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키니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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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기원 및 특징
2.1. 역사
2.2. 국적 논란
2.3. 고깃집과 야키니쿠야
2.3.1. 일본에서 먹을 수 있는 야키니쿠 메뉴
3. 여담
4. 매체
5. 관련 문서


焼肉, 焼き肉

1. 개요[편집]




한국식 고기구이가 재일 한국-조선인 사회 및 그들과 교류가 많았던 일본인들로 인해 일본에 정착한 요리 문화이자 넓은 의미에서는 일본식 한국 요리로 불린다.[1] 단어의 의미는 말 그대로 굽다라는 의미의 야키()와 고기라는 의미의 니쿠()가 합해져 직역하면 '구운 고기'이다. 일본은 육식금지령이 내려진 675년부터 1872년까지 육식을 하지 않아서 육식 문화가 발달되지 않았던지라 한국식 고기 구이 요리가 '야키니쿠(구운 고기)'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게마다 차이는 있지만 야키니쿠 음식점에서는 한국의 식문화와 함께 한국 음식인 김치, 육회, 냉면, 부침개, 나물, 비빔밥 등을 같이 파는 모습도 볼 수 있으며, 초창기에 재일 한국인이 시작하고 전파한 문화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 일본에서도 야키니쿠는 한식이라는 인식이 있다[2].

야키니쿠라는 단어 자체는 메이지 시대 당시 서양 요리를 일본으로 소개하는 책인 '서양요리통(1872년)'[3]에서 한자로 燒肉라는 표기를 쓰기 시작했고 당시 야키니쿠를 다룬 항목에서는 綿羊燒肉(면양소육)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면양은 우리가 잘 아는 털 많은 그 을 말하며 소육은 야키니쿠를 말한다. 즉, 한국어로 번역하면 "양고기 구이"가 어원으로 바비큐[4]를 번역하는 단어로 처음 사용되었다.[5]

한일 양국 간의 얽히고 설킨 근현대사로 인해 요리 분야에서 양국 간 교류가 활발해졌고, 재일 한국-조선인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갈비, 불고기(고기구이)에서 기원하여 정착한 음식. 어감상 타타키 작업을 오래 한 것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므로 직화가 닿지 않는 팬 위에 굽는 것은 야키니쿠가 아니라 로스(ロース, Roast의 축약형)라고 한다.


2. 기원 및 특징[편집]



2.1.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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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후야연(雪後野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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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춘야연도(賞春野宴圖)
춘절야유도(春節野遊圖)
석쇠 전립투(氈笠套) 위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난로회(煖爐會)의 모습을 묘사한 조선시대 민속화


이 요리와 그 문화의 기원은 고전적인 조선시대 방식에서부터 이어져 온 한국식 고기구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여러 이유로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광복을 맞이한 뒤에도 대한민국북한으로 귀향하지 않은(또는 못한) 재일 한국-조선인들이 고향에서 먹던 것 처럼 불을 피우고 원형이나 사각형 석쇠 위에서 적당히 얇게 편 고기를 구워 한 입 크기로 썰어 먹는 고기구이를 팔기 시작한 것이 야키니쿠의 시작이다.

누구는 일본 내 전후 야키니쿠 가게를 이북 출신 사람들이 다수 운영했었다는 점을 들며 남북한을 분리하여 한국 고기구이 문화 자체가 마치 북한 지역에서만 유래한 것 처럼 배정하는 식의 잘못된 해석을 펼치는데, 이는 남한의 고기구이 문화 마저도 야키니쿠 처럼 '외래 문화'인 듯한 오해를 하게 만든다. 6.25 전쟁 이전까지 한국은 하나였으며 평양 지역에서만 고기구이 문화가 존재했던 것도 아니다. 기준을 최소한으로 잡더라도 이미 조선시대 때 다양한 요리서에서 레시피를 정리하던 시기이며 이런 레시피들은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공유되었고 특히 왕과 다수의 고위층들이 거주하는 서울은 당연하게도 이런 다양한 조리법이 종착하는 지역이었다.

예를 들어 유득공[6]이나 서유구[7]의 기록에서는 '전립투(氈笠套)'라는 고기구이 음식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전립투가 바로 상단 민속화에 그려진 음식이다. 유튜브 링크 두 인물이 각각 서울대구 출신임을 고려하면 고기구이 문화는 이미 진작부터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 외에도 설하멱이나 너비아니 등 훨씬 손이 많이 가는 형태의 고기구이 문화 역시 존재하였고 레시피가 남아있다. 고기구이 문화가 이북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단지 특정한 지역 스타일의 몇몇 고기구이를 의미할 뿐이며, 이는 한국 전역에 퍼져있던 고기구이 문화의 한 갈래로 보아야 한다. 설령 이북 지역에서 유래한 문화로만 한정한다고 가정해도, 국가가 분단된 경우 분단 이전의 문화는 분단 이후 지역과 무관히 공통된 문화적 기원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남북한의 경우 두 국가가 타 세력을 인정치 않고 한 국가임을 꾸준히 강조해오고 있다.

또한 가끔씩 "고기를 구워 타래(양념장)에 찍어먹는 방식은 일본에서 등장한 발상"이라는 주장을 볼 수 있다. 이남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한국에서 고기구이를 찍어 먹는 양념이 참기름과 쌈장 위주라는 점에서 이런 주장이 등장한 듯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소스를 찍어먹는다는 발상 자체도 한국과 일본 모두에서 존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완전히 일본에서 등장한 독창적 문화라고 할 수 없다. 일본 야키니쿠 가게에서 내오는 타래 소스가 현지화 과정에서 재료나 레시피에 다소 변화는 있을 수 있더라도, 큰 틀에서는 여전히 한반도 불고기 양념의 개념이 연장되어 나타난 것이다. 남한의 양념, 참기름, 쌈장과 함께 지금도 북한에서는 고전 평양식 소스를 선호하는 집안에서는 옛 방식으로 소스를 만들어 먹고 있다. #

일본에서 이런 음식점이 처음 등장한 이후 얼마간은 재일 한인 커뮤니티 외부로는 크게 뻗어나가지 못했는데, 환기 시설이 발달하지 못한 1940~50년대 당시 사정으론 좁은 실내에서 뜨거운 숯불로 고기를 구우면 연기가 나고 옷에 냄새가 배며 실내가 매우 더워진다는 점이 크게 걸렸고, 또한 대다수의 건물들이 목조 건물이어서 화재 위험이 컸던 점도 있어서 즉석 고기구이 집을 차리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거기다 당시 재일 한인들의 이주 역사도 아직 길어봐야 반 세기 밖에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후술할 안 좋은 인식들과 겹쳐 일본인 손님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힘들었다.

비록 메이지 유신 이후로 일본에서 어느 정도 육식 문화가 소개됐었다지만, 기본적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다이쇼 시기의 짧은 기간 동안을 제외하면 일반인 개개인과 일반 가정의 경제력이 고기 요리를 마음껏 즐길 정도로 뒷받침 된 적이 없었다. 때문에 1960년대 이전 일본인들에게 육식 문화는 매우 낯선 것이었고, 그나마 적은 고기를 사용하면서도 많은 양을 먹을 수 있는 육식 문화인 카레, 돈까스, 고로케, 가공육 조차도 1960년대 말~70년대 초 이전의 일본인들에게는 매일 같이 먹기 힘든 요리였다. 그래서 이런 육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일본인들에게 더러운 동물로 인식되던 돼지의 생고기를 연기와 열기, 냄새로 가득찬 방에서 즉석에서 잘라 구워먹으며 심지어 그 중에서도 특히 "더러운 것"이나 "쓸모 없는 것" 취급을 받던 막창, , 염통 등의 여러 내장도 먹는 재일 한인들의 요리 문화는 게테모노쿠이[8]라거나 호루몬[9]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실제로 강제로 오사카에 정착하게 된 재일한국인들도 당시 시대상 고기를 많이 접하지는 못했지만 그 부산물인 내장을 깨끗하게 가공하여 먹을 수 있는 방식은 알고 있었으며, 이들은 일본 정육점에서 그냥 버리는 것을 공짜로 받아서 먹거나 일부는 이를 팔았다고 한다.

이후 시대가 흐르며 고기를 구우면 나는 연기 문제를 해결하는 환풍기나, 실내 공기의 열기를 밖으로 빼주어 실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에어컨 등이 개발되어 일본 곳곳으로 보급되고 일본 경제가 급속도로 크게 성장하며 화재에 강한 철근 콘크리트 건물들이 곳곳에 지어졌으며 경제 성장으로 일반인들과 가계의 소득 증가가 육류 소비 확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시기 미국, 호주 등지로부터 농축산물 수입이 증가하며 미국 등 해외산 소고기 수입이 시작되자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 소고기를 취급하는 야키니쿠 가게들도 속속 등장하였다.[10] 또한 재일 한인 사회의 이주 역사가 길어지며 일본의 요리 문화와 식문화에 대한 이해도 늘어났고, 이로 인해 일본인들의 입맛과 취향에 맞는 요리들이 곳곳에서 등장했다. 즉, 일본 경제의 고도 성장기를 전후한 시기에 이뤄진 이런 변화들이 재일 한인들이 만들어 파는 고기구이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질감과 기피감을 누그려뜨렸고, 이 시기를 전후로 해서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야키니쿠 가게들이 일본 곳곳에서 대중화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게 원인이 되어 소고기와 그 내장으로 만든 야키니쿠 또한 일본인들 사이에 서서히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한국 음식이 일본 내에서 소개되기 시작한 1960년대의 상황을 살펴보자면, 1965년 한일 협정 이후 한일 수교가 이뤄지며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때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 요리에 대한 관심도 같이 떠올랐는데, 이 시기를 전후로 조선적/한국국적 가리지 않고 재일 한인들이 운영하는 야키니쿠 집이 인기를 끌었다.# 1961년 일본 도쿄 긴자, 신바시 등 번화가에서는 이미 몇몇 한국 음식점들이 영업하고 있었다. 음식 이름 역시 야키니쿠가 아닌 한국 명칭 '불고기'를 그대로 썼음을 알 수 있다.# 1964년 일본의 유명 주부 전문잡지는 한국 요리 특집으로 불고기 등의 여러 요리를 소개했다고 언급이 되어 있는데 야키니쿠가 당시 일본에서 대표적인 한식으로 인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 측 자료나 재일 한인들의 증언 등으로 미루어 보면 야키니쿠가 1960년대부터 일본 사회에서 소개되기 시작한건 맞지만 본격적으로 일본 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1970~80년대부터라고 볼 수 있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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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즈카 오사무의 1970년 11월 선데이 마이니치 게재작 <긴 땅굴> 中 출처
1995년 일본 규동 프랜차이즈 요시노야가 한국으로 진출하며 언급한 내용("야키니쿠의 본고장 한국" 타이틀을 확인할 수 있다)을 보면, 일본인들은 한국을 야키니쿠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일기본조약과 88 서울 올림픽을 전후한 시기의 한국붐, 그리고 90년대 말부터 2010년대까지의 초기 한류열풍으로 이어지는 한일 양국의 활발한 문화적 교류 기간 동안 야키니쿠는 그 뿌리인 한국의 고기 문화와 교류하며 발전의 장을 맞이했다. 그리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한 시기 있었던 일본 내 한국붐은 한국 요리에 대한 관심을 재고해,[12]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들이나 한국인 왕래가 비교적 잦은 편이었던 후쿠오카 시내 번화가에서 군데군데 볼 수 있는 수준이었던 야키니쿠를 전국적으로 웬만한 도시에서는 먹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2000년대와 2010년대 한류열풍이 불면서 '정통 한국식'을 표방하는 집이 많아지고, 한국의 상추[13] 등이 일본에서의 야키니쿠에 재차 영향을 더하기도 했으며, 80년대 이후 일본으로 건너간 새로운 세대의 재일 한인들을 중심으로 생겨난[14] 정통 한국식을 표방한 집들 또한 이 시기에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또한 90년대 후반부터 김대중 정부로 인해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지면서 일본 요리들이 한국으로 소개됐는데, 이 중에서 야키니쿠도 한국으로 소개되어 한국에서 야키니쿠 전문점들을 개점하기도 했다.


2.2. 국적 논란[편집]


이 요리가 구체적으로 일식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 혹은 한식으로 분류되어야 하는지를 두고 곧잘 논란이 일어난다.
한국인들이 보았을 때 야키니쿠는 한국식 식당 문화와 닮아 한국 요리의 흔적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NHK에서 제작한 야키니쿠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야키니쿠는 한국 문화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재일 조선인들에 의한 일본 음식 문화이다"라는 코멘트가 등장했다. 기본적으로 일본 내에서도 이것을 한국에서 기원한 요리라고 인식한다. 그래서 한국식 소주나 한국식 반찬을 내놓는 등 한국 요리 음식점을 흉내내는 집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허나 동시에 이는 일본식으로 어레인지했기에 일본식 한국요리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 부분에 민감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딱히 답이 없는 문제고 무엇보다 답을 낼 이유도 없다. 미국에서 어레인지한 피자는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어레인지 되었는데. 그 어레인지에 대해 이탈리아인에게 미안해야할 이유는 없다. 또 이탈리아에서 유래했지만 미국의 음식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유명 야키니쿠 체인점인 조조엔의 창업자 박건식 회장도 야키니쿠는 재일 동포들의 음식문화이고, 그 뿌리는 한국의 불고기와 공유하지만 한국의 불고기와는 다른 음식이라는 견해를 피력한 인터뷰를 하기도 하였다. . <동포를 만나다> "야키니쿠가 일본음식이라니요?"

한국 내에서도 짜장면, 짬뽕, 탕수육, 양념치킨등을 한국 요리라고 주장하고 있고 대중적으로도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유튜브 등지에서 외국인에게 양념치킨, 짜장면을 먹이고 한국음식이라고 소개하는 유튜브 컨텐츠는 넘쳐난다.

음식을 에스닉 푸드로 받아들이는 문제는 그 음식이 실제로 본토의 음식과 얼마나 달라졌는지가 중요한게 아니다. 현지인들이 어덯게 느끼느냐에 달려있는 문제다. 예를들어 일본인들이 일본식 카레를 엄마의 맛, 가정식으로 여기는데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가정식으로 대중적으로 익숙해졌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카레를 일본인들이 어덯게 느끼건 그걸 가지고 인도인들이 화를 낼만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오렌지 치킨의 경우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음식이지만 미국에서만 판매하며 미국인들은 자국 음식문화라고 간주 한다. 야키니쿠 역시 마찬가지로 그것이 불고기와 얼마만큼 어레인지가 얼마나 있던지 간에 일본인들이 일본음식으로 여긴다면 야키니쿠가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의미인 것이다. 야키니쿠를 일본 음식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한국 기원이라는걸 부정하는 의도가 아니다.

이 문제를 마치 음식문화를 도둑질해간다는 식으로 이해하는건 부대찌개치킨을 한국음식으로 받아들였다고 화내는 미국인이나 타국이 카레를 포용하는걸 보고 화내는 인도인처럼 이해할 수 없을정도의 국수주의이니 야키니쿠가 한국음식이라고 강변하는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제3국인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고 촌스럽다고 여기게 하는 역효과만 내개 될 것이다.

한편 영문 위키백과에서는 야키니쿠라는 용어가 남한(칸코쿠, 한국)과 북한(조센, 조선)간의 구별을 회피하려는 정치적 올바름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한국식" 또는 "조선식" 같은 수식어를 쓰지 않기 위해 그냥 고기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15]

일본에서도 딱히 적극적으로 일본음식이라고 포함하려는 의식은 없는 편이다. 일본 총무성에서는 야키니쿠 가게(焼肉店)를 동양요리(東洋料理)라고 분류하고 있다.# 쇼와시기, 1960년대에는 아예 조선 야키니쿠(朝鮮焼肉) 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2.3. 고깃집과 야키니쿠야[편집]


우선 정리를 하면 다음과 같다.
  • 불고기: 짧게 잡아도 조선 후기부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크게 인기를 끈 한국식 고기 요리로, 지방마다 그 제조법과 개념이 다소 차이가 있었다. 이후 국물 요리의 역사가 깊은 남한 지역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이 들어섰고 특히 그 중에서도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영남 임해 공업단지를 중심으로 한 경상도 지방이 경제 발전의 핵심이 되면서 현재 한국의 불고기는 서울-경기도와 경상도 지방에서 먹던 양념으로 재워놓은 각기 다른 불고기를 기반으로 하여 급격한 경제 발전 시기 강남 등 서울 시내에서 등장한 중산층이나 울산, 포항, 부산 지역의 근로자들이 만들어 먹던 국물 불고기와 양념 불고기가 주류를 잡았다.
  • 야키니쿠: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 한인들로 인해 시작된 불판 위에서 고기를 익혀 양념에 찍어 먹는 요리이다.
  • 고깃집: 1970년대 이후 강남 등 서울 시내 번화가 및 중상류층 밀집 지역들을 중심으로 고기를 구워먹기 위해 고안된 음식점이자[16] 강원도의 탄광과 영남의 공업단지들을 중심으로 근로자들에게 고된 하루를 달래는 특식을 제공하기 위해 등장한 음식점으로[17] 불판 위에서 즉석으로 고기를 익히도록 고안된 한국 음식점.

한국에서 고깃집은 (돼지고기, 특히 삼겹살, 목살 등을 중심으로) 비교적 싼 가격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중산층들과 도시 근로자, 대학생들의 친구라는 인식이 강하게 존재하고 다른 일각에서는 (소고기, 특히 갈비, 꽃등심 등을 중심으로) 인건비와 원재료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 그리고 소득 증가에 따른 식도락 탐닉으로 고급화의 길을 걸어 고급 요리가 된 양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서 야키니쿠야는 (소고기를 중심으로) 비교적 고급 요리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나 다른 일각에서는 도시 근로자들과 중산층, 대학생들이 무리 없이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등장하고 있다. 즉 한국하고 큰 차이는 없다.

한국으로 일본 요리가 알려지면서 야키니쿠의 존재도 함께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양념하여 재운 현대 한국식 불고기도 일본으로 수출되어 상당히 인기를 끌어 대중화 됐으며, 현대 일본에서 날이 갈수록 인기가 올라가는 고기의[18] 반대급부로 일본인들이 겪는 고민인 고기 요리 종류의 부족을[19] 잘 파고들어 인기몰이 중이다. 이쪽은 야키니쿠가 아니라 한국어 발음을 그대로 살려 'プルコギ(푸루코기)'라고 표기한다. 물론 여전히 야키니쿠라는 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혼용되고 있지만 요즘은 プルコギ라고 하면 대부분의 일본인은 알아듣는다.


2.3.1. 일본에서 먹을 수 있는 야키니쿠 메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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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야키니쿠 전문점의 경우 한국에서 도시 교외의 규모가 큰 고깃집이 'OO가든'이라는 이름으로 가게 이름을 짓듯, 가게 이름이 대부분 ~~원(苑)으로 끝난다. 한국식 정통 야키니쿠를 표방할 수록 그 비율이 높다.

'지화자(チファジャ)'나 규카쿠(牛角)같은 야키니쿠 무한리필집[20]에서는 금액대별로 일정시간 동안 가능한 만큼의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 고기 외에도 사이드메뉴, 디저트까지 목록에 있다. 준비되어 있는 메뉴를 덜어서 가져가 먹는 한국과 달리 종업원에게 주문하면 가져다 준다.[21] 코로나 전후로는 QR코드를 스캔해 스스로 주문을 하거나 좌석에 설치된 태블릿으로 시킬 수 있게도 되었다.

한국의 '고깃집'과의 차이는 일본에서는 거의 필수메뉴처럼 취급하는 반면 아래 메뉴를 한국에서는 잘 취급을 안한다.
불고기, 양념갈비, 김치, 공깃밥과 같은 메뉴는 한일 공통적으로 취급한다.

일본 야키니쿠집에서만 접할 수 있는 메뉴들 [22]

반면 한국에는 삼겹살이 있으나 일본 야키니쿠집은 삼겹살을 잘 취급하지 않는다. [23]

3. 여담[편집]


한국 이주민이 많지 않은 외국에서 불고기용 고기를 구할 경우 정육점에서 야키니쿠용으로 달라고 하면 정확히 불고기용 고기를 준다. 그만큼 불고기와 야키니쿠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

하와이 같이 일본인들이 많이 있는 일본 외 지역에도 야키니쿠 음식점 들이 성황리에 영업을 하고 있는데, 보통 가벼운 한식(찌개, 김치, 냉면)들도 일반적으로 함께 취급한다.

일본에서 밈처럼 쓰이는 말 중에 "고기 굽다 태워도 집 태우지 마!"(焼肉焼いても家焼くな)란 입담이 있는데, 야키니쿠용 소스를 만드는 '일본쇼켄'(日本食研)[24]이란 회사의 1990년대 초반 광고에서 유래한 입담이다.[25] 사실 해당 광고 시리즈가 상당히 약을 거하게 한 사발 들이킨 듯한 컨셉이다.

재일교포 출신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장훈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호르몬 야키를 파는 야키니쿠 식당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작은 노점상을 운영했다가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계약금을 받은 뒤 집을 산 이후부터 큰 식당을 개업했다.


4. 매체[편집]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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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시피에서 다소 변형된 부분은 있을 수 있더라도 애초에 한국식 고기구이 자체가 특정하게 정해진 레시피라기보다는 먹는 방식의 성격이나 문화 자체로서의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큰 틀에서는 동질적이다.[2] 몇십년 전에는 마치 한국에서 중국집 취급하듯이, 일본인들이 한국 음식점으로 보던 것이 일본에서의 야키니쿠 음식점이다. 한국에서 일본식 돈카츠 집이나 초밥집을 가면 자연스럽게 일본식 모밀 소바를 팔고 일본식 밑반찬류인 초생강, 락교 등이 있고 가는 사람들도 무의식중에 일본요리임을 인식하는 것과 비슷하다.[3] 저자는 당시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가나가키 로분(仮名垣 魯文)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였던 노자키 분조(野崎 文蔵)이다.[4] 네이버 영어사전에서 미국식 영어를 기준으로 바비큐는 '숯불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네이버 영어사전 바비큐 양고기 구이도 일종의 바비큐이므로 틀린 말은 아니다.[5] 야끼니꾸에 대해 조사해봤습니다., 2018-10-02, 가생이닷컴[6] 경도잡지(京都雜志)에 기록되어 있다.[7]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정조지(鼎俎志)에 기록되어 있다.[8] 징그러운 걸 먹는다는 의미.[9] 쓸모 없는 것이라는 의미의 오사카 사투리라고 한다.[10] 규동 체인점도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11] 출처 - <야키니쿠 산업>, 세계한민족문화대전, <[문화칼럼] 대중문화 한류의 발판은 88올림픽과 2002월드컵이었다?>, 이문원, 자유기업원, 2020.08.18[12] 일본 만화 맛의 달인에서 묘사한 바에 따르면 서점에 한국 요리 책이 그야말로 쏟아지듯 출판되었다고 한다.[13] 한국에서 쓰던 명칭인 '상추'를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인지 일본어로 상추를 가리키는 말인 치시야를 밀어내고 아예 한국식 발음인 '상추'라고 정착되었다. 그 외의 명칭으로는 야키니쿠에 쓴다고 해서 야키니쿠 레터스라고 부르기도 한다.[14] 재일 한인 커뮤니티는 크게 재일 조선인으로도 불리는 45년 이전에 일본에 건너간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와, 한일 수교 이후 취업이나 사업, 학업, 정치적 망명 등의 사유로 일본으로 이주한 대한민국 국적의 재일 한국인 커뮤니티로 나눌 수 있다.[15] John Lie, Zainichi (Koreans in Japan): Diasporic Nationalism and Postcolonial Identity(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8), 73[16] 그 이전에도 현재와 같은 고기구이 집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으나, 적어도 본격적으로 즉석 양념갈비집 등이 등장한 것은 한국 경제가 고도 성장을 시작한 1970년대 무렵으로 추정된다.[17] 제육볶음, 불고기 백반, 삼겹살구이, 목살구이 등이 도시 및 탄광 근로자들을 위해 등장해 보급된 특식이었다.[18] 통계적으로 봤을 때 일본의 육류 소비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을 전후한 경제 위기 시기에도 육류 소비량은 증가 추세를 보였고, 황금기인 버블경제 시기보다 지금의 일본인들이 더 많은 고기를 먹고 있다. 육식 자체에 대한 인기가 꾸준히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19] 기본적으로 일본의 육류문화 역사가 짧아서 고기 요리의 종류가 적기 때문이다. 때문에 도쿄와 오사카 등 일본의 대도시들에서는 한국,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인도, 베트남, 대만, 멕시코, 중국 등 세계 각국의 고기 요리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20] 주로 타베호다이(食べ放題)라고 한다.[21] 종업원을 자주 부르는 것은 아무래도 미안해지므로 고기를 덜 내기 위한 상술이다. 한국에서와 같이 손님이 무한정 가져다 먹을 수 있는 고기뷔페도 있다.[22] 물론 서울 홍대입구 같은 대도시에 일본식 야키니쿠집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23] 단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삼겹살 구이를 취급하는 곳이 종종 보인다.[24] 1971년 설립. 에히메현 이마바리시에 본사가 있으며 공장도 2곳 있는데, 버블 시대에 지은 것이라 공장답지 않게 궁전같은 외관을 띤 것이 특징이다.[25] 육우 마스코트 3마리가 소방차에 올라타고 종을 땡떙거리면서 해당 멘트를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