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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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경주 이씨(慶州 李氏)의 시조이다. 신라(新羅) 건국의 모태가 된 진한(辰韓) 6부의 하나인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6부 세력은 고조선 유민으로서 진한으로 남하하여 정착하였다고 한다.
2. 상세[편집]
신라 양산촌의 촌장이며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신라 유리왕이 사성정책을 하였을 때 다른 촌장들과 함께 이(李)라는 성씨를 받았고, 경주 이씨의 시조이면서 성주 이씨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상당수 이씨 가문의 비조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알평은 하늘에서 진한 땅 표암봉에 내려와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의 촌장이 되었다고 하는데, 삼국사기와 비교하면 신라 6촌장은 고조선 유민으로서 남하하여 진한에 정착한 것을 알 수 있다.
기원전 69년, 6촌장이 알천의 둑 위에 모여 나라를 세울 것을 논하였다. 마침 남쪽 양산 밑의 나정에서 사내아이를 발견하여 왕으로 삼기로 하고 함께 양육하여 기원전 57년에 왕위에 추대하니 이가 신라 시조 박혁거세이다. 양산촌은 유리왕 9년(서기32년) 급량부(及梁部)로 개칭하고 이씨(李氏) 성을 사성(賜姓)받았다고 한다.
3. 경주 이씨 족보의 기록[편집]
경주 이씨 세전보감에 따르면 알평은 기원전 117년에 하늘에서 진한 땅 표암봉으로 내려온 것으로 수록되어 있다. 자(字)는 천서(天瑞), 호(號)는 표암(瓢巖), 성(姓)은 이(李), 시호(諡號)는 문선공(文宣公) 또는 은열왕(恩烈王)이라 전한다. 혁거세 거서간 때에 개국 좌명공신에 녹훈되고 아찬을 역임하였으며 군무를 주관하였다고 전한다. 경주이씨 세보에 의하면 알평은 200세까지 향수(享壽)하였다고 한다. 법흥왕 23년(서기 535년) 시호를 문선공(文宣公)이라 하였고, 태종 무열왕 3년(서기 656년) 은열왕(恩烈王)으로 추봉되었다. 이때 배위인 태화공주 기씨(泰華公主 箕氏)는 성렬왕비(聖烈王妃)로 추봉되었다.
시조 이알평 이후 900여 년간의 후계가 실전되었다가, 고려말 목은 이색이 찬한 익재 이제현 묘지(墓誌)에 신라말 진골(眞骨) 출신으로 소판(蘇判) 관직에 오른 소판(蘇判) 이거명(李居明) 이후의 계보가 밝혀짐으로써, 이거명을 중시조로 한 계보가 전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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