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사(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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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야사에 포함되는 부류
2.1. 정사로 지정된 것을 제외한 모든 역사서
2.2. 역사지리지
2.3. 유서(類書)중 역사를 다룬 부류
2.4. 역사서이지만 신뢰도가 의문시되는 책들
3. 역사서의 형식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야사가 아닌 것들
3.1. 잡기류
3.2. 일기류를 포함한 수필류
3.4. 창작문학


1. 개요[편집]


세종: 옛날에 야사(野史)가 있었으니, 그 뜻이 어떠한 것인가.

황희: 이른바 야사(野史)란 것은 (국가에 소속된) 사관이 기록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뜻있는 선비가 산야(山野)에 있으면서 들은 바를 측면(側面)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세종실록> 세종 13년(1431년) 11월 5일[1]

야사()는 민간에서 개인이 저술한 역사를 뜻한다. 과거의 역사서는 공식 편찬 사서이든 개인의 문집이나 일기이든지 간에 역사서의 성격을 띠고 있는 기록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정사에서 나오듯이 정사(正史)는 중국 왕조의 전통으로 왕조가 교체되고 나서 신왕조가 구왕조의 사서를 정리하고 편찬하는 공인 역사서이기 때문에 태생적인 한계가 크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서는 유교 성리학식 도덕 사관에 의해 사서를 해석하기 때문에 현재와 동떨어진 통설과 인식을 보여주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의 고려조 비판은 당시에도 과잉충성(?)으로 보일정도라 세종이 여러차례 반려할 정도. 광해군 일기에서도 중초본과 정초본의 차이로 볼때 실록 편찬시에도 전정권에 유리한 내용은 삭제하고 현재 권력에 유리한 내용으로 편집하는 방식이 드러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사와 야사 구분은 과거 왕조시대 조정에서 편찬한 사서이냐 아니냐의 차원일 뿐이지 현재 기록의 신뢰성을 기준으로 정사-야사를 구분하는것은 역사학계도 아닌 네티즌들의 편견일 뿐이다. 조정에서 발간하지 않은 역사기록물이 야사이니 신뢰성이 낮다 혹은 없다고 하는것 보다 오히려 소위 정사라고 불리는 기록의 신뢰성에 대한 무비판적인 인식은 문제가 된다.

정사만 진짜 역사고 야사는 찌라시라는 생각은 간단하게 비유하자면 민간대학교수의 논문과 학설은 찌라시나 카더라 취급하면서 정부공인 교과서만 진짜 학문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야사가 카더라 라는 것은 야사에 수록된 그 내용이 서술자가 어디서 주워들었던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2]

고대 중국에서는 역사를 편찬하는 것은 군주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믿었다.또한 역사는 군주가 보고 배우기 위한 기록이었다. 여기서 등장한 정사(正史)는 곧 나라의 입장에서 만들어낸 정통 사서를 의미한다. 그래서 국가가 역사를 관리하기 위한 작업이 있었다. 왕조의 기록을 사관을 통해 기록하여 실록(實錄)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또한 전대 왕조의 역사는 사(史)로 정리했다. 중국의 경우 24사가 바로 그것이며, 한국사에서는 삼국사기고려사가 이러한 예를 따른 것이다.

하지만 국가와는 무관하게 지식인 선비들이 각자 개인적으로 역사를 기록한 것도 존재한다. 비록 개인의 기록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으나, 이것 또한 그 시대를 살아간 인간들의 증언이다. 이러한 기록들이 바로 야사(野史)다. 아래에 야사라고 소개되는 기록물들을 보면 알겠지만, 야사라고 해서 전부 비현실적이고 뜬금없는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정사의 경우 승자에 의한 과거사의 왜곡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승자의 기록이 아닐 수 있는 야사 또한 나름대로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야사에서 이렇게 말하더라."라고 무분별하게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야사라고 해도 제각기 출처가 엄청나게 많은데, 문헌 출처를 다는 걸 등한시하는 풍조가 널리 퍼진 탓에 생기는 문제다. 야사라고 해도 문헌 출처는 기록해두는 것이 좋다.

야사라는 이야기도 다 출처들이 있다. 한국사의 대표적인 야사집으로 삼국유사연려실기술이 꼽히는데 이 책들을 열람해 보면 일화의 출처를 꼭 뒤에 붙여놓고 있다.[3] 용재총화, 오산설림, 청파극담 등이 많이 출처로 거론되는 민담 서적들이다. 이 출처가 왜 중요한지는 아래의 분류표를 보면 알 수 있다.

연려실기술만 해도 저자인 이긍익의 염격한 분류와 고증을 통해서 최대한 근거를 찾으려고 노력한 물건인데, 이마저도 오류가 속출해서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되면서 역사적 인물들의 평가가 상당부분 수정되는 일이 벌어졌던 실례가 있다. 그래서 A라는 인물에게 있었던 B 일화라고 해도 그 출처가 사실상 정사와 같은 취급을 받았던 안정복동사강목인지, 그나마 신뢰도가 높은 이긍익연려실기술인지, 아니면 말 그대로 민담들이 마구 섞여있는 일반 민담집인지에 따라서 그 신뢰도는 천양지차가 될 수도 있다. 동사강목에 적혀 있는 내용을 가지고 야사라고 하면서 적을 사람은 없을 것 같지만

오늘날에는 정보매체의 발달로 조선왕조실록 등의 정사 기록을 쉽게 열람할 수 있다. 하지만 승정원일기는 갈 길이 멀다. 정사에 접근하기 쉽게 된 것은 좋지만 그 반향으로 야사에 대해서는 "정사에 없고 야사에만 있으니 이는 날조다"라며 무시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는 편. 물론 역사 연구에 있어서 정사를 중시해야 하는 것은 맞고 야사의 기록이 정사와 상충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야사를 완전히 무시하는 것 역시 곤란하다. 야사라고 해서 전부 구전이나 민담, 작문이 아니다.

다만 민담수준의 것들도 드글드글하게 들어가 있고, 특히 시기 차이가 많이 난다면 신뢰도는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야사 중 가장 주목도가 높은 삼국유사에도 곰이 사람이 된다는 단군신화부터 시작해서 '사실 그대로의 역사'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이 수록돼 있고 여기서 실제 역사를 읽어내는 것은 독자와 역사가의 몫이다. 매천야록처럼 당대의 설화도 개판일 판이라... 사육신 항목처럼 승자에 대한 기록을 극복하기 위해서 전기소설 육신전을 바탕으로 대응하면, '판타지일 수도 있는 것'을 '판타지일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덮는 꼴이 된다. 두문동 72현 전설 쯤 되면 거의 프로파간다 수준이다. 정사가 기본이 되는 것은 그나마 사료 비판이 쉽기 때문이다.

다만 야사에 대해서 논할 때는, 야사의 출처가 되는 텍스트에 대해서 이해하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 초기 야사의 출처로 수도 없이 언급되는 용재총화에 대해서 찬찬히 살펴보면 알겠지만, 그 책은 저자가 본인 스스로 역사가라는 인식을 가지고 써낸 사기같은 책과는 많이 다른 작품이다. 그 책은 전형적인 필기(筆記)방식으로 쓰여져 있는데, 이는 그 당시 문인들의 하나의 글쓰기 방식으로 본인의 관심사를 자유롭게 서술,기록한 글이다. 그렇기에 거기에는 본인이 직접 겪은 여행기, 사람들로 부터 전해들은 괴상한 사건이나 이야기를 나름의 방식으로 각색한 글도 있고, 야사(野史)에 속하는 나라 안의 일 등도 나란히 기록하고 있다. 즉, 책 전체가 아닌 그 안에서 사료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는 일부분의 내용을 우리가 야사라고 착각해서 부르는 셈인 것.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은 다른 야사라고 부르는 내용의 출처들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부분이다. 파한극집, 어우야담, 패관잡기 같은 책들은 저러한 필기의 방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으며, 또 이런 야사의 출처 중의 몇몇 책들은 저자 본인이 스스로 저술한 '문집'의 일부로 남아있는 것들이다. 문집이 어떤 저술가의 작품모음집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저 텍스트들이 가진 다양성을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야사라는 분류가 왜 문제가 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정사와 야사와 민담에 대한 분류가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때문에 이러한 책들은 분류학적으로는 역사서로 분류되지 않고, 야사라는 분류도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로 이런 책들을 더욱 파고들은 이들은 역사학자라기 보다는 고전문학학자에 속하는 이들이다. 실제로 해당 책들을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서 검색할 때, 최상단에 뜨는 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의 분류를 보면 문학 카테고리, 더 정확하게는 필기잡록류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들은 기본적으로 역사서의 형식도 갖추지 않고 있으며, 필자 역시 역사서로 작성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에 와서 대중적으로는 과거에 기록된 믿거나 말거나식 일화를 야사로 취급하기 때문에, 이런 민담집과 일화들을 다룬 책들의 내용도 야사이겠거니 하면서 뭉뚱그려서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즉, 어디서 들어봤는데 정확한 역사적 근거를 찾을 수 없으면 대충 야사에 의하면 이라는 식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순도 많고, 한 사람의 일화가 사람 이름만 바꾸어서 다른 사람의 일화로 언급되는 일도 많다.

당대의 사건을 겪은 인물이 직접 쓴 것이라면 충분히 가치가 높은 사료다. 하지만 '사료'와 '사서'는 다르기 때문에 이들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야사는 어디까지나 역사서로 쓰여진 것을 말하는 것이지 사료가 된다고 곧 야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진왜란을 왜란을 직접 겪은 유성룡이 쓴 징비록이나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는 충분히 높은 사료적 가치가 있지만 야사라고 볼 수 없다.

반면에 소위 고기류 책들은 실제로는 대부분 위서이기 때문에 역사적 가치는 거의 없지만 야사에 포함되기는 한다. 이것은 야사가 기본적으로 역사서이냐 아니냐로 갈린 것을 다시 정사이냐 야사이냐로 쪼갠 것이지 역사적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로 분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래의 분류에 야사인 것과 야사가 애초에 아닌 것이 나뉘어져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재야사학 등에서 늘 주목하며 '이것이 역사의 진실이다!'라고 주장하곤 한다. 완전히 틀렸다고 매도할 순 없는 것이, 확실히 주류에선 기술할 수 없었던 숨겨진 진실이 여기 많든 적든 담겨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 하지만 이 경우는 대부분 위서 문제가 처음 걸리고, 그 다음은 사서 비판의 문제가 이어진다.

사료 비판은 정사, 야사, 민담 할 것 없이 다 걸린다. 현대 역사학에서 정사라서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4]. 문제는 그 사료 비판과 대하는 사람의 문제이다. 단적으로 민담과 소설을 같이 묶어서 야사라고 칭하는 경우는 특히 교양 역사의 수준에서 심각한 문제를 가져온다. 청백리 황희 전설이나, 두문동 36현 이야기 등은 모두 작성자의 개인적 의도가 명백한 이야기다. 이게 민담이라고 돌았고, 민담집을 거쳐서 연려실기술에 실리더니, 한때는 역사의 진실로 평가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나무위키 역사 관련 사건이나 인물 문서를 보면 민담집을 근거로 인물평가한 사례를 부지기수로 볼 수 있고, 대부분은 그걸 '00민담집에 따르면'이 아니라 '야사에 의하면'이라고 퉁쳐놨다. 역사서라서 이해가 안가면 '성경' 같은 '위서 시비 잘 나는 종교 경전'을 가지고 올 수도 있다. '정경을 구별한 것은 인간의 행적이니, 외경위경 등은 별 차이도 없다'다고 하면 기도 안 차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성경에의 외경 중에도 이게 왜 정경이 아닌지 이상한 책들이 있고, 소위 위경이라고 평가 받는 부분이 사실 정경보다 종교적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역사학에서도 발생한 문제이고, 이는 받아들이는 인식의 문제와도 닿아있다. 특히 문제는 정과 야의 문제보다, 사서와 애초에 역사서도 아닌 것의 차이에 있다. 이는 아래 분류에서 '야사와 정사'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야사와 역사서도 아닌 것'의 분류가 강조된 것에서 알 수 있다. 대부분은 정사와 야사를 구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야사와 역사서도 아닌 것의 구별을 못하고 그것이 더 잦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2. 야사에 포함되는 부류[편집]



2.1. 정사로 지정된 것을 제외한 모든 역사서[편집]


본래 역사서로 쓰여졌으나, 정사에 포함되지는 않은 책들 전부 다. 여기에는 중국사에 있어서 사실상 정사나 마찬가지인 사마광자치통감이나 한국사에서 일연삼국유사 같이 심지어 국가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서 완성된 경우에도 가차 없다. 역사적 가치와는 별개로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이 책이 이 시대를 다룬 역사서다라고 공인하지 않으면 나머지 역사서는 모조리 야사다.



2.2. 역사지리지[편집]


광해군 시기 한백겸이 저술한 동국지리지 이후로 고대의 지명, 강역, 종족 등을 현대에 고증하는 형태로 쓰여졌다. 실증주의 역사학의 시도로, 중농학파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2.3. 유서(類書)중 역사를 다룬 부류[편집]


여러책에서 어떤 내용들을 발췌하여 그것들을 찾아보기 좋게 분류해서 편찬한 책을 유서(類書)라고 부른다. 한자 문화권 식의 백과사전이다. 이 책들은 과거의 내용을 복원하고 보존하고 그 출처를 밝히는 것이 목적으로 저자의 의견을 최대한 배제하고 그 내용이 고서에 실재로 존재하였는가, 애초에 고서 자체가 실존하였는가만을 고려해서 편찬된다. 회남자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책부원구, 태평어람, 고금도서집성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때문에 이런 책들이 역사를 다루었거나, 다룬 부분이 있다면 그 자체로 역사서의 성향을 강하게 띄게 된다.
  • 대동운부군옥
  • 성호사설 - 이익의 저서로, 이중 경사문(經史門)에서 이익 본인의 사론과 중국과 한국의 제도, 인물, 풍속에 대한 대조와 비교를 하고 있다.
  • 오주연문장전산고
  • 이향견문록 - 철종시대에 유재건이 중인들 가운데 유명한 인물들에 대해서 분석한 책이다. 저자가 사실성을 중시해서 엄격하게 분류하였으며, 동일한 자료가 서로 다른 책에서 발견될 경우에는 다른 사서를 기준으로 삼아서 신빙성이 높은 것만 기록했다. 이 때문에 이향견문록에 기록된 중요한 정치적 사건들은 다른 사서를 통해서 교차검증이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에도 패관문학적 성향이 강하다라는 평가가 있지만, 이 책의 역사서의 성향을 강조하는 논문도 존재하는 등 다소 복잡하다. 현재는 역사서로 인정하는 성향이 좀 더 강하다.
  • 지봉유설


2.4. 역사서이지만 신뢰도가 의문시되는 책들[편집]


문헌학적으로 위서라고 분류된 책들이나 야담집의 틀을 갖춘 책도 역사서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라면 역사서로 분류되고 이것을 정사와 야사로 분류할 때 여기에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위 부류와 섞어놨을 때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 별도로 분류한다.

  • 연려실기술 - 이긍익이 저술한 백과사전식 사서. 야담집의 성향이 강하지만 기사본말체로 서술되어 사서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긍익은 이 책에서 정치적인 내용을 인과적으로 분류 분석하였고, 객관적이고 실증적으로 서술했다. 여기에 사견을 최대한 배제하였으며, 인용시에는 반드시 근거를 달았다. 이게 야담집이라고 하면서도 다른 야담집과는 달리 이 곳에 배치된 이유이다. 실제로 연려실기술은 역사서 취급을 받았으며, 연려실기술에 기록된 일화를 사실로 믿은 결과 사실과는 다른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각인된 사례가 많다.
  • 환단고기, 단기고사, 부도지, 규원사화, 천부경 등 '환'자 계통 서적 / 자료
  • 화랑세기
  • 남당유고


3. 역사서의 형식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야사가 아닌 것들[편집]



3.1. 잡기류[편집]


고대 국가에서는 민심 파악의 목적으로 전문적으로 민간에 떠도는 민담을 모아서 책을 저술하였는데, 이를 담당한 관리를 패관稗官이라고 하였고, 이들의 편찬한 책을 패관잡기, 또는 패관잡서라고 하였다. 민담을 단순히 모은 것에서 끝나지 않고 창작력을 투입해 문학적 체계를 갖추면 패관문학이라고 해서 소설의 단계로 넘어간다. 여기에는 일화와 민담 등이 잡다하게 얽혀 있는데, 어디까지가 민담이고 어디까지가 실제로 있었던 일화인지 다소 불분명하다. 명백한 신화 전설이 아니라면 민담과 일화를 구별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민간의 이야기라고 해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 절대로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다만 이 책들은 형식적으로 역사서의 형식[5]을 갖추고 있지 않으며, 이는 역사서로 서술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여기에 포함되었다. 실제로 책을 분류한 것을 보면 이 부류는 모조리 문학에 가있고, 애초에 개인 문집이 태반이다. 중국사와 관련된 예를 들자면 태평광기세설신어 정도가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야사라고 한다면 이 책들의 내용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시로 위쪽으로 올라가는 형태로 편집되는 경향이 있다.



3.2. 일기류를 포함한 수필류[편집]


사실 이건 야사가 아니라 단순한 1차 사료일 뿐이다. 이런 사료를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편찬한 경우가 승정원일기 같은 부류인데, 중요한 사료이기는 하지만 역사서의 형식을 갖춰 편성된 책은 아니기 때문에 정사에도 야사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3.3. 행장[편집]


행장 항목을 참고하면 알 수 있겠지만, 수필과 창작 문학의 중간 정도의 위치에 있다. 현대로 보자면 평전위인전의 중간 정도로 이해하면 쉬운데, 글 쓴 사람들이 대부분 죽은 사람의 자손이나 후손, 혹은 제자라서 그 내용이 어떻게 될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행장의 내용들이 후손들의 은근한 공작으로 민담이나 야담과 섞이기 시작하면[6] 완성된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한 발 더나가면 창작문학이 되는데, 임경업전이니 최고운전이니 전우치전이니 하는 것도 이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3.4. 창작문학[편집]


여기 적힌 것들은 소설류로 분류되어서 사실은 민담이라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는 경우이다. 지은이가 의도한 바가 대체로 분명한 문학작품들로 민간 여론의 반영이라기보다는 이 책들이 오히려 민간 여론에 영향을 주었던 케이스들이다. 궁중문학에 속하는 계축일기, 한중록, 인현왕후전은 수필의 형태를 취하면서 당대를 다루고 있지만 저자가 명백한 목적을 가지고 문학의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야사가 아닌 문학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포함되는 것들도 사료로는 사용할 수 있지만, 저자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창작한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정사나 일반 역사서는 당연하고) 바로 상단의 수필류보다도 한층 더 엄격한 사료비판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여기 있는 것을 그대로 사료랍시고 인용했다가는 교수나 제대로 된 비판자들에게 한바탕 깨질 각오를 해야 한다는 소리다



[1] 세종대왕황희에게 "야사란 무엇인가?"라고 묻자 황희가 야사의 개념을 정확히 정의내린 기록[2] 다만 야사도 야사 나름이라 나름대로 공정성이나 사실에 신경을 써서 서술했다면 제대로 된 야사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야사라 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 평생 역사와는 연도 없던 사람이 쓴 역사책이더라도 그 내용이 다른 역사책들과 비교했을 때 공정성이나 사실관계가 명확하면 가치있는 역사책이나 일생동안 역사책을 여러권 편찬한 사람이더라도 그 내용이 하나같이 엉터리고 사실관계도 맞지 않으면 이는 제대로 된 역사책이라 볼 수 없다. 찌라시냐 아니냐는건 결국 어떻게 쓰느냐에 달린 것이다.[3] 다만 삼국유사는 출처라고 쓴 책들이 일연이 살아있던 고려 말에는 존재했겠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은 다수가 실전되어 삼국유사가 가장 오래된 기록이 되어버린 기사가 많다.[4] 정사는 '정부에서 편찬한 역사 기록'이라는 뜻이지, 올바른 역사 기록이니 무조건 믿으라는 뜻이 아니다! 어설프게 역사 공부를 한 사람들이 이런 실수를 종종 저지른다.[5] 기사본말체, 강목체, 편년체 등을 의미한다. 당대나 과거의 이야기나 일화만 모아둔 것은 역사서라고 부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현대의 정치부 기자가 자신이 활동하던 시기에 보고 들은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고 가정하자. 이건 현대를 다룬 역사서에 포함이 될까? 오히려 이런 것이야말로 현대를 연구하는 미래의 사학자들에겐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지 않을까?라고 할 수도있는데, 이건 사료적 가치이지 사서적 가치는 아니다. 위서 항목에서도 본문에서도 주구장창 나오는 이야기지만, 이런 분류의 1차 조건은 책의 내용이 아니라 계통이다. 때문에 역사서의 형식을 갖추지 않았다고 본다면, 작가가 '이 책은 역사서로 쓰여졌다'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 이상은 본문의 책들도 역사서의 부류에 포함되기 어렵다.[6] 이건 현대에 일어난 일도 아니다. 지방사족의 생각은 그대로 민담인 것처럼 농민층에 전파된 예가 많다. 어느 지방 양반이 자기 조상 행장을 근거로 지방 농민에게 자랑을 하면, 그 농민이 아들이나 손자에게 들은 기억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해주면서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인데' 한구절 더하면 몇백년 묵은 민담이 탄생하는거다. 그리고 이게 패관류 민담집 쓰는 사람에게 채록되면 전국으로 퍼지면서 확산증보의 과정을 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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