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미아누스 마르켈리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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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3. 서술 성향
4. 여담



1. 개요[편집]


Ammianus Marcellinus

로마의 군인이자 역사가로 타키투스 이후부터 프로코피우스 이전 시기를 대표하는 역사학자이다. 그의 역사서 Res Gestae는 서기 96년 네르바 황제 치세부터 서기 378년 발렌스 황제가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전사하기까지를 다룬 연대기 형식의 역사서이다. 그의 저서 중 상당부분은 실전되었으나 서기 353년부터 378년까지를 다룬 역사서가 남아서 4세기 로마 제국의 혼란기에 관한 여러 귀중한 정보를 전해주고 있다.


2. 생애[편집]


마르켈리누스는 서기 330년 로마 제국의 동방 속주 페니키아 혹은 시리아 지역 일대의 그리스어를 쓰는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가문명으로 보건데 그리스인 이주민 출신보다는 헬레니즘화된 동방인 가족 출신으로 보인다. 그는 그리스어 외에도 라틴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면 아마도 아람어를 어느 정도 구사했던 것으로 보인다.[1]

마르켈리누스는 콘스탄티우스 2세율리아누스 황제 시절 군인으로 복무하였으며 그가 저술한 역사서에도 참전 경험 및 전쟁과 전투의 경황 등이 상세히 서술되어 있다. 특히 율리아누스의 사산 왕조 페르시아 원정에도 참여하였으며 율리아누스 황제의 최후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을 남겼다. 또한 오나게르 등 무기에 관해서도 언급하였다.

전역한 후에는 로마시에 정착해서 역사서 Res Gestae를 저술하였다. 그의 출생 연도는 정확히 알려졌으나 사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은데 학자들은 그의 사망 연도를 392년 혹은 400년경 즈음으로 추산하고 있다.


3. 서술 성향[편집]


마르켈리누스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지만 기독교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편으로 기독교와 로마 다신교 양자 사이에 최대한 객관적인 시점으로 서술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다. 특히 선대 콘스탄티누스 1세 시절의 기독교 공인 정책을 무마시키기 위한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반기독교 & 이교 부흥 정책과 그 실패에 대한 그의 서술은 중요한 역사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그의 역사서가 실전되지 않은 이유도 이러한 사료적 가치 덕분인 듯 하다. 또한 아리우스파아타나시우스파 사이의 종교적 갈등, 도나투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 사이의 갈등을 기독교도 연대기 작가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4. 여담[편집]


한국에는 아직 그의 저작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지 않았지만, 나름 인지도 있는 역사 학자이다. 《로마 제국 쇠망사》를 저술한 에드워드 기번이 그의 저작을 직접 참고하고 대거 인용한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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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산조 페르시아 원정 와중에서 페르시아인들과 소통한 점이라던지 등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