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현(山口県, Yamaguchi-ken)은 일본혼슈의 최서단에 위치한 현으로 현청소재지는 야마구치시이다.
혼슈에 속하지만 거리, 문화적, 경제적으로 혼슈 내 다른 지방보다 해협 건너 규슈와 밀접하고, 특히 야마구치보다 훨씬 발달한 지역인 후쿠오카현에서 가깝기 때문에 때로는 규슈를 소개할 때 여기를 같이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일본 기상청에서는 야마구치현을 아예 규슈지방으로 분류한다. 현 서쪽 끝에 있는 항구도시이자 최대도시인 시모노세키시에서 해협 건너 후쿠오카현기타큐슈시로, 혹은 기타큐슈시에서 시모노세키시로 통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두 도시 중심지 역으로 이동하는 데 전철로 14분, 280엔이면 충분할 정도다.
남쪽으로는 세토내해와 북으로는 동해에 접하고 있으며, 두 바다가 만나는 간몬해협을 사이에 두고 규슈(후쿠오카현)와 접하고 있다. 현청 소재지는 현 중앙부에 있는 야마구치시이지만 경제적인 중심 도시는 현 서쪽 끝단의 시모노세키시며, 인구 규모도 27만 명이 사는 시모노세키가 더 크다.
주고쿠산지(中國山地)의 서쪽 끝을 차지하는 지역으로, 동부에 해발고도 1,000m를 넘는 산지가 있을 뿐,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고도 500m 전후의 나지막한 구릉성 산지이다. 니시키가와강(錦川)·후시노강(淑野川)·고토강(厚東川) 등이 흐르며, 야마구치분지·이와쿠니(岩國)평야를 제외하고는 평지도 모두 규모가 작다.
일본 유수의 수산현(水産縣)으로, 시모노세키항(港)을 중심으로 한 원양·근해 어업이 성하다. 특히 복어는 일본에서 제일로 쳐주는 이곳의 특산물로 현 여기저기서 복어 캐릭터, 복어 요리 전문식당을 수없이 만날 수 있다. 광업은 전국 제1의 무연탄광인 오미네(大嶺) 탄광의 폐쇄 등으로 현재는 아키요시대지를 중심으로 한 석회석·대리석 산출이 주가 되고 있다.
주요 공업지대는 세토내해 연안에 집중되어 있으며, 화학·석유·철강을 주축으로 한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전국적으로 높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이 지역 산업이 영 시원치 않고 젊은 사람들은 인근 후쿠오카현이나 히로시마현, 오사카, 도쿄로 유출이 되어서 현내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시골의 이미지가 강한 곳이지만, 현 전체의 인구는 의외로 엄청 적은 편은 아니다. 절대적으로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주변의 현과 비교해도 시코쿠의 최대도시인 마츠야마시가 소속된 에히메현이나, 온천으로 유명하고 공업이 발달된 오이타현보다도 인구가 많다.
그러나 특정 도시가 종주도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현 전체에 인구가 고르게 분산되어 있다보니,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발전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최대도시라고 할 수 있는 시모노세키조차, 현내에서 확실하게 모든 분야에서 1위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도 말이 1위일뿐, 주변 시정촌을 합병해서 면적빨에 기반한 인구빨로 1위에 올라선 것에 가깝다.
도시권 인구도 시모노세키가 2위인데, 야마구치시는 그나마 호후시가 근처에 있어 이 2개 도시로 30만짜리 도시권이 나오지만, 시모노세키는 도시권 상 위성도시가 없고 오히려 키타큐슈시의 위성도시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우베시, 야마구치시, 슈난시, 이와쿠니시가 현내의 지분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형태에 가깝다. 동시에 현내 유명 관광지나 주요 기업들의 본사도 여기저기에 분산되어 있는 편인데 배후지 자체가 고만고만 하다보니, 각각의 관광지도, 기업 규모들도 비슷비슷 하다.
심지어 시모노세키시와 이와쿠니시는 대도시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인구와 각각 현의 제일 끝에 위치해 있다는 지리적인 불리함 때문에 중심 도시로 성장하지 못하고, 경제와 생활이 주변 대도시(각각 기타큐슈와 히로시마)에 사실상 종속되어 있다.
야마구치시에 있는 야마구치 현청은 도쿄에서 출발할 때 가장 오래 걸리는 현청이다. 야마구치 우베 공항 직항편으로도 4시간 51분이 걸리고, 직항편이 얼마 없기에 신칸센 신야마구치역을 이용해야 하는 시간대가 많은데 이러면 5시간 50분도 나온다. 오키나와현청도 4시간 40분대면 가는데...
그래서 야마구치현의 이명이 '보초'(防長) 지방이다. 스오(周防)의 '防'과 나가토(長門)의 '長'을 합친 것.
센고쿠시대에는 오우치(大內) 가의 영지였으나, 오우치 가문의 멸망 과정에서 모리(毛利) 가의 영지가 되었다. 자세한 사정은 오우치 요시타카, 스에 하루카타, 모리 모토나리 문서를 참조. 본래 주고쿠의 패자였던 모리 가는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명목상 서군의 총사령관을 맡았다가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영지가 스오와 나가토 2국으로 축소되었고, 이후 나가토(長門)의 이름을 따서 조슈(長州) 번으로 칭하였다. 조슈번은 유신 4번[6]
나머지는 사쓰마 번, 사가 번, 토사 번
의 필두로 사쓰마 번과 삿쵸 동맹을 맺고 막부 토벌의 선봉에 섰으며, 유신 이후 메이지 정부의 요직을 장악하여 번벌 정치의 폐단을 낳기도 하였다. 폐번치현으로 번이 폐지되면서 야마구치현이 되었다.
이 유신 시기에 구 막부를 수호하려는 아이즈 번과 대립각을 세웠고, 마침내 내전으로까지 발전했는데, 이 때의 일 때문에 패배자에 속했던 아이즈 번 사람들의 출세가도가 막혀 버렸다. 그 악감정은 아직도 남아 있어서 후쿠시마현[7]
현 후쿠시마현을 이루는 나머지 다른 지역들(나카도리, 하마도리)도 보신전쟁 당시 아이즈 번과 같은 편이었다.
사쓰마에 대해서는 세이난 전쟁 때 구 아이즈번 세력들도 토벌에 참여했으므로 일정 부분 빚을 받아낸 셈이지만 조슈에 대해서는 그런 역사도 없기 때문이다. 보신 전쟁으로 도호쿠가 이후 무려 4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그 여파가 남았고, 대놓고 차별 대우를 받았던 역사 때문에 지역감정이 상당한 편이다. 물론 일본 황실이라든지 조슈 정치인들도 나름대로 화해를 위한 제스처를 취하기는 했다. 일본 황실과 아이즈번주인 마쓰다이라 가문과의 통혼이라든지, 아베 신조도 야마구치현 지역구이긴 하지만 외가가 야마구치현 출신이고 원래 친가는 도호쿠 아베씨 가문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로도 야마구치 출신 인물들이 정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역사성을 야마구치현에서는 관광자원으로 써먹는 중.
일각에선 현대 일본우익의 발상지라고 평하기도 할 정도로 역사성이 있어서인지,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편이다. 2014년 중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도 물론 일본의 우경화가 심해진 2012년 이후 선거긴 하다만 자민당·공명당 연합은 야마구치현에서 61.2%를 득표해 일본 1위[12]
그 다음은 시마네현(57.0%), 미야자키현(56.4%), 돗토리현(56.0%), 가고시마현(56.0%) 순.
를 기록했으며, 여기에 유신당 등 다른 보수 정당의 득표율을 합치면 거의 75%에 달했다. 특히 아베 조부의 고향인 나가토 시의 경우 자민당-공명당 득표율이 73.6%를 기록했고, 여기에 여타 우익 정당의 득표율까지 합치면 83%에 달했다.
사실 조슈번(모리 가문)과 사쓰마번(시마즈 가문)은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도요토미 가문의 편을 든 세력의 본거지로, 도쿠가와의 에도 막부 시기 억압을 받던 지역이었기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두 지역끼리도 사이가 나빴기에 협력은 요원해보였는데, 이때 사카모토 료마가 대정봉환을 명분으로 두 지역을 중재하고 한동안이나마 동맹을 체결시키면서 훗날 유명해진 것. 그런데 이렇게 보면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가문을 지지했던 지역의 몇몇 출신 인사들이 훗날 또 정한론을 내세운 격이니 참 한반도랑은 악연이 깊다고 볼 수도 있겠다.
총 기간으로 보면 장기 재임한 가쓰라 다로(2,886일), 전후 일본의 사토 에이사쿠(2,798일), 아베 신조(3,188일)가 모두 야마구치현 출신이었다.[17]
사실 아베는 도쿄도 신주쿠구에서 출생한지라 좀 논란은 있다. 일단 본적지는 야마구치다. 그래서 조슈 파벌이 지금도 일본 정치계에 남아있다고 보는 사람들 입장에선 아베도 조슈 파벌로 보는 편이다. 근데 정작 지역구를 물려준 친할아버지 아베 간과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반군국주의, 평화주의자에 친한파였다.
관광지로서의 메리트는 떨어지는 편이다. 유명 관광지로는 후술할 장소들이 있긴 하지만 그런 류의 관광지는 다른 도시에 더 거대하고 유명한 것이 많기 때문에, 해외 관광객은 물론 일본인 관광객들조차 야마구치현을 1순위 관광지로 계획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교통 인프라도 열악한 편으로, 항공 노선은 도쿄 노선 밖에 없고 현내의 철도나 버스 인프라도 좋지 않아서[19]
신칸센 노선을 제외한 재래선의 경우 단량~2량 편성에 경우에 따라서는 전철화도 안 된 디젤동차가 그나마도 시간당 1대조차도 없는 수준으로 돌아다니기도 하며, 시내버스도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1시간에 1대 있으면 많이 있는 수준이다.
자동차 없이는 관광지 간의 순조로운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외국인 관광객들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메리트가 떨어지는데, 대규모의 상업 시설이 없기 때문에[20]
시모노세키역에 있는 '시몰(sea mall)'이 현내에서 제일 큰 종합 쇼핑 시설이다. 그나마도 대도시의 중소 쇼핑몰 정도의 크기이고, 현내의 다른 도시에는 이조차도 없다.
쇼핑을 겸한 관광이 어려우며, 상술했듯 교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관광지에 접근하는 것부터 불편함의 연속이다. 심지어 후쿠오카와 히로시마라는 더 유명하고, 관광지도 더 많고, 교통도 훨씬 더 편리하며, 상업 시설까지 잘 갖추어져 있는 거대 현이 양 옆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주된 관광 계층은 현내 주민들을 제외하면 국내 여행 경험이 어느 정도 있어서 다소 마이너한 관광지를 발굴해내려는 일본 내국인이나, 특가로 나온 항공권을 구매해서 가볍게 이틀 정도 쉬다가 돌아가려는 소수의 외국인 관광객으로 한정된다. 외국인 한정으로는 그나마 부관훼리가 왕복하고 후쿠오카에 붙어있는 시모노세키시 정도가[21]
그나마도 이곳을 거점으로 하기보다는, 기타큐슈 관광에 반나절~한나절 정도를 할애해서 둘러보는 경우가 많다.
, 당일 관광 코스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주요 명소로는 한국에서 오는 부관훼리가 도착하는 시모노세키시에는 아카마 신궁, 가라토 시장, 간몬해협, 쵸후 모리저택과 모리정원 등이 있다. 한국인보다는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더 의미가 있는 곳이지만 유신지사 관련 유적지도 곳곳에 있다. 야마구치시에는 루리코지(瑠璃光寺)[22]
오우치 요시히로(大內義弘)가 현 부지에 오에이의 난 때에 죽은 일족의 명복을 비는 고샤쿠지(香積寺)라는 보리사를 지으면서 지었던 5층탑이 남아 있다. 고샤쿠지는 훗날 다른 곳으로 옮겨졌는데 5층탑은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 두었고, 대신 원래의 고샤쿠지 부지에 에도 시대에 루리코지라는 절이 들어서면서 이 탑을 그대로 사용했다. 오우치 일족의 보호 아래 야마구치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오우치 문화권'의 상징이다.
통합 전에는 일본 도시 중에서 유일한 자매결연 도시였는데, 통합 후에는 마산과 맺은 히메지시와 진해와 맺은 구레시가 들어가면서 3개가 되었다.
을 맺었고 창원대학교도 국립 야마구치대학과 2010년 자매결연을 맺었다. 또한 KBS창원방송총국도 NHK 야마구치 방송국과 자매결연을, MBC경남 창원본부도 닛폰 테레비의 가맹사인 KRY 야마구치 방송과 자매결연을 맺었다. 때문에 KBS 창원 로컬방송에서는 오후 5시 주말뉴스 같은 한적한 시간대에 NHK 야마구치에서 제작한 자매결연 교환 뉴스를 더빙 방송하고 있다.
2014년 들어 미국이 현 동부에 위치한 이와쿠니(岩国) 기지를 새로운 거점 기지로 확장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어서 주민들이 반발하였다. 미군의 공중급유기 KC-130 15기 모두 8월까지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에서 이와쿠니 기지로 이전 배치될 예정이고,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도 2017년께에는 이와쿠니 기지에 배치될 예정이며, 당초 오키나와에 배치하려고 했다가 격렬한 주민 반대에 부딪친 MV-22 오스프리 2개 편대(12대)도 이와쿠니 기지에 '잠정 배치'하기로 했기 때문. 아울러 59대의 미군 항공모함 함재기도 2017년께 이와쿠니 기지로 이동 배치될 계획이다. 이런 배치 및 이전 계획이 모두 성사되면 이와쿠니 기지는 다수의 미 공군, 해병대 거점기지가 될 것이고, 백업을 위한 탄약창, 주둔 병사 숙소나 관사 등도 건설될 경우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기지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이와쿠니 기지가 팽창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야마구치 현은 전통적으로 자민당에 대한 지지도가 매우 높았던 지역이므로, 자민당 정권에 사사건건 반기를 드는 오키나와보다 기지 확장 및 이전 작업이 보다 용이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아무튼 이것이 성사된다면, 한국에서도 매우 가까운 지역에 극동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가 새로 탄생하는 셈.#
[1] 추계인구 2023년 11월 1일 기준[2] 2021년 8월 내각부 확정치#[3] 한국어 페이지[4] 山口를 하나로 합쳐서 섞은 모양이다.[5] 그래서 야마구치현의 이명이 '보초'(防長) 지방이다. 스오(周防)의 '防'과 나가토(長門)의 '長'을 합친 것.[6] 나머지는 사쓰마 번, 사가 번, 토사 번[7] 현 후쿠시마현을 이루는 나머지 다른 지역들(나카도리, 하마도리)도 보신전쟁 당시 아이즈 번과 같은 편이었다.[8] 사쓰마에 대해서는 세이난 전쟁 때 구 아이즈번 세력들도 토벌에 참여했으므로 일정 부분 빚을 받아낸 셈이지만 조슈에 대해서는 그런 역사도 없기 때문이다. 보신 전쟁으로 도호쿠가 이후 무려 4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그 여파가 남았고, 대놓고 차별 대우를 받았던 역사 때문에 지역감정이 상당한 편이다. 물론 일본 황실이라든지 조슈 정치인들도 나름대로 화해를 위한 제스처를 취하기는 했다. 일본 황실과 아이즈번주인 마쓰다이라 가문과의 통혼이라든지, 아베 신조도 야마구치현 지역구이긴 하지만 외가가 야마구치현 출신이고 원래 친가는 도호쿠 아베씨 가문이다.[9]고무라 마사히코 전 외무대신의 아들[10]기시 노부오 전 방위대신의 아들이자 아베 신조 전 내각총리대신의 조카[11] 현 외무대신[12] 그 다음은 시마네현(57.0%), 미야자키현(56.4%), 돗토리현(56.0%), 가고시마현(56.0%) 순.[13] 사실 조슈번(모리 가문)과 사쓰마번(시마즈 가문)은 세키가하라 전투 당시 도요토미 가문의 편을 든 세력의 본거지로, 도쿠가와의 에도 막부 시기 억압을 받던 지역이었기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허나 두 지역끼리도 사이가 나빴기에 협력은 요원해보였는데, 이때 사카모토 료마가 대정봉환을 명분으로 두 지역을 중재하고 한동안이나마 동맹을 체결시키면서 훗날 유명해진 것. 그런데 이렇게 보면 조선을 침략한 도요토미 가문을 지지했던 지역의 몇몇 출신 인사들이 훗날 또 정한론을 내세운 격이니 참 한반도랑은 악연이 깊다고 볼 수도 있겠다.[14]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가쓰라 다로, 데라우치 마사타케, 다나카 기이치,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간 나오토, 아베 신조.[15] 2위는 도쿄(5명), 3위는 이와테현과 군마현(각 4명).[16] 2위는 군마현(3,503일), 3위는 도쿄(3,456일), 4위는 고치현(3,271일), 5위는 이와테현(2,960일).[17] 사실 아베는 도쿄도신주쿠구에서 출생한지라 좀 논란은 있다. 일단 본적지는 야마구치다. 그래서 조슈 파벌이 지금도 일본 정치계에 남아있다고 보는 사람들 입장에선 아베도 조슈 파벌로 보는 편이다. 근데 정작 지역구를 물려준 친할아버지 아베 간과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반군국주의, 평화주의자에 친한파였다.[18] 간 나오토의 경우 정치 생활은 야마구치가 아닌 도쿄에서 시작했다.[19] 신칸센 노선을 제외한 재래선의 경우 단량~2량 편성에 경우에 따라서는 전철화도 안 된 디젤동차가 그나마도 시간당 1대조차도 없는 수준으로 돌아다니기도 하며, 시내버스도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1시간에 1대 있으면 많이 있는 수준이다.[20]시모노세키역에 있는 '시몰(sea mall)'이 현내에서 제일 큰 종합 쇼핑 시설이다. 그나마도 대도시의 중소 쇼핑몰 정도의 크기이고, 현내의 다른 도시에는 이조차도 없다.[21] 그나마도 이곳을 거점으로 하기보다는, 기타큐슈 관광에 반나절~한나절 정도를 할애해서 둘러보는 경우가 많다.[22]오우치 요시히로(大內義弘)가 현 부지에 오에이의 난 때에 죽은 일족의 명복을 비는 고샤쿠지(香積寺)라는 보리사를 지으면서 지었던 5층탑이 남아 있다. 고샤쿠지는 훗날 다른 곳으로 옮겨졌는데 5층탑은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 두었고, 대신 원래의 고샤쿠지 부지에 에도 시대에 루리코지라는 절이 들어서면서 이 탑을 그대로 사용했다. 오우치 일족의 보호 아래 야마구치를 중심으로 번성했던 '오우치 문화권'의 상징이다.[23] 막부 말기 유명한 이케다야 사건의 발단이 된 과격파 유신지사들의 교토 방화 계획에서 천황을 이곳으로 옮기려는 계획이 있었다. [24]스가와라노 미치자네를 모시는 덴만구로 다자이후나 교토시에 있는 덴만구보다는 다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덴만구로서 엄연한 일본 3대 덴만구의 하나로 꼽힌다.[25] 통합 전에는 일본 도시 중에서 유일한 자매결연 도시였는데, 통합 후에는 마산과 맺은 히메지시와 진해와 맺은 구레시가 들어가면서 3개가 되었다.[26] 다만 항목에도 있듯 아버지가 데릴 사위로 와서 성을 바꾼지라 나중에 형제끼리 성이 갈라진다.[27]이명박 전 대통령이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광복 이후 생활한 포항 출신으로 보는 경우가 많은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28] 본적이 야마구치현으로, 실제로는 도쿄도 태생이다.[29] 본인은 도쿄 도 출신이지만 부모님은 야마구치 현 토쿠야마시 출신이다. 실제로 본인이 맡은 역할로 인해 야마구치 현 어린이 홍보대사로 임명되었고, 본인도 야마구치 현에 대한 애정이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