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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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얄개전(소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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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인기
3. 연재 목록
4. 특징
5. 영화화



1. 개요[편집]


조흔파의 명랑소설. 1954년 5월부터 1955년 3월까지 잡지 《학원》에 연재되었다.

'얄개'는 사고는 치지만 밉지 않은 말썽꾸러기를 뜻하는 말로 함경도 사투리에서 유래하였는데 처음에는 제목을 '도련님'이라고 지으려고 하던 것을 함경도 출신의 수필가인 부인 정명숙의 제안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2. 인기[편집]


원래 3회로 계획하고 연재를 시작했지만 첫 연재부터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총 11회를 연재했으며 《학원》 1954년 7월호는 8만부가 팔려 당시 한국 잡지 역사상 최고 판매 부수를 기록했다.

연재 직후 1955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1969년 10월 5일부터 어린이극장에서 총 13회 분량의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1965년 정승문 감독의 얄개전, 1977년 석래명 감독의 고교얄개로 영화화됐는데 고교얄개는 25만8천명, 그 속편인 고교 우량아가 10만명, 얄개 행진곡의 14만명을 동원하는 등 크게 흥행하여 하이틴 코미디물 영화의 전성기를 불러왔다. 얄개전은 영화로 9번[1], 연극으로 3번, 라디오 드라마로 2번, 만화로 1번 제작되었다.


3. 연재 목록[편집]


회차
제목
연재 시기
1
청춘의 씸볼
1954년 5월
2
장난 이력서
1954년 6월
3
또 하나의 별명
1954년 7월
4
아버지 얄개
1954년 8월
5
신진 인격자
1954년 9월
6
분발거사
1954년 10월
7
작심 삼일
1954년 11월
8
행사의 달
1954년 12월
9
선생 얄개
1955년 1월
10
겨울 방학
1955년 2월
11
시담회
1955년 3월


4. 특징[편집]


나두수(羅斗秀)란 것은 얄개의 본명이다. KK중학교의 천 여명 학생 중에서 두수를 모르는 학생이라곤 거의 없을 지경으로 그는 전교 내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KK중학교의 교표를 달고 다니는 가짜 학생을 잡아낼 양이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분 증명서를 조사하기보다는 얄개를 아느냐고 물어 보아서 잘 알고만 있으면 진짜 학생으로 믿어도 틀림이 없으리라고까지 일러오는 터이다.

재적 학년은 아직도 일 학년인 두수가 일약 교내의 명사가 되었는가에 관해서는 차츰 밝혀질 일이거니와 적어도 우등생이라든가 또는 운동선수라든가 또는 음악, 미술, 문학 등에 뛰어난 재주가 있는 때문은 아니다.

두 번이나 낙방을 하여 또래보다 두 살이나 많은 중학생 '나두수'라는 인물이 벌이는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월간지에 연재된 특성상 각 회마다 하나의 사건으로 마무리되면서 에피소드가 축적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게다가 KK중학교는 미국 선교회에서 설립한 밋숀·스쿨이고, 교장은 닥터 허드슨이라는 미국인인데 그는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손질을 못하도록 하기 때문에 어떠한 일을 해도 따귀를 얻어맞는다든가 하는 따위의 위협이 결코 없으니, 장난을 치기에는 아주 안성마침이다.

작품의 무대가 미국인 목사가 교장으로 있는 미션스쿨이다. 이러한 설정은 두수가 마음놓고 장난을 벌일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을 염두에 둔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체벌이 일상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엄격한 분위기의 당시 한국 학교였다면 용납되기 어렵기 때문이다.[2] 또 한편으로 작가의 경험도 반영되어 있다. 조흔파유치원부터 고등보통학교까지 아버지가 재단이사로 재직 중인 미션스쿨에서 자유로운 학교 생활을 보냈으며, 본인 스스로 여러 번 퇴교 처분의 물망에 오를 만큼 성실하지 않은 학생으로 대입 준비보다 요리집과 소리 공부에 열중했다고 한다.

얄개는, S대학[3]

의 영문학 부장인 나 교수의 막둥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만 둘이 있으니, 외아들로 자랐는데다가 타고난 소질에 응석이 범벅이 되었으니 어릴 때부터 손을 댈 수 없는 장난군으로 매우 전도가 촉망되었었다. 무슨 장난을 쳐도 "허허허"하고 웃기만 하는 호인 아버지였기 때문에 장난에는 면허장을 받은 셈이었다.

이 역시 나두수가 마음놓고 장난을 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하는 동시에 본인의 경험이기도 하다. 실제로 조흔파는 연로한 부모님이 늦게 얻은 외아들이었다.

"학생을 때리는 일, 민주주의 아닐 뿐더러 하느님 도리에 맞지 않습니다. 뺨을 때리는 선생님 악마요"

이 부분도 경험이 반영돼 있다. 조흔파는 졸업 1년을 앞두고 일본인 교사 배척운동에 앞장선 탓에 퇴학 처분을 받았는데, 체육교사가 조흔파의 복장 불량을 이유로 따귀를 때린 것이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5. 영화화[편집]





소설을 비교적 충실하게 영화화한 것은 얄개전과 배경만 고등학교로 바뀐 고교얄개 정도고, 다른 작품들은 거의 인물이나 설정, 제목만 차용한 수준이다. 크레딧을 봐도 얄개전고교얄개각색이고 다른 작품은 각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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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흔파의 부인 정명숙이 언급한 수치인데(출처: "사전에 오른 '얄개'의 추억", 창비어린이 2013년 9월호) 애매한 숫자다. 얄개의 아류작들은 많지만 영화 크레딧에 공식적으로 '원작 조흔파'로 표기된 작품은 모두 7개이고 모두 제목에 '얄개'가 들어갔다. 고교얄개의 제작사가 제작한 속편 고교 우량아의 경우 저작권 분쟁을 겪으면서 제목에 '얄개'를 쓰지 못했고 출연진의 배역명도 배우의 본명을 썼다. 이러한 고교 우량아를 포함해도 8편이다.[2] 물론 이 당시 미국학교도 지금에 비하면 제법 엄격한 편이기는 했지만 한국학교에 비하면 상당히 천국이기는 했다.[3] 다른 대목에서 학교 위치를 동숭동이라고 하였으므로 서울대학교를 지칭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