야를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 개인주의집단주의, 이기주의이타주의, 이성 대 신비주의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랜드의 철학에서 이 모든 영역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성은 각 개인의 어느 것이 삶을 지탱해주고 자아를 키워주는 것인가를 판별하는 도구가 된다. 집단주의, 이타주의 및 신비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건강한 자아, 이성을 가로막는 것들이라는 것이 랜드의 확고한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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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츠린 아틀라스 Atlas Shrugged>는 랜드의 마지막 소설이 되었지만, 궁극적으로 그 소설 때문에 그녀는 철학자, 문학가로서 널리 이름을 얻게 되었다. 1960년대 그녀는 대학캠퍼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연사가 되었으며, Ford Hall Forum의 정기출연 인사였고,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의 칼럼니스트가 되었다. 그녀는 또한 조니 카슨, 필 도나휴, 탐 스니더 등과 차례로 인터뷰를 하였고, 심지어 <플레이 보이>지와도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랜드가 보수적인 기존 철학계로부터 종종 외면당한 이유 중의 하나는, 학자들을 상대로 해서만 얘기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처럼 대중매체들도 즐겨 이용하며 일반인들을 상대로 얘기해왔기 때문이다.

한편 나다니엘 브랜던은 20개의 강의코스를 통해 객관주의의 기본적인 철학을 강의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기회로 나다니엘 브랜던 인스티튜트가 세워지게 되었다. 그 기관은 전미국에 객관주의에 대한 강연을 테이프로 보급하는 한편, 그 기관의 출판부도 에세이와 모노그라프 등을 출간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62년에서 65년 사이에 출간된 초기의 The Objectivisit Newletter는 주로 랜드나 브랜던, 그린스펀의 에세이를 싣고 있는데, 이는 1966년 'The Objectivisit'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다가 1971년 소박하게 'The Ayn Rand Letter'라는 타이프라이터로 찍힌 내용으로 바뀌었고, 이는 1976년까지 계속 출간되었다.

지적 운동의 선각자로서의 랜드의 이력에는 두 가지 단계가 있다. 1968년까지는 나다니엘 브랜던이 랜드 철학의 주요 대변자, 그것을 가르치는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나 1968년, 그녀는 브랜던 부부와 결별을 선언하게 되었고, 그것은 다시 랜드 추종자들 사이에 어떤 균열을 가져오게 되었다. 일부는 여전히 자신들을 '객관주의자'라 부르면서, 랜드가 동의한 글만을 출간하는 순수파로 남은 반면, 일부는 그간의 랜드의 영향력은 인정하되 다른 해석이나 변경을 시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Ford Hall Forum에서의 랜드의 출연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그녀는 그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이나 싫어하는 자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강렬한 카리스마와 이지적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2.6. 말년[편집]






1980년, 아인 랜드의 마지막 TV 인터뷰

말년은 건강의 악화[15]와 1979년 남편 프랭크와 사별하는 등의 개인적인 슬픔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었지만, 1980년 필 도나휴 쇼에 출연한 그녀는 삶에 대한 여전한 사랑과 내세를 부정하는 무신론을 다시 한 번 확언하였다. 만일 내세가 있다면, 사랑하는 남편과 만나기 위해 당장이라도 자살을 하겠다는 것이 그녀의 변이었다. 1982년 3월 6일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심장 부전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장례식에는 그녀의 제자 앨런 그린스펀을 비롯한 저명한 추종자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오히려 그녀의 철학에 대한 학계의 새로운 관심을 촉발시켰으며, 그녀의 추종자들로 하여금 더욱 열렬히 그녀의 철학을 널리 알리게끔 만들었다. 살아 생전 그녀에 대해 출간된 책이 다섯 권이었던 반면, 아인 랜드의 사후 5년간 그녀의 철학을 소개하는 다섯 권의 책이 잇달아 출간되었다는 사실은 그녀의 철학에 대한 관심이 오히려 높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볼 수 있다.

3. 여담[편집]



  • 1999년 그녀의 인생을 담은 TV 시리즈 ‘The Passion of Ayn Rand’가 나온적이 있다. 아인 랜드를 맡은 배우는 영국의 대배우 헬렌 미렌. 헬렌 미렌의 연기는 호평을 얻었고 에미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위키피디아를 만든 지미 웨일스는 본인을 "객관주의자"라고 정의하고, 아인랜드의 "파운틴헤드"를 읽은 뒤 그녀의 추종자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https://www.fastcompany.com/59260/why-man-smiling 실제로 웨일스의 위키피디아 설립의 의사결정은 "인간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부여하는 아인랜드의 객관주의 철학이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 당연하겠지만 미국 리버럴 세력, 진보 세력, 좌파들에겐 눈엣가시같은 존재며 아인 랜드를 매우 싫어한다. 대표적으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아인 랜드를 비판하기도 했다.

  • 소설 파운틴헤드는 1949년에 영화로 만들어졌고(한국에는 마천루라는 이름으로 소개됨), 영화 감독 잭 스나이더가 다시 실사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녀가 유일하게 자신이 큰 영향을 받았다고 인정하는 철학자이다. 한 평자는 랜드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랜드에게 있어서도 인간공동체가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나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있은 후에만 대답될 수 있는 것이다. 랜드는 정치를 윤리학에 속한 분야로 보는 희랍전통을 따르고 있다."
  • 랜드는 한때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에도 심취했던 적이 있었지만, <비극의 탄생>을 접하고는 그에게서 등을 돌렸다. 니체는 "이성이 열능한 능력이라고, 술 취한 환각의 감정이 우월한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것을 읽는 순간 그와는 더이상 정신적인 유대를 가질 수 없었다"라고 랜드는 토로한다.또 랜드는 니체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 >철학적으로 니체는 신비주의자이며 비합리주의자이다. 그의 형이상학은 '바이런적이고', 신비주의적으로 '악의적인' 우주적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의 인식론은 '의지' 또는 느낌, 또는 본능, 또는 피, 또는 타고난 미덕에 둔다. 하지만 시인으로서의 니체는 이따금 인간의 위대성에 대한 숭고한 감정을 지직 용어가 아닌 감상적인 시어로 표현해내곤 했다.

  • 그녀가 가장 흠모한 작가는 빅토르 위고표도르 도스토옙스키였으며, 좋아했던 극작가는 프리드리히 쉴러와 에드문드 로스탠드였다. <철학,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에서도 그녀가 위고를 여러번 거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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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청난 골초였다. 이것 때문에 나중에 폐암에 걸리게 된다.

  • 아인 랜드는 닉슨 대통령을 굉장히 싫어했다. 저서에서 대놓고 언급할 정도.

현재로서는 닉슨 대통령처럼 음울한 인물조차 (정확히 말하면 그가 바로 그처럼 음울하기 때문에) 희망적인 징표이다.


  • 오스트리아 학파 미제스는 "움츠린 아틀라스"를 읽었을때, 그녀가 관료들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감명받은 나머지 그녀에게 "팬이 보낸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예를 들어 자본주의의 도덕적 근거와 같은 강한 불일치와 관계를 가졌다.

움츠린 아틀라스는 단순히 소설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를 오염시키고 있는 악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이기도 하고, 자칭 '지식인들'의 사상체계를 본질적으로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고, 정부와 정당들이 채택하고 있는 정책들의 위선을 가차없이 파헤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도덕적 자기잠식', '과학의 기둥서방임'을 싸그리 폭로한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정치가 해주지 않았던 이야기, 즉 '당신은 열등합니다. 그리고 당신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당신의 조건 개선은 모든 당신들보다 나은 사람들의 노력 덕입니다.'라고 대중들에게 말할 용기를 가젔습니다.



  •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 윌터 블록은 아인 랜드가 <움츠린 아틀라스>에서 다루고 있는 세가지 주제들 (반 트러스트 규제, 화폐, 정부)에 대해서 그녀의 입장이 오스트리아 학파적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랜드가 산업규제, 반트러스트, 시장에 대한 정부의 다른 간섭에 대해서 한마디로 할 수 있는 좋은 말을 만들어내지 못했지만 그녀는 특별한 경제적 특권들을 정부로부터 획득하려는 시도들은 국가를 '대중에게 좋은것(public goods, 공공재)을 제공하는 '긍정적' 도구라고 보는 지식인들의 견해를 공유한 사업가들에 ... 의해서 비롯되었다" 라고 지적했다.

  • 랜드는 현대의 학문 중 유물론적인 심리학과 정치경제학에 대해서 철학적 비판을 하였고, 위에 적힌 스키너에 대한 내용은 그 중 한 구절로 보인다. 랜드의 저서 중 "자본주의의 이상"에 수록된 The Objectivist Newsletter 1965년 11~12월호에 수록된 다음의 글은 랜드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스키너는 인간의 정신과 미덕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쳐 있다. 그의 증오는 너무나 강하고 소모적이어서 그 자체를 태우고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회색 재와 냄새나는 석탄 몇 조각 뿐이다."


  • 객관주의자 나다니엘 브랜던이 쓴 글에서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철학이 19세기에 분리되고 20세기에 붕괴됨에 따라 비록 진행속도가 대단히 느리고 조금은 불명확한 점이 있지만, 현대의 과학들도 유사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오늘날 기술분야의 급속한 발전은 1929년 경제공황 이전의 날들과 질적으로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과학의 이론적인 설명이 길어지고 과학의 이론분야에서 자신의 자료조차도 해석하거나 통합 할 수 없게 된 과학자들이 과거의 여세에 편승하고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인식론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잔류자에 편승하여 원시적인 신비주의의 부활을 선동하고 있는 것은 아주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나 인문학에서는 붕괴는 과거의 일이고 침체가 시작되었으며 과학의 붕괴는 거의 완성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경향의 명백한 증거는 비교적 오래되지 않은 학문인 심리학과 정치경제학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인간은 자각한다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인간의 행위를 연구하고자 하는 시도를 심리학에서 볼 수 있다."


  • 나다니엘 브랜던은 반대 사례로 심리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글을 통해서 반박한다.

"어떤 저술가들, 특히 프로이트 학파, 또는 융학파 성향의 사람들은 현대 산업사회의 복잡성으로 인해 인간은 '지나치게 문명화' 되었고, 인간존재의 깊은 뿌리와의 관계를 상실하게 되었고, 인간의 '본능적인 본성'으로부터 소외되었다고 주장한다."


"에릭 프롬은 인간은 "우주의 기형이다"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그의 모든 글들을 통하여 중요하고도 중심되는 주제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모든 다른 종들 과는 극단적으로 다르다. 인간은 자연과 '소원하게 되고' '소외되고' '고립'과 '격리'의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다. 인간은 진화과정 속에서 다른 유기체가 가지고 있는 조용한 평온을 잃어버렸고, 인간은 동물, 새, 또는 벌레가 즐기고 있는 자연과의 '인류 이전의 조화'를 상실했다. 이러한 인간저주의 근원은 인간이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프롬은 '자신을 위한 인간'에서 "자각, 이성, 그리고 상상이 동물적 존재의 특성을 나타내는 '조화'를 깨뜨렸다. 그것들의 출현은 인간을 이형과 우주의 기형으로 만들었다"라고 적고 있다. 인간은 동물처럼 살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을 환경에 자동적으로, 그리고 아무 생각없이 적응 할 수 있도록 갖추어져 있지 않다. 동물은 맹목적으로 '종들의 양식'을 반복하고, 동물의 행위는 생물학적으로 규정되고 정형화되며, 동물은 '적응하거나 사멸한다'. 그러나 동물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아도 되고, 동물은 삶과 죽음을 문제로 의식하지 않는다. 인간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해야하고 삶과 죽음을 문제로 의식한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이성은 인간의 축복이면서 저주이다."


  • 19년동안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군림했던 앨런 그린스펀은 랜드의 ‘합리적 객관주의(objectivism)’를 배우기 위해 젊은 날 에인 랜드 스터디 클럽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랜드는 그린스펀의 경제학에 깊은 영향을 미친 정신적 스승이다. 그린스펀은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뉴욕에 있던 아인 랜드의 아파트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그는 1977년 51세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10년 후에 Fed 의장이 된다. 그는 “랜드를 만났을 때, 나는 아담 스미스식의 자유기업인으로서 그녀의 이론적 구조와 효율적인 시장론에 감명을 받았다. 그녀는 자본주의가 능률적이고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이유를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아인 랜드는 내 시각이 자기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줬다”, “아인 랜드를 통해 경제는 심리를 비롯한 가치·태도·믿음과 다른 비이성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배웠다.”, “만약 아인 랜드가 없었다면 나는 은둔의 경제학자가 돼 말도 안 되는 전망이나 내뱉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랜드는 그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의 경제 자문회 의장으로 지명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 그녀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는 앤드루 라이언이 있다. 게임 바이오쇼크의 등장인물인 앤드루 라이언은 자유지상주의를 신봉하는 인물로, 랜드에게서 그 모티브를 얻은 캐릭터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바이오쇼크는 랜드의 소설 움츠린 아틀라스의 안티테제격인 게임인데, 라이언은 그 중심에서 자신의 사상을 실현할 유토피아 해저도시 랩처를 건설하고, 또 그 사상으로 인해 도시와 거주민들을 파멸시킨 장본인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고.

  • 동성애에 관해서는 비도덕적이라고 말하는 등 개인적으로 싫어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성인 간의 관계에 법이 간섭할 수는 없고 차별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4. 이념[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아인 랜드/이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그녀의 이념은 대표적으로 객관주의가 있다.

5. 대표 저작[편집]


그녀의 철학인 '객관주의(Objectivism)'의 입문하려면 파운틴헤드와 아틀라스를 읽으라고 객관주의자들은 추천한다. 그리고 그 후의 그녀의 논픽션, 수필들을 읽는것이 좋다. 그리고 더불어 아인 랜드의 제자인 '객관주의 철학자' 레너드 피코프의 'Objectivism: The Philosophy of Ayn Rand'를 읽는것을 추천한다.

5.1. 소설[편집]


파일:we the living.jpg
파일:anthem.jpg
파일:fountainhead.jpg
파일:atlas.jpg
파일:ideal.jpg
1936년
1938년
1943년
1957년
2016년
우리, 살아 있는 자들
We the Living
우리는 너무 평등하다[17]
Anthem
파운틴헤드[18]
The Fountainhead
움츠린 아틀라스
Atlas Shrugged
이상
Ideal

5.2. 논픽션[편집]


파일:For the New Intellectual.png
파일:The Virtue of Selfishness.jpg
파일:Capitalism The Unknown Ideal.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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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964년
1966년
1969년
새로운 지식인을 위해서
For the New Intellectual
이기심의 평등
The Virtue of Selfishness
자본주의의 이상
Capitalism: The Unknown Ideal
낭만주의 선언
The Romantic Manifesto

파일:THE NEW LEFT.jpg
파일:ARO_NonFiction_Intro_to_Objectivist_Epistemology.jpg
파일:PHILOSOPHY WHO NEEDS IT.jpg
1971년
1979년
1982년
신좌파 : 반 산업 혁명
The New Left: The Anti-Industrial Revolution
객관주의자 인식론 입문
Introduction to Objectivist Epistemology
철학 :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
Philosophy: Who Needs It[19][20][21][22]

5.3. 시나리오[편집]


발매연도
제목
1934년
1월 16일의 밤, Night of January 16th
1940년
무조건, The Unconquered
1945년
사랑의 편지, Love Letters
1945년
you came along
1949년
파운틴헤드,[23] The Fountainhead

5.4. 수필, 칼럼[편집]


아인 랜드의 역대 수필과 칼럼이 전부 기록되어 있다.

6. 어록[편집]


"질문은 내가 무언가를 하도록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생각하도록 멈추게 한다."


"창의적인 인간은 남을 짓밟으려는 욕구가 아닌 성취를 원하는 바람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는다."


"자신을 소중하게 하는 법을 배워라. 당신의 행복을 위해 싸워라."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행복의 성취는 인생의 유일한 도덕적 목적이며 고통이나 어리석은 자기 방종이 아닌 행복은 가치관의 성취에 대한 충성심의 증거이자 결과이기 때문에 도덕적 청렴성의 증거다."


"지구상에서 가장 소수자들은 개인이다. 개인의 자유를 부정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소수자들의 보호자'라고 주장해선 안된다"


"우리는 궁극적인 반전의 단계에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 정부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는 단계, 시민들은 허락에 의해서만 행동 할 수있는 단계다. 그것은 인간 역사의 가장 어두운 시대의 단계 인 무차별 한 힘에 의한 통치의 단계다."


"성공의 사다리를 오르는 최선의 방법은 기회의 발판을 밟아가며 올라가는 것 이다"


"진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찾는 사람들을 위한 것 이다."


"개인의 권리는 도덕법에 사회를 종속시키는 수단이다."


"사랑은 하나의 가치관을 표현한 것으로, 당신이 성격과 인격에서 성취 한 도덕적 자질,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덕목에서 받는 기쁨을 위해 지불 한 감정적 가격에 대해 얻을 수있는 가장 큰 보상이다."


"가치가 아닌 악은 결핍과 부정이며, 악은 무능력하고 힘이 없지만 우리가 그것을 우리에게 강요하게 하는 것 입니다.."


"상류층은 국가의 과거다.. 중산층은 국가의 미래다."


"공산주의자의 주요 목적은 독립적인 일, 독립적인 행동, 독립적인 재산, 독립적인 생각, 독립적인 마음, 또는 독립적인 사람의 모든 형태의 독립을 파괴하는 것이다."


"힘과 마음은 상반된다. 도덕은 총이 시작되는 곳에서 끝난다."


"개인의 권리는 공개 투표의 대상이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수파의 권리를 투표권을 행사할 권리가 없다. 권리의 정치적 기능은 소수 집단을 다수에 대한 억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 이다."


"신앙"은 어떤 이상적인 내용에 대한 맹목적인 수용, 증거가 없거나 증거가 없는 느낌으로 유도 된 수용을 나타낸다."


"돈은 단지 도구 일뿐이다.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데려 갈 수 있지만 그것은 당신을 운전사로 대체하지 않을 것 이다."


"행복은 자신의 가치를 성취함으로써 일어나는 의식의 상태다."


"정치적 맥락에서 자유는 오직 한가지 의미를 가진다 : 물리적 강제의 부재 ."

― Capitalism: The Unknown Ideal, 46


"자유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요구하지 않는 것,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는 것, 그리고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 The Fountainhead


사회주의파시즘의 차이는 피상적이며 순전히 형식적이지만 심리적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계획 경제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개방적으로 가져온다.

사회주의(공산주의)의 주된 특징은 생산 수단의 공공 소유이며 따라서 사유 재산의 폐지이다. 재산에 대한 권리는 사용 및 폐기의 권리다.

파시즘 하에서 사람들은 사유 재산의 외관이나 허위를 유지하지만 정부는 그 사용과 처분에 대한 완전한 권한을 가지고있다 . 파시즘에 대한 사전 정의 는 다음과 같다 : "강력한 중앙 집권력을 가진 정부 체제. 야당이나 비판을 허용하지 않고 모든 업무를 통제한다. 국가 (산업, 상업 등)의 적극적인 민족주의를 강조한다."

파시즘 하에서 시민들은 재산 소유의 책임을 지키며, 행동의 자유가없고 소유권의 장점도 없다. 사회주의 하에서 정부 관료들은 시민들은 재산권에 대한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소유권의 모든 이점을 얻는다. 적어도 소유권을 사용할 권리는 있다. 두 경우 모두 정부 관료들은 시민들에게 경제적, 정치적, 법적 또는 법적으로 생명이나 사망의 힘을 부여한다.

말할 필요도없이, 소득 불평등과 생활 수준의 불평등은 자유 경제체제 하에서 보다 훨씬 크며, 사람의 지위는 생산력과 성취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힘과 힘에 의해 결정된다.

두 시스템 모두에서 희생은 어떤 위기에서도 마술적이고 전능 한 해결책으로 불려지며, "공익"은 희생자가 희생 된 제단이다. 그러나 강조의 문체적인 차이가 있다. 사회주의 - 공산주의는 어떤 불확실한 미래에도 희생자들에게 풍요롭고 물질적인 안락함과 안전을 가져다 준다고 선동하다. 파시스트 - 나치는 물질적 안락함과 안전을 경시하며 정의되지 않은 종류의 영적 의무, 봉사와 정복을 격찬한다. 사회주의 - 공산주의는 희생자들에게 사회적 이념이라고 주장한다. 파시스트 - 나치는 인종 또는 민족의 불특정 형태에 관한 이야기를 제공한다. 사회주의 - 공산주의는 해마다 실패하는 장대한 경제 계획을 선포합니다. 파시스트 - 나치는 단순히 목적, 프로그램이나 방향이 없는 리더십, 권력을 위한 권력 등 리더십을 앗아 갈 뿐이다.

“THE FASCIST NEW FRONTIER”


7. 평가[편집]


"랜드는 1982년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정부의 팽창에 대한 두려움이 새로운 수준에 도달할 때마다 그녀의 생각은 새로운 삶을 얻는다. 가장 최근에, 그녀는 시장이 붕괴된 해와 오바마 대통령의 선거 때인 2008년에 인기가 급상승했다. 타임지는 당시 "불안한 경제가 랜드의 유산에는 좋은 소식이었다"고 언급했다. (중략) 그녀의 생각은 정부의 규제를 우려하는 실리콘 밸리의 가장 유명한 기업가들을 많이 인도하고 있고, 그리고 미국 고위직 중 일부는 현재 랜디안[24]

들에 의해 운영된다. 아틀라스의 사본을 직원들에게 준 것으로 알려진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랜드를 "공직에 들어간 이유"인 "사상가 중 한 명"이라고 불렀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4월 USA투데이에 파운틴헤드의 주인공과 동일시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모든 것"과 관련이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타임지[25]


아인 랜드의 새 시대: 어떻게 그녀는 트럼프와 실리콘밸리를 이겼는가 / 가디언지

미국 문학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위치는 독특하다. 많은 면에서 그녀는 역설적이다. 대중적인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상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졌으며, 강렬한 개인주의자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았으니 말이다. 정치적으로나 심미적으로나 그녀는 동시대의 문화적인 조류를 거부했다.

아인 랜드의 소설들은 가장 대표적인 자유지상주의 소설가로서 잘 알려진 SF 문학의 거장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들과 비교해도 한층 더 명확하고 선명한 이념적 방향성을 지향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자유의지주의 사상을 다룬 픽션의 진정한 시초는 로버트 하인라인이 아닌 아인 랜드였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그런 만큼, 아인 랜드의 소설들에 대해서는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들보다도 좋게 말하자면 한층 더 과감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한층 더 과격하다고 평가되는 것이 평론가들과 대중의 보편적인 평가인 듯. 또한 위에서도 언급된 이야기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자유의지주의 소설로 꼽히는 작품인 '움츠린 아틀라스'를 탄생시킨 작가가 실은 자유의지주의를 혐오하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여러모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인 랜드의 소설들이 미국 내에서는 여전히 대단한 인기를 자랑하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 고전 소설로서 추앙받지만, 미국 외의 다른 국가들에서는 자유지상주의 사상을 다룬 픽션을 접하기 위한 입문작으로서 아인 랜드의 소설들보다는 오히려 로버트 하인라인 등의 다른 작가들의 소설들을 추천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이러한 아인 랜드의 어떤 의미로는 지나칠 정도의 과감함과 과격성 때문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 독자들이 읽다가 주화입마를 해서 사상이나 이념의 타락과 흑화를 하기가 너무나 쉬운 작품들이란 것. 당장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들만 해도 비슷하게 주화입마의 위험성이 높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 지라 읽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편인데, 그보다도 한층 더 강도가 센 아인 랜드의 소설들이라면..

1991년 미국 의회 도서관과 '이 달의 책 클럽(Book of Month Club)’'이 공동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으로 <움츠린 아틀라스>가 성경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미국 출판사인 랜덤하우스 산하 조직인 모던 라이브러리는 20세기 영어권 소설 '20세기 위대한 책 베스트 100' 을 발표했고 일반독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움츠린 아틀라스(Atlas Shrugged)'가 1위를, 소설 '파운틴헤드 (水源.TheFountainhead)' 2위, '우리는 너무 평등하다 (頌歌.Anthem)'가 7위, '우리 존재들 (We the Living)'이 8위를 차지했다. 단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한 결과에서는 한 개의 책도 올라오지 못했다. 평단과 대중들의 그녀에 대한 극단적인 반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기도 하다. 2018년 PBS가 발표한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에서 아틀라스가 20위를 차지했다.[26]

소설의 인기와는 별개로 필력은 좋게 평가 받지 못한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이나 그녀를 싫어하는 대부분의 미국 네티즌들은 지루하다거나 끔찍하다고 말하며 작문 스타일을 깐다.

2007년 미국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은 이후 2009년 한 해 움직이는 아틀라스의 판매량만 50만 부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미국의 금융지주회사 BB&T코퍼레이션이 2008년 마샬 대학 경영대학원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아인 랜드의 사상을 정규 과정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피츠버그 대학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교와 시설들 또한 이 조건으로 기부금을 수령한 학교 중 하나다. 또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이 책을 무료 보급하기 위해 아인 랜드 연구소에 막대한 돈을 기부했을 정도이다.[27]

비록 아인 랜드가 "보수적"과 "자유주의적"이라는 꼬리표는 거부했지만, 랜드는 우파 정치와 자유주의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미국 자유당의 창립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놀란은 “그녀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자유지상주의 운동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미국 최대의 자유지상주의 싱크탱크 ‘케이토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Jim Powell은 랜드를 현대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자유지상주의자 중 한 명으로 간주했고, 저널리스트 브라이언 도허티는 그녀를 "20세기 대중들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자유주의자"이라고 설명했고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 조지 레이스만은 그녀를 “특히 자본주의의 경우에 철학적인 기초를 제공하는 것으로 인용되어야 하며, 자본주의의 현재 확산에 대해 누구보다 더 책임감을 갖는 것으로 인용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랜드를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는 정치인들은 랜드가 무신론이나 낙태를 지지한 이례적인 입장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보수주의자들이다. 공화당 의원들과 보수파 전문가들은 그녀의 삶에 대한 영향력을 인정했고 그녀의 소설을 추천했다.[28]

7.1. 비판과 논란[편집]


당신이 아인 랜드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일어나는 일

There are two novels that can change a bookish fourteen-year old’s life: The Lord of the Rings and Atlas Shrugged. One is a childish fantasy that often engenders a lifelong obsession with its unbelievable heroes, leading to an emotionally stunted, socially crippled adulthood, unable to deal with the real world. The other, of course, involves orcs."

책을 좋아하는 14살 꼬마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소설이 두 개 있다: 반지의 제왕움츠린 아틀라스다.

하나는 말도 안 되는 영웅들에 대한 집착을 발생시키는 유치한 판타지로, 당신을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감정적으로 결여된 사람으로 만들 것이며, 다른 하나는 오크가 좀 나온다.

- 존 로저스, 미국 작가


학계에서는 그녀의 사상을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간주하며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구라는 한정된 환경 속의 한정된 자원을 모든 개인이 무한히 얻으려고만 한다면 사회는 필연적으로 붕괴되어 공멸하기 때문이다. 이는 게임 이론 등 이미 수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또한 어느 개인만이 공익을 무시한 채 자기의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면 배제된 자들이 봉기나 반란, 혁명을 일으킨다는 사실은 역사가 말해준다.

그녀는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주의를 옹호했지만, 세습 자본주의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분배나 기부가 없으면 필연적으로 금수저는 금수저를 낳고, 능력에 상관없이 고등 교육을 받고 자아 실현을 할 기회가 높아진다.

또 그녀는 자신의 사상과는 반대되는 말들을 했다. 제4차 중동전쟁에 대해 이스라엘을 지지하며 미국이 이스라엘을 군사 지원 등 온 힘을 다해 도울 것을 주장했다. 랜드는 기부를 나약한 자들의 위선이라고 한 사람이다. 그리고 아랍인들은 대부분 유목민이고 야만스럽다라고 하였다.[29] 인종차별에 반대했던 견해와는 모순된다.[30] 아인 랜드가 이스라엘을 도울 것을 우겼던 1900년대와 달리 시간이 지나 2000년도부터는 미국-이스라엘 관계의 뒤틀린 면모들[31]국제정치학 학계에 의해 실상이 낱낱히 파헤쳐지고 폭로됐다.[32]

또한 노예제는 모순적이지만 노예무역의 경우 흑인 노예들이 많은 경우 같은 흑인 부족에 의해 팔렸다면서 미국의 노예제를 합리화했다. 그리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야만스럽고 재산권이란 개념조차 없었고, 백인은 문명의 요소를 신대륙에 가져왔으므로 신대륙에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33] 또한 미국에서 태어나 야만스럽게 행동했으므로 여기서 살 권리가 없다면서 원주민 학살을 정당화했다.[34] 이 또한 인종차별적이며, 개인의 권리에 대한 그녀의 견해와 모순된다.

아인 랜드는 말년에 메디케어와 노후연금을 수령에 대해 사회복지사 Evva Pryor의 건의를 받아들여 신청하였는데, 이를 아인랜드의 철학과 안맞는다고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아인랜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메디케어와 사회보장의 신청 시기인 1976년보다 10년이나 이전에 The Objectivist를 통해서 이에 대한 철학적 견해를 밝혀둔 바 있다. 랜드의 건강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1974년이다. 요약하자면 정부가 복지라는 이름으로 소득을 강탈해 갔기에 다시 되찾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The Question of Scholarships,”The Objectivist, June, 1966, 11)

"많은 학생들이 이와 같은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장학금을 받는 것이 윤리적인 것인가?"(그것이 개인장학금이던, 공적 장학금이던), 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이 정부의 보조금이나 공무원 일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인가?"

나(아인랜드)는 서둘러 "됩니다.(Yes)"라고 답하고, 그에 대한 적법함을 설명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슈들에 대한 혼란은 주로 이타주의적 도덕성의 영향과 함축으로 일어납니다.

사학 장학금을 받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됩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즉, 그는 타인을 도울 의무가 없으며, 그에게 타인의 도움을 요구할 권한또한 없다는 것)이 자발적인 선행을 배제하거나 금지하지 않으며, 비 희생적인 지원 또한 제공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공 장학금의 경우에는 이와 다른 원칙이 적용됩니다. 공공 장학금을 수령할 권리는 강제로 사유재산들을 빼앗긴 희생자들에게 있습니다. 공공 장학금 수령자는 그것에 반대하고, 그것을 빼앗긴 사유재산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도덕적으로 정당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공공 장학금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는 도덕적인 자격이 없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에게는 윤리적 정당성이 있지만요. 이것이 역설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이것은 복지국가의 도덕적 모순에 의한 것입니다.

그 누구도 타인들의 권리를 빼앗을 권리가 없으며, 누군가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이득을 위해 다른 누군가의 재산을 빼앗을 수 있는 정부의 권리 또한 없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인 면에서, 복지국가의 옹호자들과 지지자들은 그들의 반대자들의 재산을 강탈한 도덕적인 죄악이 있습니다.

그리고 강탈이 합법화되었다는 사실은 도덕적으로 나빠질 뿐이며,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강탈의 희생자들은 강탈자들에 강탈당한 상처에 더해서 스스로 희생된 순교자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강탈의 희생자들은 그 강탈자들에게 돈을 요구했던 기생충들에게만 분배하도록 허용함으로서 그들에게 두배로 이득을 보게할 필요가 없습니다. 복지국가법이란 것으로 그들에게 약간씩 보상을 해줄때마다 강탈에 동의하지 않은 희생자들에게서도 그것을 가져가기 때문이지요.

이와 동일한 도덕적 원칙과 고려사항이 사회보장, 실업급여, 또 기타 종류의 지급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런 경우에, 희생자들은 자신의 선택에 반하여,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동의나 승락도 없이, 강제로 빼앗긴 자신의 돈을 되찾는 것이기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회보장법등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고용주와 원하지 않는 동료들을 강제할 "권리"를 이미 취했기 때문에, 사회보장금 등을 수령할 경우, 도덕적으로 유죄입니다. 그러나 사회보장법 등에 반대하는 희생자들은 자신의 돈을 환불받을 분명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복지국가 정부를 위해 그들의 돈을 청구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그들은 결코 자유를 쟁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그녀의 판타지스러운 사상을 추종하고 맹신하는 세력들을 사이비 종교(Cult)로 취급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아인 랜드 사이비 종교라는 책도 있다. 아인 랜드가 얼마나 사이비 교주와 흡사한가는 미국의 유명 과학 저술가인 마이클 셔머의 저서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를 통해 엿볼 수 있다.[35] 랜드를 다룬 '사이비 과학과 미신' 챕터에서 아인 랜드의 추종자 집단이 신흥 종교의 형성과정에서 보이는 내부 파벌 다툼, 성적, 금전적 문제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폐단이 단순히 랜드의 의도를 곡해한 추종자들의 잘못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려운 것이, 셔머가 지적한 문제점들의 상당수는 랜드의 생전에 일어난 일이며, 그녀 본인도 적지 않게 관여한 바가 있다.

랜드의 그 사상과 표현 방식은 비-학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요인이 되었으나, 학자들에게는 정반대의 결과를 불러왔다. 독자들한테서 받는 질문에 대응하여 그 견해를 발전시키기는 했지만, 제기될법한 여러 반론들에 대응하거나 그 소설에서 나타난 견해들과 조화시키는데는 시간을 거의 할애하지 않았다. 랜드의 철학적 수필엔 분석철학의 자기비판적이며 상세한 양식, 혹은 본인의 견해에 대한 가능한 반론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시도 같은 것은 일체 없다. 그 공격적이며 종종 거만하기까지한 문체, 그리고 여러 팬들이 보이는 교조주의적이며 신흥 종교스러운 행동들 또한 랜드의 작업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요인이기도 하다.[36]

[...]

이런 평가는 랜드의 결론, 그리고 현대 문화, 도덕, 정치에 대한 랜드의 비판이 독창적이며 통찰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덕 윤리학, 이기주의, 권리, 자유지상주의, 시장 같은 현대 철학적 사상을 논의하는 항목들에서 랜드가 그냥 지나가면서나 언급되거나 아예 언급도 안되는건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다. (노직의 정치철학에 관한 항목도 참조하라.)[37]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아인 랜드


학계에서 랜드가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는 결정적 이유는 랜드의 '객관주의'가 동료평가 같은 연구방법론을 통해 검증되지 않았음은 물론, 오히려 이러한 학문적 대화를 무시하며 오직 대중들에게만 호소했다는 점에 있다. ('국민이 주신 박사학위' 참조) 따라서 자유지상주의 등 랜드가 옹호하고자 했던 입장을 보다 진지하게 논증에 입각하여 살펴보기 위해선 로버트 노직 같은 학자의 저서가 추천되지, 랜드의 저작이 추천되는 일은 희박하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 리버테리안이라고 자칭하는 단순한 극우파들을 깔 때 나오는 말 중에 하나가 아인 랜드가 여자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면 미국 내에서 리버테리안들의 숫자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이다.[38]

7.2. 긍정적[편집]


“아인 랜드는 위대한 힘을 가진 작가입니다. 그녀는 섬세하고 독창적인 사고력과 몹시 훌륭하게, 아름답게,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39]

뉴욕 타임스, 1943년 5월 16일


8. 관련 사이트[편집]


  • 아인 랜드 사전
  • 아인 랜드 연구소[40]
  • 아인 랜드 연구소 유튜브
  • Check Your Premises[41]
  • 아인 랜드 연구소 캠퍼스[42]
  • 아틀라스 소사이어티
  • 스탠퍼드 철학 백과사전 - 아인 랜드
  • 객관주의 온라인 포럼
  • The Objective Standard[43]
  • The Undercurrent [44]
  • 레딧 객관주의 모임

9. 관련 문서[편집]


[1] 미국에서 가장 큰 객관주의 철학 비영리단체이다. 랜드가 사망한지 3년 후인 랜드의 제자들이 1985년에 설립했다.[2] #[3] 아인 랜드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담긴 철학 소설이다. 이 사람의 사상을 이해하려면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4] 이들을 '랜드로이드(Randroid)'라 부른다.[5] 그녀의 철학을 지지하고 따르는 사람들을 객관주의자(Objectivist)라고 부른다.[6] 주로 러시아의 신비주의와 정치적인 절대주의에 반대하여 유럽의 문명과 영국의 정치제도를 옹호하는 부류의 글들이었다.[7] 이는 사실 그녀의 평생 지속된 요소이기도 했다[8] 그도 '왕 중 왕'에 엑스트라로 나왔었다.[9] 조세프 콘라드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를 연상시킨다[10] 마가렛 대처는 그녀를 숭배한다고 얘기한 바 있다[11] 빌리 진 킹은 랜드의 영향을 받았다고 얘기하고 있다[12] 앨런 그리스펀은 자신의 사고형성에 끼친 랜드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고 얘기한다[13] 랜드를 기리기 위해 인용문집을 발간했다[14] 이를테면 미국 공립학교제도, 로맨티시즘, 인종주의[15] 암으로 한 쪽 폐를 잃었다[16] 트럼프는 건설/부동산 재벌인데, 이 소설은 건축계를 다룬다.[17] "성가"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2014년 세계 과학 소설 협회가 수여하는 레트로 휴고상 (Retro Hugo Award) -1938년 출간 소설 부문 중 5대 중편 소설로 선정되었다[18] "마천루"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뉴욕 타임스는 "당신은 《파운틴헤드》를 읽으면서 토마스 만의 《마의 산》과 헨릭 입센의 《건축가 솔네스》 같은 걸작을 떠올릴 것이다. 에인 랜드는 토마스 먼과 헨릭 입센에 비견할 만한 저력 있는 작가이다."라고 평했다.[19] 철학,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는 1982년 3월에 타계하기 전에 아인 랜드가 계획했던 공식적인 마지막 저서이다. 이 에세이 모음에서 아인 랜드는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철학을 정립하기 위해 필요한 몇몇 단계들을 설명한다. 그녀는 독자가 그 자신, 혹은 국가 속에서 작용하고 있는 숨겨진 전제들을 어떻게 알아내고 평가할 것인가를 가르친다. 그녀는 철학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다스리는가, 또한 추상적인 이론이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는가, 그리고 언뜻 보기에는 단순히 학술적 관심사인 것처럼 보이는 가장 난해한 사상에서조차도 어떤 심오한 실존적 결과들이 비롯되고 있는가를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어떤 사상이 이성적일 경우 그 결과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보존하는 반면, 비이성적일 경우 결과는 그 반대가 된다고 설명한다. 수천 년 동안 인간들에게 가해진 명령과는 반대로 아인 랜드는 객관성이 곧 '사심(私心)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철학에 대해 객관주의자들이 말하는 일련의 '자기애'와 비슷한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기적이게도 자신의 행동과 삶을 위해서 어떤 사상이 옳은지를 알고자 했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이 철학을 필요로 한다면 그는 오로지 현실에 부합되는 진실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이 책에서 아인 랜드는 주장한다.[20] 이 책을 처음으로 제안했던 사람은 캐나다인 객관주의자인 월터 헤브셔(Walter Huebscher)였다. 1981년 가을, 그는 랜드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 "당신의 글에서 당신은 모든 사람이 한마디 말을 할 때마다 어떻게 철학적 전제들을 이용하고 있는가를 드라마틱하고 자세하게 논하고 있지요…… 만일 그러한 글들을 모아 책으로 출판한다면, 철학이 얼마나 강력한 영향력을 갖는지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오늘날 가장 위험한 몇몇 경향들의 철학적 근원이 무엇인가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또한 문화적 추세를 뒤바꿀 수도 있다는 것, 즉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일을 하는 데 관여할 수도, 또 관여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랜드는 대체로 자신의 서한집 <아인 랜드 서한>에서 발췌해 단행본을 발간한다는 헤브셔의 생각에 매우 흡족해 하며, 그녀 자신이 가장 아끼던 글 철학,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를 그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그후 여러 달 동안 그녀는 출판가 봅스 메릴, 그레이스 쇼, 여러 친구들 및 동료들과 여러 차례 이 책을 과연 어떤 책으로 꾸밀 것인지 토론했다. 그녀는 책의 내용과 구조를 일반적인 용어로 설명했고, 꼭 포함시켜야 할 글들과 빼도 무방한 글들을 지적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유명을 달리함으로써 이 책에 최종적으로 포함시킬 글들을 결정한다거나, 포함된 글들의 순서를 정하는 일에는 동참하지 못했다. 따라서 가능한 한 랜드가 바람직하다고 얘기했던 바에 따라 그녀가 못 다 내린 결정을 내리는 일을 내가 맡게 된 것이다. 다른 선집에서 그녀가 취한 바를 따라 나는 보다 이론적인 글들을 책의 서두에 놓았으며, 보다 구체적인, 그리고(혹은) 본질적으로 비평에 해당되는 글들은 그 다음에 위치시켰다. 여기에 포함된 모든 글들은 전에 단행본에 실린 적이 없는 것들이다.[21] 이 책의 제목을 따온 글 철학,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의 다음에 실린 글은 원래 철학,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하는가의 참고용으로 씌어진 것이다. 그 다음에 오는 글들은 객관주의 철학을 다루고 있는 일련의 글들이다. 이러한 글들 중 첫 글(3장)은 과연 어떤 것을 변화가 가능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한가를 논하고 있는데, 여기서 아인 랜드는 객관주의 형이상학의 한 요소인 존재의 최우위성을 그 어느 글에서보다 가장 알차게 논하고 있다. 그 뒤에 나오는 글들(4장 및 5장)은 반 개념적 정신성을 논함으로써 오히려 객관주의 인식론의 한 요소를 보여주고 있다. 즉 그러한 글들은 인간적인 유형의 지식, 즉 개념을 완전히 발전시켜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준다. 체스의 대가인 소련의 보리스 스파스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6장)은 인간의 삶에서 철학의 한 지파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하나의 놀라운 예로써 요약해 보여준 작품이다.[22] 한 개만 빼고 여기 실린 모든 글들은 모두 1970년에서 75년 사이에 씌어진 것이다. 믿음과 힘: 현대세계의 파괴자들(7장)이라는 글이 그 예외인데, 이는 움츠린 아틀라스가 출간된 지 몇 년 후 예일대학에서 맨 처음 강연한 것이다. 이 연설은 객관주의 및 아인 랜드의 현대세계에 대한 시각을 단순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 뒤에 나오는 글들(8∼13장)은 본질적으로 칸트와 그의 몇몇 추종자들, 이를테면 평등주의 운동과 스키너를 논하고 있다. 랜드가 생전에 흔히 받던 질문 중의 하나는 오늘날의 권력가들 중에는 왜 좋은 사상을 옹호하는 자가 거의 없느냐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그러한 질문에 대한 그녀 자신의 대답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정치적 글 두 편(14, 15장)을 이 책에 포함시켰다. 이 글들에는 우리의 문화적 삶을 파괴하기 위해 정부가 요즈음 사용하는 방법들이 논의되어 있다. 이 글들 다음에 나오는 글들(17, 18장)은 아인 랜드가 반복해온 질문, 즉 오늘날의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다.[23] 영화판, 각본을 각색[24] 아인 랜드의 추종자들을 일컫는 용어[25] 2018년 기사[26] 출처[27] 참고로 아인 랜드 연구소는 미국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움츠린 아틀라스를 포함한 랜드의 작품들을 매년 400,000부씩 기증한다. 랜드는 기부행위 자체를 나약한 자들의 위선이라고 하였는데, 이들은 랜드의 사상과 반대되는 짓을 하고 있다.[28] 특히 티 파티 운동의 큰 영향을 끼쳤다.[29] 이는 사실이 아니다. 아랍인들을 유목민이라고 하나로 묶어서 보기엔 너무나 다양하다. 아랍인들은 이미 중세에 유목민과 자신들을 구분지었고 세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이슬람 문명의 건설자들이었다. 이슬람 정복 초기까지는 아랍인들이 유목민들의 후손들이었을지언정 우마이야, 아바스 왕조 시기를 거치면서 도시민, 정착민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아라비아는 무함마드 당대에도 농경과 어업, 무역에 종사하는 아랍 남부인들과 목축과 무역에 주로 종사하던 아랍 북부인들을 구분짓던 상황이었다. 아인 랜드는 아래에도 후술되어 있지만, 여러 문화권과 역사에 대한 지식 수준이 대단히 부족한 사람이다.[30] 원문:Ayn Rand on Israel (Ford Hall Forum lecture, 1974) Q: What should the United Sates do about the (1973) Arab-Israeli War? AR: Give all the help possible to Israel. Consider what is at stake. It is not the moral duty of any country to send men to die helping another country. The help Israel needs is technology and military weapons—and they need them desperately. Why should we help Israel? Israel is fighting not just the Arabs but Soviet Russia, who is sending the Arabs armaments. Russia is after control of the Mediterranean and oil. Further, why are the Arabs against Israel? (This is the main reason I support Israel.) The Arabs are one of the least developed cultures. They are typically nomads. Their culture is primitive, and they resent Israel because it’s the sole beachhead of modern science and civilization on their continent. When you have civilized men fighting savages, you support the civilized men, no matter who they are. Israel is a mixed economy inclined toward socialism. But when it comes to the power of the mind—the development of industry in that wasted desert continent—versus savages who don’t want to use their minds, then if one cares about the future of civilization, don’t wait for the government to do something. Give whatever you can. This is the first time I’ve contributed to a public cause: helping Israel in an emergency.[31] 미국이 이스라엘을 도와야하는 것은 맞으나 미국 사회에서 생각하는 것 만큼 적극적으로 도울 필요는 없다. 이스라엘은 오래전부터 미국에게서 이스라엘이 실제 필요한 것 이상으로 지나치게 과도한 해택과 지원을 받고 있다.[32] 특히 미국에서 아인 랜드와 같은 친이스라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배경과 이들의 주장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미국 사회, 정계, 외교 정책에서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드러났다.[33] 이도 사실이 아니다. 원주민 중에선 재산권이란 개념을 서양의 방식과 완벽히 대칭되진 않더라도 명백히 가지던 부족이 있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북부 클라마스 강 주변에 살던 유록(Yurok)족은 재산권의 개념이 극단적인데, 돈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고, 남편이 아내와 자녀들을 소유물로 간주해서 사고 팔수 있으며, 형법은 없고 상법만 존재해서 상해조차도 돈으로 물어줬다고 한다(<혁명을 위하여>(P335~336)).[34] 출저:Libertarian superstar Ayn Rand defended Native American genocide: “Racism didn’t exist in this country until the liberals brought it up”[35] 마이클 셔머 본인도 젊은 시절에 랜드의 철학에 깊이 매료된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책에서 랜드의 철학을 직접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랜드의 악성 팬덤에 대해서는 한 챕터를 할애하여 신랄하게 비판했다.[36] Whereas Rand’s ideas and mode of presentation make Rand popular with many non-academics, they lead to the opposite outcome with academics. She developed some of her views in response to questions from her readers, but seldom took the time to defend them against possible objections or to reconcile them with the views expressed in her novels. Her philosophical essays lack the self-critical, detailed style of analytic philosophy, or any serious attempt to consider possible objections to her views. Her polemical style, often contemptuous tone, and the dogmatism and cult-like behavior of many of her fans also suggest that her work is not worth taking seriously.[37] This estimate is shared even by many who find her conclusions and her criticisms of contemporary culture, morality, and politics original and insightful. It is not surprising, then, that she is either mentioned in passing, or not mentioned at all, in the entries that discuss current philosophical thought about virtue ethics, egoism, rights, libertarianism, or markets. (Readers may also find the entry on Nozick’s political philosophy to be of interest.)[38] 이것에 첨언해서 "그녀가 유태인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남아 있던 사람들 중에 반도 도망가겠지"라고 하기도 한다.[39] Battle Against Evil; THE FOUNTAINHEAD. By Ayn Rand. 754 pp. Indianapolis, Ind.: The Bobbs-Merrill Co. $3[40] 아인 랜드의 철학을 가르치고 그것을 적용하는 기사를 쓰는 최대의 객관주의 단체.[41] 학부 철학자가 현대 학술 문헌과 함께 아인 랜드의 철학을 논의하는 블로그.[42] 객관주의에 대한 자세한 학습을 위한 무료 강의를 하는 곳.[43] 객관주의자 정기 간행물.[44] 대학생들의 잡지 기사를 출판하고 객관주의 지지 학생들의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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