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라 더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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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압둘라 더 부처.jpg
Abdullah the Butcher[1]
1. 프로필
2. 개요
3. 테마곡
4. 여담
5. 둘러보기


1. 프로필[편집]


파일:Abdullah_The_Butcher_pro.png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본명
로런스 로버트 "래리" 슈리브
(Lawrence Robert " Larry" Shreve)
링네임
Abdullah the Butcher
Kuroi Jujutsushi
Saladin Pikens
Zeras Amala
닉네임
The Madman from the Sudan
Pussycat
출생일
1941년 1월 11일
출생지
캐나다 자치령 온타리오 주 윈저[2]
신장
183cm
체중
163kg
피니쉬 무브
독침 엘보
유형
브롤러 + 하드코어
주요 커리어
NWA 인터내셔널 태그팀 챔피언 1회
NWA 유나이티드 내셔널 챔피언 1회
PWF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P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BJW 데스매치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헤비웨이트 챔피언(디트로이트 버전) 1회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디트로이트 버전) 1회
NWA 센트럴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 2회
NWA 조지아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조지아 텔레비전 챔피언 1회
NWA 마콩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IWA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몬트리올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캐나디안 인터내셔널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MWWF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NWA 캐나디안 태그팀 챔피언(밴쿠버 버전) 2회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밴쿠버 버전) 1회
NWA 뉴질랜드 브리티시 커먼웰스 챔피언 1회
NWA 텍사스 브래스 너클스 챔피언 1회
NWF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NWF 인터내셔널 챔피언 1회
NWA 캐나디안 헤비웨이트 챔피언(캘거리 버전) 1회
스탬피드 노스 아메리칸 헤비웨이트 챔피언 6회
TPW 태그팀 챔피언 1회
WCWA 브래스 너클스 챔피언 1회
WWC 캐리비안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WWC 하드코어 챔피언 1회
WWC 노스 아메리칸 헤비웨이트 챔피언 2회
WWC 푸에르토리코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WWC 유니버설 헤비웨이트 챔피언 5회
트리니다드 & 토바고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2. 개요[편집]


1960년대부터 활동한 프로레슬러. 기믹상 수단 출신이라 영어는 못한다는 설정이 있어 늘상 매니저를 데리고 갔다. 일명 수단에서 온 광인 도살자(Butcher)으로 활동하며 일본, 푸에르토리코 등지에서 악역으로 인기를 담당했다. 그러나 평범한 어감의 본명에서 보듯이 실제로는 영어도 잘하는 캐나다 출신의 아프리카계 캐나다인이다.

WCW에서는 믹 폴리의 추천으로 스팅을 저격하러 온 암살자 기믹으로 활동한다. 일명 '고통을 만드는 사내'로 전일본 프로레슬링이나 푸에르토리코의 프로레슬링 단체 WWC에서 유니버셜 헤비웨잇 챔피언을 5번이나 해 본 적이 있다. 비공식적으로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WCW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차지했다는 기록도 있다.

ECW에서는 타미 드리머, 사부, 믹 폴리 등과 같이 전형적인 하드코어 경기 스타일로 유명했으며, 테리 펑크의 추천으로 2011년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경기력은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고 덩치는 컸지만 근육은 별로 없이 살집이 많고 비만한 체형이라 파워하우스도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빅맨들은 기본적으로 힘이 센데 압둘라는 힘도 덩치에 비해 약했다. 압둘라보다 체급이 작은 선수들 중에도 힘은 압둘라보다 센 선수들이 널렸을 정도. 압둘라랑 비슷한 체격이었던 리키쉬, 맨타우루스, 에이드리언 아도니스 등도 압둘라에 비하면 근육이 많았던데다, 힘도 압둘라보다 강했다. 하지만 특유의 브롤링과 그 자신만의 흉기 등을 살려 하드코어 전문 프로레슬러 타입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며 수많은 명경기와 블러드잡을 보여주었다. 이마의 수많은 찍힌 자국은 오랜 선수 생활의 흔적. 블러드잡의 기준점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다. 물론 2000년대 이후 블러드잡은 인조 피 캡슐을 쓰고 상처를 내는 것은 어지간하면 지양하는 안전한 방식으로 바뀌긴 했다.

특히 포크로 상대 선수의 이마를 찍어버리는게 유명한데, 포크를 무기로 쓰는게 유명한 만큼이나 상대 선수의 반격으로 인해 되려 자신의 이마가 포크에 찍히는 경우도 많았다.

유혈이 낭자하는 경기를 자주 했었고, 미치광이 도살자라는 기믹 때문에 무서운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쾌활하며 가정적인 사람이다.

파일:external/goodmenproject.com/abby0605.jpg

주로 사용하는 흉기는 바로 포크다. 트리플 H슬레지해머핀레이쉴레일리, 믹 폴리의 철선 방망이에 필적하는 유명한 무기로 주로 포크로 상대의 이마를 찍어서 피를 보는 경기를 자주 펼쳤다.

2019년 이후로는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할 정도로 다리가 좋지 않다.[3]



3. 테마곡[편집]






4. 여담[편집]


나이에 비해 상당한 동안 이다. 정확히 말하면 얼굴형이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형태라 나이를 먹은 후에도 젊은 시절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여든이 넘은 지금와서는 얼굴에 꽤 주름살이 보이는등 제법 그 나이대로 보인다는 의견도있다.

한때 1936년생 이라는 설이 돈 적이 있다. 선수시절 본인이 자신의 생년월일을 정확히 공개하지 않은데다가, 동료 선수들과 팬들의 주장으로 그런 설이 돈 것 같다. 지금은 확실히 자신의 출생 증명서로 1941년생이란 사실을 인증했다.

일본에서 더 인기를 끄는 선수였고 코믹스 & 애니메이션에 그를 패러디한 캐릭터가 자주 나왔다. 대표적인 작품이 괴짜가족데이터 이스트의 준공식 마스코트인 카르노브.

대일본 프로레슬링의 터줏대감으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압둘라 고바야시는 본명인 고바야시 요스케로 활동하다 압둘라 부처가 대일본에서 프리 자격으로 경기를 하면서 그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나중에 태그팀 파트너가 되면서 롤모델로 삼고 기믹을 변경하면서 2023년 시점까지 압둘라 고바야시로 활동하고 있다. 대일본이 단체 특성상 하드코어 매치가 많은지라 딱 어울리는 기믹. 본명일 시절엔 체중이 많이 나가진 않았었는데[4] 압둘라 부처와 태그팀을 뛰며 기믹을 바꾼후 의도적으로 체중을 불려서 2020년대 기준 사진을 보면 본명일 시절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체중이 많이 불었다. 지금도 아침식사로 날계란 한판을 맥주컵 두컵분량으로 마시면서 덩치를 유지하는 루틴을 이어가고 있다. 경기 스타일은 롤모델인 부처와 마찬가지로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힘 잘쓰는 파워하우스와는 거리가 멀고 프로레슬러로써 경기력이 좋진 않지만 하드코어 레슬러 다운 기믹수행력은 원조보다도 더 하드코어하게 소화해서 경기중 형광등을 씹어먹는다. 2022년대부터 작은 골격에 너무 큰 체중을 유지하다보니 원조이자 롤모델인 부처 처럼 양쪽 무릎 상태가 상당히 안좋다고 한다. 그래도 롤모델인 부처를 만난뒤 기믹을 바꾸고 크게 성공했으며 돈도 많이 벌었으니 잘된일.

영화 출연 경력이 있는데, 1981년 영화 '로어링 파이어', 1971년 영화 '케이지드 맨' 에 출연하였다.

5. 둘러보기[편집]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1996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jpg
2019년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Ajpw-logo.gif 역대 챔피언 카니발 우승자
1973 , 1974 , 1975

1976

1977 , 1978
자이언트 바바

압둘라 더 부처

자이언트 바바
1977 , 1978

1979

1980
자이언트 바바

압둘라 더 부처

점보 츠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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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어로는 アブドーラ・ザ・ブッチャー[2] 각본상 출생지는 수단[3] 고령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하지만 브론슨 리드와 비슷한 수준의 체격에 쳐진 살들을 보면 근육량이 현저히 적은듯 하다. 그로 인해 다리가 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4] 본명 활동시엔 신장도 175cm에 체중도 90kg가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십여군데 이상 프로레슬링 단체란 단체는 다 오디션을 보러갔으나 운동능력도 별로고 외모도 그저그런 고바야시는 테스트도 못보고 낙방하기 일쑤였다가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원서를 낸곳이 바로 대일본 프로레슬링이었고 이곳이 평생직장이 될거라고는 당시엔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