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현 제3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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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쿠 지방 국회의원


[ 중의원 의원 ]

{{{-1 {{{#fff 홋카이도 · 도호쿠 · 기타칸토 · 미나미칸토 · 도쿄 · 호쿠리쿠신에쓰 · 도카이 · 긴키 · 주고쿠 · 시코쿠 · 규슈-오키나와
}}}}}}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선거구

파일:일본국 내각총리대신 심볼.svg
야마구치현 제3구
山口県第3区

파일:shuinsen_Yamaguchi3.svg
선거인 수
355,510명 (2022)
상위 도도부현
야마구치현
하위 행정구역
시모노세키시, 하기시, 나가토시,
미네시, 산요오노다시, 아부군
국회의원


하야시 요시마사




1. 개요[편집]


야마구치현 제1구와 함께 야마구치현의 중부 지역을 관할하는 일본의 중의원 선거구다. 현재 지역구 국회의원은 자유민주당 소속 하야시 요시마사.

주고쿠 지방 선거구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선거구도 자민당 초강세 지역으로 ‘자민왕국’이라고 불리는 선거구 중 한 곳이다. 관할 지역인 하기시요시다 쇼인, 조슈 3존 중 하나이자 전직 총리인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고향이다.


2. 역대 국회의원[편집]




3. 역대 선거 결과[편집]



3.1.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야마구치현 제3구
우베시, 하기시, 오노다시, 미네시, 아사군, 미네군, 아부군
후보
득표수
비고
정당
득표율
당락
파일:자유민주당(일본) 흰색 로고.svg
가와무라 다케오
108,995표
1위


69.53%
당선
파일:일본공산당 로고 white 상하.svg
텐마야 고레키요
29,337표
2위


18.71%
낙선

사사키 노부오
12,834표
3위

[[무소속|
무소속
]]

8.19%
낙선

이토 에츠오
5,599표
4위

[[무소속|
무소속
]]

3.57%
낙선

유효표
136,395표
투표율

총 선거인수


3.2.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야마구치현 제3구
우베시, 하기시, 오노다시, 미네시, 아사군, 미네군, 아부군
후보
득표수
비고
정당
득표율
당락
파일:자유민주당(일본) 흰색 로고.svg
가와무라 다케오
120,527표
1위


68.07%
당선
파일:일본공산당 로고 white 상하.svg
시노부 준이치로
38,507표
2위


21.75%
낙선
파일:덕주회.png
사사키 노부오
18,022표
3위

자유연합

10.18%
낙선

유효표
136,395표
투표율
64.88%
총 선거인수


3.3.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야마구치현 제3구
우베시, 하기시, 산요오노다시, 미네시, 아부군
후보
득표수
비고
정당
득표율
당락
파일:자유민주당(일본) 흰색 로고.svg
가와무라 다케오
111,658표
1위


63.25%
당선
파일:민주당(일본 1998년) 로고.svg
이와모토 스스무
50,975표
2위


28.87%
낙선
파일:일본공산당 로고 white 상하.svg
다나카 노리히사
13,909표
3위


7.88%
낙선

유효표
136,395표
투표율
63.14%
총 선거인수
286,993인

3.4.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야마구치현 제3구
우베시, 하기시, 산요오노다시, 미네시, 아부군
후보
득표수
비고
정당
득표율
당락
파일:자유민주당(일본) 흰색 로고.svg
가와무라 다케오
118,412표
1위


62.21%
당선
파일:민주당(일본 1998년) 로고.svg
미우라 노보루
55,815표
2위


29.32%
낙선
파일:일본공산당 로고 white 상하.svg
고토 히로시
16,124표
3위


8.47%
낙선

유효표
136,395표
투표율
68.03%
총 선거인수
285,401인

3.5.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야마구치현 제3구
우베시, 하기시, 산요오노다시, 미네시, 아부군
후보
득표수
비고
정당
득표율
당락
파일:자유민주당(일본) 흰색 로고.svg
가와무라 다케오
115,757표
1위


60.08%
당선
파일:민주당(일본 1998년) 로고.svg
미우라 노보루
73,760표
2위


38.28%
낙선
파일:행복실현당 심볼.svg
츠다 슈이치
3,159표
3위

[[행복실현당|
행복실현당
]]

1.64%
낙선

유효표
136,395표
투표율
70.32%
총 선거인수
278,585인

3.6.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야마구치현 제3구
우베시, 하기시, 산요오노다시, 미네시, 아부군
후보
득표수
비고
정당
득표율
당락
파일:자유민주당(일본) 흰색 로고.svg
가와무라 다케오
107,833표
1위


70.85%
당선
파일:민주당(일본 1998년) 로고.svg
나카야 다이스케
28,663표
2위

18.83%
낙선
파일:일본공산당 로고 white 상하.svg
이가라시 히토미
15,709표
3위

10.32%
낙선

유효표
136,395표
투표율
57.98%
총 선거인수
272,343인

3.7.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야마구치현 제3구
우베시, 하기시, 산요오노다시, 미네시, 야마구치시의 옛 아토초 지역, 아부군
후보
득표수
비고
정당
득표율
당락
파일:자유민주당(일본) 흰색 로고.svg
가와무라 다케오
93,248표
1위

68.37%
당선
파일:민주당(일본 1998년) 로고.svg
미우라 노보루
29,329표
2위

21.57%
낙선
파일:일본공산당 로고 white 상하.svg
후지이 타케시
13,818표
3위

10.18%
낙선

유효표
136,395표
투표율
52.20%
총 선거인수
268,385인


3.8.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야마구치현 제3구
우베시, 하기시, 산요오노다시, 미네시, 야마구치시의 옛 아토초 지역, 아부군
이름
소속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선 여부
비고
가와무라 다케오
(河村建夫)

자유민주당
103,173
(71.3%)

1위
당선
공명당 추천
사카모토 후미코
(坂本史子)

입헌민주당
41,497
(28.7%)
2위
낙선
사회민주당 추천

선거인 수
268,385
투표율
52.20%


당선 후 연설하는 가와무라 다케오

3.9.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야마구치현 제3구
우베시, 하기시, 산요오노다시, 미네시,
야마구치시의 옛 아토초 지역, 아부군

후보
득표수
비고
정당
득표율
당락
파일:자유민주당(일본) 흰색 로고.svg
하야시 요시마사
(林芳正)

96,983
1위

76.94%
당선
파일:입헌민주당(2020년) 로고 하얀색 CDP 포함.svg
사카모토 후미코
(坂本史子)
29,073
2위

23.06%
낙선

유효표 수
126,056
투표율
50.14%
유권자 수
256,039



선거를 앞두고 본선보다 당내 싸움이 더 심각한 지역으로 나타났다. 아소 내각에서 방위대신, 아베 신조 내각에서 농림수산대신, 문부과학대신을 지낸 하야시 요시마사 야마구치현 선거구 5선 참의원 의원이 지역구를 노리고 나선 것이다. 하야시 의원은 시모노세키시가 본적지이고, 고조부 대부터 시모노세키의 지역 재벌이자 이 지역이 기반인 정치인을 역임했다.[1]

그의 아버지 하야시 요시로는 舊 야마구치 1구에서 중의원을 지내다 소선거구제로 개편되면서 아베 신조에게 지역구를 넘겨주고, 그 대신에 주고쿠 권역 비례대표에 공천되어 2003년까지 중의원 의원을 역임했다. 아베 가문과는 중선거구제 시절 라이벌관계였으며, 전직 최장수 총리이자 당내 최대파벌 세이와 정책연구회의 영수인 아베 신조의 영향력이 강대하기에 아베 신조의 선거구 대신에 이 곳을 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야마구치현의 인구감소로 50회 중원선 이후부터 야마구치 현의 선거구 개수가 4개에서 3개로 감소할 예정이고, 하야시가 출마할 예정인 야마구치 3구와 아베의 현재 지역구인 야마구치 4구가 각각 인구 하한선에 초근접, 인구 하한선에 미달한 상황이고, 합구 및 재편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구라 다음 선거에는 무조건 대립하게 된다. 아베는 자식도 없는데다[2] 나이나 뭘로 보나 더 이상 총리가 될 가망은 없기에 사실상 과거의 인물로 취급당하는 터라 차기 총선에서는 의외로 아베가 지역구를 잃을 가능성도 있다.

하야시 참의원 의원이 중의원 의원으로 이동하려하면서 현직인 가와무라 다케오 의원과 당내경선이 유력해보이지만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은 현직 우선을 강조하며 가와무라 의원이 공천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가와무라 의원이 지수회(니카이파) 회장대행을 맡을 정도의 측근이라 이러한 말을 한것으로 보인다.[3]

하야시는 이번 선거에야말로 각을 잡고 중의원 의원으로의 전업을 노리는 중이다. 멀쩡한 철밥통인 참의원 의원을 박차고 나와 중의원 의원을 노리는 이유는, 하야시는 도쿄대학 법학부 -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 출신에 젊은 나이에 5선 참의원으로 굉지회의 차세대 주자이며 장래에 총리를 목표로 하고 있으나, 참의원 의원이라는 치명적인 한계[5] 때문에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다보니 이전부터 중의원 의원으로 이동하는것을 계속 의식해왔고[6], 2012년에는 중의원으로의 이동을 실행하려고 하였으나, 현직 가와무라 다케오의 강한 반발로 포기해야만 했었다.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은 6월 29일, 하야시 요시마사가 중의원 의원으로 전업 출마할 경우, 당헌 및 당규에 따라 처분을 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하지만, 하야시 요시마사는 니카이 간사장이 뭐라고 하든 간에, 무소속으로라도 중의원 의원으로 이동하여 출마할 뜻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7] 그리고 하야시 요시마사가 참의원 의원을 사직하면서 차기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다. 하지만, 현직 가와무라 다케오 의원은 이에 대해서 당의 룰을 위반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2021년 9월 29일 하야시가 속한 굉지회 회장인 기시다 후미오총재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사실상 가와무라 의원에게는 매우 위험한 상황이 될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결국 2021년 10월 1일 자민당 야마구치현련에서는 하야시 요시마사를 공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가와무라 의원은 니카이 간사장도 간사장에서 강판되어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되었는데, 가와무라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보수 분열 선거가 될 전망이 엿보이는 상황이었는데, 가와무라 다케오 의원이 불출마하면서 다시 단일화 된다.#

10월 15일, 자민당은 하야시 의원의 공천을 확정했다. 가와무라 의원은 정계은퇴를 결정했고 대신 장남인 가와무라 겐이치가 비례 주고쿠 블록에 단독출마한다.

그러나 실제 자민당의 최종 공천 후보를 보면 주고쿠 블럭 상위에 겐이치가 들어갈 줄 알았으나, 자민당 야마구치현련 회장 기시 노부오가 이례적으로 엔도 도시아키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에 요청하여 강경 보수 성향을 드러내며 아베의 총애를 받은 스기타 미오 의원을 주고쿠 블럭 상위에 위치시키고, 겐이치는 기타간토 블럭으로 쫓겨나게 되었다.[8] 이렇게 가와무라 가문은 순식간에 야마구치 정계에서 배제되게 되었다.

개표 결과, 자민당의 하야시 요시마사 전 문부과학대신이 입헌민주당의 사카모토 후미코 후보에게 77% vs 23%로 압승을 거두고 당선되었다. 중의원으로서는 초선의원이 되었으며 제2차 기시다 내각 출범과 함께 외무대신으로 임명되었다.

3.10. 제5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편집]


2022년 연말 통과된 공직선거법 개정안(10증10감법)에 따라 야마구치현의 선거구가 4구에서 3구로 감소되면서 기존 야마구치 4구요시다 신지 중의원과 선거구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대신은 현재 기시다 내각의 실세인데다가 선거구를 두고 하야시 가문과 경합하던 아베-기시 가문의 리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암살당하고 이미 없어졌기 때문에 상당히 유리한 상황이다. 물론 아베-기시 가문 역시 자민당에 뿌리가 깊은 가문이고 아베 전 총리의 어머니이자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딸인 아베 요코 여사가 쉽게 지역구를 양보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생각만큼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아베-기시 가문에서 딱히 정치인으로 전업하는데 관심이 있는 인물이 많지 않아서인지[9] 2023년 6월 13일, 신 3구에는 하야시 외무대신이 출마하고 요시다 신지 의원은 비례대표로 전업하는 방향으로 정리되었다.

일본 유신회에서는 이토 히로부미[10]를 공천했다.#

일본공산당은 후키아게 마사코를 공천했다.

[1] 고조부 하야시 헤이시로 (1857-1941, 시모노세키시의원, 야마구치현의원, 중의원 의원, 귀족원 의원, 야마구치현 고액납세자, 시모노세키 상공회의소 의장 등), 조부 하야시 요시스케 (1900-1987, 중의원 의원, 시모노세키 창고•야마구치합동가스•산덴가스 사장, 시모노세키 상공회의소 회장 등), 아버지 하야시 요시로 (1927-2017, 통산성 관료, 중의원 의원(舊 야마구치 1구), 후생대신, 재무대신, 자유민주당 세제조사회장 등)[2] 조카(형의 아들)가 있긴 하지만, 현재 회사원이라서 정계에 입문한 상태는 아니고, 후계자로 확정된 것도 아니다.[3] 참고로 이미 하야시가 속한 굉지회와는 파벌 단위로 경쟁을 해왔는데 2019년 참의원 선거 당시 2인 선출인 히로시마 선거구에 자민당은 현직인 미조테 겐세이 참의원만 공천해야한다는 히로시마현연합의 말을 묵살하고 자신의 파벌인 지수회에서 가와이 안리 후보를 공천해 미조테 겐세이 후보를 떨어트린 일이 있었다.[4] 참의원 의원회장이 있긴 하지만, 참의원 의원회장은 어디까지나 당 소속 참의원 의원들의 수장일 뿐이고, 당내 서열은 간사장보다 낮다. 그리고, 참의원 간사장이라는 직책이 있는데, 이 직책은 당의 간사장과 동격이 아니라, 참의원 의원회장 휘하에 있는 직책이고, 참의원 관련 당무만 담당할 뿐이라, 당무 대부분을 총괄하는 간사장보다 한참 낮은 직책이다.[5] 법률상 참의원 의원도 총리가 되는게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중의원 의원에서 전부 선출된다. 총리가 되려면, 양원의 지명을 받아야 하고, 양원의 지명이 서로 갈릴경우 중의원에서의 지명을 우선으로 하는것이 법으로 명시되어있다. 그리고, 참의원 의원이 총리로 취임하게 되면, 총리의 권한으로 중의원 해산이 가능한데, 정작 참의원 의원 신분의 총리는 현역 국회의원으로서의 임기를 유지하고, 중의원들은 총리의 해산권 행사로 인해 중의원이 해산돼서 전원 前국회의원 신분이 되는 그런 상황이 이상하게 비춰질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참의원을 총리로 선출하지 않는게 관례로 굳어진 것이다. 참의원 의원이 총리로 선출될 일이 없으니, 당대표 및 당의 요직도 당연히 중의원 의원들이 차지하게 된다.[4] 장래에 총리를 꿈꾸는 하야시에게는 참의원 의원이 족쇄이고, 한계 그 자체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6] 하야시가 중의원 의원으로 전업하려고 생각한 결정적인 계기가 된건 2012년 자민당 총재 선거였다. 이때 하야시는 총재 선거에서 최하위로 낙선했는데, 그 이유는 당내에서 '총재는 중의원 의원이 해야한다'라는 분위기가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야시는 중의원 의원으로 옮기는 것을 계속 의식한것으로 보인다. #[7] 최근 야마구치 3구에 속해있는 지역의 기초단체장 선거(우베시장, 하기시장, 미네시장)에서 자신이 지원한 후보가 박빙의 승부(미네시장, 하기시장 선거는 0.9%~3%차이의 박빙승부였다.)이거나 오차범위 밖 격차의 승리(우베시장)로 장식했다. 그리고, 무투표로 당선된 산요오노다시장은 하야시를 지원하고, 야마구치현의회의장의 중개로 자민당에 입당했다. 세 곳의 기초단체장 선거는 하야시와 가와무라의 대리전 형태였기 때문에(세 곳 모두 자민당계 무소속의 양자대결 구도였다.), 선거결과를 놓고 보면, 이곳의 터줏대감인 가와무라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게 되었다.(미네시, 하기시에서는 경합이었으나, 우베시에서 10% 이상의 득표율 격차로 가와무라가 지원한 후보가 패했다.) 설상가상으로 48회 중원선 당시 가와무라를 지지했던 우베코산 관계자, 자민당 야마구치현의회의원단, 지역농협, 공명당이 전부 하야시 요시마사 쪽으로 돌아서버렸다. 하야시 집안의 인맥이 워낙 지역에 넓고 촘촘하게 퍼져있어, 다 한다리 건너면 연결되어있는 식이다. 하야시의 어머니의 외조부가 우베코산 창업자였다.[8] 다음 총선거에서 야마구치현 중의원 정수가 4석에서 3석으로 줄어드는데, 아베가 지역 내에서 영향력이 하락하면, 지역구 공천 가능성이 낮아져서 비례대표로 밀려나거나 정계은퇴로 내몰릴 수 있기 때문에 잠재적 경쟁자가 될 가와무라 겐이치를 사전에 밀어내고, 자신의 계파 인물을 비례대표 후보로 올렸다고 보면 된다.#[9] 아베 신조의 형인 아베 히로노부나 그 조카들이 후보들로 거론되었지만 모두 뚜렷한 관심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나마 정치인의 길을 선택한 기시 노부치요는 이미 2구 의원인데다가 선거 과정에서 상대 후보와 격차가 너무 작아 경쟁력을 보이지 못했다.[10] 초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이토 히로부미와 발음, 심지어 한자까지 같다. 그 쪽은 1841년생, 이 쪽은 1969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