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호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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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ff0015> [[NBA/퍼시픽 디비전|{{{#ffffff '''퍼시픽'''}}}]] || [[새크라멘토 킹스|[[파일:external/oi64.tinypic.com/34694b8.png|height=35]]]] ||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파일: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심볼.svg|height=35]]]] ||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파일: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심볼.svg|height=32]]]] ||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파일:external/oi67.tinypic.com/2duw48.png|height=35]]]] || [[피닉스 선즈|[[파일:PHX_Alternate_Logo.png|height=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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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호크스
Atlanta Hawks
창단
1946년(78주년)[1]
NBA 가입
1949년(75주년)
연고지
조지아 주 애틀랜타
컨퍼런스
동부 컨퍼런스 (1970~)
디비전
웨스턴 디비전 (1949~1970)
센트럴 디비전 (1970~2004)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2004~)
연고지 변천
버팔로 (1946)
몰린 (1946~1951)
밀워키 (1951~1955)
세인트루이스 (1955~1968)
애틀랜타 (1968~)
구단명 변천
버팔로 바이슨즈 (1946)
트라이시티 블랙호크스 (1946~1951)
밀워키 호크스 (1951~1955)
세인트루이스 호크스 (1955~1968)
애틀랜타 호크스 (1968~)
홈 경기장
버팔로 메모리얼 오디토리움 (Buffalo Memorial Auditorium, 1946)
와턴 필드 아레나 (Wharton Field Arena, 1946~1951)
밀워키 아레나 (Milwaukee Arena, 1951~1955)
키엘 오디토리움 (Kiel Auditorium, 1955~1968)
세인트루이스 아레나 (St.Louis Arena, 1955~1968)
알렉산더 메모리얼 콜리세움 (Alexander Memorial Coliseum, 1968~1972, 1997~1999)
옴니 콜리세움 (Omni Coliseum, 1972~1997)[2]
조지아 돔 (Georgia Dome, 1997~1999)[3]
스테이트팜 아레나 (Statefarm Arena, 1999~)[4]
저지 스폰서
셰어케어 (Sharecare)
구단주
토니 레슬러 (Tony Ressler)[5], 세라 블레이크니 (Sara Blakely)[6], 제시 이츨러 (Jesse Itzler)[7], 스티븐 프라이스 (Steven Price), 그랜트 힐 (Grant Hill)
사장
트레비스 슐랭크 (Travis Schlenk)
단장
감독
퀸 스나이더
G 리그 제휴
칼리지파크 스카이호크스 (College Park Skyhawks)
로컬 경기 중계
Bally Sports Southeast
약칭
ATL
파일:애틀랜타 호크스 심볼.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우승 기록
NBA 파이널 우승
(1회)

1958
디비전 우승
(12회)

1957, 1958, 1959, 1960, 1961, 1968, 1970, 1980, 1987, 1994, 2015, 2021
프랜차이즈 팀 기록
최고 승률
.732 - (2014-15시즌, 82경기 60승 22패)
최저 승률
.159 - (2004-05시즌, 82경기 13승 69패)
최다 승
60승 - (2014-15시즌, 82경기 60승 22패)
최다 패
69패 - (2004-05시즌, 82경기 13승 69패)
최고 계약
$207,060,000 - 2021년 트레이 영
팀 컬러 /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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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컬러
토치 레드 레거시 옐로우 인피니티 블랙 그래니트 그레이
유니폼

파일:Atlanta_Hawks_Association_Jersey_2021.jpg


파일:Atlanta_Hawks_Icon_Jersey_2021.jpg


파일:Atlanta_Hawks_Statement_Jersey_2021.jpg


파일:Atlanta_Hawks_City_Jersey_2021.jpg

Association
Icon
Statement
City

NBA 파이널 우승 연혁

[ 펼치기 / 접기 ]
1958 NBA 파이널 우승팀
1957
보스턴 셀틱스

애틀랜타 호크스

1959
보스턴 셀틱스

1. 개요
2. 역사
2.1. 초창기
2.2. 세인트루이스 시절
2.3. 애틀랜타에서의 정착기
2.4. 윌킨스 그리고 무톰보의 시대
2.5. 과도기
2.6. 마이크 부덴홀저의 부임, 시스템 농구 정착
2.6.1. 2012-13 시즌
2.6.2. 2013-14 시즌
2.6.3. 2014-15 시즌
2.6.4. 2015-16 시즌
2.6.5. 2016-17 시즌
2.6.6. 2017-18 시즌
2.7. 트레이 영의 시대
2.7.1. 2018-19 시즌
2.7.2. 2019-20 시즌
2.7.3. 2020-21 시즌
2.7.4. 2021-22 시즌
2.7.5. 2022-23 시즌
3. 영구결번
4. 명예의 전당
5. 마스코트
6. 시티 에디션
7. 2023-24 시즌 선수단
8. 역대 성적
9. G 리그 산하팀
10. 기타
11. 참고/관련 자료



1. 개요[편집]


NBA의 프로농구팀. 동부 컨퍼런스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소속. 연고지는 애틀랜타.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역시 은근히 기구한 역사를 가진 팀이며 특히 애틀랜타에서는 야구대학 미식축구에 밀려 인기도 많지 않다. 팀명인 호크스는 블랙호크 추장이 이끄는 수우 족과의 전쟁 중 하나인 블랙호크 전쟁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잘하든 못하든 크게 인기가 없는 팀이며(...) 이는 한국 국내에서도 비슷하여 한창 플레이오프 단골일 때도 팬이 별로 없었다. 심지어 웬만한 팀에 붙는 비하별명조차 없다.[8]

2. 역사[편집]



2.1. 초창기[편집]


1946년에 유대계 폴란드 이민자인 벤 커너(1913~2000)가 사업가 레오 페리스(1917~1993)[9]와 함께 뉴욕 주 버팔로에서 '버팔로 바이슨즈'란 NBL 소속 팀을 창단했다가, 바로 다음해에 일리노이 주 몰린으로 연고지를 옮겨 트라이시티 블랙호크스가 되었다. 이 트라이시티가 바로 미국 원주민 수족과 미군과의 전쟁이 벌어진 지역이라서 팀명은 해당 전쟁 당시 수족 추장이던 블랙호크에게서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한다. 1949년 NBL이 BAA이랑 합쳐져 'NBA'로 출범하면서 그쪽으로 합류했고, 1951년에 위스콘신 주 밀워키로 다시 연고를 옮겨서 밀워키 호크스로 팀명을 변경한 뒤 1953년에 로체스터 로열스의 스타 레드 홀즈먼을 영입해서 정규시즌 도중 앤드류 레밴 감독이 쫓겨나자 감독을 겸했다. 그러나 밀워키에 있던 2년 간 5할도 못 넘었다.


2.2. 세인트루이스 시절[편집]


다만 1954년에 부임한 마티 블레이크 단장은 드래프트 때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출신 밥 페팃을 전체 2번으로 뽑아 역사를 바꿨다. 페팃은 첫 시즌 때부터 탁월한 득점능력을 자랑해 올스타에 선정되는 등 성장 가도를 달렸으나, 연고지 밀워키에선 농구 붐이 일지 않아 1955년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로 이전해 '세인트루이스 호크스'가 됐고, 연고이전 첫 시즌인 1955-56 시즌에는 홀즈먼 감독의 지도력과 페팃의 든든한 골밑, 유기적인 패스 게임으로 33승 39패로 플옵에 나가 웨스턴 디비전 결승까지 갔으나, 조지 야들리와 래리 포스트가 이끄는 포트웨인 피스톤즈에게 2승 3패로 졌다.

1956년 드래프트 때 샌프란시스코 대학교 출신 빌 러셀을 2번으로 뽑았지만 보스턴 셀틱스가 21번으로 뽑은 켄터키 대학교 출신 스몰포워드 클리프 헤이건과 맞바꿨고, 덤으로 홈타운 보이 에드 매카울리도 샀다. 1956-57 시즌 도중에 홀즈먼 감독이 잘리자 PG 슬래터 마틴[10], PF 알렉스 해넘이 차례로 감독까지 겸해 34승 38패로 처음 디비전 1위를 따서 디비전 결승으로 직행해 미니애폴리스 레이커스를 3전 전승으로 꺾은 뒤, 파이널에서 밥 쿠지와 빌 셔먼, 톰 하인손, 빌 러셀 4인방이 포진한 보스턴에게 4승 3패로 아깝게 졌다.

1957-58 시즌을 앞두고 해넘은 감독직에 전념하기 시작했고, 페팃과 헤이건의 찰떡궁합 플레이로 정규시즌에서 디비전 1등을 2년 연속으로 딴 후 파이널에도 또 한번 올라 보스턴을 4승 2패로 복수해 트로피를 따냈고, 1958-59 시즌을 앞두고 신시내티 로열스로부터 클라이드 로벨레테를 사들인 뒤 정규시즌에서 감독이 해넘에서 앤디 필립, 에드 매카울리로 각각 두 번 바뀌는 와중에도 디비전 1위로 디비전 파이널에 직행하나 엘진 베일러-핫 로드 헌들리가 이끄는 미니애폴리스에게 2승 4패로 졌다. 1959-60 시즌에는 절치부심해 또 파이널을 갔지만 보스턴에게 3승 4패로 아쉽게 졌다.

1960년 오프시즌 때는 시라큐스 내셔널즈에서 온 폴 시모어가 감독으로 임명됐고, 드래프트 때 프로비던스 칼리지 출신 레니 윌킨스를 전체 6번으로 지명하여 페팃, 헤이건, 로벨레테와 함께 짝을 지어 막강 라인업을 짜서 또 파이널까지 갔으나 보스턴에게 1승 4패로 졌다. 1961-62 시즌에는 윌킨스의 부진으로 팀 성적이 부진해지자 도중에 시모어 감독을 자르고, 앤드류 레밴과 팀의 리더 페팃이 각각 감독 대행을 거쳤으나 29승 51패를 찍었다. 1962년 오프시즌 때 서던 일리노이 대학교 감독이던 해리 갈라틴에게 사령탑을 맡겨 로벨레테를 보스턴으로 판 뒤, 드래프트에서 흑인대학 프라이리 뷰 A&M 대학교 출신 젤모 비티를 3번으로 뽑아 팀을 다시 짜서 48승 32패로 디비전 파이널까지 갔으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게 3승 4패로 아쉽게 졌다.

1963년 오프시즌 때 뉴욕 닉스로부터 공수 양면을 갖춘 리치 게린을 사서 팀을 보강해낸 뒤, 정규시즌에서 PF로 변신한 페팃과 2시즌차 선수 비티의 신들린 활약으로 46승 34패를 찍어 디비전 2라운드에서 레이커스에게 3승 2패로 복수한 후 디비전 결승까지 가서 윌트 체임벌린의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를 상대했다가 3승 4패로 졌다. 1964-65 시즌 도중에 5할 언저리에서 맴돌자 팀은 갈라틴 감독을 자르고, 게린이 감독까지 겸하도록 하여 45승 35패로 플레이오프에 다시 갔지만 월트 벨라미와 거스 존슨 등이 포진한 신흥 팀 볼티모어 불리츠에게 1승 3패로 졌다. 1965년에 페팃이 은퇴하자 게린 감독은 헤이건을 중심으로 하여 팀을 재편하고자 했고, 정규시즌 도중에 존 반힐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조 칼드웰이랑 맞바꿔가며 36승 44패를 찍긴 했지만 플옵에 간신히 나가 2차전에서 볼티모어를 3전 전승으로 설욕하여 디비전 결승에서 레이커스를 또 만났지만, 3승 4패로 아쉽게 졌다.

1966년 오프시즌 때 헤이건이 잠정 은퇴했고,[11] 드래프트에서 미네소타대 출신 슈팅가드 루 허드슨을 전체 4번으로 뽑아 팀을 다시 짜서 39승 42패로 디비전 파이널에 다시 가서 릭 배리의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를 상대로 맞붙다가 2승 4패로 졌다. 1967-68 시즌에는 게린이 감독직에 전념하기 시작한 후 정규시즌에서 56승 26패로 또 한번 디비전 파이널에서 샌프란시스코랑 맞붙다가 또 2승 4패로 졌다.


2.3. 애틀랜타에서의 정착기[편집]


그 사이 커너 구단주는 세인트루이스 시 당국에 새 구장 건설을 제안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1968년에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향토 부동산 개발업자 톰 커즌스와 전 조지아 주지사 칼 샌더스에게 팀을 팔았다. 뒤이어 팀은 남부의 대도시 애틀랜타로 이전해 현 명칭이 됐다. 인수 배경과 애틀랜타 정착기에 대해서는 당시 미국 남부의 사정 및 인종갈등 문제와 연결지을 필요가 있는데, 애초에 애틀랜타가 속한 조지아 주 자체가 인종차별의 잔재가 남은 '딥 사우스'의 일원인 데다 연고이전한 해인 1968년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피살 사건으로 인종폭동이 100여곳에서 터졌던 때였고, 이는 백인들에게 위험 요소가 됐다. 이에 새 구단주 커즌스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팀을 사고자 한 것이다.

연고이전 뒤에도 아직 새 구장이 완공되지 않아 조지아 공과대학교 농구부의 홈구장 '알렉산더 콜로세움(현 매카미시 파빌리온)'에서 치러야 했고, 게린 감독이 다시 선수를 겸했다. 그러나 커즌스 구단주는 팀에 백인 선수가 2명밖에 없다는 것에 언짢아하며 전 시즌 때 MVP 후보로 거론됐던 윌킨스의 연봉 인상 요구를 거절했다. 이에 윌킨스가 분노하며 트레이닝 캠프 참가를 거부하자 구단은 그를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월트 해저드와 맞바꿨다. 정규시즌에선 비티와 허드슨, 칼드웰, 사일러스 등을 중심으로 하여 48승 34패로 레이커스에 이은 2위를 찍고, 플레이오프 2회전에 직행해서 신흥 팀 샌디에이고 로키츠를 4승 2패로 꺾어 디비전 파이널에서 체임벌린-베일러-웨스트가 포진한 LA 레이커스를 만나 1승 4패로 졌다. 이렇게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관중은 저조했고, 1969-70 시즌 전에는 사일러스를 피닉스 선즈의 백인 선수 게리 그레거랑 맞바꾸고, 정규시즌 도중인 1970년 2월에 존 아더스를 디트로이트의 월트 벨라미랑 맞바꿔가며 48승 34패로 디비전 파이널에 또 갔으나 레이커스에게 4전 전패로 막혔다.

1970년부터 리그 재정비에 따라 동부 컨퍼런스로 옮긴 후, 게린 감독도 또 한번 선수 일선에서 은퇴하고 지도자로서 다시 전념했다. 동년 드래프트에서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출신 피트 마라비치를 전체 3번으로 뽑아 새 출발을 하려 했다. 다만 영입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는데, 커즌스 구단주는 백인 팬들을 의식코자 블레이크 단장과 게린 감독의 의사조차 무시한 채 멋대로 마라비치를 뽑았으며 5년 간 150만 달러를 두둑하게 주며 계약해낸 것이다. 이에 흑인 베테랑들은 연봉 인상을 요구했으나 팀이 듣지를 않자, 조 칼드웰 등 몇몇은 ABA로 떠나기도 했다. 더 나아가 홈 경기 때마다 백인 밴드들이 <Dixie>를 연주해가며 백인들의 사랑을 받고자 했다.

어쨌든 신인 마라비치의 신들린 플레이로 36승 46패를 찍어 플옵 2회전에 갔지만 윌리스 리드와 월트 프레이저 등이 이끄는 뉴욕 닉스에게 1승 4패로 졌다. 마라비치의 영입으로 허옇게 된 팀은 백인 관중들의 박수를 받아 13게임 매진을 기록해가며 돈을 왕창 벌었지만, 후술할 문제들과 우왕좌왕한 성적 등으로 팀 관중이 점점 줄어들었다. 흑인 베테랑들은 자기들보다 더 연봉을 많이 받는 마라비치에게 분노하여 팀 내부까지 엉망이 됐다. 심지어 시즌 초반인 1970년 11월에는 조지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샌더스 공동 구단주가 '인종 통합'을 외친 진보적인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에게 지면서 인종 갈등이 더 표면화됐다.(관련 논문(토머스 에일레오 저), NBA 매니아 게시글)

1971-72 시즌에는 또 36승 46패로 플옵에 나갔다가 존 하블리첵-데이브 코웬스-조조 화이트 빅3의 보스턴에게 2승 4패로 졌고, 1972-73 시즌을 앞두고 신축구장 '옴니 콜로세움'으로 옮긴 후 게린 감독이 단장으로 승진하면서 피닉스 선즈의 코튼 피츠시몬스 감독을 불러서 팀을 다시 짰다. 같은 시기 밀워키 벅스에 뽑힌 줄리어스 어빙과 멋대로 계약하려다 삼중계약 파문이 일어 소송을 당하는 등 내홍이 있었고, 정규시즌에서 46승 36패로 플옵에 또 갔다가 보스턴에게 똑같이 졌다.

1973-74 시즌을 앞두고 시카고 불스에서 온 팻 윌리엄스가 단장으로 앉았으나 35승 47패로 플옵에 못 나갔고, 1974년 오프시즌에 팀은 마라비치와 1980년 드래프트 64번 픽을 신규 팀 뉴올리언스 재즈가 지닌 드래프트 10번 픽 마이크 소저너(유타대) 등 5개 픽 행사권과 맞바꿨고, 벨라미는 확장 드래프트로 재즈로 떠났고 윌리엄스 단장도 개막 직전에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떠나자 M.B. "버드" 세레틴이 단장으로 부임했다. 같은 해 드래프트에서 톰 헨더슨(하와이대)을 7번, 존 드류(가드너웹대)를 10번으로 각각 뽑는 등 팀을 다시 짰으나 정규시즌에서 31승 51패로 굴러떨어졌다. 1975년 드래프트에선 데이비드 톰슨(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을 1번, 마빈 웹스터(모건 주립대)를 2번으로 각각 뽑았으나 그 둘은 ABA 팀 덴버 너기츠로 도피했다. 이렇게 되자 정규시즌 성적은 29승 53패로 굴러떨어졌고, 도중에 피츠시몬스 감독이 쫓겨나서 범퍼 토몰렌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았다.

1976년 오프시즌 때 ABA 팀 켄터키 콜로넬스를 지휘하던 휴비 브라운을 감독으로 임명한 후, 드래프트에서 드와이트 존스 및 드래프트 1라운드 픽 1장을 휴스턴 로키츠의 거스 베일리, 존 메리웨더, 드래프트 픽 1장과 맞바꾸고, 드래프트에서 전체 9번으로 프린스턴대 출신 아몬드 힐을 뽑았다. 정규시즌에선 빈약한 선수진을 바탕으로 31승 51패로 올렸고, 1977년에는 터너 브로드캐스팅 시스템이 팀을 인수한 뒤 테드 터너의 측근 마이클 기어론을 사장 및 단장직에 앉혔다.

팀은 먼저 허드슨을 레이커스의 올리 존슨과 맞바꾼 후, 드래프트에서 전체 14번으로 클렘슨대 출신 트리 롤린스, 39번으로 오번대 출신 에디 존슨 등을 각각 뽑아 드류와 짝을 지어 정규시즌에서 41승 41패로 4시즌만에 플옵에 다시 갔지만, 웨스 언셀드와 엘빈 헤이즈 등이 이끄는 워싱턴 불리츠에게 2전 전패로 스윕당했다. 1978-79 시즌에는 46승 36패로 1회전에서 모제스 말론의 휴스턴 로키츠를 2번 모두 꺾고 2회전에서 워싱턴을 또 만났으나, 4승 3패로 졌다.

1979년 오프시즌 때 기어론 사장은 27세였던 스탠 카스텐을 단장 자리에 앉혔는데, 이는 리그 역사상 역대 최연소 기록이다. 정규시즌에서 50승을 달성하여 디비전 1위를 따내 2회전에 직행하여 어빙의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를 만났지만, 어빙의 현란한 플레이로 인해 여러모로 열세를 극복하지 못해 1승 4패로 졌다. 1980-81 시즌에는 부진을 거듭하자 휴비 브라운 감독 대신 마이크 프라텔로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서 31승 51패로 끝냈고, 1981-82 시즌을 앞두고 농구 해설위원을 하던 케빈 로커리를 감독직에 앉힌 뒤, 드래프트에서 전체 4번으로 노스캐롤라이나대 출신 알 우드를 4번으로 뽑는 등 팀을 다시 고쳐서 42승 40패로 플옵에 다시 갔지만 식서스에게 2전 전패를 당했다.

2.4. 윌킨스 그리고 무톰보의 시대[편집]


팀의 전환기는 1982년에 찾아왔다. 드래프트 때 유타 재즈가 2번으로 지명한 도미니크 윌킨스(조지아대)를 받아오는 대신, 에이스였던 존 드류와 프리맨 윌리엄스, 현금 100만불을 유타로 팔았다. 윌킨스는 데뷔 첫 시즌부터 신들린 활약을 보여 43승 39패로 플옵에 갔지만, 보스턴에게 1승 2패로 졌다. 특히 3차전 경기 도중 터진 엽기적 사건으로 화제가 됐는데, 롤린스는 공격 성공 후 백코트를 시도하려다 대니 에인지의 얼굴을 팔꿈치로 밀치자, 이게 패싸움으로 번진 후 롤린스가 별안간 에인지의 손등을 물어뜯어 벌금 5천달러와 5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고, 에인지는 광견병 주사를 맞아야 했다. 이 사건은 'Took a bite'로 알려져 있다.

1983년에 로커리 감독이 시카고 불스로 떠나자, 뉴욕 닉스 코치로 일하던 마이크 프라텔로가 1년만에 감독으로 팀에 돌아왔다. 오프시즌 동안 마케트대 출신 닥 리버스를 31번으로 뽑는 등 어느 정도 보강을 하고 정규시즌에는 40승 42패로 플옵에 나가 시드니 몽클리프가 이끄는 밀워키 벅스를 상대로 치열하게 붙다가, 2승 3패로 졌다. 1984-85 시즌을 앞두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로부터 클리프 리빙스턴을 사고, 드래프트에서 미시건 주립대 출신 케빈 윌리스를 전체 11번으로 뽑는 등 보강을 또 했지만 34승 48패로 플옵을 못 나갔다.

이에 팀은 윌킨스를 도울 선수들을 물색하며 1985년 드래프트 때 서던 메조디스트 대학교 출신 존 콘칵을 5번,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출신의 단신 선수 스퍼드 웹을 87번으로 각각 뽑고, 드래프트는 별로 하지 않은 채 정규시즌에서 50승 32패로 1회전에서 아이재이아 토마스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를 3승 1패로 꺾은 후, 2회전에서 래리 버드-로버트 패리시-케빈 맥헤일의 빅3를 주축으로 한 보스턴 셀틱스랑 맞붙다가 1승 4패로 졌다. 1986-87 시즌에는 57승 25패로 1위를 따서 플옵에 또 나가 1회전에서 허브 윌리엄스가 이끄는 인디애나 페이서스를 3승 1패로 이기고, 2회전에서 디트로이트랑 또 붙었으나 '배드 보이즈'로 각성한 이들의 거친 수비력 때문에 1승 4패로 주저앉았다. 1987-88 시즌에는 50승 32패로 또 한번 2회전까지 가서 보스턴이랑 7차전까지 끌고 가다 3승 4패로 주저앉았고. 1988-89 시즌을 앞두고 롤린스는 FA로 풀려 클블로 떠났고, 정규시즌에선 52승 30패로 마친 뒤 플옵 1회전에서 밀워키에게 2승 3패로 스윕당했다.

1989년 오프시즌 때 콘칵과 6년 동안 1,300만 달러 계약을 맺었고, 정규시즌에선 41승 41패로 5할을 찍었으나 아쉽게 플옵은 못 갔다. 1990-91 시즌을 앞두며 카스텐 사장은 단장직을 덴버 너기츠에서 온 피트 밥콕에게 넘겨줬고, 프라텔로 감독 대신 올랜도 매직의 초대 코치이던 밥 와이스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뒤이어 리빙스턴을 FA로 풀어 시카고로 떠나보내고, CBA 팀 토피카 씨즐러스에서 뛰던 듀안 퍼렐을 다시 부르는 등 여러모로 개혁을 시도해 정규시즌에서 43승 39패로 플옵에 나갔다가 디트로이트에게 2승 3패로 졌다. 1991년 드래프트 때는 전년도 UNLV 우승멤버 스테이시 오그먼을 전체 9번으로 뽑고, 트레이드 시장에서 스퍼드 웹을 새크라멘토 킹스의 트레비스 메이스랑 맞바꾸기도 했지만 오그먼의 부상 등으로 인해 38승 44패로 주저앉다가, 1992-93 시즌을 앞두고 덴버로부터 무키 블레이락을 사서 43승 39패로 성적을 올려 플옵 1회전에서 시카고랑 맞붙다가 3전 전패로 스윕당했다.

1993년 오프시즌 때는 와이스 감독이 LA 클리퍼스로 떠나자 클블 감독이던 레니 윌킨스가 25년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와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부터 앤드류 랭을 사들이는 등 전력 보강을 해내 섬세한 공격을 바탕으로 한 우승전력으로 만들려 했으나, 시즌 도중이던 1994년 2월에 구단은 윌킨스가 노쇠해졌다는 이유로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의 대니 매닝과 맞바꿨다. 대신 블레이록의 탁월한 스틸 능력과 오그먼의 공수 활약, 윌리스의 탄탄한 인사이드가 커버를 해 주니 57승 25패로 디비전 1등을 찍어 플옵 2회전까지 갔다. 거기서 레지 밀러의 인디애나 페이서스랑 상대하여 첫 1승을 인디애나가 차지했다가, 윌킨스 감독의 독려로 용기를 얻어 1승을 얻지만 나머지 3게임은 인디애나에게 1승 2패로 뺏겨 컨파조차 못 갔다.

1994-95 시즌을 앞두고 매닝을 피닉스 선즈로 파는 등 선수단을 정리했고, 정규시즌 극초반에 윌리스를 마이애미 히트의 스티브 스미스 및 그랜트 롱과 맞바꿔 블레이록이랑 짝을 지어 플옵에 나갔지만 1회전에서 인디애나에게 3전 전패로 광탈당했다. 1995년 오프시즌 때는 타이론 코빈을 새크라멘토 킹스의 스퍼드 웹과 맞바꿨고, 드래프트에서 전체 11번으로 인디애나대 출신 케빈 윌리스를 뽑았다. 정규시즌 중이던 1996년 2월에 웹과 랭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크리스찬 레이트너 및 션 룩스랑 맞바꿔 플옵 1회전에서 인디애나를 3승 2패로 복수해주고, 2회전에서 샤킬 오닐과 앤퍼니 하더웨이가 이끄는 올랜도 매직이랑 맞붙다가 1승 4패로 졌다.

1996년 오프시즌에는 덴버 너기츠에서 주가를 올리던 디켐베 무톰보를 사는 한편, 오그먼과 롱을 디트로이트로 팔고 마이애미 히트에서 코빈을 다시 부르는 등으로 수비진을 짜서 선수진을 개편했다. 정규시즌에는 56승 26패로 플옵 1회전에서 그랜트 힐을 디트로이트를 3승 2패로 이기고 2회전에서 지구방위대 시카고랑 맞붙어 무톰보, 블레이락, 스미스의 활약으로 1승 1패로 선방하다 이후 3연패를 내리찍어 컨파를 못 갔다.

1997-98 시즌을 앞두고 정든 옴니 콜로세움을 떠나 알렉산더 메모리얼 콜로세움 및 조지아 돔을 임시로 썼고, 정규시즌에서 50승 32패로 플옵에 다시 갔으나 글렌 라이스와 블라디 디박이 이끄는 샬럿 호네츠에게 1승 3패로 광탈당했다. 1998-99 시즌에는 레이트너를 디트로이트로 팔고 덴버로부터 라폰소 엘리스를 사서 변화를 좀 준 뒤, 단축으로 치러진 정규시즌에서 31승 19패를 찍고 플옵 1차전에서 디트로이트를 3승 2패로 누르고 2라운드까지 갔다가 라트렐 스프리웰-앨런 휴스턴 '트윈 테러' 콤비가 이끄는 뉴욕 닉스에게 4전 전패로 굴러떨어졌다.


2.5. 과도기[편집]


1999년에 신축구장 '필립스 아레나'로 옮겨 새 출발을 다짐하며 드래프트 때 21번으로 서던 텍사스 주립대 출신 제프 포스터를 21번으로 뽑았지만, 트레이드 시장에서 블레이락과 세트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지닌 10번 픽 제이슨 테리, 듀안 퍼렐, 빔보 콜스랑 맞바꿨다.[12] 뒤이어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 출신 칼 바우들러를 전체 17번으로 뽑고 코빈을 새크라멘토 킹스로 팔아치우는가 하면, 팀이 소유한 향후 1라운드 지명권 2장을 LA 클리퍼스의 로렌젠 라이트랑, 9월에는 스미스를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의 아이재이아 라이더 및 짐 잭슨이랑 각각 맞바꾸고 그랜트 롱까지 밴쿠버 그리즐리스로 파는 등으로 팀을 개편했다.

그러나 정규시즌 들어 무톰보의 부상, 라이더와 잭슨의 팀 캐미스트리 저해, 베테랑들의 부재 등으로 인해 점점 부진했다. 그럼에도 헨더슨이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후반부에는 테리가 등장하여 10.2득점 / 7어시 / 1.3스틸로 신들린 모습을 보여줬지만 28승 54패를 찍었고, 윌킨스 감독도 토론토 랩터스로 떠났다. 2000-01 시즌을 앞두고 전 일리노이대 감독 론 크루거에게 사령탑을 맡긴 뒤, 드래프트에서 전체 6번으로 신시내티대 출신 더마르 존슨을 뽑았지만 개막부터 7연패를 당했다. 또한 신인인 존슨은 연습 때와는 달리 실전에서 별 활약이 없어서 백업으로 전락했다.

그 와중에 테리의 득점력 상승과 무톰보의 회복에 힘입어 점차 안정을 되찾는 듯했고, 2001년 1월에는 짐 잭슨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브래빈 나이트랑 바꾼 뒤,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앞두고 무톰보와 로숀 맥클러드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토니 쿠코치, 테오 라틀리프, 나지 모하메드, 페페 산체즈 등 4명과 맞바꿨으나 25승 57패로 굴러떨어졌다. 2001년 드래프트 때 멤피스 그리즐리스의 샤리프 압둘라힘을 받으려고 스페인 선수 파우 가솔을 파는 등 대형 트레이드를 벌였으나 라틀리프, 쿠코치, 헨더슨, 크리스 크로포드, 에마뉴엘 데이비스, 디온 글로버 등 선수진의 대다수가 부상으로 드러눕는 바람에 2001년 12월까지만 해도 11승 19패로 가다가 한달 후에는 월간 성적 3승 12패를 기록했다. 대신 테리와 압둘라힘의 분전, 레온 스미스의 반짝 등장 등으로 2002년 2~4월 동안 19승 18패를 찍어 최종적으로 33승 49패를 찍었다.

2002/03 시즌을 앞두고 밀워키 벅스로부터 글렌 로빈슨을 사들여 기존의 압둘라힘, 테리와 함께 빅3로 묶은 후, 드래프트에서 곤자가대 출신 댄 디카우를 전체 28번으로 뽑는 한편 테리에게 1번 포지션을 맡겨 팀을 다시 짜서 플옵 진출을 하려 했으나, 포인트가드진의 부실함과 라틀리프 및 디카우의 부진, 더마르 존슨의 부상, 테리의 부족한 리딩 능력 및 난사 남발 등이 독이 되어 35승 47패에 디비전 5등으로 플옵에 못 갔다. 결국 팀은 광고대로 팬들에게 티켓값을 환불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시즌 도중에 크루거 감독이 잘려 테리 스토츠 코치가 임시로 감독직을 맡아야 했고, 시즌이 끝난 뒤 카스텐 사장과 밥콕 단장이 동시에 물러났다.

2003년 오프시즌에 빌리 나이트 총무부장이 단장으로 승진한 후 드래프트에서 프랑스 선수 보리스 디아우를 21번으로 뽑았고, 테리는 유타 재즈로 옮기려다 팀이 퀄리파잉 오퍼를 행사하면서 잔류했다. 다른 한편 샌안토니오 스퍼스로부터 스티븐 잭슨을 사고 7월에는 샐러리캡 정리 차원에서 필라델피아, 미네소타, 뉴욕과 4각 트레이드를 벌여 로빈슨을 식서스로 보내고, 미네소타로부터 터렐 브랜든을 받았으나 그는 한 게임도 못 뛰고 이듬해 초에 은퇴 선언을 했다. 또한 터렐 브랜든의 남은 계약도 바이아웃 처리했다. 정규시즌에서 연패를 많이 거듭하다가 시즌 도중에 압둘라힘과 라틀리프를 포틀랜드의 라시드 월러스랑 맞바꿨고, 그 역시 열흘만에 크리스 밀스와 밥 수라 등 만기계약자 2명을 받기 위해 처분했다. 또한 D리그 팀 파예츠빌 패트리어츠[13] 선수 제이슨 콜리어도 등용했지만 최종 성적은 28승 54패.

2004년 오프시즌 때 모기업 타임 워너가 투자그룹 애틀랜타 스피릿[14]으로 팀을 팔았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코치이던 마이크 우드슨을 감독 자리에 앉혔다. 트레이드 시장에서 테리와 헨더슨을 팔아 댈러스 매버릭스의 앤트완 워커와 토니 델크를 받았고, 7월에는 스티븐 잭슨을 인디애나의 알 해링턴과 맞바꾸고 9월에는 인디애나의 케니 앤더슨을 FA로 영입했다. 드래프트에서 조쉬 칠드레스(6번, 스탠포드대), 조쉬 스미스(17번, 오크힐 아카데미)[15]를 뽑아 포워드 포지션을 중복으로 뽑아댔다. 이렇게 해서 만기 계약자들과 루키들 위주로 팀을 꾸리고 정규시즌에 돌입했다. 워커와 해링턴이 분전하긴 했지만 콜리어와 앤더슨이 부진하고, 시즌 도중에 사들인 타이론 루 역시 마찬가지라서 13승 69패로 굴러떨어졌다.

2005년 드래프트에서 2번 픽을 받아내고도 알짜 유망주 데런 윌리엄스(일리노이대)와 크리스 폴(웨이크포레스트대), 레이먼드 펠튼(UNC), 재럿 잭(조지아 공대) 등을 뽑을 수 있는 상황에서 마빈 윌리엄스라는 또 한명의 포워드를 뽑으며 팬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다만 지금 봤을때에는 이런 바보짓이 있나 싶겠지만 당시 기준으로 마빈 윌리엄스가 먼저 뽑힌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윌리엄스는 노스캐롤라이나 1학년 시절을 NCAA 우승을 이끌어낸 선배들의 존재로 인해 벤치에서 보냈지만, 당시 기준으로 역대급 재능이란 평가를 받았던 덕에 당년도 드래프트엔 확실한 1순위감이 없었다. 폴이나 데론 윌리엄스 둘 다 이 정도까지 성장하리라는 예측은 없었고, 특히 폴이 "즉시 전력감" 중 최고로 평가받던 앤드류 보것을 묻어버리는 루키시즌을 보낼 거라는 예상은 더더욱 없었다. 실제로 PG 둘 중에선 사이즈와 운동능력이 더 좋은 데론이 더 높이 평가받았고, 3-4번의 PG라인은 지명순위대로의 기대치였으며, 오히려 보것과 윌리엄스가 "즉시전력이냐 미래의 잠재력이냐"를 놓고 잠깐 경쟁했다. 데론과 폴은 오히려 5순위 레이먼드 펠튼의 기대치와 비교할만했다.

즉, 마빈 윌리엄스의 지명은 호크스의 입장에선 1984년 당시 짐 팩슨이란 좋은 SG와 클라이드 드렉슬러란 대형 유망주를 데리고 있던 포틀랜드가 겪었던 딜레마, "팀에 필요한 포지션을 뽑느냐, 남아있는 최고의 재능을 뽑느냐"의 문제였던 것이다. 전자를 택한 포틀랜드와 반대로 후자를 택했을 뿐. 문제는 윌리엄스의 재능은 당시 기대받던 수준이 아니었고, 그들이 지나친 데론 윌리엄스와 폴의 재능이 생각보다 너무 컸던 것. 즉, 결과적으로 보면 오류이지만 당시 기준으로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여담으로 이는 84년 포틀랜드가 마이클 조던을 거르고 샘 부위를 뽑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단장이던 나이트는 "이미 팀에 2명의 조쉬와 해링턴이 있는데 왜 그 사람을 지명했냐"는 질문에 "마빈의 재능을 지나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단, 그 점을 고려해도 그 선택이 어리석었던 것이 이미 팀에는 조쉬 칠드레스, 그리고 조쉬 스미스라는 유망주 포워드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인트 가드는 스피디 클락슨이라는 그런저런 단신의 포인트 가드를 데리고 있었다. 포워드가 넘쳐나는데 포워드를 또 뽑는 행동을 한 것.

그러나 이 점은 위에 언급됐듯이 윌리엄스가 당시 역대급 재능이란 평을 받았단 걸 감안하면 어리석은 선택이 아닌 것이, 포틀랜드가 2번 포지션 하나에만 팩슨, 그 뒤를 잇는 드렉슬러까지 데리고 있었을 때 조던을 뽑는게 어리석다고 볼 수 없는 것과, 03년 드래프트 당시 주전 포워드 자리가 찼음에도 카멜로 앤서니를 뽑는게 어리석다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이다. 칠드레스나 스미스는 윌리엄스만큼의 평가를 받는 유망주들이 아니었으며, 이런 경우는 역대급 재능을 뽑고 그 자리에 있던 선수는 적당히 트래이드하는 게 상식이다. 거듭 얘기하듯 (마빈의 재능이 역대급이었다는 잘못된 정보가 당연한 듯 퍼져있던) 당시 기준으론 합리적인 선택이 맞았다.

같은 해 트레이드 시장에서 디아우는 피닉스 선즈의 조 존슨과 맞트레이드했는데, 호크스를 떠난 디아우는 그 해애 "올해의 기량발전상" 을 받으며 가솔에 이어 또 한번 인재를 날렸다. 물론 조 존슨이 그 당시 훌륭한 선수였고 호크스에서도 올스타 기량을 보여줬기에 결과론적이고 실패라고 까지 부르기는 이르지만 조 존슨의 상당히 큰 연봉을 떠맡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딱히 좋은 트레이드는 아니었다. 다만 존슨의 첫번째 계약, 즉 이 당시 계약으론 분명 돈값을 해주는 선수였고 디아우보다 존슨이 훨씬 좋은 선수였다는 점에서 분명 실패한 트래이드는 아니었다. 디아우가 이적 첫해 날리긴 했지만 그는 엄연히 한계가 있는 롤플레이어였고 이 트레이드로 호크스는 몇년간 팀을 이끌 에이스를 얻었다. 선즈 입장에서는 이미 내쉬와 스타더마이어에 숀 매리언까지 있어 스코어러가 필요없었고 디아우처럼 다방면에서 활약을 해줄 수 있는 선수가 필요했기에 존슨의 공백이 별로 티가 나지 않았을 뿐 존슨같이 에이스급 선수는 분명 그만한 돈을 주고, 자산을 주고 영입할 가치가 있었다. 반대로 호크스는 디아우처럼 볼을 몰아줘도 득점력에 한계가 있는 선수보다는 확실한 에이스가 필요했다. 문제는 이때 존슨의 좋은 활약 이후 재계약할 때 그야말로 메가톤급 액수를 안겨줬는데, 돈은 더 받는데 반해 이때부터 하락세가 완연해서 먹튀가 됐다는 점. 즉, 트레이드 자체는 잘했지만 재계약이 문제였다. 게다가 팀의 미래를 책임질 만한 인재인 제이슨 콜리어마저 2005년 10월에 심장 이상으로 아깝게 요절하고 말았다.

정규시즌 들어 로얄 이베이가 스타팅 멤버로 나서고 루도 벤치에 있었으나 개막 때부터 9연패를 포함해 초반 2달간 7승 21패 등을 기록했고, 이에 존슨이 분전하긴 했지만 26승 56패로 끝났다. 2006년 드래프트에서는 분명 조 존슨을 도울 다른 가드나 센터가 필요한 시점인데, 카일 로우리, 브랜든 로이[16], 라존 론도, J.J. 레딕이라는 좋은 가드 자원들을 모조리 거르고 듀크대 출신의 B~C급 포워드 쉘던 윌리엄스를 5번으로 뽑는 행보 때문에 있던 팬도 다 떠나갔다. 그나마 정규시즌에서 자자 파출리아가 성장세를 보였으나 30승 52패로 마감했다. 그럴수록 나이트 단장은 위와 같은 이상한 신인 지명의 원흉으로 낙인찍혀 '나이트메어'라는 오명도 들었다.

2007년 드래프트 때 플로리다대 출신 PF 알 호포드를 뽑았고, 2008년 2월에 앤써니 존슨, 타이론 루, 쉘던 윌리엄스, 로렌젠 라이트 + 동년 드래프트 2라운드 픽 1장을 새크라멘토 킹스의 마이크 비비랑 맞바꿔서 전력 보강을 했다. 정규시즌에서 중복 포지션과 스쿼드 문제 등의 난항에도 불구하고 우드슨 감독의 수비 중심 전술로 5할 승률은 달성하지 못했어도 PO 진출에는 성공했다.[17] 그리고 빅3가 군림하던 보스턴 셀틱스를 7차전까지 물고 늘어졌다. 자신감을 얻은 애틀랜타는 조 존슨, 조쉬 스미스, 알 호포드로 이어지는 나름대로 튼튼한 라인업을 구축하며 PO 단골손님이 되긴 했지만 또 예전처럼 컨퍼런스 4강 쯤에서 늘 탈락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2008년부터 포워드덕후 나이트 단장이 물러나자 전 시애틀 슈퍼소닉스 단장 릭 선드를 모셨고, 칠드리스는 2008-09 시즌을 앞두고 '올해의 식스맨상' 후보로 거론됐지만 그리스 파나시나이코스 농구팀으로 튀어버렸다. 2011/12 시즌에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잠깐 들어오긴 했으나 별 활약은 없었다.


2.6. 마이크 부덴홀저의 부임, 시스템 농구 정착[편집]



2.6.1. 2012-13 시즌[편집]


2012년에 릭 선드의 후임으로 온 대니 페리 단장은 팀의 리더였던 조 존슨을 브루클린 네츠에 넘기고 선수 다섯과 2013년 드래프트 1라운드 픽을 가져오는 등 팀을 대규모로 갈아엎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플레이오프는 진출한 다음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만나 탈락했다. 이로 인해 래리 드류 감독이 해임되고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17년간 코치를 맡았던 마이크 부덴홀저가 감독직에 취임했다.


2.6.2. 2013-14 시즌[편집]


2013-14 시즌에 딱 세명 빼고 전부 FA로 풀리게 되어 FA 최대어인 드와이트 하워드크리스 폴까지 일거양득할 수 있을 정도로 샐러리 유동성을 높여놨으나 현실은 시궁창, 폴은 잔류하고 하워드는 휴스턴으로 가서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폴과 하워드라는 대어를 모두 놓친 호크스는 결국 오프시즌에는 유타 재즈에서 폴 밀샙을 영입해 높이는 낮지만 실력은 괜찮은 골밑 듀오를 만들고 제프 티그, 카일 코버와 재계약하면서 미묘한 라인업을 구성하고 백업 포워드로 밀워키 벅스에서 지명할당 되었던 멕시코출신 포워드 구스타포 아욘을 클레임하면서 마무리. 시즌 초반에는 5할 승률 언저리에서 놀고 있는데 다른 동부팀들이 너무 못해서(…) 동부 3위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리더 호포드가 가슴근육 부상으로 시즌 아웃을 당하면서 팀 일정에 먹구름이 낀다. 아욘 역시 주전급 실력은 보이지 못하던 상황이었지만 우측 어깨 수술을 받으면서 시즌 아웃되어 버렸다. 초반 부진했던 브루클린 네츠 등이 제 실력을 내면서 3위에서 8위까지 미끄러지면서 플레이오프도 좌절되나 싶었지만 막판에 힘을 내면서 8위를 확정지었다. 최종 성적은 38승 44패로 .463의 승률. 서고동저의 극심한 시즌을 보여주는 대목이 되었다.

아무튼 동부 1번 시드인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맞붙게 되었다. 8번 시드와 1번 시드이지만, 맞대결 성적이 2승 2패로 호각세였고 그나마도 한 경기는 밀셉마저 빠졌던 경기였고, 페이서스의 후반기 성적과 팀 분위기로 봐서는 어느정도 승산이 있으리라 생각되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뻔 했습니다. 상대 팀 가드 랜스 스티븐슨조지 힐을 맨붕에 빠뜨려 턴오버를 이끌어내고, 로이 히버트를 식물센터로 만든 채 양궁농구로 5차전까지 3승 2패로 앞서면서 8번 시드가 오랜만에 1번 시드를 무찌르고 2라운드 진출에 성공하는 업셋을 보여줄 뻔 했다.

6차전에서 데이비드 웨스트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면서 패배했는데, 그 경기에서 폴 조지가 마이클 스캇과 조지 힐과의 말다툼 도중 코트를 밟는 실수를 범해 규정대로라면 1게임 출장정지의 징계를 받게 되어 있어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으나, 사무국이 애매한 규정을 이유로 출장정지를 내리지 않았고 결국 7차전 인디애나폴리스 원정경기에서 폴 밀샙이 안좋은 야투율에도 불구하고 난사를 하며 공격을 끊어먹음과 동시에 히버트와 가드들에게 살아날 기미를 제공해 주면서 패배하며 탈락한다.


2.6.3. 2014-15 시즌[편집]


파일:애틀랜타 호크스 심볼.svg
[18]

오프시즌 동안 주목받을 만한 영입은 없었으나,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의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이 인종차별 논란으로 쫓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구단주였던 브루스 레벤슨의 이메일에서 인종차별적인 언급이 발견되고 단장 대니 페리도 루올 뎅과 관련해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게 걸려 무기한 휴직을 하게 되는 등 이상한 쪽으로 홍역을 앓았다.

시즌이 시작되자 호포드의 복귀와 함께 부덴홀저 감독의 시스템 농구가 정착되면서 토론토에 이어 동부에서 2번째로 20승을 돌파했다. 예년의 존재감 없는 강팀(…) 포지션을 되찾는가 싶더니, 2015년 1월에는 1997년 이후 처음으로 컨퍼런스 1위를 차지함과 동시에 막강한 팀워크를 과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초반 1위였던 토론토를 제치고 독주중이며 호포드, 밀샙, 티그 삼총사가 모두 올스타전 리저브 멤버로 선발되었다. 그리고 1월 17경기 결과 전승을 기록한 팀이 되었다.

그리고 2월 12일 현재, 카일 코버가 부상을 입은 드웨인 웨이드 대신 올스타 출장이 확정됨으로써 무려 네 명의 선수를 올스타에 배출하는 기염을 토하게 되었다. 후반기에는 패배가 늘어나긴 했지만 전반기 성적이 하도 압도적이라 60승 22패라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동부 컨퍼런스 1위로 시즌을 마쳤다.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는 브루클린 네츠와 만나 생각보다 고전하다 4-2로 진출. 2라운드에서는 워싱턴 위저즈와 맞붙는다. 워싱턴과의 대결에서 다소 고전했지만, 5차전 알 호포드의 극적인 버저비터로 승기를 잡은 후, 6차전도 접전 끝에 94-91로 승리하면서 40년만에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친정팀으로 복귀한 르브론 제임스의 클리블랜드를 만났는데, 코버가 부상으로 아웃을 당하고, 호포드는 매튜 델라베도바에게 팔꿈치를 날려 퇴장당하는 등 안좋은 모습만 보여주며 스윕당하는 바람에 다소 아쉽게 시즌을 마쳤다.


2.6.4. 2015-16 시즌[편집]


시즌 초반에는 퐁당퐁당하며 중위권에 위치하다 12월 중순을 기점으로 저번시즌처럼 연승기류를 타고 있다.

카일 코버는 부진한 모습이지만, FA로 토론토간 더마레 캐롤 대신 스몰포워드를 보는 켄트 베이즈모어의 부상과 데니스 슈뢰더의 약진등이 겹치면서 현재 동부 2위를 기록중이다.다만 2위부터 10위까지 단 3게임 차라 엎치락뒷치락

그러다 1월 말부터 부진하면서 또 아슬아슬하게 28승 22패로 3위중인데 제프 티그, 알 호포드, 폴 밀샙등 주전들이 트레이드 블록에 오르면서 트레이드 설이 솔솔 오가고 있다. 특히 폼이 조금 떨어지고 데니스 슈뢰더라는 대체자가 있는것으로 판단되는지 제프 티그가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데, 여기에 몇몇 팬들은 아직 상위순위인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그래도 이후 20승 12패를 거두며 정규시즌을 48승 34패에 플레이오프 진출성공으로 마무리했는데, 문제는 같이 3~6번 시드를 경합하고 있던 샬럿 호네츠, 보스턴 셀틱스, 마이애미 히트가 똑같은 성적을 거두면서 4팀 동률이 되어버렸다(...) 결국 타이브레이커로 4번시드가 확정되었고, 5번시드인 보스턴 셀틱스랑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붙게되었다. 상대전적은 3승 1패로 호크스가 앞서있어서 홈코트 어드밴티지를 호크스가 가져간다.

상성에서 앞섰던 보스턴이었기에 애틀란타 팬들도 나름 기대했고 실제로 원정 3,4차전에서 아이제아 토마스의 폭발에 패배하긴 했지만 홈 경기를 전부 다 가져갔고 6차전 원정에서 압도적인 야투감을 보여주며 시리즈 스코어 4:2로 승리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1958년 이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보스턴을 이긴것이기에 나름 의미 깊었던 승리. 2라운드 상대는 저번 시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만났던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다.

하지만 리그 상위권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는 팀 답지 않게 클리블랜드에게 수많은 오픈 찬스를 허용했고, 거기에서 이어지는 무차별 3점 폭격에 무너지며 결국 다시한번 4-0 스윕패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팀 역사상 클리블랜드와 3번의 플레이오프 시리즈를 가졌는데 전부 4-0 스윕패를 당하며 천적관계에 울어야했다. 시리즈 4경기 합쳐서 3점슛을 무려 77개나 얻어맞았으며, 2차전 원정 경기에서는 상대에게 25번의 3점슛 성공을 허용하며 NBA 역사상 한 경기 팀 최다 3점슛 성공 기록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그래도 3차전 홈 경기에서는 클리블랜드가 21개의 3점슛을 성공시켰지만 애틀란타도 16번의 3점슛을 성공시키며 양 팀 합쳐 최다 3점슛 성공이라는 기록을 세웠으나 기껏 핵어작전으로 묶은 트리스탄 탐슨 대신 나온 채닝 프라이가 미친 경기를 펼치는 바람에 패배했다. 또한 리바운드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으며, 빅 3를 보유하고 있는 클리블랜드에 비해 애틀란타 쪽에서는 마땅한 4쿼터 해결사가 없었던것도 뼈아팠다. 그나마 4차전에서 제일 분전했지만 막판 데니스 슈뢰더의 돌파이후 슛이 트리스탄 탐슨의 클러치 블락에 막힌게 컸고, 이후 슈뢰더의 마지막 돌파도 실패로 끝나며 결국 1점차로 패배하고 말았다.

오프시즌에는 드와이트 하워드와 3년 7050만 달러에 계약했고, 켄트 베이즈모어와 4년 7000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2.6.5. 2016-17 시즌[편집]


클리블랜드를 상대하기 위해서, 데뷔 후 쭉 애틀란타에서 주전으로 뛰던 호포드와 티그가 떠나고 하워드와 데니스 슈로더가 그 자리를 메웠다. 하워드로 페인트존 강화를 노렸다. 결과 11월 중순까지 9승 2패로 상당히 좋은 페이스로 달렸다가 이후 1승 11패로 드라마틱하게 추락했으나, 12월 7일 연패를 끊은 후 17승 16패라는 무난한 성적으로 2016년을 마쳤다.

1월에 11승 4패의 호성적을 거두고 2월까지 잘 버티다 3월에 7연패를 하며 다시 위기를 맞았지만 4월에 동부 선두다툼을 하는 보스턴과 클리블랜드를 모두 잡아내며 10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4월 9일 클리블랜드와의 경기에서는 3쿼터까지 26점차까지 밀리며 가비지로 가던 게임이던걸 4쿼터에 44점을 퍼부어 추격에 성공, 밀샙의 버저비터로 연장까지 끌고간 다음 결국 1점차로 승리를 거두는 명경기를 만들었다.

4월 11일 살럿을 홈에서 격파하며 동부 5위를 확정지었고, 4위인 워싱턴 위저즈와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경기하는것으로 확정되었다. 연패와 연승 롤러코스터를 타며 거둔 정규시즌 최종성적은 43승 39패.

결국 워싱턴의 빠른 가드진을 앞세운 속도전을 이겨내지 못하며 2승 4패로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2.6.6. 2017-18 시즌[편집]


샬럿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하워드를 처분하고 마르코 벨리넬리와 마일스 플럼리를 받아왔다. 거기에 폴 밀샙은 FA를 통해 덴버로 떠났고, 팀 하더웨이 주니어도 뉴욕으로 보내면서 리빌딩을 시작했다. 이어 드웨인 데드먼을 데려왔고 얼산 일야소바와는 재계약했다. 최선을 다해 탱킹을 하는 시즌이 되고있다.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에는 일야소바마저도 웨이브하고 데니스 슈뢰더 등 주축 선수들의 출전시간을 조절해가면서 탱킹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다. 오죽하면 댈러스, 시카고와 함께 사무국에서 주전을 고의적으로 제외하는 것에 대한 경고를 할 정도.

최종 성적은 동부 최하위인 24승 58패.


2.7. 트레이 영의 시대[편집]



2.7.1. 2018-19 시즌[편집]


드래프트에서는 3픽을 받아 루카 돈치치를 지명했지만, 곧바로 5픽 트레이 영과 2019년 1라운드 픽을 댓가로 댈러스로 넘겼다. 컨텐더 팀으로의 이적을 원하던 데니스 슈뢰더가 OKC로 이적하였고, 주전 1번은 제 2의 스티브 내시를 꿈꾸는 트레이 영이 꿰어차게 되었다.

애틀랜타에서 시스템 농구를 꽃피운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은 높은 전술 역량과 고연봉으로 리빌딩 팀인 애틀랜타가 잡아 두기에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결국 마이크 부덴홀저 감독과 계약을 해지하였고 부덴홀저 감독은 곧바로 밀워키 감독이 되었다. 새 감독으로 로이드 피어슨 필라델피아 76ers 코치를 선임했다. 팀 리빌딩에 일가견이 있는 그가 팀을 얼마나 재건할지 관심을 모은다.

예상대로 3승 12패로 시즌을 시작하며 또 한 번의 탱킹 시즌을 예고하고 있다. 리그에 적응하며 초기 부진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트레이 영과 고효율 농구로 소포모어 시즌을 잘 보내는 중인 빅맨 존 콜린스의 성장 정도가 볼만하다. 전반기 성적은 19승 39패로 동부 12위.

최종성적은 29승 53패, 동부 12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트레이 영은 댈러스 매버릭스의 루카 돈치치에 이어서 신인왕 투표 2위를 차지했다. 비록 1위 득표수는 98:2로 차이가 크긴 했지만 성적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트레이 영과 존 콜린스의 유망주 듀오가 잘 크고 있다는 게 위안이었던 시즌.


2.7.2. 2019-20 시즌[편집]


시즌 출발부터 악재가 터졌다. 단 5경기만 치른 상황에서 유망주 듀오의 한 명이었던 존 콜린스의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된 것. 25경기 출장정지의 징계가 주어졌고 존 콜린스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흔한 약쟁이들의 변명급이라 싸늘한 여론을 돌리긴 어려웠다. 그래도 징계가 끝나고 돌아온 다음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봐야 약쟁이라는 비아냥을 피할 순 없겠지만

대신 트레이 영은 눈부신 성장세를 이어갔다. 평균득점 29.6점으로 리그 4위를 차지했으며 평균 어시스트는 9.3개로 르브론 제임스에 이은 2위를 기록했다(!). 전년도에 신인왕을 두고 경쟁했던 루카 돈치치가 MVP 후보로 꼽힐 정도의 빼어난 성적을 거둔 것에 버금갈 정도의 개인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트레이 영은 이렇게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팀 성적이 약점으로 작용한 탓인지 올스타로도, 올 NBA 팀으로도, 올해의 기량발전 선수로도 뽑히지 못했다. 그리고 평득 30점을 넘긴 워싱턴의 브래들리 빌도 올스타와 올 NBA 팀에 들지 못한 상황이라 그다지 주목도 받지 못했다.

전술하였듯 팀 성적은 여전히 좋지 못한 상황. 20승 47패로 동부에서는 뒤에서 2등인 성적을 기록하고 있던 중 코로나 사태로 리그가 중단되어 버렸다. 그리고 올랜도 버블에서 재개된 이후에도 합류하지 못하고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19]

시즌 중간에는 4자 트레이드에 끼어서 센터인 클린트 카펠라를 얻어오기도 했다.[20] 하지만 카펠라는 부상을 안고 이적한 데다 시즌도 일찍 끝나서 호크스에서는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대신 다음 시즌부터는 카펠라-콜린스로 이어지는 트윈타워를 야전사령관 트레이 영이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21]


2.7.3. 2020-21 시즌[편집]


시즌 끝나고 유니폼 디자인을 바꾸면서 5년간 유지했던 형광색과 이별했다. 드래프트에서는 6번픽으로 수비가 좋다고 평가받는 USC의 포워드 온예카 오콩우를 뽑았다. 시즌 마감 이후 드래프트때까지 고든 헤이워드에게 관심을 표명한거 말고는 딱히 큰 루머 없이 조용히 지내다가, 드래프트 끝나자 마자 보그단 보그다노비치, 다닐로 갈리나리, 라존 론도, 크리스 던을 폭풍 영입했다. 팀의 젊은 코어들인 트레이 영존 콜린스를 받쳐줄 수 있는 훌륭한 영입이라고 평가받으며 동부 상위시드도 가능한 로스터를 구축해냈다.

시즌 초반엔 저 영입선수들 대부분이 부상에 시달리며 팀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팀의 핵심인 트레이 영도 모든 스탯이 소폭 하락했지만 클린트 카펠라가 괴수로 거듭나면서 중위권 싸움을 하고 있다.

위를 노려야 할 시즌임에도 지지부진한 성적을 보이자 2021년 3월 3일 로이드 피어스 감독과 결별했다. 후임으로 전 시즌까지 인디애나 감독을 맡았던 네이트 맥밀란 수석코치를 임시감독으로 승격시켰다. 3월 18일 기준 새로운 감독과 함께 7연승을 하며 5할 승률을 회복, 동부 5위로 올라섰다.

이적시장 막판 포인트가드가 절실했던 클리퍼스에게 라존 론도를 넘기고 드래프트 지명권 2장과 루 윌리엄스를 받아왔다.[22] 벤치 타임에 득점이 부족했기 때문인 듯.

5월 1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경기에서 패하면서 3연패를 하고 있다. 현재 6위 보스턴와는 승차가 없고, 경기이고, 7위 마이애미와의 승차가 0.5경기이기 때문에 만약 애틀랜타가 5월 2일 시카고 불스전에서 패하고, 보스턴과 마이애미가 승리를 한번씩 거두면 애틀랜타는 7위로 주저앉을 수 있는 상황이다. 플레이-인 토너먼트를 피하려면 무엇보다 시카고 불스와의 경기에서 3연패를 끊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다행히도 5월 2일 시카고 불스와의 경기에서 108:97로 승리하며 3연패를 끊어냈으며 또한 같은 날 클리블랜드전에서 승리한 마이애미에게서 5위 자리를 지켜냈다.

5월 10일과 12일에 펼쳐진 후반기 태풍의 눈 워싱턴과의 2연전을 접전 끝에 모두 승리하며 4년만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41승 31패 동부 컨퍼런스 5위의 최종성적과 함께 6년만에 디비전 우승을 이뤄내면서 플레이오프 진출을 달성했고,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8년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동부 컨퍼런스 4위 뉴욕 닉스와 대결하게 되었다.

맥밀란 감독이 경기에 앞서 "사무국은 뉴욕같은 인기팀이 잘하는 것을 기대할 것"이라고 발언했다가 벌금을 물었다. 아담 실버는 "사무국은 특정팀을 편애하지 않는다."라고 항변.[23]

1차전은 MSG의 거센 응원 열기와 갈리나리의 턴오버쇼의 향연도 극복하고 트레이 영의 클러치 퍼포먼스로 승리를 거두었다. 경기 내내 "Fuck Trae Young" 챈트를 듣던 영은 종료 직전 결승 플로터를 성공시키고 뉴욕 관중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세리머니를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2차전은 13점차까지 앞섰음에도 루 윌리엄스와 다닐로 갈리나리가 벽돌을 무수히 날리면서 뉴욕에게 추격과 역전을 허용해 털려버렸다. 트레이 영은 관객들에게 '헤이 헤이 이 대머리 새끼야'라는 자유투 방해 콜을 듣고 멘탈이 나가는 등 첫 플옵 원정 시리즈를 혹독하게 치뤄야만 했다.[24] 맥밀란 감독은 팀이 탈탈 털리는 데도 수비적으로 일관하면서 시리즈가 길어질 거라는 것을 예상한 듯한 행동을 했다.

홈으로 돌아와 치른 3차전은 줄곧 뉴욕에 여유 있게 앞서 가며 94-105로 승리하였다. 애틀랜타는 상대 에이스 랜들을 야투 2/15로 꽁꽁 묶었고, 선수 7명이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였다. 트레이 영이 21득점 14어시스트 2턴오버로 활약하며 승리를 견인했고[25] 뉴욕은 데릭 로즈가 30득점으로 분전하였다.

4차전 역시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3쿼터부터 기세를 잡아나가기 시작해 20점차로 뉴욕을 격파했다. 줄리어스 랜들이 또 부진하면서 뉴욕은 로즈밖에 없던 반면. 애틀랜타는 부진하던 갈리날리가 조금씩 살아나고 트레이 영과 보그다노비치가 여전히 건재하면서 공격력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5차전도 애틀랜타의 뒷심이 강했다. 영이 조금 부진했으나 단단한 수비로 랜들과 로즈를 봉쇄하고 뉴욕이 1대1로 효율이 좋지 않은 공격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경기가 가비지로 들어가자 영은 딥쓰리샷을 날리고 뉴욕 관객들에게 잘가라고 인사를 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렇게 시리즈를 4승 1패로 마무리하고 5년만에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 진출, 동부 1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 대결하게 되었다.

1차전은 엄청난 점수차로 초반 리드하면서 엠비드까지 출전한 필라델피아의 추격을 뿌리치고 애틀랜타가 승리를 거두었다. 트레이영과 보그다노비치의 득점력도 대단했지만 루윌과 갈리날리의 벤치싸움도 애틀랜타가 압도하면서 초반부터 거의 가비지게임을 만들었다. 자유투를 넣지 못하는 시몬스를 처절하게 공략한 효과도 봤다. 4쿼터 마지막 순간에 2점차까지 추격당했지만 이미 시간이 다 소진되어있었다.

필라델피아의 우세가 점쳐지는 것과 반대로 에이스 트레이 영을 필두로 반향을 일으키며, 시리즈 스코어를 2-2 동률로 만들었다. 여기에 더해 5차전에서는 트레이 영이 39득점을 몰아치면서 동부 1위 필라델피아를 상대로 한때 26점차까지 벌어졌던 점수를 뒤집어 엎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이로써 동부 컨퍼런스 결승까지 단 1승을 남겨두게 되었다. 그리고 7차전. 영까지 부진했으나 접전으로 경기를 끌고갔고 4쿼터부터 영이 다시 득점력을 가동. 케빈 허터와 갈리날리도 대활약하면서 6년만에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했다!

애틀랜타의 정규시즌 성적이 전년대비 많이 오르긴 했지만 컨파까지 올라갈 컨텐더라는 평과는 거리가 멀었고, 1라운드 상대는 상대전적 0-4의 카운터였던 닉스, 2라운드 상대는 동부 1위이자 네츠-벅스와 함께 동부 우승후보 3강을 이루던 식서스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놀라운 성과이다. 1라운드에서 떨어질거라는 평이 많았고 2라운드에서는 대부분의 팬들과 전문가들이 패배를 점치던 상황, 거기다 선수들로 하여금 크나큰 심적 부담을 안겨주는 MSG와 웰스 파고 센터에서 상위팀들을 상대하면서도 훌륭하게 승리들을 챙긴 것. 이처럼 이미 기대치를 한참 웃도는 성과를 냈지만, 에이스 영은 컨파 진출에 기뻐하는 한편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면서 파이널 진출에 대한 열의를 드러내고 있다.

14-15시즌 이후 간만에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한 애틀란타 호크스는 난적이라고 평가받던 밀워키 벅스와의 경기에서 크리스 미들턴의 부진을 틈타 트레이영의 48득점 11어시스트 더블더블의 활약에 힘입어 1차전을 116 대 113으로 잡아내고 애틀란타로 연고지 이전 이 후 첫 컨퍼런스 파이널 승리를 기록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상대 밀워키의 감독은 14-15시즌 애틀란타를 정규시즌 1위와 컨퍼런스 파이널로 이끈 부덴홀저였다.

2차전은 큰 점수차로 대패하고 애틀랜타로 홈경기를 하러 온 호크스. 3차전은 가비지 게임 대패에도 굴하지 않고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앞서나갔으나 4쿼터 막판 미들턴의 외곽이 대폭발하는 바람에 결국 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트레 영이 심판에게 발이 걸려 넘어지며 발목을 다치면서 4차전 출장을 못하게 되며 시리즈가 이대로 끝나나 싶었다.

4차전 트레 영 대신 선발로 나선 루 윌리엄스는 야투율 100%를 이어가면서 팀을 이끌었고 아데토쿤보가 6득점으로 심각한 부진을 보이면서 애틀랜타가 크게 앞서나갔다. 3쿼터가 시작되고 아데토쿤보가 페인트존에서 득점을 폭격하기 시작하면서 어려운 경기가 되어갔는데 카펠라의 레이웁을 막으려다 아데토쿤보가 무릎이 반대로 꺾이면서 그대로 경기를 뛰지 못하게 되었고 보그단의 외곽슛이 들어가기 시작하고 밀워키는 멘탈이 흔들렸는지 공수가 완전히 무너져버리면서 경기는 4쿼터부터 가비지 게임으로 돌입. 애틀랜타가 시리즈를 동률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데토쿤보가 없는 밀워키를 상대로도 브룩 로페즈를 샤킬 오닐로 만들어주며 5차전을 20점차로 참패. 6차전은 트레 영이 돌아왔으나 부상으로 제 컨디션도 아니었던지라 10점차로 패하면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26]

동부 5위의 언더독이었으나, 4위 뉴욕과 1위 필라델피아를 누르고 컨퍼런스 파이널까지 진출하는 값진 성과를 남긴 시즌이었다. 컨퍼런스 파이널 첫 승리와 첫 홈경기 승리도 얻었다. 팀의 미래 에이스였던 트레이 영이 성장을 거듭하다 PO에서 폭발하여 리그를 이끌 슈퍼스타 반열에 올랐으며, 존 콜린스, 케빈 허더, 디안드레 헌터, 캠 레디쉬 등 지난 몇 년간 하위권에 머물며 얻은 유망주들이 제법 쓸만한 롤 플레이어 이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를 밝혀준 시즌이었다.

다만 중요할 때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해줄 S급 스타가 트레이 영 정도를 제외하면 부재하며, 이런 팀들의 경우 PO 단골은 될지언정 우승으로 가기에는 힘드므로 다음 시즌에 제대로 달리려면 보완해야 할 부분.

도미니크 윌킨스 이후로 슈퍼스타와 프랜차이즈 스타가 부족하여 인기를 좀처럼 끌어올리지 못하는 호크스였으나, 트레이 영이라는 차세대 에이스와 PO에서의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로 리그 내 인지도 또한 높일 수 있는 희망을 얻은 시즌.

시즌 종료 이후 좋은 활약을 보인 네이트 맥밀란 감독대행과 재계약했다. 워낙에 이번 시즌 호크스가 돌풍이었던지라 그를 노린 구단들도 많았던 듯 보이나 맥밀란은 애틀랜타 잔류를 선택했다. 뒤이어 존 콜린스루 윌리엄스도 재계약에 성공.

2.7.4. 2021-22 시즌[편집]


1989년 이후 32년 만에 크리스마스 경기를 배정받았다. 이는 NBA 최장기록이라고한다.

동부 컨퍼런스가 벤 시몬스의 트레이드 소동, 카이리 어빙의 백신 거부 소동으로 시끌시끌한 가운데 조용히 시즌 준비를 마치고 프리시즌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임스 하든 등 몇몇 선수들이 악용하던 자유투 삥뜯기를 사무국에서 이번 시즌부터 철저히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여주며 자삥에 일가견이 있는 트레이 영의 행보에도 주목이 모이고 있다. 일단 내쉬에게도 지적받은 그 기술 없이도 영은 프리시즌에 좋은 활약을 했다.

댈러스와의 개막전에서 영이 초반 살짝 부진했으나 콜린스, 래디쉬, 헌터, 카펠라 등등 애틀랜타의 뎁스가 엄청난 파괴력을 선보이면서 시종일관 댈러스를 압도하면서 개막전 첫 승리를 가져갔다. 영은 초반에는 어시스트에 치중하다가 후반에는 야투율을 끌어올리면서 에이스다운 활약을 보였다. 컨퍼런스 파이널을 다녀온 뒤에 젊은 선수들이 동기부여가 장착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부상 중인 갈리날리, 루 윌리엄스, 오콩우 등등 돌아올 선수들도 많아 시즌 전망은 밝다.

자유투 삥뜯기를 시전하는 선수들을 제어하기 위해서 사무국이 파울콜을 짜게 부르기 시작하자 단숨에 리그 자삥의 대명사 제임스 하든이 득점력이 확 내려가버려서 젊은 세대의 자삥의 대명사 트레 영에 대해서도 불안한 시선이 모이고 있다.

역시 자삥이 금지되자 트레 영이 밸런스를 못 잡으면서 동부 하위권으로 내려가버렸다. 시카고와 마이애미 등등 부활한 팀들도 많은데다가 필라델피아와 워싱턴의 약진으로 이번 시즌은 플옵 진출 마지노선에서 싸우게 될 듯.

17경기까지를 기준으로 서브룩을 떠나 보내고 선수 뎁스를 보강한 워싱턴이 동부 컨퍼런스 상위권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내고 있는 데다가 플레이인 토너먼트 순위권에는 부진하고 있는 보스턴, 밀워키, 필라델피아와 하위권 탈출에 성공한 클리블랜드가 버티고 있어서 꽤 빡센 시즌을 보내고 있다.

트레이 영은 자유투를 다소 잃은대신 외곽슛을 강화하면서 공격력을 유지했지만 팀 수비력이 붕괴되면서 여기저기 구멍이 발생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콜린스도 수비력이 별로인데다가 영의 수비는 포가들 중 꼴찌 수준이니 수비가 어렵다. 그렇다고 나머지 윙 디펜더들의 수비력이 수준급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애틀의 오펜시브 레이팅은 리그 2위, 디펜시브 레이팅 28위로 전체 꼴찌에 가깝다. 이런 기괴한 공수밸런스로 인해서 팀의 안정도가 매우 떨어져있다고 볼 수 있다.

9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인 토너먼트에 합류했다. 그리고 지난해 컨퍼런스 파이널을 간 경험을 살려 10위 샬럿, 8위 클리블랜드를 꺾으면서 8시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동부 1위 마이애미 히트에게 3차전 1점차 승리만 거두고 1승 4패로 탈락했다.

2.7.5. 2022-23 시즌[편집]


작년 플옵에서 팀 구성에서의 한계를 체감한 것인지 2옵션인 콜린스와 샌안토니오의 공수겸장 포인트 가드인 디존테 머레이와의 트레이드가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디존테 머레이를 갈리나리와 1라픽 세장으로 트레이드 영입하는데 성공하며 영의 막강한 백코트 파트너를 구하는데 성공했다. 이어 존 콜린스를 통해 또 다른 포지션의 보강을 노리는 듯한 무브를 취하고 있다.

2022-23 시즌 도중에 네이트 맥밀란 감독이 경질되었고[27], 시즌 중반부터는 트레이 영의 트레이드 루머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팀 분위기 속에 정규시즌은 8위로 마쳤고 플레이-인 토너먼트를 거쳐 7번 시드를 받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나, 1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를 만나 2승 4패로 탈락했다. 5차전은 막판 트레이 영의 강심장 딥쓰리 샷으로 승리했으나 6차전에는 트레이 영의 약점인 수비가 셀틱스에게 처절하게 공략당하면서 박살이 났다. 수비가 도저히 코어 선수로 쓰기 어렵다는 것을 증명하며 트레이 영의 트레이드 관련 소식이 계속될 전망.

3. 영구결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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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펼치기 · 접기 ]
No. 9
No. 21
No. 23
No. 44
No. 55
밥 페팃
(Bob Pettit)

도미니크 윌킨스
(Dominique Wilkins)

루 허드슨
(Lou Hudson)

피트 마라비치
(Pete Maravich)

디켐베 무톰보
(Dikembe Mutombo)

No. 59
Ted Turner
카심 리드
(Kasim Reed)

테드 터너
(Ted Turner)





6. 빌 러셀(Bill Russell) : 전 구단 영구 결번

9. 밥 페팃(Bob Pettit) (1954~1965) : 세인트루이스 시절 팀의 첫 우승을 안겨준 명 선수. 우승을 이루고 2만 득점을 달성한 이후 30대 초반에 은퇴했다.

21. 도미니크 윌킨스(Dominique Wilkins) (1982~1994) : 휴먼 하이라이트 필름이라 불린 애틀랜타 호크스의 최고 스타. 조지아 대학교를 나온 로컬 스타이기도하며 돈을 아끼겠다고 윌킨스를 클리퍼스로 트레이드시켜버린 1994년 이후 호크스는 인기를 지금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리그에서도 많은 활약을 했으며 이 때문에 NBA의 눈 밖에 난 것인지 '가장 위대한 선수 50명' 등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단 75주년에 다시 행해진 '가장 위대한 선수 75명'에 들어서 억울하게 누락된걸 극복했다.

23. 루 허드슨(Lou Hudson) (1966-1977) : 6차례 올스타에 선정되며 밥 페팃 시대 이후의 호크스를 이끌며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를 풍미한 슈터. 레이커스에서 선수 생활을 마쳤다.

44. 피트 마라비치(Pete Maravich) (1970-1974) : 명성을 쌓은 재즈와는 달리 호크스에서는 팀원들의 따돌림과 농구전술의 차이때문에 오래 활약하지 못했지만 2017년에 영구결번되었다. 호크스, 유타 재즈(뉴올리언스 재즈),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3개팀에서 영구결번된 드문 선수이기도하다.

55. 디켐베 무톰보(Dikembe Mutombo) (1996-2001) : 올해의 수비수상을 4번이나 챙겼고, 블록슛 역대 2위에 빛나는 수비의 달인.

59. 카심 리드(Kasim Reed) (2010-2018) : 전 애틀랜타 시장.

-. 테드 터너(Ted Turner) (1977-2001) : CNN의 창립자로 애틀랜타 호크스의 구단주였던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결번했다. 과거 17번이 결번이었지만, 현재는 예전 로고에 이름을 새겨서 기념하는 중.

그 외 2005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제이슨 콜리어의 40번을 추도하는 의미로 아무도 달고 있지 않다. 단 공식 영구 결번은 아니다.

4. 명예의 전당[편집]


호크스를 거쳐간 명예의 전당 선수들
애틀랜타 호크스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
선수
[ 펼치기 · 접기 ]
이름
소속년도
헌액년도
Bob Houbregs
1953년-1954년
1987년
찰스 쿠퍼
1954년-1956년
2019년
밥 페팃
1955년-1965년
1971년
클리프 헤이건
1956년-1966년
1978년
에드 맥컬리
1956년-1959년
1960년
슬래터 마틴
1956년-1960년
1982년
Clyde Lovellette
1958년-1962년
1988년
레니 윌킨스
1960-1968년
1998년
젤모 베티
1962년-1969년
2016년
리치 그윈
1963년-1970년
2013년
월트 벨라미
1969년-1974년
1993년
피트 마라비치
1970년-1974년
1987년
코니 호킨스
1975년-1976년
1992년
도미니크 윌킨스
1982년-1994년
2006년
모제스 말론
1988년-1991년
2001년
시드니 몽클리프
1990년-1991년
2019년
모리스 칙스
1991년-1992년
2018년
디켐베 무톰보
1996년-2001년
2015년
토니 쿠코치
2000년-2001년
2021년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2011년-2012년
2017년

감독 & 코치
[ 펼치기 · 접기 ]
이름
소속년도
헌액년도
레드 아워백
1949년-1950년
1969년
허비 브라운
1976년-1977년
1980년-1981년
2005년
Cotton Fitzsimmons
1972년-1973년
1975년-1976년
2021년
Alex Hannum
1956년-1958년
1998년
레드 홀즈먼
1953년-1957년
1986년
레니 윌킨스
1993년-2000년
1998년
잭 램지
1972년-1976년
1992년
Rod Thorn
?
2018년
Chuck Cooperstein
?
2019년


5. 마스코트[편집]


파일:hawk-nba-brooklyn-nets-atlanta-hawks-1-850x560.jpg
마스코트는 과격한 인상(?)의 해리 더 호크(Harry the Hawk)

키스 타임에 여성관객들과 코믹한 장면을 연출하거나, 잇달은 마스코트 폭행사건으로 악명이 높은 로빈 로페즈에게 결투를 신청하는 등 NBA 마스코트들 중 가장 화끈한 편
해리의 분노


6. 시티 에디션[편집]


파일:호크스 2017-18 시티 에디션.jpg
파일:호크스 2018-19 시티 에디션.jpg
파일:호크스 2019-20 시티 데이션.jpg
파일:호크스 2020-21 시티 에디션.jpg
2017-2018
2018-2019
2019-2020
2020-2021
70년대 클래식[28]
매의 날개[29]
피치트리[30]
마틴 루터 킹[31]
파일:애틀랜타 호크스 2022 시티 에디션.jpg
파일:애틀랜타 호크스 2022-23 시티 에디션.webp


2021-2022
2022-2023


404 포에버[32]
Peach[33]

7. 2023-24 시즌 선수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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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gcolor=#fdb927> '''[[틀:NBA 팀별 선수단|{{{-1 {{{#000000 다른 NBA 팀 선수단 보기}}}}}}]]''' ||




8. 역대 성적[편집]



­
우승
­
준우승
­
플레이오프 진출

플레이오프 탈락

연도
정규시즌 순위[34]
플레이오프
컨퍼런스
팀이름
경기수


승률
1949-50
3위/6팀
디비전 세미파이널 진출
서부 디비전
트라이시티 블랙호크스
64
29
35
.453
1950-51
5위/5팀
탈락
68
25
43
.368
1951-52
5위/5팀
탈락
밀워키 호크스
66
17
49
.258
1952-53
5위/5팀
탈락
71
27
44
.380
1953-54
4위/4팀
탈락
72
21
51
.292
1954-55
4위/4팀
탈락
72
26
46
.361
1955-56
3위/4팀
디비전 파이널 진출
세인트루이스 호크스
72
33
39
.458
1956-57
1위/4팀
준우승
72
34
38
.472
1957-58
1위/4팀
우승
72
41
31
.569
1958-59
1위/4팀
디비전 파이널 진출
72
49
23
.681
1959-60
1위/4팀
준우승
75
46
29
.613
1960-61
1위/4팀
준우승
79
51
28
.646
1961-62
4위/5팀
탈락
80
29
51
.363
1962-63
2위/5팀
디비전 파이널 진출
80
48
32
.600
1963-64
2위/5팀
디비전 파이널 진출
80
46
34
.575
1964-65
2위/5팀
디비전 세미파이널 진출
80
45
35
.563
1965-66
3위/5팀
디비전 파이널 진출
80
36
44
.450
1966-67
2위/5팀
디비전 파이널 진출
81
39
42
.481
1967-68
1위/6팀
디비전 세미파이널 진출
82
56
26
.683
1968-69
2위/7팀
디비전 파이널 진출
애틀란타 호크스
82
48
34
.585
1969-70
1위/7팀
디비전 파이널 진출
82
48
34
.585
1970-71[35]
2위/4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진출
동부 컨퍼런스
82
36
46
.439
1971-72
2위/4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진출
82
36
46
.439
1972-73
2위/4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진출
82
46
36
.561
1973-74
2위/4팀
탈락
82
35
47
.427
1974-75
4위/5팀
탈락
82
31
51
.378
1975-76
5위/5팀
탈락
82
29
53
.354
1976-77
6위/6팀
탈락
82
31
51
.378
1977-78
4위/6팀
1라운드 진출[36]
82
41
41
.500
1978-79
3위/6팀
2라운드 진출
82
46
36
.561
1979-80
1위/6팀
2라운드 진출
82
50
32
.610
1980-81
4위/6팀
탈락
82
31
51
.378
1981-82
2위/6팀
1라운드 진출
82
42
40
.512
1982-83
2위/6팀
1라운드 진출
82
43
39
.524
1983-84
3위/6팀
1라운드 진출
82
40
42
.488
1984-85
5위/6팀
탈락
82
34
48
.415
1985-86
2위/6팀
2라운드 진출
82
50
32
.610
1986-87
1위/6팀
2라운드 진출
82
57
25
.695
1987-88
3위/6팀
2라운드 진출
82
50
32
.610
1988-89
3위/6팀
1라운드 진출
82
52
30
.634
1989-90
6위/7팀
탈락
82
41
41
.500
1990-91
4위/7팀
1라운드 진출
82
43
39
.524
1991-92
5위/7팀
탈락
82
38
44
.463
1992-93
4위/7팀
1라운드 진출
82
43
39
.524
1993-94
1위/7팀
2라운드 진출
82
57
25
.695
1994-95
5위/7팀
1라운드 진출
82
42
40
.512
1995-96
4위/8팀
2라운드 진출
82
46
36
.561
1996-97
2위/8팀
2라운드 진출
82
56
26
.683
1997-98
4위/8팀
1라운드 진출
82
50
32
.610
1998-99
2위/8팀
1라운드 진출
50
31
19
.620
1999-00
7위/8팀
탈락
82
28
54
.341
2000-01
7위/8팀
탈락
82
25
57
.305
2001-02
6위/8팀
탈락
82
33
49
.402
2002-03
5위/8팀
탈락
82
35
47
.427
2003-04
7위/8팀
탈락
82
28
54
.341
2004-05
5위/5팀
탈락
82
13
69
.159
2005-06
5위/5팀
탈락
82
26
56
.317
2006-07
5위/5팀
탈락
82
30
52
.366
2007-08
3위/5팀
1라운드 진출
82
37
45
.451
2008-09
2위/5팀
2라운드 진출
82
47
35
.573
2009-10
2위/5팀
2라운드 진출
82
53
29
.646
2010-11
3위/5팀
2라운드 진출
82
44
38
.537
2011-12
2위/5팀
1라운드 진출
66
40
26
.606
2012-13
2위/5팀
1라운드 진출
82
44
38
.537
2013-14
4위/5팀
1라운드 진출
82
38
44
.463
2014-15
1위/5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82
60
22
.732
2015-16
4위/15팀
2라운드 진출
82
48
34
.585
2016-17
5위/15팀
1라운드 진출
82
43
39
.524
2017-18
15위/15팀
탈락
82
24
58
.293
2018-19
12위/15팀
탈락
82
29
53
.354
2019-20
14위/15팀
탈락
67
20
47
.299
2020-21
5위/15팀
컨퍼런스 파이널 진출
72
41
21
.569
2021-22
8위/15팀
1라운드 진출
82
43
39
.524
NBA 통산 73시즌
V1

5773
2850
2923
.494


9. G 리그 산하팀[편집]


파일:College Park Skyhawks.png
칼리지파크 스카이호크스
College Park Skyhawks
설립년도
2017년(7주년)
역사
이리 베이호크스 (2017~2019)
칼리지파크 스카이호크스 (2019~)
연고지
조지아 주 칼리지파크
컨퍼런스
동부 컨퍼런스
디비전
사우스이스트 디비전
홈구장
게이트웨이 센터

칼리지파크 출신 래퍼 2 Chainz가 이 구단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10. 기타[편집]


  • NBA 역사상 가장 많이 로고를 바꾼 팀이기도 한데, 1946년 창단 이래 11번이나 로고를 변경했다.[37] 로고를 가장 적게 바꾼 팀은 시카고 불스로 창단시에 썼던 붉은 황소 로고를 변경 없이 쓰고 있다.


  • 불가사리로 번역된 Tremors 시리즈의 인간흉기 버트 거멀이 항상 애틀랜타 호크스 모자를 쓰고 다닌다.

  • 파이널 진출 년도가 1957년, 1958년, 1960년, 1961년으로 빌 러셀의 셀틱스 왕조의 초창기에 4번이나 만나서 우승 1회, 준우승 3회를 각각 기록했다. 1958년에 호크스가 한 번 끊어주지 않았다면 셀틱스의 연속 우승은 8년이 아니라 10년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11. 참고/관련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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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NBL 출범.[2] NHL 애틀랜타 플레임스(현 캘거리 플레임스)와 공용[3] NFL 애틀랜타 호크스와 공용[4] 1999년부터 2011년까지 NHL 애틀랜타 스래셔스(현 위니펙 제츠)와 공용[5] 배우 제이미 거츠의 남편이다.[6] 보정 속옷 기업인 스팽스(Spanx)의 창업자[7] 세라 블레이크니의 남편이자 마키스 제트의 창업자[8]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놀리는 '병틀'이라는 단어조차도 NBA팬들은 호크스에게 거의 쓰지 않는다. 이 '병틀'이라는 말은 NBA에선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에 해당된다.[9] 1948년 NBL 부회장을 거쳐 이듬해 회장이 됐고, BAA(현 NBA)의 합병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1955년 시라큐스 내셔널스 단장직을 사임한 후 부동산 사업에 전념해왔다.[10] 그도 1956-57 시즌 도중에 뉴욕 닉스에서 넘어왔다.[11] 1967년 ABA가 창설되자 댈러스 채퍼럴스(현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초대 감독 겸 선수로 복귀해 은퇴 시까지 2년 더 뛰었다.[12] 다만 퍼렐은 한 게임도 못 뛴 채 얼마 안가 방출됐고, 골든스테이트가 뽑은 포스터는 인디애나 페이서스로 팔렸다.[13] 2006년 해체.[14] 투자자들은 유나이티드 커뮤니케이션스 그룹(UCG) 창업주 브루스 레벤슨, 트랜스 내셔널 그룹 창업주 스티브 벨킨, 테드 터너의 아들 뷰 터너 및 사위 J. 러더퍼드 세이델, 전 단장 마이크 기어론 및 버드 세레틴 등으로 구성됐다.[15] 알 제퍼슨을 뽑을 기회가 있었다.[16] 물론 로이야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일찍 마쳤긴 했지만 그 당시 거의 최고의 픽이라 주목 받았다.[17] 호크스가 드래프트를 제대로 하고 제대로 꾸렸다면 크리스 폴 - 조 존슨 - 조쉬 스미스라는 빅3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18] 이 시즌부터 쓰게 되는 로고, 과거 1972년부터 1995년까지 썼던 로고를 바꾼 모양이다. 팩맨을 닮아서 팩로고라고 불리기도 하였다.[19] 리그 중단 전 이미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되었던 팀들은 버블에 초대받지 못했다.[20] 휴스턴에서 카펠라를 트레이드한 것은 오프시즌에 영입한 러셀 웨스트브룩과 카펠라가 서로 맞지 않았기 때문. 둘 다 외곽슛이 약해서 동시에 나오면 코트의 스페이싱이 급격히 좁아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웨스트브룩은 영입해 온 지 얼마되지 않은데다가 연봉이 4천만 달러가 넘어 트레이드가 힘드므로 카펠라를 대신 트레이드한 것.[21] 유망주 듀오 두 명이 모두 수비가 약한 상황이라 카펠라의 곹밑 수비력은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카펠라는 골밑에서 공을 받아 마무리하는 능력만큼은 좋은 선수라 트레이 영의 어시스트 적립을 증가시켜줄 수도 있다.[22] 2012~2014시즌에 호크스에 있었기 때문에 7년만에 돌아왔다.[23] 다만 이는 베테랑인 맥밀란 감독이 플옵에 처음 올라가는 젊은 선수들이 코어인 팀을 이끄는 입장에서 첫 경험을 다른곳도 아닌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하게 생긴 선수들을 다잡기 위해 일부러 한 발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겸사겸사 사무국에 판정장난질 치지 말라는 경고도 되고.....[24] 영이 딱히 뉴욕 관객들과 각을 세울 사건은 이 시즌 전까지는 없었다. 그저 뉴욕의 8년만의 플옵 경기의 상대팀 에이스라서 제대로 걸린 것일 뿐... 특히 코트사이드쪽에는 관중을 입장시키지 않은 다른 구장들과 달리 매디슨 스퀘어 가든은 코로나 이전처럼 코트사이드에도 관중들을 빽빽하게 입장시켜서 선수들에 대한 관중들의 압박이 더 컸다. 심지어 트레이 영에게 침을 뱉는 선넘는 관중이 나오기도 했다. 이 관중은 경기 후 적발되어 경기장 영구 출입금지 조치를 받았다.#[25] 호크스에 열광적이지 않은 애틀랜타팬들도 인쇄물까지 돌리면서 영의 탈모를 조롱한 뉴욕에 빡쳤는지 엄청난 응원열기였고 줄리어스 랜들에게 '과대평가된 놈'이라는 야유를 했다.[26] 5차전, 6차전 내내 점수를 리드당했다.[27] 트레이 영과의 갈등이 심각했다고 한다.[28] 피트 마라비치루 허드슨 시대의 유니폼, 옆구리의 무늬는 당시 애틀랜타의 현재 유니폼으로 두 유니폼의 디자인을 합친 것이다.[29] 애틀랜타 연고정착 50주년을 기념해 비상하기를 상징화했다.[30] 애틀랜타의 유명도로인 피치트리 도로를 상징화했다. 애틀랜타가 있는 조지아주는 복숭아가 많이 자라기로 유명해 주의 별명이 'Peach State'일 정도다.[31] 애틀랜타에서 태어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념하는 유니폼[32] 애틀랜타의 지역번호로, 애틀랜타를 상징하는 숫자 중 하나다. 60년대 초창기(등번호 폰트), 70년대 피트 마라비치의 시대(Atlanta 영어 폰트), 90년대 디켐베 무톰보의 시대(매 그림), 2000년대 조 존슨의 시대(노랑색 유니폼)의 애틀랜타 유니폼에서 한가지씩 디자인을 가져와 합쳐놓은 유니폼이다.[33] 19-20시즌에 이어 복숭아를 유니폼의 상징으로 삼았다.[34] 디비전 순위가 의미가 없어진 2015-16 시즌부터는 컨퍼런스 순위 기재.[35] 이 시즌 부터 서부, 동부 컨퍼런스로 구분되었다.[36] 1974-75 시즌부터 플레이오프 1라운드가 생겼다.[37] 2위는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디트로이트 피스톤즈(총 10회), 3위는 뉴욕 닉스새크라멘토 킹스(총 8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