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량(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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楊亮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행적
3. 창작물에서


1. 개요[편집]


후한 말의 인물이자 양기의 아들로 사례 홍농군 화음현 사람.


2. 행적[편집]


195년에 이각곽사가 서로 내분을 일으켜 싸우면서 삼보의 난이 일어나자 헌제는 동쪽으로 피난을 갔는데, 이 때 양기가 헌제를 호송하는 일행으로 동행했다. 헌제가 조조의 비호를 받아 허창으로 천도하면서 양기의 공적을 인정해 양량을 양성정후에 봉했다.

양량이 봉해진 양성정이 어느 위치인 지는 알 수 없지만 후한서 양진전에 딸려있는 양기전 부분에 양량의 옛 집이 당나라 시기의 관향현 서남쪽에 존재한다고 하고 있기에 이 부근으로 추정된다.


3. 창작물에서[편집]


소설 삼국지 유지경성에서는 조창의 부인 손씨와 딸인 조윤이 위나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오나라 관할까지 데려다주며, 손씨가 조윤과 위나라를 벗어나자 평안하시라고 인사를 하고 손씨가 감사를 표하자 이만 돌아가겠다면서 자리를 비우면 의심받는다면서 떠났다.

조창이 조비로 인해 독살당하면서 조비가 누군지 모르는 자에게 시집을 보내 고초를 겪을 것으로 우려해 유언으로 손씨를 도망가게 한 것으로 태후 변씨전예의 부탁을 받은 아버지 양기의 부탁으로 양량이 움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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