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기라 유야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일본의 배우.
2. 활동[편집]
어릴 때 친구가 아역배우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해보고 싶어서 스타더스트 프로모션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 생애 처음으로 본 오디션이 영화 《아무도 모른다》였다.
2004년 영화 《아무도 모른다》로 데뷔하여 일본 최초 역대 최연소(14세)로 제57회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1] 당시 남우주연상 경쟁 상대 중 하나가 무려 영화 올드보이의 최민식[2] 이었으며, 심사위원이었던 쿠엔틴 타란티노는 많은 영화를 봤지만 잊혀지지 않는 건 야기라 유야의 얼굴이었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중간고사 기간과 겹쳐(...)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에[3] 이 어마어마한 상을 직접 받지는 못했다. 수상을 발표하는 순간에는 자고 있었다고(...)[4]
최연소 수상이었기에[5] 세간의 엄청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으나 정작 본인은 이것에 대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도 모른다》는 그가 난생 처음으로 카메라 앞에 서서 연기를 한 결과물이었다.[6] 연기자로서의 첫걸음을 뗀 순간부터 베테랑 배우들도 받기 힘든 엄청난 권위의 상을 안고 출발하게 되었으니, 받은 주목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칸에서 수상한 그해 타임지 아시아 판에서 '2004 Asia’s Heroes'를 선정할 때 일본 대표로 스즈키 이치로와 함께 뽑히기도 했을 정도로 어린 나이와 경력에 비해 엄청난 부담을 받았다. 이후 배우의 길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종종 내비치다가 2008년에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나, 이는 본인이 직접 부인했다.[7]
2010년 같은 소속사 출신의 배우 토요타 에리와 젊은 나이에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고등학교 한 학년 선배인 그녀에게 첫눈에 반해 사귀다가 17살에 덜컥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결혼이 가능한 나이는 18세. 결국 4년 연애 끝에 19살에 재차 프로포즈하여 첫사랑과 결혼에 골인했다. 이후 심적으로 많이 안정되어 다시 복귀해 꾸준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8] 그전까지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2013년 내한 당시 아역 시절이 즐겁지 않았으며, 다음 생에도 배우가 된다면 어른이 돼서 데뷔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재의 밝은 모습을 보면 여러모로 결혼이 사람을 살린 듯. 인터뷰에서도 결혼과 가족들의 지지 덕분에 힘든 시기를 버텼다고 밝히기도 했다. 1년 동안 잠시 배우업을 중단하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이때의 경험도 큰 교훈이 되었다고.
연기폭이 상당히 넓은 배우로, 데뷔작에서의 정적이고 아련한 이미지로 그를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줄 때가 많다. 푼수 같은 오버 캐릭터부터 정신이 반쯤 나간 폐인까지 무난히 소화해내서 동일 인물인가 싶은 캐릭터가 한둘이 아니다. 특히 《사채꾼 우시지마 극장판 파트2》에서의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반쯤 맛이 간 스토커 역할이었는데, 배우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정말 잘 소화해냈다.
한동안 방황하고 자리를 못 잡다가 이미지 변신을 꾀한 드라마 《아오이 호노오#드라마》를 통해 대중들에게 《아무도 모른다》 이후 드디어 인생작을 찾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다시금 배우로서의 가치를 회복하게 된다. 두 작품에서 연기한 캐릭터는 굉장히 심한 간극을 보여준다. 이후 드라마 《유토리입니다만, 무슨 문제 있습니까?》와 영화 《디스트럭션 베이비즈》를 통해 오랜만에 연기상도 수상하며[9]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다. 역할이나 비중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서 왕성하게 필모그래피를 쌓아가는 중.
은혼 실사화 시리즈에도 출연했는데, 본인의 역이 맘에 들었는지 2편 촬영 당시의 사진을 마구 올리거나 캐릭터 인형을 매달고 다니기도 했다. 한때 스태프가 운영하는 공식 트위터는 온통 은혼 투성이에 프로필 사진과 헤더까지
2018년 영화 《여명》으로 5년 만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 참고로 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제자였던 히로세 나나코의 감독 데뷔작으로, 고레에다 감독과 연이 깊은 두 사람의 만남이기도 하다.[11]
2023년에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 #
3. 출연 작품[편집]
3.1. 영화[편집]
3.2. 드라마[편집]
3.3. 무대[편집]
3.4. 애니메이션[편집]
4. 수상[편집]
5. 여담[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8 10:06:55에 나무위키 야기라 유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A] A B 스태프 계정[1] 여우주연상은 1988년 조디 메이가 12살에 월드 어파트로 받은 게 최연소 기록이다. 메이 역시 월드 어파트가 데뷔작. 다만 메이는 같이 연기했던 바바라 허시와 린다 무브시랑 같이 받았다. 참고로 3대 영화제 전체로 따지면 뽀네뜨의 빅토와르 띠비솔이 역대 최연소 연기상 수상자다.[2] 최민식 曰 나는 화려한 기술로 연기했지만 그 친구의 연기는 그 캐릭터 자체였다 깊은 깨달음을 줬다.[3] 사실 영화제에서 본인 행사가 끝나면 영화제를 떠나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하다. 떠나는 경우 보통 야기라처럼 일정 문제로 먼저 귀국하거나 주변 관광하러 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물론 남아서 영화 보거나 쉬거나, 영화제 내 파티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수상권에 든 경우에는 수상 하루 전 영화제 측에서 초청 팀에게 연락을 줘서 시상식에 참석하라고 귀띔을 한다.[4] 칸 시상식은 한국/일본 시각으로 새벽 2시에 한다.[5]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동아시아 수상자는 야기라 유야가 수상할 때만 해도 ‘화양연화’ 의 양조위 장예모 감독의 ‘인생’ 의 갈우뿐이었으나 2022년 한국의 송강호가 같은 감독의 브로커로, 2023년엔 야쿠쇼 코지가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로 수상하면서 수상자는 전체 다섯 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역대 최연소 수상이자 연기 경험이 전무했던 유야였기에 여전히 여러모로 희귀한 타이틀인 셈. 이외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자는 아시아 전체로 넓혀도 2016년 ‘세일즈맨’의 샤하브 호세이니 (이란) 와 2003년 ‘우작’의 배우들 (튀르키예)만 추가된다. 때문에 상술한 야쿠쇼 코지가 수상 소감으로 "겨우 야기라 유야 군을 따라잡았네요. 야기라 군도 훌륭한 배우가 됐고… 이 상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드네요"라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6] 영화 개봉보다 앞서 방영된 드라마가 있지만 시간상 《아무도 모른다》의 촬영이 먼저다. 《아무도 모른다》는 2002년 가을부터 계절당 2주씩 1년에 걸쳐 촬영이 진행되었고, 그로부터 또 1년이 지난 2004년에 공개되었다.[7] 당시 가족들과 말다툼을 한 후 평소 의사로부터 처방받은 신경안정제를 충동적으로 과다 복용했다고 한다.[8] 한때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는지 결혼식 사진에서도 체중관리가 잘 안 된 모습이었는데, 2011년 드라마 촬영을 앞두고 무려 25kg 감량에 성공했다.[9] 《아무도 모른다》로 신인상을 받은 지 12년 만에 같은 시상식에서 주연상을 받았고, 수상소감을 말하던 중 울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10] 신선조의 부장이자 실권자였던 인물로 피가 마르는 철칙으로 악명이 높았지만 동시에 미남으로 유명했고 사진으로 볼 수 있지만 지금 기준으로도 엄청 미남이다. 일처리 하나만큼은 발군이었던 사람.[11] 고레에다는 자서전을 통해 연기 경험이 전무했던 야기라 유야가 자신의 영화를 통해 데뷔한 것이 그의 연기 인생에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현재 매력적인 배우로 성장한 걸 보며 기쁜 것과 동시에 안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12] 마리코 테츠야 감독&야기라 유야 및 스태프・캐스트 일동으로서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