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자케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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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자케로니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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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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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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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대


클럽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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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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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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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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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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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46대





알베르토 자케로니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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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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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파일:자케로니.jpg

이름
알베르토 자케로니
Alberto Zaccheroni
출생
1953년 4월 1일 (71세)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 멜도라
국적
[[이탈리아|

이탈리아
display: none; display: 이탈리아"
행정구
]]

신체
176cm / 체중 73kg
직업
축구 선수 (수비수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AS 레알 체세나티코 (1968~1970)
감독
AS 레알 체세나티코 (1983~1985)
ASD 리초네 1929 (1985~1987)
ASD 보카 피에트리 (1987~1988)
바라차 루고 (1988~1990)
베네치아 FC (1990~1993)
볼로냐 FC 1909 (1993~1994)
코센차 칼초 (1994~1995)
우디네세 칼초 (1995~1998)
AC 밀란 (1998~2001)
SS 라치오 (2001~2002)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03~2004)
토리노 FC (2006~2007)
유벤투스 FC (2010)
일본 대표팀 (2010~2014)
베이징 궈안 (2016)
아랍에미리트 대표팀 (2017~2019)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3.1. 우디네세
3.2. AC 밀란
3.3. 라치오
3.4. 인테르나치오날레
3.5. 토리노
3.6. 유벤투스
3.7. 일본 대표팀
3.8. 베이징 궈안
3.9. 아랍에미리트 대표팀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이탈리아축구 감독.

그는 이탈리아에서 수많은 팀을 맡았고 특히 AC 밀란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년 간 일본 대표팀을 이끌며 이른바 '자케로니 재팬'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당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나 일본에서나 매번 중요한 고비를 넘지 못하고 무너지는 일이 많았으며, AC 밀란을 제외한 빅클럽에서 모두 실패하면서 'B급 감독'이라는 오명을 사고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그의 선수 시절은 그야말로 초라하다. 여러 유소년 아카데미를 거쳐 10대 시절에 AS 레알 체세나티코(현재는 세리에D에 속함)에 입단했으나 얼마 안가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바람에 데뷔도 못해보고 은퇴하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했던 그는 코치 연수를 받은 후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1983년 30세의 나이로 체세나티코의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이후 이탈리아의 여러 군소 클럽을 맡으며 경험을 쌓아갔다. 그중 볼로냐에선 세리에 B에서 강등 위기에 처한 팀을 구하는 활약을 보여줬고 이듬해에 팀을 세리에 A로 승격시킬 뻔했지만 아쉽게도 승격에 실패했다.


3.1. 우디네세[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Modulo_3-4-3_Zaccheroni.png

우디네세 시절 자케로니의 3-4-3 포메이션

1995년 우디네세 칼초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진가를 드러냈다. 자케로니는 팀의 포메이션을 3-4-3으로 맞추고 첫 시즌에 5위를 기록했으며 두번째 시즌에는 3위를 기록하며 전력이 부족하다는 평을 받던 우디네세를 일약 세리에 A의 준수한 팀으로 끌어올렸다. 이러한 활약을 눈여겨보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밀란 구단주는 1998년 여름 자케로니를 전격 AC 밀란의 감독으로 영입했다.


3.2. AC 밀란[편집]


파일:external/styleoflife21.files.wordpress.com/alberto-zaccheroni.jpg

자케로니의 감독 인생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시기는 바로 AC 밀란을 맡았을 때였다. 당시 AC 밀란은 96-97 시즌 11위, 97-98 시즌 10위에 그치며 2년 연속 클럽대항전 진출에 실패하는 정체기에 접어 들었고, 그 틈을 타 피오렌티나와 파르마가 치고 올라가면서 이른바 '7공주 시대'를 예고하고 있었다. 그래서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세리에 A에서 우승하는 것이 어렵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자케로니는 이 무시무시한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는 AC 밀란에 부임한 후 첫 시즌인 1998-99 시즌에 경쟁자들의 견제를 뚫고 스쿠데토를 차지했다. 1999-00 시즌에는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3위를 기록하여 무난히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따냈다.[1] 하지만 2000-01 시즌에 성적이 다시 중위권으로 떨어지자 2001년 봄 전격 경질되고 말았다.


3.3. 라치오[편집]


AC 밀란에서 경질된 자케로니는 2001년 가을 SS 라치오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라치오는 시즌 초반 끔찍한 경기력을 보이며 강등권에 처지고 있었다. 자케로니는 이 팀에 부임한 후 경기력을 회복시키는 데 성공했고 라치오는 그 덕분에 6위를 기록하며 유로파 진출권을 확보했다. 하지만 라치오의 철천지 원수인 AS 로마에게 5:1로 대패하는 바람에 팬들의 원성을 샀고 결국 여론의 압박에 못 이겨 시즌이 끝난 뒤 사임해야 했다.


3.4. 인테르나치오날레[편집]


2003년 가을, 그는 이번엔 성적 부진으로 곤경에 처했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우디네세와 AC 밀란에서 시절 좋은 추억을 함께 했던 선수였던 토마스 헬베그와 재회하기도 했다. 이후 그는 챔피언스리그에서 전임 엑토르 쿠페르가 원정에서 3:0으로 이긴 바 있던 아스날에게 오히려 홈에서 5:1로 대패하며 조별예선에서 광탈하는 재앙에 직면했지만 그래도 팀을 수습하는데 성공하여 리그를 4위로 마감할 수 있었고 인터밀란은 다음 해에도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했다. 그러나 인테르의 구단주 마시모 모라티는 자케로니가 거둔 성과에 만족하지 않고 얼마 안가 그를 경질했다. 참고로 자케로니가 라치오에서 경질되었을 때 그의 뒤를 이은 사람은 로베르토 만치니였고 인터밀란에서 경질되었을 때도 그의 뒤를 이은 이는 바로 로베르토 만치니였다.(...) 애제자였던 헬베그는 인테르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스승인 자케로니가 경질되자 한 시즌 만에 자유이적으로 떠나 노리치 시티와 계약했다.

2002 월드컵 이후로 막 유럽 축구를 접하기 시작한 한국 축구팬들은 이때의 무기력한 자케로니의 모습을 보며 졸장 취급 하며 짜짜로니라는 조롱이 섞인 별명으로 불렀다.


3.5. 토리노[편집]


인터밀란에서 경질된 뒤 2년간 휴식을 취한 자케로니는 한때 크리스탈 팰리스 FC의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루머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는 그곳으로 가지 않고 2006년 9월 7일 토리노 FC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자케로니는 시즌 초반엔 팀을 한때 1위까지 올리며 괜찮은 출발을 보였지만 이내 6연속 패배를 당하며 추락했고 결국 2007년 2월 26일 경질되고 말았다.


3.6. 유벤투스[편집]




2010년 1월 29일, 유벤투스 FC는 성적 부진을 만회하고자 자케로니와 4개월 계약을 체결했다. 그는 2010년 2월 14일에 제노아를 상대로 3:2 승리를 거두면서 유벤투스에서의 첫번재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그는 처음에는 괜찮은 출발을 보였지만 이내 또 추락했고 결국 유벤투스는 7위에 그쳤다. 유로파리그에서는 16강에서 풀럼 FC에 1차전 3:1 승리를 거두고도 2차전 원정에서 1:4 역전패를 당하며 광탈하는 굴욕을 겪었다. 시즌이 끝난 뒤 유벤투스 보드진은 그와 계약 기간을 연장하지 않았고 자케로니는 유벤투스를 쓸쓸히 떠났다.


3.7. 일본 대표팀[편집]


파일:external/assets1.sportsnet.ca/Zaccheroni_Alberto640.jpg

2010년 8월 30일, 자케로니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직을 수락했다. 그는 2년간 2억엔을 받게 되었는데 옵션을 충족시킬 경우 감독직이 2년 더 연장될 수 있었다. 그는 일본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초의 이탈리아 출신 감독이었다. 이후 9월 4일 파라과이전과 9월 7일 과테말라전은 아직 비자가 발급되지 않은 관계로 관중석에서 관전했다.

그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첫번째로 맡은 경기는 10월 8일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친선경기였다. 이날 일본 국가대표팀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1:0 승리를 거두며 전 열도를 열광시켰다. 이후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에서는 16개국 본선 조별리그에서 요르단과 비긴 이후 시리아, 사우디아라비아를 누르면서 일본을 8강전에 진출시켰으며, 8강전에서 카타르, 준결승전에서 대한민국, 결승전에서 오스트레일리아를 연달아 격파하면서 일본에 AFC 아시안컵 4회 우승을 안겨주었다. 그는 이러한 공적으로 미국의 스포츠 사이트인 FOX 스포츠가 발교한 "2011년 축구 지도자 베스트 10"에서 10위에 선정되기도 했고 일본 팬들로부터 "자케로니 재팬"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후 그의 지도 하에 일본은 최종예선 B조에서 5승 2무 1패의 성적을 기록 조 1위를 기록하며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32강 본선 진출도 확정지었다. 또한 2011년 아시안컵 우승팀 자격으로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라질에 참가하여 브라질, 이탈리아, 멕시코와 함께 8강 A조에 속했다. 개최국인 브라질을 상대론 3:0으로 패했지만, 2차전에서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막상막하의 경기력을 선보여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비록 4:3으로 석패하긴 했지만, 이날 일본의 경기력은 실로 대단해서 한국인들마저 칭찬할 정도였다. 하지만 3차전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2:1로 패함으로서 3전 전패라는 굴욕을 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2013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도 1차전에서 중국과 비긴 뒤 오스트레일리아와 대한민국을 차례로 연파하며 2승 1무의 성적을 거둬 일본 사상 첫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이내 우루과이, 세르비아,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모두 패했고, 격분한 일본인들 중 상당수는 자케로니를 경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 축구협회는 그에게 1년 더 맡기기로 결정했고, 자케로니는 2013년 11월 유럽으로 원정가서 네덜란드 상대로 2:2 무승부,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3:2 승리를 거두며 경질 여론을 불식시켰다. 이후 치른 평가전들에서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자케로니의 입지는 그야말로 탄탄했다. 이웃나라 한국이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를 잇달아 감독으로 선임하면서 혼란에 빠졌고, 최종예선에서 졸전을 거듭하는 반면, 그가 이끄는 일본 축구 대표팀은 훌륭한 경기력을 연이어 선보이며 최종 예선을 무난하게 통과했고, 평가전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많은 국내 축빠들은 "일본에게 배워야 한다. 우리가 감독을 마구 경질하는 사이 저들은 자케로니를 신임해서 끝까지 갔고 덕분에 월드컵을 순탄하게 가지 않았는가?", "일본이 자케로니 같은 외국인을 감독으로 선임해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듯이 한국도 외국인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일본은 2014년 월드컵 32강 조편성에서는 콜롬비아, 그리스, 코트디부아르와 함게 32강 본선 C조에 속했다. 당시 일본 측은 콜롬비아는 이기기가 좀 힘들지 몰라도 그리스, 코트디부아르는 해볼만한 상대라고 평가했다. 그리스는 이미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한국에게 가볍게 패한 나라고, 코트디부아르는 디디에 드로그바콜로 투레/야야 투레 형제 간의 세력 다툼으로 내분에 시달리고 있다는 루머가 파다했기에 해볼만하다고 여겨졌던 것이다. 자케로니는 "목표는 최소 월드컵 4강이다!"라며 16강 진출을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맞이한 코트디부아르와의 1차전. 일본은 혼다 케이스케의 선제골로 앞서나갔다. 이때만 해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코트디부아르를 잡고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는 듯 했는데...

디디에 드록바의 투입 이후 급격히 무너져 1:2로 패하고 말았다.

뜻하지 않은 일격으로 졸지에 패한 일본이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해볼만 하다는 희망고문 분석이 많았다. 그리스는 한국도 이긴 축구 약소팀으로 여겨졌고, 그들을 격파한 후 콜롬비아와의 일전에서 무승부라도 거둔다면 16강을 노려볼 만 했다. 그런데 일본은 2차전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그리스의 주장 코스타스 카추라니스가 퇴장당하는 호재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심한 골 결정력을 보여준 끝에 결국 0:0 무승부를 거두고 말았다.

이젠 16강 진출이 위태로워진 상황. 그래도 일본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콜롬비아와의 3차전에서 2골차 이상으로 승리를 거두고 그리스가 코트디부아르를 잡아준다면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리스는 코트디부아르를 잡아주었으나, 일본은 후보 선수를 대거 기용한 콜롬비아에 1:4로 대패하고 말았다. 결국 일본 국가대표 선수들은 3전 1무 2패, 대회 29등 2득점 6실점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안고 조국으로 쓸쓸히 돌아가야 했다.

월드컵이 이렇듯 허무하게 막을 내린 뒤, 자케로니는 일본 축구협회와 면담한 후 전격 사임을 선언했다. 그는 "전술이 잘못돼서 졌다. 일본 선수들의 기술과 움직임은 매우 훌륭했지만 피지컬이 부족했고 골을 넣어야 할 때 넣지 못한 것이 화를 초래했다. 이 모든 것은 내 책임이다."라며 일본인들에게 월드컵 조기 탈락한 점을 사과했다.

그래도 그는 일본에서의 4년 동안 A매치 55경기를 이끌어 30승 12무 13패를 기록, 상당히 높은 승률을 기록했다.


3.8. 베이징 궈안[편집]


2016년 1월 19일, 자케로니는 중국 슈퍼 리그의 축구 클럽인 베이징 궈안과 2년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그는 10경기에서 3승 3무 4패를 기록하며 부진에 빠지고 말았다. 베이징 궈안은 그의 지휘하에서 고작 7골만 기록하며 팬들을 실망시켰다. 결국 자케로니는 5월 20일에 전격 경질되었다.


3.9. 아랍에미리트 대표팀[편집]


2017년 10월 17일, 에드가르도 바우사의 후임으로 아랍에미리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에 부임했다.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에서의 우승과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본선 진출을 위해 선임되었다고 한다.

2019 아시안컵에서 준결승전까지 올리는 성과를 올렸으나, 정작 준결승 카타르와의 경기에서 0-4로 참패하며 결승행에 실패했다. 자케로니는 경기 종료 후 아랍에미리트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고, 향후 거취를 묻는 질문에 "계약기간은 아시안컵까지였다"라면서 일단 계약 기간은 끝났다는 언급을 했다. 관련 기사

후임으로 베르트 판마르베이크가 선임되면서 결과적으로 UAE 대표팀과 결별하게 되었다. 이후에는 어느 나라나 소속 팀 감독직을 하지 않고 있다.

2023년 2월 11일에 자택에서 갑자기 의식불명의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 중이다.#


4. 기록[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 바라차 루고 (1988~1990)
    • 세리에 C2: 1989-90





4.2. 개인 수상[편집]


  • 판키나도로: 1996-97, 1998-99
  • 세리에 A 올해의 감독: 1998-99


5. 둘러보기[편집]









[1] 다만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H조 꼴찌로 조기 탈락하면서 단기전에 약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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