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현

덤프버전 :


1 박배종 · 2 정동호 [[부주장|

VC
]] · 3 박철우 · 5 잭슨 · 7 김현 · 8 정재용 · 10 로페즈 · 11 이승우 · 13 오인표 · 14 윤빛가람
16 정재윤 · 17 노동건 · 19 김규형 · 20 황순민 · 21 최보경 · 22 이광혁 · 24 김주엽 · 25 우고 고메스
27 이태섭 · 28 이영재 [[주장|

C
]] · 29 장재웅 · 30 신세계 [[부주장|

VC
]] · 31 이범영 · 32 곽동준 · 34 김예성 · 35 서승우 · 37 바우테르손
55 김선민 · 61 이재훈 · 66 박병현 · 71 김도윤 · 77 정은우 · 88 이용 · 89 안치우 · 91 김재현 · 96 강민성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은중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정수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성수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영삼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기현서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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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FC No. 18
양동현
梁東炫 | Yang Dong-hyun
출생
1986년 3월 28일 (37세)
전라남도 광양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서울동명초등학교
동북중학교
동북고등학교
가족
아내 김수현[1], 딸
신체
186cm, 80kg
포지션
스트라이커
유소년
FC 메츠 (2002~2003)
레알 바야돌리드 CF (2003~2004)
소속 구단
울산 현대 (2005~2008)
부산 아이파크 (2009~2014)
경찰 축구단 (2012~2013 / 군 복무)
울산 현대 (2014~2015)
포항 스틸러스 (2016~2017)
세레소 오사카 (2018~2019)
아비스파 후쿠오카 (2019 / 임대)
성남 FC (2020)
수원 FC (2021~2023 )
코치
수원 FC (2023 / 플레잉 코치)
국가대표
2경기 (대한민국 / 2009)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 선수. 현재 K리그1 수원 FC에서 뛰고 있다.


2. 유소년 경력[편집]


육상 선수를 하다, 동명초등학교 재학 당시 5학년부터 축구를 시작한 양동현은 황규환, 송순보 등과 함께 초등학교 무대를 평정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진학하게 된다. 동북중학교 재학 당시 권순형과 함께 전국대회 4관왕을 달성하고 2002 UAE AFC U-17 챔피언십에서 3골을 넣으며 우승에 기여하는 등, 당대 아시아권 중고교 무대를 평정하였다. 이후 2002 한일 월드컵이 끝나고 대한축구협회의 2002년 유소년 축구 유학 프로젝트 1기 멤버로 뽑혀 프랑스 FC 메스 유스팀을 거쳐 스페인 레알 바야돌리드 유스팀에 입단하여 화제가 되었고, 유럽에서 뛰는 선수가 드물던 당시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레알 바야돌리드 유스 소속이던 2003년, FIFA U-17 월드컵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국내 방송사에 의해 TV로 생중계된 이 대회에서 말로만 듣던 이 스페인 유스팀 소속 유망주의 실력을 직접 본 네티즌들은 의견이 분분했는데 피지컬과 파워가 좋은 유망주가 나왔다며 극찬하는 편과 스페인 유스라고 기대했는데 전형적인 발 느리고 몸으로만 수비수를 상대하며 버티는 평범한 클래식 한국형 공격수라며 실망하는 편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실력이 전혀 없는 거품 선수는 아니었다. 양동현은 스페인과 시에라리온을 상대로 각각 1골씩, 총 2골을 넣었다.[2]

만 18세가 된 해, 바야돌리드 성인팀 계약을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에 피로골절 부상을 당해 유럽 생활을 포기하고 국내로 돌아왔다. 그는 "축구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게 유럽에서 일찌감치 포기하고 돌아온 것이다. 버텼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지금보다 한국 선수가 유럽에서 자기 관리할 여건은 부족했다. 그래도 그때만큼 자신 있고, 즐겁게 축구한 적은 없다."고 회고했다. #


3. 클럽 경력[편집]



3.1. 울산 현대 호랑이 1기[편집]


2005년 팀에 입단해 R리그에서만 뛰었고 15경기 5골을 기록하며 R리그에서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고, FA컵에서 프로 데뷔를 한다.

2006년 리그에 데뷔했고, 리그 1골에 그쳤지만, R리그에서 9골을 기록하며 핌 베어백, 박성화가 이끄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예선을 위한 U-23 대표팀에도 소집되어 박주영과 투톱으로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예선 첫 경기 예멘과의 경기에서도 박주영의 패스를 받아 소중한 선제골 겸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잠시 주목받기도 했다.

2007년 하우젠컵에서 4골을 넣었고 특히, 결승전에서 FC 서울을 상대로 선제골을 넣어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2007년 무렵부터 주목받던 신영록이근호에게 밀린데다 부상까지 당하며 2007 AFC 아시안컵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베트남 본선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다.

2008년에는 리그 11경기 출전에도 무득점에 2도움만 기록하는데 그치며 기대치에 못미치는 성장세를 보였다.


3.2. 부산 아이파크[편집]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였고, 첫 시즌인 2009 시즌에는 리그 5골과 피스컵 코리아에서 3골을 넣으며 커리어 최다 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0 시즌에는 포스코컵에서 1골을 넣고 K리그에서는 한 골도 못 넣는 굴욕을 겪었다. 이즈음 축구 팬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축구 개그가 삼동현으로, 터질 듯 터질 듯 터지지 않은 김동현, 서동현, 양동현 세 유망주를 일컫는 말이었다.

이듬해 기량이 만개하며 커리어 최초 두 자리 수 득점을 기록하였다.[3] 그러나 군 문제를 해결해야 했기에 2012년부터 2013년까지 경찰 축구단에서 복무했다. 2013년 K리그 챌린지 원년에 21경기 11골 4도움을 기록하며 중도에 전역했음에도 리그 득점 5위에 올랐다. 이후 전역하자마자 바로 공격의 핵으로 자리잡으며 K리그 클래식 9경기 3골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K리그 공격수 중 김신욱과 더불어 가장 좋은 폼을 보여줬다. 홍명보호의 2014 월드컵 대비 전지훈련 발탁이 기대되었으나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좋은 체격에 유연한 몸놀림을 겸비해 팬들 사이에서보다 현장에서 평가가 후한 선수다.


3.3. 울산 현대 2기[편집]


2014년 7월 17일 울산 소속의 김용태, 박용지와 관련된 2:1 트레이드 형식으로 울산 현대로 이적하여 친정 팀에 복귀했다.

김신욱과 함께 트윈 타워를 구성, 전남전에서 골도 넣으며 적응에 대한 기대를 높여갔지만, 결국 유리몸 우려 그대로 시즌아웃. 김신욱의 아시안 게임+해외 진출 공백을 대비해 주전 미드필더에 영플레이어상 후보 유망주까지 부산에 내주고 양동현을 데려온 울산 입장에서는 허탈감이 들 찰나 시즌 아웃으로 여긴 양동현이 71일 만에 복귀해 상주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울산을 상위 스플릿에 올려 놓았다. 조민국 입장에선 이뻐 보일 수 밖에 없겠지만, 조민국의 퇴진을 바라는 울산 팬들 입장에선 괜한 짓을 했다고 원성을 들을 만한 활약이었다. 뒤이어 벌어진 성남전에서도 2골을 터트리며 팀을 상위 스플릿에 생존시켰다. 부산에서 전반기 기록까지 합치면 리그 30경기에 출전해 9골 3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15년 K리그 클래식 개막전에서 서울을 상대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돌아온 울산의 철퇴의 선봉 노릇을 톡톡히 했고, 교체 출전한 김신욱에 앞서는 활약을 보였다.

2015년 6월 17일, 전북전에서 7호골을 터트리며 전북의 에두에 이어 염기훈과 공동 2위를 기록했다. 30경기에 출전해 8골 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리그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3.4. 포항 스틸러스[편집]


2016 시즌을 맞아 포항 스틸러스로 이적했다.[4][5] 김승대고무열, 박성호 등의 이적으로 최전방 전력에 누수가 심한 포항에서 주전으로 뛸 원톱의 역할을 받게 됐다. 본인은 포항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것이라는 심정을 밝혔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군생활을 제외하고 그동안 몸담은 팀도 모두 동해안에 자리잡은 팀들이다.

광주와의 개막전에서 후반 교체 투입 이후 활발한 공격으로 그전까지 풀리지 않던 포항의 공격을 이끌고 득점도 1개 기록했다. 이후로는 그야말로 각성, 팀을 떠나간 공격수들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매 경기마다 미친 존재감을 보여줬다. 측면 공격수 심동운과 함께 원톱 자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장신 공격수로서 기본적인 탱킹에 골 결정력과 패스까지 겸비하면서 본인이 원톱 자리에서 비비거나, 아니면 잠시 2선으로 나왔다가 그 빈자리를 파고 드는 심동운, 문창진에게 킬패스를 넣어주면서 심동운과 함께 2016 시즌 포항의 원투 펀치를 담당했다. 더욱이 손준호가 시즌 초에 부상으로 시즌 아웃당하면서 중원에서 패스 공급이 끊기게 되자 본인이 패스 공급을 맡는 모습도 보여주며 포항 공격진의 맏형으로서의 역할을 확실히 했다.

시즌 마지막 경기, 성남을 상대로 결승골을 뽑아내며 위기의 포항을 강등으로부터 구원해냈다. 리그 기록은 32경기 13골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개인 통산 K리그 클래식 첫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하며 득점 3위에 오르는 등 전성기를 맞이했다.

2016 시즌 후 본인도 포항 생활에 만족하는 듯 하다.기사.

2017 시즌을 앞두고 부주장에 임명되었다.

2017 시즌 첫 경기이자 홈 개막전 동해안 더비에서 모두 득점에 성공하여 4경기 4득점 1도움이라는[6] 좋은 출발을 보여줬다. 최순호 감독이 인터뷰에서 양동현의 정통 9번으로서의 장점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4-3-3에서의 윙 포워드들을 인사이드로 배치하고 윙백을 활용하여 양동현이 항상 최전방에서 슈팅을 시도할 수 있는 위치 선정이 되도록 한 것이라 밝혔다.

다만 완전무결한 선수는 아니다. 두 가지 큰 단점이 있는데, 퍼스트 터치가 길다는 것, 원터치 패스와 횡패스가 성공율이 낮다는 것인데 이상할 정도로 종패스에 비해 동료를 피해간다. 이 두 가지가 국가대표팀에 오르기에 발목을 잡는 요소가 아닐까. 사실 주고받는 짧은 연계 외에도 간결한 마무리보다는 접고 보는 방식, 정면으로 가는 헤더, 의외로 공중볼 다툼에서 밀리는 경우가 잦다는 점도 있다.

베트남에서 베트남 국가대표를 상대로 치르는 K리그 올스타전손준호와 같이 차출되었다. 관련 기사

2017 시즌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이미 2016 시즌의 13골과 타이를 기록하며 득점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2017 시즌 후반부의 평가는 미묘한데, 최순호가 양동현을 너무 고집하다보니 시즌 후반부터는 상대팀들이 양동현에 대한 파훼법을 갖추어 득점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양동현 말고는 원톱 자원 자체가 없다보니 전경기 풀타임에 가까운 혹사를 시키게 되었고, 이때문에 양동현의 체력마저 급저하, 결국 시즌 후반에는 상대 수비에 고립되고, 움직임도 떨어지고, 동료와의 연계도 안 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며 팀의 연패와 궤를 같이 했다.

게다가 시즌 내내 경쟁자 없이 원톱 자리를 꿰차고 있다 보니 본인 스스로도 자만심이 들었는지, 시즌 초반에 보여주던 패스가 줄어들고 탐욕이 늘어나면서 고참으로 후배들을 다독이지는 못하고 오히려 팀 케미를 해치는 모습을 종종 보이면서 팬들의 우려를 자아냈다. 그래도 어쨌든 스플릿 라운드 첫 경기(vs인천) 에서 본인이 목표로 한 리그 18골을 채웠다.[7]

결국 리그 36경기에 나와 19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리그 득점 2위 및 자신의 첫 리그 20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등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록하게 됐다.

국가대표의 경우 신태용호가 새로 출범했지만, 연계 플레이가 매우 안좋은 양동현의 플레이 스타일 때문인지 엔트리에 뽑히지 않았다. 특히 콜롬비아, 세르비아와의 평가전을 통해 4-4-2 전술이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근호와 같이 활동량이 많고 연계가 좋은 파트너와 함께했을 때 손흥민의 경기력이 확 살아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와 완전히 대치되는 양동현은 국대와 인연이 생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포항에서의 리그 기록은 68경기 32득점 6도움이다.


3.5. 세레소 오사카[편집]


2017 시즌 종료 후 윤정환이 이끄는 J1리그세레소 오사카에 2년 계약으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나왔다. # 양동현 본인도 이적에 긍정적이라고 한다. # 포항에 두둑한 이적료를 안기고 J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의 마지막 인사

시즌 초반 몇 경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후반 막바지에 교체로 출전했다. 선발 경기에서 폼이 별로였고 팀 자체가 고전하는 분위기라 힘든 상황. 이후 부리람 유나이티드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데뷔골을 신고했으나 세레소의 팀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3월 31일, 쇼난 벨마레와의 경기에서 리그 데뷔골을 기록하는 등 2대1 승리에 기여하면서 J리그 5라운드 베스트11에도 뽑혔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선발 출전과 교체 출전을 막론하고 계속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현지 팬들에게 많은 욕을 먹었다. 여름에는 반 년만에 전남 이적설이 돌면서 K리그로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세레소 측에서 요구하는 이적료를 전남이 맞춰주지 못해 결렬됐다고.

8월 5일 사간 토스와의 경기 이후로는 선발 출전은 물론이고 교체 명단 포함조차 단 한 경기도 되지 못했다. 중간에 잔부상을 겪으며 쉰 기간도 있긴 했으나 부상에서 완치된 이후로도 2개월 이상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데, 들리는 이야기에 따르면 윤정환과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상황이며 하루 빨리 세레소를 떠나길 원한다는 듯.

그러나 세레소의 2018 시즌 전체가 실패로 끝나면서 양동현과 관계가 좋지 않은 윤정환이 먼저 팀을 떠났고, 주전 공격수 스기모토 켄유의 우라와 이적, 주전 미드필더 야마구치 호타루와 야마무라 카즈야 또한 각각 고베, 가와사키 이적이 확정지은 상황이라 팀 공중분해를 막기 위해 구단이 양동현에게 잔류를 요청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가족들도 같이 일본에 건너왔고 본인의 자존심 문제도 있기 때문에 잔류의 가능성도 있었고 결국 2019년 재계약을 맺으며 잔류를 선택했다.

그러나 2019시즌 개막 후 2경기 모두 명단 제외되는 굴욕을 당했다. 새 감독의 플랜에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르방컵에서도 벤치에만 머물렀고 리그 3라운드에서는 명단 제외를 당하면서 감독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작년 여름처럼 이적료 문제 등으로 잔류'당했음'이 명백해졌다.


3.6. 아비스파 후쿠오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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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시즌이 개막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J2리그아비스파 후쿠오카로 이적했다. #

페치아 감독이 강력하게 원했던 영입이라고 한다. 합류한지 일주일도 되지않아 곧바로 선발로 출전했다.

이적 후 첫경기부터 선발로 출전했고 파지아노 오카야마에게 1대0으로 뒤져있을때 발리슛으로 동점골을 넣었다. 그러나 결국 경기는 2:1로 패했고 후쿠오카는 J2리그 꼴지까지 떨어졌다. 그리고 다음 경기 니가타전에서 헤딩슛으로 2경기 연속골을 터뜨렸고 0:1로 승리하면서 팀의 첫 승에 큰 공헌을 했다.

16라운드 오미야 아르디자전에서 동점골을 성공시키면서 5호골 달성에 성공했다. 그러나 감독이 바뀌어 벤치 멤버로 전락하나 했으나 24라운드에서 오랜만에 골을 넣었고, 25라운드에서 연속골을 기록했다.

이후에는 서서히 경기력은 떨어져갔고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팀도 굉장히 부진한 상황이다. 결국 팀 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음에도 1년만에 계약을 끝냈다. 그리고 시즌 종료 후 K리그1성남 FC로 이적한다는 단독 기사가 뜨면서 국내 복귀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


3.7. 성남 FC[편집]


2020년 1월 3일 성남 FC는 양동현의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성남 FC로 이적하게 되면서 2017 시즌 포항에서 같이 뛴 서보민과 재회하게 되었다.

파일:2020050945015209.jpg
무관중 경기로 진행된 성남 FC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고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의료진들을 향해 수어를 하는 양동현.

1라운드 광주 FC전에서 전반 11분 만에 머리와 발로 멀티골을 터뜨려 2:0 승리를 이끌며 맹활약했다. 후반 35분에 해트트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공을 계속 접다 뺏겨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1라운드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이후로 15살 연하의 신인 홍시후와 투톱으로 선발 출전했으나, 좋은 찬스를 많이 놓쳤다.

5라운드 대구전에서 패널티킥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후, 시즌에서의 득점은 없었다.

15라운드 인천전에서 김영광의 골킥을 헤더로 돌려놓고 나상호가 마무리하면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리그에서 23경기 3득점을 기록했다.


3.8. 수원 FC[편집]


시즌이 끝나고 승격팀 수원 FC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보도되었고, 이후 2021년 1월 7일 수원 FC에서 양동현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1년. #

3.8.1. 2021 시즌[편집]


2021 K리그 1라운드 대구와의 경기에서 PK로 수원 FC에서의 첫 골을 넣었다. 그러나 해당 경기에서 전반전이 끝나고 부상으로 교체 아웃되었다. 3월 2일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담당의는 최소 9주~10주 동안은 경기에 못나간다는 결과가 나왔다.

4월 14일자 FA컵 3라운드 전남 드래곤즈 전을 통해 필드에 복귀해 PK로 팀의 동점골을 만들었으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끝에 패배했다.

5월 1일의 리그 13라운드 대구 FC전에서는 전반 21분 무릴로의 코너킥을 헤더로 연결해 선제골을 만들어냈으나, 팀은 2:4로 역전패했다. 이 득점으로 자신의 K리그&리그컵 통산 95호골이자, 수원 FC K리그 통산 400호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리그 18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 전에서는 전반 30분에 라스의 킬패스를 받아 팀의 두번째 골을 만들어냈다.

7월 25일 리그 21라운드 울산 현대 원정 경기에서 라스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했고, 전반 종료 직전 코너킥 상황에서 라스가 올려준 공을 오른발 날아차기로 집어넣어 팀의 네번째 골을 만들어내면서 2:5 역전승에 기여하였다.

8월 15일 리그 25라운드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48분 박승욱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동점골을 만들어냈으나 팀은 3:1로 패배하였다.

8월 21일 26라운드 제주와의 홈경기에선 교체로 들어와서 후반에 PK를 얻어내는 활약을 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PK 전에 공에다 키스를 하며 라스에게 넘겨주었다. 이어진 27라운드 수원 더비에서는 후반 추가시간 2분에 김준형의 크로스를 오른발로 잡아내 헨리를 제치고 골대 우측 하단으로 슈팅을 때려 본인의 통산 99번째 득점을 만들어냈다.

10월 31일 리그 34라운드 울산 현대 원정에선 정재용과 교체 투입되어 55분에 한승규의 패스를 이어받아 침착하게 골문 구석을 노린 슛으로 본인의 리그 통산 100번째 골을 만들어냈다. 2021시즌 수원 FC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포함해 도합 30경기 출전 8골 1도움.

12월 11일 구단은 계약 연장을 발동했다고 공식 발표했다.[8]


3.8.2. 2022 시즌[편집]


시즌을 앞두고 구단과 1년 재계약을 맺었다.

2월 19일, 시즌 개막전 전북전에 출장했지만 이후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였고, 복귀 이후 4월 초에 2경기를 뛰었지만 이후 김현라스의 활약으로 출장하지 못하고 있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안산 그리너스 FC행이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안산 구단 내부 사정으로 인해 무산되면서 수원에 잔류하게 됐다.

주전 경쟁에서도 밀리고 이적도 무산되자, 수비수로의 포지션 변경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8월 15일, 강원과의 경기에서 후반 79분에 교체로 들어오면서 수비수로서의 첫 경기를 치뤘다. 센터백으로서 나름 괜찮은 모습을 보이며 3:2 리드를 지켜내었다.

2022시즌 수원 FC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포함해 도합 8경기 출전 0골 0도움.

시즌이 끝나고 스포츠니어스발 발표로 2023년에는 플레잉 코치로 재계약을 채결할 전망이라고 한다.


3.8.3. 2023 시즌[편집]


2023년은 플레잉 코치가 되면서 경기에는 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라스, 김현 등 공격 자원들이 부상으로 뛸 수 없게 되자, 4월 29일 FC 서울 전에 교체로 출장하였으나 팀의 3:0 패배를 막지 못했다.

2023년 11월 9일 시즌이 끝나면 현역 은퇴한다고 공식발표했다.

4. 기록[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5. 플레이 스타일[편집]


전형적인 포처 스타일에 가까운 선수로, 적절한 위치 선정과 몸싸움을 기반으로 골을 넣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전성기 시절에는 두자릿수 득점도 종종 기록했을 정도로 슛 정확도와 파워가 꽤나 좋았다.

하지만 상술한 플레이스타일은 양동현의 활동반경을 철저히 상대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한정되도록 만들기도 한다. 때문에 원톱이든 투톱이든 동료 공격수가 넓은 활동량을 가져가며 양동현이 득점을 노릴 수 있는 적절한 포지셔닝을 하도록 도와주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준수한 신체 스펙에도 불구하고 포스트플레이 능력이 생각보다 좋지는 못 하며, 주변 동료를 활용한 연계 능력 또한 아쉽다는 평이 제법 많다. 여기에 퍼스트 터치도 길 때가 많아, 양질의 패스가 공급되지 못 하면 득점력이 급감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말해 스트라이커에게 많은 활동량과 적극적인 수비가담을 요하는 현대축구의 흐름과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선수로, 오히려 득점 생산 본연의 임무를 강조한 정통 스트라이커에 더 가까운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6. 여담[편집]


  • 유난히 동해안 더비와 인연이 깊은 선수이다. 울산, 포항 소속으로 모두 득점한 경험이 있는 것도 모자라, 2013년 K리그 클래식 최종 라운드가 결승전으로 열리게 되는 데에 설계 관여했다. 당시 포항 레전드 윤성효가 이끄는 부산 소속으로 출전하여 부산의 역전골을 도우며 포항의 우승 도전이 가능하게 만들었다[9]. 이 일과 관련하여 2017 프리시즌에 드립을 날릴 정도...

  • J리그로 진출하기 전까지는 군 복무를 제외한 프로 소속팀이 모두 동해안에 얽혀 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상술한 동해안의 남자. 물론 일본 진출 후에는 이것도 옛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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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2 미스코리아 경기 진[2] 아시아 예선에서의 활약도 굉장했다. 대한민국은 전통적으로 이 연령대가 약한 편을 생각하면 대단한 활약을 해 준 셈이다.[3] 30경기 11골 4도움, 리그 25경기 9골 3도움, 러시앤캐시컵 6경기 2골 1도움[4] 이당시에 대다수 포항팬들은 포항에서 누가 나갔다는 소식에만 익숙해져 있어 말 그대로 뜬금포 이적이었다.[5] 참고로 전 소속팀 울산에서는 이정협을 영입하기 위해 스쿼드 정리 중에 있었고 그중에 하나가 양동현이었다. 울산 팬덤에서는 양동현이 떠나리라 예상은 했지만 그 행선지가 포항일 될 줄은 몰랐다.[6] 포항은 고질적인 원톱 문제로 인해 김승대가 줄타던 잠깐을 제외하면 골 결정력 문제에 시달려온 팀이다. 그래서 황선홍이 감독을 맡던 시기부터 롱볼이 가능하며 어떻게든 한골을 쑤셔 넣을 수 있는 원톱을 원했던 것이다.[7] 물론 이날 경기는 김승대, 완델손이 전반전에 인천 수비진을 완전히 붕괴시킨게 결정적인 경기였다.[8] #[9] 역전 골 어시스트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