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경민(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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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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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2003
2005
2008










파일:현재의 양경민.png
이름
양경민(梁庚民)
생년월일
1972년 12월 19일 (51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남원 양씨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서울상도초등학교
용산중학교
용산고등학교
중앙대학교
포지션
스몰 포워드
신체
193cm, 90kg
프로 입단
1995년 삼성전자 농구단
소속
삼성전자 농구단 (1995 ~ 1996)
상무 농구단 (1996 ~ 1998)
원주 나래 블루버드/TG삼보 엑써스/동부 프로미 (1998 ~ 2008)
국가대표
FIBA 세계선수권 1회 (1998)
FIBA 아시아선수권 2회 (1997, 2001)
수상 이력
KBL 우수수비상 2회 (2000, 2001)
KBL 수비 5걸 2회 (2000, 2001)
KBL 우승 3회 (2003, 2005, 2008[1])
FIBA 아시아선수권 우승 1회(1997) / 3위 1회 (2001)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논란
3.1. 현역 시절 1차 사건 사고
3.2. 은퇴 후 2차 사건 사고
4.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농구 선수.

특급까지는 아니었어도 실력을 뛰어나게 갖추었으며, 충분히 한 시대를 풍미하는 선수가 될 수 있었으나 후술된 논란들 때문에 다 말아먹었다.


2. 플레이 스타일[편집]


리그를 대표하는 특급 선수는 아니었지만 오랜 기간 평균 이상의 활동을 한 꾸준한 선수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추승균을 살짝 다운그레이드했을 정도의 선수였다.

수비력이 뛰어났으며, 공격력도 우수했다. 193의 장신이었지만 외곽슛 성공률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김영만의 전성기 때는 김영만을 잡을 수 있었던 유일한 스몰 포워드였다.


3. 논란[편집]



3.1. 현역 시절 1차 사건 사고[편집]


현역 시절이던 2005년 경, 미성년자였던 자신의 팬클럽 회장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었다. 이에 양경민은 합의 하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주장, 결국 몇 개월 뒤 재판정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당시 기사에서는 '농구 선수 A'로 익명처리되었으나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 이게 양경민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상태(...). 그런데 형사소송은 양경민 쪽에 유리한 결과가 나왔지만, 합의하에 미성년자와 성관계라는 결론이 내려졌으므로, 당연히 팬클럽 회장 가족들에게 민사소송이 걸렸고 당연히 패소해서 배상금을 지불했다.

이 와중에 팬클럽 회장이 양경민이 현역 선수 신분임에도 스포츠 토토를 구매했다는[2] 사실을 폭로했다. 팬클럽 회장에게 자신이 출전하는 경기인 2004∼2005 시즌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2차전의 토토를 대리 구매하도록 지시했다는 것. 결국 이 일은 성폭행 사건과 별도의 사건으로 발전하여, 팬클럽 회장이 증거로 제시한 메모를 바탕으로 승부조작 혐의로 기소되었고, 양경민 선수는 벌금 100만원의 유죄가 확정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양경민은 훗날 "사건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유죄를 인정하여 빨리 끝내려고 했다."고 변명했다.

한편 일부에서 '선수단 숙소에서 인터넷 중이던 양경민의 주위에 토토 용지가 놓여있던 것이 방송에 찍힌 일'이 양경민의 토토 구입이 걸린 계기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이 일 자체는 양경민이 승부조작 혐의로 기소된 이후에 방송을 보고 팬들이 의혹을 제기한 게 와전된 것이다.

그런데 웃긴 사실은 성폭행 사건에 연루되어 한참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양경민이 잘도 경기에 나섰던 것. 당시 농구의 인기가 시들했던 탓에, 성폭행 자체는 없었다는 결론이 나오자 언론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KBL은 스포츠 토토 구매로 유죄 판결이 나온 이후에서야 36경기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리는 척 하다가 어느 틈에 슬그머니 징계를 21경기로 줄여버렸다(...). 하지만 징계 복귀 직전 연습시합에서 부상을 당해 애초 징계와 똑같이 총 36경기를 쉬고(...) 코트에 복귀하였다. 양경민은 코트에 복귀하긴 했지만, 전성기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성폭행은 없었다지만 토토를 구입하고 미성년자와 성관계한 것은 사실로 밝혀졌고 팬들은 양토토양간토라며 양경민을 비웃음거리로 삼았으며, 결국 사건이 발생한 3년 뒤인 2008년 경 조용히 은퇴하였다.


3.2. 은퇴 후 2차 사건 사고[편집]


은퇴 이후 스카우트로 새출발하나 싶었지만 역시 논란이 되었고, 이내 농구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은퇴 후 아내와도 이혼하였으며, 원주에서 나이트 클럽 웨이터를 한다는 소문이 돌았더니 2013년 9월, 상습절도 혐의로 구속되면서 완전히 몰락했다. "전직 프로농구 선수 찜질방 돌며 상습절도 구속" 생활고가 심했던 모양이었지만, 누구 탓을 하겠는가?


4. 여담[편집]


현대모비스를 대표하는 주장이었고 프랜차이즈 스타인 사촌동생 양동근은 한국 프로농구 20주년을 빛낸 레전드 중 한 명으로 승승장구했으며, 2020년 은퇴 후 팀에서 영구결번까지 했을 정도로 명예롭게 은퇴했다. 위 사건들 때문에 양동근도 양경민을 언급하는 일은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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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앞선 두번의 우승당시엔 팀의 주전 스몰 포워드였으나, 2007-08 시즌 당시 양경민은 불법토토 및 성추문 사건으로 자격정지를 먹고 복귀한지 얼마 안된 상태로 몸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이광재, 강대협에 밀려 그닥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전창진 감독이 엄청난 비난을 감수하며 복귀시킨 효과는 미미했으며, 우승 후 바로 은퇴했다.[2] 선수나 감독의 경우 경기 내에서 고의적으로 배당금이 많이 걸린 쪽으로 경기를 조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토토를 구매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특히 개개인의 플레이가 경기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농구에서는 조작이 일어나기 쉬운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